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ies
특집 Feature

Splash of the Year 2022

Splash of the Year : 한 해를 조각내 음악 신의 주목해 볼 사건을 뽑는 이즘 내 연례행사.

명쾌하게 정리하기 힘든 1년이 지나갔다. 코로나19를 딛고 일어난 국내 문화계가 서서히 부활의 움직임을 보이기도, 동시에 안타까운 사건 사고가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 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음악은 계속되고 삶은 흘러가니까. 어느덧 10주년을 맞이한 스플래시와 함께 2022년 가요계를 돌아본다.

배신 또는 오해, 표절 논란
시작은 유희열이었다. ‘생활음악’ 프로젝트로 발표한 ‘아주 사적인 밤’이 류이치 사카모토의 ‘Aqua’와 유사하다는 지적이 제기되면서 관련 의혹이 빠른 속도로 불거졌다. 그가 작곡한 성시경의 ‘Happy birthday to you’, < 무한도전 > 가요제 프로젝트 곡인 ‘Please don’t go my girl’ 등도 연이어 도마 위에 올랐다. 이후에도 이무진 등 여러 뮤지션에게 표절 의혹이 지속적으로 제기되며 2022년 상반기는 여러모로 시끄러웠다.

일련의 사태에 대해 ‘레퍼런스’나 정확하게 판정할 수 없는 문제라는 반론도 곳곳에서 등장했고, 논란을 조회수 삼으려는 각종 유튜브 채널이 다소 억지 프레임을 씌우는 현상도 나타났다. 예술의 특성상 문제를 깔끔하게 종결하긴 힘든 노릇이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이제 ‘표절’이라는 키워드가 모두의 의식 속에 들어왔다는 사실이다.

드디어 돌아온 페스티벌과 공연
코로나19의 직격탄을 맞았던 공연 문화가 서서히 다시 일어나기 시작했다. 언택트 공연 등 대체 수단이 등장했지만 현장의 맛을 대신할 수는 없는 법. 서울 재즈 페스티벌부터 인천 펜타포트, 부산 록 페스티벌 등 각종 행사가 개최되었고, 빌리 아일리시와 잭 화이트를 비롯해 여러 굵직한 뮤지션의 공연도 이뤄졌다. 풀리지 않은 규제로 마스크의 답답함은 있었으나 열정과 사랑으로 극복한 순간이었다. 아직은 완전한 정상화를 위한 예열과 시동 단계일 테지만, 억눌렀던 마음만큼 열기도 그 어느 때보다 뜨거웠다.

트렌드의 중심이 된 1990년대
2010년대 초중반부터 시작된 1980년대 신스팝과 디스코, 펑크(Funk) 열풍은 2020년대 본격적인 폭발을 통해 국내에도 유입되었다. 변화를 촉발한 것은 199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 사이 팝 펑크(Pop Punk)다. 2021년 블링크 182의 드러머 트래비스 바커를 주축으로 영미권의 머신 건 켈리, 올리비아 로드리고 등이 이끈 장르의 재부흥을 K팝 또한 재빠르게 수용했다.

태연의 ‘Can’t control myself’와 최예나의 ‘Smiley’, 우즈(WOODZ)의 ‘난 너 없이’ 등이 강렬한 기타 사운드와 더불어 이모(Emo) 감성을 일부 벤치마킹한 비주얼을 내세웠다. 정점은 단연 (여자)아이들의 ‘Tomboy’. 앨라니스 모리셋 등 록 여성 뮤지션의 정신을 받아들여 매혹적인 팝 선율, 거침없는 펑크(Punk)의 태도를 모두 끌어안았다. 음원에는 삭제된 욕설까지 함께 소리치던 대학 축제 풍경은 화끈함의 극치였다.

