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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현 ‘The Bridge’ (2023)

평가: 3/5

데뷔 25주년을 맞아 정규 음반을 발매한 박정현은 소회가 가득했을 감정의 갈무리를 < The Bridge >라는 제목으로 담아냈다. 오랜 기간 활동한 베테랑 가수지만 이 앨범을 분기점으로 삼아 내일을 희망하겠다는 의지다. 또한 가수의 음악을 지탱해왔던 가창력이라는 음악적인 자산을 놓지 않으며 그동안 함께한 팬들의 기대에 너끈히 부응한다. 박정현은 그의 열 번째 앨범으로 자신의 과거와 미래, 그리고 그를 사랑해주는 이들을 하나로 묶어내려 한다.

이를 위해 박정현의 보컬은 언제나 그랬듯 절정을 달린다. 어떠한 감정을 발하기 위해 냉정하게 계산하기 보단 치열하게 음악에 반응하며 자신의 재능에 몸을 맡기는 노래다. 데뷔 초창기 때에 비해 육체적인 기민함은 떨어졌지만 타고난 감각은 여전하기에 단점으로 여겨질 정도는 아니다. 외려 곡 전반을 이끌어가는 집중력은 성장한 모습이다. 스트링이 도드라지는 발라드 곡 ‘그대라는 바다’에서 곡의 역동성을 힘 있게 추동하는 그의 몰입이 잘 드러난다.

산뜻한 그루브의 곡들도 매력을 더한다. 격정적인 감정을 노래한 다른 곡들과는 달리 귀에 감기는 멜로디의 ‘Imma fly’와 가족을 이루는 행복을 노래한 ‘Let`s be a family’에선 가벼운 사운드로 기분 좋은 근사함을 만든다. 지금까지 박정현을 대표하는 곡들은 스케일이 큰 곡들이었기에 잔잔한 스타일의 곡들이 주목을 덜 받았다. 편곡이 전반적으로 힘이 빠지니 이렇게 깔끔한 곡들이 빛을 발한다.

< The Bridge >는 각 계절마다 싱글 혹은 EP를 발매하며 이를 묶어낸 음반이다. 이에 사계절을 완성하는 의미를 확보하지만 각기 다른 계절감의 곡들을 자연스럽게 엮어야 하는 과제를 떠안게 된다. 아쉽게도 이 앨범은 콘셉트나 스타일의 측면에서 일관성을 확보하지 못하며 전혀 다른 계절감의 곡들이 모여야만 하는 당위를 제시하는 데에 실패한다. 때문에 풀 레인지로 들었을 때 트랙 간의 전환이 얼마간 갑작스럽다. 각각의 곡들이 지닌 완성도를 생각하면 이는 아쉬운 지점이다.

앨범의 얄궂은 단점에도 불구하고 박정현은 < The Bridge >를 통해 그가 이야기하려는 바를 선명하게 드러낸다. 가창력이라는 굳건한 음악적 기반, 가수를 사랑해주는 이들을 향한 애정, 소통의 가치에 관한 믿음이 이 앨범에 담겼다. 그는 오랜 기간의 경력을 자랑하는 것에만 그치지 않고 자신의 과거와 미래를 이으며 새로운 성장을 암시한다. 노래를 통해 대중과 감성으로 연결되는 특별한 순간을 확실한 현역으로서 앞으로도 누릴 것임을 예고한다.

-수록곡-
1. Intro: 걸음걸이
2. 그대라는 바다
3. Imma fly
4. 말 한 마디
5. 그대 품에 머물고 싶어라
6. 나의 봄
7. 이름을 잃은 별을 이어서
8. Only one
9. 하늘을 날다
10. Let’s be a family
11. 다시 겨울이야 (Full ver.)
12. Constellations
13. 겨울 할 일
14. Inertia
15. The magic I once had
16. Winter’s heart
17. 다시 겨울이야 (4seasons 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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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시경 ‘ㅅ (시옷)'(2021)

평가: 3.5/5

10년 만에 발매한 여덟 번째 정규작 < ㅅ(시옷) >은 긴 공백에 대한 갈증을 단번에 채워준다. 사람, 사랑, 삶, 시간 등 시옷으로 시작하는 일상 속의 소중한 것을 담아낸 음반은 발라드의 일반적인 주제인 사랑과 그리움을 다루고 있지만 각 곡의 의미를 정교하게 풀어낸 자신만의 이야기를 전달한다.

