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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Feature

2021 올해의 팝 싱글

2020년대라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 지도 어느덧 1년, 작년과도 또 한 번 첨예하게 달라진 문화와 취향은 음악사의 새로운 지면을 장식한다. 그 어느 때보다도 수많은 장르가 범람하고 개성이 대두되는 다양성의 시대. 신인과 고참의 뚜렷한 자기 피력이 전투적으로 부딪히고 교차하는 2021년의 팝 싱글 10곡을 선정한다. 글의 순서는 순위와 무관하다.

실크 소닉(Silk Sonic) ‘Leave the door open’

기대하긴 했지만, 이 정도로 제대로일 줄이야! 1970년대 소울에 새 숨결을 불어 넣기 위해 뭉친 브루노 마스와 앤더슨 팩의 합동 작전은 그 시작인 ‘Leave the door open’에서부터 빈티지의 영광스러운 부활을 선포했다. 둘이 태어나기도 십 년도 더 전에 위세를 떨치던 스타일이다. 그런데 그 시절 명작을 빼다 박은 듯 매력적이다. 도처가 노스탤지어다. 은은하고도 후텁지근한 장르 특유의 무드와 감미로운 백 보컬, 거친 톤을 구사하면서도 저절로 어깨춤을 추게 하는 앤더슨 팩의 목소리, 미성과 시원한 고음을 오가며 예쁘게 수놓은 브루노 마스의 고감도 후렴구까지. 기대를 상찬으로 맞바꾼 단연 올해 최고의 콜라보다.

깊이 있는 브로디 브라운(Brody Brown)의 베이스 라인과 1970년대 초 필리 소울에 뿌리내리고 있는 담백한 스트링을 비롯한 수준 높은 세션도 근사하지만, 그 앞의 친근한 노랫말이 무엇보다 재미다. 흑인 음악 특유의, 그리고 기본 토대라 할 수 있는 관능의 매력에 충실한 섹스어필이 웃음을 유발할 정도로 노골적이고 능글맞은 언사로 새겨지는데 이게 도리어 무장을 해제시킨다. 달콤한 멜로디만큼이나 그들이 만끽한 성공의 맛 역시 달았다. 브루노 마스의 여덟 번째, 앤더슨 팩의 첫 번째 빌보드 넘버원 곡. (이홍현)

올리비아 로드리고(Olivia Rodrigo) ‘Driver’s license’

틴아이돌 배우 출신 올리비아 로드리고의 데뷔곡이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2003년에 태어난 이 10대 소녀는 가식 없는 가창력으로 또래와 기성세대 모두를 감동시켰고 감정선을 자극하는 솔직함은 노래를 살렸다. 두려움 없는 사랑이 깨졌을 때 겪는 젊은이의 자기 파괴적인 심정과 어쩔 줄 몰라 하는 혼란스런 모습조차 감추지 않았다.

스타라는 이미지로 가려진 본래 모습을 솔직하게 드러낸 이 신인은 개인적인 분노와 회한, 아픈 추억을 예술로 승화하며 자신을 하이틴 스타에서 아티스트로 끌어올렸다. 누구나 겪는 이별의 슬픔을 과감하게 표현한 ‘Driver’s license’는 2021년의 ‘실연 송’. 아름답고 순수하고 재능 있는 올리비아 로드리고에게 상처를 준 조슈아 바셋이 밉다. (소승근)

방탄소년단(BTS) ‘Permission to dance’

가볍지만 통렬한 선포다. ‘Butter’로 빌보드 1위를 차지하며 모두의 주목을 받은 가운데, 이에 대한 소감으로 가져온 행보는 다름 아닌 춤에 대한 갈망이었으니. 유례없는 코로나19 팬데믹 사태로 서로 간의 교류가 단단히 걸어잠긴 상황 속 BTS가 마련한 것은 각종 결핍에 시달리는 현 세대를 위한 ‘내적 댄스’의 창구였다.

작금의 BTS 신화는 단순 차트의 지표나 기록만으로 설명이 불가능하다. 숫자로 이루어진 데이터의 이면에 존재하는, 전세계를 활보하며 젊음의 소리를 대변하고 대중에게 긍정적 흐름을 전파하는 문화 동맥의 역할을 놓치기 쉽기 때문. 그런 의미에서 사회가 미처 챙기지 못한 개개인의 움직임 욕구를 부드럽고 면밀하게 채워준 산뜻한 혈류 ‘Permission to dance’는 팝스타가 지닐 수 있는 좋은 영향의 사례로 남을 것이다. (장준환)

더 키드 라로이, 저스틴 비버(The Kid Laroi, Justin Bieber) ‘Stay’

더 키드 라로이, 저스틴 비버의 ‘Stay’가 ‘Butter’와 ‘Permission to dance’로 빌보드 HOT 100에서 10주 연속 1위를 달리던 BTS를 막았다. < Justice >와 타이틀곡 ‘Peaches’로 한차례 정상을 찍었던 저스틴 비버는 자신의 어린 시절이 겹쳐 보였는지 9살 어린 새 시대의 호주 뮤지션과 의기투합해 현시대 가장 핫한 뮤지션을 꺾은 것이다.

