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ies
특집 Feature

[무비즘] 리스펙트

코로나 기세가 조금씩 저물자 삭막했던 극장가에 활력이 돌기 시작했다. 지구촌 곳곳에는 흥미로운 작품 소식들이 당차게 고개를 내미는 추세다. 이러한 스크린 흐름에 발맞춰 IZM이 무비(Movie)와 이즘(IZM)을 합한 특집 ‘무비즘’을 준비했다. 시대를 풍미했던 아티스트의 명예를 재건하고 이름을 기억하자는 의미에서 매주 각 필자들이 음악가를 소재로 한 음악 영화를 선정해 소개한다. 열 두 번째는 아레사 프랭클린의 생애를 스크린으로 복각한 < 리스펙트 >다.

‘소울의 여왕’ 아레사 프랭클린의 발자취를 좇는 < 리스펙트 >는 그의 사후 3년인 2021년 개봉한 전기영화다. 극적인 내용을 중점으로 구성하여 관객을 시종일관 긴장하게 만드는 작품은 연기와 음악이라는 정공법으로 힘을 토해낸다. 생전 자신의 배역을 맡을 이로 직접 지목한 제니퍼 허드슨의 강인한 연기력과 폭발적인 가창력은 우리가 기억해야 할 전설적인 가수를 되살린다. 그의 눈빛에 음악을 사랑하고 종교를 부르짖던, 흑인 여성 아레사 프랭클린이 그대로 들어있다.

음악을 사랑했던
천부적인 재능으로 ‘서른 살의 목소리를 가진’ 열 살의 아레사 프랭클린이 잠에서 깨어나면서 영화는 시작한다. 인종차별과 정치적 이념 대립이 복잡하게 어우러진 1950년대 미국, ‘My baby likes to Be-Bop (And I like to Be-Bop too)’을 출중하게 소화해내는 노래 실력은 아이에게는 행운이었지만 동시에 괴로움이었다. 노래가 끝나자 마자 잠에 들길 강요하는 아버지 클라렌스를 쳐다보는 어린 아이의 눈빛이 생애 내내 이어질 음악과의 복잡한 관계를 서두부터 암시한다. 포레스트 휘태커의 노련함에 지지 않는 아역배우 스카이 다코타 터너의 연기력에 압박감은 초반부터 팽팽해진다.

보는 사람마저 지치게 하는 극적인 플롯을 음악이 해소한다. 테드 화이트와의 연애 장면에서 나오는 ‘Nature boy’는 사랑의 당도를 가득 충전하고, 애틀랜틱 레코드에서의 첫 히트곡 ‘I never love a man (The way I love you)’의 뒤를 잇는 대표작 ‘Respect’의 공연 장면은 정상에 오른 가수의 커리어를 화려하게 선보이며 잠시 숨통을 틔워준다. 제니퍼 허드슨의 뛰어난 목소리가 그 중심을 꽉 지탱한다.

폭력적으로 변한 애인과의 본격적인 갈등 앞에 흘러나오는 ‘Chain of fools’, 그리고 그와의 결별로 해방되는 순간 나오는 ‘Think’ 등 적재적소에 울려 퍼지는 가사 덕분에 작품은 일종의 뮤지컬 영화처럼 보이기도 한다. 특히 후자에서 자유를 부르짖는 순간 어지럼증을 토하나 이내 활력을 되찾는 주인공의 모습은 가장 높은 몰입도를 자랑한다. 전기 영화에서 음악의 역할을 모범적으로 보여주는 예시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종교를 부르짖은
자유의 땅인 미국에 역설적으로 노예가 되어 끌려온 흑인들이 기댈 곳은 교회였다. 하나님을 경배하는 장소에서만 허용된 노래는 가스펠을 비롯한 여러 흑인 음악의 뿌리가 되었다. 목사였던 아버지를 따라 아레사 프랭클린 또한 단상 위에서 찬양을 통해 말씀을 전달했다. 신앙의 줄기가 내내 이어진다는 점에서 < 리스펙트 >는 종교영화이기도 하다.

독실한 기독교인에게 잔인한 세상은 끊임없이 비극을 선사했다. 너무나도 어린 나이에 겪은 성폭행으로 인한 임신과 어머니 바바라의 급작스러운 사망, 그리고 이로 인한 실어증이 초반부에 빠르게 등장하며 주인공만이 아니라 관객까지 숨막히게 한다. 애인, 그리고 가족 간의 분쟁이 멈추지 않는 버거운 삶이지만 그는 끝까지 신을 향한 손길을 저버리지 않는다.

마지막 장면은 라이브 실황을 담은 1972년 음반 < Amazing Grace >를 녹음하는 내용이다. 마치 성경 속 ‘돌아온 탕아’처럼, 한때 히트곡을 갈망했던 가수는 레코드사의 만류를 단호하게 내치며 상업성과 거리가 먼 가스펠 음반을 제작한다. 신이 응답이라도 한 것일까, 앨범은 아레사 프랭클린의 커리어 사상 최대의 판매량을 기록했다. (제작 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 < Amazing Grace >는 2018년에야 공개되었다)

흑인 여성이었던
인종차별이 지금보다 더욱 만연했던 시대, 흑인 인권 운동에도 적극적이었던 아레사 프랭클린의 행보 또한 스크린에 그대로 등장한다. 아버지 덕분에 목사 마틴 루터 킹 주니어와도 가까운 사이였던 그는 백인들에 맞서 급진적인 항쟁에 대한 의지를 보이기도 하고, 인권운동가 안젤라 데이비스의 체포 소식을 듣고 분개하기도 한다. 격렬했던 과거 미국을 보여주는 내용이자 흑인에 대한 인종 차별 문제가 대두되었던 2020년대의 사회를 또한 관통한다.

