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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탈리카 ‘Master Of Puppets’ (1986)

상업적 팝 메탈을 강타한 후련한 탱크 사운드

“그때 사람들이 들었던 음악은 스틱스나 REO 스피드웨건, 뭐 그런 것들이었어. 우리가 등장했을 때 사람들은 대부분 ‘이게 대체 어디서 나온 거야? 전에 못 들어본 거잖아?’라고들 했지. 왜 그랬겠어? 이런 음악은 안 팔린다고 메이저 레코드사들이 내지 않으니까 접해보지 못했기 때문이야.”

라스 울리히(Lars Ulrich)와 메탈리카는 야들야들한 록과 메탈이 판치던 당시 음악계의 풍토를 ‘능멸’하고자 했다. 그러기 위해선 엄청난 볼륨의 폭발음이라야 했다. 그들은 80년대 메탈의 새 물결 이른바 NWOBHM에 기초해 70년대 펑크의 파괴력과 연주의 단순한 배킹(backing) 요소를 흡수한 새로운 틀의 음악을 주조해냈다. ‘세게 때린다’는 뜻의 스래시 메탈(thrash metal)이었다. 라스 울리히는 자신들의 83년 첫 앨범 <싹 죽여버려>(Kill’em All)를 ‘스래시 메탈 사상 가장 영향력 있는 앨범’이라고 자랑했다.

Fans Vote "Master of Puppets" Best Metallica Song in Band-Endorsed Poll |  Consequence of Sound

<마스터 오브 퍼피츠>는 본 조비의 ‘팝메탈의 흥행대작’ <슬리퍼리 웬 웨트>가 나온 85년 같은 해에 발표되었다. 결과는 뻔해 보였지만 팬들의 반응은 예상외로 좋았다. 미국 차트 29위, 영국에선 41위에 오르는 준히트를 기록했다. 팝 메탈과 같은 ‘투우장의 황소’가 아닌 ‘전시의 탱크’ 사운드를 열망하고 있는 메탈 마니아들이 보낸 성원이었다.

메탈리카는 이 앨범의 스래시 탱크 사운드로 얼마 후 록과 메탈 음악계 최고 반열에 올랐다. 사실 84년 발표한 그들의 전작 <번개를 타라>(Ride The Lightning)에서 과격한 스래시는 이미 형식미가 구현된 바 있다. 그런데 <마스터 오브 퍼피츠> 앨범이 그것보다 우대되는 이유는 스래시 메탈의 원시성에 ‘예술성’을 부여했기 때문이었다.

앨범의 수록 곡들에는 스래시의 전형적인 폭음(爆音)이 질펀하다. 그러나 그 단계에 그치지 않고 파괴적 사운드에 ‘대오정렬’을 꾀하고 질서 있는 곡조를 확립함으로써 전무후무한 ‘아트 메탈’을 창조해낸 것이다.

이 음반은 LP 시절 국내에서는 불행히도 ‘정신요양소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Welcome home, sanitarium) ‘처분할 영웅들'(Disposable heroes) ‘데미지 주식회사'(Damage Inc) 등 3곡이 금지 판정을 받아 팬들의 불만을 샀다. 누락된 곡을 대신해 영국 록 그룹 버지(Budge)의 ‘브리드팬'(Breedfan)과 모터헤드의 ‘왕자'(The Prince)가 메탈리카 버전으로 실렸다.

Metallica Archives | RVA Mag

라스 울리히는 앨범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메탈리카에게는 어쩔 수 없는 약점이 있다. 곡을 짧게 하려고 무진 노력을 해도 도무지 짧은 곡을 만들 수 없다는 점이다. 하지만 곡의 스타일이나 전체적인 분위기에서 보자면 1집이나 2집에 비해 더욱 성숙해졌다고 말할 수 있다.” 프로그레시브라고 할 대곡 지향적 구성은 물론이고 ‘주름진’ 스래시가 약간 다림질된 듯 펴졌음을 시사하고 있는 것이다.

