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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IZM이즘x문화도시 부평] #36 신연아

웹진 이즘(IZM)이 문화도시 부평과 함께 하는 < 음악 중심 문화도시 부평 MEETS 시리즈 >는 인천과 부평 지역 출신이거나 이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아티스트들을 순차적으로 인터뷰하는 시리즈 기획이다. 지금까지 이곳 출신의 여러 뮤지션들이 자리해 자신의 음악 이야기와 인천 부평에 대한 추억을 들려주었다. 이번 서른여섯 번째 주인공은 4인조 알앤비 그룹 빅마마의 리더이자 호원대학교 교수로 활동 중인 신연아다.

명품 보컬 그룹의 귀환, 2021년 빅마마의 재결합 소식은 유난히 반가웠다. 급작스러운 해체 이후 9년 만에 용기 내 얼굴을 마주한 이들에게 그 시절을 함께 했던 팬은 물론 빅마마를 전혀 모르는 신세대까지 뜨거운 관심으로 화답했다. 외모 지상주의를 향한 도전으로 출중한 가창 실력을 앞세웠던 2000년대 초중반의 당찬 하모니가 다시금 생명력을 회복하는 순간이었다.

올해로 빅마마 데뷔 20주년을 맞았지만 멤버들은 오히려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다. 팀의 리더 신연아가 향한 곳은 다름 아닌 강의실. 오랜 기간 호원대학교 교수로 재직한 그에게 교정은 무대만큼 친숙하고 편안한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인터뷰 역시 평소 학생들이 사용하는 연습실에서 진행했다. 잔잔히 깔리는 제자들의 피아노 연주를 따라 담화를 이어간 신연아 교수의 입가에 흐뭇한 미소만이 번졌다.

2003년 빅마마로 가요계에 정식 데뷔해 올해로 20주년을 맞았다. 소감이 어떤지.
건너뛴 시간이 길어서 살짝 양심에 찔리지만 (웃음) 데뷔한 지 20년 됐다는 걸 누군가 기억해 주고 기다려 준다는 것만으로도 참 감사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냥 20년이구나. 사람으로 치면 성인이 되는 시기인 만큼 빅마마란 팀도 어느 정도 무르익었는지 돌아보게 되는 지점인 듯하다.

2021년 재결합을 알린 후 딩고 킬링보이스, odg, it’s live 등 유튜브 콘텐츠를 중심으로 모습을 비췄다. 일련의 과정이 계획된 움직임이었나.
재결합 자체가 그해 4월에 갑자기 진행된 얘기다. 처음엔 거절했다가 지금이 아니면 언제 또 압력 센 노래를 소화할 수 있을까 싶어서 더 힘들어지기 전에 후다닥 하게 됐다. 그래서 5월에 만나 음원 하나를 거의 바로 녹음해 발매했고 첫 스케줄로 딩고 라이브가 잡혔다. 20분 넘는 시간을 원테이크로 부르는 데 정말 사람 잡는 일이더라. 9년 만에 만나서 맞추려니 걱정도 되고 떨리기도 했는데 조용한 환경 조성을 위해 에어컨도 끄고 녹화해서 리허설 한 번에 땀이 확 났다. 그래도 다들 한가락 하던 사람들이라 그런지 간만에 모였는데도 몸이 기억해서 나오더라.

천만 조회수를 기록할 정도로 반응이 뜨거웠다. 대중들이 많이 기다렸다는 생각도 들었다.
아직도 우리를 그렇게 계속 찾아주고 좋아해 준다는 거는 진짜 선물 같은 일이라고 본다. 그런 중에 또 희한한 건 젊은 친구들이 새로운 팬층으로 유입됐다는 것이다. 20대 친구들이 언니라고 부르면 참 기분이 묘하다. (웃음)

작년에 빅마마 전국투어 < ReBorn >을 성공리에 마쳤다. 20주년을 맞이하여 올해에도 예정된 대규모 공연 계획이 있는지.
물론이다. 사실 데뷔 앨범이 나왔던 2월도 고려했었지만 공연 대목인 연말에 하는 게 더 좋겠다는 의견이 나와서 아마 올해 말 정도에 음원 하나 발표하며 찾아 뵙지 않을까 싶다.