연인 테드 화이트의 폭력성이 드러나는 계기도 인종차별이다. 흑인들이 아직도 목화 농장에서 일하던 1967년 앨라배마, 흑인 가수를 달가워하지 않던 세션 음악가들은 노골적으로 불편한 내색을 비췄다. 색소폰 연주자가 치근덕대는 모습을 본 테드는 애꿎게도 아레사에게 격렬한 분노를 토하고, 사과하러 온 스튜디오의 주인 릭 홀과 주먹다툼을 벌이기도 한다.

사회 문제에 대한 아레사 프랭클린의 대답은 간단했다. 음악이다. 편곡을 이끌며 곡의 방향성을 진두지휘하는 모습으로 불만 가득했던 세션들을 침묵하게 했던 그는 댄스 음악에 영합하지 않은 자신만의 음악으로 백인들에게도 사랑을 얻어냈다. 그럼에도 그는 자신의 정체성을 잃지 않았다. 마틴 루터 킹 주니어 목사의 사후 인권 운동에 대한 스트레스가 코러스 싱어로 활동했던 자매들과의 갈등, 그리고 공연 스케쥴에 대한 강박으로 이어질 정도였다.

이 모든, 아레사 프랭클린
크레딧이 올라가면서 영화는 아레사 프랭클린의 실제 공연 모습을 함께 띄워준다. 감동적인 무대 장면부터 심적 부담으로 인해 알코올에 잔뜩 취해 관객 앞에서 쓰러지는 모습까지, 온갖 산전수전을 자신의 삶인 양 소화해낸 제니퍼 허드슨의 뛰어난 연기가 작품을 아우르나 결국 그 주인공은 아레사 프랭클린인 것이다. 아름다운 음악이 돋보이고, 종교적인 색채 또한 강하며, 시대를 초월한 흑인들의 정신도 함께 담겨있는 영화는 이 모든 것을 제치고 ‘소울의 여왕’에게 바쳐지는 헌사로 자리한다. < 리스펙트 >, 제목처럼 그에게 다시 한번 경의를 표한다.

– 영화에 사용된 음악 목록 –
1. My baby likes to Be-Bop (And I like to Be-Bop too)
2. When the saints go marching in
3. I’ll be seeing you
4. We’re marching to Zion
5. Ain’t that just like a woman
6. How far am I from Canaan
7. What a friend we have in Jesus
8. There is a fountain filled with blood
9. Go where my baby lives
10. Lonely teardrops
11. Honey
12. Think
13. Ac-cent-tchu-ate the positive
14. This better earth
15. Groovin’ the Blues
16. Rufus
17. Nature boy
18. Hey Joe
19. Anyway you wannta
20. Respect
21. Do right woman, do right man
22. Dr. Feelgood
23. Sweet sweet baby (Since you’ve been gone)
24. (You make me feel like a) Natural woman
25. Drinks at the Ritz
26. Chain of fools
27. My one and only love
28. Puffin’ on down the track
29. Take my hand, precious lord
30. Blues to Elvin
31. Spanish Harlem
32. To be you, gifted and black
33. I say a little prayer
34. Amazing grace
35. Precious memories
36. Here I am

Categories
특집 Feature

[무비즘] 아임 낫 데어

코로나 기세가 조금씩 저물자 삭막했던 극장가에 활력이 돌기 시작했다. 지구촌 곳곳에는 흥미로운 작품 소식들이 당차게 고개를 내미는 추세다. 이러한 스크린 흐름에 발맞춰 IZM이 무비(Movie)와 이즘(IZM)을 합한 특집 ‘무비즘’을 준비했다. 시대를 풍미했던 아티스트의 명예를 재건하고 이름을 기억하자는 의미에서 매주 각 필자들이 음악가를 소재로 한 음악 영화를 선정해 소개한다. 열 아홉 번째는 7개의 서로 다른 자아 및 캐릭터로 밥 딜런의 음악 여정을 그린 < 아임 낫 데어 >다.

시대의 음유시인 밥 딜런을 이해하는 것은 쉽지 않다. 난해한 가사, 쉬이 멜로디를 캐치하기 어려운 노래들, 별다른 설명과 해석을 달지 않는 밥 딜런 본인의 성격까지 그의 음악 앞에 자리한 장벽은 공고하다. 그럼에도 밥 딜런은 활동명(실제 이름은 ‘로버트 짐머만’이다)을 제목으로 내세운 첫 번째 정규 음반 < Bob Dylan >(1962) 이후 2022년 현재까지 끝없이 회자하고, 소환되는 음악가다. 그 이유가 바로 오늘 소개할 영화 < 아임 낫 데어 >에 담겨있다.

그저, 감각(Sense)할 것
1970년대 화려한 글램 록의 시기를 담은 영화 < 벨벳 골드마인 >(1999)을 거쳐 오늘날 영화 < 캐롤 >(2016)로 국내에 많은 골수팬을 거느린 감독 토드 헤인즈가 메가폰을 잡았다. 그는 밥 딜런의 전기를 거칠게 풀어낸다. 6명의 배우, 7명의 캐릭터가 각기 다른 모습의 밥 딜런을 연기한다. 영화 속 각 주인공은 인종과 성향이, 사는 시대가 모두 다르다. 이를테면, ‘우디’라는 이름의 흑인 소년과 은퇴한 총잡이 ‘빌리’, 저항 음악으로 사랑받는 포크 가수 ‘잭’, 시인 ‘아서’가 한 화면 안에 담기는 식이다.

