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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POP Album Album

브로큰 발렌타인 ‘3’ (2022)

평가: 3/5

진홍빛 엔진이 재차 진동하기 시작한다. 비운의 사고로 보컬 ‘반’이 팀을 떠난 후 그 자리를 공석으로 남겨뒀던 브로큰 발렌타인은 새로운 동력이 될 인물을 발굴했고 마침내 그들이 운용해 온 강렬한 사운드에 시동을 걸었다. 양가적인 소리에 대한 굳은 믿음도 올곧다. 어김없이 한 손에는 차갑고 도회적인 그런지 록을, 아울러 감성을 한껏 머금은 록 발라드를 쥐고 돌아왔다.

여러 차례 객원 보컬을 맡았던 밴드 허니페퍼의 김경준이 정식으로 합류했고, 신보에서도 그 막중한 역할을 수행한다. 다양한 분위기의 곡이 넘실대는 와중에도 그는 폭발적인 야성과 처연한 감정을 노래하며 오랜 빈자리를 무난하게 채웠다. 뜨거움과 차가움을 넘나드는 브로큰 발렌타인 스타일을 스스로 해석하고 합당한 톤을 유지할 수 있을 만큼 능수능란한 목소리다. 덕분에 팀이 지향하는 ‘Standing in my way’와 같은 하드한 록 사운드와 ‘언젠가 눈물 속의 시간이 지나면’이 대표하는 발라드 모두 안정적으로 담겼다.

여러 차례 객원 보컬을 맡았던 밴드 허니페퍼의 김경준이 정식으로 합류했고, 신보에서도 그 막중한 역할을 수행한다. 다양한 분위기의 곡이 넘실대는 와중에도 그는 폭발적인 야성과 처연한 감정을 노래하며 오랜 빈자리를 무난하게 채웠다. 뜨거움과 차가움을 넘나드는 브로큰 발렌타인 스타일을 스스로 해석하고 합당한 톤을 유지할 수 있을 만큼 능수능란한 목소리다. 덕분에 팀이 지향하는 ‘Standing in my way’와 같은 하드한 록 사운드와 ‘언젠가 눈물 속의 시간이 지나면’이 대표하는 발라드 모두 안정적으로 담겼다.

다소 일관된 원투펀치가 지속되는 가운데 곳곳에 위치한 변주가 균열을 내고 청취에 긴장감을 부여한다. 드럼과 리듬 기타가 변칙적인 박자로 꾸민 ‘Mozambique drill’과 스트링이 난입해 기타 솔로와 긴밀한 대화를 주고받는 ‘언젠가 눈물 속의 시간이 지나면’에서는 보컬 대신 세션들이 일선에 나서서 각자의 존재감을 뽐낸다. 한쪽에만 치우치지 않도록 신경 쓴 악기 간의 섬세한 조화, 전통적인 스튜디오 녹음 방식을 채택할 정도로 좋은 소리를 담기 위한 노력과 진정성이 돋보인다.

오랫동안 명맥을 지켜온 멤버들의 색은 더욱 진해졌고, 앞으로의 여정을 함께 할 신규 멤버와의 조합 검증도 끝마쳤다. 공격적이고 야수적인 욕망을 분출하는 하드 록 안에 당당하게 들어찬 매혹적인 선율, 브로큰 발렌타인의 핵심이 그대로 살아있는 음반이다. 변화한 점이 한가지 있다면 새로 단장한 브로큰 발렌타인의 의지를 대변하여 과거 대신 진중한 미래를 내다본다는 것. 요동치는 격렬한 배기음에 가슴 속 무언가가 계속해서 꿈틀거린다.

– 수록곡 –

  1. Standing in my way
  2. Let it burn
  3. Every single day
  4. Mozambique drill
  5. Not yours
  6. 언젠가 눈물 속의 시간이 지나면
  7. Crash it, burn it, break it (2023 ver.)
  8. Shine the darkness
  9. 무제 (Noname part.2) (2023 ver.)
  10. Quasimodo
  11. Wor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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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Feature

신촌블루스 디스코그래피 돌아보기

아프리칸 아메리칸의 한과 비애를 담은 블루스. 하울링 울프와 존 리 후커, 악마에게 영혼을 팔았다는 로버튼 존슨과 이들의 문법을 계승해 록 레전드가 된 에릭 클랩튼과 레드 제플린 등으로 영미권 대중음악의 근간을 이뤘다. 기타리스트 엄인호를 중심으로 35년간 음악공동체를 이어간 신촌블루스는 척박한 한국 블루스 뮤직에 대중성을 부여함과 동시에 언더그라운드 공연 문화에 공헌했다. 가요에 블루스를 녹인 신촌블루스의 역사를 음반 별로 되새겨본다.

< 신촌Blues >(1988)
보사노바와 록을 혼합했던 밴드 풍선에서 의기투합한 바 있는 한국 블루스의 두 거목 엄인호와 이정선은 1980년대 중반 블루스의 방향성을 세웠다. 이정선과 포크 그룹 해바라기에서 함께 활동했던 소리의 마녀 한영애와 들국화의 조덕환과 엄인호가 발탁한 신예 정서용, 한국 소울의 대부 박인수가 보컬 라인을 형성했다.

대중적으로는 정서용과 엄인호가 입 맞춘 ‘아쉬움’이었다. 수수하게 퍼지는 오르간과 색소폰 솔로 등 블루스 요소와 흡인력 있는 선율 덕에 엄인호 지향의 ‘블루스 가요’가 성립했다. 한영애가 부른 타이틀 곡 ‘그대 없는 거리’와 신중현의 곡을 재해석한 박인수 보컬의 ‘봄비’도 사랑받았다. 이정선은 명반 < 30대 >(1985)의 ‘바닷가에 선들’을 재수록해 각별함을 드러냈다. 음악적으로 완숙한 멤버들이 완성한 데뷔 앨범 같지 않은 데뷔 앨범이었다.