비속어 섞어가며 내게 머물기를 바라는 가사와는 다르게 속도감 있는 전개는 모두 비키라는 듯 쉴새 없이 달려 나간다. 기타를 제거한 펑크(Punk)같이 반복-간결-짧은 노래는 빠른 유행과 숏폼(Short-form) 콘텐츠를 선호하는 Z세대를 취향 저격하며 두 번이나 차트 재등정에 성공한다. ‘Stay’, ‘Butter’, ‘Mood’ 등 3분 미만의 곡들이 유행한 올해를 대표하는 곡. (임동엽)

존 메이어(John Mayer) ‘Last train home’

2018년 발매한 신보의 첫 예고편 ‘New light’부터 유추할 수 있었다. 명실상부 현시대의 기타 히어로 존 메이어가 거듭 영감의 원천을 고백한다. 토토의 메가 히트곡 ‘Africa’를 오마주한 ‘마지막 열차’의 행선지는 1980년대 소프트 록. 팝 가수와 블루스 기타리스트의 경계를 넘나들며 어느덧 불혹의 나이를 넘긴 그는 자신의 유년시절 흘러나왔던 곡을 소환해 선배 그룹과 동시대 아티스트들에게 경의를 표했다.

노스탤지어로 주조한 결과물은 탄탄한 지원군을 갖춘다. 향수를 자극하는 신시사이저와 퍼커션 사운드는 토토와 합주 경험이 있는 키보디스트 그레그 필린게이즈와 퍼커셔니스트 레니 카스트로가 담당하고 컨트리 가수 마렌 모리스의 백업 보컬로 풍성함을 더했다. 재현의 미학은 공간감을 머금고 깨끗이 압축된 기타 사운드가 느긋한 보컬과 자연스레 포개지며 완성된다. 여유를 두른 40대의 존 메이어가 1980년대에 보내는 격조 높은 찬사다. 에릭 클랩튼의 바통을 이어받은 ‘뉴 슬로우핸드’는 바위 밑에 묻어 두었던 테이프를 되감아 모던 클래식 록 넘버를 탄생시켰다. (김성욱)

릴 나스 엑스(Lil Nas X) ‘Industry baby’

카우보이모자를 쓰고 컨트리 랩을 하던 2년 전 루키가 어느덧 힙합 신을 주도하는, 그리고 소수자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신흥 메시아로 거듭나고 있다. ‘Old town road’의 유례없는 흥행에도 원 히트 원더에 그칠 거라는 항간의 의견은 이제 무색할 뿐. 커밍아웃을 기점으로 과감한 행보를 이어나간 릴 나스 엑스의 미래는 역사의 뒤안길이 아닌 개척자의 천명(天命)에 가까워 보인다.

무기는 화제성이지만 그 총알은 명료함이다. 카니예 웨스트의 손길이 닿은 수려한 멜로디 메이킹과 중저음 톤을 살린 캐치한 훅이 빛을 발했다. 도발적인 뮤직비디오와 당당한 충격으로 무장한 ‘Industry baby’가 대중을 현혹하여 빌보드 정상에 오른 것은 한 개인이, 혹은 한 곡이 거대한 외압을 타파하고 인정받는 순간일테니, 과연 올해를 대표할 팝 랩의 모범적인 효시 중 하나다. (장준환)

시저(SZA) ‘Good days’

불안이 잠식한 세상에 스며든 고결한 위로의 속삭임. 팬데믹이란 생소했던 단어가 익숙해질 만큼 일상엔 끝이 보이지 않는 공포가 서려 있다. ‘좋은 날’이란 흔한 말이 쉽게 꺼내지 못하는 안부가 된 지금, 희망은 우연히 우리를 찾아왔고 그곳엔 시저의 음성이 흐르고 있었다. 그는 운명을 깨달은 듯 묵혀둔 멜로디로 급작스럽게 성소(聖所)를 마련했고 직접 기수가 되어 지친 이들을 위한 성가를 선창했다. 곡의 제목은 ‘Good days’. 정확히 2020년 크리스마스에 외친, 내일을 가로막은 벽을 허물 함성의 시작이었다.

