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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10곡 특집 Feature

라디오 PD들의 ‘내 인생의 음악 10곡’ – #20 이선아 PD

이즘이 2021년 개설 20주년을 맞아 지난해부터 특집 기획으로 연재해온 라디오 방송 프로듀서 20인의 < 내 인생의 음악 10곡 > 이 어느덧 막바지에 이르렀습니다. 이렇게 마친다니 참 아쉽습니다. 15년 이상 이력의 방송 프로듀서들이 전한 신선한 선곡과 해설이 모처럼 독자들의 관심을 모으면서 호평이 이어졌습니다. 원고 작성에 애쓰셨을 PD 분들에게 다시 한 번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마지막 스무 번째는 SBS 이선아 프로듀서가 장식해주셨습니다.

‘그가 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데 필요했던 유일한 증거는 음악이었다’. 오래전 커트 보니것의 에세이를 읽다가 마주친 문구였는데, 여태껏 이보다 음악의 신비로운 힘을 근사하게 표현한 말을 들어보지 못했다. 강산이 두 번 바뀌어도 변함없이 라디오PD 타이틀을 달고 있지만, 듣는 귀가 뛰어나지도 않고, 내세울 만한 음악적 식견 따위는 없다. 다만, 한 가지 ‘부심’이 있다. 음악 안에서 일하는 나는 보통 직장인보다 훨씬 더 자주, 더 즐겁게 노래를 흥얼거리며 ‘신의 존재’를 느끼며 살고 있다는 점이다.

영화 < 사운드 오브 뮤직 > ‘Do re mi’
정신분석 상담을 시작할 때  ‘생애 최초의 기억이 뭔가요?’ 라는 질문을 던진다고 한다. 오늘의 나를 있게 한 기억의 퇴적층을 주의 깊게 살펴보게 하는 준비운동 같은 질문이다. 비슷한 방식으로 음악에 대해 자문해봤다.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의 ‘Do re mi는 유년시절의 기억을 끄집어내는 마들렌 같은 곡이다. TV에서 처음 ‘사운드 오브 뮤직’을 봤는데, 유치원에서 배운 동요가 알아들을 수 없는 꼬부랑 언어로 흘러나와 큰 충격을 받았다. 게다가 마리아 수녀와 일곱 아이들이 만들어내는 화음은 처음 들어보는 종류의 아름다움이었다.

영화가 끝난 후 어머니에게 도레미송이 다시 듣고 싶다고 떼를 쓰자, 어머니는 방송국에서 영화를 틀어줄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고 타이르셨다. 하염없이 기다렸지만 허사였다. 많은 시간이 흐른 뒤 OST를 선물 받고 나서야 이 노래를 질릴 때까지 들을 수 있었다. 음악이란 쉽게 얻을 수 없는 귀한 대상이라는 인식을 심어준 최초의 경험이었다. 음악이 흔해 빠진 디지털 시대를 살고 있지만, 이 노래를 방송에 틀 때마다 그 첫 마음이 떠올라 기분이 풍선처럼 날아오른다.

Nirvana ‘Come as you are’
또 너바나야? 하시겠지만, 너바나를 빼고 간다면 스스로를 속이는 것과 마찬가지다. 너바나의 명반 < Nevermind >에 수록돼 있는 ‘Come as you are’는 내 기억 속에 ‘불가항력’이라는 단어로 저장돼 있다. 아무리 뿌리치려 해도 더 깊숙이 빠져드는 개미지옥 같은. 10대 시절, 주말이면 MTV Asia 케이블 채널을 틀어놓고 각종 뮤직비디오를 섭렵하는 데 몰두했다. 그러다 너바나의 언플러그드 공연을 보게 됐다. ‘Come as you are~’ 떡 진 머리의 커트 코베인이 쇳소리로 내뱉는 첫 소절을 듣는 순간, 너바나의 음악으로부터 영영 도망칠 수 없음을 직감했다.

얼마나 많은 시간을 후렴구 ‘I don’t have a gun~’을 따라 부르면서 보냈는지 모른다. 이 노래는 침대에 대자로 누워 미간을 잔뜩 찌푸리고 불러야 제맛이었다. 니체가 ‘근육으로 음악을 듣는다’고 했는데, 이 음악이 딱 그랬다. 음악이 몸을 통과할 때, 감정은 물론 표정, 자세, 생각, 태도까지 바꿀 수 있다는 걸 그때 처음 깨달았다.

