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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동쿨러 인터뷰

‘그대 나를 죽여줘’. 2018년 ‘죽여줘’란 싱글로 화려하게 데뷔한 밴드 보수동쿨러. 이들은 늘 맑고 밝은 것보단 조금은 탁한 감정의 불순물을 노래했다.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하루종일 담배만 물고 있던 날들, 삶이 그 자체로 내게 시험과 실험을 던지는 것만 같은 순간을 낚아채 잔잔하고 무뚝뚝하게 확대, 위로를 건넸다. 새어 나오는 시린 마음과 차갑기만 한 공기 사이 그저 따뜻한 온기를 툭, 툭. 인생의 시큼함을 조금이라도 앓아봤다면 보수동쿨러 곁에 비친 자신을 찾는 게 어렵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작년 11월 말 그런 이들의 첫 번째 정규 음반 < 모래 >가 발매됐다. 그룹은 입을 모아 ‘변화’를 말한다. “EP까지는 좀 더 세련되고, 힙한 것에 신경 썼다면 이번엔 최대한 자연스러움에 초점 맞췄다”는 한 멤버의 답변처럼 과연 음반은 어딘가 달라진 분위기를 풍긴다. 조금 더 가까이서 감정을 표현하고 일상을 바라봤다고나 할까? 보컬 탈퇴란 큰 위기 이후 새 멤버 김민지를 영입해 완벽한 정비를 마친 밴드를 12월 중순 이즘 사무실에서 만났다. 굵은 내진을 이겨낸 이들에게서 성장과 성숙의 아우라가 선명하게 뻗어 나왔다.

좌측부터 이상원(베이스), 김민지(보컬), 구슬한(기타), 최운규(드럼)

드디어 정규 1집 < 모래 >가 발매됐다. 소감을 듣고 싶다.
운규 : EP < Yeah, I Don’t Want It >이 무작정 부딪히며 만든 느낌이었다면 < 모래 >는 기획 단계부터 생각한 대로 작업이 이뤄졌다. 전작도 좋았지만 이번 앨범은 과정과 결과 모두 다 만족할 수 있는 작품이다. 굉장히 뿌듯하고 특히 뜻깊다.

앨범명이 ‘모래’인 이유가 궁금하다.
슬한 : 일상에서 겪는 우울감이나 자조적인 마음속에서 보이는 작은 희망, 행복 등에 집중했다. 모래사장은 넓고 큰 데 이에 비해 모래는 작다. 작은 일상들이 모여서 하나의 덩어리가 된다는 의미를 담았다. 그 사이 알맹이들에 조그마한 행복이 묻어 있음을 드러내고 싶었달까.

실제로 만난 밴드는 밝고 에너지 넘친다. 반면 밴드 그룹의 음악에는 늘 어떤 서늘함, 멜랑꼴리함이 서려 있는데.
슬한 : 밴드의 방향을 전과 다르게 가져가려 했다. EP까지는 좀 더 세련된 것에 주목했다면 이번엔 최대한 자연스러움에 초점 맞췄다. 네 명이 뭉쳐지며 만드는 에너지에 중점을 두고 의상이나 편곡 같은 것들도 소위 말하는 힙보다 최대한 자연스럽게, 약간 거친 면이 드러날지언정 다듬지 않은 사운드와 감정을 표현했다. 우리끼리 둘러앉아 곡을 듣고 느낀 점을 취합해서 다 같이 노래의 그림을 그렸을 정도로 말이다. 의도하진 않았지만 그 사이에서 어떤 멜랑꼴리함이 형성됐을 수도 있겠다.

언급한 밴드의 변화를 체감할 수 있는 곡이 있다면?
상원 : 타이틀곡 ‘모래’가 우리의 변화를 잘 담고 있다. 과거와 다른 자세로 만든 음반에 ‘모래’를 타이틀로 한 이유도 모든 수록곡 사이에서 중심이 됐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곡과 이해관계가 얽혀있는, 연결성이 있는 노래라고 생각한다.

