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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POP Single Single

백예린 ‘Fuckin’ new year’ (2023)

평가: 3/5

새로운 한 해가 잘 풀리길 바라는 기대와 희망이 모여 올해 첫날에도 우주소녀의 ‘이루리’가 음원 순위 정상에 올랐다. 하지만 백예린의 ‘Fuckin’ new year’는 보편적인 감정을 노래하지 않는다. ‘또 다른 빌어먹을 한 해 / 나에겐 이 망할 해를 위한 새로운 태도란 없어’라는 냉소적인 가사는 설렘 대신 늘어가는 나이와 약해지는 신체 등 부정적인 면을 쏟아낸다.

새해의 이중적인 속성처럼, ‘Bye bye my blue’를 닮은 우울한 피아노 선율로 시작하는 곡은 갑작스레 등장하는 신시사이저와 현악기로 반전을 꾀한다. 그래도 백예린의 목소리는 기대 끝에 남을 공허를 위로하듯 계속해서 무엇도 자신을 구원할 수 없으리라 읊조린다. 당장의 변화와 무조건적인 희망을 전제하지 않고 ‘딱히 달라질 게 없는 나’를 이해하고 포용할 줄 알기에 더 따뜻한 신년 노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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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POP Single Single

백예린 ‘물고기’ (2022)

평가: 3/5

2019년 EP < Our Love Is Great > 이후 영어 노래에 주력해온 백예린이 약 3년 만에 발매한 한국어 신곡. 오랜 파트너 프로듀서 구름과 함께 하늘을 비상하던 그가 이번엔 물속으로 장소를 옮긴다. 바다를 그린 모던 록 사운드와 직선적인 리듬이 공간감을 형성해 몰입감을 높이고 여느 때처럼 청아한 목소리는 수중을 자유롭게 유영한다.

핵심 메시지는 위로다. 화자는 남들과 다른 자아를 지닌 스스로를 땅에서도 숨 쉴 수 있는 물고기에 빗대 세상의 모든 존재를 감싸 안았다. 감각적인 묘사로 풀어낸 순수한 진심이 거친 바람에도 꺼지지 않는 따뜻한 촛불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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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Feature

뉴트로 특집 VOL.2 : 12곡으로 살펴본 뉴트로

복고가 뭐길래. 이리도 오랜 시간 전 세계에서 동시다발적으로 특히 ‘젊은 세대’에게도 사랑받는 것인가. 한 번쯤은 떠올렸을 궁금증이다. 이에 이즘이 ‘뉴트로 특집’을 준비했다. 뉴트로의 정의와 연혁을 다룬 박수진 필자의 글에 이어, 두 번째 특집으로 IZM 필자들이 모여 뉴트로 흐름에 박차를 가한 12개의 곡을 모았다. 복고 열풍을 한 눈에 바라보고 이해하려는 이들에게 좋은 지침서가 되기를 바란다.

브루노 마스 ‘Treasure’
어스 윈드 & 파이어가 부른 ‘Let’s groove’의 뮤직비디오, 두터운 리듬을 강조한 프린스의 초기 음악 스타일, 마이클 잭슨의 안무. 이 세 가지는 브루노 마스의 ‘Treasure’를 가장 간단하게 설명할 수 있는 문구다. 1970, 80년대에 음악을 많이 들은 사람한테 이 펑크(Funk)넘버는 과거를 답습한 결과물이지만 2010년대의 젊은 세대에게 이 곡은 최첨단 유행이자 세련된 보석이다. 이후 브루노 마스는 ’24k magic’, ‘Finesse’, 마크 론슨과 함께 한 ‘Uptown funk’로 복고 열풍을 주도했고 2021년에는 더 거슬러 올라가 1970년대 초반의 소울 발라드를 끌어들인 ‘Leave the door open’으로 음악적 영역을 넓혔다. ‘Treasure’는 뉴트로가 아니라 레트로다. (소승근)

