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ies
특집 Feature

스래시 메탈 명곡 13선(1)

메탈리카 – Master of puppets / Master Of Puppets(1986)
9회의 그래미 수상과 약 1억 2천 5백만장의 음반 판매고를 수확한 메탈리카는 어느 스래시 메탈 밴드도 범접할 수 없는 상업적 성과를 거뒀다. 스래시 인장을 땐 록으로 범위를 넓혀도 대중음악 역사상 위대한 밴드 중 하나로 꼽히는 이들은 2023년 현재에도 록 페스티벌의 헤드라이너로 열정을 불사르고 있다.

< Kill Em All > 속 잠재력은 ‘For whom the bell tolls’와 ‘Creeping death’가 수록된 소포모어 작 < Ride The Lightning >의 소구력으로 수직 상승했다. 이 음반과 프로그레시브 메탈의 복잡한 구성으로 더욱 깊은 음악성을 표현한 4집 < And Justice For All….>(1987)은 때에 따라 최고작으로 꼽히기도 하나 상징성의 측면에서 3집 < Master Of Puppets >를 따라가기 힘들다. 스래시 메탈 불후의 명작으로 꼽히는 이 음반으로 메탈리카는 메탈 최강자가 되었다.

거칠게 내달리는 오프너 ‘Battery’와 비장한 ‘Welcome home (sanitarium)’, 짜임새 있는 연주곡 ‘Orion’까지 완벽한 구성을 자랑한다. 앨범의 타이틀 곡 ‘Master of puppets’는 오랜 기간 공연 셋리스트의 피날레를 장식할 만큼 메탈리카를 상징하는 곡. 전율의 도입부터 으스스한 웃음소리의 결말에 이르는 8분 35초에 이르는 대곡 지향적 구성은 드림 시어터와 핀란드 심포닉 메탈 밴드 아포칼립티카 등 다양한 밴드들이 리메이크했다.

메가데스 Holy wars… the punishment due / Rust In Peace(1991)
메탈리카에서 쫓겨난 데이브 머스테인(Dave Mustaine)은 절치부심 이를 갈았다. 베이시스트 데이비드 엘렙슨(David Ellefson)과 결성한 메가데스의 1집 < Killing Is My Business… And Business Is Good! >(1985) 엔 메탈리카 ‘Four horseman’의 원곡 ‘Mechanix’를 수록하며 소심한 복수를 감행했다. 냉소와 자조 등 밴드의 정체성을 결정한 1986년 작 < Peace Sells… But Who’s Buying? > ‘Peace sells’와 ‘Wake up dead’, ‘The conjuring’으로 메탈리카와는 완연히 다른 음악색을 선보이며 진정한 리벤지에 성공했다. 쌍뱀처럼 절묘하게 엮어들어가는 머스테인과 크리스 폴란드(Chris Poland)의 기타 연주는 치밀한 악곡에 날개를 달았고 원년 멤버 엘렙슨은 저 유명한 ‘Peace sells’의 베이스 인트로와 리듬 섹션을 책임졌다.

2집으로 더 올라갈 고지가 안 보이는 듯했지만, 인스트루멘탈 록 밴드 캐코포니 출신 마티 프리드먼(Marty Friedman)의 영입은 메가데스를 한 단계 높은 차원으로 안내했다. 1980년대 말 메탈 뮤직의 마지막 불꽃과 너바나의 < Nevermind >(1991)가 위시한 그런지 사이에 있는 1990년, < Peace Sells >와 더불어 밴드의 양대 명반으로 회자되는 걸작 < Rust In Peace >가 발매된다.

절정에 달한 머스테인의 곡 구성 능력에 마티 프리드먼의 동양적 선율을 얹은 음반은 인트로 곡 ‘Hangar 18’부터 숨 막힐 정도로 밀어붙인다. 기타리스트들에게 좌절감을 안겨준 속주곡 ‘Tornado of souls’와 재즈 퓨전 향취가 묻어나는 ‘Five magics’ 등 개성적인 곡들로 가득하지만 3부로 구성된 ‘Holy wars… The Punishment Due’는 메가데스 음악성 정점이다. 복잡하면서도 정교한 곡 전개와 이스라엘과 북아일랜드의 종교 갈등에서 모티브를 얻은 노랫말에 면도날처럼 날카로운 사운드가 어우러진 이 곡은 2023년 롤링 스톤이 선정한 ‘가장 위대한 헤비메탈 100곡’ 중 28위에 선정되었다.