가지는 다른 곳으로도 뻗어나갔다. 아이브의 ‘After like’는 댄스 음악 장르인 하우스 리듬을 기반 삼았고, 뉴진스의 ‘Attention’과 ‘Cookie’는 비슷한 시기의 힙합과 알앤비 장르를 채택했다. 큰 유행이 된 Y2K 콘셉트를 여러 팀이 전격 채택한 것은 덤. 윤하의 ‘사건이 지평선’이 역주행한 원인도 비슷하다. 일본 애니메이션 오프닝을 연상케 하는 아련한 분위기가 2000년대 초 TV 만화 채널을 추억하는 젊은 층의 향수를 자극한 것이다. 1990년대생의 문화가 차츰 향수의 대상으로 편입되고 있는 현상을 음악에서도 목격할 수 있었다.

중요한 건 마인드 셋, 거장의 귀환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적어도 음악에서는 그렇다. 베테랑 뮤지션들이 돌아오면서 오랜 세월 쌓은 관록만큼이나 식지 않은 에너지로 대중을 놀라게 했다. 먼저 꾸준한 바이닐과 시티팝 유행에 힘입어 5월에는 빛과 소금이 26년 만에 새 정규 앨범 < Here We Go >를 발표했다. ‘공유’의 시대를 거슬러 음악을 ‘소유’하려는 자연적인 수요와 맞닿은 점에서 의미가 깊다. 송골매 또한 ‘열망’ 콘서트로 전국을 누비며 기성세대 못지않게 젊은 세대까지 관객석으로 초대했다. 7월 서울 공연을 시작으로 11월 인천 공연까지 성행하며 곳곳에서 환호성이 이어졌다.

방송 업계에서도 컴백은 이어졌다. KBS의 < 불후의 명곡 >이 2012년 은퇴 선언을 했던 패티김을 초청해 3부에 걸쳐 특집을 꾸렸고, 그 또한 무대에 올랐다. 이미자 또한 TV조선의 러브콜을 받아 데뷔 63주년 기념 특별 공연을 개최했고, MBN의 트로트 프로그램에서는 심수봉을 심사위원으로 캐스팅하기도 했다.

그리고 역시 ‘가왕’은 ‘가왕’. 조용필이 스무 번째 정규 앨범의 예고편으로 신곡 ‘찰나’와 ‘세렝게티처럼’을 선보인 데에 이어 KSPO 돔에서 밴드 위대한 탄생과 함께 압도적인 규모의 콘서트를 개최했다. 전혀 늙지 않은 음악으로 돌아온 그, ‘영원한 오빠’ 수식어는 2020년대에도 공고했다. ‘물리적 나이보다 마인드 셋이 중요’해진 오늘날의 새로운 가치를 느껴본다. 어찌 보면 키워드는 ‘귀환’이 아니라 ‘소통’이다.

여성 아이돌 르네상스
엠넷 < 프로듀스 > 시리즈의 성공 이후 여러 그룹이 팀 단위보다는 개별 멤버 위주의 팬덤 구축과 세계화에 힘을 서서히 쏟기 시작했다. 쉽게 읽히지 않는 ‘세계관’과 가끔 난해하기도 한 콘셉트에 여성 아이돌이 예전만큼 대중적 지지를 받기는 힘들 것으로 보였다. 이러한 흐름을 깨고 돌아온 2022년 걸그룹 르네상스는 그래서 더욱 반갑다.

‘Love dive’와 ‘After like’를 연속 히트시킨 아이브가 선두 주자로 올라선 가운데 같은 아이즈원 파생 그룹 르세라핌은 데뷔 초 여러 논란을 딛고 ‘Antifragile’을 흥행에 성공시키며 재빠르게 입지를 굳혔다. 남다른 방식으로 첫선을 보인 뉴진스 또한 ‘Attention’과 ‘Hype boy’로 동시에 돌풍을 일으키며 대세 자리를 놓고 전투를 벌였다. 스테이씨의 ‘Run 2 u’, 있지의 ‘Sneakers’, (여자)아이들의 ‘Tomboy’와 ‘Nxde’ 등 신세대 걸그룹의 치열한 각축전으로 바쁜 1년이었다.