샤이니 ‘1 of 1’
뮤직비디오의 흰색 배경과 원색의 파워숄더 수트가 MTV 시대를 재현한다. 그 위에 둔탁한 808 드럼 비트가 떨어지는 순간 1990년대 초반으로 범위를 좁힌다. 직접적인 오마주는 아니지만 뉴 잭 스윙을 대표하는 보이밴드 뉴 에디션, 블랙 스트리트의 흔적도 곳곳에 흩뿌려져 있다. 파편화된 과거를 전유하는 모습은 뉴트로 그 자체다. 그러나 ‘1 of 1’은 시대적 현상이 일어나기 전인 2016년에 발매된 곡으로 소속사의 향수를 반영한다. 1990년대 듀스, 현진영 등 우리나라까지 흘러온 뉴 잭 스윙에 SM은 에스이에스의 ‘(Cause) I’m your girl’로 응답했다. 2010년대 이후에는 권위자 테디 라일리와 작업하며 그의 음악과 시대에 대한 경의를 표하고 있다. 북유럽의 최신 EDM 사운드를 이식하던 샤이니가 과거로 회귀한 건 뜬금없는 일이 아니었다. 기획사의 노스텔지어와 그룹의 아방가르드가 만나 조금 이른 뉴트로를 낳았을 뿐. (정수민)

백예린 ‘Square (2017)’
SNS에서 입소문을 타고 부상한 미발매곡이 뉴트로 트렌드를 점령했다. 일본 버블경제 시기 등장한 쿠보타 토시노부의 ‘La la la love song’ 커버에 더해 비공식적으로 페스티벌에서만 선보였던 ‘Square (2017)’ 라이브 영상은 ‘초록 원피스 신드롬’을 일으키며 백예린의 이미지를 굳혀 왔다. 1980년대 모던 록 사운드 위 새겨진 청아한 음색은 유튜브 알고리즘을 가득 채우며 ‘나만 알고 싶은 가수’를 찾아 헤매던 이들을 결집했고, 기대에 부응하듯 정식 발매 이후 차트를 휩쓸었다. 바이닐 열풍을 탄 첫 정규 음반 역시 2020년 국내 LP 판매 순위 1위에 오르며 신복고 선두주자로서 그의 정체성을 공고하게 다져나간다. 빈티지한 세련미를 찾는 시대, ‘Square (2017)’는 신세대의 취향에 발을 맞춘 백예린의 ‘힙’한 화답이다. (손민현)

정글 ‘Casio’
정글은 1970, 80년대 미드템포 펑크(Funk)/디스코를 동경한다. 이들의 문법을 집대성한 ‘Casio’ 역시 디스코에 기반을 둔 팝 펑크 곡이다. 향수를 부르는 아스라한 신시사이저, 팔세토 창법으로 연결된 담백한 하모니가 기분 좋은 여유를 발산하고 뒤이어 댄스 본능을 자극한다. 고급 와인처럼 오랜 숙성을 거친 듯 세련된 그루브가 웨스트 코스트의 광활한 해변을 배경 삼은 올드 스쿨 LA 밴드처럼 느껴지지만 팀의 주축 조쉬 로이드 왓슨과 톰 맥팔랜드는 밀레니얼 세대의 영국 청년들이다. 당시 20대였던 이 런던 듀오는 선배들의 찬란한 유산을 황금색 페인트로 칠해 윤기 나는 신복고 음악으로 재가공했다. 레트로에서 뉴트로, 정글이 장착한 신구 융합의 엔진이 세월의 격차를 성공적으로 좁혔다. (김성욱)

박문치 ‘널 좋아하고 있어 (With 기린 & Dala & 준구)’
펑크(Funk), 디스코가 과거 불러오기 바람의 중심에 서있지만 음악의 추억 상자에는 아직 장르가 남아 있다. 힙합과 알앤비가 뭉친 뉴 잭 스윙이 그 예로 1980년대 후반 테디 라일리가 불을 붙이며 전 세계 뿐 아니라 국내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2018년 브루노 마스의 ‘Finesse’ 리믹스가 반짝 떴던 미국 시장에 반해 우리나라는 2010년 즈음부터 태동을 보였다. 복각 듀오 유브이의 ‘집행유애’를 시작으로 에잇볼타운의 수장 기린이 다시 뿌리내리면서 주류 현상은 아니었지만 이는 재유행의 채비를 마련했고, 마침내 1996년생의 ‘뉴 질 스윙(여성 뮤지션)’ 스타 박문치를 낳았다. ‘라떼(‘나 때는 말이야’를 풍자한 표현)’는 거부하면서 ‘그때’의 음악에는 열광하는 사람들은 옛 것이지만 촌스럽지 않고, 요즘 것이지만 뻔하지 않은 음악을 환영했다. 1990년대의 음악을 듣던 이들에게는 향수를, 1990년대 생들에게는 새로움을 안겨주는 한국형 신복고의 대표곡. (임동엽)

