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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알피피(TRPP) ‘Here To Stay’ (2022)

평가: 3/5

대중적인 코드와 서브컬쳐 음악 사이에서 탄생한 티알피피(TRPP)는 전형을 거부한다. ‘부캐’와 ‘코리안 슈게이징’을 섞은 이 조합은 유쾌하면서도 독특한 매력으로 인디 신을 교란하기 시작했다. 몽환적인 연주에 흐릿한 목소리를 얹은 < Trpp >의 질주는 이제 1년이 지났을 뿐이지만, 숨 가쁘게 돌아온 < Here To Stay >는 등장의 들뜬 분위기를 잠시 잠재우며 느긋한 발걸음을 옮긴다.

따스한 감성으로 중심을 잡는 싱어송라이터 윤지영, 노엘 갤러거 내한 당시 오프닝 무대를 책임진 밴드 바이바이배드맨의 프론트 맨 정봉길, 유쾌한 밴드 일로와이로의 기타리스트 강원우. 새로운 지붕 아래 모인 인디의 선봉장들은 얼터너티브, 드림 팝 등의 재료들을 편견 없이 배합한다. ‘Clue’에서는 1990년대 다부지고도 처량했던 록의 대표주자 스매싱 펌킨스를 회상하고 ‘Rainbow spell’과 같이 잔잔한 곡에서는 브릿 팝의 서정성을 우리말로 번역하기도 한다.

최종적으로 혼탁한 사운드의 슈게이징이 정갈한 모습으로 자리 잡는다. 첫 만남의 설렘을 풍기던 1집처럼 ‘Lifetime’과 ‘Higher than the sun’등의 트랙에서는 들뜨기도 하지만 다소 잠잠한 흐름이다. 이는 노이즈 록의 아들 격인 이 장르에 드나들 수 있는 편안한 출입문 역할을 하면서도 그 소음이 선사하는 미가공과 날것의 매력을 반감시키며 양날의 검으로 작용한다. 비슷한 부류의 음악과 다르게 안온한 감상을 선사하지만, 반항적인 구간의 결핍 탓으로 무료감에 빠지기도 쉽다.

스산하고 몽롱한 분위기를 풍기는 가운데 그 아래 새겨진 정체성은 데뷔작에 비해 더 확고하다. ‘반사’와 ‘명상’ 등의 노랫말 안에는 티알피피만의 추상적이고 현학적인 색깔이 선명하게 묻어나고, 삶의 윤회를 논하는 ‘Circle’과 ‘Here to stay’는 번역 그대로 이들의 기행이 ‘원’처럼 돌고 돌아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질 것’을 선언한다.

엉성한 콘셉트 아래 감춰져 있던 티알피피의 실마리를 풀고 그 뜻을 설득하기 위한 해설서 역할을 충분히 수행했다. 신보를 기점으로 이 기묘한 회합의 출발선을 되짚어보면 과거 음악의 짙은 향수로부터 비롯된 슈게이징의 매력을 다시금 눈치채고 받아들이게 된다. 우연한 만남이 새로운 발견으로 귀결되는 과정, 티알피피는 존재 자체로 흥미로운 세렌디피티(Serendipity)다.

– 수록곡 –

  1. Here to stay
  2. Clue
  3. Play
  4. Lifetime
  5. 반사 (Reflection)
  6. 명상 (Meditation)
  7. Higher than the sun
  8. Little boy / the darkest day
  9. Dodgy
  10. Rainbow spell
  11. Oblivion
  12. Furykawa
  13. Circ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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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룬디마틴 인터뷰

울산 밴드 룬디마틴. 굳이 앞에 지역 명을 붙인 것은 이들의 정체성에 ‘울산’이 큰 지분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모든 멤버가 울산에서 태어났고 이곳에서 자랐으며 그 기억을 음악에 실어 나른다. 지역의 음악 씬을 넓히기 위해 보컬 민경은 직접 민간 공연장 ‘플러그인’을 만들고 운영 중이라고 했다. “울산의 예술이 발전하려면 이렇게 계속 예술가들을 발굴하고 우리들끼리 연대가 되어야 한다.” 울산을 향한 태생적 발전적 애정이다.

