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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Feature

2022 에디터스 초이스(Editors’ Choice)

조금이나마 서로의 거리를 좁힐 수 있었던 한 해였다. 그간 억눌려있던 모든 것들이 터져 나왔듯 음악 역시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가리지 않고 다양한 모습으로 우리들 앞에 나타났다. 희로애락으로 가득 찼던 2022년, 이즘 에디터의 일상을 파고든 노래는 무엇일까. 각자 취향을 녹여내 엄선한 플레이리스트지만 필자들이 독자 여러분에게 보내는 소소한 선물이기도 하다. 음악을 사랑하는 모두의 가슴 깊은 곳까지 진심이 전해지길 바란다.

정다열’s Choice

릴 나스 엑스(Lil Nas X) ‘Star walkin”
깜빡일지언정 멈추지 않았던 별들의 서사시.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

250(이오공) ‘춤을 추어요’
세월에 익어 물든 기타 연주와 목소리를 벗 삼아.

언텔(Untell) < Human, The Album >
인간 그리고 나는 누구인가. 근본적인 물음에 날을 부딪치는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향연.

신해경 ‘리얼러브 (Feat. 청하)’
양극단의 아티스트를 이어준 오작교 위의 황홀경.

그웬노(Gwenno) < Tresor >
익숙한 듯 낯선 미지 세계 속 보물. 위로라는 감정에 언어 장벽이 무슨 소용인가.

장준환’s Choice

MJ 렌더맨(MJ Lenderman) < Boat Songs >
마이크(The Microphones)를 든 채 인도(Pavement) 위 나타난 현대판 ‘마티 맥플라이’.

길라 밴드(Gilla Band) ‘Post Ryan’
어느 날 자택으로 배달된 택배. 그리고 이 불길한 난수 암호에 빠져들게 된 당신.

선과영 < 밤과낮 >
실이 바쁘게 오가듯, 미소가 배시시 오가듯. 그 소박함이 넘실넘실.

펜타곤 ‘관람차 (Sparkling Night)’
빠져들기까지 10초, 벗어나기까지 10개월. 키노 감성의 무서운 마력이란.

파더 존 미스티(Father John Misty) < Chloë And The Next 20th Century >
세기를 연결하는 낭만의 무도회장. 미스터 틸먼, 나와 함께 춤을 추겠어?

염동교’s Choice

킹 기저드 앤드 리저드 위저드(King Gizzard & Lizard Wizard) < Ice, Death, Planets, Lungs, Mushrooms And Lava >
1970년대의 잼(Jam)이 그립다면.

톰 제(Tom Zé) < Língua Brasileira >
MPB와 트로피칼리아(Tropicália)의 거목, 건재함을 과시하다.

FKA 트위그스(FKA Twigs) < Caprisongs >
스멀스멀 중독성 있는 앨범. 자꾸 손이 간다.

메가데스(Megadeth) < The Sick, The Dying… And The Dead! >
역시 메탈리카보다는 메가데스! 여전히 날카롭고 신랄하다.

뷰 파르카 투레, 크루앙빈(Vieux Farka Touré, Khruangbin) < Ali >
나른한 아프로 사이키(Psyche). 결은 다르지만 진저 베이커와 펠라 쿠티의 협연이 떠오른다.

김성욱’s Choice

프로미스나인(fromis_9) ‘Dm’
머리 아픈 콘셉트들 사이 투명하게 빛나는 보석. ‘눈을 못 피하게, 말도 못 돌리게’ 만들었다.

리치맨과 그루브나이스 < Memphis Special One Take Live >
멤피스가 주목한 ‘우리들의 블루스’. 2022 올해의 발견.

야드 액트(Yard Act) < The Overload >
갱 오브 포와 카이저 치프스 그사이 어딘가. 신랄하고 유쾌한 브렉시트 시대의 포스트 펑크.

비치 하우스(Beach House) < Once Twice Melody >
비치 하우스의 모든 앨범을 사랑한다. 이 앨범도 그렇다.

씨에이치에스(CHS) ‘Highway’
‘여름’하면 떠오를 노래가 하나 추가됐다. 8월 휴가철, 꽉 막힌 서울양양고속도로 위에서 들어보자.

