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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Feature

뉴트로 특집 VOL.2 : 12곡으로 살펴본 뉴트로

복고가 뭐길래. 이리도 오랜 시간 전 세계에서 동시다발적으로 특히 ‘젊은 세대’에게도 사랑받는 것인가. 한 번쯤은 떠올렸을 궁금증이다. 이에 이즘이 ‘뉴트로 특집’을 준비했다. 뉴트로의 정의와 연혁을 다룬 박수진 필자의 글에 이어, 두 번째 특집으로 IZM 필자들이 모여 뉴트로 흐름에 박차를 가한 12개의 곡을 모았다. 복고 열풍을 한 눈에 바라보고 이해하려는 이들에게 좋은 지침서가 되기를 바란다.

브루노 마스 ‘Treasure’
어스 윈드 & 파이어가 부른 ‘Let’s groove’의 뮤직비디오, 두터운 리듬을 강조한 프린스의 초기 음악 스타일, 마이클 잭슨의 안무. 이 세 가지는 브루노 마스의 ‘Treasure’를 가장 간단하게 설명할 수 있는 문구다. 1970, 80년대에 음악을 많이 들은 사람한테 이 펑크(Funk)넘버는 과거를 답습한 결과물이지만 2010년대의 젊은 세대에게 이 곡은 최첨단 유행이자 세련된 보석이다. 이후 브루노 마스는 ’24k magic’, ‘Finesse’, 마크 론슨과 함께 한 ‘Uptown funk’로 복고 열풍을 주도했고 2021년에는 더 거슬러 올라가 1970년대 초반의 소울 발라드를 끌어들인 ‘Leave the door open’으로 음악적 영역을 넓혔다. ‘Treasure’는 뉴트로가 아니라 레트로다. (소승근)

샤이니 ‘1 of 1’
뮤직비디오의 흰색 배경과 원색의 파워숄더 수트가 MTV 시대를 재현한다. 그 위에 둔탁한 808 드럼 비트가 떨어지는 순간 1990년대 초반으로 범위를 좁힌다. 직접적인 오마주는 아니지만 뉴 잭 스윙을 대표하는 보이밴드 뉴 에디션, 블랙 스트리트의 흔적도 곳곳에 흩뿌려져 있다. 파편화된 과거를 전유하는 모습은 뉴트로 그 자체다. 그러나 ‘1 of 1’은 시대적 현상이 일어나기 전인 2016년에 발매된 곡으로 소속사의 향수를 반영한다. 1990년대 듀스, 현진영 등 우리나라까지 흘러온 뉴 잭 스윙에 SM은 에스이에스의 ‘(Cause) I’m your girl’로 응답했다. 2010년대 이후에는 권위자 테디 라일리와 작업하며 그의 음악과 시대에 대한 경의를 표하고 있다. 북유럽의 최신 EDM 사운드를 이식하던 샤이니가 과거로 회귀한 건 뜬금없는 일이 아니었다. 기획사의 노스텔지어와 그룹의 아방가르드가 만나 조금 이른 뉴트로를 낳았을 뿐. (정수민)

백예린 ‘Square (2017)’
SNS에서 입소문을 타고 부상한 미발매곡이 뉴트로 트렌드를 점령했다. 일본 버블경제 시기 등장한 쿠보타 토시노부의 ‘La la la love song’ 커버에 더해 비공식적으로 페스티벌에서만 선보였던 ‘Square (2017)’ 라이브 영상은 ‘초록 원피스 신드롬’을 일으키며 백예린의 이미지를 굳혀 왔다. 1980년대 모던 록 사운드 위 새겨진 청아한 음색은 유튜브 알고리즘을 가득 채우며 ‘나만 알고 싶은 가수’를 찾아 헤매던 이들을 결집했고, 기대에 부응하듯 정식 발매 이후 차트를 휩쓸었다. 바이닐 열풍을 탄 첫 정규 음반 역시 2020년 국내 LP 판매 순위 1위에 오르며 신복고 선두주자로서 그의 정체성을 공고하게 다져나간다. 빈티지한 세련미를 찾는 시대, ‘Square (2017)’는 신세대의 취향에 발을 맞춘 백예린의 ‘힙’한 화답이다. (손민현)

정글 ‘Casio’
정글은 1970, 80년대 미드템포 펑크(Funk)/디스코를 동경한다. 이들의 문법을 집대성한 ‘Casio’ 역시 디스코에 기반을 둔 팝 펑크 곡이다. 향수를 부르는 아스라한 신시사이저, 팔세토 창법으로 연결된 담백한 하모니가 기분 좋은 여유를 발산하고 뒤이어 댄스 본능을 자극한다. 고급 와인처럼 오랜 숙성을 거친 듯 세련된 그루브가 웨스트 코스트의 광활한 해변을 배경 삼은 올드 스쿨 LA 밴드처럼 느껴지지만 팀의 주축 조쉬 로이드 왓슨과 톰 맥팔랜드는 밀레니얼 세대의 영국 청년들이다. 당시 20대였던 이 런던 듀오는 선배들의 찬란한 유산을 황금색 페인트로 칠해 윤기 나는 신복고 음악으로 재가공했다. 레트로에서 뉴트로, 정글이 장착한 신구 융합의 엔진이 세월의 격차를 성공적으로 좁혔다. (김성욱)

박문치 ‘널 좋아하고 있어 (With 기린 & Dala & 준구)’
펑크(Funk), 디스코가 과거 불러오기 바람의 중심에 서있지만 음악의 추억 상자에는 아직 장르가 남아 있다. 힙합과 알앤비가 뭉친 뉴 잭 스윙이 그 예로 1980년대 후반 테디 라일리가 불을 붙이며 전 세계 뿐 아니라 국내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2018년 브루노 마스의 ‘Finesse’ 리믹스가 반짝 떴던 미국 시장에 반해 우리나라는 2010년 즈음부터 태동을 보였다. 복각 듀오 유브이의 ‘집행유애’를 시작으로 에잇볼타운의 수장 기린이 다시 뿌리내리면서 주류 현상은 아니었지만 이는 재유행의 채비를 마련했고, 마침내 1996년생의 ‘뉴 질 스윙(여성 뮤지션)’ 스타 박문치를 낳았다. ‘라떼(‘나 때는 말이야’를 풍자한 표현)’는 거부하면서 ‘그때’의 음악에는 열광하는 사람들은 옛 것이지만 촌스럽지 않고, 요즘 것이지만 뻔하지 않은 음악을 환영했다. 1990년대의 음악을 듣던 이들에게는 향수를, 1990년대 생들에게는 새로움을 안겨주는 한국형 신복고의 대표곡. (임동엽)

김현철 ‘Drive (Feat. 죠지)’
뉴트로의 바람이 원조 시티팝 장인이 펼친 ‘돛’에 추진력을 가했다. 2006년 발매한 9집 < Talk About Love > 이후 13년이라는 긴 공백기를 깨고 자신의 시간이 돌아오리라고 예견한 듯이 정규작 < 김현철 10집 “돛” >으로 복귀를 알렸다. 베테랑 음악가와 젊은 뉴페이스들의 참여로 노련함과 생기가 공존하는 앨범 속에서 ‘Drive’는 주축 역할을 맡는다. 아티스트의 정체성이라고 할 수 있는 청량한 퓨전재즈 스타일에 2017년 싱글 ‘Boat’로 이름을 알린 죠지가 깔끔한 보컬로 힘을 더한다. 1980년대 일본 애니메이션을 편집한 뮤직비디오 형식의 2차 창작물과 SNS피드를 채우는 김현철의 이름이 세대를 막론하고 그의 음악을 향유하고 있음을 입증한다. 기존 대표곡에서 세련미를 더한 것이 30년 관록의 가수를 다시 한번 트렌드 최전선으로 이끌었다. 1989년 공개한 데뷔작 < 춘천 가는 기차(1집) >에 담은 한국 시티팝의 원류 ‘오랜만에’와 ‘연애’, ‘왜그래’ 등에서 느낄 수 있는 향기가 시대을 넘어 현세대를 물들인다. (백종권)

위켄드 ‘Blinding lights’
팝 현장에 부는 레트로 열풍을 대표한다. 의도적으로 아쉬움을 남겨 거듭 재생을 유도하는 영특한 편곡과 선율감을 살린 민첩한 보컬,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간 듯한 사운드를 앞세워 90주간의 빌보드 핫 100 차트인이라는 대기록을 남겼다. 신시사이저 사운드를 적극적으로 이용한 모티브 전개에서 아하의 히트곡 ‘Take on me’가 강하게 스치며 비트에선 1980년대의 많은 아티스트가 애용했던 드럼 머신 롤랜드 TR-808이 떠오른다. 트렌드의 달인 프로듀서 맥스 마틴은 암울한 미래상을 그렸던 과거와 무력한 현재의 공통점을 포착했다. ‘Blinding lights’는 그때의 우울한 감성으로 지금의 공허한 마음을 겨냥한 레트로의 전형이다. (김호현)

