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 참여진의 개성이 살아있으면서도 어느 한 점의 과잉도 없이 깔끔하게 잘 만들어진 트랙이다. 음산한 분위기와 선선한 감촉 사이에서 호기롭게 줄타기를 벌이는 그루비룸의 프로덕션, 곡 전반을 수월하게 이끄는 제미나이의 매력적인 음색, 그리고 단번에 이목을 쟁취하는 미란이의 벌스까지. 세 요소가 이루는 단단한 결합이 자꾸 손이 가는 감칠맛을 산출한다.
조곤조곤 의지를 다잡는 가사는 프로젝트를 의뢰한 젠지(Gen.G) e스포츠 팀의 포부를 대변한다. ‘롤드컵’이라는 이름이 더 친숙한 < 리그 오브 레전드 > 월드 챔피언십 진출을 기념해 제작한 곡은 올해 릴 나스 엑스가 맡은 리그 공식 주제가 ‘Star walkin”과 더불어 여전한 멸시에도 불구하고 게임이 주류 문화로 꾸준히 올라서고 있음을 기록하는 또 하나의 자료다. 흔히 생각하는 응원가 치고는 서늘하지만, 본디 게임은 냉철한 자가 이기는 법이다.
몇 년 전부터 방송 프로그램과 음악계에 ‘부캐 놀이’ 유행이 휘몰아쳤다. 트렌드의 맥이 끊기기 직전, 프로듀싱 팀 그루비룸의 휘민은 ‘Achoo remix’에서 래퍼의 면모를 드러냈던 릴 모쉬핏으로 다시 등장했다. 갑작스러운 데뷔 앨범 발매 소식이 만우절 장난이라는 추측도 있었으나 이번엔 예상했던 래퍼가 아닌 힙합 프로듀서로서 < AAA >를 내놓았다.
새 페르소나로 음반을 발매한 것은 두 자아를 근본적으로 구분 짓기 위한 선언이다. 릴 모쉬핏은 그루비룸을 대표하는 감각적이고 대중적인 팝 대신 음울하고 거친 분위기와 해외 유행을 이식한 세련미를 장착했다. 나아갈 방향을 알리듯 서두부터 조준점이 명확하다. 인트로 ‘Moshpit only’는 피에르 본식의 트랩 비트와 폴 블랑코의 자신감 넘치는 랩으로 마초 이미지를 불러온다.
본체의 그림자를 완전히 거둬들이지는 않았다. 단짝 박규정과 함께 프로듀싱하며 듀오의 정체성을 유지하되 전체적인 콘셉트 설정은 단독 권한으로 가져왔다. 래퍼 혹은 프로듀서 이상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되고 싶다는 인터뷰처럼 릴 모쉬핏은 국내 힙합 플레이어들을 조명하고 외국 힙합의 트렌드를 끌어와 큐레이터의 역할을 맡았다.
키드밀리, 소코도모 등 국내 래퍼부터 미국의 에이셉 앤트, 스트릭까지 힙합 본토와의 연결고리를 마련했다. 유명세를 묻지 않고 기용한 신예 프로듀서들의 신선한 사운드도 든든하다. 특히 비엠티제이와 구스범스가 만든 ‘Yooooo’의 중독적인 신시사이저와 ‘Bo$$’의 분위기 전환은 히트메이커의 번뜩이는 직감을 보여준다. 하트코어 레디와 스월비의 호흡에 세사미의 비트를 더한 ‘Die hard’ 역시 킬링 트랙.
흑인 음악 뮤지션으로 채워 넣은 크레디트와 내적 요소 모두 국내 힙합의 최전선을 포착한다. 최신 경향을 보여주는 모범적인 지표지만 균열 또한 같은 지점에서 일어난다. 앨범의 제목인 ‘All Arena Access’의 개척적인 의미와 달리 외국 힙합의 규격을 넘어서는 대범함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시너지를 일으킬 모험적인 시도는 없었지만 스타와 신예, 국내와 해외를 결합한 영역 확장에는 성공했다.
-수록곡- 1. Moshpit only (Feat. Paul Blanco) 2. Gotta lotta shit (Feat. Dbo, Sokodomo, Kash Bang) 3. Yooooo (Feat. 키드밀리, Sokodomo, Polodared) 4. A-Team freestyle (Feat. A$ap Ant, Bill Stax, Strick, 미란이) (추천) 5. Slatty slut (Feat. 식케이) 6. On the block (Feat. 쿠기, Ourealgoat, Leellamarz) 7. Die hard (Feat. Reddy, Swervy) (추천) 8. Bo$$ (Feat. Saay, Big Naughty, Goosebumps) (추천) 9. Back in my area (Feat. Ggm Lil Dragon, Lil Gimchi, Skinny Brown, June One)
그룹 마마무의 멤버 문별이 미니 3집 발매를 앞두고 공개한 싱글이다. 중저음의 목소리로 세련된 트랩을 선보였던 전작 ‘달이 태양을 가릴 때 (Eclipse)’와 다르게 ‘G999’는 1990년대 초반 인기를 끌었던 장르 뉴 잭스 윙을 빌려 더 가볍고 순수한 모습을 선보인다. 편곡과 후렴구의 가창 파트처럼 과거 작법을 충실히 따르면서도 싱잉 랩 등 최근의 흐름을 놓치지 않기에 단순 고증이 아닌 재해석의 여지 또한 함께 열어둔다.