< 신촌Blues II >(1989)
블루스 음악으로선 이례적인 히트를 기록한 2집 < 신촌Blues II >는 음악공동체의 정점이었다. 펑크(Funk)와 레게가 뒤섞인 ‘골목길’은 김현식의 가창으로 시대회자의 지위를 얻었고 엄인호의 ‘바람인가’와 최고의 발라드 작곡가 이영훈의 ‘빗속에서’를 엮은 메들리가 연주 집단의 정체성을 요약했다. 이정선의 펑키한 넘버 ‘산 위에 올라’와 비비킹의 기타에서 이름을 따온 한영애 보컬의 ‘루씰’까지 모든 곡이 매혹적이다.

가객 김현식과 소리의 마녀 한영애가 시대의 소리를 입혔다. 가요의 질적 수준을 한 단계 끌어 올린 동아기획의 구성원 봄여름가을겨울의 김종진, 전태관이 조력자로 나섰고 ‘나에게로의 초대’의 정경화가 코러스로 완성도를 높였다. 이정선과 엄인호가 합작한 마지막 앨범이 되었으나 한국 블루스의 화양연화를 빚어낸 < 신촌Blues II >는 한국 대중음악 명반 100선의 선정으로 역사적 가치를 인정 받았다.

< 신촌Blues III >(1990)
밴드의 축이었던 이정선이 떠나고 엄인호가 주도적으로 기획한 음반이다. 전반적으로 절제된 사운드가 처연한 감성을 살렸고 각양각색 보컬로 엄인호의 지휘 아래 음악공동체의 기량이 공고해졌다. 2집에서 코러스로 참여했던 정경화가 브라스가 강조된 재즈풍의 ‘비 오는 어느 저녁’과 절절한 ‘마지막 블루스’로 음반의 도입부를 책임졌다.

앨범 전반의 대중적 색채는 엄인호가 추구하는 블루스 가요와 맞닿아 있다. 정규 1, 2집을 통해 얻은 내공으로 선율과 분위기의 균형감도 구축했다. 엄인호는 적재적소에 블루스 터치를 가미했고 김영배와의 기타 하모니도 조화롭다. 손석우 작곡, 김현식 노래의 ‘이별의 종착역’이 특히 사랑받았지만 맨발의 디바 이은미의 가창에 이정식의 색소폰 연주가 어우러지는 ‘그댄 바람에 안개로 날리고’와 자취를 찾기 힘든 가수 김미옥이 부른 ‘비오는 날’도 여운을 남겼다.

< 신촌블루스 라이브 Vol. 1 >(1989) & < 신촌블루스 라이브 Vol. 2 >(1991)
두 장의 라이브 음반도 혁혁한 공로다. 1960년대부터 라이브 음반 제작이 활발했던 영미권과 달리 국내 밴드들은 기술적 장벽에 가로막혀 작업을 단념하곤 했다. 국내 라이브 문화를 대표했던 신촌블루스는 열악한 환경을 딛고 < 신촌블루스 라이브 Vol. 1 >과 < 신촌블루스 라이브 Vol. 2 >를 내놓았다. 관객과의 호흡에서 전해지는 생동감은 라이브 음반만의 매력. 신촌블루스는 후배들에게 용기를 심어주었다.

1989년 롯데 잠실 홀에서 녹음한 첫번째 라이브 음반 < 신촌블루스 라이브 Vol.1 >에선 한영애와 김현식 두 언더그라운드 슈퍼스타가 위력을 발휘했다. 자신의 대표곡 ‘누구없소’와 이정선의 ‘건널 수 없는 강’로 이어진 한영애의 무대는 스캣으로 즉흥성을 포착했고, 포효의 ‘떠나가 버렸네’는 김현식 탁성의 진면목이다. 관객의 호응을 고스란히 담아 순수한 형태의 라이브 음반을 지향했다.

서울가든호텔에서 녹음한 1991년 작 < 신촌Blues 라이브 Vol. 2 >는 보다 발전한 음향 기술로 라이브의 강점을 반영했다. 신촌블루스 4기 보컬 김형철과 ‘묻어버린 아픔’으로 알려진 김동환이 번갈아 가며 노래했다. 김동환의 야생적 가창은 ‘서로 다른 이유 때문에’와 ‘환상’으로 좌중을 휘어잡았고 엄인호는 ‘갈등’과 ‘마틸다’ 등 대다수의 곡에 목소리를 실었다. 첫 번째 라이브 음반과 마찬가지로 엄인호의 친형 엄인환이 색소폰을 맡았다.

신촌블루스는 현재진행형이다. 2021년에 한국 대중음악의 전설을 기록하는 < Return Of The Legends >에 참여했고 2022년에 엘피 붐에 발맞춰 정규 1집을 리이슈했다. 주로 일본에서 활동하는 박보밴드와의 협업도 예정되어 있다. 2022년 11월 이즘과 진행한 인터뷰에서 엄인호는 신촌블루스의 역사 계승 의지를 드러냈다. 한국 블루스의 명맥을 위해 힘닿는데 까지 노력하겠다는 것. 리더 엄인호를 주춧돌로 강성희, 제니스, 김상우로 이뤄진 보컬 라인에 이상진(베이스), 김준우(드럼), 안정현(키보드)로 구성된 음악공동체는 엔데믹 속 공연을 준비 중이다.

이미지 작업: 백종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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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ature

당신을 위한 프로그레시브 록 입문곡 10선

로큰롤은 흑인 교회의 열정적 의식에 어원을 두나 ‘몸을 야하게 움직인다’라는 속뜻도 있다. 원초성과 본능에 뿌리 둔 음악이 로큰롤이다. 단순명료했던 1950년대 초기 로큰롤은 1960년대에 이르러 다양한 장르로 분화했고 그 중심엔 비틀스가 있었다.

1960년대 후반은 록 음악의 예술적 전성기였다. 도전적인 밴드들은 고전 음악, 재즈와 전위음악의 양식을 도입해 록의 외연을 확장했다. 그렇게 탄생한 프로그레시브 록은 복잡한 구조의 대곡(大曲) 지향적 음악, 다채로운 악기 사용과 소리의 실험 등을 특징으로 예술성의 극한에 다다랐다.