불친절하다. 하나의 줄기를 가지고 천천히 이야기를 쌓고 끝내 이를 터트리며 어떤 주제를 전하는 ‘기승전결’의 방식을 따르지 않는다. 다큐멘터리로 보아도 무방할 만큼 진득하게 말에 주목하고, 규칙 없이 각 캐릭터를 오고 간다. 시인 ‘아서’가 소심하고 불안정한 모습으로 묘사되는 동시에 은퇴한 총잡이 ‘빌리’는 한 발짝 뒤에서 사회를 따뜻하게 포용한다. 날뛰고, 널 뛰는 시선과 분위기의 교차 속에서 밥 딜런에 대한 사전 지식이 없는 혹자는 당황을 넘어 당혹스러운 상황에 놓일 수도 있다.

그저, 감각(Sense)할 것을 권한다. 이해하지 말고 느낄 것. 토드 헤인즈가 포착한 7개의 가면 아래 선 밥 딜런을 그저 감각하다 보면 실체가 선명해지는 경험을 할 수 있다.

모두가 밥 딜런의 자아 : 케이트 블란쳇의 ‘쥬드’, 히스 레저의 ‘로비’
1966년 오토바이 사고 이후 긴 시간의 잠적, 마약, 1970년대 말 갑작스런 기독교인으로서의 선언 등 밥 딜런의 음악 여정에는 다양한 사건이 동행한다. 영화 속 인물들은 그가 겪은(혹은 행한) 이러한 실제 사건을 중심으로 약간의 상상력을 덧대 창조됐다. 그중 눈여겨볼 캐릭터는 케이트 블란쳇이 열연한 ‘쥬드’와 히스 레저가 분한 ‘로비’다.

‘쥬드’의 등장은 1965년 뉴포트포크페스티벌(작품에서는 ‘뉴 잉글랜드 JAZZ & FOLK FESTIVAL’로 지칭된다)에서 시작된다. 무대에 오른 쥬드는 ‘일렉트릭 기타’를 메고 진한 블루스의 ‘Maggie’s farm’을 연주한다. 같은 날 연주한 ‘Like a rollingstone’이 빌보드 싱글차트 2위까지 오르며 ‘포크 록’의 선구자, 밥 딜런을 대표하지만 영화는 되레 조금은 덜 익숙한 ‘Maggie’s farm’을 소환해 포크와 시대를 배신했다는 이유로 지탄을 받던 시절의 그를 묘사한다. 명곡 ‘Ballad of a thin man’에 맞춰 언론을 향한 분노를 표출하는 장면은 ‘쥬드’의 정수이니 눈여겨봐도 좋겠다.

히스 레저가 맡은 ‘로비’는 밥 딜런의 실제 연인이었던 수즈 로틀로와 아내 사라 로운즈를 뒤섞은 듯한 인물 ‘클레어’를 통해 완성된다. 클레어와 사랑이 시작될 땐 사라 로운즈와의 웨딩 앨범으로 이해되곤 하는 < Blonde on Blonde >(1966)의 수록곡 ‘I want you’가 흘러나오고, 이별의 징조가 진해질 땐 실제 사랑의 끝을 달리고 있던 시기 발매한 < Blood on the Tracks >(1975)의 ‘Simple twist of fate’가 스피커를 채운다. 완전한 헤어짐 이후 절절한 비(悲)음으로 부르는 ‘Idiot wind’ 또한 밥 딜런의 인생을 이해하기에 적절한 트랙이다.

I’m not there, 나는 거기에 없다.
영화의 제목인 ‘I’m not there’은 밥 딜런의 곡에서 가져왔다. 오토바이 사고 이후 칩거할 당시 만든 노래이며 1975년 발매된 < The Basement Tapes >에 실릴 예정이었지만 실제 발표되지는 않았다. 오랫동안 해적판으로 떠돌다가 < The Genuine Basement Tapes, Vol2 >(1992)에 실렸고 이 작품의 사운드트랙으로 다시 한번 정식 발매됐다. 투박한 노이즈를 잘 살린 후배 그룹 소닉 유스의 재해석으로 밥 딜런의 생애를 음악으로 ‘정조준’한다.

‘나는 거기에 없다.’ 밥 딜런을 해석하기에 이보다 완벽한 문장이 있을까? 결국 영화가 ‘밥 딜런’을 바라보는 서로 다른 누군가의 시선을 묘사하며 비전형적으로 나아가듯, ‘I’m not there’라는 문장은 해석하기를 거부하며 그저 부르고 쓰는 것을 반복한 밥 딜런과 닮아있다. 나는 거기에 없다. 늘 사회와 시대 속에서 노래했지만 결코 대표하기를 원치 않았던 밥 딜런. 그를 이해하는 7개의 캐릭터 사이 실체 없는 밥 딜런이 짙고 연하게 움직인다.

Categories
Feature

[무비즘] 노웨어 보이

코로나 기세가 조금씩 저물자 삭막했던 극장가에 활력이 돌기 시작했다. 지구촌 곳곳에는 흥미로운 작품 소식들이 당차게 고개를 내미는 추세다. 이러한 스크린 흐름에 발맞춰 IZM이 무비(Movie)와 이즘(IZM)을 합한 특집 ‘무비즘’을 준비했다. 시대를 풍미했던 아티스트의 명예를 재건하고 이름을 기억하자는 의미에서 매주 각 필자들이 음악가를 소재로 한 음악 영화를 선정해 소개한다. 열 여덟 번째는 불멸의 밴드 비틀스가 아직 세상에 태어나기 전 존 레논의 어린 시절을 그린 < 노웨어 보이 >다.

