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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10곡 특집 Feature

라디오 PD들의 ‘내 인생의 음악 10곡’ – #17 민일홍 PD

내년 개설 20주년을 앞두고 이즘은 특집 기획의 일환으로 라디오 방송 프로듀서 20인의 ‘내 인생의 음악 10곡’ 편을 연재 중입니다. 라디오는 음악과 동의어라는 편집진의 판단에 따라 기획한 시리즈로 모처럼 방송 프로듀서들이 전해주는 신선한 미학적 시선에 독자 분들이 좋은 반응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각 방송사의 라디오국에서 음악 프로를 관장하며 15년 이상의 이력을 가진 20인 PD의 ‘인생 곡 톱10’입니다. 열일곱 번째 순서는 KBS 민일홍 프로듀서입니다.

‘아무 의미 없다’
지금 이 글은 읽는 분들에겐 사실 아무런 의미 없는 리스트입니다.
단지 글을 쓴 저에게나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 뿐.
SNS 하는 것도 싫어하고 타인의 사생활에도 관심 두지 않는 성격이라서 지극히 개인적인 공개 글쓰기가 많이 민망합니다. 그렇지만 관계성을 중시하는 직업상 뿌리칠 수 없는 분의 부탁으로 부끄러운 글을 올립니다.

[빌보드 키드의 인생 BGM] 

Daniel Boone ‘Beautiful Sunday’
국민학교때 처음 들은 팝송이자 뜻도 모르고 가사를 외우게 된 팝송이다. 당시에 룸메이트로 한 방에 같이 지냈던 대학생 형이 날마다 이 곡을 들으며 노래를 따라 부르는 바람에 나도 모르게 외우게 된 노래. 이후 형성된 나의 음악 취향과는 사뭇 다르지만, 또래에 비해 이른 나이에 팝을 접하게 해준 첫사랑 같은 곡이다. 그렇지. 원래 첫사랑은 뭣 모르고 하는 거니까.

조용필 ‘단발머리’
일찌감치 팝을 접한 나는, 청소년 시절 ‘가요는 왠지 구리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지금 생각하면 어렸기에 가능했던 어린 생각이지만, 그럼에도 당시 그런 생각이 들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바로 레코딩 기술과 사운드 메이킹 때문이었다. 80년대의 가요와 팝은 그야말로 명확히 인지되는 벽이 존재했다. 조금만 민감한 사람이라면 느낄 수 있는 팝과 가요 사이의 넘사벽! 당시에 그런 편견을 깨 준 첫 번째 음악이 내게는 조용필의 ‘단발머리’였다.

Chuck Mangione ‘Children of sanchez’
7-80년대의 학교에선 가을 운동회의 하이라이트로 매스게임이나 군무 혹은 집단체조 등을 선보였다. 아마도 군사정권의 영향이라 생각되는데, 나의 국민학교 6학년 운동회 하이라이트는 전교생 집단 곤봉체조였다. 그런데 하필이면 전교생을 대표해 무대 단상에서 시범을 보이는 두 명의 학생 중 한 명이 바로 나였다. 그해 여름, 나는 전교 집체시간 때마다 땡볕 아래서 긴장 속에 곤봉을 돌려대야 했다. 손에는 굳은살이 배겼고, 귀에는 집단 곤봉체조의 배경음악인 ‘CHILDREN OF SANCHEZ’가 박혔다. 그리고 그것이 나의 뇌리에 처음 기록된 재즈 음악이었다.    

Michael Jackson ‘P.Y.T’
MICHAEL JACKSON의 <THRILLER>는 내가 내 돈 주고 처음으로 산 앨범(TAPE)이자, 중학교 시절 AFKN의 ‘AMERICAN TOP40’, ‘SOLID GOLD’, ‘SOUL TRAIN’ 등을 듣고 보며 빌보드 차트를 외우는 빌보드 키드로 성장하게 하는 원동력이 됐던 앨범이다. 그땐 정말 P.Y.T.(PRETTY YOUNG THING)였는데… 그 빌보드 키드는 어느새 반백의 나이가 돼 그 시절의 추억을 제대로 구현하는 라디오 프로그램(“빌보드키드의 아침 선택! 매일 아침 7시 KBS 2라디오 <김태훈의 프리웨이>”)을 만들고 있다.

이승환 ‘텅빈 마음’
몸은 성인이지만 아직 소년의 감성을 지니고 있었던 대학교 1학년 시절, 절친으로부터 생일 선물로 받은 이승환의 1집 앨범(LP)은 그 시절 나의 감성과 잘 맞았다. 비록 유행은 시간이 흐르면서 변하지만, 누구나 기저에 깔려있는 감성은 그 사람의 특성을 나타내기에 쉽게 변하지 않는다. 그래서일까 두주불사할지언정 가무는 않는 성향임에도 노래 부를 기회가 되면 유일하게 부르는 노래가 대부분 이승환의 곡이고, 그중에 가장 애창하는 노래가 바로 이승환 데뷔앨범의 타이틀인 ‘텅빈 마음’이다.  