선배들도 만만치 않았다. 레드벨벳이 ‘Feel my rhythm’으로 클래식 샘플링 트렌드를 이끌며 여전한 저력을 보여준 한편 블랙핑크는 미국과 영국 앨범 차트 1위에 모두 올라 글로벌 시장 점령을 이어 나갔다. 트와이스의 나연은 숏폼 플랫폼에서 안무 챌린지를 적극 활용해 첫 솔로 싱글 ‘Pop!’을 화려하게 터뜨렸다. ‘Forever 1’으로 15주년을 풍성하게 기념했던 소녀시대와 7년 만에 다시 모인 카라까지, 신예들과 익숙한 이름의 공존에 2022년 K팝은 그 어느 때보다 뜨거웠다.

이에 반해 타겟층이 일반 대중에서 구매력이 높은 팬덤으로 많이 기울어진 남성 아이돌은 상대적으로 싱글 차트에서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물론 각종 콘텐츠의 범람으로 소비자층이 세분화됨에 따라 ‘국민가수’나 ‘국민가요’가 만들어지기 어려운 시대가 되었고, 애초에 보이그룹의 목표가 공연이나 음반으로 옮겨간 지도 오래다. 그러나 이를 감안하더라도 보이그룹의 목소리가 예전처럼 거리에서 울려 퍼지던 시절이 그리워지는 것은 사실이다.

꺾이지 않는 장기 지배, 힙합 정권 40년
얼마 전, 요즘 초등학교에서 여학생들이 걸그룹 안무를 따라 한다면 남학생들은 지코의 ‘새삥’ 챌린지에 열심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국내 음악 시장에서 힙합이 이제 하나의 별종이 아니라 굳건한 주요 장르가 되었다는 사실의 방증이다. 올해 무려 열한 번째 시즌을 방영 중인 < 쇼미더머니 >와 여러 밴드가 나선 경연 프로그램 < 그레이트 서울 인베이전 >의 시청률 차이만 봐도 명확하다. 해외 못지않게 국내에서도 주도권은 힙합에게 완전히 넘어왔다.

1980년대 중반 국내에 처음 알려진 이후로 서태지와 아이들을 타고 본격 유입을 겪은 힙합/알앤비는 40여 년 동안 꾸준히 자리를 넓히며 세력을 키웠다. 비오의 ‘Love me’, 빅 나티의 ‘정이라고 하자’, 그리고 크러쉬의 ‘Rush hour’ 등 차트에는 아직도 여러 히트곡이 포진해 있다. 록 페스티벌의 부활 사이 함께 돌아온 대구 힙합 페스티벌까지, 어느덧 익숙해진 힙합 강국의 면모다.

BTS 병역 논란
엄밀히 말하면 ‘가요’계 사건은 아니지만, 방탄소년단의 병역 문제가 올 한 해 계속해서 화두에 올랐다. 국위선양의 공로를 높게 사 병역 면제를 논하는 입장과 형평성을 거론하며 반대하는 측의 논쟁이 활발히 벌어지며 일반 대중에게도 뜨거운 감자가 되었다. 유승준과 MC몽 등 남성 뮤지션의 입대 문제로 여러 차례 논란을 겪었기에 어쩔 수 없이 떠오른 문제였다.

사안은 결국 방탄소년단의 입대로 끝을 맺었다. 맏형인 진이 12월 13일 최전방인 연천 지역 신병교육대에 입소한 것. 같은 날 솔로곡의 가사가 도마 위에 올랐던 멤버 슈가는 어깨 수술을 근거로 공익 판정을 받았다. 나머지 멤버들의 계획은 아직 미정이나 그룹 활동의 중단 이후 여러 멤버가 솔로 음반을 발표하면서 개인 커리어를 확장해가는 중이다.

다른 예술/체육 분야의 병역 특례와 엮이며 제도 자체의 존폐 여부까지 나왔던 주제는 오늘날 한국 사회의 풀리지 않는 숙제를 끄집어냈다. 성별과 세대 갈등까지 연결되는 두 글자, ‘군대’. 그러나 병역이 아직까지 ‘의무’인 국가에서 이를 일종의 ‘형벌’의 차원으로 보는 시선도 위험한 것은 마찬가지다. < 100분 토론 > 임진모 평론가의 말처럼, ‘대중에게서 기억되고, 인정과 사랑을 받는 것이 가장 큰 특혜’ 아닐까.