태생적 한계도 있다. 장르명이 주는 왠지 모를 차별감, 록의 기본 속성에서 빗나가버린 현학적인 스타일로 인해 대중과 멀어졌다. 이후 마릴리온을 위시한 1980년대의 네오 프로그레시브 록, 드림 시어터를 필두로 1980년대 후반부터 점화된 프로그레시브 메탈이 나왔으나 대중적 장르로 보긴 어려웠다.

록의 여러 하위 장르 중에서 현대의 대중 음악가들에게 미친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적고 3~4분 러닝타임에 익숙한 리스너들에게 복잡다단한 곡들은 생경하다. 하지만 프로그레시브 록 뮤지션들이 바라본 아득한 예술성은 마니아들의 지지와 함께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무수한 장르 명곡 중 국내에서 특히 사랑받았거나 개인적인 추억이 있는 작품들을 열 곡으로 간추렸다. 아무쪼록 이 리스트가 프로그레시브 록과 조금이나마 가까워지는 계기가 되길 소망한다.

핑크 플로이드(Pink Floyd) ‘Time’ / < The Dark Side Of The Moon >(1973)

비단 프로그레시브 록이라는 장르에 한정하지 않더라도 핑크 플로이드는 대중음악 역사상 가장 위대한 록밴드 중 하나다. 가장 유명함과 동시에 조금은 이질적인 프로그레시브 록 밴드인데 다른 밴드들과 비교 불가한 압도적 상업적 성과를 거뒀기 때문이다. 빌보드 앨범 차트에서 네 차례 1위를 기록했고 ‘가장 많은 앨범을 판매한 록밴드’ 리스트 5위에 이름을 올렸다. 최근 약 28년만의 신곡 ‘Hey, hey, rise up!’ 으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한 경각심을 고취하기도 했다.

1973년 작 < The Dark Side Of The Moon >은 빌보드 앨범차트에 무려 962주간 올랐다. 처음부터 끝까지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구성에 알란 파슨스가 매만진 초현실적 사운드는 청취를 초월한 음악적 체험이다. 동전 소리로 시작하는 ‘Money’는 배금주의에 메스를 대고 클레어 토리(Clare Torry)의 처절한 가창이 ‘The great gig in the sky’를 수놓았다. 서늘한 자명종 소리와 몽환적인 코러스, 데이비드 길모어의 기타 솔로를 지닌 ‘Time’은 덧없는 시간을 향한 비관주의다. 1980~90년대 공익 광고의 BGM으로 쓰이며 국내에 알려졌다.

킹 크림슨(King Crimson) ‘Epitaph’ / < In The Court Of The Krimson King >(1969)

강렬한 인상의 앨범 커버에 담긴 음악은 진중하고 깊었다. 1969년 발매 당시 킹 크림슨의 < In The Court Of The Krimson King >은 비틀스의 < Abbey Road >를 밀어내며 빌보드 앨범차트 1위를 기록했다고 와전되었으나 대신 역대 최고의 프로그레시브 록 앨범이라는 칭호를 얻었다. 오로지 가사만 담당했던 작사가 피터 신필드와 윈도우 효과음을 창조한 기타 철학자 로버트 프립, 후에 AOR (어덜트 오리엔티드 록) 밴드 포리너에 합류하는 이언 맥도널드의 ‘1기 킹크림슨’ 유일 작이다.

플루트로 서정 미학을 확립한 ‘I talk to the wind’와 전위적인 재즈 록 ‘21st century schizoid man’ 등 앨범의 수록곡 전부가 걸출하지만 국내에선 의심의 여지 없이 ‘Epitaph’였다. 죽음에 대한 신필드의 철학은 비틀스가 ‘Strawberry fields fover’ 도입부에 사용한 건반악기인 멜로트론 연주와 어우러지며 음울한 분위기를 조성했고 그렉 레이크의 보컬은 어느 때보다 처연하다. 검열 정책으로 예술 작품이 난도질당했던 1970~80년대에 역설적으로 인기를 끈 이 곡은 어떠한 주술처럼 당대의 청년들을 홀렸다.

프로콜 하럼(Procol Harum) ‘A whiter shade of pale’ / < Procol Harum >(US version)(1967)

프로그레시브 록 밴드들은 고전 음악과 불가분의 관계였다. 바흐의 ‘G선상의 아리아’를 차용한 ‘A whiter shade of pale’은 영국 1위, 미국 5위까지 오른 최초의 프로그레시브 록 히트곡이 되었고, 바로크풍의 오르간 선율과 밴드의 창립자 개리 브루커의 절절한 음성이 장르의 형식적 규범을 세웠다. 영화 < 빅 칠 >과 < 락앤롤 보트 >가 이 곡을 사용해 인지도 효과를 보았다.

춤을 추다가 얼굴이 창백해진 여인의 이야기를 듣는다는 갈피를 잡기 힘든 노랫말에 설왕설래가 있었다. 섹슈얼한 관계의 은유와 신비라는 통설은 1967년의 히피 시대와 맞물려 설득력을 얻었으나, 곡의 작사가 키스 라이드는 “퇴폐를 직설적으로 이미지화했다.”라며 반박했다. 1960년대를 대표하는 이 명곡은 사라 브라이트만과 유리스믹스의 애니 레녹스를 비롯한 수많은 뮤지션들에 의해 커버되었고 브릿 어워드가 선정한 ‘1952년부터 1977년 사이에 발표된 가장 뛰어난 영국 싱글’에 퀸의 ‘Bohemian rhapsody’와 함께 공동 1위에 오르기도 했다.

무디 블루스(Moody Blues) ‘Nights in white satin’ / < Days Of Future Passed >(1967)

1세대 프로그레시브 록 밴드 무디 블루스는 ‘For my lady’과 ‘Your wildest dreams’, ‘Melancholy man’ 같은 대중적인 노래를 다수 발표했지만 그에 못지않게 실험적이었다. 이들은 고전 음악과 록을 5 대 5 비율로 섞어 심포닉 록의 청사진을 제시했고 한 남자의 하루를 다룬 < Days Of Future Passed >로 콘셉트 앨범의 미학을 드러냈다. 활기찬 분위기의 ‘Lunch break: peak hour’와 건반 연주가 리드미컬한 ‘Tuesday afternoon’으로 이어지는 구성이 탁월하다.

