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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욘세(Beyoncé) ‘Renaissance'(2022)

평가: 4.5/5

‘팝의 여왕’이란 칭호는 순수한 퍼포먼스나 보컬 실력과 더불어, 후대를 견인할 기준점과 영향력을 제시할 수 있는 초월성에서 기인한다. 갑작스레 등장해 오감을 직격한 즉발성 팝 컬렉션 < Beyonce >(2013)와 예술과 상업의 합일을 일군 무결점 명반 < Lemonade >(2016). 이 두 작품이 비욘세를 지금의 절대적 위상에 오르게 한 결정적인 도약으로 평가받는 이유는, 참신함과 완성도뿐만 아니라 후배들의 꾸준한 회자 속 대체 불가능한 불변의 가치를 인정받았기 때문이었다.

장대한 트릴로지의 개막이자 6년 만의 정규작 < Renaissance >는 그렇기에 쉽고 안전한 팝의 노선을 따르지 않는다. 마치 모두의 지지 속 미지의 향로를 개척하고 등대를 세워야 하는 선각자의 걸음인 셈이다. 키워드는 코로나 여파로 전례 없는 침체기를 맞이한 ‘댄스’ 문화다. 비욘세는 단어의 재건을, 더 나아가 누구나 마음대로 움직이고 표현할 수 있는 ‘자유’를 위해 왕좌에서 일어서기 시작한다. 어두컴컴하고 땀 냄새 자욱한 지하실로 행차한 여왕의 진두지휘하에 인류의 동적 본능을 복원하고 해방하려는 본격적인 지반 공사가 펼져진다. 바야흐로, 1980년대 시카고 언더그라운드 클럽 신에서 부흥한 ‘하우스’ 르네상스의 재(再)도래다.

각성을 위해 빼곡히 수놓아진 152명의 참여자 명단, 시대별 캐논을 위시한 샘플 크레딧, 디제이의 셋리스트처럼 각 트랙을 유기적으로 이은 세구에(segue) 형식까지. 사학자의 면모와 기획자의 통찰을 겸비한 < Renaissance >는 비욘세의 보컬을 재료로 한 전지구적 거대 리믹스 기획이자 광란의 경배 의식에 가깝다. 언뜻 포맷 자체로는 두아 리파가 선보였던 초호화 믹스셋 < Club House Nostalgia >를 연상케 하기도 한다. 미국의 디제이 더 블레스드 마돈나가 두아 리파의 광풍을 무도회로 재편성했듯, 각지의 힙합 프로듀서와 디제이가 재림의 순간을 함께 하기 위해 스튜디오로 모여들었다.

트랙에 걸쳐 여러 장소와 지역, 시대를 호령했던 댄스 플로어의 역사가 순차적으로 복각된다. 라파엘 사딕과 나일 로저스 조합으로 펑크(Funk)의 광채를 담아낸 ‘Cuff it’, 샘플링의 교본 격인 로빈 에스의 ‘Show me love’ 리프와 빅 프리디아의 강렬한 랩 스크래치를 버무린 하우스 넘버 ‘Break my soul’ 등이 그렇다. 기나긴 여정의 마무리를 장식하는 것은, 영원한 고전인 도나 섬머 ‘I feel love’를 직접 호출하여 격한 예우와 경의를 표하는 ‘Summer renaissance’의 몫이다.

침투와 혼합 과정은 때론 교묘하게 행해지는데, 지극히 현대적인 트랩 비트 위로 에스닉한 토속 사운드가 등장하는 ‘Thique’는 클럽 신의 시제를 탐닉하고, ‘America has a problem’은 음산한 덥(dub) 향취와 강박적인 탐탐 사운드를 통해 먼지에 둘러싸인 다양한 전자 음악 분파의 실루엣을 미세하게 드러내기도 한다. PC 뮤직의 수장 A. G. 쿡의 손길이 닿은 ‘All up in your mind’의 주재료는 2010년대 등장한 신흥 강자 ‘버블검 베이스’의 팽창된 질감이다. ‘Pure / honey’의 경우에는 심장 박동스런 리듬과 최면 같은 읊조림으로 집단 광기를 유도하다 순식간에 베이지색 미러볼 밑으로 옮겨 놓기도 한다. 위협적이고, 쾌락적이다.

