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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POP Album Album

빛과 소금 ‘Here We Go’ (2022)

평가: 4.5/5

26년 만에 돌아온 ‘다른 감수성’

K팝 타이틀 아래 눈부신 성공과 신기원 쾌척을 거듭하고 있음에도 우리 대중음악에 여전히 심리적 괴리감을 호소하는 사람은 얼마든지 있다. 그들은 다른, 새로운 스타일을 고대하지만 ‘천만과 억’의 매몰자본이 기본인 투우장에서 ‘대세’를 무시하기란 어렵다. 대세는 늘 폭압적이다. 이런 개성완박의 소나기를 피해 자신만의 색깔을 도모하는, 이른바 ‘디깅’의 흐름이 수년 전부터 이어진 ‘시티 팝’ 유행으로 나타났을 것이다. 적지 않은 그 소수들은 “이런 음악도 있는데…”는 말을 늘 입에 붙인다.

그들 덕에 오랫동안 수면 아래 있었던 ‘빛과 소금’이 굴착되고 발굴되고 융기되었다. ‘바이닐’ 열풍과 맞물린 그 트렌드는 빛과 소금의 LP가 출시되기만 하면 어김없이 완판의 결과로 이어졌다. 더 놀라운 것은 “우리에게 저 옛날 이렇게 잘 매만진 사운드가 있었나?”하는 경이가 결집해 끝내 빛과 소금을 은둔의 장에서 끌어내 활동의 장으로 불러냈다는 사실이다. 1996년 5집으로 끝난 것 같았던 그들이 다시 신보를 들고 26년 만에 돌아왔다. 반갑다.

장기호의 ‘Blue sky’와 박성식의 ‘오늘까지만’은 그들의 컴백이 결코 이름값이 아님을 실증한다. 선법 작곡에 따른 전자와 모처럼 박성식 본인이 노래한 후자는 과거와 현재 시제의 교배는 과연 어떻게 하는 것인가 그 질의에 대한 의욕적 응답이다. 세월의 이끼가 배인 그들만의 아지트 속에서도 지금의 감수성을 응시하고 있음을 축약하는 두 곡 모두 후반부의 연주 하모니는 독자적 미학의 극치를 선사한다. 누가 이런 노래를 만들고 내놓겠는가.

이게 진정 ‘뉴트로’ 아닐까. 실로 시티 팝에 대한 다소 수다스런 관심이 증강해 주조해낸 거대한 성과물이 아닐 수 없다. 본인들도 시티 팝에 신세를 지고 있음을 인정한다. 그 붐에 일게 된 재조명 분위기를 인식하고 30주년 기념 신곡을 염두에 두었으니까. 처음에는 서로 한 곡씩 두 곡만을 생각했으나 내친김에 앨범 제작으로 확장한 것이다. 코로나로 인해 발매가 지체되었지만 이제라도 접하게 되었으니 천만다행이요, 무한희열이다.

핵심은 ‘대세’와 ‘현실’이란 논리에 기초한 외부의 불편한 추궁을 즐겁게 묵살하고 자신들의 정체성을 ‘처음처럼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경쾌한 ‘필라마네’든, 잔잔한 CCM 트랙인 ‘우리 모두에게'(크리스천인 둘은 앨범에 단 한 번도 가스펠 곡 수록을 뺀 적이 없다)든, 컨트리 냄새가 물씬한 ‘사랑의 묘약’이든, 연주곡 ‘비 오는 숲’이든 언제나 그랬듯 지극히 ‘빛과 소금적’이다. 곡마다 치밀한 사고가 꿈틀거리고 정돈된 울림과 세련된 공기가 넘나든다.

그렇다손 쳐도 일각에서는 대중성 부재에 대한 걱정스런 지적을 들이밀 테지만 두 사람의 오랜 지향에 대한 겸손한 고집은 견고하다. 균질적이고 획일화된 것에 대한 불굴의 거부! 앨범에 대한 “기존의 성향 그대로 유지하려 했고 빛과 소금의 음악을 알고 있는 분들에게 오랜만에 바치는 선물이라 보면 좋을 것 같다”는 장기호의 소감이나 “’음, 역시 빛과 소금이야!’라며 미소 보내주신다면 감사할 따름”이라는 박성식의 말에 그게 깔려있다.

두 사람은 트렌드가 아닌 빛과 소금에 봉사했다. 솔직히 그들이 우리에게 건넨 ‘퓨전재즈’도 애초 비인기종목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샴푸의 요정’ ‘아침’ ‘그대 떠난 뒤’로 음악계에 새로운 파도를 불렀다. 음압만 강조하는 듯한 아이돌 팝 댄스, 힙합, 일렉트로니카로 대별되는 지금의 판 속에서 이번 음악도 ‘뉴 웨이브’의 기능을 시범한다. 하지만 ‘희소성’이란 낱말사용은 자제하자. 그것으로 앨범의 의미와 가치를 규정한다면 그건 우리 대중음악이 한두 가지 스타일에 쏠려있는, 병약한 상황인가를 스스로 자인하는 것이니까.

단지 쉬는데 깔리는 위로의 사운드트랙이 아니다. 단지 쉼표가 필요할 때가 아니라 취향 고양에 따른 음악 섭취의 별채를 원할 때 비로소 앨범의 유용성이 확립된다. 빛과 소금은 음악을 ‘듣는 것’보다 ‘찾아 듣는 것’을 원한다. 실로 어떤 이에게는 ‘경이’일 것이고 누군가에는 ‘경외’일 작품이다. 올해의 앨범이 벌써 정해졌다. 흥행의 압박을 넘어 음악 다양성의 영토구축에 조금도 주저하지 않는 두 레전드의 노고를 칭송하는 것에 조금도 주저하고 싶지 않다.