임동엽’s Choice

텐투포(10 to 4) < 말하기 듣기 쓰기 >
예측할 수 없는 아름다움.

힙노시스 테라피(HYPNOSIS THERAPY) < Hypnosis Therapy >
정말로 최면에 걸린 줄 알았다.

이권형 < 창작자의 방 >
그저 음악을 할 뿐.

Various Artists < Elvis (Original Motion Picture Soundtrack) >
위대한 유산.

원슈타인 ‘존재만으로’
막힘없이 편안하다.

김호현’s Choice

해파 < 죽은 척하기 >
불안은 이렇게 사랑을 끌어안고 기어이 잠깐의 휴식을 만들어 낸다.

이수정 & 강재훈 < Stellive Vol.56 | Duology: Live At Stellive >
한국 재즈의 미래를 이끌어 갈 차세대 주자들의 근사한 조합.

제이콥 콜리어(Jacob Collier) ‘Never gonna be alone (Feat. Lizzy McAlpine, John Mayer)’
천재 마케팅을 하려면 이 정도는 되어야.

로버트 글래스퍼(Robert Glasper) < Black Radio III >
벌써 세 번째 시즌을 맞이한 최첨단 흑인음악 실험실.

도미 앤 제이디 백(DOMi & JD BECK) < Not Tight >
재즈 역사를 이끈 거인들의 어깨 위에 새로운 세대가 올라서다.

손민현’s Choice

글렌체크(Glen Check) < Bleach >
아직 어른이 되긴 이르다는 근거 없는 확신이 차오른다.

이찬혁 < Error >
어떤 예술가의 기행은 시대를 여유롭게 스쳐가기도 한다, 파노라마처럼.

9와 숫자들 < 토털리 블루 >
코로나에 무뎌진 현대인들을 위한, 시기적절한 푸른 위로 한 가닥.

에이비티비(ABTB) < ⅲ >
더 거세게, 더 열정적으로, 더 록스럽게! 새 연료를 주입한 ABTB의 질주.

키스 에이프(Keith Ape) < Ape Into Space >
해묵은 갈증을 시원하게 해소해 주는 ‘Mull’.

한성현’s Choice

자브 이스…(JARV IS…) < This Is Going To Hurt (Original Soundtrack) >
자비스 코커만의 방식으로 보듬는 ‘따끔’한 세상살이.

1975(The 1975) < Being Funny In A Foreign Language >
괜히 머리 싸매지 말고 쉽게 쉽게 삽시다.

미츠키(Mitski) ‘Glide (cover)’
인간과 로봇, 과거와 미래를 연결하는 기억. 에테르는 실존할지도 몰라.

트리플에스(tripleS) ‘Generation’
유닛 시스템, Z세대의 시대정신? 다 떠나서 그냥 즐겁게 랄랄라.

유아 ‘Lay low’
유혹 대신 냉소를 품은 세이렌의 노래지만 홀리는 건 마찬가지.

백종권’s Choice

일삼공공(1300) ‘Rocksta’
시드니에서도 한국 힙합. 음악으로 맺은 FTA.

잭슨(Jackson Wang) < Magic Man >
꾸준한 탈피의 결과물. 장난기 넘치던 악동이 제대로 마이크를 쥐었을 때.

엑스지(XG) ‘Tippy toes’
한국식 제조 과정으로 구현한 미국의 맛. – (Made in Japan)

버둥 < 너에게만 보여 >
올 한 해 발버둥이 석연치 않았다 해도. 나, 너, 우리를 위한 ‘응원’ 소곡집.

사커 마미(Soccer Mommy) < Sometimes, Forever >
웰메이드 얼터너티브 록이 선사하는 평온한 꿈의 체험. 옥에 티는 풋볼 마미가 아니라는 점.

소승근’s Choice

우아!(woo!ah!) ‘별 따러 가자’
이 노래는 우아!가 과소평가받고 있다는 가설을 확인시켜준다.

우연, 민서 ‘Make u move’
브레이브걸스의 ‘운전만해’ 이후 최고의 시티팝.