Eric Marienthal ‘Kid’s stuff’
뮤지션 김현철과는 2001년 방송으로 만났다. 매일 자정에 생방송으로 <김현철의 뮤직플러스>(KBS 2FM)를 1년여 함께 했다. 김현철은 국내의 뮤지션들에게 직간접적으로 많은 영향을 준 아티스트다. 나 역시 그와 함께 심야 프로그램을 하면서 음악 프로그램 PD로서의 폭이 넓어지는 계기가 됐다. 흡사 빠른 볼만 던지던 국내 정통파 투수가 빅리그에서 변화구로 완급조절을 체득한 경우라 할까? 구체적으로 퓨전과 MOR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사실 젊은 시절엔 이런 스타일의 음악보다는 스트레이트하고 선명한 음악들을 좋아하는게 일반적이니까)

ERIC MARIENTHAL의 “KID’S STUFF”는 당시 프로그램의 시그널 뮤직으로 김현철이 직접 고른 곡이다. 그래선지 누가 들어도 뮤지션 김현철을 떠올리게 하는 연주곡이다. 그리고 내게는 그 시절 심야 프로그램을 만들며 느꼈던 즐거움과 보람을 일깨우는 정겨운 음악이기도 하다.  

Nirvana ‘Smells like teen spirit’
영화 ‘기생충’에서 송강호는 계획이 있는 아들에 감탄하지만, 정작 자신은 아무 계획이 없는 무책임한 인간으로 표현된다. 처음에 이 영화를 봤을 땐 정말 ‘아버지의 계획 없음’이 기성세대의 무능처럼 보였다. 하지만 두 번째 영화를 봤을 때, 그 ‘무계획의 계획’은 본능에 기반한 경험적 통찰로 읽혔다. NIRVANA의 이 곡은 말도 안되는 가사에 의미를 부여하며 헤드뱅잉 했던 내 젊은 날의 송가였다. 하지만 반백의 나이엔 ‘무계획의 계획’처럼 불완전한 가사 자체로 의미가 이해되는 곡이자 기타 전주만으로 내 안의 ‘청년 DNA’가 살아있는지 아닌지를 확인시켜주는 노래다.

Oasis ‘Don’t look back in anger’
사람간의 관계에서 누군가와 취향과 취미가 같다는 것 매우 중요하다. 공감하고 대화할 수 있는 여지가 많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개인적으론 취향과 취미가 같은 부부를 보면 부럽다. 물론 그런 부부가 많진 않으리라 생각한다. 나와 아내는 선호하는 영화도 다르고 음악적 취향도 다르다. 대표적으로 아내는 락 음악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런 우리 부부도 OASIS의 “DON’T LOOK BACK IN ANGER”가 흘러나오면 누가 먼저랄 것 없이 한 목소리로 후렴구를 따라 부르는 모습을 자주 보인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나는 새삼 부부의 연대감(?)을 느낀다.  

Rage Against The Machine ‘Wake up’
가장 급진적인 좌파밴드 RATM. 어쩌면 무모하게 보여도 자신의 정치적 신념을 솔직하게 뿜어내는 그들의 에너지엔 순수한 아름다움마저 느껴진다. RATM의 음악을 듣고 있으면 어느새 시스템에 길들어져 있는 나를 되돌아보게 된다. 그런 점에서 내일이 없는 듯 외치는 펑크락 밴드와는 또 다른 차원의 분노가 그들의 음악에서 느껴진다. 그래서 생긴 나만의 스트레스 퇴치법이 있다. 드라이브를 하면서 RATM의 노래를 듣는 거다. 그러면 꾹꾹 눌려있던 부끄러운 자아가 스멀스멀 기도를 타고 올라온다. 목에 굵게 스크래치(?)를 내면서.  

The Beatles ‘The long and winding road’
개인적으로 3대 멜로디 메이커로 엘튼 존과 폴 매카트니, 버트 바카락을 손꼽는다. 그들이 뽑아낸 멜로디는 정말 시대를 초월한 아름다움 그 자체다. 비틀즈 시절 폴 매카트니와 존 레논은 공동저작으로 크레딧을 올렸지만 팬들은 대개 안다. 어떤 곡이 누구의 작품인지. “THE LONG AND WINDING ROAD”는 비틀즈의 노래 중 멜로디 메이커로서 폴 매카트니의 능력이 십분발휘된 곡이라 생각한다. 대니 보일 감독의 영화 ‘YESTERDAY’를 보면 에드 시런과 주인공이 즉흥곡 배틀하는 장면이 나온다. 여기에서 주인공은 “THE LONG AND WINDING ROAD”를 부르는데 ‘훌륭한 멜로디가 주는 아름다움이란 이런 것’임을 확인할 수 있다. 만약 내가 눈을 감는 마지막 날, 지난 생이 주마등처럼 스칠 때 흐르는 배경음악이 있다면 아마도 나는 이 곡을 떠올릴 것 같다.  

* 민일홍 PD
KBS RADIO PD (1997년 입사)
– 現 KBS 2라디오 <김태훈의 프리웨이> 연출
– <이본의 볼륨을 높여요>, <슈퍼주니어의 키스더라디오>, <김현철의 뮤직플러스>, <윤도현의 뮤직쇼>, <사랑하기 좋은날 이금희입니다> 등 프로그램 연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