구슬한(기타)

‘모래’의 ‘우울에 얼어붙은 새벽의 모래를 밟아 / 쉽게 부스러지는 / 멀어져가는 새들과 / 흩어져 날아가는 말들’이라는 가사가 참 인상적이었다.
슬한 : 2020년 핵심 멤버이자 보컬이었던 주리의 탈퇴를 겪고 힘든 시간을 보냈다. 밴드에서 보컬이 나간다는 것 자체가 굉장한 변화이지 않나. 그래서 원래는 그룹 해체를 결정했었다. 당시 마음이 답답해 새벽 산책을 자주 했다. 부산도 추울 때 바다와 모래가 얼어붙는다. 얼어 있는 모래 위를 걸을 때마다 모래가 바스라졌다. 그게 마치 우리 같았다.

해체에서 다시 마음을 다잡은 계기가 있었나?
운규 : 일단 하고 싶은 얘기와 들려주고 싶은 음악이 남아 있었다. 주리가 적지 않은 부분을 차지했던 건 사실이지만 슬한이 많은 곡을 썼다. 빈자리를 충분히 채울 수 있다고 봤다. 처음에 다 같이 해체하는 게 맞다고 결정했지만 내가 먼저 ‘다시 해봐도 괜찮지 않을까?’라고 넌지시 얘기를 꺼냈다. 다들 비슷한 시기에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어떤 의미에선 정규 1집이 정말 밴드의 첫 시작일 수도 있겠다.
슬한 : 멤버 교체란 힘든 시기가 있었지만 신경 쓰지 않고 하고 싶은 걸 하려 했다. 물론 대중이 좋아하지 않으면 어쩌지 하는 염려도 있었다. 하지만 겨우 EP 한 장 발매했을 뿐이니 굳이 걱정하지 말자며 마음을 다잡았다. 

밴드 포지션을 바꾼 것도 그 때문이다. 예전에는 보컬이 맨 앞에 섰다. 지금은 네 명이 비슷한 라인에서 반원 형태로 선다. 시각적으로 서로가 더 잘 보인다. 밴드 아이덴티티가 바뀌고 하고 싶은 것을 했는데 사람들이 좋아해 주셔서 감개무량하다. (웃음)

김민지(보컬)

새로운 얼굴 민지에 대한 정보가 많이 없다. 보컬을 지원하게 된 계기가 있는지.
민지 : 보수동쿨러 팬이라 SNS를 팔로우하고 있었다. 주리의 탈퇴 소식도 보았고 새 보컬 모집 글도 확인했지만 지원하지는 않았다. 쟁쟁한 실력을 가진 사람들이 모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또 부산에 살고있는 사람을 뽑지 않을까 싶기도 했고. 그러던 중 예전에 올린 커버 영상을 보고 먼저 연락이 왔다. 큰 기대 없이 합주나 해보자 하는 마음으로 오디션에 왔었다. 지금은 연고가 전혀 없지만 밴드를 하려 부산으로 거처를 옮겼다.

어떤 노래의 커버였나? 
민지 : ‘죽여줘’ 였다. 예전에 보수동쿨러 곡뿐만 아니라 취미로 기타 연습도 할 겸 영상을 몇 개 올렸었다. 늘 기분이 좋지 않은 날에만… 그 영상을 보면 잘했다, 못했다가 아니라 내가 그날 어떤 기분으로, 어떤 상태에서 영상을 찍었는지 보일 정도랄까? 그래서 스스로는 되게 부끄럽다. (웃음)

보컬이 된다는 게 쉬운 결정이진 않았을 것 같다.
민지 : 부산에 내려가기 전까지 근 3주 동안 정말 심장이 요동쳤다. 이러다 죽는 거 아닐까 할 정도로! (웃음) 짐까지 싸서 오니까 멤버들도 나도 서로 진지하게 지금을 바라보는 게 느껴졌다. 보컬적인 건 부담이 될 수밖에 없었다. 나 역시 주리의 팬이었던 사람으로서 내가 따라가지 못하는 부분도 분명히 있을 거고. 완전히 그의 흔적을 지울 수는 없지만 각자의 장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 부분을 좋게 봐주셨으면 한다.