비틀스가 대중음악사에 펼쳐 놓은 가지들은 저마다의 방향으로 뻗어나갔다. 헤비메탈의 원류격인 블랙 사바스부터 슈게이징의 개척자 마이 블러디 발렌타인 그리고 오아시스와 퀸, 라디오헤드, 너바나까지. 비틀스의 음악은 무수한 음악가들에게 영감을 주었고 해체한 지 50년이 넘은 지금까지 수많은 아티스트에게 양분을 공급하고 있다. 영화 < 노웨어 보이 >는 그 위대한 밴드의 대들보였던 존 레논의 유년 시절을 그린다.

문제아 존 레논
살아생전 존 레논의 인터뷰나 행적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 그는 거침없는 개성의 소유자였다. 특히 비틀즈가 예수보다 유명하다는 발언으로 전 세계적 논란을 샀던 것은 유명한 일화이다. 당돌하고 때론 오만해 보이기까지 하는 성격은 비단 스타가 되고 난 이후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그는 학창 시절 부족한 성적은 둘째치고 흡연과 음주는 물론 문란한 행동으로 말썽을 일삼던 문제아였다. 

평소와 다를 것 없는 하루로 시작하는 영화는 존의 이모부가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며 분기점을 맞는다. 어린 시절 부모님의 이혼으로 이모의 가정에서 자란 존은 아버지의 역할을 해주었던 이와 갑작스럽게 이별을 하게 되자 공허함에 사무친다. 동시에 오래전 자신을 떠나 어렴풋하게 기억에 남아있는 어머니를 찾아 나선다. 우연인지 운명인지 그는 멀지 않은 곳에 살고 있었다.

오랜만에 다시 만난 두 사람이었지만 계속 함께 했던 것처럼 애틋했다. 긴 시간 묵혀왔던 지난 이야기들을 나누었고 함께 거리를 돌아다니기도 했다. 특히 당시 거주지이자 비틀스의 요람이기도 한 영국 리버풀 랭커셔주의 해변 마을 블랙풀을 오갔던 것이 존의 인생을 크게 흔들었다. 어머니와 함께 그곳에서 엘비스 프레슬리를 비롯한 로큰롤 음악을 접했고 그는 슈퍼스타의 꿈을 꾸기 시작했다.

어머니의 사랑 
음악에 빠지면서 학교생활에는 더 소홀해졌다. 자신이 동경하던 아티스트들처럼 헤어스타일을 바꿨고 마초스러운 모습을 과시하며 길거리를 배회했다. 자연스럽게 성적은 더 곤두박질쳤고 결국 정학이라는 처분을 피하지 못했다. 

존을 교양있고 올바른 길로 인도하고자 했던 이모 미미 스미스(Mimi Smith)는 그런 그를 구박했다. 자식을 기르는 어미의 마음으로 조카에게 깊은 사랑을 주었지만 비행에 대해선 엄격했다. 이미 비슷한 일로 여러번 다툰 바 있던 둘 사이에 학교에서 내린 징계는 갈등의 도화선이었다. 사랑이 필요했던 사춘기 소년은 어머니 줄리아 레논(Julia Lennon)에게 더욱 의지하기 시작했다.

줄리아는 자식을 밀어내지 않았다. 오히려 단절된 과거에는 주지 못한 사랑을 참회하듯 몇 배로 애정을 담아 그를 대했다. 존은 그런 어머니에게 편안함을 느꼈고 학교를 나가지 않는 기간동안은 어머니의 집에 머물렀다. 

차이콥스키의 음악 같은 클래식을 즐겨들었던 이모와 다르게 줄리아는 로큰롤 음악에 일가견이 있었다. 악기 연주를 할 줄 알았던 그는 아들 존 레논에게 현악기인 밴조를 가르쳐 주었다. 자신이 원하는 소리를 구현해내는 것에 재미를 느낀 존은 온종일 악기를 손에서 놓지 않았다. 

밴드 The Quarrymen
징계를 마치고 학교에 돌아온 존은 본격적으로 밴드를 꾸렸다. 음악적인 완성도 보다는 당장의 열정을 불태우기 위해 같은 학교의 친구들로 빠르게 멤버를 구성했다. 밴드명은 쿼리맨(The Quarrymen). 그들이 다니던 고등학교 ‘Quarry Back High School’의 교명을 따온 이름이었다. 

동네를 돌아다니며 아마추어 공연을 하던 존 레논은 어느 날 교회에서 무대를 하다가 자신의 운명을 바꿀 인물을 만난다. 그날의 공연을 인상 깊게 본 폴 매카트니였다. 폴은 그들에게 자신의 악기 연주를 뽐내며 밴드의 멤버로 받아줄 것을 제안했다. 자존심이 강한 존은 그 자리에서 폴을 거부했으나 그의 뛰어난 실력에 감명받았다. 며칠이 지나지 않아 존은 직접 폴을 찾아가서 기타를 배웠고 빠르게 유대를 쌓았다. 둘이 쿼리맨을 대표하는 듀오가 되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Nowhere boy
폴 매카트니와 같은 학교에 다니던 조지 해리슨도 금세 밴드에 승선했다. 비틀스라는 거함이 서서히 완성되고 있었지만 꽃길만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위대한 아티스트로서의 재목임을 스스로 증명한 존도 결국 사춘기 소년이었던 것. 부모의 돌봄이 가장 중요했을 시기에 자신을 떠났던 어머니에게 반감을 품기 시작했다. 