패닉 ‘기다리다’
불온하고 어두운 앨범 재킷 디자인에 끌려 패닉 2집을 사서 들은 이후, 패닉의 음악에 빠져들었다. 1집 앨범은 뒤늦게 샀는데, 1집에 비해 2집의 완성도와 실험정신이 업그레이드된 걸 확인하고선 팬으로서 회심의 미소를 지었던 기억이 난다. 그래도 1,2집을 통틀어 가장 많이 들었고, 기회가 날 때마다 선곡하는 노래는 1집의 ‘기다리다’이다. 단순한 기타 반주에 이적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차분하게 톤 다운 되어 ‘익숙해진 손짓과 앙금 같은 미소만 희미하게 남은’ 기다림을 읊조린다. 이 노래는 언제 들어도 한 번도 보지 못한 사람과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장소를 그리워하게 되는 묘한 경험을 안겨준다.

이 세상엔 매력적인 뮤지션이 넘쳐난다. 그러나 누군가에게 ‘믿고 듣는 뮤지션’이 된다는 건 결코 평범한 관계가 아니다. 이적은 내게 그 평범치 않은 곁을 내준 아티스트다. 얼마 전 이적의 새 앨범 <흔적>을 처음부터 끝까지 들으면서, 그와 동세대인으로 함께 나이 들어갈 수 있어 참 고맙다는 생각을 다시금 했다. 새 앨범에 수록된 ‘준비’라는 곡을 듣고선 내 속을 들켜버린 느낌이었는데, 푸른 마음으로 들었던 ‘기다리다’에 대한 세월의 화답 같기도 해서 혼자 서글퍼졌더랬다.  

어떤날 ‘하늘’
신입 PD 시절, 한 선배가 어떤날을 좋아하냐 물었다. 비 오는 날을 좋아한다고 답했더니 선배는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훌륭한 음악이니 꼭 한번 찾아 들어보라 했다. 나는 음반실에서 CD를 찾아 방송에 트는 마지막 세대였고, 음반실은 참새 방앗간 같은 공간이었다.

그날도 음반실에서 퇴근길에 빌려 갈 앨범들을 뒤적거리고 있었는데, 어떤날 1집 < 1960ㆍ1965 >가 눈에 들어왔다. 선배의 추천이 생각나 얼른 대출을 신청했고, 지금은 사라진 30번 좌석버스 안에서 이어폰을 끼고 1번 트랙 ‘하늘’을 들었다. 마지막 트랙인 ‘오후만 있던 일요일’까지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조동익과 이병우가 들려준 세계는 맑고 섬세했다. 완전히 새로운 감수성의 발견!

누구에게나 원형의 음악이 있다. 특정 감성에 눈뜨게 하고, 취향의 밑그림을 그리는 데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음악 말이다. 2001년 어느 겨울날 ‘하늘’이 활짝 열어젖힌 감수성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장필순, 토이, 재주소년, 루시드폴, 옥수사진관, 언니네이발관, 브로콜리너마저, 팻 매스니(팻 매스니가 어떤날 멤버들에게 영향을 준 것이겠지만, 내겐 순서가 뒤바뀌어 있다) 등 수많은 아티스트와 연결을 가능케 해주었다.    

U2 ‘I still haven’t found what I’m looking for’
U2의 정규 5집 < The Joshua Tree >는, 내게 U2의 세계를 알려준 동시에 록음악을 본격적으로 찾아듣게 한 기념비적인 음반이다. (이 음반이 발매된 지 10년 후인 1997년에서야 처음 듣게 되었다.) 오매불망 기다리던 U2가 드디어 2019년 첫 내한공연을 했다. 그것도 < The Joshua Tree > 음반 발매 30주년을 기념하는 콘셉트로 말이다.