수많은 지원자 중 민지를 헤드헌팅한 이유가 있을까?
슬한 : 커버 영상에서 민지가 기타 치며 노래하는데 ‘이 사람이 우리 보컬이다’라고 운명처럼 느꼈다. 무엇보다 밴드와 감각이 비슷하다는 인상이 있었고. 민지가 최종 합류하기로 했을 때 그래서 더 내 판단에 대한 불안감이 몰려왔다. 민지가 서울에서 부산에서 이사까지 왔으니 내색은 안 했지만 어떤 부담과 긴장이 쌓인 거다. 한참을 서로 ‘~씨’라 부르며 존칭을 쓸 정도로. 그 시간을 거쳐 더 각별해졌다. 재밌게 밴드를 하고 있다. 

한 장의 EP를 거쳐 이제 첫 풀 렝스를 발매했지만 보수동쿨러는 부산을 대표하는 밴드로 우뚝 섰다. 그룹 결성 초창기부터 대중과 언론의 관심을 받은 걸 체감했느냐 물으니 상원이 짐짓 얼굴을 붉히며 손사래를 쳤다. 뒤이어 슬한이 말을 덧붙인다. “부산에서 활동할 때는 사실 잘 몰랐다. 싱글 ‘목화’를 낼 때쯤 진짜 인디 밴드만 공연하는 제비다방 등지에서 불러주니까.. 그때 실감이 났었다.” 부산에서 서울로. 이들이 많은 대중의 사랑을 받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았다. 진짜 좋은 음악은 여전히 입소문만으로도 바다를 건너 우리에게 당도한다.

최운규(드럼)

부산에 위치한 라이브 펍 오방가르드에서 종종 공연하는 것 같다. 작년 3월 민지가 게릴라 공연으로 처음 데뷔한 곳이기도 하고.
운규 : 공연의 음향이 어떻게 송출되는지까지 전부 뮤지션의 책임이다. 그런 부분에 있어서 실제 음향이 매우 뛰어나고 사장님들이 우리 입장에서 반영을 잘해주신다. 음향 장비도 계속 업데이트되고 있다. 최근에는 부산 인디신의 모든 공연이 오방가르드에서 이루어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부산에서도 홍대 인근 클럽처럼 오픈 마이크 제도들을 통해 무대에 설 수 있는지 궁금하다.
슬한 : 일단 바이널언더그라운드, OL’ 55, HQ, 그리고 베이스먼트 등의 공연장이 있다. 이중 바이널언더그라운드, HQ에서 매주 오픈 마이크를 진행한다. (특히 지역 공연장의 공연 정보가 적다고 말하니) 우리도 밴드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됐을 때 막막했다. 어떤 무대에서 서고 어느 공연장에서 우리를 불러줄지 모르니까. 그래서 공연할 팀을 모집한다는 공고를 보면 모여서 머리 맞대고 유튜브 영상을 찍곤 했다. (웃음)

유명 관광지인 보수동(책방골목)을 이름에 달고 있고, 심지어 ‘오랑대’라는 부산 명소를 곡으로 썼지만 뮤직비디오와 음반 커버는 제주도에서 찍었다.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
운규 : 큰 의미는 없다. 그전에는 부산에서 자체적으로 뮤직비디오와 커버 사진 등을 찍었다. 이번 음반이 자연스러움을 추구하려 했기에 이를 잘 담을 수 있는 곳을 찾았다. 부산, 울산, 제주도를 물망에 올렸다. 답사도 다 다녔다. 제주도가 음반의 이미지와 가장 부합하더라. 그래서 제주도가 촬영지가 됐다. 