최고의 스피드를 자랑하는 첫곡 ‘배터리'(Battery)는 커크 해밋(Kirk Hammett)과 제임스 헤트필드(James Hatfield)의 공격적인 기타 피킹과 라스 울리히의 이성을 마비시키는 드러밍이 압권이다. 이 곡은 동시에 메탈리카 공연문화의 핵을 이루는 ‘헤드뱅잉’ 열풍을 몰고왔다(98년 4월 내한 공연 당시 이 곡이 앙코르되었을 때 고개를 마구 흔들어대는 ‘헤드뱅어’들에 의해 공연장의 다수 의자가 부서졌다)

타이틀 곡 ‘마스트 오브 퍼피츠’는 메탈리카 최고의 걸작이라고 할만큼 기승전결이 뚜렷했다. 제임스 헤트필드의 ‘보컬 카리스마’를 확인할 수 있는 이 곡은 ‘스래시의 찬가’로 꼽힌다. ‘정신요양소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는 멤버들이 일컫는 ‘메탈리카식 발라드’의 미학이 꽃을 피우는 곡으로 자신은 멀쩡하다고 여기지만 주위에서는 정신병자로 인식해 병원에 갇히게 된 한 젊은이의 이야기를 다뤘다.

미드템포로 시작되어 점점 속도감을 붙여 가는 ‘처분할 영웅들’은 전쟁터에 끌려간 한 소년에 대한 스토리이며 ‘나병환자의 메시아'(Leper messiah) 역시 사회에대한 항변으로 텔레비전이 주도하는 주류의 폭압적 문화에 대해서 비판을 가하고 있다.

긴장감과 서정성이 동거하는 곡 ‘오리온'(Orion)에서 베이스주자 클리프 버튼(Cliff Burton)은 죽음을 예견이라도 한 듯 무겁고 차분한 진행 속에서 절정의 테크닉을 과시하고 있다. 그는 86년 투어도중 버스 전복사고로 사망했고 그 자리에 제이슨 뉴스테드(Jason Newsted)가 들어왔다.

이 앨범은 메탈리카를 메탈을 넘어 록 전체의 신화적인 존재로 비상시켜주었다. 그러나 그룹은 스래시의 틀에 자신들이 함몰되기를 원하지 않았다. 한 때 스래시의 창조자라는 자부심을 피력했던 라스 울리히는 이 음반을 만들고 난 후 스래시란 말은 이제 그룹에 맞지 않는다고 했다. “확실히 우린 스피드 에너지 그리고 혐오감 제공이란 측면에서 스래시의 원조였다. 하지만 항상 우린 그러한 한정된 틀을 넘어서 왔다. 메탈리카는 항상 진보한다.”

진정한 메탈 음악을 추구하겠다는 의지로 만든 그룹명과 달리 그들은 90년 거의 ‘메탈 발라드집’을 방불케 한 앨범 <메탈리카>에 이어 5년 공백을 깨고 발표한 <로드>(Load)로는 당시의 록 조류인 얼터너티브 록 리프를 과감히 수용, 스래시 마니아로부터 거센 비난을 받았다. 나중에는 “현재 바하 브람스를 비롯한 클래식 음악을 듣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들은 하고싶은 바대로 음악을 하는 자유를 위해 팬들의 스래시 소아병(小兒病)에 아랑곳하지 않았다. 팬들이 자신들로부터 스래시만을 원하게 만든 이 작품을 과감하게 역사 속에 안치(安置)시켜버렸다. 이 앨범을 만든 후 진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메탈리카가 조정한 목표는 바로 ‘<마스터 오브 퍼피츠>로부터의 해방’이었다. (20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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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Feature

이센스 ‘The Anecdote’ 5년 후

E SENS

5년 전을 돌이켜보면 한국 힙합은 양적으로 팽창해나가고 있었으나 내부에서는 위기감이 감돌았다. 래퍼들을 방송의 도구로 사용한다는 싸늘한 시선으로 출발한 엠넷의 < 쇼미더머니 >는 예상과 달리 빠르게 힙합 신의 패권을 장악했다. 그 과정에서 미디어를 적극 활용한 일리네어 레코즈, 스윙스 등은 한국에서 상상할 수 없던 ‘힙합 슈퍼스타’의 칭호를 거머쥐었고, 아티스트들은 엔터테인먼트의 달콤한 유혹과 방송 권력에 굴하지 않겠다는 지조의 두 갈래 길에 섰다. 

