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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POP Single Single

방탄소년단(BTS) ‘Permission to dance’ (2021)

평가: 3.5/5

모든 게 예상 밖이다. 댄스가 들어간 제목은 ‘Dynamite’와 ‘Butter’보다 훨씬 밝은 에너지를 지니거나 강도 높은 퍼포먼스를 선보일 것이며, 장르 역시 이전의 분위기를 이어받아 디스코, 펑크(Funk)에 힘주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신곡은 BTS가 지배하는 먹먹한 감성을 녹여내는 반전을 꾀했다. ‘Make it right’에서 이미 한번 손을 잡았던 에드 시런과의 재결합이 그룹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토대로 진행되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는 이들에게 어떤 재료를 곁들였을 때 본디의 색채가 빛나는지 알고 있고, 한동안 볼 수 없었던 ‘신나지만 어딘가 서정적인’ 분위기를 담아냈다.

앞선 두 영어 곡은 당장 눈앞의 힘듦을 잊게 할 흥을 강조했다면 이번은 잔잔한 치유로 온기를 전달한다. 이를 극대화하기 위해 가스펠을 취하는데, 먼저 랩 파트를 과감히 삭제하여 부드럽게 흘러가도록 연출하고 곳곳에 자리한 일렉트릭 피아노와 현악기로 따스함을 선사한다. 후렴구에서 터트리지 않고 오히려 계단처럼 내려가는 음, 후반부의 그룹 코러스 또한 가스펠의 전형이다. 자극적인 요소를 덜어내다 보니 심심하게 다가올 수 있으나 세 곡 중 가장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섬세함이 있다.

답습은 아니더라도 세계 시장에 규격화된 행보를 보니 블록버스터의 장중함이 그리운 것도 사실이다. 이 모습도 저 모습도 모두 방탄소년단의 자아라지만 신곡에서 살짝 비춘 예전의 감성이 오히려 그때를 찾게 되는 목마름을 낳았다. ‘팝’스타 BTS보다 팝스타 ‘BTS’가 보고 싶어지는 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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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ature 김도헌의 Twist And Shout

BTS ‘다이너마이트’ 정상 데뷔의 의미

BTS(방탄소년단)의 ‘다이너마이트(Dynamite)’가 발매 첫 주 빌보드 핫 100 (이하 싱글 차트) 1위로 데뷔했다. 그룹 최초의 1위 곡일 뿐 아니라 한국 가수 최초의 빌보드 싱글 차트 정상 기록이며 아시아로 범위를 넓히면 무려 57년 전 1963년 일본 가수 사카모토 큐의 ‘스키야키’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아시아계 아티스트를 포함해도 아시아계 아티스트 파 이스트 무브먼트(Far East Movement)’의 ‘Like A G6’가 추가될 뿐이다.

‘On’을 4위, ‘작은 것들을 위한 시’를 8위, ‘IDOL’을 11위에 올렸으나 정상과는 거리가 있었던 방탄소년단은 거듭된 노크 끝에 염원하던 기록을 거머쥐게 됐다.

한국 아티스트의 종전 빌보드 차트 최고 기록은 2012년 빌보드 싱글 차트 7주 연속 2위를 기록한 싸이의 ‘강남스타일’이다. 하지만 ‘강남스타일’의 히트와 ‘다이너마이트’의 히트는 다른 각도에서 살펴봐야 한다.

2012년 당시에도 ‘강남스타일’의 대성공은 케이팝의 세계화처럼 묘사됐다. 그러나 ‘강남스타일’의 히트는 개인의 성공이었다. ‘강남스타일’은 해외 히트를 고려하지 않은 로컬 콘텐츠였고 어떤 철저한 기획이나 전략보다는 싸이와 유건형의 오래된 공식인 ‘즐기기 좋은 파티 튠’을 기초로 했다. 큰 고민 없는 콘텐츠가 즐겁게 소비되며 말춤과 유튜브, 셀 수 없이 많은 패러디와 함께 세계를 휩쓸었다.