– 수록곡 –
1. Blue sky (English ver.)
2. 오늘까지만 (Feat. 서출구, 최현우)
3. 필라마네(Hey! children!)
4. 우리 모두에게

5. 비오는 숲
6. 사랑의 묘약 (Feat. 장재환)
7. Lost days
8. 우리 모두에게 with fans
9. Blue sky (Korean ver.)
10. Reminisc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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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Feature

당신을 위한 퓨전 재즈 입문곡 10선

“아이고… 재즈는 어려워요” 음악 좋아하는 친구들도 혀를 내두르곤 한다. 3~4분 내외의 규격화된 팝송에 익숙한 이들에게 작곡과 연주가 즉흥적인 이 장르가 당혹스럽다. 하지만 재즈만큼 해방감을 주는 음악이 있을까? 무궁무진한 음악적 아이디어가 담쟁이덩굴처럼 뻗어 나간다. 재즈의 다른 이름은 자유다.

퓨전 재즈는 1960년대 말 재즈가 소울과 펑크(Funk), 록과 손잡아 탄생한 음악 장르다. 1980년대에 들어 점점 정통 재즈와 거리가 먼 아리송한 음악이 되어 순혈주의자들의 지탄을 받았으나 대중 친화성으로 진입 장벽을 낮추는 순기능도 수행했다.

초기 스타일부터 시간순으로 거슬러 올라가거나 한 아티스트를 중심으로 갈래를 펼치는 등 재즈 입문의 경로는 다양하지만 처음부터 난해한 비밥이나 프리재즈를 들으면 좌절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여기 재즈의 향취를 드리우면서도 상대적으로 편안하게 다가오는 퓨전 재즈가 있다. 당신을 위해 엄선한 퓨전 재즈 열 곡을 들으며 재즈의 대양에 발을 담가 보는 건 어떨까?

제프 벡(Jeff Beck) ‘You know what I mean’ (1975)

퓨전 재즈 입문의 기억을 더듬어봤다. 동네 백화점 꼭대기 층에서 구매했던 제프 벡의 1975년 작 < Blow By Blow > 시작이 아닐까 싶다. 순위 매기기 좋아하는 일본인들은 에릭 클랩튼, 지미 페이지와 함께 그를 ‘세계 3대 기타리스트’ 에 올려놓았고 세 명의 기타 영웅 중에서도 벡의 경력은 특히 변화무쌍하다. 블루스 록과 퓨전 재즈를 거쳐서 테크노까지 시도하는 다변적 음악색의 정점에 < Blow By Blow >가 있다. 스티비 원더가 벡에게 주려고 했던 ‘Superstition’을 불가피하게 먼저 발표해 그 부채감으로 선물한 ‘Cause we’ve ended as lovers’는 신성함을 품고, 초절정 기교가 빛나는 ‘Scatterbrain’이 면도날 연주를 들려준다.

앨범의 문을 여는 ‘You know what I mean’은 제프 벡 펑키(Funky) 기타의 진수를 보여준다. 두 대의 기타가 각각 선율과 리듬을 연주하며 톱니바퀴처럼 맞물리고 그 밑을 맥스 미들턴의 간결한 건반 연주가 받쳐 주었다. 놀랍도록 정교한 프로덕션은 비틀스의 영광을 공유했던 조지 마틴의 솜씨. 국내에서는 < 장기하의 대단한 라디오 >의 오프닝 BGM으로 사용된 바 있다.

마일즈 데이비스(Miles Davis) ‘Black satin’ (1972)

재즈의 개척자 마일즈 데이비스는 < Birth Of The Cool >로 쿨재즈의 시작을 알렸고 < Kind Of Blue >로 모달 재즈의 이정표를 세웠다. 누구보다도 시대에 민감하게 감응했던 그는 1960년대 말부터 퓨전 재즈를 시도했고 < Bitches Brew >란 금자탑으로 넘보기 힘든 아성을 구축했다.

어느 장르가 그렇듯 퓨전 재즈도 아티스트별로 색채가 다르나 마일즈 데이비스의 곡들은 특히 전위성이 강해서 포플레이류의 편안한 음악을 예상한 이들에게 당혹감을 안겨준다. 다만 마일즈도 마커스 밀러와 손을 잡은 1980년대부터 힘을 뺀 대중적인 음악을 선보였다. 펑크(Funk)와 아방가르드를 섞은 1972년 작 < On The Corner >의 수록곡 ‘Black satin’은 마일즈의 고유색을 칠하되 상대적으로 곡 길이가 짧고 멜로디가 명확해 잊지 못할 잔상을 남겼다.

리턴 투 포에버(Return To Forever) ‘Sorceress’ (1976)

2021년 2월 세상을 떠난 칙 코리아는 방대한 경력으로 현대 재즈를 대표하던 피아니스트다. 1960년대 중반부터 본격적인 연주 활동을 시작한 그는 1972년 ‘영원으로의 회귀’라는 멋들어진 이름의 밴드를 조직해 총 8장의 정규 앨범을 남겼다. 그 기간 정통 재즈 스타일의 앨범들도 발표했으나 리턴 투 포에버의 인상이 강렬했던지 퓨전 재즈를 대표하는 건반 연주자로 인식되고 있다. 후에 스티비 원더와 알 재로가 커버한 인스트루멘탈 명곡 ‘Spain’의 작곡가이기도 하다.