후자의 저항도 만만치 않았으나 대개는 전자가 승리했다. 2000년대 언더그라운드에서 “수백 배로 증대된 시장에서 힙합 앨범의 판매고는 팔백억에 달해”(화나, ‘그날이 오면’ 중)라 염원하던 래퍼들은 미디어의 수혜 아래 힙합을 유행으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 그들 역시 열악한 환경에서 가사를 쓰고 텅 빈 공연장에서 랩을 뱉으며 치열하게 내일을 향해 싸워가던 이들이었다. 진정성의 가치, 음악에 대한 열의의 잣대 모두 모호하게 적용됐다. 

이센스 인터뷰. 내가 나빠? | 대학내일

그때쯤 이센스는 오래 몸담았던 소속사 아메바컬처로부터 독립해 솔로 앨범을 준비했다. 그는 복합적인 캐릭터였다. 2000년대 초부터 활동을 시작한 경력자이자 언더그라운드의 기대주를 꼽을 때 빼놓을 수 없는 슈퍼 루키였고, 동료 사이먼 도미닉(Simon Dominic)과 함께한 슈프림팀(Supreme Team) 활동을 통해 잠시나마 언더그라운드 출신 대중음악 스타로 인기도 끌었다. 그러나 그는 2013년 ‘컨트롤 대란’이라 불리는 거대한 논쟁 속 ‘메이저 래퍼가 신의 4분의 3을 채웠네. 한국 힙합은 반죽음.’이라 선언하며 홀연히 주류를 떠났다. 

비스츠 앤 네이티브스, 바나(BANA)가 만들어지고 < The Anecdote >에 대한 이야기가 꾸준히 흘러나왔다. ‘I’m good’ 등 선공개 싱글부터 “한국의 < Illmatic >”이라는 딥플로우 및 관계자들의 극찬까지 앨범은 발매 전부터 범상치 않은 작품으로 예고되었다. ‘힙합 신 혹은 랩 게임에서 벗어난 것들을 표현하고 싶었다’는 아티스트의 고백은 앞서 ‘컨트롤 디스전’으로 불거진 메이저와 마이너의 충돌, 빠르게 상업화되어가는 시장에 상처 받은 팬들의 심리를 정확히 겨냥했다.

이센스 `디 에넥도트` 한국 100대 명반 선정…2010년 이후 최고작 - 스타투데이

< The Anecdote >는 정말로 이방인의 기록이었다. 덴마크 프로듀서 다니엘 ‘오비’ 클라인(Daniel ‘Obi’ Klein)이 담당한 1990년대 이스트코스트 스타일의 비트 위에 창작가의 단편을 가감 없이 거칠게 고백해나갔다. 이미 랩으로는 적수가 없었지만 이 앨범에서 이센스의 랩은 특히 야수와 같았다. 단호하면서도 유연하게 본인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정확히 풀어냈다. ’Writer’s block’의 고통부터 ‘삐끗’과 ‘Tick tock’의 비판 의식, ‘A-g-e’의 철학까지 앨범은 이센스, 인간 강민호의 일화를 통해 견고한 서사를 형성했다. 

특히 ‘The anecdote’의 회고로부터 ‘Back in time’의 성장기를 연결해 정체성을 결정짓는 이센스의 문법은 새로운 유형의 거리두기였다. ‘The anecdote’를 지배하는 비애와 향수가 그때까지 비주류, 언더그라운드를 지배하는 감정이었다면 ‘Back in time’의 담담한 고백은 주류가 아니더라도, 독립의 길을 걷더라도 단단한 자아로 결론지어질 수 있다는 묘한 자신감이 담겨있었다. 이 자전적인 회고야말로 앨범의 가장 주요한 저항의 메시지, 세상에 치켜든 가운뎃손가락이었다. 

