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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핑크(BLACKPINK) ‘Born Pink'(2022)

평가: 2/5

아이돌의 아이돌, 블랙핑크의 원대한 걸음은 아직 진행형이다. ‘뚜두뚜두’가 빌보드 차트에서 첫 발자국을 남긴 이래로 꾸준히 펼쳐온 로컬라이징 전략은 어느덧 후발 주자라면 반드시 참고해야 할 성공 신화가 되었고, 그들이 내건 걸크러시 이미지는 K팝에서 빼놓을 수 없는 주요 키워드로 자리 잡았다. 막강한 팬덤 파워와 브랜드 협업으로 쌓아 올린 견고한 첨탑. 그 위에 선 블랙핑크는 유유히 동시대 경쟁자들을 관망한다.

커버에 그려진 뱀 이빨만큼이나 여전히 날 서있고 배고픈 < Born Pink >는 다음 먹이를 정확히 포착한다. 팝 시장을 고려한 영어 위주의 가사, 안정적인 반응을 위해 꾸린 무난한 작법 체계, 선두자 역할에 걸맞은 트렌드 반영과 화려한 뮤직비디오까지. 얼개만 본다면 전작에 이어 굳히기에 돌입하려는 평범한 후속작처럼 보인다. 다만 조금 더 자세히 바라보면 관점은 달라진다. 이빨 앞에 놓인 것은 먹음직스럽게 차려진 화제의 상찬이 아닌 바로 스스로의 목덜미기 때문이다.

모든 수록곡이 그간 커리어의 아류 수준에 가깝다. 그룹의 고유 정체성과 팝스타 지향성을 적정선에서 조율한 전작 < The Album >에서 더 강한 상업적 노선을 취하자 기존 특색이 퇴색된 셈이다. 모든 히트곡을 거푸집에 넣어 한 데 녹인 선공개 타이틀 ‘Pink venom’을 보자. 익숙한 스트링과 브라스 사운드, 둔탁한 트랩 비트, 매번 비슷한 파트 분배와 빠르게 고조되는 부분 모두 그 여느 때보다 기시감이 짙다. 나름의 킬링 파트를 위해 숨 가쁘게 ‘그라타타’를 연호하는 지점은 그 괴팍한 센스에 정신이 아찔해질 정도다.

최근 K팝에서 시도되는 클래식 접목의 결과물인 ‘Shut down’은 파가니니의 ‘라 캄파넬라’를 소재로 삼았으나, 최소한의 완급 없이 원곡의 포맷을 그대로 가져간 탓에 3분가량의 광고 음악으로 전락하고 만다. 게임 회사와의 콜라보 하에 추진되어 메타버스 개념을 도입했지만 공허함만 남는 EDM 트랙 ‘Ready for love’ 역시 급하게 추진된 느낌을 감출 수 없다. 유행을 위시한 기획에 자주 쓰던 재료만 얼추 섞은 뒤 신곡으로 결재안을 올린 양상이다.

복구처가 되었어야 할 중반부의 밋밋함도 치명적이다. 정상급 아이돌의 여유로운 면모를 보여주기 위해 차분하게 잡은 작법과 영어 가사가 되려 창의성의 부재로 작용했다. 한 마디로 ‘케이’스러운 매력을 풍기지도, ‘팝’처럼 대중적이지도 않은 구간이다. 자극적이더라도 확실한 인상을 남기는 데 능했던 과거와 달리 시종일관 소극적인 자세를 취하기에 간극은 더욱 크다. 주력 무기를 가져왔으나 차별성이 부족한 ‘Typa girl’, 팝 록 계열로 청춘 송가 ‘Lovesick girl’의 성공 사례를 이어가려는 ‘Yeah yeah yeah’, 꽤 성공적인 스타일 변화에도 뚜렷한 멜로디나 완급이 없어 특색 없는 발라드에 그치고만 ‘The happiest girl’이 그렇다.