신비로울 만큼 영적이다. 어쿠스틱 기타의 선율과 대비되는 전자음의 조화로 탄생한 몽환적 공간엔 걱정 하나 존재하지 않는다. 물감이 퍼져나가듯 잔잔하게 빈자리를 물들이는 목소리가 동행자인 제이콥 콜리어와 함께 청자의 굳어있던 상처를 치유하며 안식으로 안내한다. 그렇게 고통의 종식이란 모두의 염원은 물결을 타고 ‘Good days’를 시저의 빌보드 핫 100 최고 기록인 9위까지 이끌며 감응한다. 발매한 지 1년. 이 지독한 나날은 아직 해소될 기미가 보이지 않지만, 마음에 좋은 날을 품고서 빛을 기다린다는 차분한 노랫말이 인도하는 결과는 분명하다. 시련을 견뎌내고 결국 행복을 찾은 욥과 같이. (손기호)

걸 인 레드(Girl In Red) ‘Serotonin’

올해 차트를 수놓은 또래 뮤지션에 비해 많이 알려지지 않았으나 걸 인 레드 역시 Z세대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는 싱어송라이터다. 첫 싱글 ‘I wanna be your girlfriend’의 히트로 ‘걸 인 레드 음악 들어?’라는 질문이 퀴어 식별에 사용된 덕분. 그의 음악적 질료는 현재 겪고 있는 생생한 고민과 경험이며 돌려말하는 법 없이 노골적인 가사가 인기 비결이다.

‘Serotonin’에서도 자신이 앓고 있는 강박증인 침투적 사고에 대해서 털어놓았다. 정신질환은 사회에서 터부시하는 주제지만 걸 인 레드는 솔직한 고백으로 코로나 블루와 같은 정신건강 문제를 가장 많이 겪고 있는 Z세대와 상호 연결고리를 마련했다. 다만 우울한 정서의 곡들이 뱉어내는 끈적한 감정과 멜로디는 모두 들어냈다. 산발적으로 내뱉는 건조한 래핑과 청량한 기타 리프는 부정적인 감정을 씻어내듯 경쾌하다. 불안과 우울의 시대에 어른으로 성장하고 있는 이들을 위한 듣는 ‘행복 호르몬’이다. (정수민)

울프 앨리스(Wolf Alice) ‘Smile’

1990년대 그런지 밴드들을 소환하는 파괴적인 기타 소리에 1980년대 신스팝 시대의 신시사이저 음색을 접붙인다. 30초간의 오마주는 보컬 엘리 로셀의 랩 혹은 주문으로 현대성을 껴안고 그가 내뱉는 단어들은 감정에 관한 직설화법이다. 지루할 새 없이 몰아치는 다이나믹스. 폭발성이 웅크린 개러지 록이란 측면에서 정규 2집 < Visions Of A Life >의 ‘Yuk foo’와 닮았다.

가끔은 남들의 시선 따윈 집어치우고 마음 가는 대로 살고 싶다. 감정, 성격, 취향. 자아를 이루는 모든 부면에서 당당해질 것을 주창하며 타인의 그 영역을 침범할 경우 성난 늑대처럼 으르렁댄다. 그러나 분노 표출만이 곡의 전부는 아니다. 후렴구에 들어서면 찰랑거리는 기타 스트로크로 경계심을 거두고 ‘길을 잃은 영혼들이 술집에 모인다’라며 연대를 강조한다. 내면의 투영부터 타인의 포용까지 짧은 곡에 너른 내용을 담아냈다. (염동교)

핑크 스웨츠(Pink Sweat$) ‘At my worst’

종종 해외보다 국내에서 더 많은 사랑을 받는 팝송이 튀어나올 때가 있다. 2021년 상반기를 은은한 핑크빛 구름으로 감싸는 ‘At my worst’가 그 주인공이다. 다소 늦은 나이로 데뷔, 적은 작품 수라는 불리한 조건임에도 한국이 그에게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확실하다. 프로그램 < 윤스테이 >의 배경음악, 켈라니의 피처링 버전 그리고 BTS 정국의 커버 영상. 이 3가지가 작년에 발매한 곡을 힘껏 견인한 요인이다.

