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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Rain) ‘Domestic (팔각정)’ (2022)

평가: 2.5/5

남성 댄스 크루 경연 대회 < 스트릿 맨 파이터 >의 미션을 위해 비가 공개한 신곡이다. 2021년 여성 댄스 크루를 대상으로 한 원조 프로그램 < 스트릿 우먼 파이터 >에서는 데이비드 게타의 ‘Hey mama’가 큰 인기를 끈 바 있다. 이번 시즌에서는 지코의 ‘새삥’이 그 역할을 대신하고 있으며, SNS의 각종 숏폼에서 활용하기 좋은 댄스로 대중적 인지도를 획득하는 이 흐름에 ‘Domestic’도 발을 들였다.

‘국내의’라는 뜻의 제목과 ‘팔각정’이라는 부제가 말해주듯 ‘K’로 대표되는 한국 정서를 강조한다. 국악의 뉘앙스를 풍기는 현악기가 연신 울리는 것에 비해 큰 깊이감이 전해지지는 않지만, 반복적인 선율과 간결한 곡의 구성은 어색함 없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진다. 댄스에 목적을 두고 만든 덕인지 복잡하지 않은 것은 장점이나, 지구 반대편 미국에 있는 아르마니 화이트의 노래인 ‘Billie Eilish’를 닮은 점은 재밌는 모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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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월비, 서저리(Surgery) ‘Surgeons’ (2022)

평가: 2.5/5

해체, 수술, 그리고 재조립. 방금 나열된 키워드는 일반적인 통념을 거부하는 의류 브랜드 서저리(Surgery)의 모토다. 이들의 홍보를 위해 독특한 행보와 패션 트렌드세터로도 잘 알려진 래퍼 스월비와 프로듀서 수이가 지원군으로 나섰다.

비트로 재해석된 수술실의 효과음부터 ‘입고 씻고 찢고 살리지’를 외치며 사업 좌우명을 외치는 광경은 의도된 대로 충분히 파괴적이고 실험적이다. 다만 정녕 이 곡이 기억에 남는지에 대한 질문에는 답하기 어렵다. 수이의 비트 메이킹과 스월비의 테크니션은 두말할 것 없이 수준급이지만, 완급 없는 난해함과 얕은 메시지, 단조로운 멜로디의 ‘Surgeons’는 곡의 매력보다도 잔상을 남기기 위해 빠르게 깜빡이는 광과민성 이미지에 가깝다. 두 아티스트의 여전히 건재한 실력 근황을 확인할 수 있다는 점만이 반가울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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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비(BIBI) ‘가면무도회’ (2022)

평가: 3/5

가식이 만연한 사회에 관한 냉소적인 시선을 담은 ‘가면무도회’는 한국의 대중음악 현장에선 흔치 않게 사회적인 폭력을 정면으로 다룬다. 조지 오웰의 소설을 떠올리게 하는 곡의 부제 ‘Animal farm’은 이 사회가 거짓과 위선으로 희생자를 양산하는 실패한 혁명의 결과와 다를 바 없다는 메시지를 넌지시 드러낸다. 고전적인 소울 음악의 형식 위에 세련된 보컬을 얹어 잔인하고 염세적인 가사를 처연하게 내뱉는 모습이 흥미롭다. 아티스트의 강한 의지가 없으면 시도하기 힘든 용기 있는 방식이다.

한편 호불호가 갈리는 뮤직비디오에선 폭력을 다루는 방식에 다소 얄팍한 측면이 있다. 오마주한 것으로 보이는 영화 < 킬빌 >이 과거 액션 영화들에 대한 헌사로 충분한 빌드업 과정을 거친 폭력의 미학을 보여준 것에 반해 ‘가면무도회’의 뮤직비디오에선 피가 낭자한 충격적인 이미지만을 선택적으로 차용한다. 이에 사뭇 진지한 가사가 가려져 끈적한 붉은 빛만이 의미를 상실한 채로 부유한다. 뮤직비디오로 음악을 감상했을 때 감동이 배가 되는 것이 일반적이나 ‘가면무도회’는 음악만 재생되었을 때 더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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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엘비 ‘eMPty’ (2022)

평가: 3/5

최엘비는 미디어가 조명하는 반짝이고 생기 넘치는 청춘의 대척점을 그린 < 독립음악 >으로 전환점을 맞이했다. 유명한 친구들을 부러워하는 청년의 우울하고 열등감 가득한 민낯에서 많은 20대가 자신의 초상을 발견하고 공감했기 때문이다. 한 차례 성공을 거둔 뒤에도 래퍼는 여전히 초연하고 스스럼없다. 작업을 마치고 완전히 빈 껍데기가 된 자신을 비유한 가사는 자동 기술법을 사용한 것처럼 무의식을 담고 있다. 정처 없이 늘어놓는 노랫말에선 ‘그다음 나왔어 독립음악 그다음은 뭐지’라는 다음 앨범에 대한 부담과 외로움이 드러난다. 도입부의 독백은 상황극을 연출한 ‘독립음악’의 방식을 닮아 있어 이전만큼 신선하지는 않지만 가사와 연결되어 복잡한 심경을 표현하는 장치가 된다. 애써 설득하지 않아도 쉽게 이해하고 다가갈 수 있는 최엘비식 모노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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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케이 (Sik-K) & pH-1 & 박재범 & 김하온 (HAON) ‘깡 Official Remix'(2020)

평가: 2/5

3년 전 실소를 자아냈던 ‘후배들 바빠지는 중!’의 자기 최면이 정말로 이뤄질 줄 누가 알았으랴. 박재범과 그의 레이블 하이어 뮤직의 식케이, pH-1, 하온은 허황된 에고와 시대착오적인 퍼포먼스로 새 시대 웃음 필수 요소가 된 ‘깡’에 심폐소생술을 시도한다. 행운의 졸작은 인기가 더해지면 비운의 걸작처럼 여겨지지 않던가. 젊은 래퍼들의 활약과 ‘입술 깨물기 금지, 꾸러기 표정 금지, 과거에 머무르지 않기’ 등 일명 ‘시무 20조’만 잘 따르면 꽤 괜찮은 곡이 나올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 법하다.

매끈한 박재범의 보컬과 트렌디한 멤버들의 랩이 듣는 것조차 민망했던 원곡의 위화감을 상당수 중화하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깡’은 그 정도 노력으로 살릴 수 있는 수준의 곡이 아니다. ‘한국 다람쥐’ 혹은 ‘헌드레드 달러 빌’을 연호하는 인트로 음성, 개연성 없는 보컬 파트로의 전환 모두 삭제하고 트랩 비트 하나만 살려 랩 트랙으로 만들어도 호평하기 어려웠을 곡인데, 구조는 그대로 두고 목소리만 달리 한 셈이라 호박에 줄을 긋는 정도밖에 안된다. 곡의 새 주인은 하이어 뮤직인데 불현듯 갑자기 비의 랩과 목소리를 들을 것만 같다. 

한 줄 한 줄 모두 해부되어 조롱당하는 노랫말을 애써 가져와 파편적으로 활용하는 것 역시 이 리믹스가 유행에 편승하려는 흥미 위주의 결과물임을 말해준다. 한 번 피식하고 지나갈 정도라면 나쁘지 않으나 곡은 음원 차트 순위권에 오르며 ‘화려한 조명’에 감싸지고 있다. 후배들은 굳이 이런 곡에 바빠질 필요가 없다. 웃음의 목적이 아니라면 이제 ‘깡’은 그만 듣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