현지화를 택했다면, 이보다 더 좋은 팝은 많다. 오리엔탈리즘의 신비를 마케팅으로 삼은 것이라면, 그 의도부터 편협함이 가득하다. 화려한 비주얼라이징과 스타일만을 노린 것이라면, 자신을 가수보다도 협찬의 대상으로 여기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양방향 발전 가능성을 모두 내포하던 하이브리드작 < The Album > 이후 2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블랙핑크의 파괴 전차는 여전히 같은 곳에 머무른 듯 보인다. 겸손한 정착과 당당한 선도, 그 어디에도 명쾌한 해결책을 남기지 못한 채 말이다.

– 수록곡 –
1. Pink venom
2. Shut down
3. Typa girl
4. Yeah yeah yeah
5. Hard to love
6. The happiest girl
7. Tally
8. Ready for 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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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POP Single Single

블랙핑크(BLACKPINK) ‘Pink venom’ (2022)

평가: 2/5

노래 말고 이미지를 만들고자,

그룹의 시그니처 사운드인 ‘Blackpink in your area’와 ‘Blackpink is the revolution’이 맞붙으면 승자는 필히 후자다. 블랙핑크는 우리 ‘근처’에 있지 않고, ‘혁명’의 주인공이자 ‘뚜두뚜두’, ‘라타타타’ 주술을 외는 천상의 앰버서더를 향해 나간다(혹은 나가고자 한다).

9월 16일 발매될 정규 2집의 선 싱글인 이 곡이 이러한 블랙핑크의 지향을 정확히 나타낸다. 묵직한 거문고 선율로 문을 연 노래는 강렬하고, 자극적인, 더 인상 깊은 무언가를 계속 쏟아내는 뮤직비디오를 통해 콘셉트와 퍼포먼스의 승리를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흔히 여성적인 것이라 연상되는 ‘핑크’와 독이라는 의미를 가진 ‘베놈’을, 그러니까 서로 다른 의미를 지닌 두 이미지를 연결해 ‘블랙핑크’만의 영역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이를 아주 화려하게 포장한다.

결론적으로 노래에는 대중이 무엇에 열광하는가, 대중에게 무엇을 꺼내 보여야 새로운 자극을 줄 수 있을까 고민한 기색이 역력하다. 구태여 거문고 사운드를 끌어오고, 뮤직비디오 해시계, 자개 네일을 담아 ‘K스런’ 무언가를 담으려 했지만 이들이 노리는 건 전 세계 음악 팬을 사로잡을 ‘이미지’다. 노래 말고 이미지를 만들고자 달려 나가는 그룹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더 높은 곳만 바라보는 이들의 혁명가에 일단은 피로감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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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ature

메타버스 시대, 음악계에 던져진 궁금증과 과제들

메타버스는 대세일까, 가라앉을 거품일까. 누군가는 열광하고 누군가는 회의하는 기묘한 유행. 과연 새 시대의 문명이 맞을까. 한쪽은 끊임없이 의문을 던지는데, 반대쪽은 과거 혁신을 갈무리한 이들을 지적하며 그러한 태도를 시대에 뒤처진 마인드라 꼬집는다. 그러나 분명 뭔가 존재한다. 이미 국내외 언론은 메타버스로 떠들썩하고, 세계의 저명한 빅테크 기업들도 사랑에 빠진 걸 보니 말이다. 인터넷, 스마트폰에 이어지는 ‘세 번째 IT 사이클’이라는 말이 언뜻 타당해 보인다.

하지만 풀리지 않은 궁금증도 산적하다. 미래의 트렌드라고 하기에는 시간이 지나도 그 실체가 손에 잘 잡히지 않는 탓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새로운 기술이 아니기 때문이다. 눈치챈 이들도 있겠지만, 메타버스는 우리가 기존부터 이용해오던 것들을 결합해 그 위에 이름을 붙인 상위 개념이다. 게임, NFT, VR, AR, SNS 등은 모두 메타버스라는 이름으로 통칭되고 있다. 메타버스를 공부하기 시작한 사람이라면 흔히 이런 혼란을 겪어봤을 것이다. ‘이것도 메타버스고, 저것도 메타버스고, 다 메타버스야?!’