사각지대 속 엔터테인먼트 회사의 아티스트 착취
‘연예인 걱정은 하는 게 아니’라는 말도 있지만 최근 뉴스에서 떠오른 헤드라인은 상당히 충격적이었다. 먼저 11인조 보이그룹 오메가엑스의 갑질 피해 소식이었다. 소속사 대표에게 멤버들이 폭행당했다는 사실이 해외 소셜 미디어를 통해 알려졌고, 이후 온갖 피해 내역에 대해 직접 입을 열었다. 성희롱부터 시작해 코로나19 감염에도 불구하고 강압적으로 무대를 섰다는 사실, 온갖 폭언과 협박 내역이 밝혀졌다.

‘내 여자라니까’로 데뷔해 한때 ‘국민 남동생’이라는 수식어를 얻었던 이승기 또한 소속사 후크 엔터테인먼트에게서 음원 수익을 전혀 정산받지 못한 사실이 언론에 드러났다. ‘적자 가수’라는 비하 발언을 했던 대표는 현재 수익 횡령 의혹까지 불거졌다. 상황이 채 식기도 전에 이번에는 한창 여러 방송에서 활약 중인 가수 츄가 소속 그룹 이달의 소녀에서 강제로 퇴출되는 일이 벌어졌다. 큰 물의를 일으켰던 연예인이라 하더라도 대부분 중립적인 언어로 계약 해지 사실을 밝혔던 여러 선례에 비하면 ‘제명’과 같은 언어를 사용한 블록베리 엔터테인먼트의 글은 다소 악의적으로 보인다. 소속사의 입장문이 주변인들의 증언으로 반박되며 나머지 이달의 소녀 멤버들이 계약 해지 소송에 들어갔다는 소문도 퍼진 사이, 1월로 예정된 그룹의 컴백 소식이 갑작스레 공개되어 혼란을 야기했다.

한때 범람했던 가요계 계약 문제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이 씁쓸하다. 아무리 자본주의 사회라지만 음악과 뮤지션이 돈의 논리에 의해 지나치게 좌지우지되는 모습은 착잡함을 안긴다. 정녕 음악이 순수한 존재로 남을 수는 없을까, 바란다면 너무 비현실적인 것일까. 다가오는 2023년에는 조금 더 깨끗하고 공정한 음악 산업 소식이 많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품어본다.

이미지 편집: 정다열

Categories
Album KPOP Album

블랙핑크(BLACKPINK) ‘Born Pink'(2022)

평가: 2/5

아이돌의 아이돌, 블랙핑크의 원대한 걸음은 아직 진행형이다. ‘뚜두뚜두’가 빌보드 차트에서 첫 발자국을 남긴 이래로 꾸준히 펼쳐온 로컬라이징 전략은 어느덧 후발 주자라면 반드시 참고해야 할 성공 신화가 되었고, 그들이 내건 걸크러시 이미지는 K팝에서 빼놓을 수 없는 주요 키워드로 자리 잡았다. 막강한 팬덤 파워와 브랜드 협업으로 쌓아 올린 견고한 첨탑. 그 위에 선 블랙핑크는 유유히 동시대 경쟁자들을 관망한다.

커버에 그려진 뱀 이빨만큼이나 여전히 날 서있고 배고픈 < Born Pink >는 다음 먹이를 정확히 포착한다. 팝 시장을 고려한 영어 위주의 가사, 안정적인 반응을 위해 꾸린 무난한 작법 체계, 선두자 역할에 걸맞은 트렌드 반영과 화려한 뮤직비디오까지. 얼개만 본다면 전작에 이어 굳히기에 돌입하려는 평범한 후속작처럼 보인다. 다만 조금 더 자세히 바라보면 관점은 달라진다. 이빨 앞에 놓인 것은 먹음직스럽게 차려진 화제의 상찬이 아닌 바로 스스로의 목덜미기 때문이다.