코첼라 실황을 담은 라이브 앨범 < Homecoming >과 < The Lion King : The Gift >를 거치며 여성 운동과 블랙 프라이드의 공식적인 대변자로 올라선 만큼 메시지적 측면도 결코 놓치지 않았다. 가스펠부터 댄스홀, 알앤비, 뉴 잭 스윙 등 상징적인 블랙 뮤직들의 재현은 물론 ‘있는 그대로의, 내 피부가 편안하고 아늑해’(Cozy)라는 메시지에는 흑인으로서의 긍지가 담겨 있고, ‘넌 내 영혼을 부수지 못해’(Break my soul)라는 외침에는 팬데믹이 야기한 대퇴직 시기(Great Resignation) 속 희망 잃은 젊은이를 향한 위로와 지지 선언이 담긴다. 단순한 댄스가 아닌 ‘하우스’로 키워드를 내건 것 역시 백인 중산층에 의해 음지로 밀려난 소수자를 품은 피난처, 웨어하우스의 포용 의지를 잇겠다는 표명이다.

댄스 전반의 흐름을 16개의 트랙을 통해 고르게 분포한데다 곡간 연결부와 전체적인 완급, 개개 퀄리티 모두 흠잡을 곳이 없다. 비주얼 앨범으로 충격을 가져온 일전의 행보를 한 번 더 비틀어 뮤직 비디오 하나 없이 온전한 오디오적 몰입을 유도했다는 점에서는 과거의 방편에 기대지 않겠다는 단호함이 엿보인다. 상당한 자본과 시간을 요하는 프로젝트임에도 본인의 브랜드에 입각한 대규모 송캠프와 철저한 분업화를 통해 성공적으로 물꼬를 텄다는 것도 놀라운 성과다. 성적은 어떠한가. 빌보드 앨범과 싱글 차트 정상은 물론 전 수록곡 차트 진입이라는 어마어마한 기록까지 거머쥐었으니. 이제 아무도 그를 의심할 사람은 없어 보인다. 여왕의 귀환 아래, 새로운 성경의 첫 장이 펼쳐진다.

– 수록곡 –
1. I’m that girl
2. Cozy
3. Alien superstar
4. Cuff it
5. Energy (Feat. Beam)
6. Break my soul

7. Church girl
8. Plastic off the sofa
9. Virgo’s groove
10. Move (Feat. Grace Jones & Tems)
11. Heated
12. Thique
13. All up in your mind
14. America has a problem
15. Pure/honey

16. Summer renaissa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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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ngle POP Single

비욘세(Beyoncé) ‘Break my soul’ (2022)

평가: 4/5

7집 < Renaissance >의 선공개 싱글 ‘Break my soul’은 댄스 플로어의 부흥을 공포한다. 코로나19 이후 수그러든 댄스음악을 재건하기 위한 질료는 1990년대 에이즈와 함께 번성했던 미국의 하우스 음악이다. 비욘세는 로빈 S의 ‘Show me love’를 샘플링한 밀도 높은 사운드를 퍼부으며 5분에 가까운 시간 동안 열정적인 무대를 펼쳐놓는다.