비교하자면 댄스와 파티로 히트한 로스 델 리오의 ‘마카레나(Macarena)’, 바우어의 ‘할렘 셰이크(Harlem Shake)’와 유사한 경우다. 그러나 BTS의 빌보드 싱글차트 넘버원은 시스템의 성공이다. 일각에서는 ‘다이너마이트’ 가사 전체가 영어라는 점에서 이 곡을 케이팝으로 볼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나 오히려 그 논쟁 지점이야말로 케이팝의 승리를 증명한다.  

“미국 프로듀서에게 받은 노래를 영어로 부른다면 그것은 이미 K팝이 아니다”라는 빅히트엔터테인먼트 방시혁 대표의 발언이 무색하게도 ‘다이너마이트’는 철저히 미국 시장을 겨냥한 소속사의 전략 하에 만들어졌다. 

장르적으로는 최근 몇 년간 다프트 펑크, 브루노 마스, 도자 캣, 해리 스타일스 등이 활약하며 팝의 유행 코드로 돌아온 디스코를 채택했고, 뮤직비디오 속엔 미국 LA 베니스 비치(Venice Beach) 농구 코트, 랜디스 도넛(Randy’s Donut)등의 장소가 등장한다. 곡은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과 인종 갈등으로 침체된 미국 사회에 활력을 불어넣고자 에너지 넘치고 밝다.

여기에 ‘다이너마이트’의 작곡가는 방탄소년단 멤버들이나 그들과 오래 호흡을 맞춰온 피독(Pdogg)이 아닌 데비드 스튜어트(David Stewart)와 제시카 아곰바르(Jessica Agombar)다. 영어 가사는 결정적이다. 가사 내용이 매끄럽다고 보긴 어려우나 당장 접근성부터 라디오 플레이까지 훨씬 친숙한 콘텐츠다.

음악 평론지 <롤링 스톤>과 인터뷰한 데이비드 스튜어트는 BTS의 미국 유통을 담당하는 콜롬비아 레코즈와의 대화를 돌아보며 “그들(BTS)은 영어 곡을 찾고 있었다(They were looking for an English single)”라 언급하기도 했다.

현재 케이팝의 가장 보편적인 작업 방식으로 세계 각지 해외 작곡가들로부터 다양한 데모 곡들을 모아 엄선하여 한국어 가사와 가창을 덧입히는 ‘송캠프’ 시스템을 들 수 있다. 이 작법을 통해 케이팝은 내수용으로 기획되면서도 글로벌 시장에도 어필할 수 있는 ‘무국적성’을 얻었다. 로컬로 소비되었으나 자연스레 글로벌의 가능성을 품고 적용하기 쉬운 콘텐츠가 된 것이다. ‘학교 시리즈’로 출발해 월드스타가 된 BTS 역시 예외가 아니다.

‘다이너마이트’의 1위는 긴 시간 동안 무수한 결과물을 통해 노하우와 작곡 시스템, 현지 팬덤을 축적해온 케이팝 시장이 이제 마음먹고 글로벌 히트를 겨냥하면 꿈만 같던 성과도 거머쥘 수 있음을 선언한다. 소녀시대, 원더걸스, 보아 등 미국 시장 개척을 꿈꿨던 2010년대 초 케이팝 선배 그룹들 역시 영어 가사, 트렌디한 곡으로 무장했으나 당시 그들의 기반은 한국 혹은 아시아 및 라틴 아메리카 등 제3세계에 국한되어 있었다.

BTS는 그들의 노력으로 세계에 확보된 케이팝 마니아들의 마음을 사로잡아 거침없는 상승세를 이어갔고 ‘다이너마이트’로 미국 내 팬덤을 총결집하여 기록을 세웠다.