리턴 투 포에버의 경력 중후반기에 발표된 1976년 작 < Romantic Warrior >는 갑옷 기사의 앨범 커버와 수록곡 ‘Medieval overture’처럼 중세의 숨결을 담고 있다. ‘여자 마법사’라는 뜻의 ‘Sorceress’는 기승전결의 전형적 구조를 탈피한 채 하나의 테마에 조금씩 변주를 주며 긴장감을 쌓아가고 이러한 곡 구성은 칙 코리아(키보드)-알 디 메올라(기타)-스탠리 클락(베이스)-레니 화이트(드럼)로 이뤄진 황금 라인업의 연주력으로 가능했다.

웨더 리포트(Weather Report) ‘Birdland’ (1977)

1932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태어난 조 자비눌은 이십 대 후반이 되어서야 미국에 당도한다. 알토 색소폰 연주자 캐논볼 애덜리의 음반에 참여하며 1960년대를 보낸 그에게 전기를 마련해준 건 마일즈 데이비스의 걸작 < In A Silent Way >와 < Bitches Brew >. 퓨전 재즈의 청사진을 제시한 두 장의 앨범에서 칙 코리아와 함께 건반 연주를 맡은 자비눌은 추진력을 얻어 1970년 불세출의 퓨전 재즈 밴드 웨더 리포트를 조직하게 된다.

체코 출신 베이시스트 미로슬라브 비투오스가 떠난 이후로 웨더 리포트의 음악은 더욱 펑키(Funky)해지고 대중적으로 변모했다. 빌보드 재즈 앨범 차트의 정상을 차지하며 가장 큰 상업적 성과를 기록한 1977년 작 < Heavy Weather >는 그 두 가지 특성을 고스란히 반영하며 아이디어 고갈에 시달리던 퓨전 재즈 장르를 되살렸다. 동명의 뉴욕 재즈 클럽에 헌사를 바치는 ‘Birdland’는 웨인 쇼터의 상쾌한 테너 색소폰과 일렉트릭 베이스의 혁명아 자코 파스토리우스의 프렛리스 베이스 사운드가 빛난다. 후에 보컬 그룹 맨하탄 트랜스퍼와 거장 퀸시 존스가 색다른 커버 버전을 들려주기도 했다.

허비 행콕(Herbie Hancock) ‘Chameleon’ (1973)

재즈 피아니스트 허비 행콕의 음악 여정은 저 위대한 마일즈 데이비스만큼이나 복잡하고 장대하다. 연미복을 빼입고 모달재즈를 연주하던 청년은 약 20여 년 후 브레이크 댄서들과 좌우로 몸을 흔드는 ‘Rockit’ 의 퍼포먼스로 마이클 잭슨의 박수갈채를 끌어냈다. 정(靜)에서 동(動)으로, 그의 음악은 늘 꿈틀댔다. 1970년대를 오롯이 퓨전 재즈에 바친 행콕이 1973년에 발표한 < Head Hunters >는 빌보드 앨범 차트 13위를 기록하며 대중성과 작품성을 함께 인정 받았다.

15분에 달하는 오프닝 트랙 ‘Chameleon’에서 행콕은 펜더 로즈, 클라비넷 등 다양한 건반 악기를 활용하여 펑키(Funky) 사운드의 극대치를 기록한다. 베니 모핀의 테너 색소폰 솔로는 행콕 못지않은 존재감을 드러내고 현란한 선율을 보좌하는 폴 잭슨과 하비 메이슨의 리듬 섹션도 탄탄하다. 근래의 많은 하우스 디제이들이 이 곡의 감각적인 소리샘을 추출해 퍼포먼스에 활용하고 있다.

스파이로 자이라(Spyro Gyra) ‘Morning dance’ (1979)

대중음악사에 한 줄이라도 언급될만한 위의 팀들에 비해 스파이로 자이라의 존재감은 미약하다. 하나 ‘깊이가 덜한 음악’이란 마니아들의 평가를 감내한 이들은 1974년 조직된 이래 50년 가까운 시간 동안 활동하며 퓨전 재즈 전도사 역할을 자처하고 있다. 그 중심엔 밴드의 창립자이자 건반 주자인 제이 베켄스타인이 있고 ‘녹조류의 일종’인 Spirogyra에서 따온 독특한 밴드명도 그의 작품이다.

싱그러운 마림바 연주와 베켄스타인의 아늑한 알토 색소폰 등 각 악기의 매력을 충실히 뽐내는  ‘Morning dance’는 빌보더 어덜트 컨템포러리 차트 1위, 싱글 차트 24위에 오른 밴드의 명실상부 최고 히트곡. 남아메리카 국가 트리니다드토바고가 고안한 타악기 스틸팬이 이국적 향취를 드러내기도 한다. 왠지 미용실 그림처럼 키치적인 느낌이지만 바꿔 말하면 그만큼 편하게 다가오는 퓨전 재즈 곡이다. 이목을 끄는 도입부 덕에 국내의 다양한 광고가 이 곡을 지목했고 4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라디오 방송에서 애청되고 있다.  

