Categories
내 인생의 10곡 특집 Feature

라디오 PD들의 ‘내 인생의 음악 10곡’ – #16 서병석 PD

내년 개설 20주년을 앞두고 이즘은 특집 기획의 일환으로 라디오 방송 프로듀서 20인의 ‘내 인생의 음악 10곡’ 편을 연재 중입니다. 라디오는 음악과 동의어라는 편집진의 판단에 따라 기획한 시리즈로 모처럼 방송 프로듀서들이 전해주는 신선한 미학적 시선에 독자 분들이 좋은 반응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각 방송사의 라디오국에서 음악 프로를 관장하며 15년 이상의 이력을 가진 20인 PD의 ‘인생 곡 톱10’입니다. 열여섯 번째 순서는 CBS 서병석 프로듀서입니다.

글쓰기는 로고스의 영역이라 굳게 믿는 내게 파토스가 비정상적으로 큰 난 글쓰기에 맞지 않는 인간이라고 스스로를 여겨왔다. 지금도 마찬가지고, 그렇기에 늘 두렵기도 하다. 그치만 지난 주 야심한 밤, 임진모 선생님으로부터 문자 한 통이 날아왔다. 내 인생의 음악 열곡을 골라달라고..

원래의 나였다면 무슨 이유를 들어서라도 완곡히 거절했겠지만 그날따라 유난히 선생님의 부탁은 마치 꼴레오네의 거부할 수 없는 제안과도 같은 느낌이었고 난 수락할 수 밖에 없었다. 보다 자세한 연유는 지면관계상 과감히 생략키로 한다. 아무튼 정리하다보니 부끄러운 일기장 같이 돼버리고 말았다. 널리 양해하고 봐주시기 바란다.

현인 ‘신라의 달밤’
누구나 그렇듯 어린 시절 아버지란 존재는 ‘슈퍼히어로’다. 내게도 역시 그랬다. 하기 싫은 숙제를 슬며시 떠넘기면 고된 일을 마치고 나서도 늘 말없이 완벽히 해주시던 맥가이버였고, 늘 이곳 저곳 아프시면서도 병원 한 번 가지 않으신 ‘아이언 맨’이셨다.

그런 아버지가 어느 날 거나하게 취하셔서 부르시던 ‘신라의 달밤’을 일곱 살의 난 뚫어지게 쳐다봤던 거 같다. (물론 그 곡의 제목이 신라의 달밤이었고, 독특한 그 창법의 원작자가 현인 선생님이라는 사실은 나중에 알았지만) 현인 선생님 못지 않았던 독특한 바이브레이션 때문이기도 했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날 처음으로 영웅이 아닌 인간 아버지의 고된 모습이 뇌리에 박혔기 때문이지 않았을까 싶다. 충혈된 눈, 벌건 볼, 그리고 웃고는 계시지만 슬퍼보이던 얼굴 표정까지…

초인종이 달린 집에 살고 싶다는 소박한? 철부지 꼬맹이의 말 한 마디에 아버지는 악착같이 일을 하셨고 고됨이 쌓일수록 아버지의 노래가 더 빈번해졌고 그의 바이브레이션이 더 깊어졌음을 훗날에야 깨닫게 됐다. 그리고 이제야 그의 노래가 아주 조금씩 이해가 되는 나이가 됐다. 아주 조금씩…

이문세 ‘사랑이 지나가면’
초등학생 시절, 수줍음 많았던 내게 최고의 친구는 라디오였다. 누나와 한 방에서 불을 끄고 이불을 뒤집어 쓰면 친구를 맞이할 거룩한 의식은 끝. 이윽고 지직 거리는 오래된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Merci cherie! <별이 빛나는 밤에>는 그렇게 매일 밤 날 두근거리게 만들었다.