다만 이런 시도가 ‘추억 회상’을 뛰어넘는 감상 지점을 제공할 정도로 특별하진 않다. 곡이 뉴트로 유행의 막차를 탄 지금, 이미 소진된 당대의 화제성 또한 흥미를 떨어트리는 요소. 반전을 일으키기엔 흐릿하게 빛이 바랜 빈티지 원료가 투박하다.
맨 밑바닥의 소녀에서 부유층의 여자로. 작년 < 쇼미더머니 9 >에서 가난 서사를 앞세운 진솔한 자기 고백으로 많은 이들의 공감과 애정을 끌어냈던 미란이가 변했다. 옆집 친구처럼 어딘가 친근해 보이던 겉모습은 이제 화려한 메이크업과 빛나는 조명이 감싼다. 첫 정규 앨범 < Uptown Girl >의 방향도 이와 다르지 않다. 성공 후의 또 다른 이야기, 미란이 인생 2막의 스토리를 펼쳐낸다.
도전보다 여유가 앞선다. 포문을 여는 ‘Uptown girl’은 힙합보다 댄스에 가까운 팝으로, 주류 걸그룹의 곡을 듣는 듯 안정된 구조를 지향한다. 튕기는 베이스와 매끈한 기타 사운드 위로 덧입혀진 얼핏 헤이즈가 연상되는 보컬 연기는 랩과 노래의 공존 가능성을 입증하지만 곡 흡인력은 중박. 미란이의 개성이 십분 중화된 꼭 그가 아니어도 부를 수 있는 팝이기 때문이다. 타이틀곡 ‘티키타’도 비슷한 흠을 내비친다. 간결한 알앤비 비트와 중독성 있는 후렴구는 무난하지만, 미란이의 첫 막이 더 화끈하기를 기대한 이들에게는 심심하게 들릴 여지를 남긴다.
‘지겨워서 만든 노래’를 분기점으로 이어지는 후반부가 반전을 주도한다. 주무기인 랩 대신 노래가 다수를 차지해 자칫 늘어질 뻔한 구성임에도 짧은 수록곡 안에 표정 변화를 넉넉히 채워 넣어 풍성한 느낌을 준다. 프로듀서 보이콜드의 손길이 낳은 ‘지겨워서 만든 노래’는 이모(Emo) 힙합 성질의 싱잉 랩과 강렬한 일렉트릭 기타 연주가 시원한 질주감을 선사한다. 여기에 장르의 총아인 스키니 브라운의 팝 느낌 물씬한 멜로디도 깊은 만족감을 더한다.
철저히 ‘미란이스러움’을 지키는 가사도 발군이다. 초반부가 무난한 곡들로 안정감을 다진다면 후반부는 사람들에게 각인된 자신의 이미지를 살린 선명한 메시지를 새겨놓는다. ‘Lambo!’는 대표적이다. 트랩 비트 위 중독성 강한 훅으로 ‘돈맛을 알아버린’ 현재를 한껏 만끽하는 노래는 강한 카타르시스가 된다. 변한 삶에 대해 미처 전하지 못한 푸념을 ‘추신’에 비유해 녹여낸 ‘P.S.’, 랩스타가 된 지금도 여전히 남아있는 나름의 걱정거리를 지난 1년간의 발자취와 연결 지어 털어놓는 ‘난 진짜 멋지게’는 심리적 갈등이 특유의 인간적인 캐릭터와 맞물려 입체적으로 펼쳐지는 구간이다.
전술이 상당 부분 안정에 그치지만 정직하기에 울림은 강하다. 대중성을 충분히 의식하며 모난 데 없이 잘 들리는 노래들을 챙겼고, 변함없는 자기표현 능력으로 정체성 확립도 놓치지 않았다. 여전히 자꾸 귀 기울이고 싶은 매력이 있는 미란이의 성장 스토리다.
– 수록곡 – 1. Uptown girl 2. 티키타 (Feat. 릴보이) 3. 지겨워서 만든 노래 (Feat. Skinny Brown) 4. Lambo! (Feat. UNEDUCATED KID) 5. P.S. (Feat. JAY B) 6. 난 진짜 멋지게 7. Daisy Remix (Feat. Paul Blanco, ASH ISLAND)
2020년 ‘명탐정’으로 등장해 같은 해 < 쇼미더머니 9 > 경연에서 머쉬베놈과 ‘VVS’를 부르며 화려한 조명을 받았던 미란이가 황소처럼 거친 람보르기니(‘Lambo!’)를 뽑았다. 1년 반이 넘는 시간 동안 데뷔와 성장, 그리고 대중적 인지도까지 삼박자를 고루 갖춘 그의 음악 인생을 대변하듯 모든 가사가 자신감과 플렉스(Flex)로 넘쳐흐른다. 음악적으로는 활동 초기 불안했던 하이톤 랩에서 벗어나 힘을 빼고 안정적인 목소리로 발전해가는 과정이 안정세에 접어들었음을 증명하며, 높낮이가 다양한 보컬 추임새 또한 그의 단단해진 랩을 돋보이게 만든다. 미란이의 음악적 역량이 슈퍼카만큼 멋진 속도로 나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