유독 파란 하늘이 짙게 펼쳐진 10월 ‘플러그인’에서 이들과 만났다. 아쉽게도 베이스의 승언은 개인 일정으로 함께하지 못했다. 경쾌한 에너지와 열정을 기반으로 울산 이곳저곳을 누비는 룬디마틴과의 대화는 즐거웠다. 기타·보컬의 민경, 건반의 현규, 드럼의 한결은 결코 작지 않은 울산 인디 음악 씬에 관한 양질의 답변을 이어갔다. 음악에 닻을 둔 울산 예술가들의 꿈, 끈기, 갈등 그리고 자생에 대한 긍지…

▶좌측부터 한결(드럼), 민경(기타·보컬), 현규(건반)

룬디마틴는 무슨 뜻인가?
민경 : 불어로 ‘월요일 아침’이라는 뜻이다. 월요일 아침은 사람들에게 힘든 시간일 수도 있지만 팀이 가진 밝고 희망찬 에너지로 응원하고 싶었다. 우리 노래를 들으면 ‘월요병’도 좀 늦게 올 수 있다는 의미랄까? (웃음)

룬디마틴만의 강점.
한결 : 에너지. 민경이 프런트로서 아주 충분한 역량을 가지고 있다. 에너지 넘치고 밝고, 기분 좋게 들을 수 있는 우리 노래의 색을 잘 살려준다. 특히 무대에서의 활기가 정말 크레이지 하다. (웃음) 울산을 대표하는 팀이란 자긍심이 있다.

코로나 때문에 대면 공연의 제약이 있었겠다.
민경 : 새어보니까 연에 80회 정도 공연을 해왔다. 근데 작년에는 온라인 포함해서 6차례 정도 무대에 섰더라. 대면은 한, 두 번 정도 했었다. 나머지는 다 비대면이었다. 대신 자체 기획으로 < 여행스케치 in 울산 >을 발매했다. 울산 명소를 찾아다니면서 그곳에 얽힌 노래를 만들고 뮤직비디오까지 직접 찍었다.

인터뷰를 하는 공연장 ‘플러그인’에 대해 설명해준다면.
민경 : 내가 운영하고 있다. 나는 원래 서양학과, 즉 미술을 전공했다. 그러다 음악으로 전향한 거다. 울산에 연습실이 없어서 연습실을 찾다가 월세가 조금 싼 지하 공간을 발견했다. 합판을 잘라서 울산대학교 앞의 첫 번째 공간인 공연장 ‘언플러그드 하우스’를 무작정 만들었다. 10년 정도 복합문화공간으로 운영하다가 작년, 이곳 성남동 문화의 거리로 공연장을 옮겨 왔다. 더 많은 사람을 가까이에서 만나고 싶었기 때문이다. 룬디마틴 같은 경우 이곳을 연습실로도 사용하고 회의도 이곳에서 한다.

“공간이 있어야 사람이 모인다는 생각에 번 돈을 공연장에 다 쏟아 부었다!!”

월세가 만만치 않을 것 같은데.
민경 : 다른 거로 일해서 버는 돈을 공연장에 다 투자했었다. 공간이 있어야 사람이 모일 수 있다는 생각이 컸었기 때문이다. 울산 내에 이런 민간 소공연장이 거의 없다. 그래서 이걸 지켜내야겠다는 일념으로 다 쏟아 부었다. 이제는 지원 사업이라든지, 국가 보조금들을 알게 되어 전보다는 수월하다.

코로나 이전에는 공연이 많이 있었나?
민경 : 이전 공간에서 2015년경부터 1년 반 정도 매주 화요일만 쉬고 기획 공연을 매일 돌렸었다. 미술 작가로서 삶을 아예 포기하고 음악으로 왔을 때 대중적인 것과 행정적인 것을 동시에 챙기지 못하면 살아남지 못한다는 걸 확실히 인지하고 있었다. 그래도 재정적인 부분이 힘들긴 했다. 다행인 건 울산에 기타 치면서 노래하는 포지션이 많이 없어서인지 룬디마틴 공연 외에도 내 개인으로 하는 공연이나 활동들이 많이 들어왔다.