과거를 옮겨온 신시사이저와 달리 가사는 최근의 시대정신을 담는다. 도입부부터 ‘난 사랑에 빠졌고 일마저 그만뒀어/난 새롭게 시작하고 싶어’라며 미국을 뒤덮은 대퇴직을 암시하고, 래퍼 빅 프리디아의 ‘Explode’에서 가져온 ‘화를 놓아줘, 마음도 놓아줘/직장도 놓아줘, 시간도 놓아줘’라는 보컬 샘플로 계속해서 의도를 관철한다. 팝 아이콘은 흑인 여성의 삶을 노래한 < Lemonade >에 이어 또 한 번 사회적 담론을 확장하며 시대의 대변인에 다가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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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Feature

제 63회 그래미 시상식 노미네이트 편

제63회 그래미 어워드가 이틀 앞으로 다가왔다. 15일 오전 9시(미국 현지 시각 14일) 열리는 이번 그래미 어워드는 원래 1월 31일 개최 예정이었으나 시상식이 열리는 로스앤젤레스 컨벤션 센터 인근 지역 코로나 19 이슈로 인해 한 달 이상 연기됐다. 

오랜 시간 대중음악계 최고의 권위 시상식으로 여겨진 그래미였지만 최근 그 위상은 많이 추락한 상태다. 2010년대부터 여성 아티스트, 유색 인종 아티스트들에 대한 홀대 논란이 매년 반복되며 ‘화이트 그래미’라는 오명을 쓰고 있다. 의아한 수상 결과와 뚜렷한 개선점 부재로 그래미를 운영하고 수상자를 결정하는 레코딩 아카데미(레코드 예술과학아카데미, NARAS)에 대한 불신이 하늘을 찌르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우리에게는 최근 들어 가장 의미 있는, 또 주목해야 할 시상식이 되었다. 말도 많지만 꼭 지켜봐야 할 제63회 그래미 어워드를 소개한다.

역사를 쓴 방탄소년단

마침내 한국 가수가 그래미에 이름을 올렸다. 방탄소년단(BTS)은 올해 그래미 어워드 ‘베스트 팝 듀오/그룹 퍼포먼스(Best Pop Duo/Group Performance)’ 부문에 ‘Dynamite’로 노미네이트 되며 한국 대중가수 최초로 그래미 어워드에서 경쟁하게 됐다. 2019년 ‘베스트 알앤비 부문’ 시상자로 처음 그래미 무대를 밟은 방탄소년단은 지난해 래퍼 릴 나스 엑스(Lil Nas X)와 합동 공연을 펼친 데 이어 올해 수상 후보로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단독 퍼포먼스도 진행한다. 

‘Dynamite’는 명실상부 2020년을 대표하는 히트곡이다. 한국 아티스트 최초의 빌보드 싱글 차트 정상 등극 쾌거에 이어 3주간 1위를 고수했고, 현재까지도 28주 연속 톱 50 내 진입하는 등 최고의 인기를 누렸다. 이후 조쉬 685와 함께한 ‘Savage Love’ 리믹스 역시 정상에 오르더니 ‘Life Goes On’으로는 빌보드 싱글 차트 1위 데뷔라는 기록도 세웠다. 

세계적인 팝스타가 된 방탄소년단은 이제 보수적인 그래미도 외면할 수 없는 이름이 되었다. 물론 그래미 어워드의 핵심인 본상 부문 (올해의 노래, 올해의 음반, 올해의 레코드, 올해의 신인) 노미네이트 되지 못한 것은 아쉽다. 지난해 정규 앨범 < Map Of The Soul : 7 >, < BE > 등 활발한 활동을 펼쳤음에도 ‘Dynamite’ 한 곡만 선정된 것 역시 찝찝하다. 그래미는 ‘베스트 팝 듀오/그룹 퍼포먼스’로 어느 정도 개혁 이미지를 취하고, 방탄소년단은 다음 단계를 위한 안정적인 도움닫기를 내딛는 모습이다.