리드보컬이자 기타리스트 저스틴 헤이워드가 작사 작곡한 ‘Nights in white satin’ 은 여자친구가 선물한 새틴에서 착상한 개인적인 이야기다. 전형적인 역주행 곡으로 발표 당시에는 차트 입성을 못 했지만 3년 후 1972년엔 빌보드 싱글차트 2위까지 올랐다. 건반 주자 마이크 핀더는 멜로트론으로 화려한 오케스트레이션을 구사하며 악기의 효용성을 입증했다. 3~4분대의 싱글 버전들이 존재하지만 후반부 시 낭독이 포함된 7분여의 앨범 버전에서 진가가 드러난다.

제쓰로 툴(Jethro Tull) ‘Living in the past’ (1969)

메탈리카를 제치고 1989년 제31회 그래미 어워드의 헤비메탈/하드록 부문을 수상해 화제가 되기도 한 제쓰로 툴은 목가적인 포크부터 헤비메탈까지 방대한 음악 세계를 품었다. 수십 가지 악기를 연주하는 재주꾼 이안 앤더슨은 밴드의 알파이자 오메가로 기괴한 표정과 율동이 제스로 툴의 진중한 음악과 묘한 마찰을 일으킨다.

‘Living in the past’는 1969년에 영국 싱글차트 3위까지 오른 히트곡이다. 데이브 브루벡의 ‘Take five’처럼 독특한 5박자 리듬은 이안 앤더슨의 플루트 연주와 어우러져 신비감을 발산한다. 프랑스 68운동을 비롯한 반문화, 반체제의 혁명 시대를 부정하고 “너와 사랑을 나누겠다.”라는 본능에 충실한 가사는 곡 분위기와 조화를 이룬다. 이 곡 이외에도 최고의 기타 리프 중 하나로 거론되는 ‘Aqualung’ 등 명곡을 다수 보유했고 국내에선 전설적인 라디오 프로그램 < 전영혁의 음악세계 >가 배출한 연주곡 ‘Elegy’가 사랑받았다.

예스(Yes) ‘Roundabout’ / < Fragile >(1971)

1983년 빌보드 1위 곡 ‘Owner of a lonely heart’의 매끈한 사운드로 거장 밴드의 귀환을 알렸지만 이들의 진면목은 1970년대에 있다. ‘Roundabout’가 수록된 < Fragile >은 1971년 11월에 나왔고 ‘Starship trooper’가 수록된 < The Yes album >이 1971년 2월, 로저 딘이 구상한 몽환적인 앨범 커버에 단 세 곡이 들어간 < Close To The Edge >가 1972년 9월에 발매되어 2년도 안 되는 기간에 창작력을 폭발시켰다. 변화무쌍한 악곡 전개를 소화하는 최정상급 연주력은 후배 밴드들에 절망과 자극을 동시에 안겨줬다.

스코틀랜드 글래스고로 가는 길에서 만난 교차로를 모티브로 한 8분여의 대곡은 잘 짜인 곡 구성과 선명한 선율로 빌보드 싱글차트 13위까지 올랐다. 도입부를 비롯한 악곡의 중심엔 많은 후배에게 영감을 준 크리스 스콰이어의 베이스 연주가 있고, 마술 같은 릭 웨이크먼의 건반 연주가 힘을 보탰다. 지속적인 멤버 교체가 있었으나 팬들은 이 곡을 연주한 존 앤더슨(보컬), 스티브 하우(기타), 크리스 스콰이어(베이스), 빌 브루포드(드럼), 릭 웨이크먼(키보드)의 라인업을 최고로 친다. 영화 < 스쿨 오브 락 >의 잭 블랙은 피아노를 다루는 동양계 학생 로렌스에게 < Fragile > CD를 건네며 “’Roundabout’의 건반 솔로를 필청하렴.” 라며 강조했다.

에머슨, 레이크 앤 파머(Emerson, Lake & Palmer) ‘Lucky man’ < Emerson, Lake & Palmer >(1970)

‘키보드계의 지미 헨드릭스’ 키스 에머슨은 건반으로 기타에 맞먹는 카리스마를 보여줬고 거대한 신시사이저에 칼을 꽂는 퍼포먼스로 충격을 선사했다. 사이키델릭 록 그룹 나이스부터 후기 영화음악 작업까지 다채로운 경력을 쌓았으나 2016년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기타 대신 키보드 연주를 전면으로 내세운 에머슨, 레이크 앤 파머는 무소르그스키와 바흐를 재해석하고 거대 아르마딜로에 대한 콘셉트 앨범 < Tarkus >를 발표하는 등 실험적 행보를 보였다.

시작부터 비범했다. 1970년에 나온 1집 < Emerson, Lake & Palmer >의 첫 곡 ‘The barbarian’은 ‘야만인’이라는 제목처럼 야성적인 사운드를 들려줬고 ‘Knife edge’ 속 에머슨의 해먼드 오르간 연주도 날카롭게 빛났다. 각각 헝가리 작곡가 벨라 바르톡과 바흐의 작품을 편곡해 고전 음악의 변용이라는 정체성을 명확히 했다. 베이스 주자 그렉 레이크가 12살에 작곡한 간결한 코드 진행의 ‘Lucky man’은 드러머 칼 파머의 연주가 리드미컬하고 에머슨의 무그 신시사이저 후주는 그 어떤 건반 악기에서 느끼기 힘들었던 두께감을 선사했다. 국내에선 ‘C’est la vie’와 ‘From the beginning’이 애청곡이었다.