두아 리파 ‘Levitating’
비록 우리나라에서만 쓰는 말이라지만 ‘뉴트로’를 상징하는 작품으로는 < Future Nostalgia >만큼 제격인 것이 없다. 앨범의 다섯 번째 싱글로 낙점된 ‘Levitating’은 제목이 전달하는 ‘미래’와 ‘향수’라는 콘셉트를 대표하는 트랙이다. 롤랜드 VP-330 신시사이저 샘플로 1980년대 디스코 리듬을 생생하게 재현했고, 귀에 착 감기는 후렴으로 틱톡 플랫폼을 애용하는 신세대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젊은 층에게 인기몰이 중인 1990년대 일본 애니메이션 풍의 뮤직비디오를 추가로 공개하여 시각적인 요소까지 놓치지 않았다. 첫 싱글 ‘Don’t start now’가 대 복고 시대의 기폭제가 된 이후 수많은 아류작이 나왔지만, 두아 리파는 ‘Levitating’으로 그 흐름을 스스로 이어받으며 2021년 빌보드 연간 차트의 정상에 올랐다. 근 2년간은 부정할 수 없이 그의 시대였다. (한성현)

유키카 ‘서울여자’
‘남행열차’, ‘애모’ 등으로 잘 알려진 김수희가 1990년에 발표한 ‘서울여자’ 속 화자는 이별로 생긴 상처 때문에 서울이 미워졌다고 말했다. 애잔한 피아노 반주 위 ‘사랑도 팔고 사는 속이고 속는 세상’이라 고백하는 목소리엔 급변하던 대도시의 회색빛 고독이 물씬 배어있었다. 그로부터 정확히 30년 뒤. 비록 리메이크는 아니지만 레트로의 격류를 타고 동명의 곡이 등장했다. 1980년대 일본 음악의 주류였던 시티팝을 1993년생의 일본인 유키카가 한국식으로 복각하는 이질적인 모습도 물론 대중의 시선을 끌었지만, 낯선 장소를 마주하는 당당한 태도와 신시사이저, 브라스 세션이 자아내는 세련된 도회적 감성이 흐른 시간만큼이나 달라진 시대를 반영하며 공감을 얻어냈다. 프로듀서 박진배(ESTi)의 진두지휘 아래 완성도 있게 짜인 재현극은 당대의 감각을 충실히 고증하는 동시에 현재를 투영. 답습에서 끝나지 않고 재가공했기에 해당 장르의 범람에서도 번뜩이는 지점을 차지했다. (손기호)

브레이브걸스 ‘운전만해’
모두가 한 번씩 시티팝이라는 시대적 흐름에 발을 담그던 2020년, 브레이브걸스의 ‘운전만해’는 뉴트로의 부름에 대한 대답이자 그룹의 사활을 내건 승부처였다. 영롱하게 여울진 기타와 플루트, 다채로운 악기 운용으로 자아낸 드라이브 사운드, 이에 마지막 활동을 암시하는 듯한 아련한 작풍까지. 또한 세련됨을 강조하는 시티 팝의 주요 정서보다 명확한 훅과 기승전결을 띠는 K팝 속성에 주력한 곡은 가벼운 유행의 각색이 아닌 대중을 겨냥한 의도를 몸소 내비치고 있었다. 결국 진심은 통한다고 했던가. ‘롤린’이 역주행의 정의를 재고하게 하며 브레이브걸스에게 도약의 아이콘을 부여했다면, 이듬해 ‘운전만해’는 그 반짝의 주목을 안정권으로 진입하게 한 주역이 되었으니. 각종 커뮤니티와 미디어의 단합으로 화력을 이끈 ‘롤린’과 다르게 올바른 유행 해석과 수려한 완성도를 통해 차트에서 인정을 거뒀다는 점에서도 의의를 지닌다. (장준환)

방탄소년단(BTS) ‘Dynamite’
‘우리도 이만큼 할 수 있다!’
미지의 영역이었던 빌보드 핫100 차트 1위를 달성했다는 사실만으로 역사적인 곡이다. 방탄소년단 고유의 긍정 에너지로 약동하는 이 곡은 킹콩과 전설적인 록 그룹 롤링 스톤스, NBA 스타 르브론 제임스 등 영미권 문화의 인용과 ‘Tonight, alight’의 각운으로 친밀감을 더했다. 조나스 브라더스와 몬스타엑스 등과 작업했던 프로듀서 데이브 스튜어트는 박수 소리와 브라스 세션같은 디스코/펑크(Funk)의 요소로 복고풍 팝을 구현했고 뮤직비디오 속 멤버들의 의상과 동작도 과거를 가리킨다. 힙합과 K팝을 주 무기로 삼았던 방탄소년단이 제임스 브라운과 마이클 잭슨으로 회귀했다는 지점이 의미심장하며 당대의 지구별 스타가 건네는 디스코/펑크 폭탄은 뉴트로 열풍에 커다란 화력이 되었다. (염동교)

도자 캣(Doja Cat) ‘Kiss me more (Feat. SZA)’
올해도 그래미 어워드 베스트 팝/듀오 부문은 당찬 두 여성의 품으로 돌아갔다. 2021년 방탄소년단의 ‘Butter’가 빌보드 싱글 차트 10주 1위라는 대업적을 이룩한 건 사실이나 수상의 영예를 거머쥔 도자 캣과 시저의 ‘Kiss me more’에도 40년 전 동일 기록을 달성한 히트곡의 기운이 살아 숨 쉬고 있다. 세련되면서도 도회적인 기타 리프와 베이스가 주도하는 노래는 1970-80년대 팝의 여왕으로 군림했던 올리비아 뉴튼 존의 ‘Physical'(1981)을 각색해 단번에 따라 부를 수 있을 만한 후렴구 멜로디를 주조했다. 우수한 밑바탕에 그려낸 가사 역시 레퍼런스의 육감적인 이미지를 그대로 흡수하며 키스라는 성적 욕망을 대담하면서도 부드럽게 드러낸다. 전반적인 구성은 틱톡을 뜨겁게 달궜던 ‘Say so’와 흡사하지만 과거의 질료를 매끈하게 다듬은 뉴트로 트랙 ‘Kiss me more’는 그 흥행이 단순한 해프닝이 아니었음을 증명하며 디지털 시대에 걸맞은 디스코 퍼포먼스의 표본으로 남았다. (정다열)

이미지 디자인 : 정수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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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bum KPOP Album

브레이브걸스 ‘Thank You’ (2022)

평가: 3.5/5

‘롤린’으로 음악방송 1위를 차지한지 정확히 1년이 되는 2022년 3월 14일에 앨범을 발표해서 팬들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그 사이에 발표한 두 장의 앨범 < Summer Queen >과 < After We Ride >로 검증된 추진력을 얻은 브레이브 걸스는 6번째 미니앨범 < Thank You >로 가능성을 높이고 인지도를 확장한다.

지난 한 해 동안 브레이브 걸스는 자신들의 지향점이 뉴트로라는 점을 명확히 했다. 동시대의 트렌드를 흡수한 ‘변했어’, ‘옛 생각’, ‘롤린’, ‘만나지 말걸’, ‘서두르지 마’, ‘Help me’, ‘Whatever’ 등과 달리 2020년에 발표한 ‘운전만 해’ 이후 이들의 음악 시계는 과거를 가리킨다. 1970, 80년대 펑크(funk)와 디스코, 1990년대의 애시드 재즈가 최근 재조명 받는 흐름과 멤버들의 물리적인 나이도 고려 대상이었을 것이다.