슬레이어 – Raining blood / Reign in blood (1986)
DC코믹스 < 왓치맨 > 로어셰크의 음산함 풍기는 밴드 슬레이어는 확고한 콘셉트로 팬베이스를 다졌다. 사타니즘과 테러리즘의 주제의식에 맞물리는 미국 화가 래리 캐롤의 앨범 재킷은 어둡고 불길한 슬레이어만의 색채를 확립했다. 메탈계 최고의 드러머로 언급되는 데이브 롬바르도(Dave Lombardo)와 제프 한네만(Jeff Hanneman), 케리 킹(Kerry King)의 기타 듀오는 콘셉트를 받칠 굳건한 대들보였다.

2017년 롤링스톤에서 선정한 ‘가장 위대한 메탈 앨범’ 6위로 선정된 1986년 작 < Reign In Blood >는 1990년 작 < Seasons In The Abyss >와 더불어 이들의 명반으로 공인받는다. 롬바르도표 스피드 드러밍이 구현한 펑크 질감과 데스메탈의 광포(狂暴)를 접붙인 사운드는 탄탄한 송라이팅과 만나 스래시 메탈 마스터피스를 제창했다. 피비린내를 흩뿌리듯 사악한 기운의 ‘Raining blood’는 육중한 기타 리프와 톰 아라야(Tom Araya)의 보컬 퍼포먼스로 ‘Angel of death’와 더불어 앨범의 대표곡으로 남았다.

앤스렉스 – Caught in a mosh / Among The Living(1987)
슬레이어를 듣다가 앤스렉스를 접하면 ”이게 스래시 메탈이야?’ 의아해할지도 모른다. 상기한 밴드들이 헤비급이라면 앤스렉스는 크루저급 혹은 라이트헤비급이랄까? 역설적으로 이 경량화가 차별점이 되었다. 스래시 메탈의 지나치게 진지하고 무거운 이미지에서 벗어나 능글맞고 유쾌한 사운드를 확립한 앤스렉스는 메탈이 ‘창궐’하던 1980년대의 몇 안 되는 메이저 밴드로 기록되었다.

실패한 1집 < Fistful Of Metal >(1984)를 끝으로 떠난 보컬리스트 닐 터빈(Neil Turbin)의 공석을 넓은 음역의 파워 보컬 조이 벨라도나(Joey Belladonna)가 채운 건 신의 한 수였다. 빌보드 200 113위에 오른 2집 < Spreading The Disease >(1985)로 전기를 마련한 앤스렉스는 2년 후 그들의 최고작으로 불리는 < Among The Living >을 발매한다. 드림 시어터의 전 드러머 마이크 포트노이(Mike Portnoy)의 존경을 는 실력파 드러머 찰리 베난테(Charlie Benante)의 기량을 만끽할 수 있는 이 음반은 ‘I am the law’와 ‘Indians’ 등 또렷한 멜로디와 대중성도 챙겼다. 박자 변화로 다이내믹스를 강조한 ‘Caught in a mosh’는 리듬과 선율을 동시 포획한 메탈 명곡이다.

판테라 – Cowboys from hell / Cowboys From Hell(1990)
판테라는 드림 시어터, 메탈리카와 더불어 가장 영향력 있는 1990년대 메탈 집단이다. 기타리스트 다임백 데럴(Dimebag Darrell)과 프론트퍼슨 필립 안젤모(Phillip Anselmo)의 원투펀치에 비니 폴(Vinnie Paul), 렉스 브라운(Rex Brown)의 리듬 섹션을 결합한 당시 판테라는 천하무적의 위용이었다. 스래시 메탈로부터 헤비메탈의 원초적 파워에 넘실대는 리듬을 더해 그루브 메탈을 모색한 이들은 특유의 카리스마와 뛰어난 연주력으로 메탈헤드를 규합했다.

멤버들이 흑역사로 여기는 1~4집을 지나 실질적 정규 데뷔 음반에 해당하는 1990년 작 < Cowboys From Hell >은 그루브와 스래시 메탈 양 진영에서 명반 대접을 받는다. 다임백의 면도날 기타와 리듬섹션의 유연성까지 확보했고 중간중간 뿌려주는 안셀모의 그로울링은 판테라의 상징이 되었다. 이 곡과 더불어 ‘Domination’, ‘Cemetery gates’ 등 수작을 포함한 < Cowboys From Hell >은 미국에서만 130만장에 육박하는 판매고를 올리며 < Vulgar Display Of Power >(1992)와 < Far Beyond Driven >(1994)으로 이어지는 전성기의 시발점을 끊었다. 현재 판테라는 필립 안셀모와 렉스 브라운의 원년 멤버에 오지 오스본의 기타리스트였던 블랙 레이블 소사이어티의 잭 와일드(Zakk Wylde)와 앤스렉스의 드러머 찰리 베난테와 함께 북미 투어를 진행중이다.