정식 데뷔는 2003년이지만 1990년대부터 3인조 코러스 팀 ‘빈칸 채우기’로 활약하며 당대 발매된 수많은 앨범에 이름을 남겼다. 코러스 활동은 어떻게 시작하게 됐는지.
시작은 인하대학교 창작가요 동아리 ‘꼬망스’다. 데뷔곡 ‘Break away’를 써준 (이)현정 언니는 동아리 2년 선배고, 함께 했던 (김)효수는 2년 후배다. 어느 날 현정 언니가 소찬휘 선배 앨범에 곡을 수록하게 되면서 셋이 같이 코러스를 해보자고 제안해서 한 곡 녹음을 해봤는데 반응이 좋았다. 그때부터 프로듀서분께서 앨범 전체를 맡겨 주셨고 나아가 광화문 스튜디오에서 진행한 대부분의 작품에 코러스로 참여했다. 입소문이 나다 보니 그렇게 한 6~7년 정도를 하게 됐다. 셋 모두 톤이 다름에도 배음 효과를 통해 서로를 더욱 풍성하게 채워줄 수 있다는 걸 이때 느꼈다.

‘꼬망스’는 인하대학교에서 하나의 단과로 치부될 만큼 유명 뮤지션들이 거쳐 간 모임으로 잘 알려져 있다. 대학교 시절 기억에 남는 동아리 에피소드가 있다면.
그 시절 가요제에 많이 출전했는데 성과가 나름 괜찮았다. 1995년 MBC 강변가요제 은상을 수상했을 때도 같이 나갔던 친구와 그 곡을 써주신 선배 모두 동아리 멤버였다. 한 기수에 10명도 채 안 되는 인원이었지만 걸출한 음악인들이 많이 탄생한 걸 보면 다들 열정이 대단했었다.

인천의 음악이 유독 강점을 보였던 이유는 무엇이라 보는가.
항구 도시 특성상 문물을 빠르게 흡수했다는 설도 있지만 그 전에 기본적으로 바다 주변 사람들은 파도처럼 감정의 출렁임이 큰 것 같다. 일반인으로 살기는 불편할지라도 음악처럼 감성적인 예술을 하기엔 더없이 좋은 환경이다. 어느 정도의 우여곡절이 음악의 깊이를 더해주는 밑거름이 되지 않았나 믿고 있다.

지금의 신연아를 만든 가수 혹은 음악이 있다면.
블루스에 빠져 지내던 대학 시절엔 허스키한 중저음의 프랑스 여성 보컬 파트리샤 카스를 즐겨 들었다. 그러다 졸업할 때쯤 인천대 출신인 낯선 사람들의 데뷔를 마주하고 크게 충격을 받았다. 동아리 멤버들과 둘러앉아 앨범을 듣고 이렇게 훌륭한 음악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에 상당한 좌절감이 몰려왔다. 그 정도로 낯선 사람들 1집은 내게 최고의 명반으로 남아있다. 베이비페이스 같은 알앤비에 관심을 두다가도 프랑스에서 재즈와 월드 뮤직에 끌리고, 맨하탄 트랜스퍼부터 스테이시 켄트까지 변했던 것처럼 그때그때 꽂힌 장르와 아티스트에 귀가 가는 편이다.

프랑스 유학은 어떻게 결정하게 된 건가.
코러스 활동을 오래 하다 보니 어느 순간 스스로가 노래 자판기 같다는 회의감이 들었다. 그러다 한 작곡가분의 추천으로 유학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는데 마침 나와 똑같은 불문과였던 친언니가 프랑스 어학연수를 준비하고 있어서 나도 겸사겸사 따라가게 됐다. 잠시 코러스 생활을 접고 도망치듯 떠나갔던 상황이라 마땅한 계획은 없었다.

타지에서의 유학 생활은 할 만했는지.
대학생 때 노래만 하느라 불어 실력이 초보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보니 현지에서 고립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음악을 접을 생각까지 하며 방황기를 겪다가 우연히 한국에서 가져온 테이프 하나를 탁 틀었는데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음악을 안 하겠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자만이었다는 걸 느끼고 그때부터 학교를 알아보고 C.I.M 음악학교에 입학하게 됐다.

