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년 말 해체를 선언한 걸그룹 러블리즈 멤버 예인이 홀로서기를 통해 청순한 막내 이미지에서 더 성숙해진 모습으로 틀을 넓혀 대중에게 다가간다. 화사한 햇빛을 머금은 멜로디가 포근히 접근하고 알앤비 리듬에 자연스레 녹아든 음색이 보조 역할에 가까웠던 그룹 시절과 달리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다. 다소 평이한 구성에 아직은 단독으로 곡을 이끄는 모습이 낯설지만 자유로운 선율을 따라 그동안 가려진 보컬 실력을 선보이며 매력을 살린다.
작년 말 해체를 선언한 걸그룹 러블리즈 멤버 예인이 홀로서기를 통해 청순한 막내 이미지에서 더 성숙해진 모습으로 틀을 넓혀 대중에게 다가간다. 화사한 햇빛을 머금은 멜로디가 포근히 접근하고 알앤비 리듬에 자연스레 녹아든 음색이 보조 역할에 가까웠던 그룹 시절과 달리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다. 다소 평이한 구성에 아직은 단독으로 곡을 이끄는 모습이 낯설지만 자유로운 선율을 따라 그동안 가려진 보컬 실력을 선보이며 매력을 살린다.
러블리즈는 견고한 탑을 쌓아왔다. ‘Ah-choo’, ‘안녕 (Hi~)’의 풋풋함부터 ‘Destiny’, ‘찾아가세요’까지 발랄한 소녀의 이미지 아래 특유의 서정적이고 아련한 옛 가요의 노선을 가져가며 스타일을 구축했다. 이것이 커리어 동안 반복되다 보니 답습의 의혹을 유발하기도 했으나 여타 그룹과 구별되는 선명한 세계임은 분명했다.
< Unforgettable >은 이상의 문법과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본인들의 영역을 지키면서도 트렌드를 수용해 새로운 모습을 성취한다. 오랫동안 함께 작업해왔던 윤상 산하의 작곡팀 원피스(OnePiece)가 아닌 새로운 프로듀서진 스타더스트(Stardust)가 합류했고, 다크한 무드와 콘셉트는 익숙지 않다. 파격적인 시도로 성장을 도모한다.
‘Obliviate’는 새 콘셉트와 탄탄한 정체성을 둘 다 만족시킨다. 선율이 대이동 하는 화려한 스트링으로 러블리즈 특유의 감성을 확보하고, 확실한 기승전결로 대중성을 획득한다. 팀의 특징인 다채로운 멜로디와 시원시원한 고음 가창을 벌스와 후렴구 사이 프리코러스에 과감하게 몰아넣는 것도 기존 스타일을 충족한다.
반면 사운드는 미래지향적이며 다양한 소스를 활용하는데 도입부에서 서서히 고조시키다가 후렴구에서 훅(Hook)성 멜로디를 반복해주며 대중에게 다가가겠다는 마음도 놓치지 않는다.
이런 조화의 면모는 ‘자각몽’으로도 이어진다. 신스 베이스와 일렉트로닉 사운드를 대폭 활용해 새로운 기조를 도입하며 앞서 언급한 답습의 의혹을 탈피한다. 요지는 후렴구 멜로디에 있다. 보폭이 넓은 멜로디와 반음계 형태의 멜로디가 서로 주고받는 형식으로 진행되며 신비감을 조성한다. 변화와 유지의 절충안을 보여주면서 팀의 새로운 가능성을 각인한다.
서브 곡들도 변화의 흔들림을 안정감 있게 지탱한다. ‘이야기꽃’은 마이너 조성의 레게 리듬으로 출발해 직선적인 신스 팝 후렴으로 연결되는 흐름이 매끄럽다. 보통의 작법이라면 알앤비의 요소가 더해질 법한데 원초적인 리듬을 로킹하게 이어가는 것이 신선하다.
사운드뿐만 아니라 노랫말에서도 어두운 단면을 그려내 성숙한 이미지를 장착한다. 이별의 아픔을 서정적으로 표현한 ‘절대, 비밀’은 변화의 노선 앞에서 익숙한 곳에 시선을 머물게 한다. 일렉트로닉 피아노로 만든 레트로한 구성에 가상 드럼을 가미하여 촌스러움 대신 현대적 감각을 조율한다.
평탄한 그래프를 그리는 와중 분기점이 될 작품이다. 음악적으로 큰 기복은 없었으나 ‘WoW!’나 ‘찾아가세요’처럼 오히려 대중성을 놓치기도 했다. < Unforgettable >은 ‘유지’와 ‘시도’의 적절한 배합에 의해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았다. 알맞은 시기에 적당한 변화를 더한, 만족스러운 결과물이다.
– 수록곡 –
1. Unforgettable
2. Obliviate
3. 자각몽
4. 절대, 비밀
5. 이야기꽃
6. 걱정 인형
케이팝 전반에 바람이 인다. 에이핑크와 여자친구가 각각 ‘덤더럼’과 ‘Apple’로 새 국면을 제시했듯, 청춘 콘셉트를 고수해온 그룹들이 저마다 변화 기류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러블리즈 ‘Obliviate’도 그 흐름에 있는 곡이다. 세 곡 모두 미래지향적 사운드를 대폭 도입했다는 점과 예상하기 힘든 독특한 곡 구성을 지닌다는 점에서 현 케이팝 시장에 유행하는 세일즈 포인트를 체감할 수 있다. 몇몇 대목에서 아이즈원의 ‘Fiesta’가 연상되는 것은 ‘의도된 복잡성’과 ‘생경한 일렉트로 팝’의 특성이 겹치는 이유다.
새 프로듀서 스타더스트(Stardust)의 합류와 전술한 성질을 강경하게 투입했음에도 불구하고 정체성을 잃지 않아 어색하지 않다. 무엇보다 빠른 기조 변화 속 각자의 파트가 충분히 구비되어 러블리즈의 강점인 보컬 라인이 피해 받지 않도록 프로듀싱되었다는 점이다. 게다가 ‘Destiny’의 비장한 발라드나 ‘Wow!’ 같이 신시사이저 중심의 곡을 소화한 이력이 쌓여, 오케스트라 빌드업과 차세대 재료의 극적 혼합이라는 환경 속에서도 그룹 색채가 생생하게 살아남는다. 기억을 지우는 주문 ‘Obliviate’이지만, 데자뷔를 남겨놓아 큰 무리 없이 새로운 기억을 덧입혔으니, 성공적인 분기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