리 릿나워(Lee Ritenour) ‘Rio funk’ (1979)

1980년대를 대표하는 퓨전 재즈 기타리스트 리 릿나워는 귀공자같이 곱상한 외모와 그에 상응하는 뛰어난 연주력으로 인기를 끌었다. 솔로 활동 이외에도 퓨전 재즈의 올스타 밴드 포플레이의 초대 기타리스트로 석 장의 정규 앨범을 발표했고 조지 벤슨의 명곡 ‘Give me the night’와 패티 오스틴의 ‘Through the test of the time’에서 기타 연주를 들려줬다.

그가 1979년에 발표한 7번째 정규 앨범 < Rio >는 막강한 지원사격을 자랑한다. 퓨전 재즈 전문 레이블 GRP를 대표하는 데이브, 돈 그루신 형제가 건반 선율을 제공했고 < Heavy Weather >의 드러머 알렉스 아쿠나가 6, 7번 트랙에서 드럼 스틱을 쥐었다. 무엇보다도 주목할 이름은 마커스 밀러. 오프닝 트랙 ‘Rio funk’에서 훗날 퓨전 재즈의 대표 베이시스트가 되는 밀러와 릿나워가 합을 주고받으며 주도권 다툼을 벌인다. MBC 라디오 프로그램 < 배철수의 음악캠프 >의 일요일 코너 < Sunday Special >의 시그널이기도 하다.

척 맨지오니(Chuck Mangione) ‘Give it all you got’ (1979)

트럼펫 사촌 동생 격인 금관악기 플루겔호른. 이름도 어려운 이 금관악기를 대중에게 알린 공은 이탈리아계 미국 음악가 척 맨지오니에게 있다. 1960년대부터 아트 블래키 앤 더 재즈 메신저스와 더 내셔널 갤러리 같은 밴드에서 활약했지만, 전성기는 명실상부 1970년대 후반. 국내 라디오 프로에서 숱하게 나온 1977년 작 ‘Feel so good’로 시대에 회자할 선율을 남겼고, 다음 해에 발표한 앨범 < Children Of Sanchez >가 1979년 제21회 그래미 시상식의 < Best Pop Instrumental Performance >를 수상하며 정점을 찍었다.

‘네 전부를 걸어봐’라는 제목처럼 도전적인 분위기의 이 곡은 6분이 넘어가는 러닝타임에도 지루할 새 없다. 곡의 주인공은 맨지오니지만 쉴 새 없이 여백을 채우는 찰스 믹스의 베이스 연주와 그랜트 가이스만의 감칠맛 나는 리듬 기타도 잊지 말아야 한다. 1980년 미국 레이크 플래시드 동계 올림픽의 공식 주제곡으로 특유의 역동성을 맘껏 뽐냈던 이 곡은 1980년대를 주름잡던 KBS 2FM 라디오 프로그램 < 황인용의 영팝스 >의 시그널로 사용되어 국내 청취자들에게 추억의 멜로디로 남아있다.

카시오페아(Casiopea) ‘Fight man’ (1991)

어쿠스틱 기타에 푹 빠진 학생들이 일본의 기타리스트 코타로 오시오의 ‘Fight’, ‘Wind song’에 도전하는 것처럼 ‘연주 꽤나 한다는’ 실용음악과 학생들은 ‘Fight man’으로 합주 실력을 검증하곤 한다. 3분 약간 넘는 짧은 곡이지만 쫀득한 베이스라인과 기타 키보드의 더블링 등 속이 알차다. 곡의 중반부 복싱 경기처럼 라운드 시작을 알리는 종이 울리면 베이스와 펑키(Funky) 기타가 용호상박의 자웅을 겨룬다.

티스퀘어와 함께 일본을 대표하는 퓨전 재즈 밴드 카시오페아는 1979년 셀프타이틀 데뷔 앨범을 발표한 이래 장장 40년 넘게 현역으로 활약 중이다. 밴드의 주축은 기타리스트이자 메인 작곡가 노로 잇세이. 3기로 나뉘는 밴드의 타임라인에서 유일하게 밴드를 떠나지 않은 인물이기도 하다. 카시오페아 2기에 나온 1991년 작 < Full Colors >의 오프닝 트랙인 ‘Fight man’ 속 화려한 기타 솔로로 일본 최고의 퓨전 재즈 기타리스트 지위를 공고히 했다.

빛과 소금 ‘오래된 친구’ (1994)

MBC 예능 프로그램 < 나는 가수다 > 의 진행자로 활약했던 장기호와 김현식의 명곡 ‘비처럼 음악처럼’을 작곡한 박성식이 의기투합한 2인조 그룹 빛과 소금은 지난 몇 년간 시티팝 붐이 일면서 김현철, 윤수일과 함께 ‘한국 시티팝의 원류’로 재조명되었다. 이들은 동시대의 봄 여름 가을 겨울보다 인지도는 약했지만 1990년대 가요의 세련미를 책임지며 마니아를 결집했다. 후대에 다양한 후배 뮤지션들이 리메이크한 ‘샴푸의 요정’과 감정에 충실한 발라드 넘버 ‘내 곁에서 떠나가지 말아요’가 대표곡.