학교에선 음악 용어를 쓰다 보니 어학원에서 배운 단어는 무용지물 수준이었다. 제일 어려운 수업이 화성학이었는데 학기 전에 불어 화성학책을 살짝 봐둔 게 그나마 도움이 됐다. 그렇게 눈치껏 하루하루 배워가긴 했지만 주변 친구들과 깊숙한 대화를 나누긴 힘들었다. 물론 의지할 곳이 필요해서 사귀게 되었던 친구가 지금의 남편이 됐다.

당시의 추억들이 한국에 돌아온 이후 음악 세계에 많은 영향을 끼쳤을 것 같다.
어학원과 학교에서 만났던 친구들은 시선이 본인에게 맞춰져 있었다. 내가 뭘 좋아하고, 뭘 하고 싶은지 분석이 전부 끝난 상태였는데 그게 참 부러웠다. 나도 그때부터 주변 환경에 개의치 않고 온전히 나를 바라보는 훈련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유행에 크게 휘둘리지 않는 사람으로 성장했고 각자의 개성을 인정하며 다양성을 존중하게 되는 계기가 됐다.

훗날 학생들을 가르칠 때도 큰 양분이 되어 돌아왔다. 입시만 봐도 우리는 어떤 선을 넘기 위한 단점 보완에 익숙해져 있다. 하지만 그 시간에 나만의 장점을 발굴해 더욱 발전시키는 게 훨씬 경쟁력으로 작용한다. 학생들이 스스로가 가장 빛날 수 있는 포인트를 뽑아내는 게 교육자의 임무라 생각하고, 그런 면에서 항상 옆 친구 노래 따라 부르지 말라고 강조한다.

2009년부터 호원대학교 실용음악학부에서 보컬 전공 교수를, 그리고 K-POP학부에서 학과장을 맡고 있다. 교수직은 어떻게 맡게 되었는지.
교수를 하기 전만 해도 가수 활동에 대한 의욕이 남아있던 때라 교수직을 거절했었다. 그런데도 정원영 교수님은 학교에 있으면 음악을 더 잘하고 많이 하게 될 거라며 불굴의 의지로 계속 설득하셨다. 그냥 믿어 보자 하고 시작했는데 정말 다른 즐거움, 다른 행복감을 느끼게 되었다.

가수와 교수 활동의 연차가 거의 비슷하다. 단상과 무대에 오를 때 차이가 있다면.
가수로 활동할 때는 온전히 나 자신과의 싸움이라 시선이 나에게 쏠릴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학교에 있으면서 나보다 남을 더 많이 바라보니까 사람 자체에 대한 관심이 깊어졌다. 타인의 인생에, 특히 가치관을 정립해 나가는 성장기에 내가 어떤 영향을 미치는 거니까 모든 말과 행동을 조심하게 되더라.

그 과정에서 나 역시 스스로를 더 솔직하게 바라보게 됐다. 막말로 애들한테 하는 만큼 내가 하면 되겠다는 생각이다. 예전엔 무대에서 좋은 모습만 보여주고 싶어서 잘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는데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조금은 마음을 내려놓고 됐고 음악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 볼 여유가 생겼다. 가르치면서 노래한다는 것 자체가 나를 겸손함으로 이끌었다.

강의할 때 중점을 두는 교육 방침이 있다면.
모든 게 다 그렇겠지만 노래도 결국 몸으로 하는 거라 마음에 따라 소리 내는 게 달라진다. 병원에 가서 의사에게 내 환부를 다 보여줘야 치료가 가능한 것처럼, 개선에 도달하기 위해선 나와의 시간이 즐거워져야 한다. 그래서 친구들이 나부터 편하게 느끼고 다가올 수 있게끔 내 고민도 스스럼없이 털어놓고, 그들의 걱정 또한 최대한 이해하고 들어주려 한다. 과거의 내가 배울 곳이 많지 않아서 느꼈던 답답함을 제자들에게까지 물려주고 싶진 않다.