모든 수록곡이 그간 커리어의 아류 수준에 가깝다. 그룹의 고유 정체성과 팝스타 지향성을 적정선에서 조율한 전작 < The Album >에서 더 강한 상업적 노선을 취하자 기존 특색이 퇴색된 셈이다. 모든 히트곡을 거푸집에 넣어 한 데 녹인 선공개 타이틀 ‘Pink venom’을 보자. 익숙한 스트링과 브라스 사운드, 둔탁한 트랩 비트, 매번 비슷한 파트 분배와 빠르게 고조되는 부분 모두 그 여느 때보다 기시감이 짙다. 나름의 킬링 파트를 위해 숨 가쁘게 ‘그라타타’를 연호하는 지점은 그 괴팍한 센스에 정신이 아찔해질 정도다.

최근 K팝에서 시도되는 클래식 접목의 결과물인 ‘Shut down’은 파가니니의 ‘라 캄파넬라’를 소재로 삼았으나, 최소한의 완급 없이 원곡의 포맷을 그대로 가져간 탓에 3분가량의 광고 음악으로 전락하고 만다. 게임 회사와의 콜라보 하에 추진되어 메타버스 개념을 도입했지만 공허함만 남는 EDM 트랙 ‘Ready for love’ 역시 급하게 추진된 느낌을 감출 수 없다. 유행을 위시한 기획에 자주 쓰던 재료만 얼추 섞은 뒤 신곡으로 결재안을 올린 양상이다.

복구처가 되었어야 할 중반부의 밋밋함도 치명적이다. 정상급 아이돌의 여유로운 면모를 보여주기 위해 차분하게 잡은 작법과 영어 가사가 되려 창의성의 부재로 작용했다. 한 마디로 ‘케이’스러운 매력을 풍기지도, ‘팝’처럼 대중적이지도 않은 구간이다. 자극적이더라도 확실한 인상을 남기는 데 능했던 과거와 달리 시종일관 소극적인 자세를 취하기에 간극은 더욱 크다. 주력 무기를 가져왔으나 차별성이 부족한 ‘Typa girl’, 팝 록 계열로 청춘 송가 ‘Lovesick girl’의 성공 사례를 이어가려는 ‘Yeah yeah yeah’, 꽤 성공적인 스타일 변화에도 뚜렷한 멜로디나 완급이 없어 특색 없는 발라드에 그치고만 ‘The happiest girl’이 그렇다.

현지화를 택했다면, 이보다 더 좋은 팝은 많다. 오리엔탈리즘의 신비를 마케팅으로 삼은 것이라면, 그 의도부터 편협함이 가득하다. 화려한 비주얼라이징과 스타일만을 노린 것이라면, 자신을 가수보다도 협찬의 대상으로 여기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양방향 발전 가능성을 모두 내포하던 하이브리드작 < The Album > 이후 2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블랙핑크의 파괴 전차는 여전히 같은 곳에 머무른 듯 보인다. 겸손한 정착과 당당한 선도, 그 어디에도 명쾌한 해결책을 남기지 못한 채 말이다.

– 수록곡 –
1. Pink venom
2. Shut down
3. Typa girl
4. Yeah yeah yeah
5. Hard to love
6. The happiest girl
7. Tally
8. Ready for love

Categories
KPOP Single Single

블랙핑크(BLACKPINK) ‘Pink venom’ (2022)

평가: 2/5

노래 말고 이미지를 만들고자,

그룹의 시그니처 사운드인 ‘Blackpink in your area’와 ‘Blackpink is the revolution’이 맞붙으면 승자는 필히 후자다. 블랙핑크는 우리 ‘근처’에 있지 않고, ‘혁명’의 주인공이자 ‘뚜두뚜두’, ‘라타타타’ 주술을 외는 천상의 앰버서더를 향해 나간다(혹은 나가고자 한다).

9월 16일 발매될 정규 2집의 선 싱글인 이 곡이 이러한 블랙핑크의 지향을 정확히 나타낸다. 묵직한 거문고 선율로 문을 연 노래는 강렬하고, 자극적인, 더 인상 깊은 무언가를 계속 쏟아내는 뮤직비디오를 통해 콘셉트와 퍼포먼스의 승리를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흔히 여성적인 것이라 연상되는 ‘핑크’와 독이라는 의미를 가진 ‘베놈’을, 그러니까 서로 다른 의미를 지닌 두 이미지를 연결해 ‘블랙핑크’만의 영역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이를 아주 화려하게 포장한다.