이들의 정규 4집 < 오래된 친구 >의 타이틀곡인 ‘오래된 친구’는 빛과 소금의 곡 중에서도 특출나게 펑키(Funky)하다. 초반부 재치 있는 보코더의 사용은 장기호 특유의 감미로운 음성으로 이어지고, 간결과 화려를 넘나드는 박성식의 건반 연주가 곡의 지지대 역할을 한다. 결혼식 입장곡을 연상하게 하는 오르간 소리와 통통 튀는 베이스 슬랩으로 간주도 빈틈없이 채웠다. 기교를 뽐내면서도 대중적 감각을 포용한 한국 퓨전 재즈의 보석 같은 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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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장기호 인터뷰

2010년대 말 시티팝의 유행은 하나의 큰 성과를 남겼다. 1970년대 말부터 1980년대와 1990년대까지, 과거 한국 대중음악계의 대표적인 음악가들을 젊은 세대에게 ‘레전드’로 각인한 것이다. 이들은 소셜 미디어를 통해 자발적으로 과거의 이름과 곡을 발굴하며 잊힌 전설들을 다시금 무대로 소환했다. 김현철, 윤상, 윤수일의 이름이 십 대와 이십 대 음악 팬들 사이에서 오르내린다.

빛과 소금은 그 흐름 속에서도 단연 인기다. 불세출의 스테디셀러 ‘샴푸의 요정’의 멜로디를 어렴풋이 기억하던 팬들은 고급스럽고 세련된, 소위 ‘한국 감성이 아닌’ 빛과 소금의 음악에 감탄하며 음악을 찾고 LP 판을 앞다투어 구매하고 있다. < 나는 가수다 >의 자문 위원으로 장기호를 알던 어린 마니아들은 이제 그가 1986년 김현식과 봄여름가을겨울의 초대 멤버, 1989년 1집을 발표한 빛과 소금의 중추, 솔로 커리어 장기호밴드와 KIO(키오)를 전개한 레전드 뮤지션이라는 사실을 안다.

작년 12월 27일 봄여름가을겨울의 김종진과 함께 오랜만에 박성식과 빛과 소금의 이름으로 함께한 < Reunion > 앨범 역시 화제였다. 고 전태관의 기일에 맞춰 과거 동지들에게 바치는 음악은 제목 그대로 오랜 음악 팬들에겐 ‘동창회’이자 ‘오래된 친구’, ‘보고 싶은 친구’들에게 건넨, 반가운 인사였다. 여느 때보다 더욱 현재의 이름으로 호흡하고 있는 그는 “솔로 활동기엔 장기호의 색채를 짙게 가져가려 했다. 하지만 앞으로 빛과 소금 활동을 통해선 같이 늙어가는, 추억을 먹고사는 세대를 위해 대중적 감각을 더할 계획이다”라 설명했다.

시티팝 유행으로 젊은 음악 팬들의 지지를 얻음과 동시에 봄여름가을겨울과의 콜라보레이션도 화제다.
나 혼자보단 나와 박성식, 그리고 봄여름가을겨울의 김종진이 함께했다는 사실이 더 주목받은 것 같다. 지난해 12월 27일 기자간담회를 열었을 때 사실 놀랐다. 100여 명 넘는 기자들 앞에서 인터뷰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과거 가요계에선 봄여름가을겨울, 빛과 소금의 사이가 그리 좋지 못하다는 이야기가 많았다.
봄여름가을겨울의 음악을 들어보고 빛과 소금의 음악을 들어보면 확실히 알 수 있다. 서로가 주장, 표현하고자 하는 것이 다르다. 그 원하는 바를 조화롭게 만들지 못했고. 추구하는 바가 달랐다. 음악적으로 보면 우리는 세련된 화성과 선율을 강조했다면, 당시의 봄여름가을겨울은 드럼과 기타의 리드미컬한 록 스타일에 가깝다.

물론 음악 말고도 다른 문제도 있었다. 박성식의 학업 문제도 있었고, 김현식이 건강 문제로 봄여름가을겨울을 함께하지 못하게 되자 음악을 그만두려 했던 내 상황도 있었다. 당시 김현식 없는 봄여름가을겨울은 엔진 없는 자동차라 생각했다. 이후 김종진이 봄여름가을겨울 첫 앨범에서 김현식을 대신해 노래하는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던 기억이 난다.

김현식의 3집을 만들 때 추천 받은 인물이 김종진, 전태관, 유재하, 그리고 장기호다. 박성식은 초기 멤버가 아닌 것으로 안다.
원래 시작 멤버는 위 멤버가 맞다. 당시 박성식은 군 복무 중이었다. 당시 나와 김종진, 전태관은 김수철의 작은 거인에서 1개월 정도 활동 중이었다. 그때 김현식은 ‘돌개바람’이라는 클럽 밴드와 함께 새 앨범을 준비 중이었다. 나와 이야기하면서 ‘때 묻지 않은 순수한, 젊은 친구들과 함께 공연을 하고 싶다’는 말을 했다.

김종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작고한 전태관과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30여 년을 함께 해왔다는 것, 그리고 그들의 활동이 한 번도 멈추지 않았다는 것만으로도 우리나라 대중음악사에 기록될 만한 인물이다. 이제는 우리나라에도 정말 실력 있는 대중음악인들이 많이 있다. 그러나 아이덴티티 확보에 실패했다면 대중은 기억하지 못한다. 그런 면에서 김종진과 봄여름가을겨울은 정체성 확보에 성공한 밴드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33년 만에 함께하여 전태관의 기일에 맞춰 새 앨범을 발표했다. 협업해보니 어떤가.
음악을 만들 때 집중하는 부분이 달라졌다. 예전 같았으면 분명 테크닉 적인 부분에서 마찰이 있었을 것이다. 지금은 그게 다 소용없다고 결론 내렸다. ‘우리 모두의 추억을 위해 의기투합하자’ 하는 마음으로 작업에 임했다. 음악적 욕심보다 음악을 통한 공감대를 만들고자 했다. 그리고 어덜트 컨템포러리 사운드 창출에 집중했다.

