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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지노(Beenzino) ‘Trippy’ (2023)

평가: 2.5/5

소문만 무성하던 그의 정규 2집이 조금씩 형상을 드러내고 있다. 작년 발표한 데모곡에 이어 최근 유튜브 영상 ‘Put it down’과 선공개 싱글 ‘Trippy’을 차례로 공개하며 후속작 발매가 머지 않았음을 예고한 것.

곡의 재료는 공백기 간 등장했던 힙합 신의 흐름이다. 우선 로파이한 붐뱁 샘플로 몇년 전부터 큰 인기를 끈 ‘드럼리스 힙합’을 주 소재로 삼았다. 가사에서는 각각 ‘트랩’과 신종 장르 ‘레이지’를 대표하는 코닥 블랙, 트리피 레드에 대한 언급과 에미넴 ‘Lose yourself’를 인용한 구간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신구를 아우른 샤라웃과 영감 발휘가 여러 곳에서 펼쳐진다.

예열이나 쿨링 격의 트랙 이상으로 다가오지 않는다는 것이 유일한 걸림 요소다. 바이브(Vibe) 중시의 작법, 툭툭 내치듯 간결해진 래핑, 곳곳 심어진 위트 있는 변주 모두 단조로운 구성의 한계를 타파하지 못한다. 똑같이 바이브에 궤를 두었음에도 날선 감각을 장착해 놀라움을 자아낸 ‘Monet’과 비교해봐도 큰 차이다. 모호한 스포일러 ‘Lumberjack’으로 차후작에 대한 기대와 의심을 동시에 부풀린 타일러 더 크리에이터의 사례가 있기에 방심할 수는 없겠지만, 앨범에서 과연 어떠한 톱니로 작용할지 조금은 지켜봐야 할 트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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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롬(Slom) ‘Weather Report’ (2022)

평가: 3/5

수더분한 성격의 프로듀서 슬롬은 자기를 내보이거나 자극적으로 과장하지 않는다. 도통 알 수 없는 속을 헤아릴 유일한 단서는 정교하게 담금질한 그의 작품뿐. < 쇼미더머니 > 경연곡 ‘회전목마’ 등으로 무대와 차트 모두 합격점을 받아낸 신입생은 자이언티의 레이블 스탠다드 프렌즈에 합류하며 점차 그 접점을 넓혀가고 있다. 래퍼를 빛나게 만드는 감독 역할도 쉬지 않는 동시에 새 보금자리에서 발매한 < Weather Report >는 정돈된 음악 안에 감춰둔 그의 내면을 잠시나마 엿볼 수 있는 보고서다.

일주일 날씨를 상징하는 7개 트랙은 흘러가 버린 시간과 인간관계에 대한 소회를 기록한다. 이 기상예보에 따르면 그가 지나온 일기(日氣)는 대체로 흐림에 가깝지만, 빗방울이 빗발칠 정도는 아니다. 관계의 허무에서 비롯된 ‘아니라고’와 ‘Skit’, 일상이 된 코로나 시대 서글픈 감정을 담은 ‘D.r.e.a.m’ 등 어딘가 다들 처연한 주제를 읊고 있지만 슬롬은 관찰자의 자세로 우중충한 하늘을 담담하게 관조하며 잔잔한 멜로디를 지어낸다. 

서정성은 연주곡이나 악기가 중심을 잡은 부분에 특히 두드러진다. 보컬의 도움 없이 물방울 소리로 빛과 소금의 원곡을 재해석한 ‘그대에게 띄우는 편지’에는 거장에 대한 존경과 함께 엷은 미소가 녹아있고, 마찬가지로 음성이 생략된 마지막 트랙 ‘우산’의 빗소리로 쓸쓸하게 이어진다. 영국 가수 윌 히얼드와 협업한 ‘What do I do’ 후주의 기타 솔로 역시 갈수록 압축되고 짧아져 가는 시대에 반가운 여백의 미를 제공한다. 거세고 날카로운 사운드의 드릴(Drill)이 득세한 요즘 유행과 달리 차별화된 미니멀리즘이 만족스럽다.

먹구름을 비집고 들어온 친구들과 함께 활기찬 외출도 감행한다. 어둑어둑한 공기가 중심을 잡고 있지만 펑키한 베이스 리듬을 몰고 온 조력자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날씨를 재해석한다. ‘아니라고’의 자이언티가 특유의 멜랑콜리함으로 단연 돋보이는 가운데, 퓨전재즈 풍 ‘선인장’에 합을 맞춘 크러쉬와 빈지노도 흐린 날에 느껴지는 온도를 빼어나게 표현했다. 슬롬 표 감성에 담백하게 어울리는 피에이치원과 로꼬 등 래퍼 라인도 다소 부족할 수 있는 내지를 빼곡하게 채웠다.

화려한 피쳐링 진이 한편에 자리 잡았지만, < Weather Report >는 슬롬의 역할과 본연의 미덕을 잘 포착했다. 목소리보다 기악 연주와 음악이 은은하게 빛나며 프로듀서의 존재감을 강하게 부각했고, 그 선율에는 차분한 창작자의 태도가 묻어나 진폭은 얕고 구성은 단출하다. 빼어난 절제미, 늘 대중성과 자기 창작욕 사이에서 균형을 잡을 수 있었던 강점을 재차 증명한다. 

– 수록곡 –

1. 아니라고 (Feat. 자이언티)
2. 선인장 (Feat. 크러쉬, 빈지노)
3. Skit (Feat. 이하이, 로꼬)
4. D.r.e.a.m (Feat. 피에이치원)
5. 그대에게 띄우는 편지
6. What do I do (Feat. 윌 히얼드)
7. 우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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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오(BE’O) ‘Counting stars (Feat. Beenzino)’ (2021)

평가: 3/5

올해 < 쇼미더머니 10 >의 최종 우승자는 조광일이었지만 그 못지않은 출세를 거둔 래퍼는 2000년생 신예 비오였다. 프로듀서의 간택을 고대하는 2차 예선 무대에서 부른 ‘Counting stars’가 대중의 눈도장을 포획, 삽시간에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며 일찌감치 성공을 예고했다. 밤하늘에 뜬 별처럼 영롱한 멜로디에 홀린 래퍼들이 커버 영상을 속속 공개하며 입김은 더 빠르게 번졌다. 많은 이들이 기다리던 노래의 정식 음원화에 힙합 팬들의 반응이 열성적이다.

양산되는 여타 싱잉 랩 노래들과 비교해도 ‘Counting stars!’라 치고 들어오는 후렴구는 강렬하다. 트렌디한 톤이 장기인 비오의 보컬이 귀를 사로잡고, 새 아버지를 향한 애정을 녹여낸 빈지노의 버스(verse)가 도시적인 분위기를 배가한다. 경연 때의 청량하고 맑았던 목소리를 통화 음성처럼 먹먹하고 흐리게 중화한 믹싱은 논란을 부르고 있지만, 작위적인 강세나 고조가 없어서 좋다. 로파이한 무드에 편안하게 젖어 들 수 있는 노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