결론적으로 노래에는 대중이 무엇에 열광하는가, 대중에게 무엇을 꺼내 보여야 새로운 자극을 줄 수 있을까 고민한 기색이 역력하다. 구태여 거문고 사운드를 끌어오고, 뮤직비디오 해시계, 자개 네일을 담아 ‘K스런’ 무언가를 담으려 했지만 이들이 노리는 건 전 세계 음악 팬을 사로잡을 ‘이미지’다. 노래 말고 이미지를 만들고자 달려 나가는 그룹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더 높은 곳만 바라보는 이들의 혁명가에 일단은 피로감이 든다.

Categories
Feature

메타버스 시대, 음악계에 던져진 궁금증과 과제들

메타버스는 대세일까, 가라앉을 거품일까. 누군가는 열광하고 누군가는 회의하는 기묘한 유행. 과연 새 시대의 문명이 맞을까. 한쪽은 끊임없이 의문을 던지는데, 반대쪽은 과거 혁신을 갈무리한 이들을 지적하며 그러한 태도를 시대에 뒤처진 마인드라 꼬집는다. 그러나 분명 뭔가 존재한다. 이미 국내외 언론은 메타버스로 떠들썩하고, 세계의 저명한 빅테크 기업들도 사랑에 빠진 걸 보니 말이다. 인터넷, 스마트폰에 이어지는 ‘세 번째 IT 사이클’이라는 말이 언뜻 타당해 보인다.

하지만 풀리지 않은 궁금증도 산적하다. 미래의 트렌드라고 하기에는 시간이 지나도 그 실체가 손에 잘 잡히지 않는 탓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새로운 기술이 아니기 때문이다. 눈치챈 이들도 있겠지만, 메타버스는 우리가 기존부터 이용해오던 것들을 결합해 그 위에 이름을 붙인 상위 개념이다. 게임, NFT, VR, AR, SNS 등은 모두 메타버스라는 이름으로 통칭되고 있다. 메타버스를 공부하기 시작한 사람이라면 흔히 이런 혼란을 겪어봤을 것이다. ‘이것도 메타버스고, 저것도 메타버스고, 다 메타버스야?!’

이런 정의가 애매한 ‘무언가’의 상태에 놓여있는 메타버스이기 때문에 여러 의문을 해결하기 위한 더 많은 건설적인 질문이 요구된다. 음악계도 속속 산업에 참여하는 움직임을 보이니 눈에 띄는 변화를 위해 더 많은 물음을 던질 필요가 있다. 호기심 어린 낮은 자세로 살펴본다. 메타버스 시대에 음악계가 풀어야 할 과제는 무엇일까.

우선, 대중의 현저히 낮은 관심도다. 메타버스가 인터넷 인기 검색어로 떠오르고 관련 책이 베스트셀러로 팔리는 것은 사람들의 실질적인 참여도와 무관하다. 현재 K팝 신에서 가장 큰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SM의 걸그룹 에스파의 경우를 보자. 메타버스를 활용한 독특한 가상 아바타와 현실 멤버 교차 콘셉트로 주목받았지만, 이들의 승리를 그러한 초월적 설정 덕으로 보기는 무리다.

팬들은 이 가상 아바타가 어느 정도 ‘볼 만한 수준’에 이르렀으면 하는 바람을 피력한다. 야심 찬 구상에 비해 3D 모델링의 퀄리티는 꾸준히 질타를 받는 것이다. 현실에서 팬들과 소통하고 유대감을 형성하는 게 아이돌의 매력이자 기능이기에 AI 멤버에 반감을 느끼는 이들도 상당수다. 실제 멤버들의 인기에 비해 아바타의 역할은 이렇게 부수적인 정도에 머무르니, 메타버스 시대 K팝 그룹의 밑그림 정도의 의의에 만족해야 하는 실정이다.