대구의 ‘클럽 헤비’처럼 울산 음악의 중심지가 있다면?
민경 : 22~3년간 한 자리를 지키고 있는 ‘로얄 앵커’다. 원래는 음악에 큰 관심이 없는 사장님이 운영하는, 외국인들이 많이 오고 가는 펍(Pub)이었다. 2015년 즈음부터 그곳에 그냥 놓여 있든 허름한 장비를 그냥 썩힐 바에 버스킹을 하자하며 조금씩 버스킹 문화가 형성됐다. 2014, 5년에는 그 금방이 ‘문화의 거리’로 조성되기도 했다.

로얄 앵커와 플러그인. 타지 사람에게는 생소한 이름이다.
민경 : 문화의 거리에 미술, 문학, 음악 등을 하는 예술가들이 많이 포진되어 있다. 로양 앵커와 플러그인 역시 이곳의 한 축이고. 두 공연장이 함께 ‘클럽 데이’도 열었다. 울산의 연주자들이 서로 교류하고 계속 공연할 수 있게 자체적으로 티켓을 팔고 공연을 기획했다. 코로나로 잠시 쉬고 있지만 상황이 괜찮아 지면 다시 진행할 생각이다.

“여기서 살았으니까 우리만 만들 수 있는 음악이 있다는 생각으로 노래한다!”

< 여행스케치 in 울산 >의 이야기를 더 듣고 싶다.
민경 : 우리 멤버 전원이 울산 출신이다 보니 추억이 많다. 엄마 손 잡고 태화강 변을 걸을 때도 있었고 내가 어릴 때는 롤러스케이트장이 있어서 거기서 자주 놀았다. 꽃밭도 아주 잘 돼 있고. 우리의 추억이 담긴 곳을 노래로 만들고 싶었다. 여기서 살았으니까 우리만 만들 수 있는 곡이라는 생각으로 노래를 만들고 뮤직비디오를 찍었다.

제작비는 어떻게 충당했나?
민경 : 감사하게도 2020년 울산문화재단의 ‘열린 콘텐츠 지원 사업’의 덕을 봤다.

선정된 이유가 뭘까?
민경 : 우리밖에 할 수 없는 거였다. 울산을 제일 잘 알고 있는 음악가들이 울산을 노래하는 거니까. 사람들이 흔히 울산을 ‘노잼 도시’라고들 한다. 그런데 최근 JTBC 예능프로인 <캠핑클럽>에 울산이 등장하기도 하면서 울산에 대한 관심이 조금 늘었다. 특히 울산12경과 같이 자연경관이 좋은 데도 많다. 울산의 아름다운 곳을 세 군데 선정해 그곳을 중심으로 다뤘다.

구체적으로 어느 장소일지.
민경 : 태화강, 간절곶, 그리고 함월로. 룬디마틴과 남성 듀오 JU와 함께 했다. JU가 함월로를 중심으로, 우리가 태화강을 중심으로 노래를 만들었고 간절곶은 두 팀이 같이 힘을 합쳐 작업했다. 울산의 예술이 발전하려면 이렇게 계속 예술가들을 발굴하고 우리들끼리 연대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있다.

울산을 활동 기반으로 삼은 예술가들이 많은가?
민경 : 재작년에 ‘울산 음악창작소’가 개소했다. 거기서 신인 음악가를 발굴해 음악을 만드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는데 60여 개 팀이 지원했다. 아쉽게 룬디마틴은 선정되지 못했다. 선정팀들을 보니 우리가 알지 못하던 다른 뮤지션들이 많더라. 정말 깜짝 놀랐다.

울산의 음악적 수준이 어떤 거 같은가?
민경 : 문화적인 부분과 실력 부분을 나눠서 얘기해야 할 것 같다. 우선 실력은 울산에 실용음악 학교는 많은데 실용음악과(대학)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중, 고등학생 때 열심히 음악적 기량을 쌓아도 결국 서울이나 다른 지역으로 갈 수밖에 없다. 그런 부분이 아쉽다.