쉭의 기타리스트였던 나일 로저스 풍의 명징한 리듬 기타, 16비트 베이스, 자넷 잭슨이 부른 ‘Together again’의 하이해트 박자 그리고 피터 프램튼의 ‘Show me the way’나 본 조비의 ‘Livin’ on a prayer’에서 들었던 보컬 이펙터인 토크박스까지 옛것들을 끌어들인 ‘Thank you’는 해외 팬들도 가장 선호할 곡으로 흔들림 없는 민영의 코러스가 빛난다. 한 템포 쉬어가는 브릿지 없이 처음부터 끝까지 흥을 놓치지 않는 ‘Thank you’는 < Summer Queen >의 ‘Fever’를 잇는 펑키(funky) 넘버로 수화를 동원한 쉽고 친근한 안무 역시 곡 분위기와 수평을 이루며 브레이브 걸스의 지향점이 복고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모모랜드의 ‘Fly’와 비슷한 ‘우리끼리(You and I)’ 외에도 1980년대 가요 분위기와 일렉트로닉의 동거를 시도한 단조의 댄스곡 ‘물거품(Love is gone)’, 티아라의 초기 음악이 떠오르는 ‘뽕끼’ 스타일의 유로댄스 ‘Can I love you’ 등 197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다양한 색깔을 확대재생산한 < Thank You >는 쉼이 없다. 이 지점이 아쉽다. 역주행 이후 발표한 3장의 음반에서 단 한 곡의 발라드도 없는 것은 좋은 가창력을 갖고 있는 멤버들에겐 재능 낭비다. 소속사는 브레이브 걸스에게 잘 어울리는 업비트 발라드의 긴 생명력과 강인한 지구력을 간과했다.

용감한 형제를 중심으로 한 브레이브 엔터테인먼트 작곡 팀은 대중적인 노래를 만드는 능력과 편곡, 보컬 파트 배분, 특히 코러스 활용에 탁월한 감각을 과시한다. 네 멤버의 안정적인 보컬과 유려한 화음은 빈틈을 허용하지 않으면서 음악을 세련되고 멋지게 유지하지만 그 제작 과정에서 민영, 유정, 은지, 유나가 스며들 여지가 보이지 않는다. 말끔하고 윤기 나는 앨범이지만 해외진출과 국내 팬덤 다지기 중 어떤 방향성을 중심에 두고 작업했는지 그 1차적 목표가 희미하다. 해외에서도 충분한 경쟁력을 갖춘 노래들을 보유한 브레이브 걸스는 소속사와 계약이 1년 정도 남아있는 지금 해외로 진출해야 한다.

-수록곡-
1. Thank you (추천)
2. 우리끼리 (You and I)
3. 물거품 (Love is gone) (추천)
4. Can I love you
5. Thank you (remi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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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lash of the Year 2021

Splash of the Year : 한 해를 조각내 음악 신의 주목해 볼 사건을 뽑는 이즘 내 연례행사.

스플래시가 벌써 9회차를 맞이했다. 1년은 과연 그간의 일들을 톺아내기에 충분한 시간일까? 우리의 스플래시에 어떤 경향성을 띤 시선이 자리하지는 않았을까? 돌아보며 올해는 조금 색다른 스플래시를 준비했다. 오랜 시간, ‘더불어올해 역시음악계에 벌어진 사건을 뽑아 그것의 내면을 한 번 더 찔렀다. 사건의 전시와 생각거리를 동시에 제시하려 했달까. 음악. 어떻게 들었고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함께 얘기 나누고자 한다.

1. 오디션 프로그램

잘 봐, 언니들 싸움이다

라고 했지만 어디에도 패자는 없었다. 올해를 반추할 때 < 스트릿 우먼 파이터 >, 일명 ‘스우파’는 두 번 생각할 것 없이 맨 앞에 선다. 2009년 엠넷의 < 슈퍼스타K > 이후 오랜 시간 대중의 곁을 ‘스친’ 오디션 프로그램의 적나라한 수법에 지쳐버린 지금. 기 센 언니들의 “자존심을 건 생존경쟁”은 전례 없이 화끈했다. 거침없는 직언, 거리낌 없는 춤사위, 여기에 눈물 없이 볼 수 없는 (숨겨졌던) 서사까지. 열광, 열풍을 만들 요소가 넘쳤다.

여성이 전면에서 주도권을 쥐었다는 점 역시 중요하지만 스우파가 견인한 ‘댄스’ 열풍은 대단했다. 각종 숏폼 플랫폼에는 2차 계급 미션 때 췄던 ‘Hey mama’를 패러디한 영상들이 넘쳤다. 또한 서브컬쳐로 큰 관심을 받지 못한 왁킹과 보깅. 남성의 전유물로 여겨진 비보잉(브레이킹) 혹은 (걸스) 힙합 등이 수면 위로 떠 오른다. 모두 여성들의 손길을 거쳤다. 특히 레이디 가가의 ‘Born this way’, 질 스콧의 ‘Womanifesto’를 차용해 섹스(Sex) 아닌 젠더(Gender)를, 성 너머 개인의 가치를 다룬 것은 단연 올해의 베스트 모먼트.

쇼미더머니가 세상을 망치는 중이야

라고 < 쇼미더머니10 >에 출연한 악뮤(AKMU) 찬혁은 노래했다. 몇 마디 앞서 뱉은 “이건 하나의 유행 혹은 TV 쇼”라는 가사 역시 그저 실소에 그칠 비유가 아니다. 2012년 출발한 ‘쇼미’는 이후 < 고등래퍼 >, < 언프리티 랩스타 > 등으로 가지 쳐졌다. 오늘날 은 그리고 힙합은 그야말로 2010년대를 강타한 선 굵은 유행이며 십 대와 이십 대의 감수성을 품고, 푸는 핵심 장르. 날 서고 거친 정서를 대변하고 때론 아픈 상처에 연고를 발라버리며 스웨그(SWAG)까지 챙긴다. 어느덧 10년을 맞이한 ‘쇼미’의 인기로 미뤄볼 때 ‘쇼미더머니가 세상을 (어떤 지점에서) 뭉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2. 트로트와 케이팝

힙합 댄스 락 발라드도 좋지만 슬플 땐 what?”

2019년 TV조선에서 방영한 < 내일은 미스트롯 >에 이어 2020년 < 내일은 미스터트롯 >의 대흥행은 2000년대 초 장윤정, 박현빈 이후 모처럼 트로트의 재림을 이끌었다. 이찬원, 영탁, 정동원 그리고 임영웅 등 ‘트로트계의 아이돌’들이 중장년층에게 큰 사랑을 받았다. 올해 9월 대장정의 막을 내린 < 사랑의 콜센타 >가 이들의 인기를 대변했고 코로나19로 상황이 여유롭지 않았음에도 < 미스터트롯 >발 콘서트가 전국을 누볐다. 12월의 끝 ‘테스형’ 나훈아, 심수봉에 이어 임영웅이 공중파에서 단독 콘서트를 선보인다는 점 역시 트로트의 열기를 가늠케 한다.

“I’m on the next level”

K팝, K팝, K팝! 힘차게 외연을 확장 중인 오늘날의 K팝은 비단 벽에 걸린 그림이 아니다. 오히려 또 다른 가능성을 잇는 창문. 올해에도 방탄소년단은 한국 너머 전 세계를 순항했다. 수많은 효자곡이 있었지만 가장 큰 성과를 안긴 건 ‘Butter’. 자그마치 빌보드 싱글차트 10주간 1위를 거머쥐며 역사를 썼다. 뒤이어 ‘Permission to dance’, 콜드플레이와 함께한 ‘My universe’가 정상에 올랐고 미국 3대 음악 시상식인 아메리칸 뮤직 어워즈(AMA)의 ‘올해의 아티스트’ 부문 수상 역시 BTS의 것이었다.

선배 그룹의 성장에 힘입어 4세대 아이돌로 칭해지는 ‘뉴’ 세대의 성장도 돋보였다. 그중 ‘가상의 아바타와 새로운 세계를 경험한다’는 독보적인 콘셉트로 활동한 에스파가 일찌감치 자리를 잡았다. ‘세상을 혼란에 빠뜨린 블랙맘바(Blackmamba)를 찾으러 광야로 떠난다’는 설정의 싱글 ‘Next level’이 다소 난해한 설정과 별개로 세상을 달궜다. ‘디귿댄스’에 자유로울 사람은 없었다. 뒤이어 발매한 첫 번째 EP < Savage >의 성공은 에스파식 21세기형 혼종성의 확실한 한방.

특히 Savage 즉, 맹렬한 혹은 ‘쎈’의 뜻을 가진 단어는 에스파와 같은 4세대 걸그룹의 핵심이다. 블랙핑크의 ‘Pretty Savage’, 있지(ITZY)의 ‘달라달라’, 이외에도 (여자) 아이들, 전소미 등 여성 아이돌의 방향성은 확연히 과거와 다르다. 그것이 시대상을 반영한 속셈 있는 처세술일 지어도 이 변화는 분명 어렴풋하게나마 ‘넥스트 레벨’로의 도약을 그린다.