마냥 치기 어린 어리광으로 여기기에는 가혹한 존의 유년이었다. 부모는 이별했고 어느 쪽도 그를 원하지 않았기에 이모인 미미가 존을 데려갔다. 자신을 세상에 내놓은 두 사람에게 사랑받지 못했던 과거는 10년이 넘은 일이었지만 그에게 상처를 주기에 충분했다.

Mother
피로 맺은 관계는 쉽게 끊어지지 않는다고 했던가. 존은 자신이 꿈에 다가갈 수 있도록 도와준 어머니를 이해하고 용서했다. 덕분에 과거의 일로 연을 끊고 있던 줄리아와 미미 또한 자매로서 다시 함께했다. 자식의 꿈과 음악이 가진 힘이 여기저기에 흠집 나 있던 상처들을 봉합했다. 

운명의 장난처럼 좋은 날은 길지 않았다. 미미의 집에서 나와 동네 주민과 함께 걷던 줄리아 레논은 도로를 건너다가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다. 존에게는 아버지와 같던 고모부를 떠나보내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찾아온 비극이었다. 존은 주저앉지 않았다. 노래와 밴드가 있었기에 금세 다시 일어났다. 

Love
영화는 어머니를 향한 존의 애틋한 감정을 중심으로 스토리를 전개한다. 비틀스가 유명해지고 1968년 존은 솔로곡 ‘Julia’를 화이트 앨범이라고 불리는 불멸의 명반 < The Beatles >에 실었고 1970년에는 밴드 해체 직후에 발매한 솔로 데뷔 앨범 < Plastic Ono Band >에 ‘Mother’를 수록했다. 그가 얼마나 어머니에게 애틋한 감정을 느꼈는지 알 수 있다.

영화에는 담기지 않았지만 존은 어린 시절 스트로베리 필드(Strawberry Field)라는 이름의 보육원에서 잠시 지냈다. 아픔을 아름다운 멜로디로 승화해 ‘Strawberry fields forever’라는 명곡을 만들어냈고 오랫동안 품어왔던 고립감은 ‘Isolation’을 낳았다. 대중음악사에서 가장 사랑받는 곡 중 하나인 ‘Imagine’ 속 평화와 사랑에 대한 이야기가 설득력을 갖는 이유는 곡이 탄생하기까지의 남다른 굴곡의 깊이가 노래에서 전해지기 때문이다. 

그 배경에 있었던 어머니의 역할 그리고 그 상처를 딛고 일어선 존 레논의 이야기는 단순히 비틀스의 팬이 아니어도 감동을 준다. 음악에 중점을 두기보다 한 편의 드라마로 완성한 영화는 계속해서 숨 쉬고 있는 비틀스의 노래들처럼 가장 보편적이고 소중한 가치인 가족과 사랑의 중요성을 전파한다. 경쟁의 과열과 상업성으로 점철된 이 시대의 음악들이 존 레논에게서 받아야 할 영향력은 단순 사운드와 음악적 가치에만 머물러선 안 됨을 그의 인생을 통해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다.

-영화에 사용된 음악-
1. Jerry Lee Lewis ‘Wild One’
2. Gracie Fields ‘If i knew you were comin’ i’d’ve baked a cake
3. DIckie Valentine ‘Mr. sandman’
4. Jackie Brenston & His Delta Cats ‘Rocket 88’
5. Elvis Presley ‘Shake Rattle & Roll’
6. Wanda Jackson ‘Hard headed Woman’
7. Screamin’ Jay Hawkins ‘I put a spell on you’
8. Aaron Taylor-Johnson ‘(Let me be your) Teddy bear’
9. Anne-Marie Duff ‘Maggie mae’
10. Aaron Taylor-Johnson ‘That’ll be the day’
11. Eddie Bond & The Stompers ‘Rockin’ Daddy’
12. Wally Whyton ‘Maggie May’
13. Sam Bell & Patrick Murdoch ‘Twenty Flight Rock’
14. Aaron Taylor-Johnson & Thomas Brodie-Sangster ‘Blue Moon’
15. The Nowhere Boys ‘That’s all right’
16. The Nowhere Boys ‘Movin ‘n’ groovin’
17. The Nowhere Boys ‘Raunchy’
18. Big Mama Thornton ‘Hound dog’
19. Sam Bell ‘Love me tender’
20. David Whitfield ‘My son john’
21. Gene Vincent ‘Be-bop-a-lula’
22. Sam bell ‘Hello little girl’
23. The Nowhere Boys ‘In spite of all the danger’
24. John Lennon ‘Mother’

Categories
Feature

[무비즘] 조지 해리슨: 물질 세계에서의 삶

코로나 기세가 조금씩 저물자 삭막했던 극장가에 활력이 돌기 시작했다. 지구촌 곳곳에는 흥미로운 작품 소식들이 당차게 고개를 내미는 추세다. 이러한 스크린 흐름에 발맞춰 IZM이 무비(Movie)와 이즘(IZM)을 합한 특집 ‘무비즘’을 준비했다. 시대를 풍미했던 아티스트의 명예를 재건하고 이름을 기억하자는 의의에서 매주 각 필자들이 음악가를 소재로 한 음악 영화를 선정해 소개한다. 열일곱 번째는 비틀스의 정신(Spirit) 조지 해리슨의 삶과 철학을 그린 영화 < 조지 해리슨: 물질 세계에서의 삶 >이다.