이문세 아저씨가 가수라는 건 알았지만 감히 그의 음반을 살 수 없었던 차에 누나를 좋아했던 형이 누나에게 그의 음악을 녹음한 테이프를 선물해줬던 기억이 또렷이 난다. 그리고 이내 그 테이프는 내 소유가 됐었다. 그 안에는 이문세의 최고 명반 4집이 빼곡이 들어차 있었다. 이별 이야기를 들으면서 고은희씨의 목소리에 매료됐었고, 깊은 밤을 날아서를 들으며 춤을 추곤했다. (당시에 초등생인 내겐 춤을 추기 충분한 리듬이었다. 심지어 그 앨범에 들어가 있던 ‘어허야 둥기둥기’까지 사랑했었다.

그리고 ‘사랑이 지나가면’은 숫기 없던 내가 벌칙과 장기자랑 그 중간 성격의 교실무대에 나가 노래를 부르게 해준 곡이었다. 노랠 부르고 부끄러움 때문이었는지 모르겠지만 눈물을 흘린 기억도 난다. 그리고 담임 샘께서는 조그만 게 뭘 안다고 우냐고 핀잔을 줬던 기억도. ㅋㅋ

Wham ‘Last christmas’
조지마이클이 앤드류 리즐리와 결별후 ‘Faith’로 전 세계를 휩쓸 즈음, 난 뒤늦게 팝의 세계로 빠져들었고 그 첫 번째 안내자는 Wham이었다. 88년 코리아나의 Hand in hand (언제나 시대를 앞서갔던 조르지오 모로도 형님 존경합니다) 가 길보드 차트를 평정하고, 같은 반 친구들은 모두가 최호섭의 ‘세월이 가면’을 떼창하고 있을 때 난 과감히 Last christmas를 꺼내들었고, 이내 모두가 전주를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지금은 평생의 업이 되었지만 대중들에게 노래를 고르고 소개하는 기쁨을 알게 해준 인생 최초의 노래였다.

The Beatles ‘In my life’
지금은 사라져버린 수많은 것들 중 제일 아쉬운 건 작은 레코드숍이다. 중학교 진학 후 용돈을 아끼고 쪼개가며 몇 달을 모은 뒤 달려간 곳은 레코드 가게였다. 하지만 난 늘 결정장애였고 그런 날 늘 도와줬던 건 안경을 쓰고 트리트먼트가 잘 된 장발을 휘날렸던 주인 아저씨였다. (그렇다고 존 레논을 닮진 않았었다::)

친분을 쌓아가던 어느 날 아저씨가 뭐니 뭐니 해도 이들의 음악은 필청이라며 강추한 뮤지션이 있었다. 그동안 수없이 명성은 전해 들었으나 내겐 철기 시대 유물로만 느껴졌던 그들의 음악! 내가 결국 사기를 주저하자 그가 선뜻 ‘공짜’로 내주었던 음반은 다름 아닌 비틀즈의 베스트 앨범이었다. 그땐 그런 낭만?이 있었다.

이후 난 비틀즈의 음반 한 장 한 장을 역순으로 사기 시작했고 그리고 러버 소울 앨범에 당도했다. 그중 내 귀와 마음과 영혼을 잡아끈 건 ‘In my life’!! 특히 조지 마틴이 만들어낸 하프시코드 음색의 피아노 솔로는 들을 때마다 뭉클해진다. 마치 사라져버린 레코드 가게의 낭만이 소멸하지 않고 살아 숨쉬는 기분이랄까?


이 부분을 빼면 이 곡의 위대함은 반으로 줄어들 것이다. 그리고 지금도 방송에서 이 노래를 플레이 할 때면 반드시 그 부분은 빠지지 않도록 유독 러닝 타임에 신경을 쓴다.

휘트니 휴스턴 ‘Saving all my love for you’
그녀의 데뷔 싱글을 들었을 때 그 전율을 잊지 못한다. 수 많은 디바들이 있었지만 그녀는 디바 그 이상이었다. 누군가가 지었는지 모르겠지만 The voice라는 별명이 적확하다. 여린 동시에 당찬 모습을 보여주며 Home이란 곡을 불렀던 첫무대부터 미국의 국가가 이토록 감동적일 수도 있음을 느끼게 해 준 역대급 슈퍼볼 무대까지 그녀는 그야말로 목소리만으로 울림을 전달해줬고 매번 기대 이상의 감동을 선사했다.