앨범을 발표하기까지 시간이 걸렸던 만큼 8집에는 ‘너의 모든 순간’과 ‘우린 제법 잘 어울려요’의 작사를 맡았던 심현보를 비롯해 김이나, 조규찬, 나원주, 권순관 등 다양한 아티스트와 작업한 완성도 높은 14곡이 실려있다. 조규찬이 작사, 작곡한 ‘방랑자’는 밤 기차에 오른 화자가 바깥 풍경을 보며 느낀 고독과 처연함을 서정적인 가사로 표현하고 후반부의 변주가 인상적인 ‘널 잊는 기적은 없었다’는 고조되는 현악기가 짙은 감정선을 제공하며 이 과정에서 성시경의 섬세한 감정 전달력이 돋보인다.

중저음의 목소리, 서정적 가사와 따뜻한 멜로디는 여전하지만 사랑 노래를 주로 발표해온 성시경은 이번 음반의 타이틀 곡으로 댄스 넘버 ‘I love u’를 내세웠다. 발라드 가수들의 전성기였던 2000년대 초반과 달리 댄스음악이 주를 이루는 현재의 흐름을 따라 머릿곡으로 공개한 ‘I love u’는 데뷔앨범 < 처음처럼 >에 수록된 ‘미소천사’ 이후 20년 만이다. 오랫동안 기다려준 팬들에게 고마움을 표현하며 다가오는 여름에 어울리는 이미지를 구현하기 위해 탄생한 ‘I love u’는 산뜻한 피아노와 살랑살랑한 안무, 속삭이는 음색을 내세워 ‘우린 제법 잘 어울려요’의 고백 송 계보를 잇는다.

성시경이 꾸준히 관심 받는 이유는 일상 속의 작은 것들을 특별하게 만드는 호소력에 있다. < ㅅ(시옷) >은 ‘거리에서’ 같은 중독성 강한 멜로디는 아니지만 정제된 가사와 부드러운 선율이 마음에 잔잔한 파동을 일으키는 앨범이다.

– 수록곡 –
1. And we go
2. 방랑자
3. 우리 한 때 사랑한 건
4. I love u
5. 너를 사랑했던 시간
6. 이음새
7. 마음을 담아
8. Mom and dad
9. 널 잊는 기적은 없다
10. What a feeling
11. 나의 밤 나의 너
12. 영원히
13. 자장가
14. 첫 겨울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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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승환 ‘다섯 마디'(2021)

평가: 3/5

‘발라드 세손(世孫)’ 정승환이 초심으로 돌아왔다. 데뷔 앨범 < 목소리 >를 시작으로 줄곧 한 장르만을 고수해 왔지만 대표곡 ‘이 바보야’, ‘너였다면’ 같은 정통의 스타일만을 고집하지는 않았다. 2019년에 발매된 앨범 < 안녕, 나의 우주 >는 동화적인 분위기의 말랑말랑한 곡들 위주였고 최근에 공개했던 ‘언제라도 어디에서라도’, ‘십이월 이십오일의 고백’은 각각 여름과 겨울을 겨냥한 곡이었다. 새로운 시도를 이어오던 정승환은 < 다섯 마디 >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시그니처 음악으로 돌아와 그가 가진 목소리의 강점을 발휘한다.

정승환 특유의 말하듯 자연스러운 가창에 집중하며 음악적으로 큰 특색 없이 담백한 구성의 앨범을 완성했다. 타이틀곡 ‘친구, 그 오랜 시간’은 풋풋한 짝사랑의 고백을 표현한 가사와 꾸밈없는 보컬이 만나 스트링 선율과 건반 연주만으로 서사의 드라마틱한 감정선을 세공한다. 곡에 영감을 준 드라마 < 응답하라 1988 >의 러브 스토리와 소심한 고백을 표현하는데 탁월한 유희열의 작사, 그리고 한층 성숙해진 정승환의 애절한 음성까지 삼박자가 맞아떨어진 사랑 노래다.