트라이비(TRI.BE) ‘In the air (777)’
말이 필요 없다. 이게 대중음악이다. 최고의 야구 응원가.

뉴진스(NewJeans) ‘Hype boy’
대중음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주요 멜로디와 쉬운 안무라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한다.

이채연 < Hush Rush >
수록곡이 적다는 것이 유일한 단점이다.

정리 및 이미지 편집: 정다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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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Feature

2021 올해의 팝 싱글

2020년대라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 지도 어느덧 1년, 작년과도 또 한 번 첨예하게 달라진 문화와 취향은 음악사의 새로운 지면을 장식한다. 그 어느 때보다도 수많은 장르가 범람하고 개성이 대두되는 다양성의 시대. 신인과 고참의 뚜렷한 자기 피력이 전투적으로 부딪히고 교차하는 2021년의 팝 싱글 10곡을 선정한다. 글의 순서는 순위와 무관하다.

실크 소닉(Silk Sonic) ‘Leave the door open’

기대하긴 했지만, 이 정도로 제대로일 줄이야! 1970년대 소울에 새 숨결을 불어 넣기 위해 뭉친 브루노 마스와 앤더슨 팩의 합동 작전은 그 시작인 ‘Leave the door open’에서부터 빈티지의 영광스러운 부활을 선포했다. 둘이 태어나기도 십 년도 더 전에 위세를 떨치던 스타일이다. 그런데 그 시절 명작을 빼다 박은 듯 매력적이다. 도처가 노스탤지어다. 은은하고도 후텁지근한 장르 특유의 무드와 감미로운 백 보컬, 거친 톤을 구사하면서도 저절로 어깨춤을 추게 하는 앤더슨 팩의 목소리, 미성과 시원한 고음을 오가며 예쁘게 수놓은 브루노 마스의 고감도 후렴구까지. 기대를 상찬으로 맞바꾼 단연 올해 최고의 콜라보다.

깊이 있는 브로디 브라운(Brody Brown)의 베이스 라인과 1970년대 초 필리 소울에 뿌리내리고 있는 담백한 스트링을 비롯한 수준 높은 세션도 근사하지만, 그 앞의 친근한 노랫말이 무엇보다 재미다. 흑인 음악 특유의, 그리고 기본 토대라 할 수 있는 관능의 매력에 충실한 섹스어필이 웃음을 유발할 정도로 노골적이고 능글맞은 언사로 새겨지는데 이게 도리어 무장을 해제시킨다. 달콤한 멜로디만큼이나 그들이 만끽한 성공의 맛 역시 달았다. 브루노 마스의 여덟 번째, 앤더슨 팩의 첫 번째 빌보드 넘버원 곡. (이홍현)

올리비아 로드리고(Olivia Rodrigo) ‘Driver’s license’

틴아이돌 배우 출신 올리비아 로드리고의 데뷔곡이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2003년에 태어난 이 10대 소녀는 가식 없는 가창력으로 또래와 기성세대 모두를 감동시켰고 감정선을 자극하는 솔직함은 노래를 살렸다. 두려움 없는 사랑이 깨졌을 때 겪는 젊은이의 자기 파괴적인 심정과 어쩔 줄 몰라 하는 혼란스런 모습조차 감추지 않았다.

스타라는 이미지로 가려진 본래 모습을 솔직하게 드러낸 이 신인은 개인적인 분노와 회한, 아픈 추억을 예술로 승화하며 자신을 하이틴 스타에서 아티스트로 끌어올렸다. 누구나 겪는 이별의 슬픔을 과감하게 표현한 ‘Driver’s license’는 2021년의 ‘실연 송’. 아름답고 순수하고 재능 있는 올리비아 로드리고에게 상처를 준 조슈아 바셋이 밉다. (소승근)

방탄소년단(BTS) ‘Permission to dance’

가볍지만 통렬한 선포다. ‘Butter’로 빌보드 1위를 차지하며 모두의 주목을 받은 가운데, 이에 대한 소감으로 가져온 행보는 다름 아닌 춤에 대한 갈망이었으니. 유례없는 코로나19 팬데믹 사태로 서로 간의 교류가 단단히 걸어잠긴 상황 속 BTS가 마련한 것은 각종 결핍에 시달리는 현 세대를 위한 ‘내적 댄스’의 창구였다.

