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기세가 조금씩 저물자 삭막했던 극장가에 활력이 돌기 시작했다. 지구촌 곳곳에는 흥미로운 작품 소식들이 당차게 고개를 내미는 추세다. 이러한 스크린 흐름에 발맞춰 IZM이 무비(Movie)와 이즘(IZM)을 합한 특집 ‘무비즘’을 준비했다. 시대를 풍미했던 아티스트의 명예를 재건하고 이름을 기억하자는 의미에서 매주 각 필자들이 음악가를 소재로 한 음악 영화를 선정해 소개한다. 열 아홉 번째는 7개의 서로 다른 자아 및 캐릭터로 밥 딜런의 음악 여정을 그린 < 아임 낫 데어 >다.
시대의 음유시인 밥 딜런을 이해하는 것은 쉽지 않다. 난해한 가사, 쉬이 멜로디를 캐치하기 어려운 노래들, 별다른 설명과 해석을 달지 않는 밥 딜런 본인의 성격까지 그의 음악 앞에 자리한 장벽은 공고하다. 그럼에도 밥 딜런은 활동명(실제 이름은 ‘로버트 짐머만’이다)을 제목으로 내세운 첫 번째 정규 음반 < Bob Dylan >(1962) 이후 2022년 현재까지 끝없이 회자하고, 소환되는 음악가다. 그 이유가 바로 오늘 소개할 영화 < 아임 낫 데어 >에 담겨있다.

그저, 감각(Sense)할 것
1970년대 화려한 글램 록의 시기를 담은 영화 < 벨벳 골드마인 >(1999)을 거쳐 오늘날 영화 < 캐롤 >(2016)로 국내에 많은 골수팬을 거느린 감독 토드 헤인즈가 메가폰을 잡았다. 그는 밥 딜런의 전기를 거칠게 풀어낸다. 6명의 배우, 7명의 캐릭터가 각기 다른 모습의 밥 딜런을 연기한다. 영화 속 각 주인공은 인종과 성향이, 사는 시대가 모두 다르다. 이를테면, ‘우디’라는 이름의 흑인 소년과 은퇴한 총잡이 ‘빌리’, 저항 음악으로 사랑받는 포크 가수 ‘잭’, 시인 ‘아서’가 한 화면 안에 담기는 식이다.

불친절하다. 하나의 줄기를 가지고 천천히 이야기를 쌓고 끝내 이를 터트리며 어떤 주제를 전하는 ‘기승전결’의 방식을 따르지 않는다. 다큐멘터리로 보아도 무방할 만큼 진득하게 말에 주목하고, 규칙 없이 각 캐릭터를 오고 간다. 시인 ‘아서’가 소심하고 불안정한 모습으로 묘사되는 동시에 은퇴한 총잡이 ‘빌리’는 한 발짝 뒤에서 사회를 따뜻하게 포용한다. 날뛰고, 널 뛰는 시선과 분위기의 교차 속에서 밥 딜런에 대한 사전 지식이 없는 혹자는 당황을 넘어 당혹스러운 상황에 놓일 수도 있다.
그저, 감각(Sense)할 것을 권한다. 이해하지 말고 느낄 것. 토드 헤인즈가 포착한 7개의 가면 아래 선 밥 딜런을 그저 감각하다 보면 실체가 선명해지는 경험을 할 수 있다.

모두가 밥 딜런의 자아 : 케이트 블란쳇의 ‘쥬드’, 히스 레저의 ‘로비’
1966년 오토바이 사고 이후 긴 시간의 잠적, 마약, 1970년대 말 갑작스런 기독교인으로서의 선언 등 밥 딜런의 음악 여정에는 다양한 사건이 동행한다. 영화 속 인물들은 그가 겪은(혹은 행한) 이러한 실제 사건을 중심으로 약간의 상상력을 덧대 창조됐다. 그중 눈여겨볼 캐릭터는 케이트 블란쳇이 열연한 ‘쥬드’와 히스 레저가 분한 ‘로비’다.

‘쥬드’의 등장은 1965년 뉴포트포크페스티벌(작품에서는 ‘뉴 잉글랜드 JAZZ & FOLK FESTIVAL’로 지칭된다)에서 시작된다. 무대에 오른 쥬드는 ‘일렉트릭 기타’를 메고 진한 블루스의 ‘Maggie’s farm’을 연주한다. 같은 날 연주한 ‘Like a rollingstone’이 빌보드 싱글차트 2위까지 오르며 ‘포크 록’의 선구자, 밥 딜런을 대표하지만 영화는 되레 조금은 덜 익숙한 ‘Maggie’s farm’을 소환해 포크와 시대를 배신했다는 이유로 지탄을 받던 시절의 그를 묘사한다. 명곡 ‘Ballad of a thin man’에 맞춰 언론을 향한 분노를 표출하는 장면은 ‘쥬드’의 정수이니 눈여겨봐도 좋겠다.

히스 레저가 맡은 ‘로비’는 밥 딜런의 실제 연인이었던 수즈 로틀로와 아내 사라 로운즈를 뒤섞은 듯한 인물 ‘클레어’를 통해 완성된다. 클레어와 사랑이 시작될 땐 사라 로운즈와의 웨딩 앨범으로 이해되곤 하는 < Blonde on Blonde >(1966)의 수록곡 ‘I want you’가 흘러나오고, 이별의 징조가 진해질 땐 실제 사랑의 끝을 달리고 있던 시기 발매한 < Blood on the Tracks >(1975)의 ‘Simple twist of fate’가 스피커를 채운다. 완전한 헤어짐 이후 절절한 비(悲)음으로 부르는 ‘Idiot wind’ 또한 밥 딜런의 인생을 이해하기에 적절한 트랙이다.
I’m not there, 나는 거기에 없다.
영화의 제목인 ‘I’m not there’은 밥 딜런의 곡에서 가져왔다. 오토바이 사고 이후 칩거할 당시 만든 노래이며 1975년 발매된 < The Basement Tapes >에 실릴 예정이었지만 실제 발표되지는 않았다. 오랫동안 해적판으로 떠돌다가 < The Genuine Basement Tapes, Vol2 >(1992)에 실렸고 이 작품의 사운드트랙으로 다시 한번 정식 발매됐다. 투박한 노이즈를 잘 살린 후배 그룹 소닉 유스의 재해석으로 밥 딜런의 생애를 음악으로 ‘정조준’한다.

‘나는 거기에 없다.’ 밥 딜런을 해석하기에 이보다 완벽한 문장이 있을까? 결국 영화가 ‘밥 딜런’을 바라보는 서로 다른 누군가의 시선을 묘사하며 비전형적으로 나아가듯, ‘I’m not there’라는 문장은 해석하기를 거부하며 그저 부르고 쓰는 것을 반복한 밥 딜런과 닮아있다. 나는 거기에 없다. 늘 사회와 시대 속에서 노래했지만 결코 대표하기를 원치 않았던 밥 딜런. 그를 이해하는 7개의 캐릭터 사이 실체 없는 밥 딜런이 짙고 연하게 움직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