엑소더스 – Bonded by blood(1985)
1979년 캘리포니아 리치먼드에서 결성된 엑소더스는 미국 스래시 메탈 계의 상위 4개 팀만큼 중요한 위치를 점한다. “엑소더스까지 껴서 빅5로 불러야 하는 것 아니냐?”, “앤스렉스 대신 엑소더스가 들어가야 한다” 등의 논쟁들이 이를 뒷받침한다. 메탈리카의 기타 플레이어 커크 해밋(Kirk Hammett)이 잠시 활동하기도 했던 엑소더스는 테스타먼트에 재적했던 스티브 소우자(Steve Souza)와 원년 멤버인 드러머 톰 헌팅(Tom Hunting) 기타리스트 게리 홀트(Gary Holt)의 라인업으로 2021년 < Persona Non Grata >까지 꾸준히 앨범을 발매했다.

스티브 소우자와 드러머 겸 리드 보컬 톰 헌팅, 현재 제너레이션 킬에서 활약 중인 롭 듀크스(Rob Dukes) 등 많은 보컬이 거쳐 갔지만, 최고작의 영광은 데뷔작 < Bonded By Blood >(1985) 이후 곧바로 해고된 폴 발로프(Paul Baloff)에게 돌아간다. 수록곡 대부분의 작사를 하기도 한 발로프의 정제되지 않은 가창은 열악한 레코딩과 맞물려 날 것 그대로의 질감이 확연하다. 혈맹을 의미하는 타이틀 곡 ‘Bonded by blood’는 가창보다 연기에 가까운 발로프의 보컬 퍼포먼스에 둔기를 연상하게 하는 블랙 사바스 풍 사운드를 장착했다.

오버킬 – Elimination / The Years Of Decay(1989)
1980년 미국 동부 뉴저지에서 결성된 오버킬은 보컬 바비 엘스워스(Bobby Ellsworth)와 베이시스트와 배킹 보컬을 겸하는 카를로 디디 베르니(Carlo “D.D.” Verni )를 중심으로 현재까지 활동 중인 장수 밴드다. 상업적 성과는 미약했지만 스래시 빅4와 더불어 장르의 기틀을 닦았다. 엘스워스의 폭넓은 보컬 레인지와 바비 구스타프손(Bobby Gustafson)의 빽빽한 기타 연주가 전체적인 완성도를 높였다.

1988년 작 < The Years Of Decay >는 전작들보다 한층 더 진화한 음악성으로 3년 후 발매한 < Horrorscope >와 더불어 밴드의 고점을 경신했다. 육중한 기타 톤에서 블랙 사바스의 영향이 감지되는 10분짜리 대곡 ‘Playing with spiders/skullkrusher’와 장엄한 분위기의 ‘Who tends the fire’ 등 대곡 지향적인 곡이 수록된 야심작이다. < The Years Of Decay >의 두 번째 트랙 ‘Elimination’은 메탈리카의 ‘Master of puppets’의 주요 리프와 닮았다는 결함에도 브레이크 장치 없이 몰아붙이는 직선 에너지가 강력하다.

이미지 작업: 백종권

Categories
특집 Feature

신촌블루스 디스코그래피 돌아보기

아프리칸 아메리칸의 한과 비애를 담은 블루스. 하울링 울프와 존 리 후커, 악마에게 영혼을 팔았다는 로버튼 존슨과 이들의 문법을 계승해 록 레전드가 된 에릭 클랩튼과 레드 제플린 등으로 영미권 대중음악의 근간을 이뤘다. 기타리스트 엄인호를 중심으로 35년간 음악공동체를 이어간 신촌블루스는 척박한 한국 블루스 뮤직에 대중성을 부여함과 동시에 언더그라운드 공연 문화에 공헌했다. 가요에 블루스를 녹인 신촌블루스의 역사를 음반 별로 되새겨본다.