올해도 이전과 별반 다름없는 삶이었다. 건조하고 말라버린 세상에 핑크 스웨츠가 생동감을 불어넣는 방식은 간단하다. 단순 멜로디와 ‘최악의 상황에도 널 위해 뭐든지 하겠다’라는 달짝지근한 맹세는 여전히 따스한 위로를 필요로 하는 이들의 마음을 차분히 채워 나갔다. 자장가처럼 말랑하게 스며들어 대중의 니즈를 정확히 파악한 정타. 이것이 힐링의 기본 공식 아닐까. (임선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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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P Single Single

콜드플레이(Coldplay) ‘My universe (With BTS)’ (2021)

평가: 3/5

콜드플레이가 ‘Higher power’에서 보여준 밝은 분위기는 방탄소년단이 부른 ‘Permission to dance’의 무한 에너지와 만나 긍정주의를 이룩한다. 25년 경력의 록밴드와 가장 영향력 있는 팝스타는 생경했던 서로의 영역에 다가가 조화로운 싱글을 완성했고 히트 메이커 프로듀서 맥스 마틴은 고감도 사운드 조율로 힘을 보탰다.

영어와 한국어 가사의 콜라보가 빛을 발하는 ‘My universe’가 콜드플레이의 9번째 정규 앨범 < Music Of The Spheres >에 수록될 예정이라 한국 팬들에게는 더욱 반갑다. 한글을 선택해 다양성을 존중하고 장벽을 무너뜨린다는 지향점을 드러냈고 흡인력 있는 후렴구를 중심에 두고 보컬과 랩을 적절하게 배치해 방탄소년단 멤버들의 개성도 살렸다. 공간감이 두드러지는 콜드플레이의 웅장한 사운드와 방탄소년단의 리듬감이 합쳐져 대형 공연장에 잘 어울리는 신스팝 넘버가 탄생했다.

콜드플레이와 방탄소년단은 ‘My universe’를 통해 다름의 인정과 포용을 말한다. 팬데믹이 남긴 물리적 내상, 인종 차별과 환경오염 등 여러 사회 문제로 고통받는 지금 이 시대에 최고의 두 밴드가 힘을 모아 사랑과 화합을 역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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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POP Single Single

방탄소년단(BTS) ‘Permission to dance’ (2021)

평가: 3.5/5

모든 게 예상 밖이다. 댄스가 들어간 제목은 ‘Dynamite’와 ‘Butter’보다 훨씬 밝은 에너지를 지니거나 강도 높은 퍼포먼스를 선보일 것이며, 장르 역시 이전의 분위기를 이어받아 디스코, 펑크(Funk)에 힘주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신곡은 BTS가 지배하는 먹먹한 감성을 녹여내는 반전을 꾀했다. ‘Make it right’에서 이미 한번 손을 잡았던 에드 시런과의 재결합이 그룹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토대로 진행되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는 이들에게 어떤 재료를 곁들였을 때 본디의 색채가 빛나는지 알고 있고, 한동안 볼 수 없었던 ‘신나지만 어딘가 서정적인’ 분위기를 담아냈다.

앞선 두 영어 곡은 당장 눈앞의 힘듦을 잊게 할 흥을 강조했다면 이번은 잔잔한 치유로 온기를 전달한다. 이를 극대화하기 위해 가스펠을 취하는데, 먼저 랩 파트를 과감히 삭제하여 부드럽게 흘러가도록 연출하고 곳곳에 자리한 일렉트릭 피아노와 현악기로 따스함을 선사한다. 후렴구에서 터트리지 않고 오히려 계단처럼 내려가는 음, 후반부의 그룹 코러스 또한 가스펠의 전형이다. 자극적인 요소를 덜어내다 보니 심심하게 다가올 수 있으나 세 곡 중 가장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섬세함이 있다.

답습은 아니더라도 세계 시장에 규격화된 행보를 보니 블록버스터의 장중함이 그리운 것도 사실이다. 이 모습도 저 모습도 모두 방탄소년단의 자아라지만 신곡에서 살짝 비춘 예전의 감성이 오히려 그때를 찾게 되는 목마름을 낳았다. ‘팝’스타 BTS보다 팝스타 ‘BTS’가 보고 싶어지는 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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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Feature

제 63회 그래미 시상식 결산 편

다양성과 공정성이라는 문제로 골머리를 앓던 그래미 어워드가 범세계적인 전염병 때문에 행사 날짜까지 옮겼다. 붉은 융단 위에 별들이 쏟아지던 그때 한국은 3월 15일 아침 9시였다.

제 63회 그래미 시상식은 무관중인 상태에서 마스크를 착용했던 여타의 국내 시상식처럼 익숙한 방식으로 진행됐다. 지난 어워드에서 두 차례 연속으로 사회를 맡았던 앨리샤 키스를 대신해 이번에는 언변이 남다른 코미디언 트레버 노아가 마이크를 잡았다. 코로나로 인해 달라진 식순과 돌발상황에 대비함과 동시에 꾸준히 제기되고 있는 논란의 감정을 내려놓고 축제 자체를 즐기기 위한 의도로 보인다.