여기에 한국 가요 역사상 최초의 ‘옥중 앨범’이라는 타이틀이 앨범을 수작에서 명반으로 끌어올렸다. 2014년 말 발매 예정이었던 작품은 이센스가 두 번째 대마초 흡연으로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으며 이듬해인 2015년 8월 27일 뒤늦게 공개됐다. 아티스트의 사회적 패배는 독립, 저항, 관조, 비관 등 연전연패하던 언더그라운드의 감정을 증폭한 제일의 요소였다. 앨범에 쏟아진 찬사와 상업적 성과를 전혀 누리지 못하는 아티스트의 현실은 미디어 아래 주목받고 그 세를 키워가던 힙합 신의 이면과 정확히 일치했다.

이센스의 메시지는 뭇 대중을 관통하는 보편의 경험이 아니었지만 빠른 주류화와 상업화에 반하는 이들에게는 일종의 교시 같은 작품이 됐다. 그의 저항은 “양분 없는 황량한 땅”에 비료를 뿌리고 나름의 건강한 땅을 확보하는 일련의 과정이었다.

그렇게 확보한 영역에서 젊은 아티스트들은 더욱 과격하고 진솔한 메시지를 풀어놓았고 베테랑들은 자극을 통해 본인을 돌아볼 수 있었다. < The Anecdote >는 < 쇼미더머니 >와 엔터테인먼트와 균형을 이루는 일종의 대안 공간이자 구심점이 되었다. 이방인의 언어, 실패의 언어로도 성공이 가능함을 증명했다. 

발매 5주년을 맞은 < The Anecdote >를 돌아보며 현재의 시장을 바라본다. 방송과 뉴미디어의 지원 아래 성공한 래퍼들과 아티스트들은 더 이상 상업성이라는 굴레에 자신의 음악을 희생할 필요가 없다. 양적으로 성장한 한국 힙합 신은 대중의 관심과 구매력을 확보했고 이를 바탕으로 독립적인 채널을 형성해 목소리를 더욱 키우고 있다. 그러나 자신의 삶을 던져 담대한 질문을 던지고 흐름을 바꿀만한 결정적 순간은 그리 많지 않다.

수작은 많으나 명작은 드물다. 유행은 잠시지만 이름을 남기려면 기성에 덤벼야 한다. 이센스 ‘일화’의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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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블릭 에너미(Public Enemy) ‘It Takes a Nation of Millions to Hold Us Back'(1988)

60년대 정신을 계승한 예비 ‘갱스타 랩’의 살벌한 파티

『뉴스위크』는 92년 10월 미국사회의 여론과 가치관에 영향을 미치는 ‘문화 엘리트 100인’을 선정했다. 영화, 레코드, 신문, 방송 등 문화관련 분야의 유력 인사들이 고루 지명되었는데 대중음악관계자로는 마돈나, 윈턴 마샬리스, 워너 뮤직 회장인 로버트 모가도, 랩 프로듀서 러셀 시먼즈 그리고 처크 디(Chuck D)가 포함되었다.

처크 디는 바로 랩 그룹 퍼블릭 에니미(Public Enemy)를 이끄는 인물로 리드싱어이자 노랫말을 대부분 쓰는 그룹의 명실상부한 간판이었다. 그가 랩 가수에 불과하면서 그처럼 문화 엘리트에 꼽힌 이유는 당연했다. 흑인들의 거리음악인 랩에 흑인정신을 실어 많은 흑인들에게 자긍심을 일깨워준, 가수의 위치를 넘어선 흑인 지도자였기 때문이다.

흑인들은 그의 주장에 따라 움직였으며 그의 노랫말에 일말의 후련함을 맛보았다. 이 앨범이 그들의 대표작이자 문제작이었다. 88년에 발표되어 민주당 대통령후보로 흑인 제시 잭슨 목사가 부상하던 시기에 회오리를 야기했다.