작금의 BTS 신화는 단순 차트의 지표나 기록만으로 설명이 불가능하다. 숫자로 이루어진 데이터의 이면에 존재하는, 전세계를 활보하며 젊음의 소리를 대변하고 대중에게 긍정적 흐름을 전파하는 문화 동맥의 역할을 놓치기 쉽기 때문. 그런 의미에서 사회가 미처 챙기지 못한 개개인의 움직임 욕구를 부드럽고 면밀하게 채워준 산뜻한 혈류 ‘Permission to dance’는 팝스타가 지닐 수 있는 좋은 영향의 사례로 남을 것이다. (장준환)

더 키드 라로이, 저스틴 비버(The Kid Laroi, Justin Bieber) ‘Stay’

더 키드 라로이, 저스틴 비버의 ‘Stay’가 ‘Butter’와 ‘Permission to dance’로 빌보드 HOT 100에서 10주 연속 1위를 달리던 BTS를 막았다. < Justice >와 타이틀곡 ‘Peaches’로 한차례 정상을 찍었던 저스틴 비버는 자신의 어린 시절이 겹쳐 보였는지 9살 어린 새 시대의 호주 뮤지션과 의기투합해 현시대 가장 핫한 뮤지션을 꺾은 것이다.

비속어 섞어가며 내게 머물기를 바라는 가사와는 다르게 속도감 있는 전개는 모두 비키라는 듯 쉴새 없이 달려 나간다. 기타를 제거한 펑크(Punk)같이 반복-간결-짧은 노래는 빠른 유행과 숏폼(Short-form) 콘텐츠를 선호하는 Z세대를 취향 저격하며 두 번이나 차트 재등정에 성공한다. ‘Stay’, ‘Butter’, ‘Mood’ 등 3분 미만의 곡들이 유행한 올해를 대표하는 곡. (임동엽)

존 메이어(John Mayer) ‘Last train home’

2018년 발매한 신보의 첫 예고편 ‘New light’부터 유추할 수 있었다. 명실상부 현시대의 기타 히어로 존 메이어가 거듭 영감의 원천을 고백한다. 토토의 메가 히트곡 ‘Africa’를 오마주한 ‘마지막 열차’의 행선지는 1980년대 소프트 록. 팝 가수와 블루스 기타리스트의 경계를 넘나들며 어느덧 불혹의 나이를 넘긴 그는 자신의 유년시절 흘러나왔던 곡을 소환해 선배 그룹과 동시대 아티스트들에게 경의를 표했다.

노스탤지어로 주조한 결과물은 탄탄한 지원군을 갖춘다. 향수를 자극하는 신시사이저와 퍼커션 사운드는 토토와 합주 경험이 있는 키보디스트 그레그 필린게이즈와 퍼커셔니스트 레니 카스트로가 담당하고 컨트리 가수 마렌 모리스의 백업 보컬로 풍성함을 더했다. 재현의 미학은 공간감을 머금고 깨끗이 압축된 기타 사운드가 느긋한 보컬과 자연스레 포개지며 완성된다. 여유를 두른 40대의 존 메이어가 1980년대에 보내는 격조 높은 찬사다. 에릭 클랩튼의 바통을 이어받은 ‘뉴 슬로우핸드’는 바위 밑에 묻어 두었던 테이프를 되감아 모던 클래식 록 넘버를 탄생시켰다. (김성욱)

릴 나스 엑스(Lil Nas X) ‘Industry baby’

카우보이모자를 쓰고 컨트리 랩을 하던 2년 전 루키가 어느덧 힙합 신을 주도하는, 그리고 소수자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신흥 메시아로 거듭나고 있다. ‘Old town road’의 유례없는 흥행에도 원 히트 원더에 그칠 거라는 항간의 의견은 이제 무색할 뿐. 커밍아웃을 기점으로 과감한 행보를 이어나간 릴 나스 엑스의 미래는 역사의 뒤안길이 아닌 개척자의 천명(天命)에 가까워 보인다.

