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ies
Album KPOP Album

쿤디판다(Khundi Panda) ‘가로사옥’ (2020)

평가: 3.5/5

포부부터 거대하다. < 쾌락설계도 >를 따라 < 재건축 >을 거쳐 < 가로사옥 >으로 연결되는 ‘건축 삼부작’ 대형 프로젝트를 현실화했다는 점, 앨범이 취할 수 있는 여러 예술적 장치를 야심 차게 배치했다는 점에서 작품을 대하는 진지한 태도와 욕심의 크기를 가늠할 수 있다. 준수한 커리어를 이어온 쿤디판다지만 시리즈의 대미를 장식하는 < 가로사옥 >은 그중에서도 완성을 향해 지독한 검열과 고뇌를 거친 흔적이 역력하다.

3년 동안 앨범의 농도는 더 짙고 조밀해졌다. 앞선 두 앨범이 도면을 그리고 공사하는 과정이었다면 < 가로사옥 >은 완공의 결과물이다. 큰 돌과 굵은 자갈을 대략적인 용기에 먼저 담았다면 이번에는 빈 곳을 모래로 채울 차례라는 듯, 꽉꽉 눌러 담은 열 곡이 그의 깊고 어두운 내면을 파고들어 쌓인 이야기를 끌어올린다. “쇼미더머니 5를 탈락한 직후의 스무 살부터 가중된 욕심의 무게를 벗어나는 과정”이라는 설명이 침전에서 비롯된 앨범의 자기 고백적 성격을 뒷받침한다.

부유선, 주인공, 개미 등 전작부터 언급하던 주요 키워드를 속속히 등장시키며 연작의 특징을 암시하고, 열등감(네버코마니)과 피해 의식(자벌레), 가식(양심트리거)과 체념(겟어웨어) 같은 껄끄러운 소재를 가감 없이 호출하여 삼키고 소화한다. 구체적인 개인의 경험을 언급하며 처절하고 진솔하게 밑바닥까지 훑는 전개에는 일종의 고해와 같은 숭고함이 묻어난다. 중간중간 ‘향바코’와 ‘어덜트금고’의 건전한 고찰을 섞으며 염세주의적 단면을 유연하게 타파하기도 한다.

눈여겨볼 점은 서사를 풀어나가는 속도와 몰입감과 그 압도적인 기세다. 플라잉 로터스(Flying Lotus)의 ‘Never catch me’가 떠오르는 ‘블랙박스’의 포문에서 서정적인 마지막 트랙 ‘집’까지, 라임과 언어유희로 점철된 래핑이 일말의 환기 없이 빼곡히 채워지고 치닫는다. 수록곡들의 제목이 두 단어를 조합해 새로운 의미를 창조하는 형식을 택한 것처럼 < 가로사옥 >은 십자말풀이로 이뤄진 큐브를 빠르게 맞추는 듯한 언어적 쾌감을 선사한다. 가벼운 시를 표방하는 최근 힙합 신의 노랫말에 비해, 그의 음악은 장단의 문장이 정교하게 맞물리는 장편소설에 가깝다.

통기성이 부족한 탓에 앨범은 필연적인 피로도를 동반한다. 다루는 내용과 범위가 국소적이고 빽빽하기에 가벼운 감상으로는 작품이 시사하는 바를 놓치기 쉽고, 청자에게 그만한 집중과 반복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어느 정도 진입장벽이 존재한다. 게다가 랩과 비앙(Viann)의 개성 넘치는 사운드가 교차하며 수많은 킬링 트랙을 낳은 < 재건축 >과 비교해 본다면, 유기성을 강조하며 가사의 분위기와 강약에 철저히 맞춰진 본작의 프로듀싱은 래핑의 화려한 독주를 돕는 조력자 역할에 가깝다. 개개의 만듦새는 우수하지만, 멜로디 라인이 순간 랩을 치고 나오는 ‘킥아웃코드’와 같이 사운드에서 희열을 느낄 수 있는 구간의 빈도가 낮다.

그럼에도 < 가로사옥 >은 앨범 단위의 작품성을 끈질기게 탐구했다는 점에서 존재가치를 입증한다. 복잡한 타임라인과 풍부한 분석 요소가 특유의 스토리텔링으로 흥미롭게 제시되어 리스너들의 순수하고도 다양한 해석의 장을 활성화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 쿤디판다는 본인의 치부가 가득 담긴 판도라의 상자를 사옥(舍屋)이라는 개념과 연관 짓고, 힙합 신에 쾌락을 넘어선 토론, 사유의 필요성을 촉구한다. < The Anecdote >의 반향을 이어갈 또 다른 ‘옥중앨범’이다.