문화적인 건 우리 밴드를 통해 잘 설명할 수 있다. 룬디마틴은 천진난만하고 행복한 에너지를 가지고 있다. 이게 어디서 오냐면 나는 울산이란 지역 문화적 배경에서 온다고 본다. 물론 내가 서울에 살아보지는 않았지만 서울에는 굉장히 치열하고 어쩌면 개인주의적인 게 이곳보다는 많지 않을까 싶다. 이런 분위기가 울산 음악의 문화적인 걸 만들어주지 않을까?

“울산의 뮤지션들은 서로 구사하는 장르가 달라도 교류를 하면서 시너지를 낸다!!”

다른 멤버들의 생각은.
현규 : 동의한다. 문화적인 측면에서 확실히 잘 섞인다. 울산이 타 지역과 다른 것은 장르 간의 교류가 생기며 시너지가 난다는 거다. 씬 내의 우애가 좋다.

민경 : 나랑 베이스 오빠도 그렇고 우리 팀 모두가 객원 활동을 하고 있다. 그중 국악 쪽이랑 콜라보가 특히 많다. 그래서 퓨전 국악팀도 하고, 클래식 팀, 힙합 팀 등 여러 분야에서 다 교류가 많다. 서울, 대구, 부산 등지에 가면 재즈 하는 사람은 재즈 하는 사람들끼리 알고 인디 음악 하는 사람은 인디 음악 하는 사람들끼리 뭉쳐지는데 우린 예술가 수 자체가 많지 않아서 인지 서로 교류가 많다.

울산 음악의 특징이 ‘퓨전’일 수도 있겠다.
민경 : 울산은 공업 도시이기 때문에 타지에서 오는 사람들이 다 일자리 때문에 오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문화예술 생태계를 구축하는 사람들은 울산을 정말 잘 알고, 이곳을 더 알리려고 하는 울산 태생인 분들이 많다. 울산이 아무래도 무역 도시이다 보니까 염포, 방어진 등 항구를 기점으로 제주도, 일본 등지와 왕래가 잦았다. 그러다 보니 DNA 적으로 울산 사람들이 조금 더 개방적인 게 있고 그게 음악 교류가 활발한 것에 영향을 끼친다고 볼 수도 있다.

지방에서 음악을 한다는 게 쉽지만은 않을 것 같다. 활동의 원동력이 있다면.
민경 : 멤버들. 우리는 급할 게 없고 그냥 이렇게 쭉 가면 된다. 밴드 운영비는 돈을 잘 벌어서, 공연이 많아서라기보다 그냥 그런 체제(자급자족하는)를 멤버 전원이 다 인정해서라고 본다. 1집을 제작할 때도, 쇼 케이스를 진행할 때도 무조건 공연비를 다 모아서 진행했다. CD를 찍을 때 현규 작업실을 썼는데 오토바이가 지나가면 멈췄다가 녹음하기를 반복했다. 그런 걸 거친 사람과 거치지 않은 사람의 차이는 크다. 우리 넷은 동시에 그것을 느꼈기에 함께 끈끈하게 갈 수 있다.

발매된 노래 중 가장 마음에 드는 곡은?
한결 : 1집 < Rundi Rise >(2019)의 타이틀 ‘히하’. 그룹에 들어온 지 5~6년쯤 됐다. 관객으로 룬디마틴을 처음 봤을 때 들은 곡이 ‘히하’였다. 밴드를 처음 만나게 했던 곡인데 지금은 내가 연주를 하고 있으니 감회가 새롭다.

민경 : 현규랑 한결이가 직장인이다. 그중 한결의 아이디어로 탄생한 ‘5분만’을 뽑겠다. 딱 5분만 더 자고 싶은데 출근을 해야 하니까 잘 수 없는 일상생활의 애환이 담겨 있다. 멤버 4명이 함께 쓰기도 했고 거의 2, 30분 만에 만족스러운 노래를 완성했다는 점에서 인상 깊다.