앨범의 마무리를 장식한 ‘오랑대’에는 처음으로 멤버 전원의 목소리가 담겨있다.
슬한 : 오랑대에 친구들과 캠핑을 갔었다. 그때 참 행복했다. 이 곡은 무조건 행복한 가사를 쓰겠다고 아껴놨다. 멤버들끼리 모여 각자가 생각하는 행복을 가사로 옮겨 쓴 게 ‘오랑대’다. 그래서 꼭 다 같이 불러야 한다고 생각했다. 일상에서 숱한 고난과 역경들을 마주해도, 그래도 끝 곡 ‘오랑대’처럼 행복하지 않은가 하는 의미에서 앨범의 끝에 배치했다. 개인적으로 굉장히 좋아하는 곡이다.

이상원(베이스)

‘오랑대’의 명가사 ‘흘러 들어오는 느린 날에 / 불안함은 저 멀리 떠나가네’란 글은 누구의 손끝에서 탄생한 것인가.
상원 : (느릿하게 손을 들며) 내가 쓴 부분이다. 나는 보통 항상 매 순간 불안함을 느낀다. 개인적인 부분이나 여러 가지를 돌아봐도 안정된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안정된 직업을 가진 것도 아니고… 늘 그런 상황과 감정 속에 놓여있었다. 행복을 느낄 때가 언젠지 그려보니 휴일에 영화를 보며 조용히 술 한 잔 할 때가 떠올랐다. 보통 집에서 혼술을 자주 한다. 굉장히 조용하고 느긋한… 편안한 순간을 담은 가사로 읽어달라. 

밴드에게 < 모래 >란 어떤 의미일까.
상원 : 발매 일인 11월 30일 정오에 지하철에 있었다. 학원에 일하러 가는 길이었는데 (앨범이) 풀렸다는 걸 듣는 순간 이유 없이 울컥하고 눈물이 났다. 여러 가지 일들이 생각나 지하철 한쪽 구석에 가서 울었다. < 모래 >에 특히 소중한 게 많이 들어있다. 앞으로는 힘든 우여곡절 없이 승승장구하고 멋진 미래를 만들어가고 싶다. 그런 기점이 되는 작품이길 바란다.

운규 : 먼저 음악관이 바뀌었다. EP까지만 해도 우리는 무조건 멋있어야 한다며 힘이 잔뜩 들어가 있었다. 반면 1집은 곡 콘셉트와 음악 방향성 등 밴드의 본질에 집중했다. 결국 오랫동안 우리가 하고 싶은 음악을 하는 게 훨씬 더 건강하게 그룹을 지속할 수 있을 거다.

두 번째는 드러밍에 대한 자신감. 내 드러밍에 확신이 없었는데 스승님이 테크닉적인 부분만 실력이 아니라 고집부리지 않고 밴드에 녹아드는 사회성도 실력에 포함된다고 하시더라. 그런 측면에서 내가 가진 장점이 팀에 기여하고 있다고 느꼈다.

마지막으로 < 모래 >를 발매하는 모든 과정이 우리의 자양분이 됐다. 의견 충돌로 시행착오를 겪고 감정이 상하기도 했지만 결국 다 나아갈 미래의 거름이라고 본다. 멤버들의 성향도 잘 파악하고 서로 더 가까워질 수 있어서 의미가 크다.

마지막으로 1년 뒤의 보수동쿨러를 그려본다면.
운규 : 현재는 세이수미 연습실에서 대여료를 지불하고 얹혀살고 있다. 지금도 편안하게 작업하고 있지만 1년 뒤에는 우리만의 합주실이 있었으면 좋겠다. 하하하.

민지 : 약간의 도움은 있었지만 실제로 에이전시 없이 순전히 멤버들의 노력으로 앨범을 제작했다. 원래 주변에 연락을 잘 안 하는데 들어보라고 연락할 정도로 음반에 마치 자식 같은 애착이 있다. 가능하다면 얼른 록 페스티벌에서 우리 노래를 부르고 싶다.

