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중이 기대하는 볼빨간사춘기의 음악은 확실하다. 화사한 봄을 닮은 낭만적인 멜로디와 예쁘장한 어쿠스틱 기타 사운드, 또는 침울하게 내면의 아픔을 토로하는 발라드의 이미지다. 여기에 하나 더 추가된다면 공감대를 형성하는 정서 밀착형 가사가 될 것이다. 공고한 캐릭터는 쉬운 길을 보장하지만, 욕심이 있는 아티스트라면 이를 오히려 쇄신을 위한 자극제로 삼기 마련이다.
올해도 마찬가지로 봄에 맞춘 발매 시기 등 < 사랑.zip >은 외견상 익숙한 볼빨간사춘기 이미지의 연속처럼 보인다. 그러나 음악을 뜯어보면 미묘한 차이점이 있다. ‘Chase love hard’의 독특한 발음은 데뷔 초 보컬을 연상시키면서도 보다 주도적으로 리듬을 밀고 당기며, ‘Love story’의 연장선상에 놓인 ‘Friend the end’에서는 바삭바삭한 일렉트릭 기타를 한층 전면에 내세웠다. 안전지대 내에서 도모한 나름의 변주다.
시도가 성공의 동의어는 아니다. 챈트 형식의 존재감이 큰 나머지 ‘Chase love hard’의 황민현은 게스트로서 온전히 녹아들지 못하고 겉돌며, ‘Friend the end’는 소극적인 멜로디 진행으로 움츠러든 아이유의 ‘Blueming’을 듣는 듯하다. 저음이 강해진 목소리 변화에 맞춘 결과물이겠지만 그만큼 옅어진 생동감을 메꿔줄 장치가 ‘friend’와 ‘the end’를 이용한 언어유희로는 부족한 감이 있다.
흥미로움은 수록곡에서 발견된다. 로마에 사랑을 표하는 ‘Rome’은 ‘여행’처럼 해맑은 인사 대신 건조한 분위기를 조성하는데, 오묘함을 유지하는 선율과 짤막한 기타 브릿지가 신선한 공기를 불어 넣으며 반복 청취를 유도한다. 비슷한 결에서 전형적인 발라드 ‘사랑이 이별이 돼 가는 모습이’보다 ‘좋은 꿈 꿔 0224.mp3’의 여운이 더 크다. 아쉬울 정도로 짧은 러닝타임에 조심스레 해석의 여지를 남김에 따라 음반의 키워드인 ‘사랑’이라는 단어를 곱씹게 만든다.
물론 이러한 곡을 볼빨간사춘기의 새 지향점으로 삼아야 한다고 말하기는 힘들다. 그는 어디까지나 흥행 공식을 놓을 수 없는 대중가수의 영역에 있기 때문이다. 그런 관점에서 < 사랑.zip >은 변화와 유지 사이에서 원만한 합의를 이룬 작품이라 볼 수 있다. 다만 내심 드러내듯 ‘워커홀릭’이나 ‘나비효과’ 등에서 보여줬던 변신 의지를 계속 담아두고 있다면 배짱을 더 갖춰도 괜찮아 보인다. 사춘기가 지났다고 해서 음악을, 미래를 굳어버리게 둔다면 아까우니까.
-수록곡-
1. Chase love hard (Feat. 황민현)
2. Friend the end
3. Rome
4. 사랑이 이별이 돼 가는 모습이
5.좋은 꿈 꿔 0224.mp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