“울산 사람들, 울산 청년들 그리고 그 안의 우리 룬디마틴을 게속 얘기하다보면 지구 반대편 누군가와 소통할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의 활동 계획.
민경 : 울산에는 고복수, 윤수일 선생님이 있다. 11월 4일부터 열리는 울산 나들이 축제에서 ‘룬디마틴이 울산을 노래하다’라는 콘셉트로 무대에 선다. 우리식으로 고복수의 ‘타향살이’, 윤수일의 ‘아파트’를 해석했다. 또 우리의 시각으로 본 울산의 풍경에 대한 노래도 준비했다. 울산의 사람들, 울산에서 살아가는 청년들 그리고 그 안의 우리 룬디마틴을 계속 이야기하다 보면 지구 반대편의 누군가와 소통할 수 있는 통로가 생기지 않을까? 그런 각오와 다짐이 있다.

울산 뮤지션들을 소개해준다면?
한결 : 온라인으로 음악을 들을 수는 없지만 ‘대보름밴드’와 ‘내드름연희단’을 추천한다. 퓨전 국악을 하는 팀이 많지만 그중에서도 유독 확실한 다이내믹이 느껴져서 좋다.

민경 : 내가 생각하는 울산의 약점은 밴드 자작곡이 많지 않다는 거다. 자체적으로 싱어송라이터 스터디를 하면서 일반 사람들과 많이 교류하는데 거기서 ‘브루니 센티’를 알게 됐다. 본인은 노래를 잘못한다고 취미로 유튜브를 하고 음악을 하는 거라고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그 이상으로 끌어낼 게 많다. 이외에도 밴드 ‘더 블랭캣’과 가사에서 느껴지는 감성이 훌륭한 ‘피에스(P.S)’를 뽑고 싶다.

현규 : ‘뮤직 팩토리 딜라잇’. 브라질 타악기인 바투카다를 연주하는 그룹인데 경남, 경북을 통틀어서 가장 독보적인 퍼포먼스를 보여준다.

끝으로 목표.
현규 : 어쿠스틱 팝의 선입견을 깨고 싶다. 원래 룬디마틴은 피아노 사운드를 기반으로 멜로디나 화성이 돋보이는 팀이었다. 4년 전 내가 합류하고 나서는 사운드를 더 풍부하게 채우려고 했다. 피아노 말고 신시사이저 소스를 쓰거나 추가로 스트링을 넣는 식으로 말이다. 이런 식으로 피아노를 빼기도 하고 사운드를 뭉개기도 하면서 음악적 실험을 주저하지 않겠다. 그렇게 나아갈 거다. (웃음)

인터뷰 : 임진모, 박수진
정리 : 박수진
사진 : 박수진, 룬디마틴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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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도이(ADOY) ‘VIVID’ (2019)

평가: 3/5

밴드 아도이의 색깔은 등장 때부터 확실했다. 몽롱한 신시사이저로 신스팝, 드림팝을 경유하는 양질의 두 미니 음반을 발매하며 그들은 자신의 고유 음악 영역을 구축했다. 멜로디보다 편안한 분위기에 뜻을 두는 외양은 짧은 시간에 큰 호응으로 이어져 튼튼한 애호가층을 다지기도 했다. 팀의 첫 정규작도 그들의 그러한 특출한 감각을 드러낸다.

그룹의 장기는 역시 매끄러운 사운드다. 몽롱한 기류 위 이번에도 생동하는 전자음이 앨범 전체를 주도하는데, 전작들보다 음향은 완숙해졌다. 그 덕에 산만함이 줄었고 음반의 색감이 흔들림 없이 이어진다. 시작을 여는 ‘Lemon’에서 3번 트랙 ‘Pool’로 이어지는 초반 흡인력은 특히 뛰어난데, 하나의 긴 노래를 듣는다는 착각이 들 정도로 소리가 정돈되어 있다. 수록곡을 하나로 아우르는, 부담 없는 밑그림이 대번에 청자를 작품의 세계로 안내한다.