‘강남스타일’은 모두가 따라 부른 노래였다. 남녀노소, 인종, 국적 가릴 것 없이 ‘오빤 강남스타일’을 외치고 말춤을 췄다. 반면 ‘다이너마이트’는 빌보드 싱글 차트 1위에 올랐으나 아직까지 미국인의 사랑을 받는 대중적인 곡이라 확언하기는 어렵다. 이는 BTS의 성공 동력 및 대중이 차트를 바라보는 시선이 기존 해석과 전혀 다른 형태를 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은 미국 음악 산업에 ‘팬덤 중심 소비’의 힘을 과시한 대표 사례로 남을 전망이다.

케이팝 그룹의 히트는 팬덤 중심의 소비에 기초한다. 가요계에서 어떤 아이돌 그룹이 컴백하면 그 팀의 팬덤 역시 분주해진다. 이들은 음원 발매와 동시에 스트리밍을 집중해 차트 정상을 노리는 ‘스밍 총공(스트리밍 총 공격)’, 앨범 사전 예약 구매, 음악 프로그램 문자 투표 등 다양한 형태의 소비 전략으로 지지하는 가수에게 가시적인 성과를 안겨준다. 때문에 팬덤의 규모 및 조직은 그 케이팝 그룹의 인기 척도를 보여준다.

BTS의 1위 기록 역시 그들의 굳건한 팬덤 아미(A.R.M.Y) 중심 소비 결과다. 일찍이 싱글 공개 전부터 이들은 SNS를 통해 조직적으로 ‘다이너마이트’의 빌보드 히트를 위한 가이드라인을 공유해왔다. ‘다이너마이트 서바이벌 키트(Dynamite Survival Kit)’를 작성해 빌보드 차트 1위를 위한 스트리밍 방법을 공유한 ‘BTS 온 빌보드(BTS on Billboard)’ 계정, 돈이 없어 스트리밍을 하지 못하는 팬들을 위해 크라우드펀딩을 운영한 ‘펀즈 포 방탄(fundsforbangtan)’ 계정 등 그 방법도 기상천외하다.

성원은 어마어마한 수치로 증명된다. 음원 공개 첫날 777만 회 스트리밍을 기록하며 올해 최고 기록을 세운 ‘다이너마이트’는 9월 첫주 차 빌보드 차트에서 첫 주 총 3,390만 회 스트리밍 횟수와 총 26만 5천 건의 음원 다운로드 건수로 정상에 올랐다.

한국 가수 최초로 스트리밍 플랫폼 스포티파이(Spotify) ‘글로벌 톱 50’ 차트 1위에 올랐고 유튜브 조회수 역시 하루 만에 1억 뷰를 넘겼다. 음원 다운로드의 경우 2017년 스트리밍 업체에 음원을 제공하지 않았던 팝가수 테일러 스위프트의 ‘Look What You Made Me Do’ 이후 최고 기록이다.

관건은 ‘라디오 에어플레이’ 차트다. 음원 판매량 및 스트리밍, 유튜브 조회수와 더불어 빌보드 차트 집계를 이루는 3대 축이다. 지금까지 케이팝 아티스트들의 곡은 미국 라디오 방송에서 주로 선곡되지 못해 차트에서 부진하여 첫 주 좋은 성과를 거두고도 큰 폭의 하락세를 보이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이 역시 팬덤의 적극적인 참여가 동원되면 달라질 가능성이 있다.

2016년부터 팬들은 ‘BTSX50스테이트(BTSX50states)’라는 계정을 만들어 미국 각 지역 라디오 방송국에 BTS의 음악을 알리고 요청하는 자체 홍보 프로그램을 진행해온 바 있다. 그럼에도 성과가 높지 못했는데, 이번 ‘다이너마이트’의 경우 미국 콜롬비아 레코드의 홍보 총괄 인원들까지 미리 방송국에 사전 홍보를 진행하여 에어플레이 차트에서도 최고 기록인 30위를 기록할 수 있었다.

이 순위를 유지하여 ‘다이너마이트’가 다음 주 빌보드 차트에서도 유의미한 성과를 기록한다면 그때부터 BTS의 노래가 미국 내에 안정적으로, 보편적으로 자리 잡았다고 평가할 수 있다.