앨범에 수록된 순서와 똑같이 공연에서도 ‘Where the streets have no name’에 이어 ‘I still haven’t found what I’m looking for’ 전주가 흘러나왔다. 이 노래를 라이브로 듣다니, 온몸에 전율이 일어 정신을 잃을 것만 같았다. 완벽한 몰입의 순간이었다. 마지막으로 공연을 보다가 흥분에 휩싸인 현기증을 느꼈던 게 언제였던가. 공연 관람은 업무의 연장선이 될 때가 많았다. 프로그램 게스트를 응원하기 위해, 대중음악계 트렌드 파악을 위해, 이번에 못 보면 다시는 기회가 없을 것 같아서… 온갖 이유가 덧대어졌다. 아무 이유 없이 무조건 좋은 느낌은 실로 오랜만이었다.

날 선 똑똑함보다 따뜻한 친절함에 끌리고, 다른 곳을 꿈꾸기보다 내 자리를 성실하게 지키는 것의 미덕을 아는 나이가 되었다. 하지만 이 노래를 들을 때만큼은,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가고 욕망으로 허기졌던 스무 살의 나로 돌아갈 수 있어 반갑고, 애잔하다.  

David Bowie ‘Space oddity’
우주에 가면 상하, 종횡, 고저의 개념이 통하질 않는다고 한다. 우주에서 유효한 방향은 오직 안쪽과 바깥쪽이다. 나와 나 아닌 세계가 있을 뿐이다. 외부와 연결되고 싶은 갈망과 완벽한 고독의 추구가 길항하는 텅 빈 공간. 데이비드 보위는, 인간이 달에 착륙하기 며칠 전에 ‘Space oddity’를 발표했다.

그가 이미 우주에 다녀온 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우주의 적막과 우주인의 고립감을 기가 막히게 표현했다. ‘Space oddity’는 가상의 캐릭터 우주비행사 톰 소령과 지구 관제소 간의 교신 내용을 담고 있다. 텅 빈 공간을 떠도는 톰 소령은 ‘지구는 푸르고 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마지막 메시지를 남기고 사라진다.

이 노래가 각별한 이유는, 내 일의 아름다운 면을 일깨워주기 때문이다. 꼭 우주에 가야만 톰 소령을 만날 수 있는 게 아니다. 우리 모두에겐 바깥세상과 소통하고 싶으면서도 자신만의 세계에서 달팽이처럼 웅크리고 싶은 톰 소령의 이중성이 있다. 라디오방송은 뭐랄까. 특정할 순 없지만 어딘가에 존재하는 것이 분명한 톰 소령들에게 교신을 시도하고, 그들의 외로운 이야기를 들어주는 일 아닐까 싶다. 물론, 지치지 않고 끊임없이 하는 게 포인트다.

장기하와 얼굴들 ‘그때 그 노래’
2012년 봄, < 장기하의 대단한 라디오 >라는 심야 프로그램을 론칭했다. DJ 장기하와 함께 동틀 때까지 술도 많이 마시고, 공개방송과 요상한 특집도 참 많이 했다. CP가 적당히 눈감아 준 덕분에 레이지 어게인스트 더 머쉰, 조이 디비전, 토킹 헤즈, 도어즈, 세인트 빈센트 류의 ‘비대중적인’ 음악을 마구 틀어댔다. 열정과 체력이 콸콸 넘치던 때였다.

장기하와 얼굴들 2집 ‘그때 그 노래’는 장기하도 좋아하고, 나도 좋아해서 방송에 정말 많이 튼 노래다. 산울림의 ‘너의 의미’를 듣다가 단숨에 써 내려간 곡이라는데, 장기하 특유의 힘을 뺀 창법이 관조적인 응시와 어우러져 여백의 미를 극대화한다. 무방비 상태로 들었다간 ‘그 많고 많은 밤들이 한꺼번에 생각나’  잠 못 이룰지도 모른다.

내가 겪은 장기하는, 황량한 사막에서도 자신만의 북극성을 올려다보며 길을 찾아갈 흔치 않은 고집의 뮤지션이다. 가장 나답게 살기 위해 아무것도 안 할 수 있는 사람. 무언가를 더하기보다 무언가를 빼는 게 중요하다는 걸 잘 이해하고, 삶과 음악에 적용하는 고수. 그와 함께한 시간은 어느덧 이 노래와 함께 내 인생의 ‘화양연화’가 되었다.  