< 신촌Blues >(1988)
보사노바와 록을 혼합했던 밴드 풍선에서 의기투합한 바 있는 한국 블루스의 두 거목 엄인호와 이정선은 1980년대 중반 블루스의 방향성을 세웠다. 이정선과 포크 그룹 해바라기에서 함께 활동했던 소리의 마녀 한영애와 들국화의 조덕환과 엄인호가 발탁한 신예 정서용, 한국 소울의 대부 박인수가 보컬 라인을 형성했다.

대중적으로는 정서용과 엄인호가 입 맞춘 ‘아쉬움’이었다. 수수하게 퍼지는 오르간과 색소폰 솔로 등 블루스 요소와 흡인력 있는 선율 덕에 엄인호 지향의 ‘블루스 가요’가 성립했다. 한영애가 부른 타이틀 곡 ‘그대 없는 거리’와 신중현의 곡을 재해석한 박인수 보컬의 ‘봄비’도 사랑받았다. 이정선은 명반 < 30대 >(1985)의 ‘바닷가에 선들’을 재수록해 각별함을 드러냈다. 음악적으로 완숙한 멤버들이 완성한 데뷔 앨범 같지 않은 데뷔 앨범이었다.

< 신촌Blues II >(1989)
블루스 음악으로선 이례적인 히트를 기록한 2집 < 신촌Blues II >는 음악공동체의 정점이었다. 펑크(Funk)와 레게가 뒤섞인 ‘골목길’은 김현식의 가창으로 시대회자의 지위를 얻었고 엄인호의 ‘바람인가’와 최고의 발라드 작곡가 이영훈의 ‘빗속에서’를 엮은 메들리가 연주 집단의 정체성을 요약했다. 이정선의 펑키한 넘버 ‘산 위에 올라’와 비비킹의 기타에서 이름을 따온 한영애 보컬의 ‘루씰’까지 모든 곡이 매혹적이다.

가객 김현식과 소리의 마녀 한영애가 시대의 소리를 입혔다. 가요의 질적 수준을 한 단계 끌어 올린 동아기획의 구성원 봄여름가을겨울의 김종진, 전태관이 조력자로 나섰고 ‘나에게로의 초대’의 정경화가 코러스로 완성도를 높였다. 이정선과 엄인호가 합작한 마지막 앨범이 되었으나 한국 블루스의 화양연화를 빚어낸 < 신촌Blues II >는 한국 대중음악 명반 100선의 선정으로 역사적 가치를 인정 받았다.

< 신촌Blues III >(1990)
밴드의 축이었던 이정선이 떠나고 엄인호가 주도적으로 기획한 음반이다. 전반적으로 절제된 사운드가 처연한 감성을 살렸고 각양각색 보컬로 엄인호의 지휘 아래 음악공동체의 기량이 공고해졌다. 2집에서 코러스로 참여했던 정경화가 브라스가 강조된 재즈풍의 ‘비 오는 어느 저녁’과 절절한 ‘마지막 블루스’로 음반의 도입부를 책임졌다.

앨범 전반의 대중적 색채는 엄인호가 추구하는 블루스 가요와 맞닿아 있다. 정규 1, 2집을 통해 얻은 내공으로 선율과 분위기의 균형감도 구축했다. 엄인호는 적재적소에 블루스 터치를 가미했고 김영배와의 기타 하모니도 조화롭다. 손석우 작곡, 김현식 노래의 ‘이별의 종착역’이 특히 사랑받았지만 맨발의 디바 이은미의 가창에 이정식의 색소폰 연주가 어우러지는 ‘그댄 바람에 안개로 날리고’와 자취를 찾기 힘든 가수 김미옥이 부른 ‘비오는 날’도 여운을 남겼다.

< 신촌블루스 라이브 Vol. 1 >(1989) & < 신촌블루스 라이브 Vol. 2 >(1991)
두 장의 라이브 음반도 혁혁한 공로다. 1960년대부터 라이브 음반 제작이 활발했던 영미권과 달리 국내 밴드들은 기술적 장벽에 가로막혀 작업을 단념하곤 했다. 국내 라이브 문화를 대표했던 신촌블루스는 열악한 환경을 딛고 < 신촌블루스 라이브 Vol. 1 >과 < 신촌블루스 라이브 Vol. 2 >를 내놓았다. 관객과의 호흡에서 전해지는 생동감은 라이브 음반만의 매력. 신촌블루스는 후배들에게 용기를 심어주었다.