포용하는 감성 폭의 확장으로, 작품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곡 정서에는 변화를 준다. 그에 따른, 이질감 없이 자유자재한 고저 조절이 본작의 또 다른 핵심이다. 따뜻한 색채로 다른 곡들과 온도 차를 이루는 ‘Someday’와 ‘Domino’, 침착한 보컬로 휴식처를 제공하는 ‘Swim’은 대표적인 환기 트랙으로 후반부로 가는 탄력을 살리고, 이어지는 ‘Ugly’는 다시 올린 긴장감으로, 침침한 피아노의 ‘Moondance’는 가라앉힌 기운으로 굴곡을 조성한다. 적절한 대비와 면밀한 트랙 배치 덕에 앨범은 꽉 차 있고, 아주 짧게 느껴진다.

다만 자극을 주어야 할 멜로디가 없는 탓에 덧칠이 부족하다는 인상이 남는다. 보컬 선율이 코드 위를 평이하게 겉돌며 결정적인 한 방을 심지 못하는 것. 더불어 약간의 자가 복제 약점도 내비치는데, 작중의 긴 호흡으로 목소리를 빼는 흐름은 그간 발매한 작품들과의 구분을 어렵게 한다. ‘Someday’의 후렴이 < LOVE >의 ‘Blanc’와 닮은 것은 대표적이다. 방향을 잘 닦아온 팀이기에 작품 간의 경계 가름을 위한, 더욱 참신한 선율 매무새가 필요하다.

하지만 그런 한계에도 불구하고 < VIVID >는 아도이의 방향을 더욱 공고히 했다. 사운드를 빚는 역량이 한층 성장했고, 수록곡이 많은 정규 앨범에서도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강한 방면, 잘하는 것에 우선 집중한 선택이 빛을 발한 성공적인 정규작.

– 수록곡 –
1. Lemon
2. Porter (Feat. 우원재)
3. Pool
4. Someday
5. Domino
6. Swim
7. Ever
8. Ugly
9. Moondance
10. Aw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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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B ‘Twilight State'(2019)

평가: 3.5/5

관건은 과연 이 음반이 흘러갈 수 있느냐는 거다. 데뷔 31년 차. 2002년 한일 월드컵의 호혜를 입은 ‘오 필승 코리아’의 흥행 이후 ‘박하사탕’, ‘잊을게’ 등의 히트곡. 연이어 윤도현 솔로 곡인 ‘사랑했나봐’의 대중 호응을 거쳐 2011년 오디션 프로그램 < 나는 가수다 >의 활약 등 YB 커리어에는 언제나 급격한 상승 곡선이 이어져 왔다. 그러나 지난 몇 년간 이들에게 새바람은 불어오지 않았다. 어쩐지 과거의 모습으로만 밴드가 소환되던 와중 6년 만의 정규 10집은 그룹의 기로를 결정했다. 잠시 막혀있던 통로는 시원하게 열렸고 YB는 그들만의 방법으로 건재함을 증명한다.

젊음과 연륜을 동시에 좇는다. 이는 내레이션이 활용되는 방식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첫 곡 ‘딴짓거리’는 다국적 밴드 슈퍼올가니즘의 한국인 멤버 소울의 독특한 혼잣말과 휘파람 소리를 섞어 젊은 감성을 체득하고 반대로 ‘생일’은 요즘 잘 쓰지 않는 감성적 읊조림으로 노래의 문을 연다. 자연의 소리를 바탕삼아 시인 이응준의 시구를 읽은 뒤 서정적인 곡의 전개가 시작되는데 옛 감성을 우회한 위로의 메시지가 근사하다. 이처럼 음반은 과거의 것과 요새의 것을 들여오는데 편견을 가지고 있지 않으며 곡에 알맞은 색깔로 소스를 배합한다. 세대 불문. 그들의 음악이 소화될 수 있는 이유다.