코로나에 대응하는 방식

매년 특별한 협업 스테이지를 선보이던 그래미가 코로나의 영향으로 그 규모를 줄였다. 대편성의 무대가 압도하던 과거와 달리 대부분의 뮤지션이 간단한 구성으로 자신의 노래를 한 곡씩 부르고 마치며 ‘2020년’이라는 이름의 플레이리스트를 채웠다. 카메라를 다각도로 활용한 배드 버니와 제이 코르테즈의 ‘Dakiti’, 복고적인 색채와 조명이 잘 묻어난 실크 소닉(앤더슨 팩과 브루노 마스)의 ‘Leave the door open’ 무대가 무관중에 의한 중계의 이점을 적절히 살린 예다.

인상적인 부분은 공연 중간중간 카메라에 잡히는 뮤지션들의 얼굴이다. 관중이 없기에 공연자가 관객이 되고, 관객이 다시 공연자가 되는 이 모습은 마치 아티스트끼리 여는 뒤풀이 파티와 같았다. 자신의 차례가 끝난 뒤 술인지 물인지 모를 잔을 들고 앉아 있는 배드 버니부터 카디 비와 매간 더 스탈리온의 무대를 미친 듯 즐기는 포스트 말론까지 재밌는 장면이 아닐 수가 없다. 관중이 없다고 열기가 식지는 않았다.

코로나 대응 공연보다 대단하고 놀라웠던 점은 따로 있다. 경영난에 처한 내슈빌의 스테이션 인, 뉴욕의 아폴로 시어터 등 총 4곳의 소규모 공연장 직원들이 주요 부문 후보를 소개하며 공연 업계의 실정을 알린 부분이다. 국내에서도 화제인 이 문제에 대해 대중음악의 본토인 미국, 그중에서도 권위 있다는 단체에서는 이를 어떻게 조명하고 고민하는지 엿볼 수 있었다. 이외에도 올해의 레코드 부문 후보의 인터뷰를 티저로 만들거나, 공연을 녹화본으로 대처하며, 화상으로 시상식에 참여하는 등 세심한 준비가 돋보였다.

역사의 절차를 밟아가는 방탄소년단

한국 가수가 그래미 어워드에서 단독 공연을 할 줄이야. 녹화 중계였지만 여의도 빌딩의 헬리패드까지 올라가서 노래하는 BTS를 전 세계가 지켜봤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무대 사이즈로만 보면 제 63회 그래미 시상식 무대 중에서는 최대 크기였다. 제 61회에서는 시상자로, 제 62회에서는 릴 나스 엑스와 함께 노래했던 이력을 생각하면 단계적으로 나아가고 있는 상황이다.

퍼포머로 참여한 것뿐만 아니라 베스트 팝 듀오/그룹 퍼포먼스 부문에도 ‘Dynamite’로 이름을 올렸다. ‘Rain on me’를 부른 레이디 가가와 아리아나 그란데에게 아쉽게 트로피가 넘어갔지만 후보에 오른 것만으로도 큰 성과다. 농담 반 진담 반으로 해외 학부모들 사이에서는 카디 비의 ‘WAP’ 같은 노래와 비교해 ‘건전’ 가요 & 가수로 불리고 있다니 생각도 못 한 성과가 아닐 수 없다.

논란을 잠시 잠재우다.

인종차별부터 남녀차별까지 매년 습관처럼 욕을 먹던 레코딩 아카데미(레코드 예술 과학 아카데미, NARAS)가 심사위원단을 대폭 개편하면서 제 61회 그래미 시상식에서는 본상을 차일디시 감비노에게 2개, 두아 리파와 케이시 머스그레이브스에게 각각 1개씩 수여해 조금은 변화된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작년 빌리 아일리시에게 주요 부문 4개를 쓸어주며 ‘몰아주기’ 논란을 다시 가중했다. 

빌보드 HOT 100에서 ’Blinding lights’로 1년 동안 10위권을 지킨 대기록의 주인공 위켄드가 제 63회 그래미 어워드에서 후보 무관에 그치자 그는 영원한 보이콧을 선언했다. 시상식 전부터 연일 얘깃거리였다. 이러한 여러 문제를 의식한 듯 이번에는 시상식의 주요 부문을 안전하게 ‘나눠주기’로 결정했다. 올해의 레코드, 앨범, 노래, 그리고 신인상을 빌리 아일리시의 ‘Everything I wanted’, 테일러 스위프트의 < Folklore >, H.E.R의 ‘I can’t breathe’, 그리고 메간 더 스탈리온이 수상하며 장내 가장 큰 갈채를 받았다.