1989년 롯데 잠실 홀에서 녹음한 첫번째 라이브 음반 < 신촌블루스 라이브 Vol.1 >에선 한영애와 김현식 두 언더그라운드 슈퍼스타가 위력을 발휘했다. 자신의 대표곡 ‘누구없소’와 이정선의 ‘건널 수 없는 강’로 이어진 한영애의 무대는 스캣으로 즉흥성을 포착했고, 포효의 ‘떠나가 버렸네’는 김현식 탁성의 진면목이다. 관객의 호응을 고스란히 담아 순수한 형태의 라이브 음반을 지향했다.

서울가든호텔에서 녹음한 1991년 작 < 신촌Blues 라이브 Vol. 2 >는 보다 발전한 음향 기술로 라이브의 강점을 반영했다. 신촌블루스 4기 보컬 김형철과 ‘묻어버린 아픔’으로 알려진 김동환이 번갈아 가며 노래했다. 김동환의 야생적 가창은 ‘서로 다른 이유 때문에’와 ‘환상’으로 좌중을 휘어잡았고 엄인호는 ‘갈등’과 ‘마틸다’ 등 대다수의 곡에 목소리를 실었다. 첫 번째 라이브 음반과 마찬가지로 엄인호의 친형 엄인환이 색소폰을 맡았다.

신촌블루스는 현재진행형이다. 2021년에 한국 대중음악의 전설을 기록하는 < Return Of The Legends >에 참여했고 2022년에 엘피 붐에 발맞춰 정규 1집을 리이슈했다. 주로 일본에서 활동하는 박보밴드와의 협업도 예정되어 있다. 2022년 11월 이즘과 진행한 인터뷰에서 엄인호는 신촌블루스의 역사 계승 의지를 드러냈다. 한국 블루스의 명맥을 위해 힘닿는데 까지 노력하겠다는 것. 리더 엄인호를 주춧돌로 강성희, 제니스, 김상우로 이뤄진 보컬 라인에 이상진(베이스), 김준우(드럼), 안정현(키보드)로 구성된 음악공동체는 엔데믹 속 공연을 준비 중이다.

이미지 작업: 백종권

Categories
Album KPOP Album

정차식 ‘야간주행’ (2021)

평가: 3.5/5

불면에 시달리는 남자. 모두가 잠든 밤이 그에겐 유독 길어 어딘가로 떠나야만 공허함을 채울 수 있다. 끝나지 않는 밤의 허망함과 방랑자의 고독이 <야간주행>을 관류한다. 음울한 록 음악을 구사하던 밴드 레이니썬을 거친 정차식은 솔로 명의로 두 장의 정규 앨범을 발표했고 자신을 오롯이 드러내는 가사와 소리 체계로 주목받았다. 이번 앨범에서도 그는 주류에서 비껴난 외길을 걷지만 발자국은 선명하다.

이 외로운 뮤지션은 디지털 음원을 기본으로 하는 최신 가요의 문법에서 벗어나 1960~1980년대의 대중음악을 추적해 생경한 소리의 조합을 감행한다. ‘빛나네’는 영국 밴드 수퍼트램프의 ‘The logical song’처럼 월리처 피아노 풍으로 곡을 주도하고 종소리 효과음과 리듬 기타를 쌓아가며 담백한 펑크(Funk) 곡을 건설한다. ‘두 번째 날’은 ‘I’m your man’과 유사한 질감의 신시사이저로 레너드 코헨의 고독을 공유한 반면 정차식은 자신에게 상처를 줄 사랑을 회피한다.

침잠하는 내면의 1집 <황망한 사내>와 꿈틀대는 욕망을 유쾌하게 그린 2집 <격동하는 현재사>를 지나 다시금 차분해진 남자는 불면이 야기한 망상을 풀어낸다. 시와 닮은 노랫말은 서사보다는 서정, 직설보단 은유를 택하여 매끄러운 흐름을 포기하는 대신 구절 하나하나에 여운을 남긴다. 팔세토와 떨리는 음성에 읊조림까지 다양한 감정을 아우르며 레이니썬 시절에 갇히지 않고 변화하는 음악인임을 증명한다.

정차식은 청승과 신파로 시대를 역행한다. 빈틈없는 경쟁 시대에 누가 불면의 토로를 받아줄까 싶다가도 독자적 영역을 구축한 소리의 문학에 귀 기울이게 만든다. 그는 심연에서 허우적대는 자신을 소리와 활자로 남기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 수록곡 –
1. 두번째 날
2. 빛나네
3. 품위있게
4. 눈사람
5. 아래로 갔다
6. 서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