여기에는 흑인 현실에 대한 자각을 기반으로 한 단결과 결집 요구, 투쟁의식 고취, 소요의 정당성, 백인 파워 엘리트에 대한 성전(聖戰) 의식 등 흑인의 항거의식이 총망라되어 있다. ‘최후의 결전을 향한 카운트다운'(Countdown to armageddon) ‘마인드 테러리스트'(Mind terrorist) ‘폭탄보다 요란한'(Louder than bomb) ‘중단없는 저항'(Rebel without a pause) 등 노래 제목을 보라!

권리, 평등! 우린 그것을 쟁취하러 간다. 이 투쟁의 잔치는 66년에 시작되었지. 흑인을 찬양하는 과격성을 섞어서 말야. 그 때 12시에 어떤 힘이 그것을 잘라내면서 지옥으로부터 출현했지. 그것이 바로 너희들의 정부란 거야. 그것 때문에 우리의 파티가 있는 거지. ‘투쟁의 권리를 위한 파티'(Party for your right to fight)

처크 디는 이 앨범을 “리얼리즘을 표출한 마빈 게이의 앨범 < 무슨 일이지 >(What’s going on)를 힙합(hip hop)으로 해석하고자 했던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사회성을 부각시키기 위해 마틴 루터 킹, 말콤 X 등 흑인지도자와 과격한 운동단체 블랙 무슬림(Black muslim)의 리더 루이스 퍼러칸의 이름을 수록곡 곳곳에 등장시키고 있다. 백인에 대한 공격성이 실로 이보다 과격하게 또 무시무시하게 표출된 앨범은 없다.

음악적으로도 퍼블릭 에니미는 랩이 가지는 ‘소음’의 성격을 감추지 않고 헤비 메탈을 랩과 섞는 등 한층 시끄러움을 증폭시키려 했다. 프로듀서 행크 쇼클리는 ‘랩의 소음을 확실히 보여주자. 대신 그것에 무언가를 생각해보도록 할 것을 집어넣자’는 기획에 따라 이 앨범을 만들었다고 밝혔다. 수록곡 ‘소음을 전달하라'(Bring the noise)가 그 증거다.

이 앨범은 이처럼 흑인 랩의 새로운 패턴을 제시해 다대(多大)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흑인 음악이 어떤 것을 합성하고 덧입히고 하는 작위적 작업방식이 여기서 비롯되었다. 그 뒤로 단순히 곡을 쓰는 것이 아니라 음악을 꾸미는 것이 중요하게 대두되었다. 이 작품이 시대를 가르는 명반 대열에 빠지지 않는 가장 큰 이유다.

릭 루빈의 데프 잼 레코드사와 계약하면서 음반을 낸 퍼블릭 에니미는 직설적인 가사로 인해 87년 데뷔 시절부터 ‘랩의 블랙 팬더스’라는 별명을 얻었으며 이른바 초강력 갱스타 랩(gangsta rap)의 표본그룹이 되었다. 하지만 닐 영의 지적처럼 60년대 저항음악의 언어를 계승한 랩의 본질을 누구보다 잘 구현해 그들의 2집인 이 음반에 이르러서는 일각의 백인들도 예의 주시하는 상황으로 발전했다. 과격 속에 흐르는 진실이 일부 공감을 얻게 된 것이었다.

당시 너무나 오해된 랩의 저항의식과 시대를 앞서간 사운드가 농축된 고(高)부가가치 앨범이다. 여기에선 백인 지배층에 대한 불신을 담은 ‘그 말을 믿지마'(Don’t believe the hype)가 싱글로 나와 히트했다.

(201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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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빈 게이(Marvin Gaye) ‘What’s Going On'(1971)

‘미국병’의 진단을 통해 모타운에 덤벼든 아티스트의 용기

“당신 말야. 오늘 신문 봤어? 켄트주립대학에서 죽은 학생들에 대한 기사 읽었지? 켄트사태는 정말 어처구니가 없어. 잠도 못자고 계속 울기만 했다니까. 이제 달이라든지 유월 어쩌구하는 3분 짜리 노래를 부르는 건 싫어.”