기억에 남는, 눈길이 가던 친구가 있다면 간단히 소개 부탁한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긍정적인 친구들이 참 많다. 정채원이란 친구는 대학원이나 유학을 통해 더 나아갈 수 있었는데 여력이 충분하지 않아 배움을 포기했는데, 그렇다고 불만도 없더라. 그 모습을 보고 이 친구가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는 발판을 만들어 주고 싶었다. 막연한 기대로 주변 친구들과 함께 앨범을 제작할 수 있도록 지원을 해줬고 올해 초에 EP < Attention >을 발매했다. 최근 연락을 해보니 본인이 나왔던 예고에 선생님으로 가게 됐다면서 그 월급으로 유럽으로 공부하러 가겠다고 말하는데 내가 다 뿌듯하고 행복했다.

K-POP학과장 신연아는 해외에서 성과를 거두고 있는 글로벌 K팝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
매우 긍정적인 입장이다. 프랑스에 머물렀던 2000년과 비교해 보면 한국에 대한 이미지가 완전히 뒤바뀌었고, 크게 일조한 게 바로 K팝이다. 2016년에 학교에서 해외 6개국을 돌며 K팝을 알려주는 K팝 아카데미 프로그램을 진행했는데 외국인 친구들이 들고 오는 음악이 단순히 아이돌에 국한되어 있지 않았다. 방탄소년단 같은 그룹을 시작으로 아이유부터 이적, 박효신, 성시경까지 다양하게 소비하면서 그것 때문에 한국어를 배우고 있더라. 그야말로 엄청난 문화적 파장이다.

물론 우리 스스로 아이돌 음악을 경시하던 시기도 있었다. 춤만 잘 추고 노래는 못 한다는 비판을 듣기도 하지만 춤이라도 잘 추는 게 어딘가라는 생각을 한다. 가만히 서서 노래해도 상당한 근력을 요구하는데 춤까지 추려면 체육인만큼 체력 단련이 되어 있어야 한다. 결과를 내기 위해 끝없이 노력하고 나아가 자체적으로 만들어 내는 영역까지 도달했다는 사실만으로도 박수받아 마땅하다.

음악을 하면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언제인지.
연습이 잘 되는 매 순간순간이 행복하다. 대부분 사람 앞에서 노래할 때가 행복할 거라 생각하지만 무대에서 늘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기 때문에 감사한 일이지 혼자 마음껏 행복한 것과는 살짝 거리가 있다. 그래서 컨디션이 잘 안 돌아오면 나이가 들어서 그런 게 아닌가 불안해하다가도 노래가 잘 되고 내가 쓴 곡이 제법 괜찮을 땐 뿌듯하다. 결국 나 자신과의 콘서트인 셈이다.

빅마마 그리고 솔로 활동을 통틀어서 꼽는 신연아의 Best 5는 무엇인가.
빅마마 ‘거부’ (2003) – 사회에 대한 분노 지수가 한창일 때 가사를 썼다. 지금 보면 그때 왜 그렇게 썼을까 싶다가도 당시의 반항 정신을 어느 정도 대신해 주지 않았나 싶어 뿌듯한 면도 있다.

빅마마 ‘Thanks to..’ (2006) – 팬들을 향한 감사함을 담아 가사를 써 내려간 곡인데, 최근에 다시 활동을 시작하면서 참 잘 만들었다고 생각했다.

빅마마 ‘사랑’ (2010) – 개인적으로 좋아하던 작곡가분께서 써주신 곡이다. 클래시컬한 멜로디 위에 사랑의 이면을 철학적으로 담았는데 빅마마 5집에 담겨서 무대에서 보여드릴 기회가 거의 없었다.

신연아 ‘Cosmos’ (2014) – 사랑을 주고받을 존재 하나면 우주를 다 가진 기분이 아닐까 하는 생각으로 작업했다. 절대적인 사랑에 대한 이야기라 그런지 가사가 아름답다는 칭찬을 많이 들었다.

신연아 ‘늙은 어미의 노래’ (2014) – 죽음을 앞둔 어머니가 남겨둔 자식들을 걱정하는 내용의 노래다. 멜로디도 좋지만 가사에 집중해서 듣는다면 처음 접한 분들도 쉽게 감동할 수 있는 좋은 곡이다.