김현철 ‘Drive (Feat. 죠지)’
뉴트로의 바람이 원조 시티팝 장인이 펼친 ‘돛’에 추진력을 가했다. 2006년 발매한 9집 < Talk About Love > 이후 13년이라는 긴 공백기를 깨고 자신의 시간이 돌아오리라고 예견한 듯이 정규작 < 김현철 10집 “돛” >으로 복귀를 알렸다. 베테랑 음악가와 젊은 뉴페이스들의 참여로 노련함과 생기가 공존하는 앨범 속에서 ‘Drive’는 주축 역할을 맡는다. 아티스트의 정체성이라고 할 수 있는 청량한 퓨전재즈 스타일에 2017년 싱글 ‘Boat’로 이름을 알린 죠지가 깔끔한 보컬로 힘을 더한다. 1980년대 일본 애니메이션을 편집한 뮤직비디오 형식의 2차 창작물과 SNS피드를 채우는 김현철의 이름이 세대를 막론하고 그의 음악을 향유하고 있음을 입증한다. 기존 대표곡에서 세련미를 더한 것이 30년 관록의 가수를 다시 한번 트렌드 최전선으로 이끌었다. 1989년 공개한 데뷔작 < 춘천 가는 기차(1집) >에 담은 한국 시티팝의 원류 ‘오랜만에’와 ‘연애’, ‘왜그래’ 등에서 느낄 수 있는 향기가 시대을 넘어 현세대를 물들인다. (백종권)

위켄드 ‘Blinding lights’
팝 현장에 부는 레트로 열풍을 대표한다. 의도적으로 아쉬움을 남겨 거듭 재생을 유도하는 영특한 편곡과 선율감을 살린 민첩한 보컬,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간 듯한 사운드를 앞세워 90주간의 빌보드 핫 100 차트인이라는 대기록을 남겼다. 신시사이저 사운드를 적극적으로 이용한 모티브 전개에서 아하의 히트곡 ‘Take on me’가 강하게 스치며 비트에선 1980년대의 많은 아티스트가 애용했던 드럼 머신 롤랜드 TR-808이 떠오른다. 트렌드의 달인 프로듀서 맥스 마틴은 암울한 미래상을 그렸던 과거와 무력한 현재의 공통점을 포착했다. ‘Blinding lights’는 그때의 우울한 감성으로 지금의 공허한 마음을 겨냥한 레트로의 전형이다. (김호현)

두아 리파 ‘Levitating’
비록 우리나라에서만 쓰는 말이라지만 ‘뉴트로’를 상징하는 작품으로는 < Future Nostalgia >만큼 제격인 것이 없다. 앨범의 다섯 번째 싱글로 낙점된 ‘Levitating’은 제목이 전달하는 ‘미래’와 ‘향수’라는 콘셉트를 대표하는 트랙이다. 롤랜드 VP-330 신시사이저 샘플로 1980년대 디스코 리듬을 생생하게 재현했고, 귀에 착 감기는 후렴으로 틱톡 플랫폼을 애용하는 신세대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젊은 층에게 인기몰이 중인 1990년대 일본 애니메이션 풍의 뮤직비디오를 추가로 공개하여 시각적인 요소까지 놓치지 않았다. 첫 싱글 ‘Don’t start now’가 대 복고 시대의 기폭제가 된 이후 수많은 아류작이 나왔지만, 두아 리파는 ‘Levitating’으로 그 흐름을 스스로 이어받으며 2021년 빌보드 연간 차트의 정상에 올랐다. 근 2년간은 부정할 수 없이 그의 시대였다. (한성현)