상원, 슬한 : 늘 그랬듯 곡을 쓰고 새 앨범을 준비하지 않을까? 

인터뷰가 있던 주말 상상마당 라이브홀에서의 음반 발매 공연을 끝으로 밴드는 다시 부산으로 향했다. 티켓이 오픈되자마자 금세 매진됐다는 소식이 들리더니 사진 너머 이들의 얼굴엔 그만큼 상기된 흥분이 가득했다. 보수동쿨러, 보수동쿨러. 이들이 밟고 선 진짜 스타트라인에 이제 막 선명한 4개의 발자국이 찍혔다. 우여곡절 많던 시기를 지나 새롭게 펼쳐질 밴드의 앞날을 응원한다.

인터뷰 : 박수진, 김성욱, 정수민
정리 : 박수진, 김성욱
사진 : 정수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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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동쿨러 ‘모래’ (2021)

평가: 3.5/5

순조로운 침투였다. 2018년 싱글 ‘죽여줘’, ‘목화’로 인디 신에 발을 들인 보수동쿨러는 이듬해 데뷔 EP < Yeah, I Don’t Want It >으로 짙은 파편을 남기며 본격적인 출범식을 거행했다. 사색적 분위기와 쟁글거리는 사운드를 덧칠한 음반은 입소문을 타고 순식간에 내륙으로 뻗어나갔고 부산을 근거지로 삼던 이들의 무대 역시 전국으로 확장됐다.

얼마 후 순항 중이던 돛단배에 변화의 바람이 불어 닥쳤다. 보컬 정주리의 탈퇴. 밴드 구성은 물론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던 멤버의 이탈로 팀 해체까지 고민해야 했지만 새로운 얼굴 김민지를 재빨리 영입해 위기 극복 의지를 피력했다. 고뇌를 맛보고 재편을 마친 그들은 심연에 잠식되었던 시간 속에서 발견한 일상을 모아 < 모래 >에 담았다.

풍파를 견뎌낸 이들은 현재의 처지를 썩어버린 ‘귤’과 차디찬 겨울 얼어붙은 새벽의 ‘모래’에 빗대어 부스러진 심경을 대변함으로써 변화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흐르는 눈물의 이유도 애써 묻지 않는다. 위로받지 못한 채 자조적인 물음을 되뇌고, 까만 재로 남았을지라도 우울한 춤으로 마취하는 ‘대니’의 노랫말처럼 내면 속 부유하는 감정들을 침전시킨다.

이들 음악의 중추 역할인 구슬한의 기타 소리는 더욱 맹렬해진다. ‘계절’과 ‘숨’에서 연출한 몽환적인 슈게이즈 사운드가 불안함을 끌어안고 슬픔을 머금은 멜로디를 아름답게 승화시킨다. 극적인 구성으로 후반부 기타 솔로에 힘을 준 ‘숨’과 ‘샌드맨’을 비롯해 정제되지 않은 포효가 앰프를 타고 앨범 전반에 울려 퍼지며 ‘멜랑꼴리함 속에서 피어나는 명랑함’이라는 기존 구호의 틀마저 깨부순다.

프론트를 교체한 보수동쿨러는 팀의 대형에도 변화를 가한다. 앨범 커버에서부터 나타나듯 보컬을 앞세워 전후로 배치했던 전력을 수평으로 넓게 퍼트린다. 같은 선에 서 있는 그들은 멤버 전체를 조명하는 데 집중했다. 서로의 눈을 바라보며 호흡할 수 있기에 단단한 리듬 파트와 멜로디 위에 새로 합류한 보컬 김민지의 목소리가 팽팽한 균형으로 맞물린다. 이것으로 밴드 안에 녹아든 그의 존재감과 새로운 활로 개척의 부담을 분할한 팀 전략이 우려했던 공백을 메운다. 