수상 가능성이 높진 않다. 2012년 신설된 부문 ‘베스트 팝 듀오 / 그룹 퍼포먼스’에서 보이그룹이 후보로 오른 것은 2019년 백스트리트 보이즈와 2020년 조나스 브라더스 단 두 번 뿐이고 수상에도 실패했다. 올해 BTS 역시 레이디 가가와 아리아나 그란데, 저스틴 비버, 두아 리파와 제이 발빈, 테일러 스위프트 등 쟁쟁한 팝스타들과 경쟁을 펼친다. 

그럼에도 결과와 관계없이 후보에 오른 것만으로도 큰 의미다. 유색 인종, 미국 외 음악에 유독 인색한 레코딩 아카데미조차도 ‘Dynamite’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은 최근 영화 < 미나리 >의 골든 글로브 어워드 외국어영화상 수상 등 미국 내 아시아 커뮤니티의 영향력 증대와 케이팝의 글로벌 인기를 증명하는 부분이다. 향후 케이팝 그룹에게 멀게만 느껴졌던 ‘꿈의 무대’ 그래미 물꼬를 텄다는 사실도 중요하다. 

수상 유무와 관계없이 방탄소년단은 이미 큰 성과를 거뒀다. 아티스트와 관계자, 팬 ‘아미’ 모두 결과와 상관없이 편안한 마음으로 무대와 시상식을 즐기면 된다. 

위켄드 스넙(Snub), 위상 잃어가는 그래미

GRAMMYs 2021 Nominations: The Weeknd Slams Recording Academy After His Snub,  Says 'The Grammys Remain Corrupt' - Onhike - Latest News Bulletins

“그래미는 부패했다. (그들은) 음악계 투명성에 큰 빚을 지고 있다.”  

방탄소년단의 노미네이트 소식과 달리 올해 그래미 어워드에 대한 시선은 최악이다. 2020년을 지배한 히트곡 ‘Blinding Lights’의 주인공, 캐나다 팝 뮤지션 위켄드에게 본상 부문은 물론 단 하나의 부문도 허락하지 않은 것이 결정적이었다. 실망한 아티스트의 분노 어린 반응과 더불어 엘튼 존, 찰리 푸스, 키드 커디 같은 동료 뮤지션부터 빌보드, 롤링 스톤과 같은 음악지들까지 한 목소리로 비판을 쏟아냈다.

그래미 어워드를 둘러싼 논란은 하루 이틀이 아니지만 위켄드의 ‘스넙(Snub : 경멸의 의미를 담은 무시)’ 사건은 시상식의 공정성 자체를 뒤흔들고 있다. 특히 그래미 어워드의 후보를 검토하는, 이른바 ‘비밀 위원회(Secret Committee)’라 불리는 조직에 대한 분노가 크다. 

‘비밀 위원회’는 2만 3천여 장에 달하는 후보 작품들에 대한 레코딩 아카데미 회원들의 투표 결과를 검토해 후보를 최종 승인하는 집단이다. 철저히 비밀에 부쳐지는 이들이 음악적으로 편향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커져가고 있다. 지난해 레코딩 아카데미 내 성추행을 폭로하며 해고된 전직 CEO 데보라 듀건이 비밀 위원회의 투표 비리를 언급한 데 이어, 어제 (12일) 위켄드는 “비밀 위원회가 존재하는 한 그래미에 내 이름이 오를 일은 없을 것”이라며 향후 그래미 보이콧을 선언했다. 

zayn on Twitter: "Fuck the grammys and everyone associated. Unless you  shake hands and send gifts, there's no nomination considerations. Next year  I'll send you a basket of confectionary."

2020년 빌리 아일리시가 본상 4개 부문을 싹쓸이하며 증명된 그래미의 ‘몰아주기 관행’, 여성 및 유색 인종 투표인원을 충원함에도 큰 변화 없는 결과 역시 ‘비밀 위원회’의 전횡 때문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이해할 수 없는 후보 선정도 의혹의 일부다. 2010년부터 활동을 시작한 캐나다 DJ 케이트라나다(Kaytranada)가 올해의 신인 부문에 이름을 올리고 있고, 지난해 활약한 피오나 애플, 릴 우지 버트 등 아티스트들의 이름도 그래미에서 찾아볼 수 없다. 