끝으로 신연아는 어떤 음악인으로 남고 싶은지.
나 자신은 물론 환경으로부터 자립하기 위해선 일단 스스로 해낼 수 있는 것이 많아야 한다. 곡 작업은 물론이고 각국의 언어와 문화에 대한 이해를 높여서 자유롭고 독립적인 음악인으로 기억되고 싶다.

진행 : 장준환, 정다열, 김태훈
정리 : 정다열
사진 : 정다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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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Feature

이 시대의 한국 R&B/Soul 명곡 10 (2000년대)

1990년대 서태지와 아이들이 도출한 한국어 랩의 가능성과 이태원 클럽 문나이트를 일대로 벌인 춤꾼들의 춤사위. 이는 나아갈 새천년의 국내 대중음악계 주류를 흑인 음악으로 맞바꾸어 놓은 초석과도 같았다. 그 후 21세기를 맞은 2000년대는 말하자면 한국이 흑인 음악에 열광, 열중하던 시기였다. 바다 건너 흑인들의 것인 줄만 알았던 ‘소울’을 한국화한 혼혈, 재미 교포 출신 가수들의 선구적인 활약과 그를 우리 정서에 맞게 녹여낸 ‘소몰이 창법’의 물결까지. 다양한 형태의 히트곡들이 줄을 이었다. 가창력의 척도가 스크리밍(Screaming) 등 록 기반의 고음에서 알앤비 특유의 정교한 기교, 꺾기로 변화한 것은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다.

알앤비/소울은 현대의 젊은 세대에게도 익숙하다. 빌보드 차트에서 목도하듯 세계 음악 시장을 주름잡는 블랙 뮤직은 그 위세를 그칠 줄 모른다. 비대해진 힙합의 지분으로 이제는 랩과 노래 그 중간 어딘가에 있는 싱잉 랩이 새 시대의 창법으로 성행하기도 한다. 이쯤에서 돌아볼 필요가 있겠다. 강산이 두 번이나 바뀌는 시간이 지났지만, 2000년대 국내 대중음악계를 빛낸 알앤비/소울 명곡들의 보다 날 것의 감성을 들어보자. 지금의 국내 흑인 음악 트렌드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그 추이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제이 – 어제처럼 (2000)
재미교포 가수 제이의 시작이 댄스였다는 사실은 지금 와서는 새삼 믿기 어렵다. 그를 기억하면 언제나 ‘어제처럼~’이 귓가에 맴돌기 때문이다. 1집의 존재감은 그만큼 미미했지만 소울로의 안정적인 노선 변경에 성공한 차기작은 그의 진가를 발휘한 튼실한 앨범이었다. ‘어제처럼’ 하나만으로도 말이다.

시간이 지나도 변함없는 감성을 제공한다. 알앤비하면 흔히 기교 섞인 목소리나 짙은 감정선을 연상하곤 하지만 ‘어제처럼’은 그와 사뭇 다른 부드럽고 담백한 멜로디와 여린 목소리로 유통기한이 긴 제이만의 소울을 잉태했다.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큰 인기를 얻은 노래는 2000년도 SBS 가요대상 신인가수상 등을 석권하며 그에게 꿈같은 한 해를 선물했다.

박화요비 – 그런 일은 (2000)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는 말처럼, 재능 있는 아티스트는 때로 놀라울 정도로 이른 때에 두각을 나타내곤 한다. 등장부터 숙성된 가창력을 자랑하며 박정현과 국내 알앤비 신을 양분한 화요비이지만 이 노래를 부를 당시 그의 나이 고작 19세. 머라이어 캐리의 발라드 ‘My all’에서 따온 앨범 제목이 만용으로 보이지 않는 진짜 ‘노래 잘하는 신인’의 출현이었다.