그룹 활동 이후 KIO(키오), 장기호 밴드 활동과는 사뭇 다른 태도다.
그때의 활동은 예술 대학 전임 교수로 14년을 재직하며 만든 기록이다. 예술 대학 학생이면 그 또래 중에선 그래도 가장 잘하는 친구들 아닌가. 학생들에게 어떤 형태로든 영감을 주어야겠다, 교수로서 “교육적 가치가 담긴 음악을 만들겠다”는 마음으로 작업했다. < Chagall Out Of Town > 시리즈에는 당시 수업시간에 가르치던 내용이 집약 되어있다. 학생들 취향에 맞을지는 모르지만 대중 지향적 취향에선 멀어졌다.

빛과 소금으로 함께 했지만 일각에서는 장기호와 박성식의 콜라보레이션 역시 낯설다는 반응이 있다.
박성식도 나도 교편을 잡고 있었기에 함께 활동하기가 쉽지 않았다. 우선 물리적으로 그 친구는 천안에, 나는 서울에 있었다. 둘째로 시간의 문제다. 교수는 방학이라고 스케줄을 자유로이 낼 수 있는 게 아니다. 셋째 이유는 경제적인 문제이다. 제한된 상황에서 음악을 만들고 공연을 한다는 것이 쉽지 않았다. 당시 내가 만들던 음악들은 대중 취향 저격용이 아니고 홍보가 제대로 된 것도 아니다 보니 투자비용을 뽑기가 쉽지 않았다. 마음은 늘 새로운 빛과 소금의 음악을 만들어야 한다고 하면서도 이렇다 할 결과물을 만들지 못한 변명이다.

박성식은 불세출의 명곡 ‘비처럼 음악처럼’을 만든 히트 작곡가다. 그렇다면 장기호의 걸작은 ‘샴푸의 요정’인가.
잘 모르겠다. (웃음)’비처럼 음악처럼’만큼 메가톤 히트를 기록한 건 아니지 않나. 다만 ‘비처럼 음악처럼’이 한번 크게 터졌다면, ‘샴푸의 요정’은 세월에 걸쳐 여러 번 히트했다고 본다.

현재 ‘샴푸의 요정’은 젊은 음악 팬들이 시티팝을 이해하는 결정적인 곡으로 자리를 굳혔다. 1989년 당시에도 록의 주류 문법과 거리를 두고 있던 세련된 음악이었다. ‘가객’ 김현식과 ‘가왕’ 조용필과도 달랐다. 빛과 소금의 음악에선 한국인의 ‘뽕’, 대중적 멜로디는 물론 세련된 서구의 스타일을 동시에 찾을 수 있었다. 한마디로 ‘별종’이었다.

장기호는 당시 문화부, 연예부 기자들의 질문을 회상하며 “‘빛과 소금의 음악으로 어떻게 대중을 설득할 거냐’는 이야기를 늘 들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많은 후배 가수들이 ‘샴푸의 요정’을 리메이크했고, 젊은 친구들에 의해 꾸준히 사랑받고 있다.”라며 곡에 대한 자부심을 드러냈다.

‘샴푸의 요정’을 곧 타임리스(Timeless)한 음악이라 말하고 싶다.
그렇게 표현해주니 감사하다. ‘타임리스’ 음악을 위해 갖춰야 할 두 가지가 있다고 늘 생각한다. 바로 음악적 정체성과 예술적 완성도다. 팝 음악들 중에는 세대를 거슬러 계속 불려지는 ‘올디스 벗 구디스(Oldies But Goodies)’라는 음악들이 있다. 그런 곡들은 공통적으로 음악가들의 선명한 정체성과 튼튼한 음악적 완성도를 갖추고 있다고 본다.

재즈와 펑크(Funk)의 느낌이 더 들어갔다면 빛과 소금은 한국의 스틸리 댄(Steely Dan)이 되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스틸리 댄은 내가 정말 존경하는 팀이다. 철저하게 계산된, 그리고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연주와 편곡, 그야말로 도널드 페이건의 완벽주의를 소리로 듣는 듯하다. 스틸리 댄은 분명 재즈 정신이 깃들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즉흥적인 사운드보다 계산된 사운드가 주를 이룬다. 나도 같은 맥락의 음악을 추구한다. 물론 그 정도 음악을 만들려면 개인 음악공부만으로는 안 될 것 같다. 사회, 문화적 배경과 지식, 경험이 모두 연결되어 있어야 하는데… 이것은 곧 국력과도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그런 스틸리 댄의 스타일과 감성을 한국에서 처음 구현한 곡이 바로 ‘샴푸의 요정’이다.
대가 중의 대가 스틸리 댄과 빛과 소금의 비교는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사실 이 곡의 주 멜로디는 동요와 다를 바가 없다(웃음). 쉬운 멜로디지만 그 음악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음악적 배경인 어레인지먼트, 프로듀싱에 공을 들인 작품이다. 음악 유학을 떠난 것도 그 영역을 더 광범위하게 공부하고 싶어 서였다.