아케이드 파이어(Arcade Fire) ‘Wake up’
음악은 다양한 정서를 일으킨다. 어떤 마음의 상태로 들어가고 싶을 때 음악을 적극 활용하는 편이다. 실력보다 의욕이 앞서던 십수 년 전, 새 프로그램을 준비하다가 실패를 겪고 자존감과 자존심이 동반 추락해 우울감의 늪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그때 내 손을 잡아 일으켜 세워준 노래가 바로 아케이드 파이어의 ‘Wake up이다.

지금까지도 관성에 젖어 나태해질 때, 일을 하다가 조직의 쓴맛을 볼 때, 심기일전하고 전투태세를 갖춰야 할 때 이 노래를 반복적으로 들으면서 마음을 다잡는다. 도입부의 ‘아~ 아’  부분만 들어도 온몸의 세포가 바짝 긴장하는 듯하다. 음악의 주술적인 힘이 이런 건가 싶다. 이 노래가 실려 있는 < Funeral > 앨범은 버릴 곡이 하나도 없다. 사랑하는 가족을 떠나보낸 밴드 멤버들의 이별의 경험을 밑바탕에 깔고 있는데, 슬픔, 애도, 그리움, 희망이 뒤섞인 복잡한 감정들이 듣는 이의 마음에 스며들어 묘한 고양감을 자아낸다.

글렌 굴드 ‘골드베르크 변주곡 아리아’
‘클알못’이지만 자주 손이 가는 클래식 음반이 몇 장 있다. 그중에서도 글렌 굴드의 골드베르크 변주곡 앨범(1981년)을 가장 아낀다. 글렌 굴드는 생전에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 음반을 두 장 냈다. 그를 20세기를 대표하는 천재 피아니스트 반열에 올려준 첫 앨범도 골드베르크이고, 세상을 떠나기 1년 전 마지막으로 녹음한 앨범도 골드베르크이다. 1981년 버전은 1955년의 것보다 느리게 연주되었다. 생기는 덜하지만 좀 더 명상적이고 묵직한 통일성이 느껴진다.

주체할 수 없다는 듯 곳곳에서 터져 나오는 글렌 굴드의 허밍은 비를 부르는 먹구름 같기도 하고, 밤하늘을 긋는 유성우 같기도 하다. ‘아리아’부터 ‘아리아 다 카포’까지 한 바퀴 듣고 나면, 종교적인 체험을 한 것 같은 기분이라 영원과 소멸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윤상 소년’
두 살 터울의 언니는 중학교에 진학하면서 초등학생이었던 나와 구별짓기를 시도하기 위해 방문을 걸어 잠그고 혼자 음악을 듣기 시작했다. 방에 몰래 침입해 책상을 기웃거리고 나서야 그녀가 윤상의 팬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언니가 하는 건 다 좋아 보이던 시절이었기에, 나도 윤상의 음악에 입문했다. 윤상의 사운드와 박창학의 노랫말의 조합은, 알듯 모를 듯해서 더욱 매혹적인 어른의 세계를 엿보게 해주었다. 지금도 가끔 그때를 돌이켜 보며, 일찌감치 탁월한 뮤지션을 알아본 언니의 선구안에 감탄하곤 한다.

윤상 2집에 수록된 ‘소년’은 E.O.S 보컬로 활동 중이던 김형중이 불렀다. 기교는 불완전하나 무구함이 느껴지는 김형중의 목소리가 어른의 세계를 탐하던 내 마음과 공명을 일으켰다. 흠… 그러고 보니 이 노래는 삶은 거대한 농담이란 내 오래된 믿음을 증명하기도 했다.