3. 역주행

상상에 상상에 상상을 더해서 / 그대여 내게 말해줘 사랑한다고

올해도 꿋꿋이 역주행이 찾아왔다. 4년 만에 빛을 본 브레이브걸스 ‘Rollin’’ 앞에 불순물은 감히 엉겨 붙지 못한다. 군통령. 오랜 무명 기간 동안 쉬지 않고 찾아간 군대 위문공연이 브레이브걸스에게 드디어 형형 빛깔 색을 입혔다. 특별한 홍보는 없었지만 한 유튜버가 올린 ‘롤린 댓글 모음 영상’이 역주행의 불을 지폈다. 기다리고 있었단 듯 롤린롤린롤린, ‘Rollin’’이, ‘운전만 해’가 역주행했고 이후 발매한 ‘치맛바람’이 정주행에 성공, ‘브걸’은 대세 가수가 됐다.

유튜브란 뉴미디어가 만든 역주행도 있었지만 작년과 같이 올드미디어의 대표 격인 TV 방송이 만든 역주행도 있었다. < 놀면 뭐하니? >가 놀지 않고 성실히 만든 ‘부캐’ MSG 워너비 TOP8이 부른 바로 그 노래. 라붐의 ‘상상더하기’가 차트를 뒤집었다. 2016년에서 2021년으로. 발매 5년 만에 음원 순위 상위권 진입이란 상상은 현실이 됐다.

4. 코로나

그리고 코로나. 벌써 횟수로 3년째 전 세계를 굳게 만든 코로나가 올해도 어김없이 음악 신을 옭아맸다. 실시간 스트리밍 서비스를 활용한 ‘온택트(Ontact) 콘서트’가 성행했다. 대면 콘서트에서는 함성 대신 박수로, 혹은 소리 나는 인형 등을 통해 마스크에 갇힌 흥겨움을 토하는 진풍경도 있었다. 11월경 규제가 완화되며 공연계가 활기를 되찾는가 했지만 변이 바이러스의 등장으로 무대의 열기는 짧게 오르고 빠르게 식었다.

활동이 제한되며 시선은 메타버스, NFT(대체 부가능한 토큰)으로 이동했다. 현실보단 가상이, 온라인상의 저작권이 화두가 됐다. 블랙핑크, 트와이스, 방탄소년단이 메타버스 플랫폼 ‘제페토’를 통해 팬들과 소통했다. NFT 또한 음악 산업의 자본가들을 움직였다. JYP, 빅히트, YG 등의 거대 기획사가 NFT로 눈을 돌렸고 며칠 전 브레이브걸스의 NFT 상품 400개가 1분이 채 안 돼 완판된다.

그리하여 결론. 숏폼 플랫폼, 유튜브, 뉴미디어, 메타버스, NFT. 음악은 이제 단순히 귀로 듣는 차원을 넘어 숏폼 플랫폼을 통해 자신을 뽐내고, 유튜브, 뉴미디어 등으로 재밌게 즐길 거리로 만들어진다. 이 과정에서 메타버스, NFT 등의 거대 자본, 새로운 기술은 이 음악들의 산업적 가치를 튼튼하게 지탱, 우리 음악의 세계화에 발판이 된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듣는 음악에 우리의 취향은 얼마나 반영될 수 있는가. 결국은 모두 누군가의 손길을 거쳐 ‘들리는 대로 듣게 된 음악’. 혹은 ‘들렸기에 즐기게 된 음악’인 것은 아닐까? 이 사이 힘을 잃는 건 어쩌면 자신의 음악을 독립적으로 쓰고 있는 많은 인디 뮤지션이 될 것이다.

비슷하게 십 대, 이십 대가 열렬히 힙합을 따라부를 때 최신 취향과 멀어진 중장년층이 트로트에 몰두하는 세대 간의 격차, 음악 청취 층의 이분화 속 ‘음악의 다양함’, ‘음악이 주는 여러 가지 감정들’, ‘음악이 묘사하는 여러 상황’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대 알고리즘의 시대. 음악으로 표현되고, 표출될 수 있는 문화가 더 자주 그리고 더 쉽게 세상에 흐를 수 있기를 바란다. 내년 스플래시에는 보다 새로운 이야기와 사건들을 더 뾰족하게 담을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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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Feature

2021 올해의 가요 싱글

굴곡진 한 해다. 모든 것이 멈출 것만 같던 코로나 사태에도 사회는 옛 관성을 잊지 않은 채 다시금 변화의 꿈틀거림을 재현하려 한다. 급격히 달라진 쌀쌀한 날씨만큼이나 국내 대중음악 역시 멈추지 않고 빠르게, 그리고 꾸준하게 지각 변동을 거쳐왔다. 유독 다채로운 개성을 지닌 신흥 세력과 사회를 뒤흔들 신드롬이 넘쳐났던 2021년을 하나의 규격으로 묶기는 힘들겠지만, 그 서사를 축약하고 대변할 가요 싱글 10곡을 기록한다. 글의 순서는 순위와 무관하다.

악동뮤지션(AKMU) ‘낙하 (Feat. 아이유)’

악동뮤지션의 원동력인 기발함이 끝도 모르고 커져간다. 데뷔 초에는 일상적인 소재가 중심이 되어 상상의 살을 덧붙였다면 ‘낙하’는 공간 자체를 뒤집어 놓는 도치로 세상을 바라본다. 통상적인 낙하의 뜻은 내몰린 상황에서의 선택권이 없는 도피지만 이찬혁은 중력을 넘는 비상을 통해 ‘밤하늘의 별’이 되고자 한다. 죄다 낭떠러지인 초토화된 곳은 도약을 위한 디딤대가 되고, 그곳에서 고립감을 느끼게 하지 않도록 손을 잡아 연대감까지 챙긴다.

남매가 보내는 지지가 마냥 무조건적인 것이 아니기에 더욱 힘이 실린다. 예측 불가능한 곳을 향한 도전이 불러일으키는 불안감을 솔직히 드러내면서, 그럼에도 너와 뛰어내리겠다는 전폭적인 응원은 새로운 패러다임이다. 또한 추락 끝에 등장하는 불확실성은 음악으로 해소된다. 낙하 이미지, 두툼한 베이스 사운드와 달리 상승하는 수현과 아이유의 보컬은 철저한 계산 아래 짜인 것이다. 낯설고 거꾸로 뒤집힌 세계의 위로가 2021년을 사로잡았다. (임선희)

스테이씨(STAYC) ‘ASAP’

답은 정해져 있다. K팝 아이돌이 서사, 비주얼, 안무 등 종합 문화 예술을 담고 있다 해도 그들의 기본은 음악이다. Z세대의 뉴노멀(New normal) 놀이 문화 ‘댄스 챌린지’로 ‘꾹꾹이 춤’을 유행시킨 동시에 노래가 좋다는 단순하고도 명쾌한 이유로 흥행에 성공한 스테이씨의 ‘ASAP’이 바로 그 본보기 아닐까. BTS의 글로벌 진출을 계기로 넓어진 K팝 시장만큼 모든 변수와 시대의 흐름에 대비하는 방법은 모두가 알고 있다. 결국 음악이다.

트와이스의 데뷔부터 전성기를 주도했던 프로듀서 블랙아이드필승은 작년 가을 < 놀면 뭐하니? >에 나와 ‘Don’t touch me’로 능력과 얼굴을 동시에 알렸다. 그의 아이들 스테이씨는 빠르게 인지도를 올리며 자신들의 영역을 확장했고, ‘ASAP’이라는 결정타를 날렸다. 얽히고설키는 전자 음들 속 멤버들의 음색이 조화를 이루면서도 어색하거나 작위적인 사운드가 없다. 히트송과 명곡의 척도가 항상 비례하지는 않지만 이 노래는 비례해도 문제없다. (임동엽)

에스파(æspa) ‘Next level’

비대면 시대를 틈타 급부상한 트렌드의 SM 자사 비전, 현실세계의 넷과 아바타 넷이 공존 소통하는 에스파가 발휘한 상업적 파괴력의 근원이 가상세계 편승만이 아님을 매혹적 활기가 넘치는 이 곡이 증명한다. 새로운 메타버스 유행 메커니즘과 대중의 음악적 희열 사이의 좀처럼 획득하기 어려운 공조가 눈앞에 다가온 건가. ‘제껴라 제껴라 제껴라!’ 추세가 예술로 스미지 못해 생겨날 어색함을 반쯤은 제꼈다.