무기는 화제성이지만 그 총알은 명료함이다. 카니예 웨스트의 손길이 닿은 수려한 멜로디 메이킹과 중저음 톤을 살린 캐치한 훅이 빛을 발했다. 도발적인 뮤직비디오와 당당한 충격으로 무장한 ‘Industry baby’가 대중을 현혹하여 빌보드 정상에 오른 것은 한 개인이, 혹은 한 곡이 거대한 외압을 타파하고 인정받는 순간일테니, 과연 올해를 대표할 팝 랩의 모범적인 효시 중 하나다. (장준환)

시저(SZA) ‘Good days’

불안이 잠식한 세상에 스며든 고결한 위로의 속삭임. 팬데믹이란 생소했던 단어가 익숙해질 만큼 일상엔 끝이 보이지 않는 공포가 서려 있다. ‘좋은 날’이란 흔한 말이 쉽게 꺼내지 못하는 안부가 된 지금, 희망은 우연히 우리를 찾아왔고 그곳엔 시저의 음성이 흐르고 있었다. 그는 운명을 깨달은 듯 묵혀둔 멜로디로 급작스럽게 성소(聖所)를 마련했고 직접 기수가 되어 지친 이들을 위한 성가를 선창했다. 곡의 제목은 ‘Good days’. 정확히 2020년 크리스마스에 외친, 내일을 가로막은 벽을 허물 함성의 시작이었다.

신비로울 만큼 영적이다. 어쿠스틱 기타의 선율과 대비되는 전자음의 조화로 탄생한 몽환적 공간엔 걱정 하나 존재하지 않는다. 물감이 퍼져나가듯 잔잔하게 빈자리를 물들이는 목소리가 동행자인 제이콥 콜리어와 함께 청자의 굳어있던 상처를 치유하며 안식으로 안내한다. 그렇게 고통의 종식이란 모두의 염원은 물결을 타고 ‘Good days’를 시저의 빌보드 핫 100 최고 기록인 9위까지 이끌며 감응한다. 발매한 지 1년. 이 지독한 나날은 아직 해소될 기미가 보이지 않지만, 마음에 좋은 날을 품고서 빛을 기다린다는 차분한 노랫말이 인도하는 결과는 분명하다. 시련을 견뎌내고 결국 행복을 찾은 욥과 같이. (손기호)

걸 인 레드(Girl In Red) ‘Serotonin’

올해 차트를 수놓은 또래 뮤지션에 비해 많이 알려지지 않았으나 걸 인 레드 역시 Z세대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는 싱어송라이터다. 첫 싱글 ‘I wanna be your girlfriend’의 히트로 ‘걸 인 레드 음악 들어?’라는 질문이 퀴어 식별에 사용된 덕분. 그의 음악적 질료는 현재 겪고 있는 생생한 고민과 경험이며 돌려말하는 법 없이 노골적인 가사가 인기 비결이다.

‘Serotonin’에서도 자신이 앓고 있는 강박증인 침투적 사고에 대해서 털어놓았다. 정신질환은 사회에서 터부시하는 주제지만 걸 인 레드는 솔직한 고백으로 코로나 블루와 같은 정신건강 문제를 가장 많이 겪고 있는 Z세대와 상호 연결고리를 마련했다. 다만 우울한 정서의 곡들이 뱉어내는 끈적한 감정과 멜로디는 모두 들어냈다. 산발적으로 내뱉는 건조한 래핑과 청량한 기타 리프는 부정적인 감정을 씻어내듯 경쾌하다. 불안과 우울의 시대에 어른으로 성장하고 있는 이들을 위한 듣는 ‘행복 호르몬’이다. (정수민)

울프 앨리스(Wolf Alice) ‘Smile’

1990년대 그런지 밴드들을 소환하는 파괴적인 기타 소리에 1980년대 신스팝 시대의 신시사이저 음색을 접붙인다. 30초간의 오마주는 보컬 엘리 로셀의 랩 혹은 주문으로 현대성을 껴안고 그가 내뱉는 단어들은 감정에 관한 직설화법이다. 지루할 새 없이 몰아치는 다이나믹스. 폭발성이 웅크린 개러지 록이란 측면에서 정규 2집 < Visions Of A Life >의 ‘Yuk foo’와 닮았다.