유키카 ‘서울여자’
‘남행열차’, ‘애모’ 등으로 잘 알려진 김수희가 1990년에 발표한 ‘서울여자’ 속 화자는 이별로 생긴 상처 때문에 서울이 미워졌다고 말했다. 애잔한 피아노 반주 위 ‘사랑도 팔고 사는 속이고 속는 세상’이라 고백하는 목소리엔 급변하던 대도시의 회색빛 고독이 물씬 배어있었다. 그로부터 정확히 30년 뒤. 비록 리메이크는 아니지만 레트로의 격류를 타고 동명의 곡이 등장했다. 1980년대 일본 음악의 주류였던 시티팝을 1993년생의 일본인 유키카가 한국식으로 복각하는 이질적인 모습도 물론 대중의 시선을 끌었지만, 낯선 장소를 마주하는 당당한 태도와 신시사이저, 브라스 세션이 자아내는 세련된 도회적 감성이 흐른 시간만큼이나 달라진 시대를 반영하며 공감을 얻어냈다. 프로듀서 박진배(ESTi)의 진두지휘 아래 완성도 있게 짜인 재현극은 당대의 감각을 충실히 고증하는 동시에 현재를 투영. 답습에서 끝나지 않고 재가공했기에 해당 장르의 범람에서도 번뜩이는 지점을 차지했다. (손기호)

브레이브걸스 ‘운전만해’
모두가 한 번씩 시티팝이라는 시대적 흐름에 발을 담그던 2020년, 브레이브걸스의 ‘운전만해’는 뉴트로의 부름에 대한 대답이자 그룹의 사활을 내건 승부처였다. 영롱하게 여울진 기타와 플루트, 다채로운 악기 운용으로 자아낸 드라이브 사운드, 이에 마지막 활동을 암시하는 듯한 아련한 작풍까지. 또한 세련됨을 강조하는 시티 팝의 주요 정서보다 명확한 훅과 기승전결을 띠는 K팝 속성에 주력한 곡은 가벼운 유행의 각색이 아닌 대중을 겨냥한 의도를 몸소 내비치고 있었다. 결국 진심은 통한다고 했던가. ‘롤린’이 역주행의 정의를 재고하게 하며 브레이브걸스에게 도약의 아이콘을 부여했다면, 이듬해 ‘운전만해’는 그 반짝의 주목을 안정권으로 진입하게 한 주역이 되었으니. 각종 커뮤니티와 미디어의 단합으로 화력을 이끈 ‘롤린’과 다르게 올바른 유행 해석과 수려한 완성도를 통해 차트에서 인정을 거뒀다는 점에서도 의의를 지닌다. (장준환)

방탄소년단(BTS) ‘Dynamite’
‘우리도 이만큼 할 수 있다!’
미지의 영역이었던 빌보드 핫100 차트 1위를 달성했다는 사실만으로 역사적인 곡이다. 방탄소년단 고유의 긍정 에너지로 약동하는 이 곡은 킹콩과 전설적인 록 그룹 롤링 스톤스, NBA 스타 르브론 제임스 등 영미권 문화의 인용과 ‘Tonight, alight’의 각운으로 친밀감을 더했다. 조나스 브라더스와 몬스타엑스 등과 작업했던 프로듀서 데이브 스튜어트는 박수 소리와 브라스 세션같은 디스코/펑크(Funk)의 요소로 복고풍 팝을 구현했고 뮤직비디오 속 멤버들의 의상과 동작도 과거를 가리킨다. 힙합과 K팝을 주 무기로 삼았던 방탄소년단이 제임스 브라운과 마이클 잭슨으로 회귀했다는 지점이 의미심장하며 당대의 지구별 스타가 건네는 디스코/펑크 폭탄은 뉴트로 열풍에 커다란 화력이 되었다. (염동교)