실제로 많은 이들이 그를 ‘한국의 머라이어 캐리’라 부르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선명하게 들리는 숨소리의 호소력과 천부적인 완급 조절이 캐리의 그것과 닮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설과의 유사성을 차치하고 그가 내뿜는 소리 자체에 귀 기울여 보자. 말할 때 육성에서 알 수 있는 낮은 톤, 여기에 자연스럽게 갈라지는 허스키한 보이스가 실로 매력적이다. 성숙한 음성과 대비되는 여린 이별 가사가 더해져 더욱 가슴 아린 화요비표 알앤비 발라드.

박정현 – 꿈에 (2002)
솔리드의 김조한과 함께 국내 알앤비 보컬의 선두주자로 통하는 박정현이다. 여러 장르를 좋아하는 그는 자신을 알앤비 가수로 결정지어 결부하기를 거부하지만, 누가 뭐래도 당대 우리나라 알앤비 돌풍의 주역은 그였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데뷔 이래 ‘P.S. I love you’, ‘You mean everything to me’ 등 멋진 곡을 많이 들려줬다. 하지만 ‘꿈에’만큼 강렬한 곡은 그에게도, 다른 가수에게도 찾아보기 어렵다.

당시 많은 이들에게 안긴 극적인 구성의 놀라움이 지금도 유효하다. 공일오비 정석원이 편곡한 몽롱한 국악기 소금 반주를 시작으로 ‘꿈에서 만난 옛 연인’이라는 주제 아래 기쁨과 절망, 잠에서 깬 후의 아련한 감정을 차례대로 연결 짓는 노래는 ‘스토리텔링’의 정석이 무엇인지 깨닫게 한다. 박정현은 이 대담한 서사에 더욱 높은 수준의 입체감을 조각한다. ‘보컬 올림픽’이란 말도 나왔을 정도. 약간은 부정확한 발음에서 오는 특유의 느낌과 절마다 창법을 변조해나가는 완급 조절, 막힘 따위 모르는 막강 성량이 결합하여 폭발한다. 작곡가의 상상 그 이상을 실현하는 가수의 놀라운 역량이다.

플라이 투 더 스카이 – Missing you (2003)
대중에게 익숙한 국내 알앤비 명곡을 살펴보면 대부분 사랑을 주제로 한 사실상의 알앤비 ‘발라드’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여림과 애절함에 흔들리는 이 우리 정서는 이별 등 연모의 감정에 유독 취약하다. ‘Missing you’는 그 한국적 감수성의 표본이다. 대중의 보편적 가녀림을 파고드는 섬세하고 애절한 노랫말의 주제는 이별을 넘어 ‘사별(死別)’이다.

다양성과 장수의 목적 아래 SM이 내놓은 이들의 시작은 비주얼부터 화려한 아이돌이었지만 성숙한 느낌의 곡만큼은 어른 취향 가까워 심심할지라도 긴 수명을 보냈다. 만화 속 소울메이트처럼 외형적으로도 잘 어울리는 환희와 브라이언은 이 노래에서 각각 터프한 흉성과 맑은 미성의 매끈한 조화로 모범적인 듀오의 콤비 플레이를 전시했다.

휘성 – With me (2003)
휘성은 풋내가 없는 신인이었다. 서태지, 신승훈의 상찬을 등에 업고 등장한 괴물 신예에게 1집 발라드 ‘…안 되나요…’는 공전의 히트를 안겼지만 가수는 그 이상을 넘봤다. 차기작 < It’s Real >에서 마음껏 발산한 원숙미야말로 ‘진짜 자신’을 선언한 예술가적 발로였다. 이 중심에는 지금의 휘성을 있게 한 ‘With me’가 있었다.

당시 유행하던 미디엄 템포 장르를 멋들어지게 구현했다. 전작에 비해 강해진 장르적 색채에도 리드미컬한 드럼 타격이 주도하는 어반한 분위기는 대중에 가닿기에 충분했다. 신선함을 익숙함으로 맞바꾸는 작곡가 김도훈의 완연한 멜로디 라인에 묵직한 톤으로 능란하게 박자를 타는 휘성의 자신감 넘치는 활약은 거부할 수 없는 성공 공식이었다. 음반 판매량 40만 장을 넘기는 가공할 만한 위세를 누렸다.