마빈 게이는 이렇게 목청을 높이면서 모타운 레코드사의 작곡가인 알 클리블랜드와 레날도 벤슨이 ‘무슨 일이지'(What’s going on)를 써 가지고 왔을 때 예전처럼 신변잡기식 노래는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이 때 그의 관심은 월남전에 쏠려있었다. 자신의 친동생 프랭키가 파월장병이었기에 더욱 그랬다. 반전시위를 하던 켄트주립대학 학생들이 진압군의 M1소총에 맞아 죽은 비극적 사태에 더욱 충격을 받은 마빈 게이는 개과천선으로 급선회, 이제부터는 사회의식을 담은 노래를 하기로 작정했다.

그는 점점 사그러들고 있는 흑인정신을 되살리고 싶었다. 고통을 노래하고 기존에 저항하는 위대한 소울의 정신을 그는 잊지 않았다. 마빈 게이의 걸작이자 팝 역사의 명반으로 떠받들어지는 < 무슨 일이지 >(What’s Going On)는 그렇게 하여 탄생되었다. 그것은 실로 그 시점 미국이 안고있는 문제점들에 대해 고뇌하는 한 인간의 35분 짜리 명상이었다.

“어머니, 너무 많은 당신들이 울고 있어요. 형제여. 너무 많은 그대들이 죽고 있어요… 전쟁이 해답은 아냐. 사랑만이 증오를 무너뜨릴 수 있지. 여기에 사랑을 건넬 길을 찾아야만 해. ‘무슨 일이지'”

이 노래를 잇는 ‘형제여 무슨 일이야'(What’s happening, brother)는 바로 동생 프랭키가 베트남에서 겪은 체험을 기초로 하고 있다. 이 두 곡이 주제의 측면에서 앨범 전체의 실마리를 풀어간다. 마빈 게이는 ‘시내의 블루스'(Inner city blues)에서 도시 빈민가 흑인들의 곤궁을 요사했고, ‘내게 자비를'(Mercy mercy me)에서는 파괴되어가는 환경, 즉 공해를 노래했다. ‘어린이를 구하자'(Save the children)는 미래가 없는 세상에 대한 비탄이 담겨 있다. 소재가 광범위하지만 ‘고통’이라는 핵심 테마와는 모두 유기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 이 음반이 ‘흑인 아티스트 최초의 컨셉트 앨범’으로 규정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렇게 무거운 성격을 드러내고 있으니 모타운 회사측의 마음에 들 리가 없었다. 베리 고디 사장은 당시 레코드 구매자들이 사회비평의 음반은 원치 않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시사적인 컨셉트가 대중들에게 부담을 초래해 ‘상업적인 자살’ 행위가 되리라는 것이었다.

타이틀 곡이 히트하고 있는데도 그는 4개월이나 앨범 출시를 유보했다. “빨리 풀어. 안그러면 다시는 당신들을 위해 음반 안만들테니까. 이건 내 마지막 경고야.” 마빈 게이는 새로운 것에 빗장을 걸고 있는 회사측의 한심한 태도에 광분했다.

하지만 결국 승리자는 마빈 게이였다. 앨범은 출반하자마자 승승장구해 소울 차트는 정상을 밟았고 팝차트에도 10위권에 진입했다. 뿐만 아니라 타이틀곡을 비롯, ‘시내의 블루스’, ‘내게 자비를’ 등 3개의 히트싱글이 터져 나와 모두 차트 톱10에 랭크되었다. 앨범의 판매고는 8백만장에 달해 그 때까지 모타운 사상 가장 잘팔린 음반으로 기록되었다. 그것은 ‘대중의 수준’을 무시한 베리 고디 사장에게 대중이 내린 무서운 응징이었다.

마빈 게이의 승리는 저절로 얻은 것이 아니라 투쟁의 소산이기도 했다. 신념을 갖고 자기 주장을 관철해 모험을 기피했던 모타운 회사의 제작 스탭을 물리치고 자신 스스로 프로듀스한 음반을 내는 성과를 거두었다. 이전까지 모타운은 소속 작곡가나 기획자들이 음반제작의 주도권을 쥐고 있었다. 마빈 게이와 이 앨범이 갖는 또 하나의 업적은 그 같은 판도를 뒤엎고 회사로부터 ‘아티스트의 자유’를 쟁취했다는 데 있다.

