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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친구(GFriend) ‘回:Labyrinth’(2020)

★★★☆
데뷔로부터 5년, 꿋꿋하게 그 행보를 이어온 결과 여느 그룹과는 다른 정체성을 구축하기에 이르렀다. 전체적으로 탄탄한 러닝타임을 선사하며, 해오던 것과 새로운 것 간의 균형감 또한 뛰어나기에 그렇다. 언제나 발목을 잡는 것 같았던 ‘일관성’은 이제, 언제든지 자신있게 내밀 수 있는 그들의 가장 큰 장점이 되었다.

평가: 3.5/5

케이팝 불감증을 치료해 줄 케이팝 앨범

케이팝은 어느덧 영미 대중음악의 트렌드를 가장 먼저 소화하는 카테고리가 되었다. 현지의 유행은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나라 아이돌 음악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을 정도. 송캠프 시스템을 통한 외국 작곡가들의 기용은 이런 경향을 부채질했고, 세계 진출에 박차를 가할 트렌디한 사운드를 원하는 기획사의 니즈와도 맞아 떨어졌다. BTS의 성공이나 각국에서 환호를 받는 팀들을 생각해보면, 이러한 벤치마킹은 분명 긍정적으로 작용한 측면이 크다. 다만 명이 있으면 암이 있는 법. 특정 곡에 대한 과도한 레퍼런스나 어느 그룹이 불러도 상관없을 것 같은 트랙의 몰개성 등, 듣는 입장에서는 듣는 재미가 상당부분 사라진 것도 사실이다.

이런 시점에서 바라보면 이 팀은 주된 흐름과는 항상 거리를 두고 있었던 편이다. 국내 뮤지션들을 메인으로 기용해 오래도록 호흡을 맞춰가는 경향이 그렇다. 초기에는 이기와 용배, 지금은 노주환과 이원종이라는 송라이터 팀의 색깔을 유지하는 방식이다. 이는 마치 1세대 아이돌인 신화와 유영진의 케미를 보는 듯한, 지금의 케이팝에선 찾기 힘든 단일 작곡가/스탭과의 서사를 엿보는 재미를 선사한다. 러블리즈 – 원피스/스페이스 카우보이 체제와 함께 이러한 흐름을 리드하고 있는 형국인 셈이다.

이와 같은 꾸준한 방향성은 충실한 음악적 결과물이 탄생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된다. 섬세한 감각가 번뜩이는 아이디어에 의존하기 보단, 드라마틱한 구성과 좋은 멜로디에 중점을 둔다. 일순간의 화려함으로 눈을 속이는 대신, 열심히 그리고 성실히 해내는 그룹의 캐릭터와 맞물려 차별화가 성립되는 지점이다. 사실 ‘열대야’는 이런 흐름에 반하는 곡이었고, 그런 탓에 다소 어울리지 않는 옷이기도 했다. 그래서 꺼내든 카드는 ‘교차로’. ‘밤’과 ‘해야’를 잇는 현악 세션 중심의 비장한 댄스튠이다. 자신들의 정체성을 가장 효과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BGM으로 더할 나위 없는 선택이다.

일부 자가복제라는 비판도 있을 수 있겠지만, 다행히 ‘교차로’는 그런 불평을 들을 정도의 어설픈 곡이 아니다. 소리의 공백과 폭격이 긴장감 있게 교차하고, 통렬한 선율은 뛰어난 가창력을 타고 퍼져 나간다. 규정 지어진 자신들의 캐릭터를 벗어날 수 없다면, 그 안에서 최대치를 해내겠다는 의지의 산물이다. 애잔한 감성이 공간감 있게 펼쳐지는 ‘Here we are’와 이색적인 톤의 신스 사운드가 어두운 밤의 분위기를 조성하는 ‘Dreamcatcher’는 잔꾀 없이 ‘좋은 노래’의 공식을 열심히 지키고 있는 트랙들이다.

꽤나 과감한 시도도 있다. EDM과 록의 조합으로 선명한 인상을 남기는 ‘Labyrinth’가 대표적. 케야키자카46의 ‘不協和音(불협화음)’이 연상되는 건 다소 아쉬우나, 기타의 디스토션으로 역동성을 더해 부족함 없는 리드곡을 완성했다. 생소한 악기들을 활용한 ‘지금 만나러 갑니다’ 역시 탱고의 이국적인 느낌을 팝의 테두리로 안에서 매력적으로 풀어낸다. 잔잔한 어쿠스틱 위 멤버의 목소리가 호소력 있게 다가오는 ‘From me’의 진솔함 역시 그룹만의 것. 어느 한 곳 집중력을 잃지 않은 상태로 러닝타임이 마무리된다.

국경 밖의 음악과 뮤지션에 집중하고 있는 주된 흐름에서 한 발 떨어져, 클래식한 가요의 작법을 유지해 나아가고 있다는 점은 분명 특별하다. 사실 활동 초기엔 이러한 직관성의 유지가 쉽지 않으리라 생각했었다. 그렇게 데뷔로부터 5년, 꿋꿋하게 그 행보를 이어온 결과 여느 그룹과는 다른 정체성을 구축하기에 이르렀다. 이 작품은 그것을 한눈에 보여주고 있는, 음악적 내실이 충실한 앨범으로 자리한다. 전체적으로 탄탄한 러닝타임을 선사하며, 해오던 것과 새로운 것 간의 균형감 또한 뛰어나기에 그렇다. 언제나 발목을 잡는 것 같았던 ‘일관성’은 이제, 언제든지 자신있게 내밀 수 있는 그들의 가장 큰 장점이 되었다.

– 수록곡 –
1. Labyrinth
2. 교차로(Crossroads)
3. Here we are
4. 지금 만나러 갑니다(Eclipse)
5. Dreamcatcher
6. From 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