이 외의 K팝과 메타버스 융합 사례도 유독 ‘팬 서비스’에 국한되는 모습이다. 블랙핑크가 네이버제트의 제페토에서 펼친 가상 팬 사인회처럼 팬들이 아니라면 집결하지 않을 콘텐츠만 즐비하다. 메타버스가 새 시대의 생태계라면 지지자를 넘어 대중까지 끌어당길 포섭력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또한 네트워크 환경과 컴퓨터, 스마트폰의 발달로 접근성의 차이는 있지만, 제페토 같은 아바타 탑승 플랫폼은 2003년 등장했다가 실패한 ‘세컨드 라이프’에서 이미 구현된 바 있다는 지적도 꾸준히 나온다.

기반 기술의 발전이 비약적이라면 이야기가 다르겠지만 그렇지도 않다. 메타버스의 가장 핵심적이고 초기적인 기기가 될 VR 헤드셋의 사정을 보자. 2012년부터 오큘러스가 적임 회사로 주목받으며 성장을 거듭해 많은 이들에게 익숙한 디바이스가 됐지만 체감되는 변화는 미비하다. 현재는 메타(구 페이스북)가 인수해 개발에 힘쓰고 있다. 하지만 이들의 제품 오큘러스 퀘스트 2가 초기 아이폰과 맞먹는 상당한 판매량을 기록했다는 소식이 들려오는 것과 달리 아바타 기반 VR 세계 ‘호라이즌 월드’는 기술력의 부족으로 아바타의 ‘하반신’마저 구현하지 못하고 있다. 주변에서 상용하는 사람을 찾아보기 어려움은 물론이다.

오큘러스의 기술 자문을 맡고 있는 존 카맥은 이 같은 회의론에 불을 지폈다. 지난 10월 ‘페이스북 커넥트 2021’에서 맡은 기조연설에서 자사의 ‘메타버스 올인’ 현상에 ‘그저 머리를 쥐어 뜯어버리고 싶다’며 ‘메타버스는 아키텍처 우주비행사를 위한 꿀단지 함정이다’라 강하게 쓴소리했다. 여기서 ‘아키텍처 우주비행사’는 ‘광범위한 개념을 최종 단계에 대해서만 생각하고 구체적인 실행 계획은 제시하지 않는 사람’을 말한다. 게임 ‘둠’, ‘퀘이크’ 등을 개발한 전설적인 개발자이자 자사 비전의 최전선에 있는 그이기에 발언의 파장은 컸다.

영미권의 공신력 있는 게임 전문지 PC 게이머 비판도 주목할만하다. ‘메타버스는 헛소리’, ‘인터넷의 열화판’이라는 과격한 반응으로 현재 IT 거물들이 상상하는 미래 세계에 실효성이 없다는 취지의 주장을 확고히 밝혔다. 지금의 메타버스가 얼마나 과열되어 있는지를 보여주는 방증이기도 하다.

People at the concert are waiting for the show

코로나 19의 유행으로 급속도로 성장한 산업이기에 그 이후의 변화에도 민감해야 한다. 연속된 변이 바이러스의 출현으로 인류의 신음이 길어지고 있다고 하지만 그 끝이 현실 세상과의 영원한 거리 두기는 아닐 테니 말이다. 음악계에서 메타버스와 가장 잘 화합할 것으로 떠오른 산업은 전염병의 직격탄을 맞은 공연 업계다. 그런데 여기서부터 메타버스와의 동행에 의문이 앞선다.

콘서트의 생명은 현장감인데 과연 가수의 목소리를 한자리에서 듣고 쌍방향 소통하는 재미를 가상 공연이 대체할 수 있을까. 상기한 팬 서비스 차원이 아닌 아티스트와 많은 관객이 함께 뛰고 즐기는 콘서트의 진정한 열기를 구현할 수 있는 건지. 아이슬란드의 전설적인 싱어송라이터 뷰욕의 과거 인터뷰 발언을 빌린다. ‘사람들이 온라인에 집착한다는 건 곧 공연에 가고 싶어 한다는 뜻이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육체적인 접촉과 물성을 원할 수밖에 없다.’.

공연 실행 시 생기는 법적인 문제도 빼놓을 수 없다. 우선, 가상세계 내에서 이루어지는 공연 수익 배분 문제다. 저작권 제도는 탄생 이래 저작물을 이용하는 미디어의 형태가 발달함에 따라 그 모습을 꾸준히 변화해 왔다. 새로운 플랫폼이 등장하면 사용료를 나누는 규정의 개정이 필연적인 것이다.