주의 깊은 원곡 재해석과 네 멤버의 질서 잡힌 아우성이 트렌트의 개입이란 외적 선전을 장착해 20대, 30대 젊은 층(상당수가 여성)을 집단적 관용과 시의적 숭배로 몰아간 것이다. 걸 크러시로, 보이그룹 전유인 여성 팬덤을 부분 탈취해 성비(性比) 균형을 일구는 흐름도 완성했다. ‘Black mamba’로 격발해 ‘Savage’ 침투로 이어간, 격한 인기몰이의 중간 대폭발. ‘뉴’, ‘힙’, ‘2021년’ 그 모든 것을 이 곡이 다 가져갔다. (임진모)

브레이브걸스 ‘롤린’

시원한 트로피컬 사운드의 플럭 소스 인트로는 ‘롤린’을 밝고 상쾌하게 만들지만 대중은 이 도입부만 들어도 울컥한다. 실력 좋고 선한 사람들을 알아보지 못해 오랫동안 고생시켰다는 미안함과 무명이었던 브레이브걸스가 자신들을 알리기 위해서 어떤 노력들을 해왔는지 뒤늦게 알았기 때문이다. 어울리지 않았던 2017년의 어두운 컨셉트와 시기성의 오류를 버틴 그 4년 동안 축적된 응집력과 잠재력은 마침내 올해에 폭발했다. 따돌림 없이 청정지대처럼 해맑은 멤버들 간의 우정, 어느 무대에서나 최선을 다하는 헌신, 젠더 갈등과 세대 분리를 극복한 전 국민적인 응원 그리고 약자의 성공에 대한 우리의 인심이 뭉쳐서 ‘롤린’이라는 심지에 불을 지폈다.

‘롤린’, ‘운전만 해’, ‘Help me’, ‘유후’를 만든 작곡팀 투챔프의 황규현과 하승목은 민영, 유정, 은지, 유나 모두 음악에 욕심이 있고 자신들의 노래에 자부심이 있다고 했다. 그 말처럼 브레이브걸스의 노래들은 소수만을 위한 지적 허세를 지향하지 않는다. 쉽고, 신나고, 질리지 않는 브레이브걸스의 ‘롤린’은 2021년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국민가요다. (소승근)

온앤오프(ONF) ‘Beautiful beautiful’

일단은 잘 들려서 좋다. 정공법으로 승부한 노래에 생생한 멜로디가 살아 숨 쉰다. 힘차게 터져 나오는 오프닝부터 귀를 사로잡는다. 곧이어 미끄러지듯 1절에 들어서면 멈춤 없는 쾌속 질주가 펼쳐진다. 생동감 넘치는 선율과 누구나 쉽게 따라 부를 법한 후렴, ‘불러, 노래!’ 같은 매력적인 추임새까지. 매끈하고도 짜임새 있는 구성이다.

‘Beautiful beautiful’의 주요 악기는 단연 목소리다. 멤버 각자의 퍼포먼스와 단체 하모니가 모두 수준급이다. 그 진가는 브리지에서 드러난다. 여섯 청년은 하이라이트를 향해 달리다가 과감히 한발 물러나 아카펠라로 주의를 끈다. 근사한 완급 조절이다. 노래만큼이나 밝고 활기찬 노랫말은 또 어떤가. 음악과 메시지, 모든 면에서 올해의 희망 송가, 젊음의 찬가다. (정민재)

애쉬 아일랜드(ASH ISLAND) ‘멜로디’

신예의 패기나 야심 따위의 거창한 수식어를 붙이고 싶지 않다. 힙합의 틀 안에서 다분히 힙합적인 관점에서 부여하는 담론이나 의미도 거추장스럽다. 이 노래의 가치는 단순하다. 그저 좋은 ‘팝’이라는 것. 누구나 따라 부를 수 있고, 여기저기서 들려오며, 오래도록 사랑받을, 대중성에 충실한 ‘히트곡’이라는 것이다.

보편성의 승리다. 국내 이모 랩(Emo Rap)의 선두주자로서 침울한 감성을 주로 다루던 그가 특유의 어두운 무드를 한풀 죽이고 한 움큼 대중친화력을 보태니 이렇게나 곡이 좋다. 싱잉 랩을 대표하는 곡으로 자리매김하려는 듯 제목부터 직관적인 노래는 그에 걸맞은 한번 들어도 귀에 착 감기는 선율과 접근 쉬운 사랑 이야기로 보편의 소통을 파고들었다. 그의 이름이 힙합 신 안에서만 울리지 않는 이유다. (이홍현)

비비, 88라이징(BIBI, 88rising) ‘The weekend’

경쾌한 포 온 더 플로어(Four on the floor) 리듬에 그루브 넘치는 베이스. 트렌드에 탑승한 전형적인 디스코 넘버다. 특기할 만한 점은 비비의 보컬. 그간 선보였던 앳된 목소리는 온데간데없이 자취를 감췄다. 대신 정확히 노트를 찌르는 성숙한 보컬만이 자리할 뿐. 짧게나마 허스키하게 목을 긁는 모습은 그야말로 비비의 발견이다.

‘The weekend’는 비비에게도 88라이징 사단에게도 최선의 그리고 최고의 결과다. 전자는 마니악한 감성을 넘어 팝 멜로디를 소화하며 보컬의 스펙트럼을 늘렸고, 후자는 그들의 음악을 그려낼 새 목소리를 찾아냈으니. 우린 이것을 건강한 시너지라 부른다. (정연경)

버둥 ‘씬이 버린 아이들’

버둥을 처음 들었을 때를 떠올린다. 낮은 저음과 복고풍의 신시사이저가 주가 되는, 잘 들리고 잘 붙는 멜로디의 향연. 어디선가 부단히 노를 젓다 이제야 동력 받아 떠오른 듯한 그의 정규 1집 < 지지않는 곳으로 가자 >는 단연 올해의 발견이다.

타이틀 ‘씬이 버린 아이들’은 그중에서도 정점에 놓인다. ’00’, ‘공주 이야기’ 등 매끄러운 수록곡이 많지만 이 곡은 뭐랄까, 몇 년 몇 해가 지나고 계속 듣고 싶은 혹은 계속 들을 수 있는 매력이 있다. ‘어제는 고개를 저었고 오늘은 웃으며 반기면 난 어떻게 해야 해’. 씬에서 살아가며 쉽게 바뀌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그는 ‘버려진’다고 표현했지만 그 접근은 어둡기보다 오히려 밝다. 아무리 공격해도 부서지지 않고 스스로 무너지지도 않는 단단한 관점이 노래 안에 있다. 그래서 곱씹고 곱씹을수록 진해진다. 인상적인 시작이자 기억해야 할 출발. (박수진)

디핵, 파테코(D-HACK, PATEKO) ‘Ohayo my night’

“우리 그냥 결혼하면 안 될까? 돈은 내가 열심히 벌 테니까.”. 브레이브걸스 ‘롤린’ 이후 다음 역주행 곡은 서툰 사랑 고백 노래 ‘Ohayo my night’이었다. 2016년부터 활동을 시작한 래퍼 디핵과 신예 프로듀서 파테코가 2020년 6월 공개한 이 노래를 발매 당시 주목한 이는 극소수였다. 하지만 간결한 멜로디, 투박한 노랫말 속 꾹 눌러 담은 진심은 1년의 시간을 건너 틱톡, 인스타그램 스토리를 적극 활용하는 10~20대들의 마음을 훔쳤다. “일단 음악 포기하지 말아 봐 곧 뜨니까!!!”라는 댓글이 달릴 정도로 절박했던 노래의 운명이 순식간에 역전된 순간이었다. 한 해 동안 스트리밍 차트를 휩쓸고 노래방을 섭렵한 ‘Ohayo my night’은 씨스타 효린, 러블리즈 류수정 등 숱한 이들의 답가까지 더해지며 2021년의 스테디셀러로 기억될 준비를 마쳤다.

뮤직비디오 속 디핵은 우리 사회가 요구하는 ‘일등 신랑감’과 거리가 먼 ‘덕후’다. 캠핑카와 오락실, 뒷골목과 시골길을 오가는 그는 연신 고개를 푹 숙이고 영상에 일본어 자막을 넣는다. ‘너를 사랑해’의 확신 대신 ‘너를 사랑하고 있어’라 애원하는 그의 모습은 영원한 사랑을 꿈꾸다가도 현실의 벽에 주눅 들고 마는 2021년 대한민국 20대의 자화상이다. 비자발적 비혼에 좌절하다 ‘나 혼자 산다’에 위안받던 우리 세대, 서툰 사랑조차도 꿈꾸지 못하며 메말라가던 우리 청춘에게는 ‘Ohayo my night’처럼 투박하고 지질하더라도 진실한 고백이 필요했다. 그래, 비록 좁은 내 방 천장이라도, 내가 그린 우주 속에서 분명 우리 둘은 별과 우주잖아. (김도헌)

얼라이브 펑크(Alive Funk) ‘To-kyo (Feat. 서사무엘)’

소리를 향한 장인의 열망과 상업을 위한 음악가의 고뇌가 고루 담긴다. 가상 악기의 종말을 고한 문제작 < Di-Ana >의 프로듀서 얼라이브 펑크가 대중과의 소통을 위해 도모한 프로젝트, ‘팝업 스토어’의 시작을 알린 첫 공개곡 ‘To-kyo’는 그런 복합적인 위치에 존재한다. 편안함과 아늑함이 주된 감성으로 자리하지만 공기층에 세세하게 분포한 잔향의 입자에서는 완벽한 사운드스케이프를 위한 음악가의 선한 집착이 배어 나온다.