이런 정의가 애매한 ‘무언가’의 상태에 놓여있는 메타버스이기 때문에 여러 의문을 해결하기 위한 더 많은 건설적인 질문이 요구된다. 음악계도 속속 산업에 참여하는 움직임을 보이니 눈에 띄는 변화를 위해 더 많은 물음을 던질 필요가 있다. 호기심 어린 낮은 자세로 살펴본다. 메타버스 시대에 음악계가 풀어야 할 과제는 무엇일까.

우선, 대중의 현저히 낮은 관심도다. 메타버스가 인터넷 인기 검색어로 떠오르고 관련 책이 베스트셀러로 팔리는 것은 사람들의 실질적인 참여도와 무관하다. 현재 K팝 신에서 가장 큰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SM의 걸그룹 에스파의 경우를 보자. 메타버스를 활용한 독특한 가상 아바타와 현실 멤버 교차 콘셉트로 주목받았지만, 이들의 승리를 그러한 초월적 설정 덕으로 보기는 무리다.

팬들은 이 가상 아바타가 어느 정도 ‘볼 만한 수준’에 이르렀으면 하는 바람을 피력한다. 야심 찬 구상에 비해 3D 모델링의 퀄리티는 꾸준히 질타를 받는 것이다. 현실에서 팬들과 소통하고 유대감을 형성하는 게 아이돌의 매력이자 기능이기에 AI 멤버에 반감을 느끼는 이들도 상당수다. 실제 멤버들의 인기에 비해 아바타의 역할은 이렇게 부수적인 정도에 머무르니, 메타버스 시대 K팝 그룹의 밑그림 정도의 의의에 만족해야 하는 실정이다.

이 외의 K팝과 메타버스 융합 사례도 유독 ‘팬 서비스’에 국한되는 모습이다. 블랙핑크가 네이버제트의 제페토에서 펼친 가상 팬 사인회처럼 팬들이 아니라면 집결하지 않을 콘텐츠만 즐비하다. 메타버스가 새 시대의 생태계라면 지지자를 넘어 대중까지 끌어당길 포섭력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또한 네트워크 환경과 컴퓨터, 스마트폰의 발달로 접근성의 차이는 있지만, 제페토 같은 아바타 탑승 플랫폼은 2003년 등장했다가 실패한 ‘세컨드 라이프’에서 이미 구현된 바 있다는 지적도 꾸준히 나온다.

기반 기술의 발전이 비약적이라면 이야기가 다르겠지만 그렇지도 않다. 메타버스의 가장 핵심적이고 초기적인 기기가 될 VR 헤드셋의 사정을 보자. 2012년부터 오큘러스가 적임 회사로 주목받으며 성장을 거듭해 많은 이들에게 익숙한 디바이스가 됐지만 체감되는 변화는 미비하다. 현재는 메타(구 페이스북)가 인수해 개발에 힘쓰고 있다. 하지만 이들의 제품 오큘러스 퀘스트 2가 초기 아이폰과 맞먹는 상당한 판매량을 기록했다는 소식이 들려오는 것과 달리 아바타 기반 VR 세계 ‘호라이즌 월드’는 기술력의 부족으로 아바타의 ‘하반신’마저 구현하지 못하고 있다. 주변에서 상용하는 사람을 찾아보기 어려움은 물론이다.

오큘러스의 기술 자문을 맡고 있는 존 카맥은 이 같은 회의론에 불을 지폈다. 지난 10월 ‘페이스북 커넥트 2021’에서 맡은 기조연설에서 자사의 ‘메타버스 올인’ 현상에 ‘그저 머리를 쥐어 뜯어버리고 싶다’며 ‘메타버스는 아키텍처 우주비행사를 위한 꿀단지 함정이다’라 강하게 쓴소리했다. 여기서 ‘아키텍처 우주비행사’는 ‘광범위한 개념을 최종 단계에 대해서만 생각하고 구체적인 실행 계획은 제시하지 않는 사람’을 말한다. 게임 ‘둠’, ‘퀘이크’ 등을 개발한 전설적인 개발자이자 자사 비전의 최전선에 있는 그이기에 발언의 파장은 컸다.