파고를 넘어선 보수동쿨러는 이제 얼룩진 감정 위에 장르를 입혀 우리의 일상을 위로한다. 포크와 록을 오가는 선율이 얼어붙은 마음을 두드리고 비관과 낙관이 혼재한 노랫말로 매일을 살아내는 이들의 어깨를 다독인다. < 모래 >는 그 알갱이처럼 흘러내린 하루하루를 부여잡으며 손 틈 사이의 작은 희망을 바라본다. 역경의 나날들이 펼쳐져도, 크고 작은 행복들이 문을 두드려도 그들은 새로운 길로 발걸음을 옮긴다. 

– 수록곡 –
1. 귤
2. 모래
3. 계절
4. 숨
5. 샌드맨
6. 대니 Intro
7. 대니
8. 구름이
9. 고무
10. 오랑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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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동쿨러 ‘Yeah, I Don’t Want It'(2019)

평가: 3.5/5

보수동쿨러에게는 특별한 게 있다. 이들은 마음을 사로잡는, 그것도 흡입력 있게 단박에 사로잡는 음악을 한다. 누구에게나 꼭 하나 그런 곡이 있기 마련이겠지만 이 밴드의 노래는 뭐랄까 듣는 사람을 푹 빠져들게 만든다. 징글쟁글한 일렉트릭 기타가 대부분의 멜로디와 전체 추진력을 담당하는 구조 안에서 수록곡은 저마다 색다른 매력을 뽐낸다. 에너제틱하며 동시에 사색적인. 그 이중적인 분위기가 음반을 감싼다.

2017년 부산을 기반으로 결성한 밴드는 2019년 첫 EP인 이 앨범을 내놨다. 제목인 ‘나는 그것을 원하지 않아’라는 단호한 거절의 표현은 작품의 중심 태도와 같다. 조금은 삐뚤게 그러나 확실하게 이들은 마음대로 되지 않는 세상에 저항한다. 대상은 때로는 연인에게로 때로는 나에게로 또 때로는 삶으로 향한다. 이때 핵심은 선명한 부정 곁에 함께하는 여유와 낭만. 한 글자씩 입으로 곱씹게 되는 시적인 가사와 멜랑꼴리하고 몽글거리는 기타 톤은 밴드만의 색채를 빠르게 퍼뜨린다.

타이틀 ‘0308’ 은 그룹의 강단을 담았다. 펑키한 리듬 위에 ‘삶은 누구에게나 실험이고 중독의 연속이다’는 가사를 내레이션으로 내뱉는데 2016년 이랑의 ‘신의 놀이’가 주었던 통쾌함과 시원함이 전해진다. 하고 싶은 말들을 툭툭 내뱉다 자신들의 말에 동조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듯 무심하게 던지는 ‘아닌가’란 질문 또한 놓칠 수 없는 매력 포인트. 연이어 ‘도어’는 눈에 그려지는 아름다운 노랫말로 마음을 녹인다. ‘눈 맞춘 적 없던 시간들이 발끝에 멈춰’있을 때 문 앞에서 무언가를 기다려본 사람, 간절함을 손에 쥐어본 이에게 곡은 최고의 위로가 된다.

유독 거친 기타 톤이 흐르는 ‘목화’의 시린 감성과 음반 내 가장 어두운 감정을 분출하는 ‘이 여름이 끝나고’의 맛과 멋을 살린 건 전 보컬 정주리의 소화력 덕택이었다. 그가 떠나고 새 보컬 김민지가 바통을 이어받은 지금 내달 돌아올 신보가 궁금하다. 머리 위로 과감하게 엑스를 그리는 용기와 넘치는 낭만, 유쾌함을 가진 그룹. 잔잔하게 밀려오는 파도처럼 뚝심 있게 밀어붙인 그들의 개성이 부산 밴드의 지평을 더욱 넓혔다.

– 수록곡 –
1.You were here, but disappeared
2. 0308
3. 도어
4. 목화(intro)
5. 목화
6. 이 여름이 끝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