그는 영적인 인물이었다. 대중 음악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밴드로 칭송받는 비틀스의 일원이며 그 이후로도 솔로 뮤지션의 경력을 이어간 조지 해리슨은 한평생 실존성에 골몰했다. 막대한 부와 명성으로 물질세계의 최전선에 있었으나 궁극적 삶의 목표가 아님을 깨달았다. 힌두교 사상이 대변하는 영적 세계의 탐구와 그것의 예술화는 해리슨의 삶을 관통했고 그 성찰을 음악 예술에 담아 대중에 전파했다. 마틴 스코세이지 연출의 2011년 작 음악 다큐멘터리 영화 < 조지 해리슨: 물질 세계에서의 삶 >은 신과의 만남을 소망하며 끊임없이 문 두드렸던 한 뮤지션을 들여다본다.

영화는 비틀스의 결성부터 조지 해리슨의 마지막에 이르는 장대한 타임라인을 아우른다. 루츠 록의 전설 더 밴드를 다룬 < 라스트 왈츠 >(1978)과 밥 딜런 삶의 궤적을 그린 < 노 디렉션 홈: 밥 딜런 >을 연출한 마틴 스코세이지는 극영화에서 보여준 완벽주의적 디테일을 어김없이 나타냈다. 애플사의 전 대표 닐 아스피날과 미국의 드러머 짐 켈트너, 독일 출신 베이시스트 클라우스 부어만 등 관련 인물의 증언과 상세한 역사적 정보가 이야기의 총체성을 확보했다.

따스한 성품을 가졌지만 가끔은 지독하게 솔직하고 반항적이었고 이단아 혹은 외골수 성향은 종교, 음악과 만나 본인만의 인장을 새겼다. 존 레논과 폴 매카트니의 압도적 존재감을 비집고 음악적 부피를 늘려가던 조지 해리슨은 < Rubber Soul >(1965)의 ‘If I needed someone’ < Revolver >(1966)의 ‘Taxman’ <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 >의 ‘Within you without you’ < The Beatles >(1968)의 ‘While my guitar gently weeps’, < Abbey Road >(1969)의 ‘Something’ 같은 명곡을 써냈다. 슬라이드 기타와 시타르로 표현한 환각적인 음악 세계는 후대 사이키델릭 록과 징글 쟁글 사운드에도 영향을 미쳤다.

인도음악을 실험적으로 표현한 동명 영화의 사운드트랙 < Wonderwall >(1968)과 무그 신시사이저를 채색한 전자음악 앨범 < Electronic Sound >(1969) 두 장의 솔로 앨범을 발표했지만, 사람들이 기억하는 건 1970년에 나온 < All Things Must Pass >로 트리플 엘피의 양적 거대함과 ‘All things must pass’, ‘What is life’ ‘My sweet lord’ 같은 명곡들을 배출한 야심작이다.

직접 연주한 슬라이드 기타가 빛나는 빌보드 1위 곡 ‘Give me love (peace on earth)’가 들어간 < Living In The Material World >(1973)와 밥 딜런, 리온 러셀, 빌리 프레스턴 등이 참여한 라이브 앨범 < The Concert For Bangladesh >(1971)도 해리슨을 대표하는 수작이다. 특히 필 스펙터의 독보적 음향 기술인 월 오브 사운드로 록과 가스펠, 힌두 음악을 망라한 < The Concert For Bangladesh >는 전쟁 피해 복구를 위해 제작되었다는 점에서 해리슨의 인도주의를 반영했다.

덜 익숙한 경력도 드러난다. 영국의 희극 그룹 몬티 파이튼의 팬이었던 그는 직접 설립한 영화사 핸드메이드 필름(HandMade Films)으로 < 라이프 오브 브라이언 >이라는 컬트 영화에 3백만 달러 제작비를 댔다. 이후로도 SF 코미디 걸작 < 브라질 >(1985) 을 감독한 테리 길리엄, 에릭 아이들 같은 파이튼 멤버와 어울리며 영화 제작에 참여했다.

사람을 좋아하고 협업을 즐겼던 성향은 로이 오비슨, 톰 페티, 밥 딜런, 제프 린과 함께한 슈퍼그룹 트래블링 윌버리스(The Traveling Wilburys)로도 연결되며 네 사람이 즉흥적으로 곡을 만들어가는 유쾌한 장면이 그려진다. 영화에 언급되지 않았지만 1988년 열한 번째 정규 앨범 < Cloud Nine >에 수록된 미국의 알앤비 뮤지션 제임스 레이(James Ray) 원곡의 ‘Got my mind set on you’로 세 번째 빌보드 넘버원을 기록하기도 한다.

대중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자아 성찰을 중시했던 그는 노라 존스의 아버지이기도 한 인도 음악의 전설 라비 샹카와 지속적으로 교류했고 영적, 물리적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구절을 뜻하는 만트라를 3일 내내 암송하기도 했으며 줄곧 명상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이토록 종교에 깊이 빠진 그였지만 영적 체험에 정해진 틀이 없음을 깨닫고 대중 음악가로서 창작과 음악 활동에 집중하게 된다.

세상이 씌운 형이하학적 수사들에 염증을 느끼곤 했지만, 결코 사람과 사랑을 놓지 않았다. 내세를 믿었던 그에게 현세는 다음 단계를 위한 밑 작업이었고 육신과 영혼이 들러붙은 58년을 인간애로 채웠다. 주변 사람들을 향한 따스한 마음과 베풂, 음악으로 전파한 사랑은 많은 이들이 현세의 그를 그리워하는 이유다. 위대한 대중 음악가 조지 해리슨은 그렇게 물질세계를 초월한 구도자로 남았다.