*프로필
SBS 이선아PD (porfavor@sbs.co.kr)
2001년 라디오PD로 SBS 입사 < 장기하의 대단한 라디오 > < 정지영의 스위트뮤직박스 > < 이숙영의 파워FM > < 박선영의 씨네타운 > < 최화정의 파워타임 > 등 다수 연출. 2021년 2월부터 < 박소현의 러브게임 >을 10년 만에 다시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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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10곡 특집 Feature

라디오 PD들의 ‘내 인생의 음악 10곡’ – #15 김은수 PD

내년 개설 20주년을 앞두고 이즘은 특집 기획의 일환으로 라디오 방송 프로듀서 20인의 ‘내 인생의 음악 10곡’ 편을 연재 중입니다. 라디오는 음악과 동의어라는 편집진의 판단에 따라 기획한 시리즈로 모처럼 방송 프로듀서들이 전해주는 신선한 미학적 시선에 독자 분들이 좋은 반응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각 방송사의 라디오국에서 음악 프로를 관장하며 15년 이상의 이력을 가진 20인 PD의 ‘인생 곡 톱10’입니다. 열다섯 번째 순서는 CPBC 가톨릭 평화방송 김은수 프로듀서입니다.

아시다시피 덧대는 데는 그 닥 용기가 필요 없다. 대신, 걸러 내거나 포기하는 데는 그 몇 배의 용기가 필요하다. ‘열곡이면 충분하지’ 했음에도, 선곡리스트를 지웠다 썼다 를 반복하면서 어느새 페이지가 너덜너덜해졌다. 다행히 ‘인생’ 이라는 화두를 앞머리에 두자니 구성에 갈등은 없었다. 그럼에도 과거의 매순간이 성장과 노화의 리듬뿐 아니라, 미련과 회한의 채에 걸러져, 되돌아보니 다시금 아쉬움과 그리움이 한 겹 더 쌓이는 계기가 되었다.

어찌됐든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음악 PD들의 주옥과 같은 선곡과 해설을 통해 ‘이즘’ 독자 분들께는 다분히 지적욕구가 충족되었으리라 보고, 오늘은 그야말로 개인사를 관통하는 음악들을 나열하면서 한두 번 고개를 끄덕여준다면 진심 행복할 것 같다. 어차피 음악의 운명은 감성의 공명과 그로인한 쾌감(?)을 함께 나누는 일이므로…

장기하와 얼굴들 ‘마냥 걷는다’
‘마냥’이라는 부사를 노래제목에 붙였다. 남의 시선에 휘둘리지 않고 내 시선에 집중하면서 음악을 해보겠다는 당당한 고집이 느껴졌다. 일단 ‘싸구려 커피’가 날린 신선한 펀치 뒤에 이어진 수록곡들 모두가 그 자리에서 한 호흡으로 빠져들게 했다. 직업 상, 새로운 음반을 접하면 숙제하듯 요리조리 분석하고 해부하는 작업이 우선이건만, 이 음반은 물 흐르듯 한 번에 들어(?)버리게 되었다.

마치 장기하의 최근 에세이집 [상관없지 않은가?]에서 보여주듯, 작고 시시한 사물일지라도 그의 깊고 집요한 사색의 흐름을 타고 흡인력을 놓치지 않는 것처럼, 이 노래 역시 ‘좋았던 그 사람의 사진 한 장 손에 쥐고 마냥 걷는’단다. 연주는 더 압권이다. 무반주로 시작되는 노랫말에 귀를 세우다보면 비로소 시작되는 1분 30여초 동안의 장중한 간주와 후주는 무방비로 황홀경에 빠져들게 한다.

1980년대 일본의 Electronic Pop을 대표하는 밴드 [Yellow Music Orchestra]와 이기팝, 우리의 십센치와 이날치로 이어지는 실험적이고 고집스런 음악들이 주는 매력을 장기하는 이 한 장의 앨범에 넘치도록 싣고 있다.

The Animals ‘House of The Rising Sun’
-내가 초등학생 때 서울로 유학 간 오빠는 알토란같은 수업료를 빼돌려 밴드를 결성하고 음악활동을 하다 결국 부모에게 들켜 고향으로 강제 소환된 무렵, 우리 자매들을 앉혀놓고 기타반주에 불러주던 곡이자 내가 최초로 접한 팝송이다. 어린 마음에 제목자체에 희망을 걸었던 노래였건만, 실제 내용은 반전이다. 햇살이 가득한 따스하고 아늑한 가정이 아니라, 꿈을 가진 소년의 희망도 저버리게 만드는 회색빛 우울한 집… 그 집으로 돌아가는 남자의 쓸쓸한 회한이 묻어나는 노랫말을 알고 나니, 오르간 솔로보다 기타연주가 더욱 슬프고 아프게 느껴지는 명곡이다. 더욱이 지금은 가고 없는 오빠의 연주들이 이 노래부터 시작되어 지금도 긴 여운을 남기고 있기 때문도 하다.