영미권의 공신력 있는 게임 전문지 PC 게이머 비판도 주목할만하다. ‘메타버스는 헛소리’, ‘인터넷의 열화판’이라는 과격한 반응으로 현재 IT 거물들이 상상하는 미래 세계에 실효성이 없다는 취지의 주장을 확고히 밝혔다. 지금의 메타버스가 얼마나 과열되어 있는지를 보여주는 방증이기도 하다.

People at the concert are waiting for the show

코로나 19의 유행으로 급속도로 성장한 산업이기에 그 이후의 변화에도 민감해야 한다. 연속된 변이 바이러스의 출현으로 인류의 신음이 길어지고 있다고 하지만 그 끝이 현실 세상과의 영원한 거리 두기는 아닐 테니 말이다. 음악계에서 메타버스와 가장 잘 화합할 것으로 떠오른 산업은 전염병의 직격탄을 맞은 공연 업계다. 그런데 여기서부터 메타버스와의 동행에 의문이 앞선다.

콘서트의 생명은 현장감인데 과연 가수의 목소리를 한자리에서 듣고 쌍방향 소통하는 재미를 가상 공연이 대체할 수 있을까. 상기한 팬 서비스 차원이 아닌 아티스트와 많은 관객이 함께 뛰고 즐기는 콘서트의 진정한 열기를 구현할 수 있는 건지. 아이슬란드의 전설적인 싱어송라이터 뷰욕의 과거 인터뷰 발언을 빌린다. ‘사람들이 온라인에 집착한다는 건 곧 공연에 가고 싶어 한다는 뜻이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육체적인 접촉과 물성을 원할 수밖에 없다.’.

공연 실행 시 생기는 법적인 문제도 빼놓을 수 없다. 우선, 가상세계 내에서 이루어지는 공연 수익 배분 문제다. 저작권 제도는 탄생 이래 저작물을 이용하는 미디어의 형태가 발달함에 따라 그 모습을 꾸준히 변화해 왔다. 새로운 플랫폼이 등장하면 사용료를 나누는 규정의 개정이 필연적인 것이다.

실제로 2020년 기획사들이 진행한 언택트 공연에 대해서는 한국음악저작권협회가 사용료를 징수하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방송사용료, 전송사용료, 혹은 그 외의 사용료 중 어느 것을 수납할지 정리가 안 된 탓이다. 한국음악저작권협회의 관리하에 있는 음원이 국내 공연에서 사용되면 입장료 수익과 일정 요율에 맞춰 징수해 창작자들에게 나눈다. 하지만 언택트 공연은 해외 유저가 과반수라 돈 거두기 까다롭다.

개방적 창작 공동체라는 특성답게 메타버스는 이 외에도 현실 세계와 맞물리는 과정에서 여러 법적 쟁점을 껴안는다. 만화 캐릭터나 연예인의 사진을 활용한 아바타의 저작권, 초상권 침해에 대한 우려가 증대하고 있다. 속지주의에 구속받지 않고 글로벌 인구가 참여하는 세계이기에 분쟁 시 관할권은 어디로 부여할지 등도 고민거리다. 노골적인 성행위가 스스럼없이 이루어지는 ‘VR챗’, 처벌이 애매한 가상 세계 내의 성희롱과 스토킹을 비롯한 사이버폭력처럼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부분도 많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현실과 가상의 조화와 상호작용이다. 사람들을 연결하겠다는 새 문명의 포부가 도리어 사회의 단절을 야기하는 일은 없어야겠다. 익히 알려져 있듯 최초 메타버스가 등장한 배경인 1992년 닐 스티븐슨(Neal Stephenson)의 소설 < 스노우 크래쉬 >나 SF 명작 < 매트릭스 > 속 가상현실의 모습은 빛나는 유토피아라기보다 암울한 디스토피아였다. ‘혁신’이라는 근사한 간판에 기대심을 갖는 것도 좋지만, 균형 잡힌 ‘황금분할’을 위한 고민에도 주력해야 한다.