이중에서 아이유가 선물한 ‘러브레터’는 수록곡 중 단연 눈에 띈다. 아이유가 < 유희열의 스케치북 >에서 제목도 없이 불렀던 미공개 자작곡은 곽진언의 기타 연주와 정승환의 따뜻한 음색으로 전하는 어쿠스틱 곡으로 재탄생했다. 분명 화제가 되는 조합이지만 정승환의 보컬이 가진 강점보다 아이유의 감성이 부각된다는 점에서 기대감은 식는다. 한국형 발라드의 정석을 들려준 ‘그런 사람’과 자작곡 ‘그대가 있다면’에서의 색깔이 상대적으로 더 뚜렷하다.

한국 발라드는 감정을 쥐어짜고 슬픔을 강요하는 클리셰로 인기를 끌었지만 서정적인 연가의 백미는 잔잔한 감동과 함께 진한 여운을 주는 데 있다. 정승환의 노래에는 뚜렷한 기승전결도, 전율을 일으키는 고음과 화려한 테크닉도 없지만 가슴을 울리는 먹먹함이 있다. 초심으로 돌아간 그의 음악이 당장의 강한 인상을 주지는 않지만 섬세하게 쌓아 올린 역량만으로도 자신의 영역을 확고하게 증명한다.

– 수록곡 –
1. 봄을 지나며
2. 친구, 그 오랜시간
3. 그런 사람
4. 그대가 있다면
5. 러브레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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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진아 ‘우리의 방식'(2021)

평가: 3/5

최근 여성 뮤지션들의 약진은 주로 인디 신에서 돋보였다. 굵직한 행보를 이어왔던 정밀아와 김사월이 양질의 앨범을 선보였고, 민수, 문선 같은 신인 인디 뮤지션이 새로운 바람을 일으켰다. 백지영, 린, 다비치 등 발라더가 주름잡던 2000년대 초, 중반과 달리 지금 음악 신의 흐름은 뒤바뀌고 있다. 이러한 동향 속에서 발라드 음반을 꾸준히 발매하는 권진아의 행보는 유독 돋보인다.

권진아의 중심은 바깥이 아닌 안을 향한다. 세상이 향하고 있는 방향, 대중이 원하는 음악보다는 자신이 원하는 음악에 집중한다. 타고난 보편적 음악성이 대중을 사로잡으면서도, 동시에 큰 히트를 치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데뷔 이래 여러 유행이 스쳐 지나가는 동안에도 고집 있게 자신의 정체성인 발라드와 알앤비를 전면에 내세웠다. 그 결정체는 2019년에 발매한 정규앨범 < 나의 모양 >. 감정을 꾹꾹 눌러 담은 발라드가 수록곡 대부분을 차지했다. < 우리의 방식 >은 그 스타일을 유지할 뿐만 아니라 한발 더 나아가 전곡 작사, 작곡에 참여하며 본인의 색깔을 명확히 짚고자 한다.

조금 더 뚜렷해지고, 조금 더 깊어졌다. 기타 연주가 돋보이는 브리티시 록 기반의 ‘우리의 방식’은 그가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을 노래한다. ‘잘 가’는 토이(Toy)가 그랬던 것처럼 장면을 연상시키는 노랫말이 인상 깊다. 안테나 작곡가인 서동환이 편곡을 맡아 매끈하게 다듬어진 웰 메이드 발라드를 완성한다. ‘어른처럼’의 파트너를 죠지로 택한 것도 탁월하다. 둘의 절제된 알앤비 보컬은 떠나간 사랑에 대한 감정을 담담하게 마주한다.

음반의 의미는 ‘자생의 능력’에 있다. 소속사의 신뢰를 지지대 삼아 자신의 음악을 마음껏 펼치며, 유행에 올라타지 않고 굳건히 영역을 지킨다는 것이다. 권진아의 흔들림 없는 행보는 시대의 흐름과는 무관하게 색다른 감상을 선사한다. 그만의 방식으로 태어난 < 우리의 방식 >은 그 어떤 앨범보다도 ‘권진아스러운’ 음반이 되었다.

– 수록곡 –
1. 우리의 방식 
2. 잘가

3. 꽃말
4. You already have
5. 어른처럼 (With. 죠지) 
6. 여행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