이 같은 대중성이 작품의 승전고를 울린다. 록을 중심으로 모던 록, 헤비메탈, 록 발라드 등의 연성화를 이어가며 앨범을 꾸리는 와중 음악적 실력을 과시하려 연주를 확대한 지점이 없다. 로킹한 스피드로 중무장한 ‘Find us’, 탄탄한 리듬감을 강조한 ‘외람된 말씀’, 육중한 헤비메탈 ’10E’ 등 다양한 질감을 가진 곡들이 포진돼 있으나 이것들의 호흡을 늘려 자극 포인트를 강조하지 않으니 곡이 쉽다. 얼터너티브 밴드이자 유명 록 그룹 스매싱 펌킨스의 기타리스트 제프 슈뢰더(Jeff Schroeder)와 협업한 ‘야간마차’ 역시 마찬가지. 욕심을 내지 않은 탓에 음반은 범대중적인 소구력을 얻었다.

기본적 틀을 유지한 채 다채로운 분위기를 담았다. ‘반딧불 그 슬픔에 대한 질문’은 점점 침잠하는 낮은 분위기를 밸런스 좋은 연주를 통해 입체적으로 그려냈고 ‘나는 상수역이 좋다’는 이전 인기곡 ‘나는 나비’, ‘흰수염고래’ 풍의 위로를 전한다. 여기에 한바탕 뛰기 좋을 라이브 전용곡도 있다. ‘Jumping to you’, ‘개는 달린다, 사랑처럼’의 활력이 그것. 신보가 들여온 가장 큰 의미는 바로 여기서 나온다. 여전히 ‘대중’ 곁에서! 펼쳐낼 수 있는 많은 것을 가졌음에도 오히려 힘을 덜어내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음악을 들고나왔다. 중용의 미덕 지켜 유지한 대중 밴드의 타이틀. YB는 흐른다.

– 수록곡 –
1. 딴짓거리(Feat. Soul of Superorganism)
2. 생일
3. 야간마차(Feat. Jeff of Smashing Pumpkins)
4. 외람된 말씀
5. 개는 달린다, 사랑처럼.
6. 차라리 몰랐더라면
7. 반딧불… 그 슬픔에 대한 질문
8. 나는 상수역이 좋다
9. 10E
10. 그럴 이유가 하나도 없다
11. Jumping to you
12. Find us
13. 거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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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보울스(The Bowls) ‘If We Live Without Romance'(2019)

평가: 3.5/5

근래 이 정도의 야망을 내세우는 신인은 없었다. 더 보울스의 자신감은 동 세대 그들보다 음악을 많이 듣고 진지한 태도로 음악을 다루는 밴드가 없다는 믿음으로부터 온다. 블루스와 사이키델릭, 프로그레시브 등 고전의 육수에 퓨전, 펑크(Funk)와 알앤비, 몽롱한 얼터너티브를 뭉근히 끓여내던 이들은 이제 윤상을 모티브 삼아 ‘완벽한 가요’를 만들겠다는 당찬 포부까지 내세운다.

이지 리스닝을 향한 정진은 간결한 멜로디 리프를 남겨 두고 대부분의 소통을 사운드로 해결하던 지난날과는 사뭇 다른 자세를 가져온다. 보컬과 연주 파트의 구분은 의도적으로 모호하게 그려지며, 사운드 레이어를 층층이 쌓아 두고 하나의 특정한 이미지를 각인하고자 하는 노력이 들린다. 짧은 외침으로 끝나던 보컬의 비중이 늘었으며 기타의 뒤에 있던 건반을 전면에 내세우는 것도 의도적이다.

연성화 작업에서 우선 칭찬하고 싶은 것은 중심을 잘 잡고 있다는 점이다. 윤상과 하나뮤직, AOR 밴드들과 요트 록 등 상당히 다채로운 음악 재료를 가져와 활용하면서도 밴드는 헤매지 않는다. 영롱한 신디사이저 리프와 베이스라인을 기본으로 삼고 쨍한 기타 리프를 평행 전개하는 ‘Shy’는 일관된 슬로우 템포를 가져가는데, 곧바로 이어지는 나른한 1980년대 뉴웨이브 스타일 인트로 ‘Car’는 후반부 직선적인 드럼과 기타 솔로로 변칙을 준다. 그 와중 로다운30의 윤병주와 함께한 블루스 트랙 ‘Standard’로 그들의 근간을 잊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데서 젊은 밴드의 패기도 느껴진다.