세상은 변한다. 코로나 19가 우리를 괴롭힐수록 메타버스는 두말할 것 없이 떠오를 산업이다. 그러나 섣부른 열광은 거품을 만들고 거품은 이내 실망을 낳는다. 메타버스 산업의 옥석을 가려 보석을 발굴하기 위해서라도 더 많은 질문과 비판에 나설 때다. 무심코 대세라 치켜세우는 메타버스는 그 칭송과는 다르게, 사실 이제 ‘시작’ 단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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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POP Single Single

리사(Lisa) ‘Lalisa'(2021)

평가: 2.5/5

그룹 블랙핑크에서 세 번째로 솔로 출사표를 던졌다. 내세운 무기는 자신의 본명을 노래 제목으로 삼은 자신감 혹은 각오에서 알 수 있듯 ‘나’로 완성된다. 오랜 기간 동안 많은 히트곡을 써낸 작곡가 테디의 강렬한 전자음과 반복되는 곡 구성 사이 ‘라리사’라는 메인 선율이 쉽게 각인되고 노래 역시 무난하게 흘러간다.

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십분 담고 여기저기 뮤지션 리사의 당당함을 외치지만 그리 인상적이지 않다. 이미 들을 대로 들은 사운드 소스이고 강한 인상을 남길 만큼의 변화나 변신도 잘 느껴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노래는 빌보드 싱글 차트 100위권 안에 올랐고 음원 판매량 역시 어디에 뒤처질 것 없이 높다. 이 승리는 곡의 완성도에서 파생된 성과라기보단 정확히 그동안 일궈온 블랙핑크 그리고 ‘그 안의’ 리사에서 시작된 브랜드 파워에서 나온다. ‘태국에서 한국을 거쳐 여왕’이 된 그를 조명하기에 곡 단위 파급력과 신선함이 부족하다.

아이돌 특히 여성 아이돌들이 노래하는 ‘강한 여성’, ‘강한 자신’에 대한 이야기가 세일즈 포인트로 쉽고, 편하게 다뤄지고 있는 것은 아닐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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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IZM 연말 결산 특집 Feature

2020 올해의 가요 싱글

전대미문의 ‘거리두기’ 현실에서 음악도 예외가 아니었다. 평범한 일상이 위협받는 가운데 가요계도 잠시 숨을 고를 때가 있었다. 하지만 결코 멈추는 일은 없었다. 언제나 그러했듯 대중가요는 삶을 위로하고 웃음을 선사하며 용기를 북돋워주었다. IZM 선정 2020년을 대표할 가요 싱글 10곡을 소개한다. 글의 순서는 순위와 무관하다.


오마이걸(OH MY GIRL) ‘Dolphin’

식상한 패턴을 비켜가면서도 트렌드를 붙잡으려 애쓴 음악적 성의가 끝내 형통했다. 댄스 퍼포먼스 혹은 비주얼의 개가, 화제성의 산물, 마케팅의 성과 등등을 들먹이기 전에 음악 정확히는 곡의 승리였다. 듣기에 따라 건조할 수도 있고 습할 수도 있는, 조금은 우기듯 기분 좋게 반복하는 ‘다 다 다..’ 리듬에 바로 이어지는 ‘또 물보라를 일으켜’까지의 대목은 2020년 가장 중독화에 성공한, 나른하지만 무감각을 찍어 누르는 매혹의 코러스다. 