‘다이너마이트’ 성공은 우리에게 두 가지를 시사한다. 첫 번째는 차트에 대한 인식이 ‘히트곡의 상징’이 아니라 ‘쟁취하는 것’, 일반 대중에게는 ‘관심의 척도’로 바뀌었다는 점이다. 두 번째는 기존 국내 팬덤과 같은 열성적인 BTS 팬덤이 미국에서도 상당수의 거대한 규모로 자리 잡아 빌보드 차트에 영향을 미칠 정도까지 성장했다는 점이다.

과거 빌보드 싱글 차트는 말 그대로 미국을 대표하는 히트곡 모음이었다. 음악 애호가들은 매주 빌보드 잡지를 뒤지고 순위 프로그램을 시청하며 흐름을 확인했고, 차트 관련 기록을 줄줄이 외우고 확인하는 것은 음악 지식의 척도로 여겨졌다.

하지만 대중음악이 스트리밍 중심으로 완전히 개편된 2010년대 중후반부터 빌보드 차트는 과거만큼 전세대를 아우르지 못한다. 나날이 축소되는 음반 판매량은 이제 집계 대상에서도 제외됐고 그 자리는 스트리밍, 유튜브 조회 등 신세대의 새로운 소비 방식이 메꿨다. 이제 빌보드 차트는 ‘유행가’, ‘인기곡’보다는 아티스트의 유명세, 인터넷 상 유행, 팬덤의 조직적인 소비를 통해 보이는 흐름으로 해석해야 한다.

팬들은 차트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아티스트가 좋은 성적을 거두는 것에 기뻐합니다. 그들은 음악 업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기 위해, 누가 인기 있는지 알기 위해, 그리고 새로운 아티스트 및 음악적 발견에 도움을 얻기 위해 빌보드 차트를 확인합니다.

– 실비오 피에트로롱고(Silvio Pietroluongo), 빌보드 부사장 –

현재 유명 팝 스타들도 상품, 콘서트 티켓에 앨범을 끼워 파는 ‘번들’을 적극 활용하고 SNS 상 홍보를 가속화하며 그들의 팬덤을 독려하고 있다. 물론 이는 기존의 정상적인 소비 행태와 거리가 있다. 이에 과도한 쏠림현상을 막기 위해 빌보드는 지난 7월 번들 판매 집계를 제한하고 엄격화하는 개편안을 제시했지만, 이런 팬덤 및 집단 단위 소비가 하나의 흐름이 되어버린 것을 부정할 순 없다.

차트에서 대세를 이루고 있는 장르 힙합, 라틴 팝 역시 미국 내 굳건한 블랙, 히스패닉 커뮤니티 지지를 기반으로 한다. 이제 케이팝 역시 무시할 수 없는 규모를 구축했다. 인종을 아우르고 조직적인 결집과 행동으로 무장하여 성소수자, 다인종 등 비주류의 목소리를 담고 정치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며 유의미한 성과를 내고 있다.

미국 시장, 더 나아가 글로벌 시장으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도 있다. 올해 들어 국내에서 소비되던 케이팝이 수출되는 과정에서 블랙페이스, 종교, 인종주의 등 차별과 관련된 논쟁이 숱하게 목격됐다. 철저한 팬덤 기반의 소비 시스템이고 그 지지자들은 소수자들인 경우가 대부분인 케이팝이기에 지금까지 한국에서 둔감하게 생각했던 문제라도 향후 기획에선 신중을 가해야 한다.

글로벌 성공의 빛 아래 가려진 케이팝 내부의 열악한 인권 현실과 육성 시스템, 낙후된 환경도 공론화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특히 빅히트엔터테인먼트는 BTS의 성공과 동시에 현재 엠넷과 함께 진행 중인 오디션 프로그램 <아이랜드>로 받은 비판, 슈가의 ‘어떻게 생각해’를 두고 둘러싼 논란을 새겨야 한다.