가끔은 남들의 시선 따윈 집어치우고 마음 가는 대로 살고 싶다. 감정, 성격, 취향. 자아를 이루는 모든 부면에서 당당해질 것을 주창하며 타인의 그 영역을 침범할 경우 성난 늑대처럼 으르렁댄다. 그러나 분노 표출만이 곡의 전부는 아니다. 후렴구에 들어서면 찰랑거리는 기타 스트로크로 경계심을 거두고 ‘길을 잃은 영혼들이 술집에 모인다’라며 연대를 강조한다. 내면의 투영부터 타인의 포용까지 짧은 곡에 너른 내용을 담아냈다. (염동교)

핑크 스웨츠(Pink Sweat$) ‘At my worst’

종종 해외보다 국내에서 더 많은 사랑을 받는 팝송이 튀어나올 때가 있다. 2021년 상반기를 은은한 핑크빛 구름으로 감싸는 ‘At my worst’가 그 주인공이다. 다소 늦은 나이로 데뷔, 적은 작품 수라는 불리한 조건임에도 한국이 그에게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확실하다. 프로그램 < 윤스테이 >의 배경음악, 켈라니의 피처링 버전 그리고 BTS 정국의 커버 영상. 이 3가지가 작년에 발매한 곡을 힘껏 견인한 요인이다.

올해도 이전과 별반 다름없는 삶이었다. 건조하고 말라버린 세상에 핑크 스웨츠가 생동감을 불어넣는 방식은 간단하다. 단순 멜로디와 ‘최악의 상황에도 널 위해 뭐든지 하겠다’라는 달짝지근한 맹세는 여전히 따스한 위로를 필요로 하는 이들의 마음을 차분히 채워 나갔다. 자장가처럼 말랑하게 스며들어 대중의 니즈를 정확히 파악한 정타. 이것이 힐링의 기본 공식 아닐까. (임선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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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bum POP Album

릴 나스 엑스(Lil Nas X) ‘Montero'(2021)

평가: 3.5/5

정면돌파, 정면돌파, 정면돌파
2019년 ‘Old town road’로 릴 나스 엑스가 전 세계 음악 신을 강타할 때 그의 장기 집권을 예상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어느새 음악 세일링의 중요한 요소로 자리 잡은 틱톡(TikTok) 등의 바이럴 마케팅이 크게 작용해 만든 빌보드 싱글 차트 19주 연속 1위란 새역사가 그저 시대와 시류가 우연히 만나 빚어진 결과로 읽혔기 때문이다. 소위 말하는 원 히트 원더. 그 이상의 가능성을 점치지는 않았다.

갖은 인식과 편견을 뒤집었다. 데뷔 후 처음 발매한 EP < 7 >(2019)의 수록곡 ‘Panini’가 차트 5위에 안착하는가 하면 이후 내놓은 싱글 역시 대중의 큰 관심을 받는다. 이때 자신의 성 정체성을 커밍아웃한 일은 그의 음악 행보의 한 분기점이다. 1999년생으로 어린 나이에 이룩한 성공과 흑인 그리고 성 소수자로서 안고 지녀야 했던 고통, 고민이 음악의 핵심이 됐다. 사랑의 대상이 남성임을 적극적으로 드러내고 내면의 불안감 감추지 않고 꺼낸다. 속내를 다 비추는 거리낌 없는 정면돌파가 두꺼운 팬덤을 일궜다.

본명을 음반의 제목으로 삼은 것 또한 그가 택한 또 하나의 정면돌파다. 메간 더 스탈리온과 함께한 ‘Dolla sign slime’에선 자신을 ‘달러($) 기호’에 비유하고 도자캣과 함께한 ‘Scoop’은 뜻대로 화제의 중심에 선 나를 과시한다. 시쳇말로 요새 잘나가는 래퍼들과 손잡고 시원하게 성공을 자축했다. 반면 음반의 후반부에 위치한 ‘Tales of Dominica’, ‘Void’를 비롯해 특히 ‘Sun goes down’은 상처와 아픔에서 나아가 어린 시절 자신이 겪은 괴롭힘을 보다 적극적으로 노래한다. 다운 템포의 자전적 발로가 그를 지상 세계로 끌어내렸다.