짧지만 돌아가면서 부르는 멤버 모두의 수준급 보컬도 승리를 거들었다. 이 때문에 로맨틱한 가사가 살고 실종된 청순과 설렘이 복권된다. 노래에서 화자가 좋아하는 하트 상대가 물보라를 일으키는 게 아니라 오마이걸 자신이 물보라를 일으키는 돌핀으로 팬들 마음에 새겨진다. 여성 팬이 찾고, 어른도 반응하고, 놀랍게도 헤비메탈 광이 호감을 내비친다. 고질적 성, 세대, 장르 분리의 유쾌한 은폐. 오마이걸에게 ‘걸 그룹의 걸 그룹’이란 수식을 제공해준 2020년의 러브 송! (임진모)


이날치 ‘범 내려온다’

네이버 온스테이지에 올라온 영상이 시작이었다. 간결한 베이스가 도입부를 알리자 한복과 정장을 장착한 춤꾼들이 리듬에 맞춰 조금씩 전진하고, 그 위로 구수한 판소리가 힘차게 탑승한다. 다들 태연하게 제 의무를 다하고 있지만, 분명 동서양의 문화가 한 데 뒤엉키는 혼란스러운 상황. 밴드 이날치와 앰비규어스 댄스컴퍼니의 협업으로 탄생한 기상천외한 공존, ‘범 내려온다’ 속에는 조선시대 놀이판의 오색찬란한 광경이 다시금 호출되고 있었다.

아방가르드 밴드 어어부 프로젝트, 혹은 퓨전 국악을 지향한 씽씽과 불교음악을 다룬 대형 연주단 비빙과 같이, 이날치 역시 수많은 분야를 탐험해온 장영규의 잠시 스쳐 가는 연장선 중 하나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이 곡이 지닌 기세 속에는 최근 국악계의 진보적 흐름에 단순 동참하는 의의를 넘어, 도리어 앞장설 수 있을 만큼의 우수한 포용성이 존재한다. 무엇보다 역사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원재료를 가지고도 젊은 세대를 스스로 들썩이게 만들지 않았는가. (장준환)


조정석 ‘아로하’ 

가수의 조건 중에서 사람들은 가창력에 비해 발성을 상대적으로 과소평가하지만 가사를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면 곡의 의미를 파악하지 못하고 감정전달도 애를 먹는다. 또 작사가에게도 미안하고. 배우 조정석은 초등학생이 듣고 받아쓰기를 할 수 있을 정도로 정확한 발음과 뚜렷한 발성을 구사한다. 이것만으로도 조정석의 ‘아로하’는 2020년에 가장 평가받아야 할 노래 중 하나다. 

가창력도 기대 이상이다. 이재훈과 유리가 부른 쿨의 원곡과 달리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 부른 조정석은 남자와 여자의 키를 무리 없이 소화하며 또박또박한 가사를 통해 사랑스런 노랫말을 더욱 아름답게 격상시킨다. 배우로서 발음이 좋은 그의 진가가 발휘되는 순간이다. 조정석은 ‘슬기롭게’ 잘 불렀고 듣는 사람들은 그 점을 충분히 ‘납득’한다. (소승근)


창모 ‘Meteor’

올해를 대표하는 가요 싱글들을 보고 한 해의 흐름을 읽을 수 있어야 한다면 ‘Meteor’를 빼놓고 2020년을 논할 수 없다. 힙합이 팝이 된 시대에, 특히 ‘그’ 오디션에서가 아닌 자기의 힘으로 자신의 스토리를 노래하는 이 래퍼에게 세상은 손을 들어줬다. 피아노 연주부터 비트 메이킹, 프로듀싱, 랩 스킬까지 탄탄한 실력을 겸비한 음악가에게 무시 못 할 히트곡까지 터졌으니 그 누가 의심하랴.