사운드의 측면에서도 이 앨범은 모타운 사운드의 획기적 전환을 초래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쿠바의 전통음악인 콩가의 연주가 전체에 깔리면서 스트링(絃)과 함께 유연하게 삽입된 색소폰 연주, 은은하면서 두꺼운 보컬 하모니가 주도하는 제3세계적 음악 그리고 재즈와 가스펠의 분위기는 미들 템포의 리듬과 더불어 전에 없던 스타일이었다. 마빈 게이는 이렇게 하여 모타운의 새로운 70년대 사운드를 개척하는 위업을 쌓았다.

이 작품의 의의는 사회 분위기가 보수적으로 흘러도 위대한 소울 음악이 보여준 사회적 양심은 여전히 꿈틀대고 있음을 알린 것에 있다. 나중 흑인 목사 제시 잭슨은 이 앨범을 듣고 마빈 게이에게 “당신은 누구보다 훌륭한 성직자”라고 칭송하기도 했다. 『롤링 스톤』지의 묘사처럼 < 무슨 일이지 >는 잭슨 목사뿐 아니라 정말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소울 음악과 그 가치에 눈을 뜨게 했다.

-수록곡-
1. What’s Going On
2. What’s Happening Brother
3. Flyin’ High (In The Friendly Sky)
4. Save The Children
5. God Is Love
6. Mercy Mercy Me (The Ecology)
7. Right On
8. Wholy Holy
9. Inner City Blues (Make Me Wanna Holler)

20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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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미넴(Eminem) ‘The Marshall Mathers LP'(2000)

새 천년 초입의 음악계를 달군 인물은 흑인의 전유물인 랩을 ‘흑인보다 더 흑인답게’ 구사하는 백인 래퍼 에미넴(Eminem)이었다. 그는 초강성의 랩을 들고 나와 버블 검 음악에 중독이 된 음악계에 반란을 도모했다. 사람들은 세상을 벌집 쑤셔놓은 듯 발칵 흔들어버린 에미넴 현상을 심지어 엘비스 프레슬리에 비교했다. 그처럼 에미넴도 백인이면서 흑인음악을 가지고 유명해졌다는 것이다.

그가 일으킨 갖가지 소란이 모두 2000년에 소개되었던 이 앨범 < 마샬 매터스 LP >에서 비롯되었다. 1999년의 데뷔작 < 슬림 셰이디 LP >(The Slim Shady LP)으로 300만장 이상의 판매고를 올리면서 기반을 다져놓은 그는 이 앨범으로 마침내 미국사회에 ‘빅 트러블’을 일으키는데 성공했다. (슬림 셰이디는 그의 가명, 본명이 이 앨범 제목인 마샬 매터스다) 앨범은 700만장이나 팔렸다.

성공을 열망하던 그의 꿈★은 현실이 되었지만, 그를 바라보는 미국 언론들의 시선은 결코 곱지 않았다. 피부색부터 문제였다. 에미넴을 키워낸 흑인 명 프로듀서 닥터 드레(Dr. Dre)도 주변 인사들로부터 “왜 푸른 눈의 백인 래퍼를 키우려고 하느냐. 그 아이보고 록이나 하라고 그래라.”라는 핀잔을 들어야 했다.

그의 랩 라임(rhyme)이 지나치게 공격적이라는 점은 비판의 핵심이었다. 곡을 통해 동성연애자를 조롱하고 심지어 자신의 아내와 어머니한테도 손가락질을 퍼부었다. 일례로 아내의 실명을 제목으로 한 음반의 수록곡 ‘킴(Kim)’은 딸 앞에서 아내를 죽인다는 끔찍한 내용을 담았다. 견원지간인 모친과는 2002년의 히트곡 ‘Cleaning out my closet’이 말해주듯 법정소송도 불사했다.