서사무엘과 펼친 정갈한 시너지적 덧셈이다. 비트는 가수의 역량을 극한으로 끌어내고, 퍼포머는 제작자의 의도를 기대 이상으로 보답한다. 도쿄와 ‘Too-kyo(きょ); 매우 공허하다’를 이용한 재치 있는 말장난과 로파이를 머금은 도회적 단상, 그리고 지친 현대인의 욱신거리는 허전함을 덤덤히 노래하는 가사는 가볍듯 가볍지 않은 공감의 통증을 유도한다. 상실의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을 위한 담백하고 고찰적인 알앤비 트랙. (장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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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다크비 인터뷰

올해 가요계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을 꼽으라면 모두가 입을 모아 걸그룹 브레이브걸스의 역주행을 말할 것이다. 이들의 기적과도 같은 부활은 대중은 물론 많은 동료 가수들에게도 희망과 용기를 불어넣었다. 특히 고난의 시간을 옆에서 직접 바라본 같은 소속사 후배에겐 이 사건이 엄청난 원동력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작년 2월에 데뷔한 브레이브 엔터테인먼트 소속 보이그룹 다크비는 ‘포기하지 않는 자에겐 반드시 기회가 온다’는 신념을 가지고 꾸준히 활동을 펼치고 있다. 대부분의 아이돌이 공급받는 시장 속에서 이들은 각자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며 자체 제작의 꿈도 이어가고 있다. 쌀쌀한 기운이 감돌기 시작한 10월 초, 싱글 ‘왜 만나 (Rollercoaster)’로 컴백을 앞두고 기대에 부풀어 있는 아홉 명의 청년들과 함께 그간의 활동을 돌아보고 앞으로의 각오까지 들어보는 시간을 가졌다.

▶좌측부터 보이는 순서대로 준서, 희찬, GK, 이찬, 룬, 테오, D1, 유쿠, 해리준

올해 정규 앨범 < The Dice Is Cast >를 발매하며 작년부터 진행한 4부작 프로젝트를 마무리 지었다. 연작은 어떤 식으로 기획하게 되었나.
GK : 데뷔 전부터 대표님(용감한 형제) 주도하에 계획된 프로젝트다. 4부작의 주요 키워드는 첫 미니앨범의 타이틀인 < Youth >, 즉 ‘청춘’이다. 같은 또래들의 생각과 경험을 보다 효율적으로 전하기 위해 젊음(Youth), 사랑(Love), 그리고 성장(Growth)이란 주제로 나누어 노래하게 되었다.

1년 동안 활동했던 곡들의 제목과 가사가 화제다. 데뷔곡 ‘미안해 엄마’는 물론 최근의 ‘줄꺼야’까지 직관적인 표현들이 많이 등장한다. 다소 난해한 노랫말이 낯설진 않았는지.
D1 : 우선 ‘미안해 엄마’라는 곡을 처음에 받았을 때 비트와 후렴구만 채워져 있었다. 솔직히 후렴구는 누가 들어도 처음엔 난감해했을 것이다. 당장 이 곡으로 데뷔해야 하는 우리 역시 같은 반응이었다. 하지만 계속 듣다 보니까 사운드도 탄탄하게 채워져 있고 훅도 중독성이 있어서 이런 난해함을 오히려 다크비의 개성으로 승화시킬 수도 있겠다는 판단이 섰다.

GK : ‘줄꺼야’는 괜찮았지만 ‘미안해 엄마’와 ‘난 일해’, 이 두 곡은 굉장히 단순해서 당황스러웠다. 그럼에도 간단한 노랫말들이 가지는 이점 역시 분명했다. 요즘 많은 노래들이 듣기도 따라부르기도 어려운 영어를 많이 사용하고 있다. 그런 면에서 ‘난 일해’처럼 단순하고 직관적인 한글 가사가 다크비의 매력 포인트로 작용하는 것 같다.

그렇다면 ‘난 일해’의 메시지는 무엇인지. 외로움의 의미인가.
GK : 그것도 맞지만, 무엇보다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 일을 한다는 것에 초점을 맞췄다. ‘일’이라는 것이 대중적으로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소재라 생각했고, 막연히 일해서 힘들다는 의미라기보다는 너를 위해서 일을 한다는 내용으로 듣는 분들께 위로를 전하고 싶었다. 실제로 위로를 받았다는 분들이 많이 계셔서 그런지 대중에게 가장 잘 알려진 노래도 ‘난 일해’라고 생각한다.

네 번의 활동을 통해 가장 많이 발전한 점은.
GK : 우선 여유가 생겼다. ‘미안해 엄마’도 그렇고 ‘오늘도 여전히’도 그렇고 초반엔 무대에서 꼭 뭔가를 보여주겠다는 일념으로 진짜 이 악물고 춤추며 노래한 것 같다. 어떻게든 살아보겠다고 다짐해서 힘이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비교적 자유로운 ‘난 일해’와 ‘줄꺼야’를 통해 보다 안정감 있는 무대를 펼칠 수 있게 되었다. 리허설이나 모니터링을 통해 확인해봐도 조금씩 성장하고 있다는 것을 확실히 느낀다.

그동안 활동했던 곡들이 대체로 잔잔한 편이다. 강렬하게 터지는 트랙에 대한 욕심은 없는지.
룬 : 우리도 그런 생각을 하긴 했다. 잔잔한 훅이 반복되는 곡들로만 활동해서 한 번쯤은 팡팡 터뜨리는 트랙으로 퍼포먼스를 선보이고 싶었다. 근데 대표님이 생각하시기에도 그렇고 우리도 활동을 하면서 이런 바이브가 잘 맞는다고 생각이 들었다.

테오 : 개인적으로 우리 음악의 멜로디는 개성이 확실하다고 본다. ‘줄꺼야’만 들어봐도 도입부의 피아노 라인이 트렌디한 느낌은 아니지만 오히려 그런 특징들이 차별화되는 요소가 아닐까 싶다.

퍼포먼스 위주의 곡들을 선보이다 보니 상대적으로 보컬은 주목을 덜 받는 느낌이다. 다크비의 가창력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지.
D1 : 각자의 톤 자체가 개성도 있고 서로 겹치지도 않아서 강점이 확실하다. 일단 팀의 초기 방향이 힙합 그룹으로 잡혀있어서 처음엔 가창보다 랩이나 힙합 특유의 스웨그를 흡수하기 바빴다. 그러다 보니 데뷔 초에 ‘얘네는 노래를 잘 못 할 것 같다’는 소리도 듣곤 했다. 가창을 드러낼 기회가 적을 뿐이지 노래 연습은 꾸준히 하고 있고 유튜브를 통해 국내외 가수들의 곡을 커버해서 올리고 있다. 활동을 하면서도 자연스레 성장한 보컬이 들리다 보니 지금은 ‘멤버 모두의 목소리가 돋보인다’는 반응도 있다.

▶D1(리더, 리드보컬)

퍼포먼스를 중요시하는 팀들은 많다. 다크비만의 특장점은 무엇인가.
해리준 : 다른 팀들과 차이점이 있다면 프리스타일 쪽에 특화된 것 같다.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각자의 느낌과 스타일을 다르게 표출하다 보니 보여줄 수 있는 것도 다양한 편이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퍼포먼스로는 탑. 우리가 가장 위에 설 수 있다고 생각한다. (웃음)

이찬 : 해리가 말한 것처럼 아무 음악이나 틀어줘도 몸을 움직일 수 있고 그 음악을 표현할 수 있다. 다른 팀들을 다 이긴다고는 못해도 지지 않을 자신은 있다. 물론 잘하는 팀들이 너무 많기 때문에 항상 다른 그룹들의 무대도 참고하며 우리에게 부족한 면이 어떤 것인지도 파악하고 보완하려 한다.

구체적으로 어떤 점을 보완하고 있는지.
이찬 : 스킬적인 부분은 좋은데 무대 위에서의 장악력과 표정 연기, 그리고 눈빛. 이런 요소들은 단순히 춤만 배워서 해결되는 게 아니라 스스로가 진정으로 느낄 때 어필이 된다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무대와 더 친해지고 익숙해져야 한다고 본다. 불가피한 상황으로 무대 경험을 쌓을 기회가 적긴 했지만 앞으로 코로나 상황이 괜찮아진다면 무대에서 관객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하며 부족한 점을 채워 나가야 할 것 같다.