카멜(Camel) ‘Long goodbyes’ / < Stationery Traveller >(1984)

눈물 떨구는 낙타와 똬리 튼 백조, 설원 위 마법사의 뒷모습까지 카멜의 앨범 이미지는 음악만큼 다채롭다.  빌보드 앨범차트 100위권 안의 앨범이 하나도 없을 정도로 위의 밴드들에 비해 상업적 성과는 옅지만 특유의 서정미로 국내에서 특히 사랑 받았다. 프로그레시브 록의 한 조류인 캔터베리 신을 대표하는 밴드 카라반과 멤버를 공유해, 재즈의 즉흥성을 수용했으며 심포닉한 곡 구성으로 마릴리온 같은 1980년대 네오 프로그레시브 록 밴드에 큰 영향을 주었다.

이들의 음악적 전성기는 < The Snow Goose >와 < Moonmadness >가 나온 1970년대 중반이지만 국내에선 1984년 작 < Stationery Traveller >가 주목 받았다 . 서독과 동독의 이념 갈등을 담은 이 콘셉트 앨범에서 ‘Long goodbyes’ 는 차분한 전개와 아름다운 선율로 라디오 친화적인 노래가 되었다. 단 두 장의 앨범에만 참여했던 크리스 레인보우의 보컬이 인장을 남겼고, 밴드의 구심점 앤드류 레이티머의 플루트와 기타 연주가 곡 분위기를 살렸다.

뉴 트롤즈(New Trolls) ‘Adagio’ / < Concerto Grosso Per I New Trolls >(1971)

영국이 불 붙인 프로그레시브 록 열풍은 전 유럽을 걸쳐 퍼져나갔다. 카약과 포커스 등이 네덜란드서 활약했고 독일은 ‘크라우트록’(1960년대 말 서독에서 탄생한 실험적인 록 음악)이라는 파생 장르로 캔, 노이! 같은 밴드를 배출했다. 유럽 프로그레시브 록 지형도의 큰 대륙을 형성한 이탈리아 밴드들은 독일과 반대되는 서정미로 국내 팬들의 지지를 받았다. 디제이 성시완의 레이블 시완레코드는 라떼 에 미엘레, 방코, PFM 등 이름도 독특한 밴드들을 소개했고 지금도 마니아들의 수집욕을 자극하고 있다.

18세기 이탈리아의 고전 음악가 토마소 알비노니의 작품을 록으로 재해석한 ‘Adagio’는 < 햄릿 >의 명대사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의 한 대목을 ‘To die, to sleep, maybe to dream(죽거나, 잠들거나 꿈꾸거나)으로 변용했다. < Concerto Grosso Per I New Trolls >의 다른 곡 ‘1° Tempo: Allegro’는 기타와 바이올린의 거친 매력을 보여줬고 20분이 넘는 마지막 곡 ‘nella’로 즉흥 연주의 대서사시를 완성했다. 국내에선 프랑스 가수 질베르 베코의 샹송을 하모니가 강조된 록으로 커버한 ‘Let it be me’가 유명하다.

러시(Rush) ‘Tom Sawyer’ / < Moving Pictures >(1981)

캐나다의 국민 밴드 러시는 초기에 레드 제플린 스타일의 카랑카랑한 하드록을 들려줬지만 가상도시 메가돈(Megadon)을 배경으로 한 콘셉트 앨범 < 2112 >으로 프로그레시브 록의 총아로 떠올랐다. 이 앨범은 강력한 금속성 사운드로 드림 시어터와 같은 프로그레시브 메탈 그룹을 예언했다. 단 세 명이 주조해낸 완벽한 연주력은 추종자를 양산했으나 대중친화적인 발라드 곡의 부재로 국내 인지도는 저조하다.

캐나다 앨범차트에서 1위, 미국에서 3위를 차지한 1981년 작 < Moving Pictures >는 가장 높은 상업적인 성과를 거뒀다. 상대적으로 컴팩트한 악곡 전개와 뉴웨이브 신스팝을 접목한 사운드로 접근성을 높였고 2020년 작고한 닐 피어트의 드러밍이 돋보이는 연주곡 ‘Yyz’와 대중적인 ‘Limelight’ 등 명곡을 다수 포함했다. 닐 피어트와 캐나다 출신 시인 겸 작사가 파이 뒤부아가 함께 작사한 ‘Tom sawyer’는 마크 트웨인 소설 속 주인공의 모험 정신과 꽉 찬 연주로 캐나다 국가(國歌)의 위상을 넘봤다.

프로그레시브 록의 바다는 넓고 깊어 미처 언급 못한 밴드들이 많다. 연극적인 무대 장치와 노랫말의 문학성으로 장르의 심연을 파고들었던 제네시스는 피터 가브리엘과 필 콜린스라는 1980년대 대표 뮤지션을 배출했다. 브라이언 페리와 브라이언 이노라는 독보적 캐릭터를 보유했던 록시 뮤직은 흥겨운 카바레 풍 사운드 아래 놀라운 실험성을 숨겨두었고 따스한 선율로 국내 팬들에게 친숙한 알란 파슨스 프로젝트와 하드 록 전설 딥 퍼플도 프로그레시브 록으로 분류되곤 한다. 미국 프로그레시브 록의 대표적인 밴드들인 캔사스와 스틱스도 빼놓을 수 없다.

서두에 언급한 대로 위의 열 곡은 국내에 잘 알려졌거나 상대적으로 진입 장벽이 낮은 작품들을 개인적 시선으로 모아놓은 것이다. 더욱 다양한 선택지와 객관성 확보를 위해 영국 미디어 회사 퓨처(Future)의 프로그레시브 록 전문 잡지 프로그(PROG)의 2017년 3월호가 선정한 ‘역사상 가장 위대한 프로그레시브 록 100곡’ 중 상위 10곡을 소개한다. 영미권 전문가들의 시각과 국내 감상자들의 성향을 비교하며 감상의 폭을 넓혀보길 바란다.