BTS의 ‘다이너마이트’ 빌보드 넘버원은 향후 케이팝 시장의 이정표로 자리할 사건이다. 이 성과를 발판 삼아 신 전체가 보다 정교하고 입체적인 방법으로 세계의 흐름과 발맞추는 명민한 전략이 요구된다. ‘한국 최초의 빌보드 넘버원’이 단순 사건에 그치지 않고 더욱 그 가치를 인정받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정정합니다]
7번째 문단의 ‘뮤직비디오 촬영’ 부분에서 ‘~미국에서 촬영됐다’는 잘못된 내용이 있었습니다. ‘다이너마이트’의 뮤직비디오는 미국 LA 베니스 비치에서 촬영되지 않았습니다. 이에 정정하여 바로잡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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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ature I Am Woman

WAP, 카디 비의 즐거운 역할 바꾸기

오스트레일리아를 대표하는 가수 헬렌 레디는 1972년 여성의 자부심을 고취하는 곡 ‘I am woman’으로 빌보드 싱글 차트 정상과 그래미 최우수 여성 팝 보컬 퍼포먼스를 거머쥐었다. 50 여년 전 여권 신장을 노래한 그의 메시지는 오늘날 음악에서 핵심이 된 ‘허스토리(Herstory)’를 상징한다. 대중음악계 여성의 발자취를 짚어나가는 것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 과정이다.

현재 미국에서 가장 뜨거운 노래는 래퍼 카디 비(Cardi B)와 메간 더 스탈리온(Megan Thee Stallion)이 8월 7일 발표한 ‘WAP’다. 발매 첫 주만인 8월 18일, 총 9300만 회 스트리밍을 기록하며 빌보드 싱글 차트 1위로 데뷔한 44번째 곡이 됐다. 종전 최고 기록인 아리아나 그란데 ‘7 rings’의 첫 주 총 8530만 회 스트리밍 기록을 가뿐히 제쳤다.

하지만 ‘WAP’는 다른 의미에서 훨씬 ‘뜨거운’ 곡이다. 우선 제목부터가 ‘축축이 젖은 아랫도리(Wet-Ass Pussy)’다. 1990년대 DJ 프랭크 스키(Frank Ski)의 노래 일부분을 따온 샘플은 러닝타임 내내 ‘여기 창녀들이 있어(Whores in the house)’를 읊조린다. 제목, 가사, 뮤직비디오까지 파격적인 선정성으로 단단히 무장한 이 노래는 가사 한 줄 해석하기도 곤란할 정도다. 쉽게 말해, 굉장히 야하다.

거리의 스트리퍼로 출발해 ‘Bodak Yellow’로 빌보드 정상에 오르며 성공가도를 달리는 카디 비, 올해 비욘세와 함께 ‘Savage’를 히트시킨 메간 더 스탈리온의 자신감이 곡 내내 구체적인 판타지와 성행위 묘사로 드러난다. 카디 비가 원기 왕성하고 힘 있는 목소리를 앞세워 선언하면 메간은 기관총처럼 쏘아 붙는 랩으로 에너지를 더한다. 간결한 구성 위 오로지 힘, 권력, 에너지로만 곡 전체를 꽉 채운다. 

때문에 ‘WAP’는 빌보드 차트 1위에 오르기 전부터 말이 많았다. 노래와 아무 상관없는 슈퍼스타 카일리 제너의 깜짝 출연도 논란이지만 가사를 둘러싼 갑론을박도 만만치 않다. 아무리 우리와 비교해 상대적으로 표현에 관대한 미국이라 해도 그 허용의 수위를 아슬아슬하게 넘나드는 노랫말과 뮤직비디오는 논란의 대상이다.

James Bradley | WAP | Know Your Meme

‘WAP’ 논란을 부채질한 것은 미국의 보수 측 인사들의 발언이다. 캘리포니아 주 하원의원 공화당 후보 제임스 브래들리(James Bradley)는 트위터를 통해 ‘카디 비와 메간은 하나님 없이 자란, 강한 아버지가 없이 자란 아이들의 전형’이라며 ‘WAP를 듣고 내 귀에 성수를 붓고 싶었다’는 혹평을 퍼부었다.