도자 캣(Doja Cat) ‘Kiss me more (Feat. SZA)’
올해도 그래미 어워드 베스트 팝/듀오 부문은 당찬 두 여성의 품으로 돌아갔다. 2021년 방탄소년단의 ‘Butter’가 빌보드 싱글 차트 10주 1위라는 대업적을 이룩한 건 사실이나 수상의 영예를 거머쥔 도자 캣과 시저의 ‘Kiss me more’에도 40년 전 동일 기록을 달성한 히트곡의 기운이 살아 숨 쉬고 있다. 세련되면서도 도회적인 기타 리프와 베이스가 주도하는 노래는 1970-80년대 팝의 여왕으로 군림했던 올리비아 뉴튼 존의 ‘Physical'(1981)을 각색해 단번에 따라 부를 수 있을 만한 후렴구 멜로디를 주조했다. 우수한 밑바탕에 그려낸 가사 역시 레퍼런스의 육감적인 이미지를 그대로 흡수하며 키스라는 성적 욕망을 대담하면서도 부드럽게 드러낸다. 전반적인 구성은 틱톡을 뜨겁게 달궜던 ‘Say so’와 흡사하지만 과거의 질료를 매끈하게 다듬은 뉴트로 트랙 ‘Kiss me more’는 그 흥행이 단순한 해프닝이 아니었음을 증명하며 디지털 시대에 걸맞은 디스코 퍼포먼스의 표본으로 남았다. (정다열)

이미지 디자인 : 정수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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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Feature

뉴트로 특집 VOL. 1 : ‘레트로 아니, 뉴트로 마니아’의 시대

복고가 뭐길래. 이리도 오랜 시간 전 세계에서 동시다발적으로 특히 ‘젊은 세대’에게도 사랑받는 것인가. 한 번쯤은 떠올렸을 궁금증이다. 이에 이즘이 ‘뉴트로 특집’을 준비했다. 먼저 박수진 필자가 ‘레트로 아니, 뉴트로 마니아의 시대’란 제목으로 복고(레트로)와 뉴트로의 정의를 알리고 오늘날 뉴트로가 사랑받는 이유에 대해 정리한다. 이 흐름 안에서 짚고 가면 좋을 국내외 대표 아티스트도 함께 언급했다고 하니 복고 열풍을 이해하는 좋은 지침서가 될 듯하다. 특집들은 한 주의 차를 두고 공개된다.

복고가 대중음악의 트렌드로 자리한 것은 최근의 일이 아니다. 2007년, 1970년대 디스코를 복각한 원더걸스의 ‘Tell me’가 전국에 선풍적인 반향을 일으킨다. 다음 해인 2008년, 그들은 1960년대 흑인 보컬 그룹 슈프림스의 콘셉트를 ‘재연’한 ‘Nobody’로 인기를 이어가는데 이는 미국 시장 진출의 발판이 되기도 했다. 진출 이상의 성과는 없었지만 당시 시야를 해외로 옮길 만큼 원더걸스의 인기는 대단했다. 복고와 함께한 성공이었다.

근 15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도 복고는 음악 곁에 있다. 지역이나 문화권을 뛰어넘은 전 세계적 흐름이다. 해외 음악 시장을 보자. 데뷔 초 ‘Marry me’, ‘Just the way you are’ 등 달콤한 팝을 하던 브루노 마스가 ‘Treasure’, ‘Uptown funk’, ’24K magic’ 등의 펑크(Funk)를 주력으로 삼은 지 오랜 시간이 지났다. 도자 캣의 긴 무명 시절을 끝내 준 효자곡 ‘Say so’ 역시 디스코, 펑크를 근간으로 하고 게일을 한순간에 스타로 만든 ‘abcdefu’ 또한 2000년대 초반 팝펑크를 여기로 이식한다. 신시사이저를 근사하게 채색한 해리 스타일스의 신곡 ‘As it was’는 현재 빌보드 싱글차트 2위를 순항 중이다.

복고의 의미를 따져볼 필요성을 느낀다. 복고, 즉 레트로(retro)는 회상, 회고, 추억이라는 의미의 영어 단어 ‘retrospect’로부터 파생했다. 과거의 ‘재현’을 통해 향수를 느끼고 추억을 되새기는 것이다. 다시 말해 해리 스타일스의 ‘As it was’를 듣고 그때 그 시절 떠올리는 (아마도) 중장년층에게 이 곡은 레트로다. 반면 추억이 없는 1020세대에게 이 곡이 지닌 복고적인 특성은 ‘색다름’이며 ‘새로움’이다. 이때는 ‘뉴트로’다. ‘새롭다’라는 뜻의 new와 ‘복고’의 retro가 합쳐진 신조어 ‘뉴트로’는 이렇게 레트로와 종이 한 장 정도의 차이를 가진다.