빅마마 – 체념 (2003)
여타 멤버의 가창력이 상대적으로 떨어지더라도 노래 잘하는 가수 한두 명만 중심을 잡아줘도 그 팀은 실력파 그룹으로 인식이 가능하다. 그런데 네 명이라면? 요즘 시쳇말로 ‘사기캐’다. YG 엔터테인먼트와 알앤비 전문 레이블 엠보트(M-Boat)의 의기투합이 발굴한 빅마마가 그렇다. 당시 가요계 립싱크 행태를 꼬집은 ‘Break away’ 뮤직비디오에서 알 수 있듯, 이들의 등장은 비주얼 가수에게 응수하는 ‘가창력 그룹’의 도발적인 한 방이었다.

이영현이 홀로 작사, 작곡, 노래한 솔로곡 ‘체념’이 팀의 디스코그라피에서 가장 오랜 시간 지지를 받고 있다. 실제 이별 경험을 토대로 작사한 노랫말과 선 굵은 선율이 이영현 특유의 카랑한 고음을 타고 가슴 속에 아로새겨진다. 양현석과 엠보트 대표 박경진은 ’10년이 지나도 듣기 좋을 곡을 만들겠다’는 목표로 팀을 꾸렸다던데, 이들을 한참이나 과소평가했다. 벌써 18년째 애청, 애창되고 있으니 말이다.

아소토 유니온 – Think about’ chu (2003)
짧아서 아쉽고, 그래서 더 소중한 활약이었다. 국내 흑인 음악 신의 선구자이자 보석과도 같던 팀 아소토 유니온의 빛나는 합동은 아프리카 부족 제사 의식용 북 ‘아소토’를 발췌한 그룹명처럼 원시적이고 날 것 그대로의 연주를 들려줬다. 드렁큰 타이거가 주도하던 크루 무브먼트의 밴드로서 이들이 보여준 것은 흑인 음악 원류에 관한 치밀한 탐구. 포화 상태에 있던 유사 블랙 뮤직들 사이에서 진정한 ‘검은 맛’이 무엇인지 시범이라도 보이는 것 같았다.

연주곡과 영어 곡의 큰 비중 속 ‘Think about’ chu’의 우리말 가사가 빛난다. 짙은 호흡을 섞어 허스키한 톤을 구사하는 김반장의 보컬이 소울 본연의 필(Feel)을 적극 구현하면서도 그 중심에 또렷이 생동하는 노랫말은 소울과 한국어의 반가운 악수를 보는 듯하다. 귀에 착 감기는 베이스 그루브와 서정성을 가미한 전자피아노의 끈적거림을 매끈하게 마감질한 사운드는 리마스터의 필요성에 반기를 든다. 2003년도 우리나라에 이런 노래가 나왔다.

나얼 – 귀로 (2005)
브라운 아이즈로 점화한 미디엄 템포 붐과 브라운 아이드 소울로 완성한 갈색 하모니의 정수. 결과물로 보여준 영향력도 지대하지만 이렇게 한 장르에 대한 강한 애착을 보여준 아티스트가 또 있었나 싶을 정도로 오랜 시간 같은 우물을 파는 뚝심이야말로 나얼이 국내 알앤비/소울의 대명사가 된 원동력이다. 2005년 발매한 < Back To The Soul Flight >는 옛 명곡을 소울로 재해석한 소울에 바치는 그의 러브레터였다.

중독적이다 못해 최면적인 도입부 피아노 반주에 기절하고 나면 소울 도인(道人)의 경지를 탐하는 나얼의 목소리가 들린다. 눈물을 머금은 듯 애잔하고, 탁월한 공명감의 두성이 아름답다. 흉내 의지를 꺾는 화려한 애드리브를 정밀하게 스케치해낼 때면 이게 우리나라 가수가 맞나 싶다. 심지어 이는 1989년 박선주의 원곡을 여자 키 그대로 부른 것이다. 나얼은 독보적인 노래꾼이다.