2019년 12월 하늘에서 떨어진 ‘Meteor’로 ‘마에스트로 (Maestro)’를 밀어내며 대표곡 자리를 갈아엎은 그는 피아노 치는 래퍼 대신 카니예 웨스트식 작법과 자전적 가사, 그리고 보컬 이펙트의 이상적인 조합으로 익숙한 새 개성을 손에 넣었다. ‘덕소의 아들’에서 ‘랩스타’로 떠올랐던 그는 덕분에 한 단계 발전해 ‘팝스타’로 불려도 손색이 없는 위치까지 올랐다. (임동엽)


아이유(IU) ‘에잇 (Prod. & Feat. SUGA of BTS)’ 

참으로 신기한 일이다. 개성이 뚜렷한 두 명의 28살이 만났는데, 각자의 질감을 유지하다가 융합하기도 하면서 또 서로에게 새로운 시도였을 장르를 말끔히 소화한다. 거기에 여러 차례 곱씹게 되는 언어의 힘까지. 시원하게 뻗어 나아가 카타르시스에 닿는 얼터너티브 록 사운드와 달리 오직 기억 속에 머물러있는 노랫말은 너무나도 시리기에, 어느새 우리도 ‘한 뼘짜리 추억’을 함께 거닐고 있다.     

지극히 본인의 이야기임에도 저마다 가슴 깊이 눌러 담았던 형언할 수 없는 먹먹함을 떠오르게 한다. 들춰내는 것도 아니고 헤집어 놓는 것도 아닌, 슬그머니 ‘서로를 베고 누워’ 그리움을 어루만진다. 아이유는 스물여덟의 반복되는 무력감과 무기력함을 고백하지만 동시에 그 어느 때 보다 힘겨웠던 2020년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힘을 불어넣는다. 그야말로 ‘올해의 힐링 곡’. (임선희)    


가호 ‘시작’ 

긍정적인 힘이 필요한 한해였다. 코로나 19시대에 갇혀 움츠러든 대중의 발걸음은 그 어느 때보다 무거웠고, 시작이란 단어는 잊혀가는 일상 중 하나였다. < 이태원 클라쓰 >로 발현된 화제성이지만, 올해 2월 발매된 가호의 ‘시작’이 드라마가 종영된 지 한참 지난 지금까지 곁에 머물며 시대와 호흡하는 이유는 분명했다. 우리는 가공되지 않은 희망을 원했고, 그곳에서 위로를 찾았다.

무엇보다 순수하다. 밝은 내일이라는 목표가 직선적인 록 사운드로 표현된 곡은 ‘워’와 같은 추임새 등 영상 음악만이 가질 수 있는 장점을 살리며 새 출발의 설렘을 담아내기에 오늘을 살아가는 청자에 다가선다. 사람의 체온과 닮은 ‘시작’의 온도에 무명 가수의 목소리는 서서히 퍼져나가며 멜론 차트 1위, 소리바다 어워즈 OST 부문 수상 등 확실한 기록 또한 남겼다. 특정한 지지층 없이 음악으로만 이뤄낸 의미 있는 결과다. 너무 뜨겁지 않게. 하지만 따뜻하게 2020년을 감싸 안았다. (손기호)


DAY6(데이식스) ‘Zombie’

반복되는 일상 속 무력해진 자신을 ‘머리와 심장이 텅 빈’ 좀비에 빗댄다. 괜찮다는 위로나, 애써 고통의 실타래를 벗어나라는 긍정의 메시지도 없다. 데이식스의 여섯 번째 미니 앨범 < The Book of Us : The Demon >의 타이틀곡 ‘Zombie’는 밴드의 작품 중 가장 어둡고 비관적이다. 벌스(Verse)와 후렴의 멜로디를 일치시킨 간소한 구성이 자연스럽게 보컬에 귀 기울이게 하고, 영케이와 원필이 직접 쓴 노랫말의 음울한 정서를 격정적으로 토해내는 멤버들의 목소리가 마음을 찢어놓는다.