같은 주의 공화당 정치인으로 최근 공화당 하원 경선에서 탈락한 디애나 로레인(Dianna Lorane) 역시 “역겨운 ‘WAP’가 여성 인권을 100년 정도 후퇴시켰다.”라 불평하며, 카디 비와 유세를 함께한 민주당 상원의원 버니 샌더스와 2020년 민주당 대선 부통령 후보 카멀라 해리스 지지자들을 ‘쓰레기’라 비난했다.

힙합을 ‘쓰레기 음악’이라 평한 바 있는 유명 우파 논객 벤 샤피로(Ben Shapiro)도 목소리를 높였다. “이게 바로 페미니스트들이 투쟁한 결과”라며 비꼬는 것으로 시작해 “결국 페미니즘은 여성의 권리나 인권에 관심 없는 ‘젖은 엉덩이’에 불과하다. 이런 의견을 비판하면 바로 ‘미소지니(mysogyny : 여성 혐오)’로 찍히기 십상”이라 조롱했다. 과연 이들의 발언처럼 ‘WAP’는 그저 천박하고 음탕하게 색만 밝히는 노래인 걸까? 

카디 비의 ‘19금 발언’은 그리 낯설지 않다. ‘WAP’ 이전에도 그는 꾸준히 SNS를 통해 ‘뜨악’할만한 발언, 혹은 사진을 공개하며 논란 혹은 큰 웃음(?)을 선사해왔다.

하지만 그게 단순한 음담패설만은 아니었다. 힙합 그룹 미고스(Migos) 멤버이자 남편 오프셋(Offset)이 준비한 서프라이즈 파티에 ‘오늘 X 좀 빨리고 싶나 본데?’라 능청스레 감탄하면서도, 신곡 발표 후 여성들에게 그들의 ‘WAP’를 유지하는 방법을 코믹하고 진지하게 설파할 때도 항상 대화 속 성적 주도권은 언제나 카디 비 본인, 즉 여성에게 있었다.

스트리퍼 출신임을 거리낌 없이 강조하는 카디 비는 언제나 과감하게 자신의 욕망과 성적 매력을 표현한다. 빌보드 싱글 차트 첫 1위의 영예를 안긴 ‘Bodak yellow’부터 ‘I like it’까지 그의 서사는 밑바닥부터 시작해 더 많은 돈을 벌고, 직접 남자를 고르며 명품에 둘러싸여 있는 삶을 끊임없이 강조한다. 진실하고 거리낌 없는 감정 표현이야말로 카디 비를 역사상 가장 성공한 여성 래퍼로 만든 핵심 요소다. 

All the hot girl looks to copy in Cardi B and Megan Thee ...

’WAP’ 역시 숨김이 없다. 대개 야한 이야기를 하는 여성은 음탕하게 받아들여진다. 남성이 여성을 부와 성공의 상징으로 삼고 성관계를 노래하면 ‘대범하고 멋진’ 것이 되지만, 그렇게 끊임없이 성적 대상화되는 여성의 욕망은 부정되기 일쑤다. 숱한 힙합 노래들이 성공의 상징으로 여성을 그리는 것은 당연히 여겨지는 반면, 두 여성의 성적 판타지를 노래하는 ‘WAP’가 남성을 수단화하지 않음에도 몰매를 맞는 데서 불균형이 도드라진다. 

게다가 이들은 여성이 아니라 ‘흑인 여성’이다. 17세기 노예 신분으로 미 대륙에 끌려 왔을 때부터 지금까지 흑인 여성들은 오랫동안 ‘이세벨 스테레오타입(Jezebel Stereotype)’이라 불리는 고정관념에 시달려왔다.