레트로와 뉴트로를 굳이 나누는 것은 한국 한정 현상이다. 책 < 트렌드 코리아 2019 >에서 뉴트로를 새해 소비 트렌드 전망으로 꼽으며 대중화됐다. 레트로 콘셉트의 음악에 이렇다 할 추억이 없는 젊은 세대에게 복고가 계속해서 큰 관심을 끄는 것이 키워드화 될 정도로 붐인 것이다. 도대체 왜. 다수의 전문가는 해답을 디지털 매체의 발달에서 찾는다.

2017년 익명의 ‘유튜브’ 계정에 타케우치 마리야의 곡 ‘Plastic love’가 업로드됐다. 2022년 현재 5천만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다. 발매된 지 30년도 더 된 이 곡이 별다른 맥락 없이 향수를 불러일으킨다는 이유로(위 영상의 댓글 창을 보자) 소환되고 회자했다. 그렇게 불어온 시티팝 열풍이 유튜브 알고리즘 추천을 타고 국내까지 번졌다. 빛과 소금의 ‘샴푸의 요정’이 젊은이들의 귓가를 쓰다듬었고, 김현철은 10년 만의 정규 음반을 발표한다. 백예린, 아이유, 태연, 브레이브 걸스 등이 시티팝 스타일의 노래를 불렀다.

나아가 소셜 미디어 사용이 확대되며 뉴트로가 ‘확산’되는 속도가 빨라졌다. 2020년 한 틱톡커(Tiktoker)가 스케이트보드를 타며 플리트우드 맥의 ‘Dreams’를 따라 부르는 영상을 올린다. 이 영상이 입소문을 타며 1977년에 발표한 곡이 40여년 만에 빌보드 싱글 차트 21위에 재진입했다. 최근 국내의 각종 숏폼 플랫폼에서는 이럽션의 ‘Oneway ticket’이 활약 중이다. 1980년 방미가 ‘나를 보러와요’로 번안하며 인기를 끈 이 노래가 오랜 시간이 지난 후 원곡으로 다시 사랑받고 있다. 곡이 가진 ‘뽕끼’와 촌스러운 익살스러움이 젊은 층에게 개성과 재미로 먹혀들었기 때문.

앞으로 달려 나가는 사회에서 자꾸만 뒤를 돌아보는 이유는 무엇일까? 디지털 매체가 발달하고 소셜 미디어 사용이 확대된 오늘날 우리가 찾는 새로움이 ‘미래’가 아닌 ‘과거’에 더욱 쏠려 있다는 것은 복고가 전하는 메시지가 무언의 설득력을 가진다는 것을 뜻한다. 이제 막 30대 초입에 들어선 필자는 그 답을 현실의 퍽퍽함에서 찾고자 한다. 기술 매체의 발달이 되려 팽팽한 긴장감으로 치환되는 지금 우리네 사회는 앞을 내다볼 여유가 없다.

영국의 저명한 평론가 사이먼 레이놀즈는 < 레트로 마니아 >라는 책에서 레트로 문화를 강도 높게 비판한다. 그는 “문화에서 레트로 마니아는 이제 지배적 우상을 넘어 임계점에 다다른 느낌”이라 말하며 “문화가 노스탤지어에 매달려서 앞으로 나갈 힘을 잃은 걸까, 아니면 문화가 더는 앞으로 나가지 않아서 결정적이고 역동적이던 시대에 노스탤지어를 느끼는 걸까”라는 질문을 덧붙인다. 일면 타당한 시선이다. 재창조가 받침 되지 않는 복고는 완벽한 재현(혹은 재연) 이상의 함의를 띄지 못한다.