즉, 릴 나스 엑스는 손 닿을 수 없는 스타가 아니라 ‘나’를 투영해 볼 수 있는 내 옆에 있는 스타다. 퀴어 영화 < 콜 미 바이 유어 네임(Call Me by Your Name) >을 끌어와 만든 리드 싱글이자 차트 1위 곡 ‘Montero’는 차세대 퀴어 앤섬으로 손색없을 거침 없는 비유로 중무장했다. 남자 뱀과 만난 대가로 지옥에 떨어진 주인공이 사탄을 유혹하고 끝내 정복한다는 설정의 뮤직비디오는 퀴어에게 쏟아지는 일면의 조롱을 전복한다. ‘Industry baby’도 용감무쌍하다. 핑크색 죄수복을 입고 때로는 알몸으로 춤을 추며 ‘또다시 히트곡을 냈다’ 외치는 모습에선 아티스트의 면모가 빛난다.

음반에는 스웨그와 소울이 교차한다. 마음껏 화려하고 또 마음껏 우울한 온전한 고백이 가득 차 있다. 또한 ‘That’s what I want’와 같은 곡에선 인상적인 래핑으로, ‘One of me’에선 중저음의 목소리를 살려 멜로디를 부각, 다양한 장르를 고루 들여왔다. 이에 덧댄 단단한 퍼포먼스 역시 일품. 지금 릴 나스 엑스에게는 부족한 것이 없다. 가끔 그 방법이 도발적이고 그래서 위태롭게 보일지언정 핵심의 메시지와 노래의 주인공인 나를 잃지 않는다. 약하고도 강한 음악 신의 라이징 스타. 그의 성공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 수록곡 –
1. Montero(Call Me By Your Name)
2. Dead right now
3. Industry baby
4. That what I want
5. The art of realization
6. Scoop(Feat. Doja Cat)
7. One of me(Feat. Elton John)
8. Lost in the citadel
9. Dolla sign slime(Feat. Megan Thee Stallion)
10. Tales of Dominica
11. Sun goes down
12. Void
13. Dont want it
14. Life ater salem
15. Am I dreaming(Feat. Miley Cyr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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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P Single Single

릴 나스 엑스(Lil Nas X) ‘MONTERO (Call me by your name)’ (2021)

평가: 2.5/5

컨트리 비트 위에 레게풍의 리듬을 가미하고 릴 나스 엑스(Lil Nas X)의 평이한 래핑이 얹어지는 준수한 궁합은 앞서 여러 번 입증되었던 공식이다. 하지만 기시감을 눈치채기도 전에 연일 화제를 불러 모으고 있는 ‘MONTERO’의 파급력에 먼저 반응한다.

이른바 ‘매운맛’ 전략을 취한다. 본명을 제목으로 설정한 것은 당당히 커밍아웃한 자신을 다시 한번 상기시키기 위함이다. 뮤직비디오에서 지옥을 배경으로 사탄과 랩댄스를 추는가 하면, 시종일관 성적 쾌락만을 탐닉하는 직설적인 가사들로 아찔함을 선사한다. 실제 사람의 피가 담긴 ‘사탄 신발’을 홍보수단으로 발매하며 구설수에 오르는 등 음악 외적인 요소들이 더 눈에 띈다.

음악을 단순히 듣는 것뿐인 단편적인 예술에서 참여의 콘텐츠로 변모하는 흐름을 발 빠르게 캐치해 ‘Old town road’의 성공 신화를 써 내려간 트렌드세터의 모습을 기대했다면 위화감만이 남아 있다. 창작물에 담긴 개인의 사상과 신념은 불특정 다수에게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 대중들의 호불호 속 새로운 형국을 보이는 음악 시장의 시류에 사뿐히 영합한 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