아티스트 – 곡명 / 앨범명(발표연도)

1. 제네시스 – ‘Supper’s ready’ / < Foxtrot >(1972)

2. 예스 – ‘Close to the edge’ / < Close To The Edge >(1972)

3. 제네시스 – ‘Firth of fifth’ / < Selling England By The Pound >(1973)

4. 핑크 플로이드 – ‘Shine on your crazy diamond pt.1’ / < Wish You Were Here >(1975)

5. 킹 크림슨 – ‘21st century schizoid man’ / < In The Court Of The Crimson King >(1969)

6. 핑크 플로이드 – ‘Echoes’ / < Meddles >(1971)

7. 예스 – ‘Awaken’ / < Going For The One >(1977)

8. 제쓰로 툴 – ‘Thick as a brick pt.1’, ‘Thick as a brick pt.2’ / < Thick As A Brick >(1972)

9. 킹 크림슨 – ‘Starless’ / < Red >(1974)

10. 러시 – ‘2112’ / < 2112 >(19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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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Feature

MZ세대의 음악 레전드 특집

음악은 저항 정신을 표현하는 매개체이자 자유를 실현하는 수단이다. 수십 통용되던 젊음의 코드가 낯설기만 MZ세대는 무엇이 당대 젊은이들을 열광하게 했는지, 기성세대에게서 간간이 들었던 ‘영광의 시절’의 주역에는 누가 있는지 알지 못한다.

하지만 거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상하게 귀가 가는 밴드가 있다. 강렬한 밴드 사운드, 시대를 관통하는 메시지가 힙합과 아이돌 음악에 익숙한 이들에게 록과의 접점을 마련할 가능성을 제공한다. 스타들인 포스트 말론(Post Malone) 다베이비(DaBaby) 공히 노래한 곡이 스타.

이 리스트는 1950년대 태동한 이래 한 시대를 풍미했던 록 음악에 주목한다. 달라진 환경과 흘러간 시간만큼 록과 멀어진 현세대에게도 시대를 막론하고 통하는 록 밴드에는 누가 있는지, 지금 젊음의 시선에서 ‘그래도 이 밴드만은 챙겨야 한다’고 공감할 수 있는 레전드 10팀을 선정했다.

핑크 플로이드 (Pink Floyd)
핑크 플로이드가 1973년 발표한 < The Dark Side of The Moon >이 위대한 앨범임은 주지의 사실이다. 주변에 록 음악을 좀 듣는다고 하는 광(狂)들의 추천 목록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기 때문. 찬사와 수식어가 늘 따라다니는 이 거룩한 밴드는 실험적 요소들을 음악에 대거 투입해 곡의 구성과 연주 방식의 범위를 넓혔다.

실제로 이들 음악은 기존의 일반적인 록과 달리 웅장한 사운드를 제공한다. 장엄한 아방가르드 록 사운드가 주는 장대한 분위기의 핑크 플로이드 음악은 청취를 거듭할수록 다채로운 감상이 가능하다. 유행하는 대중음악보다 진중하고 진취적인 체험을 원한다면 핑크 플로이드가 그 음악의 스펙트럼을 확장해줄 것이다. 특히 대표곡 ‘Comfortably numb’ 속 심금을 울리는 데이비드 길모어의 기타 솔로는 록연주가 선사할 수 있는 감동의 극치다.
추천곡:’Us and them’, ‘Wish you were here’, ‘Another brick in the wall, pt.2’, ‘Comfortably numb’

레드 제플린 (Led Zeppelin)
레드 제플린은 MZ세대가 가장 먼저 떠올리는 록 밴드의 형상을 지녔다. 긴 머리카락과 타이트한 바지, 그리고 단추를 풀어 헤친 화려한 셔츠를 입은 패션은 젊은 세대가 가장 먼저 형상화하는 록 밴드 이미지의 전형이다. 높은 음역대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로버트 플랜트의 록 보컬 스타일, 기타리스트들의 영원한 로망인 지미 페이지의 연주도 역시 마찬가지다.

레드 제플린은 밴드 구성원 모두가 해당 포지션에서 전설적인 위치를 점하며 8개의 앨범 을 발매했다. 헤비메탈, 블루스, 사이키델릭, 레게 그리고 월드뮤직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요소들이 내재한 그들의 유산은 록 음악의 교본으로서 회자된다.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록 밴드의 최고 명곡에 대한 의견은 저마다 분분하지만 밀도 높은 커리어 속 굳이 하나를 택한다면 ‘Rock and roll’에 표를 던지고 싶다. 대단한 연유가 있는 것은 아니다. 제목이 나타내듯 레드 제플린이 로큰롤 그 자체이기 때문.
추천곡:’Heartbreaker’, ‘Rock and roll’, ‘D’yer mak’er’, ‘Fool in the rain’

벨벳 언더그라운드 (The Velvet Underground)
현대 미술의 거장이자 숱한 명작들을 남긴 팝 아티스트의 선구자 앤디 워홀은 현재까지도 위용을 떨치고 있다. 당대 뉴욕 문화의 상징이었던 그는 비단 시각주의 예술뿐만 아니라 음악 분야에도 영향력을 행사했는데 우리에게 친숙한 흰 배경에 덩그러니 놓인 큰 바나나 하나와 ‘Sunday morning’, ‘Femme fatale’ 등으로 잘 알려진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1집 커버가 바로 그의 작품이다.

외부의 입김과는 별개로 이 앨범에 담아낸 루 리드와 존 케일의 천재성은 새바람을 몰고 왔다. 전위적 성격의 사운드를 강조하며 당시 만연하던 히피즘에 대적하는 도발적인 주제를 다뤘던 이들의 음악은 가까운 미래 펑크(Punk) 록과 뉴 웨이브 음악에 막대한 영향력을 선사했고 나아가 얼터너티브 록의 기원으로도 여겨진다. 활동 당시 높은 평가를 받지 못했지만 벨벳 언더그라운드가 실현한 단순하고 아름다운 록은 뉴욕 언더그라운드 신의 활로를 개척했다. 따라 하기 쉽고 매력적이다. 출시된 지 수십년이 지난 후에도 그들 음악이 유독 세련되게 다가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추천곡:’I’m waiting for the man’, ‘Ride into the sun’, ‘Sweet Jane’, ‘Who loves the sun’

에이씨디씨 (AC/DC)
일관적으로 추구한 8비트 로큰롤에 타협이란 없었다. 한결같이 직진한 쓰리 코드의 포효는 전 세계 록 시장을 강타하며 약 5,000만 장의 앨범 판매량을 기록한 하드 록 최고의 걸작 < Back In Black >을 배출해낸다. 최근엔 마블 영화 < 아이언맨 > 시리즈와의 인연으로 더 친숙하다. 극 중 주인공 토니 스타크의 화려한 등장 신에 어김없이 이들의 음악이 흐르는데 스크린을 뚫고 뿜어져 나오는 맹렬한 에너지까지도 모두 8비트 로큰롤이다.