BMK – 꽃피는 봄이 오면 (2005)
제임스 브라운, 아레사 프랭클린 등 1960년대 소울 거장들의 육성을 들어보자. 원시의 소울은 흑인의 민권 회복과 자긍심 표출을 위한 분출구와 같았으며 이들의 보컬은 필히 웅변적인 힘, 우렁찬 스태미너를 특징으로 한다. BMK의 스피커가 터질 듯 묵직하고 강력한 목소리와 비교해보자. 그들처럼 차별에 대한 격노나 한을 노래하지는 않아도, 무자비한 성량만큼은 그것의 전형과 쏙 빼닮았다. 과연 ‘소울 국모’다.

‘꽃피는 봄이 오면’의 절절함도 여기서 온다. 산뜻한 봄날 옛 연인에 대한 그리움으로 사무쳐버린 감정의 파고를 노래하는 이 곡은 간주도 없이 빽빽하게 채운 보컬이 굵직한 멜로디를 뽑아내고 이내 극단의 감정을 토해내는 후렴부로 치닫는다. ‘찰나 같아 찬란했던 그 봄날’처럼 이별의 심정을 지독하리만치 아름답게 대변하는 노랫말은 또 어떠한가. 우리가 알고 있던 봄의 계절감을 잊게 할 만큼 애틋하다. 소개한 다른 가수들에 비해 히트곡이 많지 않은 그이지만, ‘꽃피는 봄이 오면’ 하나만으로 계절만 되면 소환되는 스테디셀러의 주인공이 됐다.

윤미래 – What’s up! Mr. good stuff (2007)
전략은 중도, 무기는 실력. 윤미래는 날고 기는 신의 강자들 사이에서 잔학한 쌍칼 검법의 가능성을 창출한 독보적인 멀티 플레이어다. 대중과 장르 애호가를 모두 사로잡기 위한 랩, 노래의 현란한 휘날림과 속속 발매한 발라드 히트 넘버들로 양 분야 모두의 정상급 인정을 확보한 그였다. 그러한 완벽에 가까운 이도류의 특성을 압축하고 블랙 뮤직 스페셜리스트로서의 위상을 철저하게 굳힌 작품이 < t 3 Yoonmirae >다.

수록곡 ‘What’s up! Mr. good stuff’는 리얼하다. 인트로의 거친 드럼에서 예고하듯 호쾌한 펑크(Funk) 그 팔딱거리는 참맛을 별다른 효과 없이 기타, 브라스 등 화끈한 세션의 합연만으로 전달한다. 역동적인 박수 소리와 브릿지 내레이션은 입체감 이상의 현장감을 부른다. 자유롭게 그루브를 타고 흐르는 윤미래의 보컬을 따라 춤을 참을 수 없을 것이다. 2008년 한국 대중음악상 최우수 알앤비&소울 음반, 노래 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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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마마(Bigmama) ‘하루만 더’ (2021)

평가: 2.5/5

2012년 ‘서랍정리’를 끝으로 헤어진 빅마마가 9년 만에 대중 곁으로 돌아왔다. 2000년대 ‘가창력’이라는 당연하지만 드문 승부수를 던지며 가요계를 주름잡은 이들의 정공법은 지금도 싱어의 위세를 그리워하는 청자들에게 유효한 것으로 보인다. 이제는 얼마 남지 않은 보컬 그룹의 생존을 반기듯 지지층은 ‘학생들이 답답했던 교수들의 팀플레이’, ‘국내 최초 교수돌'(네 멤버 모두 실용음악과 교단에서 활동 중이다.)이라는 장난 섞인 호응과 함께 이들의 복귀를 반갑게 맞이하고 있다.

예스러운 전자 피아노와 스트링의 주도 아래 알앤비 발라드의 전형을 따르는 노래는 도전보다는 안정의 선택. 그럼에도 인상적인 점은 이들의 목소리에서 더욱 뚜렷해진 음색 대조가 들린다는 점이다. 자립 활동이 길어서였을까. 신연아의 깊은 울림과 이지영의 둔탁한 저음에서, 박민혜의 여림과 이영현의 고음에서 어느 때보다 선명한 개별성이 느껴지며 서로 간의 하모니가 다채롭게 피어난다. 새롭지는 않지만, 대중과의 이러한 신뢰도와 변함없는 실력이 뒷받침되는 덕에 팀의 지속 가능성은 여전히 공고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