한편으로는 그래미 어워드가 위켄드에게 지난 2월 7일 슈퍼볼 하프타임 쇼와 그래미 퍼포먼스 라이브 중 양자택일을 강요했다는 의혹까지 터지며 그래미에 대한 시선은 더욱 악화되었다. 슈퍼볼 무대를 택한 위켄드에게 그래미가 외면의 방식으로 보복했다는 주장이다. 보이그룹 원디렉션 출신의 솔로 가수 제인 말리크 역시 지난 8일 “악수나 선물을 건네지 않으면 노미네이션도 없다”며 그래미를 강도 높게 비판했다. 

비판 가운데 소소한 변화, 역사를 쓴 비욘세

이렇듯 산적한 비판을 해결해야 하는 그래미지만 시대의 흐름을 따라 변화를 준 부분도 있다. 올해부터 ‘어반(Urban)’이라는 장르 이름을 ‘프로그레시브 R&B(Progressive R&B)’로 대체하고 ‘월드 뮤직’ 부문을 ‘글로벌 뮤직’으로 바꾸는 등 신경을 썼다. 신인 부문의 발매곡 제한 규정을 철회한 것도 환영할 요소다. 

올해 그래미 어워드에 최다 노미네이트 된 아티스트는 비욘세다. 비욘세는 지난해 ‘Black Parade’와 래퍼 메간 더 스탤리온과 함께한 ‘Savage’로 총 9개 부문에 후보로 선정됐다. 이미 24번 그래미에서 수상한 비욘세는 이번 시상식으로 통산 79번 노미네이트 되며 가장 많이 그래미 후보로 오른 여성 아티스트 기록을 세웠다. 

두아 리파, 로디 리치, 테일러 스위프트가 6개 부문 노미네이트로 뒤를 따른다. < Future Nostalgia >로 2020년을 휩쓴 두아 리파는 올해의 앨범, ‘Don’t start now’로 올해의 레코드와 올해의 노래 부문을 거머쥐었다. 신성 로디 리치는 다베이비와 함께한 ‘Rockstar’로 올해의 레코드에, 본인의 히트곡 ‘The box’로 올해의 노래에 이름을 올렸다.

제62회 그래미 어워드에 불참했던 테일러 스위프트는 앞서 ‘베스트 팝/듀오 그룹 퍼포먼스’와 더불어 < folklore >로 올해의 앨범, ‘cardigan’으로 올해의 노래 부문에 노미네이트됐다. 지난해 본상을 싹쓸이한 빌리 아일리시가 올해 역시 ‘Everything I wanted‘로 본상 2개 부문(레코드, 노래)에 오른 모습 역시 눈길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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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Feature

[특별 기획 ‘미국’] 5. Intersectionality: 여러겹의 정체성이 교차하는 음악

억압받는 약자에 대한 담론 중에서 페미니즘은 오늘의 대중에게 가장 익숙한 단어 중 하나다. 그 의미나 정의에 대한 합의는 요원하지만, 일단 사람의 경험이나 정체성을 읽어낼 때 성별에 더 무게를 두고 해석하는 담론은 널리 퍼져있다. 뮤지션들 역시 자아를 음악에 담아내기에, 이들의 작품과 페르소나를 이해할 때도 페미니즘은 유용한 인식의 틀을 제공한다. 그러나 사람의 정체성은 입체적이기에, 성별이라는 단일차원에서 바라보면 반드시 놓치는 부분이 생긴다. 정체성의 상호교차성(intersectionality)을 이해하면, 음악에 담긴 이야기들과 이를 둘러싼 논란들의 맥락이 보다 명료하게 드러난다.