그렇기에 언제든 가져다 쓸 수 있는 과거의 다양한 유산들은 자칫 그것이 음악의 전부가 될 경우 질적 하락을 초래할 수도 있다. 이번 글에서 복고가 사랑받는 이유에 대해서 분석하며 현실의 바로미터를 파악했다. 이어질 특집을 통해 레트로, 아니 뉴트로 마니아의 시대 복고를 듣기 좋게 재창조한 곡들을 소개한다. 대중문화를 사로잡은 ‘과거 앓이’가 자기복제 이상의 가치 창출로 뻗어나가길 바라며, 다음 특집도 재밌게 읽어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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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bum KPOP Album

발룬티어스(The Volunteers) ‘The Volunteers’ (2021)

평가: 3/5

너바나, 크랜베리스, 소닉 유스, 오아시스를 좋아하던 이들의 음악적 취향은 백예린이 프런트맨으로 이끄는 록 밴드 발룬티어스로 결집된다. 백예린과 영혼의 파트너 구름, 드러머 김치헌과 밴드 바이바이매드맨의 조니로 뭉친 4인조는 2018년 사운드클라우드에서의 첫 등장만으로 큰 이목을 끌었고 데뷔작을 발매하기까지 3년이라는 시간을 고대하게 만들었다. 오랜 기다림을 깨고 모습을 드러낸 첫 정규작은 EP로 미리 공개했던 여섯 곡에 밴드의 정체성을 선명히 해 줄 네 곡의 신곡을 추가하여 본격적으로 밴드의 색깔을 수놓는다.

관전 포인트는 팝 알앤비 보컬리스트로 이미 큰 성공을 거둔 백예린이 로커로 변화한 모습이다. 일찍이 < Our Love Is Great > 앨범의 밴드 세션이나 ‘Square’ 같은 곡을 통해 록과 맞닿아 있는 음악 취향을 드러낸 그는 록 뮤지션으로서의 열망을 밴드의 데뷔작을 통해 실현했고 기존의 여리여리하고 부드러웠던 음색도 변화를 주었다. 거친 질감의 밴드 사운드 ‘Let me go!’와 같은 곡에서 정제되지 않은 음색으로 시원하게 내지르는 가창의 변화를 확연하게 느낄 수 있다.

앨범의 전반적인 지향점은 1990년대 얼터너티브 록과 그런지다. 이들에게 영향을 준 세기말 밴드 사운드에 백예린의 팝적인 보컬이 녹아들어 발룬티어스만의 스타일을 구현한다. 펑키(Funky)한 기타 리프와 경쾌한 드럼 비트가 이끄는 첫 번째 트랙 ‘Violet’은 마치 록적인 선언이라도 하듯 오프닝을 강렬하게 장식한다. 퍼지 톤의 리듬 기타 연주가 돋보이는 ‘Pinktop’, 오아시스를 떠오르게 하는 브릿팝 사운드의 ‘Time to fight back in my way’ 등 다채로운 작법으로 이들이 생각하는 록의 느낌을 자유롭게 그린다.

전통적으로 록 음악에 담긴 저항 정신을 반영하듯 노랫말의 표현 또한 직설적이고 날이 서 있다. 심적으로 불안한 상태를 노래한 ‘S.A.D’는 벅차오르는 배킹 기타 위로 분노를 터뜨리며 야성적인 보컬과 스포티한 밴드 사운드의 ‘Medicine’ 역시 남들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는 반항적인 가사가 돋보인다. 핑크 탑을 입은 남자를 소재로 사회적인 편견을 지적한 ‘Pinktop’은 취향과 자유로 귀결되는 밴드의 방향성도 드러낸다.

록의 전성기를 기억하는 이들에게 새롭거나 특별한 앨범은 아니다. 록의 원형을 추구하기보다는 팝의 색깔도 섞여 있으며 비슷한 스타일을 구가했던 여러 아티스트들을 떠오르게 한다는 점에서 신선하지만은 않다. 그럼에도 이 음반은 마이너한 장르를 소비하지 않는 세대에게 록에 대한 접근성을 높여주고 마니아층에게는 과거를 향한 향수를 자극한다. 대중성이 강한 젊은 뮤지션이 유행에 휩쓸리지 않고 자신의 취향을 밀고 나가는 패기와 자유분방한 색채를 가감 없이 드러냈다는 점에서 < The Volunteers >는 의미 있는 시작점이다.

-수록곡-

  1. Violet
  2. Pinktop
  3. Let me go!
  4. Time to fight back in my way
  5. Radio
  6. Crap
  7. Nicer
  8. Medicine
  9. S.A.D
  10. Summ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