이는 영국 빅토리아 여왕 치세 하의 도덕적인 ‘집안의 천사’ 여성상과 정반대의 개념으로, 흑인 여들은 성적 능력이 특히 발달한 음탕한 존재라는 차별의식을 기저에 깔고 있다. 긴 시간 동안 블랙-피메일(Black-Female) 들은 숱하게 성적으로 대상화되며 거의 짐승에 가까운 취급을 받았으나 욕망의 주도권은 결코 허용되지 않았다. 

Recognizing Racist Stereotypes in U.S. Media | by Suzane Jardim ...

‘WAP’를 둘러싼 선정성 논란에서도 이세벨 스테레오타입을 찾아볼 수 있다. 이 노래만큼은 아니지만 역사적으로 여성 아티스트들의 ‘19금 노래’들은 셀 수 없이 많았다. 그럼에도 ‘WAP’만큼 화제와 논란이 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마일리 사이러스가 2013년 MTV 비디오 어워즈에서 로빈 시크에게 엉덩이를 들이밀며 혀를 내밀 때도, 아리아나 그란데가 격렬한 하룻밤을 보내고 게다리 걸음을 걷는다는 ‘Side to side’를 부를 때도, 두아 리파가 ‘밤새 몸을 섞자’는 ‘Physical’을 노래할 때도 여론의 동요는 전혀 없었다. ‘WAP’를 불편히 여기는 시선에는 고정관념이 투영되어 있고, 이는 성차별은 물론 인종차별의 문제와도 연관이 된다. 

동시에 이들 대중은 ‘WAP’의 욕망에 목소리를 높이면서도 다른 여성 아티스트들의 발화에는 무관심하다. 카디 비는 이를 꼬집어 “숱한 여성 래퍼들이 사회를 비판하고 묵직한 메시지를 던질 때는 관심도 없더니, ‘WAP’에는 모두가 떠들썩하다”는 의견을 SNS에 피력하기도 했다.

실제로 최근 몇 년만 해도 랩소디(Rapsody), 노네임(Noname), 자밀라 우즈(Jamila Woods) 등 다양한 아티스트들이 사회 및 정치적으로 목소리를 높여왔다. 그러나 대대적으로 주목받은 이는 슈퍼스타 비욘세 외 찾아보기 어렵다.

대중음악의 역사 속 블랙 커뮤니티에게 섹스는 중요한 개념으로 다뤄졌다. 로큰롤과 재즈부터가 섹스를 뜻하는 속어로부터 출발했다. 일찍이 ‘소울의 대부’ 제임스 브라운이 그 자신을 ‘섹스 머신(Sex machine)’이라 칭한 이래로 수많은 펑크(Funk) 디스코 밴드들이, 프린스(Prince)와 1980년대 댄스 가수들이, 힙합과 알앤비 스타들이 소리 높여 ‘19금’ 노래를 불렀다. 이들에게 섹스는 외설의 대상이 아니라 억압되고 자유롭지 않은 현실에서 그들이 살아있음을 외치는 활력과 생기의 상징이었다. 

‘WAP’ 역시 이와 같은 역사적 배경과 아티스트들의 맥락 위에서 해석되어야 한다. 도미니카 혈통의 카디 비와 아프로 아메리칸 메간 더 스탈리온은 미국 사회에서 낮은 지위에 속한 인물들이다. 이들이 자랑스레 꺼내는 성적인 욕망과 판타지는 외설이 아니라 그들에게 부여된 발화 권력과 힘을 상징한다.

<콤플렉스(Complex)>의 평가를 가져오자면 ‘WAP’는 ‘여성의 섹슈얼리티와 독립, 지배’를 노래하는 곡이며 ‘여성 임파워링의 상징’과 같은 곡이다. 미국 NBC 저널리스트 수잔 라미레즈가 ‘즐거운 역할 변경’이라 평한 것에도 눈길이 간다. 카디 비와 메간 더 스탈리온의 과격한 일탈은 천박하지 않다. 오히려 이를 음탕하게 바라보는 이들의 시선에서 그 저의의 음란함이 포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