미투 운동이 세상을 휩쓴 후, ‘페미니스트 뮤지션’의 브랜드를 획득한 인물들이 몇 명 있다. 타임지가 미투 운동을 조명해 ‘침묵을 깬 사람들’을 2017년 ‘올해의 인물’로 선정했을 때 표지에 얼굴을 올린 테일러 스위프트가 그중 하나다. 2013년 MTV 비디오 뮤직 어워즈(VMA) 무대에서 로빈 시크(Robin Thicke)와의 무대에서 파격적인 트월킹을 선보이며 전통적인 여성상에 대한 반론을 내놓은 마일리 사이러스 역시 자신을 ‘세상에서 가장 열렬한 페미니스트’라고 인터뷰했다.

팝스타의 반열이 아니더라도, 피오나 애플(Fiona Apple)은 8년 만에 내놓은 새 앨범 < Fetch The Bolt Cutters >에서 모두 ‘절단기를 들고 와’서 직접 자신의 의견을 표출하라는 메시지를 보내 평단의 사랑을 받았다. 라나 델 레이(Lana Del Rey)는 2019년 발매한 후 그 내용이 ‘부드러운 페미니즘'(soft feminism)의 필요성을 강조한다고 말해 논란에 불을 지폈다.

어떤 사람이나 발언이 ‘페미니스트’인지에 대한 대략적인 이미지는 이미 대중문화 속에 퍼져있다. 예컨대 자신의 욕망과 생각을 거침없이 이야기하는, ‘걸크러쉬’에서 조금 진화한 여성의 모습이다. 테일러 스위프트, 마일리 사이러스, 피오나 애플, 라나 델 레이 같은 뮤지션들이 페미니스트 아이콘으로 조명받는 이유 역시 이들이 그 이미지에 잘 들어맞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이들은 여성성 이외의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모두 포크 음악과 관련 있는 백인이라는 점이다.

이들 여성의 목소리가 의미 없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다만, 이들이 모든 여성을 대표하는 것으로 일반화하기엔 너무 많은 맥락이 지워진다. 예를 들어, 마일리 사이러스가 트월킹을 하면서 내놓은 ‘얌전하지 않은 여성’의 이미지는, 영미권에서 백인 여성들이 항상 가정적이고 수동적인 역할을 강요받아온 역사의 연장선이다. 반면 이세벨 스테레오타입(Jezebel stereotype), 옐로우 피버(yellow fever) 등의 시선으로 언제나 극한의 성적 대상화를 당해온 흑인이나 동양계 여성의 경험을 마일리 사이러스가 제대로 대표한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라나 델 레이가 ‘부드러운 페미니즘’을 옹호했을 때 논란이 일어난 것 역시 그가 이런 맥락을 무시하는듯한 발언을 했기 때문이다. < Norman Fucking Rockwell! >이 학대를 미화한다는 비판에 대해 그는 비욘세, 도자 캣(Doja Cat), 카밀라 카베요 등 유색인종 뮤지션들을 언급하며 이들이 ‘섹시’를 앞세워 차트 1위를 했고, 자신도 13년간 여성의 입장에 대해 노래해 왔는데 왜 자기만 욕을 먹어야 하냐는 반응이었다. 정체성의 상호교차성(intersectionality)에 대해 무감각한 언사다.

상호교차성(intersectionality)은 사실 법조계에서 처음 사용된 단어다. 그 계기는 1976년 자동차 제조사 제너럴 모터스(GM)가 흑인 여성에게 채용상 불이익을 준 일인데, 흑인에 대한 차별 금지법도, 여성에 대한 차별 금지법도 이를 막을 만한 근거가 되지 못했다. GM이 흑인 남성과 백인 여성을 채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차별을 바라볼 때 모든 흑인, 모든 여성이 그룹별로 같은 방식으로 차별받는다고 생각한다면, 흑인 여성을 포함한 유색인종 여성의 경험들은 지워질 수밖에 없다. 형태주의에서 말하는, 전체는 그 부분의 합 이상이라는 말과 일맥상통한다. 백 명의 사람이 있다면 백 가지의 페미니즘이 있기에, 모든 여성 뮤지션의 메시지가 저마다 의미 있다.