관객과 대면할 일이 없어서 무대 오를 때의 마음가짐이 남다를 것 같다.
희찬 : 당장 우리의 노래를 들려드릴 수 있는 매체가 음악 방송과 유튜브 정도뿐이라 일단 무대에 올라가면 ‘이 위에서 죽자’는 마인드다. 무대에 오른다는 것 자체가 항상 행복하지만, 그 이전에 무대에서 멋진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내 직업이다. 모든 걸 쏟고 내려오는 게 진정한 프로의 자세라고 생각한다.

춤은 언제부터 췄는지.
희찬 : 공식적으로는 서울에 있는 한림예고로 진학하면서 춤을 배웠다. 고향인 경상도 밀양에 있을 땐 주변에 댄스 학원이 없어서 인터넷에 올라온 영상들로 독학하고 창문을 보면서 따라 추곤 했다.

희찬이 봤을 때 본인을 제외한 8명 중에서 누구의 퍼포먼스가 제일 괜찮은지.
희찬 : 준서를 뽑겠다. 모든 멤버가 메인 댄서라 할 만큼 춤 실력이 좋지만 프리스타일 기준으로 봤을 때 준서의 동작들은 정직하면서도 힘이 넘쳐서 계속 보고 싶다.

그러고 보니 준서는 KBS 고등학생 댄스 오디션 프로그램 < 댄싱하이 >에 출연해 팀 우승을 거머쥔 이력이 있다. 이찬과 희찬 역시 엠넷 오디션 프로그램 < 소년 24 >에 출연했는데, 오디션 프로그램에 대한 현역 아이돌의 생각은 어떨지 궁금하다.
준서 : 고등학생 때 출연한 < 댄싱하이 >는 나를 지금의 위치에 설 수 있도록 성장시켜준 프로그램이다. 스스로도 춤에 대한 기준이 불명확했던 어린 나이에 전문가들의 평가를 받아본다는 것 자체가 너무나도 소중한 경험이었다. 이런 기회를 통해서 내 특장점이 무엇인지, 또 내 한계점의 끝이 어디인지 내다볼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희찬 : 부모님께서 내 꿈을 믿고 응원해 주신 덕분에 고등학생 때 밀양에서 서울로 학교를 옮기게 되었다. 그리고 얼마 안 되어서 좋은 기회로 < 소년 24 >에 출연하게 되었고 공동체 생활이 어떤 것인지 짧게나마 겪어볼 수 있었다. 같은 꿈을 꾸고 있지만 각자가 추구하는 그림은 너무나 달랐고 그 속에서 창작물을 만들어낸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몸소 깨달았다. 이때의 경험이 지금의 다크비 멤버들과 생활하는 데도 정말 큰 도움이 되어서 오디션 프로그램은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다.

D1 :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에 출연한 경험은 없지만 대중문화를 사랑하는 한 명의 엔터테이너로서 이런 콘텐츠들을 꾸준히 챙겨보는 편이다. 포맷과 장르는 제각각이지만 꿈을 가진 사람들의 열정을 보면 나 또한 새로운 자극을 느낄 때가 정말 많다. 대부분 주어진 미션을 준비하고 수행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에피소드를 보여주는데 시청자의 입장에서 그 모습들을 보다 보면 출연자들의 다양한 매력들을 발견할 때가 있다. 내 이름을 알리고 싶어 하는 이들에겐 이만큼 좋은 기회도 없다고 본다.

▶좌측부터 룬(서브보컬), 이찬(리더, 메인래퍼), 유쿠(서브보컬)

일본인 멤버 유쿠는 디제이라는 포지션도 맡고 있다. 디제이는 어떻게 접한 건지.
유쿠 : 한국에 오기 전만 해도 음악을 많이 배우지 못한 상태였다. 그러다 소속사에 들어오면서 처음으로 디제이를 배우게 됐는데 이때 음악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졌다. 음악을 감상할 때 디테일한 포인트를 인식을 할 수 있게 되고 듣는 귀도 더 성장한 것 같다.

일본에도 아이돌 그룹은 많다. 그럼에도 이웃 나라인 한국에서 데뷔하고 싶었던 이유는.
유쿠 : 물론 일본에도 멋있는 팀들이 많다. 그런데 결정적으로 어머니가 엄청난 K팝 팬이셨다. 콘서트나 팬미팅 같은 행사가 있으면 자주 찾아다니고 하셨는데 그때마다 자연스레 따라다니면서 나 또한 팬이 되었다. 그래서 다른 선배 가수들의 무대를 보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그런 무언가가 느껴졌다. 처음엔 마냥 엄마 손 잡고 구경하기 바빴지만 어느 순간 같은 무대에 서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지금 다크비 멤버로 활동하면서 상상은 현실이 되었다.

그렇다면 멤버들에게 가수의 꿈을 키우게 해준 노래나 아티스트가 있다면.
이찬 : 중학교 1학년 때 학교 축제 무대에서 틴탑 선배님의 노래를 커버한 적이 있다. 그때 처음으로 환호라는 걸 받아봤는데 축제가 끝나고 며칠이 지나도 그 벅찬 감정과 여운이 가시지 않았다. 평생 이 기분을 느끼고 사는 사람들은 얼마나 행복할까 생각하면서 나도 가수가 되겠다고 결심했다. 음악은 저스틴 비버의 ‘Baby’라는 노래가 기억에 남는다. 내 또래 같은 사람이 춤추며 노래하는 모습이 정말 멋있었다.

D1 : 빅뱅 선배님을 보면서 꿈을 키웠다. 초기의 ‘La la la’라는 곡이나 저희 대표님께서 작업하셨던 ‘마지막 인사’ 같은 음악들을 들으면서 힙합 그룹이 되고 싶다는 목표가 생겼다. 그중에서도 특히 태양 선배님을 좋아한다. 퍼포먼스적인 면도 너무 뛰어나지만 독특한 음색으로 부른 노래들은 기억에 많이 남아서 지금까지도 내 롤모델로 삼고 있다.

테오 : 초등학교 때 친구랑 장기자랑에 나가서 에프티 아일랜드 선배님의 ‘천둥’을 불렀다. 비록 친구들 앞이었지만 관객 앞에서 노래를 부르고 환호를 받는 게 너무 행복했다. 그리고 나름 잘 불렀었는지 친구들이 ‘숭례초 이홍기’라고 불러주기도 했다. 그런 소중한 추억들이 모여서 음악을 시작하게 되었다.

GK : 초등학생 때 지드래곤 선배님을 보고 충격을 먹었다. 춤 잘 추고, 랩 잘하고, 노래 잘하고. 무대에 등장만 해도 포스가 대단했다. 어린 시절의 나는 그야말로 지드래곤 덕후였다. 그러다 진짜 가수를 해야겠다고 결심했던 건 방탄소년단 선배님의 ‘진격의 방탄’이란 노래를 듣고 나서다. 자신감 넘치면서도 유쾌한 그들의 모습을 보는 순간 나도 아이돌이 되어서 무대에서 랩을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희찬 : 어릴 때 음악 프로를 보다가 우연히 비스트(현 하이라이트) 선배님의  ‘Shock’ 무대를 봤는데 나에겐 그야말로 쇼크였다. 그래서 그날 바로 컴퓨터로 ‘쇼크 안무 배우기’를 검색해서 혼자 춤을 배워나갔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수련회 때 무대에 서면서 희열을 느꼈고 연예인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요즘 영향을 받은 아티스트는 엑소의 카이 선배님이다. 섹시하면서도 절제된 퍼포먼스를 가장 잘 소화하는 댄서라고 생각한다.

룬 : 다른 친구들과 달리 원래 운동을 했었다. 어릴 땐 태권도 선수 생활을 하면서 클라이밍, 검도 등에도 발만 살짝 들였다 놨다 했었다. 음악이랑은 전혀 상관없이 지내다가 우연히 회사랑 연락이 닿으면서 감사하게도 팀에 합류하게 되었다. 좋은 기회로 음악을 시작하게 된 만큼 무대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는데 방탄소년단의 뷔 선배님의 무대 매너나 보컬적인 면들을 많이 보고 배워가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준서 : 한창 유치원에 다닐 때로 기억한다. TV에서 우연히 가수 비 선배님께서 러닝셔츠만 입고 춤을 추는 모습을 접했는데 굉장히 멋있었다. 똑같이 러닝셔츠를 입고 있는데도 몸을 쓰기에 따라서 저런 퍼포먼스도 보여줄 수 있구나 싶었고, 그런 면에서 남들보다 이른 나이에 춤에 대한 열정이 커졌던 것 같다.