친족 뿐 아니라 동료가수들에 대한 시비도 거르지 않았다. 노래 이곳저곳에서 브리트니 스피어스, 크리스티나 아길레라, 엔싱크 등 틴 아이돌을 직접적으로 겨냥해 이유 없는 복수혈전을 펼쳤다. 다음 앨범의 첫 싱글 ‘Without me’로는 테크노 아티스트 모비(Moby)를 깎아 내렸다. 에미넴 때문에 화제 선상에 오른 사람들이 무수히 생겨났다. 그와 비프(상대방과 랩으로 경쟁하는 것)를 펼치며 싸웠던 뮤지션들 대부분이 그랬다.

토픽을 제공해주니 팬들은 좋았다. 일종의 대리 만족에 의한 쾌감이었겠지만 동시에 고의적인 자극을 통한 상업성의 술수가 아닐까하는 추측도 비집고 나왔다. < 빌보드 >의 편집장을 지냈던 고(故) 티모시 화이트(Timothy White)는 < 슬림 셰이디 LP >를 “세상의 고통을 악용해 돈을 버는 앨범”이라고 혹평했다. 그는 가정폭력 제창자, 여성혐오자, 자아도취 환자로 매도되었고 ‘더러운 백인 아이'(Dirty white boy)는 공인된 수식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미국사회에서 백인은 강점일 수밖에 없었다. 그가 만약 흑인이었다면 아직까지도 흑백 인종차별이 존재하는 미국의 음악계가 그를 이렇게 방치하고 수용하지 못했을 것이다. 에미넴 스스로도 한 라임에서 “난 상품이고 백인이고 그래서 MTV가 호의를 보인다”고 속내를 털어놓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래핑만은 논란에서 철저히 비켜나 있었다. 앨범에서 발표되어 차트상위권을 잠식했던 싱글 ‘The real Slim Shady’는 마치 잰 듯 비트에 딱딱 맞아떨어지는 환상의 랩을 살포했고, ‘Kill you’에서의 긴 라임은 호흡이라는 측면에서 음악적 경이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어떤 흑인의 랩보다 그의 라임은 길었다. 그것은 고된 연습의 성과 아니면 타고난 재주였다. 래핑은 마치 ‘독침으로 귀를 쏘아대는’ 느낌이 들만큼 강렬하기로도 발군이었다. 신(辛) 래핑이 따로 없었다. 랩을 싫어하는 사람들조차도 ‘The real Slim Shady’에서 당대 가장 매력적인 라임으로 꼽힐 만한 ‘일어서세요'(please stand up) 부분의 친화력에 마냥 홀려버렸다.

외설 자기연민 대담함으로 가득한 ‘The way I am’은 분노의 화신인 듯 록 진영도 고개를 끄덕일 정도의 초강력 랩을 뿌려댔으며 ‘Stan’은 여가수 다이도(Dido)의 ‘Thank you’를 샘플링해 듣는 사람의 청각을 유혹하는 대중적 감수성을 뽐내고 있다.

과거 백인 힙합 뮤지션들이 흑인의 흉내에 그친 반면, 에미넴은 늘 백인임을 당당하게 선포했다. 스스로를 백인 쓰레기라고 부르며 “백인들 중에도 흑인처럼 사회낙오자와 부적응자가 많다”며 자신의 랩 행위를 정당화했다.

그는 어쩌면 백인 소외계층이 빈부 격차를 생각할 때 더 심한 고통을 겪을 수도 있다는 점, 랩이 ‘인종의 음악’에서 ‘계층의 음악’으로 확대되어가고 있다는 점을 일깨웠다. 새 천년 음악계는 논란으로 뒤범벅된 한 트러블메이커의 융단폭격으로 Y2K의 혼란과 위기를 말끔히 잊었다.

수록곡
1 Public service announcement 2000
2 Kill you
3 Stan
4 Paul (Skit)
5 Who knew
6 Steve Berman
7 The way I am
8 The real Slim Shady
9 Remember me?
10 I’m back
11 Marshall Mathers
12 Ken kaniff (Skit)
13 Drug ballad
14 Amityville
15 B**** please II
16 Kim
17 Under the influence
18 Criminal

(2004/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