뒤숭숭한 한 해였다. 세계적 전염병의 창궐에 사람들은 고립됐고, 설상가상으로 국내에는 태풍의 악재까지 겹치며 일상을 빼앗겼다. ‘별다를 것 없는’ 하루들을 흘려보내며 몸도 마음도 지쳐간 이들이 많았을 터. 이 노래가 그 시대성을 의도했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Zombie’는 묘하게 그런 시대의 모습과 맞아떨어지며 어두운 시기를 걷는 이들에게 힘이 되어주었다. 머지않아 우리에게도, 그들에게도 나은 일상이 돌아오기를 바라본다. (이홍현)


지코 ‘아무노래’ 

이 노래의 히트는, 이미 영미권에 큰 파장을 일으킨 ‘챌린지’ 프로모션이 국내에도 정착했음을 알린 사건이었다. 초반 30초에 모든 곡의 매력을 집대성하고, 여기에 따라 하기 쉬운 안무를 장착. 다양한 분야의 셀럽을 참여 시켜 진행한 SNS 홍보는 그야말로 대성공을 거두었다. 이 과정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바로 트렌드를 자신의 것으로 완벽하게 체화한 지코 본인의 프로듀싱 역량. 

한번 들으면 잊히지 않는 그루브한 싱잉-랩, 비트 위에 자연스레 스며있는 보사노바의 기운, 구성을 완벽히 다르게 가져가며 곡에 몰입을 유도하는 인트로와 아웃트로 등. 남들이 조금씩 흉내만 낼 때, 그는 본인의 음악적 매력을 적확하게 녹여내며 승기를 잡았다. 트렌드에 대한 이해와 음악적 역량이 빚어낸 전략이 얼마만큼의 힘을 발휘하느냐에 대한 그 예제, 지코가 확실히 보여준 셈. (황선업)


조광일 ‘곡예사’ 

이해되는 광기, 소화되는 분노다. 빽빽하다 못해 뾰족하게 쏟아지는 속사포 래핑과 열에 받쳐 토해내는 서사들은 흐트러짐이 없다. 더하여 확실하게 들리는 발음은 더욱 강한 주목 및 집중을 끌어낸다. 2019년의 끝에 발매한 싱글 ‘Grow back’을 출발로 음악 활동을 시작한 조광일은 올해 이 노래를 통해 확실한 자국을 남겼다.

자신을 줄을 타는 곡예사에 비유한다. 아니 그보단 아찔한 줄타기처럼 짜릿한 랩을 탄다는 표현이 더 맞겠다. 시작과 동시에 정신을 쏙 빼놓는 그의 소리침은 어디서도 뒤지지 않을 자신감과 거친 포부로 읽힌다. 랩 스킬, 데뷔를 각인시킬 가사, 호흡. 무엇하나 빠짐없이 날카롭다. 튕기듯 쏘아내는 랩과 그 안에 담긴 생생한 래퍼로서의 자신감. 돋보이는 신예다. (박수진)  


블랙핑크(BLACKPINK) ‘Lovesick Girls’ 

블랙핑크는 케이팝 스타에서 팝 스타가 되어가는 올바른 선례를 보여줬다. 셀레나 고메즈(Selena Gomez)와 함께한 ‘Ice cream’으로 빌보드 싱글차트 13위에 데뷔했고, 세계적인 팝 스타 레이디 가가(Lady Gaga), 카디 비(Cardi B)와의 작업으로 팝 시장을 향해 화살을 조준했다. 단계를 거듭하는 전술 끝에 < The Album >이 빌보드 앨범차트 2위의 쾌거를 이루며 인기의 정점을 증명했다.

‘Lovesick girls’는 팝스타의 위치를 선점하면서도 케이팝의 보존을 꾀하기에 더욱 의미 있다. 2000년대 미국의 틴 팝(teen pop)을 떠오르게 하는 에너제틱한 청량함과, 블랙핑크 특유의 마이너한 색깔을 적절히 배합한다. 여기에 케이팝의 성질을 주조하는 직관적인 신시사이저 리프와 촘촘하게 짜인 일렉트로닉 사운드는 짜릿한 쾌감의 원천! 비로소 국내외 모두를 사로잡을 수 있는 이유다. (조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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