블루스 밴드의 지난날을 연상케 하는 기타 연주로 출발해 몽환적인 리버브 보컬을 얹은 후 재즈풍 드럼 리프로 시카고와 스틸리 댄을 소환하는 ‘Drive’는 정직한 윤현섭과 이학수의 드럼이 바탕을 잘 잡고 있기에 빛나는 곡이다. 실리카겔의 최웅희가 목소리를 더한 팝 록 ‘Candle’도 리듬 변화 없이 잔잔한 신스 음 위 로-파이 스타일의 기타 리프를 전개하는 것이 안정감을 준다. 어쿠스틱 사운드와 브라스를 교차하며 달콤한 분위기를 형성하다 얼트 록으로 자연스레 넘어가는 ‘Flash of love’와 잔잔한 후반부 트랙들에서 이런 차분하고 간결한 태도가 더 빛을 발한다.

거꾸로 보자면 < If We Live Without Romance >에는 과한 부분도 많다. 복고 스타일의 낭만적 건반 터치로 산뜻한 인상을 남기는 ‘Tidy’는 그 기조를 살리지 않고 몇 번이고 구조를 꼬아 놓으면서 오히려 감상을 복잡하게 만든다. 혼란의 사이키델릭과 맑은 피아노, 다시 발랄한 신스팝을 교차하며 현학적인 노랫말이 더해지니 어렵다. 싱어송라이터 홍갑의 보컬과 유려한 베이스 리프로 묘한 감성을 자극하는 ‘Daisy’ 역시 급하게 화제를 전환하며 장르를 바꿔 놓는 것이 꼭 다른 두 곡을 합쳐 놓은 인상을 준다.

복잡한 구조를 해소할 수 있는 보컬과 메시지도 중심을 잘 지키지만 과감해야 할 때 치고 나올 정도는 아니다. 풀 렝스 앨범에서의 서건호의 보컬은 초반 여유로운 분위기를 주도하는 ‘Plagiarism’과 ‘Car’, 후반부의 ‘엄마’와 ‘봄의 끝에서’에서 강점을 보인다. 반면 보다 강하게 나가야 할 ‘Tidy’나 ‘Daisy’의 후반부, ‘Candle’에서는 그의 인상적인 기타 연주처럼 감흥을 전달하지 못한다. 로파이의 나른한 로맨스와 낭만 사이서 구체적이지 않은 메시지도 ‘좋은 팝’을 망설이게 하는 요소다.

더 보울스의 이상과 현실적 구현물이 가장 조화로운 트랙은 낮은 톤의 보컬로 운을 뗀 후 점차 몸집을 불려 나가는 ‘Cosmos’다. 정격의 드럼 연주 위 기본과 기교를 오가는 베이스, 기본에 충실한 리프를 전개하다 과감하게 등장할 파트를 아는 기타와 가장 선명한 보컬이 각자의 자리에서 아름다운 감상을 안긴다. 완급조절에서 약점을 보이지만 이들은 기본적으로 음악에 대한 이해도가 뛰어난 루키다.

자신감 있는 신인 밴드의 준수한 데뷔 앨범이라는 점을 기억하면 앞서 엄격함은 잠시 덮어 둬도 좋겠다. 밴드는 흔치 않은 접근법으로 흔치 않은 헌사를 바치는데 이것이 튼튼한 완성도와 넓은 범용성을 갖추고 있다. 음악사의 빛나는 레퍼런스를 뭉근하게 끓여낸 더 보울스의 다음 과제는 밴드 고유의 얼큰한 감칠맛을 더하는 것이다.

– 수록곡 –
1. Plagiarism
2. Shy
3. Car
4. Drive
5. Tidy
6. Cosmos
7. Standard (Feat. 윤병주 of Lowdown 30)
8. Daisy (Feat. 홍갑)
9. Candle (Feat. 최웅희 of Silicagel)
10. Flash of love (Feat. 성진환)
11. Melody of love
12. 엄마
13. 봄의 끝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