1989년 빛과 소금의 첫 앨범을 다시 들었다. 장기호가 쓴 노래, ‘샴푸의 요정’과 ‘내 곁에서 떠나지 말아요’, ‘그대 떠난 뒤’ 등을 들으며 문득 ‘왜 장기호는 유재하처럼 되지 못했나’하는 아쉬움이 컸다.
생전 유재하와 밤새 음악 얘기를 하다 보면 추구하는 음악 방향도, 서로 갖고 있던 CD도 너무 비슷해서 놀라웠던 기억이 난다. 아마 내가 대중의 눈높이와 감성 저격에 눈을 늦게 뜬 것 같다. 그러나 해외 관계자들의 반응은 나쁘지 않았다. 한 번은 < Chagall Out Of Town > 앨범을 홍보하던 PD가 일본의 한 프로듀서에게 음반을 들려준 적이 있었는데, 관계자가 놀라워하며 ‘한국에 이런 아티스트가 있었나. 마이클 프랭스(Michael Franks)와 콜라보를 계획하겠다’며 이력서를 받아간 적도 있다.

향후 음악 활동에 대한 계획은.
올해 빛과 소금 30주년이다. 빛과 소금의 새로운 음악이 담긴 미니앨범을 구상 중이다. 그리고 최근 발표한 “봄여름가을겨울과 빛과 소금” 의 미니앨범으로 당분간은 김종진과의 3인조 체제로도 갈 것 같다.(대중의 요구가 관건이다^^) 이번 프로젝트에서 김종진이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해줬다. 사실 나는 그동안 실용음악 교육에 전념하느라 오랜 기간 연주를 하지 않았고’ 다시 무대에 서겠다’는 계획은 거의 접은 상태였다. 그런 상황에서 김종진의 미니앨범 제의가 나에게 다시 음악활동을 생각하게 하는 점화가 되었다.

김현식과 봄여름가을겨울을 다 합하면 6명이다. 김현식, 유재하, 나, 박성식, 김종진, 전태관, 그중 세 명이 하늘나라로 떠났다. 하늘나라에 있는 현식 형, 재하, 태관이에게 음악을 통해 우리들의 메시지를 전달해야겠다 는 생각을 했다. 그게 서로에게 상당한 공감대를 불러왔다. 그 과정에서 종진이가 제작총괄 역할로 굉장히 애를 썼다. 연습이 완료되면 다양한 활동을 재개할 예정이다. 공연과 방송은 물론 우리의 음악이 필요로 한 곳이라면 어디든 가려 마음먹고 있다.

시티팝에 빠진 음악 팬들은 1980년대 경제 호황기의 낭만과 희망을 그리워한다. 장기호는 그때를 “그래도 뭔가 될 것 같아 보이던 때”라 회상했다. 2020년대를 맞이하는 지금은 위기다. 음악인들의 삶은 ‘비정규직’이라 해도 과장이 아닐 정도로 불안하다. 인터뷰에 참여한 임진모 음악평론가는 “빛과 소금과 같은 한국 대중음악계의 레전드 아티스트가 돌아왔다는 사실이 기쁘다. 젊은 친구들에겐 존경할만한 선배가 필요하다!”라며 그들의 컴백을 환영했다.

‘존경할만한 선배가 필요하다’는 말을 어떻게 생각하나.
물론 맞는 말이다. 나 에게도 존경하는 음악선배들이 있었기에 여기 까지 온 것 같다. 다만 세대가 바뀌면서 음악적 존경의 패러다임이 바뀐 건 아닐까, 이런 우려도 든다. 우리 때 중요하게 여겼던 음악의 요소들이 현재는 크게 관심 받지 못하는 것 같다. 완성도의 차원만 놓고 봤을 때 과거 빛과 소금의 음악이 펜티엄 컴퓨터라면, 지금은 오히려 단순한 386세대로 회귀한 기분이 든다.

‘386과 펜티엄’의 비유가 재미있다.
요즘 음악은 복잡한 내용이 별로 없는, 기계로 치면 기능이 단순한 기계로 음악을 찍어내는 것 같다. 면적은 넓어졌지만 깊이는 깊지 않은 느낌이다. 예전에 우리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때는 그 어떤 방식으로도 공부를 해야만 풀 수 있는 퍼즐이 있었다. 토토(Toto) 같은 밴드의 음악을 귀동냥으로, 컴퓨터로 재현할 수 있겠나. 그들의 퀄리티를 어느 정도라도 따라가기 위해선 그들만큼 공부하고 경험하고 각고의 음악적 노력이 필요하다. 음악을 하나의 언어라 생각하고, 그것을 익히기 위해 공부를 열심히 해야 했던 지난날을 떠올리며 비유한 것이다.

그럼에도 빛과 소금의 이름을 2020년대 다시 꺼낸 것은 바로 그 젊은 세대 아닌가. ‘좋은 음악’의 기준은 세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 본다.
지난 2019년 서울 레코드 페어에 빛과 소금의 앨범을 모두 LP로 복각하여 한정 판매를 한 적이 있다. 30년이 지난 오래된 음반을 구입한 대부분은 20대 젊은이였다는 사실이 나를 놀라게 했다. 현재의 젊은 청소년들에게도 30년 전 빛과 소금이 가치 있게 느껴졌다는 사실에 그동안 음악 했던 보람을 느낀다. 물론 시대에 따라 가치관이 달라지고 문화가 바뀌는 상황에서 좋은 음악에 대한 기준도 어느 정도 바뀐다고 본다. 그러나 음악 본질적인 차원에서 논한다면 명곡은 언제 어느 시대에도 명곡으로 남는다. 그건 진리다. 지금 레트로 라는 단어가 다가오고 있다. 다시 빛과 소금의 시대가 오면 좋겠다.