-이 노래는 이후, 동네에 이따금씩 들어오던 천막극장의 개구멍을 넘나들며 영화에 빠지고, 박원웅과 황인용, 이종환, 김광한, 장유진, 김세원…으로 이어지는 음악프로그램들에 빠져 내가 라디오키즈로 성장한 자양분이 되 주기도 하였다.

송창식 ‘창밖에는 비오고요’
-오로지 운동장 조회를 피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들어간 고등학교 방송반. 뜨거운 햇살아래 교장선생님의 지루한 연설에 지쳐 한 두 명의 친구들이 픽픽 쓰러지던 시절, 마이크 점검을 끝내놓고 시원한 방송반에서 뒹굴거릴 때, 송창식의 이 앨범은 뭔지 모를 위안과 기쁨을 더해주었다. 더구나 세시봉의 뮤즈, 윤여정을 대상으로 만들었다는 심플한 노랫말의 이곡을 비롯해 비오는 날 들으면 더 깊은 울림으로 다가온 상아의 노래, 꽃보다 귀한 여인, 비의 나그네..등 연가 풍 곡들로 이어져 사춘기 감성을 마구 흔들어 댔다.

-불법이긴 했지만, 당시 나름 곱씹고 곱씹었던 곡들을 모아 읍내 레코드가게에 가서 나만의 컨필레이션 음반(조악스런 카세트 테잎이긴 했지만)을 만들 때 늘 빠지지 않던 애장곡이기도 하다.

한 대수 ‘물 좀 주소’
-방송반에 이어 그 혜택의 단맛을 잊지 못하고 들어간 대학 음악감상실 ‘미네징거’
그곳은 소위 음악 골통(^^)들의 집합소였다. 지금도 ‘명연주 명음반’ DJ로 활동 중인 정만섭을 비롯, 용산에서 알아주는 방송 장비의 대가인 선배와 종종 음악칼럼으로 세상에 이름을 알리는 음악매니아들이 학과 수업을 제치고 늘 감상실을 들락거리며 식구처럼 지냈던 시기였으니… 한 대수의 익살스런 표정의 앨범을 알게 된 것도 바로 그 시기. 미소년 같기만 하던 동기가 선배들과의 신고식자리에서 불러재낀 노래가 바로 이곡이었고 다들 이 느닷없는 반전에 뒤집어졌던 기억이 있다.

-이후 다큐프로그램 작가로 활동할 때, 이 노래는 새벽녘 원고 탈고 때마다 어김없이 틀어대던 내 애청곡(18번)이 되었다. 걸걸한 탁주 한 사발 같은 음색과 자유로운 영혼을 자켓 사진 한 장에 담아낸 한대수… 지난 해 미국으로 다시 떠나기 전, 김도향 선생과의 인연으로 마지막 출연을 평화방송에 허락해준 고마움 때문일까? 70나이에도 꽃무늬 셔츠와 장발이 잘 어울리는 아름다움 때문일까? 제아무리 야속한 시간이라도 이 20대 청년의 음악적 패기를 영원히 앗아가지는 못할 것 같다.

-추신: 전주 없이 영혼을 흔들어대는 네 음절 ‘물 좀 주소~’ 는, 우리 가요 사에 남을 가장 강력한 첫 소절이 아닐까 싶다.^^

한영애 ‘루씰’
-93년의 여름. 한영애의 ‘아.우.성 콘서트’를 보러 간 당시 나는 만삭이었다. 세상 밖으로 나오겠다며 발버둥치는 태아에게 ‘엄마가 이 공연 놓치면 널 미워하게 될지도 몰라. 그러니 아가야, 나오고 싶어도 조금만 참아주라.’ 겨우 달래며 달려간 여의도 63빌딩 공연장은 한여름의 습기와 열기로 가득 찼고, 간신히 구석진 입석을 차지 한 채 곡마다 열광하는 나를 결국은 한영애도 알아봤다. 관객들이 일제히 나를 보고 미쳤다? 는 박수를 보냈지만 나의 쾌감은 그녀의 흐드러진 블루지 창법의 ‘루씰’로 절정을 이루었다. 전설의 블루스 뮤지션 B.B.King의 기타 애칭라고 하지만 내게 루씰은 그냥 한영애다.
‘루씰~ 알고 있나, 너의 노래는 영혼 속에 가리워진 빛을 찾게 하는 믿음…’