실제로 2020년 기획사들이 진행한 언택트 공연에 대해서는 한국음악저작권협회가 사용료를 징수하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방송사용료, 전송사용료, 혹은 그 외의 사용료 중 어느 것을 수납할지 정리가 안 된 탓이다. 한국음악저작권협회의 관리하에 있는 음원이 국내 공연에서 사용되면 입장료 수익과 일정 요율에 맞춰 징수해 창작자들에게 나눈다. 하지만 언택트 공연은 해외 유저가 과반수라 돈 거두기 까다롭다.

개방적 창작 공동체라는 특성답게 메타버스는 이 외에도 현실 세계와 맞물리는 과정에서 여러 법적 쟁점을 껴안는다. 만화 캐릭터나 연예인의 사진을 활용한 아바타의 저작권, 초상권 침해에 대한 우려가 증대하고 있다. 속지주의에 구속받지 않고 글로벌 인구가 참여하는 세계이기에 분쟁 시 관할권은 어디로 부여할지 등도 고민거리다. 노골적인 성행위가 스스럼없이 이루어지는 ‘VR챗’, 처벌이 애매한 가상 세계 내의 성희롱과 스토킹을 비롯한 사이버폭력처럼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부분도 많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현실과 가상의 조화와 상호작용이다. 사람들을 연결하겠다는 새 문명의 포부가 도리어 사회의 단절을 야기하는 일은 없어야겠다. 익히 알려져 있듯 최초 메타버스가 등장한 배경인 1992년 닐 스티븐슨(Neal Stephenson)의 소설 < 스노우 크래쉬 >나 SF 명작 < 매트릭스 > 속 가상현실의 모습은 빛나는 유토피아라기보다 암울한 디스토피아였다. ‘혁신’이라는 근사한 간판에 기대심을 갖는 것도 좋지만, 균형 잡힌 ‘황금분할’을 위한 고민에도 주력해야 한다.

세상은 변한다. 코로나 19가 우리를 괴롭힐수록 메타버스는 두말할 것 없이 떠오를 산업이다. 그러나 섣부른 열광은 거품을 만들고 거품은 이내 실망을 낳는다. 메타버스 산업의 옥석을 가려 보석을 발굴하기 위해서라도 더 많은 질문과 비판에 나설 때다. 무심코 대세라 치켜세우는 메타버스는 그 칭송과는 다르게, 사실 이제 ‘시작’ 단계다.

Categories
KPOP Single Single

리사(Lisa) ‘Lalisa'(2021)

평가: 2.5/5

그룹 블랙핑크에서 세 번째로 솔로 출사표를 던졌다. 내세운 무기는 자신의 본명을 노래 제목으로 삼은 자신감 혹은 각오에서 알 수 있듯 ‘나’로 완성된다. 오랜 기간 동안 많은 히트곡을 써낸 작곡가 테디의 강렬한 전자음과 반복되는 곡 구성 사이 ‘라리사’라는 메인 선율이 쉽게 각인되고 노래 역시 무난하게 흘러간다.

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십분 담고 여기저기 뮤지션 리사의 당당함을 외치지만 그리 인상적이지 않다. 이미 들을 대로 들은 사운드 소스이고 강한 인상을 남길 만큼의 변화나 변신도 잘 느껴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노래는 빌보드 싱글 차트 100위권 안에 올랐고 음원 판매량 역시 어디에 뒤처질 것 없이 높다. 이 승리는 곡의 완성도에서 파생된 성과라기보단 정확히 그동안 일궈온 블랙핑크 그리고 ‘그 안의’ 리사에서 시작된 브랜드 파워에서 나온다. ‘태국에서 한국을 거쳐 여왕’이 된 그를 조명하기에 곡 단위 파급력과 신선함이 부족하다.

아이돌 특히 여성 아이돌들이 노래하는 ‘강한 여성’, ‘강한 자신’에 대한 이야기가 세일즈 포인트로 쉽고, 편하게 다뤄지고 있는 것은 아닐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