유쿠 : 방탄소년단 선배님의 ‘Fire’가 기점이었다. 일본에 생활하고 있을 때 방탄소년단의 안무를 책임지던 안무가 (손)성득 선생님이 직접 일본에 건너와서 안무를 알려준 적이 있었다. 그때 춤은 물론이고 방탄소년단의 이야기도 들으면서 단순히 ‘좋다’라는 감정을 넘어 ‘하고 싶다’는 행동으로 바뀐 것 같다.

해리준 : 어렸을 때 농구선수를 했었다. 농구를 하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길거리 문화를 접하게 되었고 그런 과정의 연장에서 힙합 음악을 접하게 되었다. 크리스 브라운, 저스틴 비버, 그리고 제레미 같은 아티스트들의 음악을 많이 들었던 것 같다. 특히 제레미의 ‘Oui’라는 음악을 많이 들었는데 나중에 내가 이런 스타일의 노래를 부르면서 무대에서 뛰어놀고 싶다고 생각했었다.

▶좌측부터 준서(리드댄서), 희찬(메인댄서)

팬덤 얘기를 빼놓을 수 없다. 다크비를 향한 BB(비비))의 반응은 어떤지.
해리준 : 뜨거운 것 같다. 항상 SNS에 댓글도 많이 달아주시고 사랑하는 만큼 표현도 많이 해 주신다.

기억에 남는 댓글이나 칭찬이 있었다면.
해리준 : 영어 댓글 중에 “BB is the best fandom in the world.(BB가 세계 최고의 팬덤이다)”라고 남겨주신 것이 기억에 남는다. 팬분들 스스로가 우리의 팬인 걸 자랑스럽게 여겨주시는 것 같아서 엄청 큰 힘이 됐다.

이찬 : 개인적으로 가수라고 하면 무대에서 즐길 줄 알아야 된다고 생각한다. 하나의 팀으로 보여지는 그림도 중요하지만, 그 이전에 각자가 무대를 즐기는 것이 우선이라고 본다. 그래서 지금껏 들었던 칭찬 중에선 “즐길 줄 아는 다크비”라는 말만한 극찬이 없는 것 같다.

유튜브 댓글만 보면 외국 팬분들이 더 열성적인 것 같다. 해외에서 인기가 많은 이유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는지.
룬 : 특별한 이유가 있다기보다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본다. 전 세계적으로 K팝의 영향력이 커진 시점에서 우리는 거의 쉬지 않고 활동을 이어왔다. 때문에 상대적으로 자주 노출이 되면서 우리를 찾아주는 팬들이 늘지 않았나 조심스레 짐작해본다. 물론 해외 팬분들만 관심을 가져주시는 것은 절대 아니다. 유튜브 외에도 팬카페를 비롯한 소셜 미디어를 통해 국내 팬분들도 많이 응원을 해주고 계시다. 그런 걸 우리도 꼼꼼히 체크하면서 코멘트도 달아드리려고 하는 편이다. 우리를 찾아주는 모든 팬분께 감사한 마음만 있을 뿐이다.

이번에 발표한 싱글 ‘왜 만나 (Rollercoaster)’의 감상 포인트는.
준서 : (인터뷰 진행 시기가 싱글 발매 전이라) 자세히 말씀드리긴 힘들지만 묵직한 808 베이스 사운드와 더불어 중독성 강한 멜로디가 돋보이는 음악이다. 그리고 ‘미안해 엄마’, ‘난 일해’처럼 간결하면서도 임팩트 있는 우리말 훅을 사용해서 한 번 들으면 잊히지 않고 쉽게 따라 부를 수 있는 것이 또 하나의 포인트다.

이찬 : ‘줄꺼야’의 퍼포먼스가 강렬하고 쉴 틈 없이 파워풀한 느낌이었다면 신곡 ‘왜 만나’의 안무는 힙합적인 요소와 그루비한 느낌을 살려서 다채롭게 구성했다. 안무를 창작할 때 항상 아웃트로에 힘을 실어 임팩트를 주려고 하는데 이번 곡이 역대급을 찍었다고 자부할 수 있다. 대중적인 요소를 넣어서 누구나 따라 할 수 있는 안무로 짰으니까 많은 분들이 커버해주시면 행복할 것 같다.

▶좌측부터 테오(메인보컬), GK(메인래퍼), 해리준(리드댄서)

어쨌든 첫 정규작의 제목처럼 주사위는 던져졌다. 그렇다면 지금까지의 다크비를 주사위 숫자로 표현한다면.
준서 : 숫자 ‘1’이라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총 네 장의 앨범을 발매하긴 했지만 4부작으로 기획된 시리즈였기 때문에 이제 겨우 하나의 이야기를 완성했다고 본다. 1년 동안 보여드렸던 모습과는 다른 새로운 무언가도 앞으로 많이 보여드리고 싶다. 쉼 없이 노력하고 성장해서 주사위의 남은 면들을 보여드리고 싶다.

데뷔 후 1년이 지난 시점에서 바라본 2년 차 다크비의 성장세는.
테오 :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성장하고 있는 것 같다. 많은 선배들의 뒤를 밟아가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우리만의 길을 걸어가는 것이 더 우선이라고 본다. 그래서 당장 눈앞의 성과에 연연하지 않으면서 묵묵히 나아가려 한다.

이찬 : 개인적으로 별탈없이 잘 성장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데뷔 전후 따질 것 없이 우리의 아이디어나 힘이 안 들어갔던 적이 없다. 앨범을 제작하는데 필요한 모든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서 ‘자체 제작돌’이라는 이름에 부합하는 활동을 해왔다고 당당하게 말씀드릴 수 있다.

‘자체 제작돌’이라는 타이틀을 내건 만큼 멤버들의 참여도 점점 늘고 있다. 오로지 다크비 9명의 힘으로 만든 앨범은 언제쯤 만나볼 수 있을지.
해리준 : 당장은 많이 부족하다. 우리 스스로의 방향성에 대해 더 의논하고 연구하면서 대표님께도 인정받는 시점에 온전히 우리끼리 앨범을 만들어보고 싶다. 어떤 콘셉트의 음악을 해보고 싶은지, 또 어떤 퍼포먼스로 대중분들에게 우리를 각인시킬 수 있을지. 평소에도 이런 이야기를 자주 나누고 있다. 순수하게 우리의 에너지로 가득 채운 앨범을 팬분들께 들려드릴 수 있는 날이 온다면 정말 뿌듯할 것 같다.

GK : 멤버들 모두 노래면 노래, 춤이면 춤 다재다능한 친구들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만의 힘으로 앨범을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은 자주하고 있다. 실제로 틈틈이 곡 작업들을 하고 서로 의견을 나누고 있다. 이런 작업물들이 쌓이면 언젠가는 팬분들에게 우리의 힘으로 만든 앨범을 선보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다. 그렇게 될 수 있도록 더 열심히 노력하고 성장해 나가겠다.

마지막으로 올해가 가기 전에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다면.
해리준 : 올해가 가기 전에 팬분들께 새로운 모습을 한 번이라도 더 보여드리고 싶었는데 이렇게 새로운 싱글로 찾아뵐 수 있어서 행복하다. 또 하나의 목표가 있다면 이번 활동곡 ‘왜 만나’로 음악 방송 1위를 해보고 싶다. (웃음) 정말 큰 꿈이고요. 이번 곡을 통해서 다크비라는 그룹을 더 알릴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룬 : 올해 초에 버킷 리스트를 작성했던 적이 있다. 그런데 중간에 한 번 점검을 해봤더니 제한적인 상황으로 인해서 아직 이루지 못한 것들이 너무 많았다. 특히 우리 BB분들과 직접 만날 기회가 별로 없었던 것이 제일 아쉽다. 그래서 가능하다면 올해 안에는 BB와 얼굴을 마주하고 우리의 무대를 보여드리면서 소통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고 싶다.

인터뷰를 마치고 멤버 한명 한명과 인사를 나누던 순간이 잊히지 않는다. 특히 마지막 순서였던 준서가 먼저 나서서 임진모 평론가를 와락 끌어안는 모습을 보고, 아직은 투박하고 다듬어지지 않았다고 생각했던 이들의 음악에서 굉장한 진심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실력도 중요하지만 우리는 지금 인성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따스한 포옹을 건넨 다크비에게서 끝까지 서로를 의지하며 버텼던 브레이브걸스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지금처럼 천천히 조금씩 성장하며 조명받기보다 스스로 빛을 낼 수 있는 다크비가 되길 응원한다.

인터뷰: 임진모, 소승근, 장준환, 임동엽, 정다열
촬영: 장준환, 임동엽
정리: 정다열
영상 편집: 정다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