후보만 봐도 반 이상이 여성이고 흑인과 백인이 반반이다. 그중 ‘I can’t breathe’는 BLM을 대표하는 노래다. 위켄드 개인과 팬들에게는 안타까운 일이며, 그의 사건은 분명 레코딩 아카데미에 문제가 있음을 알려주고 있지만, 올해의 본상 결과는 아카데미 위원회도 이제 대중과 사회의 눈치를 보고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제 63회 그래미 시상식의 주인공

진정한 주연은 따로 있었다. 9개 부문의 후보에 오르고 4개 부문을 수상한 그의 이름 비욘세. 제 63회 그래미 어워드 후보와 수상에서 최다를 기록했지만 이는 귀여운 수준이다. 올해 베스트 알앤비 퍼포먼스, 베스트 랩 퍼포먼스, 베스트 랩 송, 베스트 뮤직비디오를 거머쥐면서 그는 역대 총 28개의 그래미상을 따냈다. 여성 최다 수상자임과 동시에 남자를 포함하면 거장 프로듀서 퀸시 존스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공동 2등이다.

비욘세에 이어 주인공이 또 있다. 본상을 2년 연속 수상한 빌리 아일리시다. 작년 주요 부문을 싹쓸이한 후 그가 받은 ‘레코드 오브 더 이어’의 타이기록은 U2와 로버타 플랙만이 가진 진기록이다. 빌리 아일리시에 이어 주인공이 또 있다. < Fearless >, < 1989 >, 그리고 2020년 포크를 시도하며 예술성을 인정받은 < Folklore >로 ‘앨범 오브 더 이어’를 3회나 수상한 테일러 스위프트다. 엔지니어를 제외한 뮤지션으로서는 프랭크 시나트라, 스티비 원더 등과 같은 레전드들과 동일한 선상에 섰다. 빌리 아일리시와 테일러 스위프트의 나이를 생각하면 이는 여전히 현재 진행 중이다.

음악으로 치유하다.

코로나의 영향인지 지난 한 해도 우리의 곁을 떠나간 사람들이 많았다. ‘로큰롤의 왕’ 리틀 리처드, ‘갬블러’ 케니 로저스, 작년 그래미 평생 공로상을 받은 존 프라인, 코로나 위로송 ‘You’ll never walk alone’의 주역 제리 마스던 등 트리뷰트한 뮤지션만 이 정도다. 팬데믹 상황의 힘든 위기 속에서 우리가 그들의 음악으로 치유를 받고, 한데 모여 떠난 이들을 기리는 이런 자리는 그래미 어워드가 아니면 힘들었을 것이다. 집에서만 머무르던 2020년 ‘음악’은 가장 큰 치료제였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다양성이라는 측면에서 이번 시상식은 성공에 가까웠다. 본상 수상자와 각종 기록을 세운 뮤지션들이 이를 증명한다. 여성 컨트리 뮤지션 미란다 램버트, 마렌 모리스, 그리고 흑인 여성 컨트리 뮤지션인 미키 가이턴의 공연까지 집중 조명하며 형식적인 노력까지 놓치지 않았다. 아시아 가수 BTS도 빼놓을 수 없다.

물론 레코딩 아카데미 심사위원들은 다양성이라는 주제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들이 신경 쓰기도 전에, 흑인과 여성 뮤지션으로 대표되는 다양성의 세상이 이미 도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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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Feature

제 63회 그래미 시상식 노미네이트 편

제63회 그래미 어워드가 이틀 앞으로 다가왔다. 15일 오전 9시(미국 현지 시각 14일) 열리는 이번 그래미 어워드는 원래 1월 31일 개최 예정이었으나 시상식이 열리는 로스앤젤레스 컨벤션 센터 인근 지역 코로나 19 이슈로 인해 한 달 이상 연기됐다. 

오랜 시간 대중음악계 최고의 권위 시상식으로 여겨진 그래미였지만 최근 그 위상은 많이 추락한 상태다. 2010년대부터 여성 아티스트, 유색 인종 아티스트들에 대한 홀대 논란이 매년 반복되며 ‘화이트 그래미’라는 오명을 쓰고 있다. 의아한 수상 결과와 뚜렷한 개선점 부재로 그래미를 운영하고 수상자를 결정하는 레코딩 아카데미(레코드 예술과학아카데미, NARAS)에 대한 불신이 하늘을 찌르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우리에게는 최근 들어 가장 의미 있는, 또 주목해야 할 시상식이 되었다. 말도 많지만 꼭 지켜봐야 할 제63회 그래미 어워드를 소개한다.