– 영화에 사용된 음악 목록 –

1. All things must pass
2. George Formby ‘Count your blessings and smile’
3. Bill Justice & His Orchestra ‘Raunchy’
4. The Light That Has Lighted the World
5. The Beatles ‘Wildcat’
6. The Beatles ‘Nothin’ shakin’ (but the leaves on the trees)’
7. Beware of darkness
8. The Beatles ‘I wish I could shimmy like my sister Kate’
9. Chuck Berry ‘Roll over Beethoven’
10. The Beatles ‘A taste of honey’
11. The Beatles ‘This boy’
12. The Beatles ‘I saw her standing there’
13. The Beatles ‘You can’t do that’
14. The Beatles ‘Money (that’s what I want)’
15. The Beatles ‘Don’t bother me’
16. The Beatles ‘And I love her’
17. The Yardbirds ‘A certain girl’
18. The Beatles ‘If I needed someone’
19. Ravi Shankar ‘Prabhujee’
20. Ravi Shankar ‘Dhun (Dadra and fast Teental)’
21. The Beatles ‘Love you to’
22. The Beatles ‘Strawberry fields forever’
23. The Beatles ‘Within you without you’
24. The Beatles ‘The inner light’
25. The Beatles ‘Savoy truffle’
26. Ski-ing
27. Party Seacombe
28. The Beatles ‘Revolution #9’
29. The Beatles ‘Yer blues’
30. The Beatles ‘While my guitar gently weeps’
31. The Beatles ‘Something’
32. The Beatles ‘Here comes the sun’
33. What is life
34. Mukunda Goswami ‘Hare krishna mantra’
35. Wah wah
36. Awaiting on you all
37. My sweet lord
38. Isn’t it a pity
39. Ravi Shankar ‘Bangla dhun’
40. Give me love (give me peace on earth)
41. Dark horse
42. I’d have you anytime
43. Run of the mill
44. Let it me me
45. Give peace a chance
46. Between the devil and the deep blue sea
47. Ringo Starr ‘I’ll be fine anywhere’
48. The Traveling Wilburys ‘Riders in the sky (a cowboy legend)
49. The Traveling Wilburys ‘Handle with care’
50. The Traveling Wilburys ‘Margarita’
51. The Traveling Wilburys ‘Dirty world’
52. Marwa blues
53. Brainwashed
54. Tip-toe thru the tulips with me
55. The Beatles ‘Long long long’

Categories
특집 Feature

[무비즘] 더 로즈

코로나 기세가 조금씩 저물자 삭막했던 극장가에 활력이 돌기 시작했다. 지구촌 곳곳에는 흥미로운 작품 소식들이 당차게 고개를 내미는 추세다. 이러한 스크린 흐름에 발맞춰 IZM이 무비(Movie)와 이즘(IZM)을 합한 특집 ‘무비즘’을 준비했다. 시대를 풍미했던 아티스트의 명예를 재건하고 이름을 기억하자는 의의에서 매주 각 필자들이 음악가를 소재로 한 음악 영화를 선정해 소개한다. 열 한 번째는 재니스 조플린을 기억하며 너무 일찍 시들어버린 장미를 애도하는 영화 < 더 로즈  >다.

짧은 시간 강렬하게 불꽃을 태우고 세상을 떠난 27클럽에는 1960년대를 호령한 ‘3J’가 있다. 전설적인 기타리스트 지미 헨드릭스와 도어즈의 프론트맨 짐 모리슨 그리고 < The Rose >의 실제 모델 재니스 조플린이다. 화려한 불빛 아래에서 노래하는 아티스트의 삶에도 어두운 면은 존재한다. 대중문화의 역사는 약물이나 마약으로 그 짙은 음영을 지우려 했던 아티스트들을 수없이 떠나보냈고 재니스 조플린 역시 그중 한 명이다. 가상의 슈퍼스타 ‘로즈’의 삶을 담은 < The Rose >는 조플린의 삶을 온전하게 그리고 있지는 않지만 블루스와 록 역사의 한 획을 그은 그의 인생 말미를 미약하게나마 조명한다.

슈퍼스타 ‘로즈’의 이야기

허스키한 목소리와 과감한 몸동작으로 무대 위를 누빈다. 시대상에 구애받지 않았던 자유로운 영혼은 노래하는 것을 진심으로 사랑했지만 계약이라는 족쇄가 그를 구속한다. 살인적인 스케줄은 기량 저하를 동반했고 어느새 처음 마이크를 잡았을 때의 순수한 즐거움마저 잃어버린다. 로즈는 1년의 휴식기를 원했으나 다음 일정이 그를 기다린다.

언론과 미디어에게 슈퍼스타의 감정은 중요하지 않다. 지친 몸과 마음으로 눈물을 흘려도 기자들의 쏟아지는 질문과 여기저기서 터지는 플래시 세례 앞에서는 가면을 써야 한다. 어느 것이 진짜 자신의 모습인지 모를 지경. 끊임없이 감정 기복을 겪으며 다시 무대 위에 오른 로즈는 오직 조명 속에서 노래 부를 때만이 온전한 자신이 된 기분이다. 현실로 돌아오면 다시 피폐해진 심신을 달래야 한다. 여러 차례 이용했던 술과 마약도 일시적인 쾌락뿐이기에 그만두고 만다.   

팬들에게 사랑받는 가수가 되었지만 그의 솔직하고 방탕한 성격이 늘 환영받는 것은 아니었다. 극중 인물인 작곡가 빌리 레이와의 갈등은 로즈를 방황하게 만들었고 불안정한 감정은 자연스럽게 애정결핍으로 이어졌다. 사랑을 찾아 떠났고 고향으로 돌아가 보기도 했지만 예민하고 혼란스러운 마음을 편히 의지할 수 있는 곳은 없었다. 결국 끊었던 약물에 손을 대며 심연으로 도피한다. 무대에 갈증을 느끼고 다시 사람들 앞에 섰을 때는 이미 너무 많은 약을 복용한 뒤였다. 모든 것을 불태운 로즈는 화려한 조명 아래에서 노래를 부르다 생을 마감한다.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삶 

< The Rose >의 결말과 달리 재니스 조플린은 할리우드의 한 호텔에서 헤로인 중독으로 세상을 떠났다. 시간을 거슬러 그의 삶을 살펴보면 영화 속에서 그리고 있는 마지막 며칠보다 더 극적인 천재의 일생을 확인할 수 있다.