그리고 그녀의 역사적 첫 서울 콘서트를 잊지 못한다. 이미 약물의 후유증으로 특유의 고음도, 호흡도 모두 망가졌었고 주위 관객들은 하나 둘 자리를 떠나기도 하고, 야유를 쏟아내기도 했다. 그리고 끝끝내 목소리가 나오지 않아 눈물을 흘리며 ‘I will always love you’를 불렀던 그녀의 시련의 모습이 생생히 떠오른다. 그렇게 내 청춘의 한 페이지도 막을 내리는 거 같이 황량하고 쓸쓸했지만 사실 그녀의 마지막 일 것만 같았던 목소리를 라이브로 듣는 것 만으로 충분했다. 그리고 지금도 일상의 무게에서 벗어나고 싶을 때마다 무심코 꺼내드는 앨범에는 반드시 그녀의 목소리가 들어가 있다.

New kids on the block ‘Please don’t go girl’
뉴키즈 온 더 블록은 누나의 영향이 매우 컸다. 누님께서 하루 종일 그들의 음악을 틀고 뮤직 비디오를 교과서 삼아 열청했으니 나 역시 자의반 타의반 입가에 맴도는 중독성 음악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사달이 났다. 누님께서 땡땡이를 치고 역사적인 뉴키즈의 서울 공연으로 향했던 것이다. 난 누님의 사랑과 열정을 위해 부모님이 눈치 채시지 못하도록 철저 함구했다.

그날 밤, 9시 뉴스에선 공연진행 미숙으로 인해 사건 사고가 터졌다고 난리였다. 아버지는 모든 게 다 부모 잘못이라고 욕을 해대셨고, 어머님께서는 곁에서 적극 추임새를 넣으셨다. 뜻하지 않게 자아비판을 하게 된 아버님 때문에 웃지도 울지도 못하는 난감한 상황에 직면했었다. 누나가 새벽이 넘어서도 오지 않자 아버지는 심상치 않음을 직감하고 독서실로 향하셨고 누나의 부재를 눈으로 확인 한 후 분노 게이지를 최대치로 끌어 올리셨다. 결국 난 이실직고를 할 수 밖에 없었고 걱정으로 온 가족이 뜬 눈으로 누나를 기다렸다. 드디어 새벽 2시경 누나가 등장했다. 끔찍한 사고를 겪은 후 실신했고 의무대에 있다 깨어나 무사 귀환했던 것이다.

그러나 누나의 읍소 작전은 실패했고 집안엔 밤새도록 곡소리가 울렸다.
그런데 그 와중에 뉴키즈 온더 블록 쿠션을 들고 온 누님! 난 지금도 모든 면에서 누님의 열정을 따라가지 못한다.

무한궤도 ‘우리 앞의 생이 끝나갈 때’
박정희 보디가드가 세운 중고등학교, 군복을 입은 교련 선생님이 군기반장 역할을 했던 군사주의 색체가 짙게 깔린 학풍에서 음악은 탈출구였다. 특히 작사 작곡을 능수능란히 해내는 싱어송 라이터 친구가 전학을 오게 되면서 무한궤도와 공일오비를 꿈꾸기 시작했다.

그 녀석과 함께 음악을 한답시고 펜을 끄적이고, 음을 흥얼거리며 놀았다. 음악 활동을 반대하시는 부모님께 허락을 맡기 위해 그 녀석의 집으로 가기도 하는 등, 돌이켜보면 조금은 오글거리는 드라마 장면도 연출하기도 했었다. (하림아~ 아니 현우야 얼른 새 앨범 내자^^)

현우는 또 다시 전학을 갔지만 난 다른 친구들과 밴드를 결성했고 고등학교 수학여행 때 드디어 첫 무대에 올랐다. 곡명은 무한궤도의 ‘우리 앞의 생이 끝나갈 때’! 결과는?