‘샴푸의 요정’은 물론 최근 ‘디깅클럽서울’ 등 1980년대 가요 리메이크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어떻게 보나.
몇 곡은 들어봤다. 원곡을 능가한다는 느낌은 별로 못 받았다. 원곡이 갖고 있는 이미지가 여전히 강했다. 지난해 후배 가수들이 ‘샴푸의 요정’을 많이 리메이크하지 않았나. 모두 본인들의 음악적 감각과 개성으로 해석을 잘 해냈지만, 곡의 핵심에는 다다르지 못했다는 개인적 견해다. 그 중에도 유일하게 나의 의도를 꿰뚫어 본 곡이 하나 있다. 유희열의 스케치북에서 시도했던 데이브레이크의 ‘그대에게 띄우는 편지’ 리메이크다.

언급한 대로 젊은 음악가들은 기술적으로는 향상되었으나 감동을 주지 못한다는, 핵심에 다가가지 못한다는 점을 고민하고 있다.
< 나는 가수다 > 자문위원장 시절 많이 언급했던 부분이다. 대한민국에서 최고로 손꼽히는 가수들과 함께하면서 느낀 점인데, 가창력이 좋다고 늘 감동을 주는 건 아니다. 반대로 가창력이 뛰어나지 않아도 감동을 주는 경우도 있다. 그것은 하늘이 내린 선물과도 같다고 본다. 소위 ‘카리스마’라고 하는 것인데 그것은 배워서 되는 것이 아니다. 가르칠 수도 없는 부분이다. 그래서 진짜 최고의 가수, 또는 아티스트는 어떤 면에서 타고나는 것 같다. 음악 프로듀서들은 그런 면을 파악하는 능력이 뛰어나야 한다.

장기호에게 빛과 소금의 의미는.
빛과 소금은… 나의 내면이 담긴 음악 세계를 나의 음악 언어로 풀어내는 매개체이며 그열매다. 처음 팀을 결성할 땐 ‘대중음악 의 빛과 소금이 되자’는 취지가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유행을 따라가지 않고 미래지향적인 음악을 만들자는 목표를 삼았다. 비록 대중적이라는 평가는 받지 못했지만, 그러나 빛과 소금이 음악 행보를 계속 이어가는 이상 우리나라 대중음악계에 진정한 빛과 소금의 역할과 임무를 다 해 내리라 믿는다.

‘나의 음악’, 다시 말해 ‘Me’ 음악을 이어나간 것이 결국 빛과 소금의 성공 요인 아닐까.
나는 어린 시절부터 어떤 특별한 소리에 민감했던 것 같다. 나의 귀를 건드리고 갔던 거의 모든 음악의 공통점이 있었다. 멜로디와 하모니의 오묘한 조화라고 할 수 있는데 음악적으로 표현하면 후기 낭만적 기법에 민감했던 것 같다. 낭만기의 음악들은 대부분 회화적이고 몽환적이기까지 하다. 그리고 어떤 소설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묘한 마력이 내재되어있는 음악이다. 그런 음악적 효과를 대중음악에 함축하려는 나의 시도는 분명하다. 그래서 유학기간 동안 오히려 후기 낭만기와 현대 음악에 더 깊이 관심을 가졌다.

1993년 빛과 소금의 3집에 수록된 ‘슬픈 영화를 보고 나면’에서 박성식이 쇼팽의 프렐류드를 연주한 것도 낭만주의적 대표적인 작품이다. 유학 시절 공부하며 그 낭만주의 음악이론의 계보가 이미 다 정리되어있는 것을 확인하고 놀랐던 기억이 난다. 그런 이유로 빛과 소금의 음악에선 크로매티시즘(반음계기법) 을 많이 확인할 수 있다. 반음계적인 기법은 듣는 이로 하여금 환상의 세계로 인도하는 주요한 기법인 듯하다. 아직도 나는 이 부분에 관련된 음악이나 이론 공부를 하고 있다. 미래의 빛과 소금의 음악을 위해서.

마지막으로 음악 선생님으로서, 젊은 세대에게 추천할 음악을 소개해달라.
나는 클래식, 팝 재즈, 현대음악 등 다양한 음악을 즐기는 편이지만 대중적 관점에서 볼 때에 추천할 만한 음악들은 브라질의 이반 린스(Ivan Lins)와 안토니오 카를로스 조빔(Antonio Carlos Jobim)이다. 보사노바 재즈의 강렬한 로맨티시즘을 동경했다. 이를 미국적 정서로 담아낸 아티스트가 마이클 프랭스(Michael Franks)다. 한국에선 ‘Antonio’s song’으로 유명하지만, < Abandoned garden > 같은 앨범은 꼭 들어봐야 한다. “안토니오 카를로스 조빔이 세상을 떠난 뒤의 음악세계”를 ‘버려진 정원’으로 비유하다니… 너무 멋지지 않은가. 브레드, 아메리카, 토토, 스티비 원더도 나의 쏭라이팅 관점에서의 연구대상이다.

프로듀싱, 작, 편곡 적 차원에서 비교적 완성도와 창의력이 높다고 생각되는 작품들은 다음과 같다.

퀸시 존스의 ‘Ai no corrida’
마이클 잭슨의 ‘Rock with you’
알 자로의 ‘Breakin away’
어스 윈드 앤 파이어의 ‘After the love has gone’
세르지오 멘데스의 ‘Never gonna let you go’
알란 파슨스 프로젝트의 ‘Old and wise’ etc..

인터뷰 : 임진모, 김도헌, 임선희
정리 : 김도헌
사진 : 임동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