당시 텍사스의 보수적인 지역색과 다르게 자신의 솔직한 감정과 생각을 과감히 드러냈던 조플린은 따돌림을 당했다. 특히 외모로 인해 놀림을 받는 일이 많았는데 다행히 곁을 지켜주는 친구들이 있었다. 그중 한 명은 블루스의 어머니라 불리는 마 레이니(Ma Rainey)를 비롯한 베시 스미스(Bessie Smith), 리드 벨리(Lead Belly) 등의 블루스 음반을 소개해 줬다. 자연스럽게 슬픔을 표현한 음악과 친해진 그는 상처를 달래기 위해 노래했고 1962년 대학 동료의 집에서 첫 레코딩 ‘What good can drinkin’ do’를 녹음한다.

큰 반향을 일으키지 못한 싱글이 본격적인 음악 생활을 열어주었다. 재니스 조플린은 고향인 텍사스에서 벗어나 당시 히피문화가 팽배했던 도시이자 사랑의 여름의 요람이기도 한 샌프란시스코로 떠났다. 그곳에서 사이키델릭 밴드 빅 브라더 앤 더 홀딩 컴퍼니를 만나게 되고 재능은 만개하기 시작한다. 1967년 몬터레이 팝 페스티벌에서 강렬한 모습을 보인 그와 밴드는 이듬해 ‘Summertime’과 ‘Piece of my heart’, ‘Ball on chain’ 등을 수록한 < Cheap Thrills >를 발매하며 빌보드 앨범차트 1위를 기록한다. 놀림을 당하던 소녀가 정상을 찍는,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순간이었다. 

진주 속에 잠든 천재의 목소리

솔로 활동을 위해 새로운 백 밴드 코즈믹 블루스 밴드(Kozmic Blues Band)를 결성하고 음악 활동을 이어 나간다. 1969년 발매한 < I Got Dem Ol’ Kozmic Blues Again Mama! >는 사이키델릭 록이 주류였던 전작보다 더 블루스의 전형에 가까운 앨범이었다. 그 해 히피 문화의 절정을 달린 우드스탁 페스티벌 무대에 오른 재니스 조플린은 다시 한번 록스타로써의 입지를 다지며 성공 가도를 이어간다.

계속해서 꽃길만을 걸을 것 같던 그는 1970년 새 앨범의 녹음을 위해 방문한 캘리포니아 할리우드의 한 호텔에서 숨진 채 발견된다. 갑작스러운 죽음은 도어즈의 < The Doors >를 포함한 초기 다섯 개의 앨범을 프로듀싱했던 폴 앨런 로스차일드(Paul Allen Rothchild)와의 작업 중에 발생한 일이었다. 다행히 상당수 트랙의 녹음을 마친 덕에 음반은 1971년 1월 그의 죽음 석 달 후 < Pearl >로 세상에 공개된다. ‘Me and bobby Mcgee’와 ‘Cry baby’ 등을 수록한 앨범은 차트 1위와 더불어 4백만 장의 판매고를 기록하며 그의 가장 성공적인 작품으로 남았다. 

여전히 숨 쉬는 푸른색 장미

독특한 개성과 겉모습으로 받은 따돌림이 어린 소녀에게 새파란 멍을 새겼다. 음악으로 치유하며 상처가 간신히 아무는 듯했지만 그사이 중독되어버린 약과 방탕한 생활로 몸은 무너져 갔고 더 이상 유약한 신체는 대중의 무거운 시선과 압박을 견디지 못했다. 원제 < Pearl >로 각본이 제작되었던 < The Rose >는 유가족의 거부로 인해 각색된 스토리와 새로운 제목으로 스크린에 담겼다. 27년간의 소설 같은 삶이 온전히 담겨 있지는 않지만 주인공 로즈를 통해 재니스 조플린의 외롭고 고통스러웠던 마지막을 미력하게나마 확인할 수 있다.

영화와 음악계 그리고 뮤지컬 신에서 지대한 영향력을 미친 베트 미들러가 주연으로 열연했다. 새롭게 작사 작곡한 OST는 < Pearl >의 프로듀서 폴 앨런 로스차일드가 맡았다. 작품은 그 해 아카데미 여우주연상과 음향상을 포함한 4개의 부문에 후보로 오르며 재니스 조플린을 기리기 위한 영화로서의 가치를 입증했다. 성공적인 송덕문이었지만 그의 음악과 인생 스토리는 영화보다 더 강렬한 힘을 지닌 채 역사에 남았다. 그가 열창한 블루스와 록은 시대를 불문하여 사람들의 가슴을 올렸고 급작스럽게 시들어버린 푸른색의 장미는 여전히 우리의 플레이리스트 안에 살아 숨 쉰다.     

-영화에 사용된 음악 목록-
1. Whose side are you on
2. Midnight in Memphis
3. Concert monologue
4. When a man loves a woman
5. Sold my soul to rock ‘n’ roll
6. Keep on rockin’
7. Love me with a feeling
8. Camellia
9. Homecoming monologue
10. Stay with me
11. Let me call you sweetheart
12. The ro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