우리 학교는 당시 수학여행만 가면 장기자랑과 여장 남자 대회를 동시에 열었는데, 난 장기자랑 출전 선수였다. 하지만 여장남자 대회에 반대표로 나갈 예정인 친구가 복통이 일어나는 바람에 얼떨결에 두 대회 모두 출전하게 됐다. 그렇게 본 캐릭터와 부 캐릭터가 충돌하는 상황에서 장기자랑에선 장려상을 받았고 여장남자 대회에서 무려 대상을 받게 됐다.:::

이후 가수로서의 꿈을 고이 접었다.

김현철 ‘동네’
적어도 내겐 김현철의 1집은 유재하와 이문세 / 이영훈 콤비의 완벽한 결합 진화체 그 자체였다. 모던하면서도 친근한, 마치 카라멜 마키아또와 청국장의 조화랄까? 팝과 가요의 절묘한 조합에 대한 정답이라고 외치는 듯 한 천재 뮤지션의 데뷔 앨범은 충격이었다.

그리고 그 즈음부터 라디오 피디가 되길 꿈꾸기 시작했고 직접 그를 만나고 싶어졌다. 그리고 십 수년이 흐르고 드디어 방송국에서 그를 만났다. 난 어린 시절 동경한 천재를 만나서 영광입니다란 촌스런 멘트를 날렸고 그는 매우 수줍어 했다. 동네에서 한 소녀를 사랑한 소년의 모습 그대로^^

Mark knopfler ‘The long road’
초창기 수능 세대라 수험생 시절 유독 예민해져 있었다. 결국 불면증까지 오게 됐다.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우던 그 때 심야 시간 라디오 프로그램들은 작은 위안이었다. 당시엔 심야 시간에 유독 방송사들 마다 영화음악 프로그램들이 존재했다.

그 중 새벽에 방송됐던 한 영화음악 프로그램의 시그널 음악, 마크 노플러의 연주가 일품인 Long road는 듣는 시간대마다 다른 느낌을 안겨다주는 묘한 매력의 곡 이었다. 특히 새벽시간에 듣는 롱 로드는 그야말로 몽환적이었고, 어느덧 날 기나 긴 길이 펼쳐진 꿈나라로 인도했다. 물론 프로그램의 명 게스트, 정성일 평론가의 현학적 평론도 불면증 치유에 한 몫 했지만:: 온갖 번뇌로 오늘도 잠 못 이루는 이들에게 Long road를 강추한다.^^

Guns & roses ‘November rain’
으레 그렇듯 남자 하면 락 아니던가! 나 역시 남중, 남고 틈바구니 속에서 랍 해포드가 몇 옥타브까지 올라간다느니, 랜디 로즈와 지미 핸드릭스, 지미 페이지, 슬래쉬 중 누가 최고의 기타리스트냐를 두고 유치한 싸움을 벌이곤 했다.

그리고 하드록과 사이키델릭 그룹들을 거쳐 액슬 로즈의 음악과 목소리에 빠져들었다. 그의 거친 쇳소리는 마음 속 스트레스 조각들을 긁어내주는 포크레인 같았다.(그의 딱 달라붙는 패션은 지금도 적응 불가지만..ㅋㅋ)

특히 그들의 9분에 달하는 대곡, November rain! 후반부 그랜드 피아노의 등장과 그 위에서 광기 어린 연주를 펼쳐내는 슬래쉬와 엑슬로즈의 클라이 맥스는 폭풍 간지 그 자체였다. 더군다나 11월생이었던 나의 사춘기 시절 공식 생일 축하곡이기도 했다. 그리고 별밤 잼 콘서트부터 노사연 주병진의 라디오 공개방송까지 섭렸했던, 자칭 라디오 키드이면서도 사연은 한 번도 보내진 않았던 내가 처음으로 사연과 신청곡을 보내고 소개까지 된 곡이 바로 ’11월의 비’였다.
고마워요 배철수 형님^^~~

*서병석 PD
2005년 CBS 입사
다수의 시사와 음악 프로그램 연출
현재 CBS 98.1 Mhz <유지수의 해피송> 연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