역사를 쓴 방탄소년단

마침내 한국 가수가 그래미에 이름을 올렸다. 방탄소년단(BTS)은 올해 그래미 어워드 ‘베스트 팝 듀오/그룹 퍼포먼스(Best Pop Duo/Group Performance)’ 부문에 ‘Dynamite’로 노미네이트 되며 한국 대중가수 최초로 그래미 어워드에서 경쟁하게 됐다. 2019년 ‘베스트 알앤비 부문’ 시상자로 처음 그래미 무대를 밟은 방탄소년단은 지난해 래퍼 릴 나스 엑스(Lil Nas X)와 합동 공연을 펼친 데 이어 올해 수상 후보로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단독 퍼포먼스도 진행한다. 

‘Dynamite’는 명실상부 2020년을 대표하는 히트곡이다. 한국 아티스트 최초의 빌보드 싱글 차트 정상 등극 쾌거에 이어 3주간 1위를 고수했고, 현재까지도 28주 연속 톱 50 내 진입하는 등 최고의 인기를 누렸다. 이후 조쉬 685와 함께한 ‘Savage Love’ 리믹스 역시 정상에 오르더니 ‘Life Goes On’으로는 빌보드 싱글 차트 1위 데뷔라는 기록도 세웠다. 

세계적인 팝스타가 된 방탄소년단은 이제 보수적인 그래미도 외면할 수 없는 이름이 되었다. 물론 그래미 어워드의 핵심인 본상 부문 (올해의 노래, 올해의 음반, 올해의 레코드, 올해의 신인) 노미네이트 되지 못한 것은 아쉽다. 지난해 정규 앨범 < Map Of The Soul : 7 >, < BE > 등 활발한 활동을 펼쳤음에도 ‘Dynamite’ 한 곡만 선정된 것 역시 찝찝하다. 그래미는 ‘베스트 팝 듀오/그룹 퍼포먼스’로 어느 정도 개혁 이미지를 취하고, 방탄소년단은 다음 단계를 위한 안정적인 도움닫기를 내딛는 모습이다.

수상 가능성이 높진 않다. 2012년 신설된 부문 ‘베스트 팝 듀오 / 그룹 퍼포먼스’에서 보이그룹이 후보로 오른 것은 2019년 백스트리트 보이즈와 2020년 조나스 브라더스 단 두 번 뿐이고 수상에도 실패했다. 올해 BTS 역시 레이디 가가와 아리아나 그란데, 저스틴 비버, 두아 리파와 제이 발빈, 테일러 스위프트 등 쟁쟁한 팝스타들과 경쟁을 펼친다. 

그럼에도 결과와 관계없이 후보에 오른 것만으로도 큰 의미다. 유색 인종, 미국 외 음악에 유독 인색한 레코딩 아카데미조차도 ‘Dynamite’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은 최근 영화 < 미나리 >의 골든 글로브 어워드 외국어영화상 수상 등 미국 내 아시아 커뮤니티의 영향력 증대와 케이팝의 글로벌 인기를 증명하는 부분이다. 향후 케이팝 그룹에게 멀게만 느껴졌던 ‘꿈의 무대’ 그래미 물꼬를 텄다는 사실도 중요하다. 

수상 유무와 관계없이 방탄소년단은 이미 큰 성과를 거뒀다. 아티스트와 관계자, 팬 ‘아미’ 모두 결과와 상관없이 편안한 마음으로 무대와 시상식을 즐기면 된다. 

위켄드 스넙(Snub), 위상 잃어가는 그래미

GRAMMYs 2021 Nominations: The Weeknd Slams Recording Academy After His Snub,  Says 'The Grammys Remain Corrupt' - Onhike - Latest News Bulletins

“그래미는 부패했다. (그들은) 음악계 투명성에 큰 빚을 지고 있다.”  

방탄소년단의 노미네이트 소식과 달리 올해 그래미 어워드에 대한 시선은 최악이다. 2020년을 지배한 히트곡 ‘Blinding Lights’의 주인공, 캐나다 팝 뮤지션 위켄드에게 본상 부문은 물론 단 하나의 부문도 허락하지 않은 것이 결정적이었다. 실망한 아티스트의 분노 어린 반응과 더불어 엘튼 존, 찰리 푸스, 키드 커디 같은 동료 뮤지션부터 빌보드, 롤링 스톤과 같은 음악지들까지 한 목소리로 비판을 쏟아냈다.