때로는 단순한 게 귀에 맴돈다. 심장이 먼저 반응하는 8비트 드럼 위 얹어지는 강렬한 리프, 그리고 폭발하는 고속 질주까지, 스트레스를 날리기엔 이만 한 게 없다. 복잡한 머릿속을 말끔히 정리해주는 에이씨디씨의 음악은 아마 지금을 살아가는 MZ세대들에게 일종의 진통제가 될 것이다.
추천곡:’T.N.T’, ‘Whole lotta Rosie’, ‘Highway to hell’, ‘You shook me all night long’

레너드 스키너드 (Lynyrd Skynyrd)
발음하기 어려운 밴드다. 레너드 스키너드는 멤버들의 학창 시절 고등학교 교사 이름을 익살스럽게 변형해 그룹명으로 삼았다. 올맨 브라더스와 미국 남부 블루스, 컨트리의 융합인 서던 록(Southern rock) 시장을 양분하다시피 해온 그들은 1970년대 3대 록 클래식으로 꼽히는 ‘Free bird’를 비롯해 ‘Tuesday’s gone’, ‘Simple man’ 등을 수록한 1집 외에도 수많은 록 고전들을 쏟아냈다.

리드 기타리스트가 셋이나 되는 레너드 스키너드의 풍성한 사운드는 미국 남부를 떠올리게 한다. 개러지와 블루스, 그리고 하드 록을 결합한 토속적인 질감이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앨라배마를 달콤한 내음이 가득한 고향으로 둔갑시킨다. 1977년 갑작스러운 비행기 사고로 3명의 멤버를 잃기 전까지 그들은 서던 록의 대표 주자로 전성기를 구가했다. 광대한 하모니를 그려냈던 대가들의 애달픈 결말은 먹먹한 그리움을 남긴다.
추천곡:’Free bird’, ‘Tuesday’s gone’, ‘Give me three steps’, ‘Sweet home Alabama’

클래시 (The Clash)
얼마 전 개봉한 디즈니 영화 < 크루엘라 > 사운드트랙에 클래시의 대표곡 ‘Should I stay or should I go’가 포함되었다. 펑크(Punk) 록의 원조 격인 그들은 작품 속 배경과 마찬가지로 1970년대 런던 젊은이들을 대변했다. 당시 갖은 사회 문제들로 혼란스러운 형국에 직면한 영국의 심장부에서 섹스 피스톨즈의 불꽃을 이어받은 이 4인조는 큰 파장을 몰고 왔다. 응축된 분노를 눌러 담은 노랫말이 곧 시위 문구가 되어 거리에 울려 퍼졌고, 그들이 고취시킨 저항 정신은 후배 펑크 뮤지션들의 귀감이 되었다.

메시지 측면에서 혁명과 노동 계급에 집중한 동시에 음악적, 장르적 모험도 서슴지 않았다. 스카, 레게의 요소를 접목한 곡들은 클래시의 새로운 면모를 부각하면서 쓰리 코드의 단순함 아니면 소음으로 치부된 펑크 록에 고(高) 퀄리티를 부여했다. 기억해야 할 클래시의 본질은 < London Calling > 앨범 표지 속 베이시스트 폴 사이모넌이 기타를 내리꽂는 모습으로 단번에 압축된다. 그들이 보여준 용기와 투쟁 정신은 모든 게 위축된 MZ세대에게 진정 록 스피릿이 무엇인지 일깨워줄 것이다.
추천곡:’White riot’, ‘I’m so bored with the U.S.A’, ‘London calling’, ‘Rock the casbah’

토킹 헤즈 (Talking Heads)
‘혁신’이라는 키워드는 현재 사회가 가장 필요로 하는 덕목이다. 토킹 헤즈가 구축한 혁신적인 음악 세계는 창의성과 독창성을 갈망하는 MZ세대의 니즈와 맞닿아 있다. 뉴욕의 CBGB 클럽에서 라몬즈(Ramones)의 오프닝 공연을 맡으며 커리어를 시작한 그들은 1977년 데뷔작 < Talking Heads’77 >로 지적 매력을 한껏 드러내며 단숨에 참신한 그룹으로 발돋움한다. 이후 브라이언 이노가 프로듀서로 가세하면서 최상의 시너지를 발휘해 미국 뉴 웨이브 신의 수작을 연이어 발표하며 주가를 올렸다.

독특한 음악관과 더불어 토킹 헤즈가 대중의 뇌리에 깊게 각인된 까닭은 프론트 맨 제임스 번의 지분이 압도적이다. 훤칠한 키와 번듯한 외모도 한 몫 했지만 무엇보다 무대 위에서 펼치는 기행에 가까운 라이브 퍼포먼스가 주된 요인이다. 언제 어디로 튈지 모르는 격렬한 춤사위는 그들 음악의 일부이자 상징이 된 지 오래. 그가 보여준 쇼맨십도, 딴 프론트맨에 비해 다소 엉성한 가창법을 구사하는 것도 다 신선하다. 매직 밴드!
추천곡:’Psycho killer’, ‘Life during wartime’, ‘Once in a lifetime’, ‘Road to nowhere’

표준화된 록의 시대에 폴리스는 영국 뉴 웨이브 신과 함께 화려하게 등장했다. 펑크 록에서 곧장 장르를 확대하여 레게, 재즈 등을 뒤섞은 사운드를 건설했고 매 앨범 선보인 변신술은 정체된 시장에 반향을 일으키며 미 대륙까지 뻗어갔다. 이러한 ‘뉴 브리티시 인베이전’의 주역에는 이미 우리에게 관능적인 영국식 발음과 함께 대표곡 ‘Englishman in New York’, ‘Shape of my heart’ 하면 바로 떠오르는 가수 스팅(Sting)이 있다.