인종이나 사회, 경제적 배경 등을 고려하고 여성 뮤지션들의 음악을 보면 다채로운 페미니즘을 볼 수 있다. ‘Run the world (Girls)’가 흑인이자 걸어 다니는 대기업인 비욘세의 입에서 나왔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곡이 실제로 전달하는 메시지는 생각만큼 단순하지 않다(과연 정말 세상을 주도하는 것은 여성인가, 아니면 비욘세인가?). 미츠키(Mitski)가 강렬한 기타 톤을 앞세워 외롭다고 소리치는 모습 역시 동양인 여성들은 얌전하고 가부장에게 복종하는 이미지가 있기에 훨씬 강렬하게 다가온다. 성 소수자자 Z세대인 킹 프린세스(King Princess)가 부르는 사랑 노래는 화자의 입장에 대한 이해가 없으면 뻔하게 들린다.

‘페미니스트 뮤지션’의 전형으로 다시 돌아와 보면, 이 단어의 실체는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 어쩌면 오히려 여성의 목소리를 지켜내는 접근법일 수도 있겠다. 여성성 하나로 정의될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고, 음악에 담긴 이야기를 여성성 하나에 대한 이야기로 해석하면 당연히 많은 부분이 지워진다. 여성에 대한 이야기로 논리를 전개했지만, 상호교차성은 정체성 그 자체에 대한 인식의 틀이다. 그 어떤 개인도 절대적인 약자, 혹은 강자일 수 없다. 이분법을 벗어나 음악에 담긴 사람을 온전히 직시했을 때 그의 이야기가 더 또렷하게 들리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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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욘세(Beyoncé) ‘Black Parade’ (2020)

제임스 브라운 및 숱한 블랙 뮤직의 전설들도 그러했듯, ‘Formation’과 역사적인 코첼라 페스티벌로 21세기 블랙 프라이드의 정점을 기록한 비욘세 역시 최근에는 화려한 무대를 뒤로 하고 < 라이온 킹 > 실사 영화 사운드트랙 < The Gift >를 통해 ‘아프리카로 돌아가자’의 기치를 내거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 미국을 뒤덮은 블랙 라이브스 매터(#BlackLivesMatter) 운동을 격려하며 준틴스(Juneteenth) 명절에 기습 공개한 행진가 ‘Black parade’도 그 기조 위에 있다. 

비욘세는 홀로 걷지 않는다. 검은 대륙의 신성한 바오밥나무, ‘마더랜드’의 영혼들과 전통 밴드, ‘황금왕’ 만사 무사와 마틴 루터 킹, 말콤 엑스부터 커티스 메이필드 같은 미대륙의 영웅들이 플루트와 호른 세션으로 빚은 전통의 리듬 위 묵직한 베이스 리프로 만든 발걸음을 힘차게 내딛는다. 코로나19 감염과 공권력의 야만적인 폭력에도 굴하지 않고 거리로 나선 모든 이들에게 찬사를 바치는 비욘세의 행렬은 ‘블랙 프라우드(Black Proud)’ 그 자체를 상징한다. 7월 31일 공개 예정인 ‘블랙 이즈 킹(Black Is King)’을 위한 전초전 역할도 겸한다. 

자부심 넘치는 멋진 곡임은 분명 하나 ‘Formation’ 이후 강성 일변도로 나아가는 비욘세의 세계는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조지 플로이드의 죽음이 부른 분노 이면의 허탈감과 무기력까지 응시한 앤더슨 팩의 ‘Lockdown’이 현실과 더 맞닿아있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현시대 가장 원대한 이상을 품고 있는 비욘세에게도 보다 더 많은 이들에게 닿기 위한 고민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