그래미 어워드를 둘러싼 논란은 하루 이틀이 아니지만 위켄드의 ‘스넙(Snub : 경멸의 의미를 담은 무시)’ 사건은 시상식의 공정성 자체를 뒤흔들고 있다. 특히 그래미 어워드의 후보를 검토하는, 이른바 ‘비밀 위원회(Secret Committee)’라 불리는 조직에 대한 분노가 크다. 

‘비밀 위원회’는 2만 3천여 장에 달하는 후보 작품들에 대한 레코딩 아카데미 회원들의 투표 결과를 검토해 후보를 최종 승인하는 집단이다. 철저히 비밀에 부쳐지는 이들이 음악적으로 편향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커져가고 있다. 지난해 레코딩 아카데미 내 성추행을 폭로하며 해고된 전직 CEO 데보라 듀건이 비밀 위원회의 투표 비리를 언급한 데 이어, 어제 (12일) 위켄드는 “비밀 위원회가 존재하는 한 그래미에 내 이름이 오를 일은 없을 것”이라며 향후 그래미 보이콧을 선언했다. 

zayn on Twitter: "Fuck the grammys and everyone associated. Unless you  shake hands and send gifts, there's no nomination considerations. Next year  I'll send you a basket of confectionary."

2020년 빌리 아일리시가 본상 4개 부문을 싹쓸이하며 증명된 그래미의 ‘몰아주기 관행’, 여성 및 유색 인종 투표인원을 충원함에도 큰 변화 없는 결과 역시 ‘비밀 위원회’의 전횡 때문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이해할 수 없는 후보 선정도 의혹의 일부다. 2010년부터 활동을 시작한 캐나다 DJ 케이트라나다(Kaytranada)가 올해의 신인 부문에 이름을 올리고 있고, 지난해 활약한 피오나 애플, 릴 우지 버트 등 아티스트들의 이름도 그래미에서 찾아볼 수 없다. 

한편으로는 그래미 어워드가 위켄드에게 지난 2월 7일 슈퍼볼 하프타임 쇼와 그래미 퍼포먼스 라이브 중 양자택일을 강요했다는 의혹까지 터지며 그래미에 대한 시선은 더욱 악화되었다. 슈퍼볼 무대를 택한 위켄드에게 그래미가 외면의 방식으로 보복했다는 주장이다. 보이그룹 원디렉션 출신의 솔로 가수 제인 말리크 역시 지난 8일 “악수나 선물을 건네지 않으면 노미네이션도 없다”며 그래미를 강도 높게 비판했다. 

비판 가운데 소소한 변화, 역사를 쓴 비욘세

이렇듯 산적한 비판을 해결해야 하는 그래미지만 시대의 흐름을 따라 변화를 준 부분도 있다. 올해부터 ‘어반(Urban)’이라는 장르 이름을 ‘프로그레시브 R&B(Progressive R&B)’로 대체하고 ‘월드 뮤직’ 부문을 ‘글로벌 뮤직’으로 바꾸는 등 신경을 썼다. 신인 부문의 발매곡 제한 규정을 철회한 것도 환영할 요소다. 

올해 그래미 어워드에 최다 노미네이트 된 아티스트는 비욘세다. 비욘세는 지난해 ‘Black Parade’와 래퍼 메간 더 스탤리온과 함께한 ‘Savage’로 총 9개 부문에 후보로 선정됐다. 이미 24번 그래미에서 수상한 비욘세는 이번 시상식으로 통산 79번 노미네이트 되며 가장 많이 그래미 후보로 오른 여성 아티스트 기록을 세웠다. 

두아 리파, 로디 리치, 테일러 스위프트가 6개 부문 노미네이트로 뒤를 따른다. < Future Nostalgia >로 2020년을 휩쓴 두아 리파는 올해의 앨범, ‘Don’t start now’로 올해의 레코드와 올해의 노래 부문을 거머쥐었다. 신성 로디 리치는 다베이비와 함께한 ‘Rockstar’로 올해의 레코드에, 본인의 히트곡 ‘The box’로 올해의 노래에 이름을 올렸다.

제62회 그래미 어워드에 불참했던 테일러 스위프트는 앞서 ‘베스트 팝/듀오 그룹 퍼포먼스’와 더불어 < folklore >로 올해의 앨범, ‘cardigan’으로 올해의 노래 부문에 노미네이트됐다. 지난해 본상을 싹쓸이한 빌리 아일리시가 올해 역시 ‘Everything I wanted‘로 본상 2개 부문(레코드, 노래)에 오른 모습 역시 눈길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