– 수록곡 –
1. 블랙박스
2. 네버코마니 
3. 카모플라주 (Feat. 형선)
4. 양심트리거
5. 향바코 (Feat. Noogi, Don Sign) 
6. 겟어웨어
7. 어덜트금고 (Feat. Jinbo)
8. 낙찰 전 / 용기의 합창단 (Feat. DAMYE)
9. 킥아웃코드 
10. 집 (With 히피는 집시였다)

Categories
Album KPOP Album

비앙(Viann) ‘The Baker’ (2019)

평가: 4/5

플라잉 로터스(Flying Lotus)의 < Los Angeles >가, 혹은 썬더캣(Thundercat)의 < Where The Giants Roam >이 떠오른다. 부드럽게 조율된 피아노와 현악기의 선율 사이로 날카로운 소음, 땅을 기는 둔탁한 타격음, 그리고 부피와 탄성을 지닌 웡키(Wonky) 사운드가 조립되는 선과 악의 공존. 비앙(Viann)은 보편적인 일상의 기본 물질과 죄악을 지닌 비주류의 원소를 한 데 모아 해체, 분석, 그리고 재배열을 통해 또 하나의 새로운 연옥을 설계한다. 그야말로 신의 신성한 과업, 창조주가 펼치는 ‘베이킹’이다.

개인의 능력을 감추기 보다, 오히려 최전면에 내세우며 존재감을 강력하게 피력한다. 여러 재료를 능란하게 다뤄온 본인 실력에 대한 믿음과 작품의 주체를 자신으로 여기는 데서 나오는 당당한 자신감이다. 이는 작중 솔로 파트로 입증되는데, ‘Color me bed’의 변칙적인 트랩 비트에서 ‘시가렛’으로 이어지는 워프 레코즈(Warp Records) 풍의 베이스 사운드, 위협적인 전자음이 날뛰는 ‘Hub’와 ‘막내’로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일렉트로니카와 재즈를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현란함은 같은 계열의 익스페리멘탈(Experimental) 힙합을 지향하는 아티스트 ‘XXX’의 날카로운 청적 쾌감보다는 조금 다른 결인, 미묘하고도 아늑한 안정감이다.

피처링 선택 또한 매우 탁월하다. 아티스트 특성에 맞게 변모하는 비트 메이킹이 작품 전반에 드러날뿐더러, 그의 위대한 천지창조 과정에 기꺼이 참여한 인물들 또한 날렵한 솜씨로 비트와 시너지를 이루는 모습이다. 진보의 그루비한 감각을 부각하는 ‘Got it all’, 후디의 차분한 기조를 따라가는 ‘0과 1 사이’, 그리고 수민의 몽환적인 음색을 팝 사운드로 구현한 ‘4ㄹ5’는 색채를 대상에 일치시킴과 동시에 몰입도를 깨트리지 않고 이어 나간 사례다. 랩의 영역 또한 건재하다. 이현준의 격한 래핑을 온전히 담는 ‘시가렛’과 쿤디 판다의 박자감을 스타가토 형식으로 돋보인 ‘Menace’, 특히 비와이의 화려한 랩 기술이 드러난 ‘Golden Fleece’는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비트가 화룡점정을 찍는다. 트랙이 거듭함에도 계속해서 새로운 조합법이 쉬지 않고 등장하는, 실로 놀라운 현장이다.

비앙은 앨범에 ‘매슬로(Maslow) 5대 위계질서’ 이론을 콘셉트로 잡았다고 밝힌 바 있다. 인간의 원초적인 기본 욕구부터 자아실현에 이르는 단계까지, 트랙을 나아갈수록 더 이상의 것을 갈망하는 진취적 태도와 거친 표면을 점차 세련되게 다듬어 나가는 서사가 그렇다. 이는 마치 진정한 예술가로 승화하려는, 숭고한 포부이자 음악적 욕구 해소다. 게다가 다소 거창한 주제임에도 접근성 좋은 재즈 요소와 앨범을 하나로 관통하는 메시지로 기반을 다진 덕일까, 내용물이 화려함에도 난잡하지 않고, 자극적이지만 쉬이 피로해지지 않는다. 쿤디판다와 합을 맞춘 < 재건축 >에서 동양적이면서도 신묘한 프로듀싱으로 이름을 알린 비앙, 그는 < The Baker >로 한 명의 아티스트이자, 동시에 내로라하는 국내 프로듀서 반열에 쐐기를 박았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 수록곡 –
1. Color me bad
2. Cigarette (Feat. 이현준)
3. Got it all (Feat. JINBO The SuperFreak)
4. Menace (Feat. Khundi Panda)
5. 차원 (Feat. HYNGSN)
6. 우리 집
7. 4ㄹ5 (Feat. SUMIN & Khundi Panda)
8. HUB
9. Jealousy (Feat. HYNGSN)
10. Golden Fleece (Feat. BewhY)
11. 막내 (Feat. NOT EASY)
12. TEST. (With. Eden Highway)
13. 말 한마디로 나를 불행하게 만드는 / Your Truth (Feat. Noogi)
14. 0과 1 사이 (Feat. Hoody)  
15. 돈 (With. FRN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