밴드 시절 스팅의 모습은 솔로 시절과는 상반된 반전 매력을 엿볼 수 있다. 그는 기타리스트 앤디 서머스, 드러머 스튜어트 코플랜드와 완벽한 합을 이루며 짧은 활동 기간 발매한 5장의 스튜디오 앨범을 선구적인 프로젝트로 만들어냈다. 작품성과 상업성을 모두 득한 주요인은 삼각 편대의 팽팽한 균형이다. 감미로운 보컬, 파워풀한 드럼과 어우러지는 앤디 서머스 특유의 ‘쫀득한’ 기타 리프는 매번 놀라움을 안겨준다.
추천곡 : ‘Can’t stand losing you’, ‘Message in a bottle’, ‘Every little thing she does is magic’, ‘Every breath you take’

뉴 오더 (New Order)
클럽 음악의 형태는 현재 힙합과 EDM으로 정형화되었지만 1980년대 영국 클럽 신에 울려 퍼진 음악은 지금과는 다른 양상을 보였다. 일렉트로닉 록 요소와 신스팝을 가미한 뉴 웨이브 음악들이 맨체스터를 기반으로 흘러나왔고 그 중심에는 비극을 정면으로 돌파한 뉴 오더의 신화가 있었다.

조이 디비전의 그늘에서 출발한 뉴 오더는 전신 멤버 버나드 섬너, 피터 훅, 스티븐 모리슨을 주축으로 재결성했다. 댄서블한 록 사운드를 정직한 배열 아래 흡인력 있는 멜로디로 구사한 감각적인 문법으로 그들은 서서히 조이 디비전의 잔향을 지워갔고 훗날 ‘록+댄스’의 미친 맨체스터, 이른바 매드체스터라는 새로운 음악 형태의 근원이 된다. 물론 이 드라마틱한 서사는 멤버들의 역량이 탁월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중 단연 최고는 ‘인간 메트로놈’ 드러머 스티븐 모리슨. 자유자재로 리듬을 잘게 쪼개고 붙이는 그의 시그니처 연주는 언제 들어도 일품이다.
추천곡:’Age of consent’, ‘Love vigilantes’, ‘Bizarre love triangle’, ‘Round & round’

큐어 (The Cure)
큐어는 1970년대 말 태동한 고딕 록이라는 하위문화를 대표했다. 고스 족의 특징인 창백한 피부, 두꺼운 아이라인, 그리고 새빨간 립스틱을 바른 기괴한 화장법을 선보인 채 내면의 분노를 음울한 감성으로 담아 표출한 로버트 스미스는 고딕 록의 효시가 된 조이 디비전의 뒤를 이었다. 결성 초기 발매한 고딕 3부작을 대표적으로 작품들 속엔 사회의 어두운 측면과 허무주의가 만연하게 드러난다. 현재까지도 마니아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고딕 문화에 입문하기에 제격이다.

큐어는 꾸준함과 장수의 아이콘이기도 하다. 데뷔 이래 다양한 장르에 일가견을 보이며 고딕 록, 얼터너티브 록 이외에 주류 팝 분야까지도 좋은 성적표를 거두었다. 로버트 스미스의 음산한 무드와 전형적인 기타 팝 감각이 의외의 시너지를 발휘한 것. 지금까지 대중에게 유명세를 치른 곡들도 이와 결을 같이 한다. 울분을 토하는 보컬과 서정적인 멜로디가 교차하는 아이러니의 매력, 이게 큐어다.
추천곡:’Cold’, ‘Just like heaven’, ‘In between days’,’Friday I’m in 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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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bum KPOP Album

정차식 ‘야간주행’ (2021)

평가: 3.5/5

불면에 시달리는 남자. 모두가 잠든 밤이 그에겐 유독 길어 어딘가로 떠나야만 공허함을 채울 수 있다. 끝나지 않는 밤의 허망함과 방랑자의 고독이 <야간주행>을 관류한다. 음울한 록 음악을 구사하던 밴드 레이니썬을 거친 정차식은 솔로 명의로 두 장의 정규 앨범을 발표했고 자신을 오롯이 드러내는 가사와 소리 체계로 주목받았다. 이번 앨범에서도 그는 주류에서 비껴난 외길을 걷지만 발자국은 선명하다.

이 외로운 뮤지션은 디지털 음원을 기본으로 하는 최신 가요의 문법에서 벗어나 1960~1980년대의 대중음악을 추적해 생경한 소리의 조합을 감행한다. ‘빛나네’는 영국 밴드 수퍼트램프의 ‘The logical song’처럼 월리처 피아노 풍으로 곡을 주도하고 종소리 효과음과 리듬 기타를 쌓아가며 담백한 펑크(Funk) 곡을 건설한다. ‘두 번째 날’은 ‘I’m your man’과 유사한 질감의 신시사이저로 레너드 코헨의 고독을 공유한 반면 정차식은 자신에게 상처를 줄 사랑을 회피한다.

침잠하는 내면의 1집 <황망한 사내>와 꿈틀대는 욕망을 유쾌하게 그린 2집 <격동하는 현재사>를 지나 다시금 차분해진 남자는 불면이 야기한 망상을 풀어낸다. 시와 닮은 노랫말은 서사보다는 서정, 직설보단 은유를 택하여 매끄러운 흐름을 포기하는 대신 구절 하나하나에 여운을 남긴다. 팔세토와 떨리는 음성에 읊조림까지 다양한 감정을 아우르며 레이니썬 시절에 갇히지 않고 변화하는 음악인임을 증명한다.

정차식은 청승과 신파로 시대를 역행한다. 빈틈없는 경쟁 시대에 누가 불면의 토로를 받아줄까 싶다가도 독자적 영역을 구축한 소리의 문학에 귀 기울이게 만든다. 그는 심연에서 허우적대는 자신을 소리와 활자로 남기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 수록곡 –
1. 두번째 날
2. 빛나네
3. 품위있게
4. 눈사람
5. 아래로 갔다
6. 서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