-몇 해 전, 임진각DMZ평화콘서트에서 다시 그녀를 만났고, 나의 루씰이 건재함도 보았고, 무엇보다 주변 소음을 무시하고 거침없이 앞으로 전진하는 코뿔소의 모습을 한 그녀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음에 행복했다.

장국영 ‘Boulevard of Broken Dream’
-‘가사는 입에서 입으로 떠도는 운명’이라고 했던가… 나의 입을 떠나 타인을 거쳐 다시 나에게로 회귀하는 노랫말들…장국영이 부르는 이 노래는 마치 본인의 생을 예고하듯 처절하고 음울하게 다가온다.

그를 만난 건 그가 죽기 전 내한 해 묵었던 강남의 한 고급호텔 스위트룸 접견실. 영화음악프로그램을 제작할 당시였는데, 매우 친절하고 열정적으로 인터뷰에 응해 주었던 모습이 아직도 선하다. 특히 그도 나도 함께 좋아한 배우, 게리 올드만에 대해 얘기할 때는 친구처럼 반가워하기도 했다. 마치 배틀하듯 게리 올드만의 명장면들을 주고받을 때는 손뼉을 치며 즐거워하기도 했다. 그런 그가 사라졌다. 남은 건 노래 제목처럼 ‘슬픔의 거리 꿈이 깨진 거리를 홀로 걸으며 지독한 외로움을 토해 낸’ 그의 절규뿐이다.

-늘어지듯 흐느적거리는 섹소폰 전주에 이은 장국영의 블루지한 굵은 음색은 마치, 시리디 시린 새벽을 연상시킨다. 오랜만에 유튜브에 올려 진 이 곡을 다시 찾아 들었다. B.G 영상은 양조위와 열연한 [해피투게더]를 올려놓았는데, 극 중 오열하는 장국영의 모습이 왜 그토록 아프게 다가오는지….

Sting ‘I love her, but She loves someone else’
-음악프로그램 PD로 30년을 살았다. 중간 중간 교양과 선교, 다큐물을 넘나들었지만, FM은 결국 음악을 빼고는 그 어떤 프로그램도 제작할 수없는 매체다. 머리가 제일 맑아지는 순간도 음악을 모니터링 할 때고, 당연 나의 보물 제1호 역시 열권에 달하는 음악노트들이다. 컴퓨터로 작성할 수도 있겠지만 마치 누군가의 글을 받아쓰는 것 같아, 번거로움을 무릅쓰고 직접 기록하는 아날로그방식을 고집해왔다. Sting은 이 노트들에서 가장 많이 기록된 아티스트다. 장르는 물론, 기록하지 않으면 안 될 달란트를 가장 많이 보유한 예술가이자 철학자라고 할까?

언뜻 그는 연애지상주의자 연 가사를 쓴다. ‘바람 든 무’ 같은 호소력 짙은 음색도 낭만을 덧칠한다. 하지만 그는 힘들고 난해한 가사를 쓰는 뮤지션 중의 한 사람이다. 전통적인 가톨릭 가정교육의 영향도 있겠지만, 자기 주도적 멘탈이 매우 강한 뮤지션이기도 하다. 이 노래 역시, 모호한 삼각관계를 연상시키는 제목이지만, 어머니와 그녀의 신앙, 신과의 관계를 풀어내고 있다. 멜로디는 매우 서정적이고, 가사를 무시하고 들으면 위험한 사랑에 빠져버릴 수 있는 곡이기도 하다. 그러나 스팅은 속삭인다. ‘난 수도자 영성을 존중하는 아티스트…’ 라고.

-2005년. 올림픽 경기장에서 Sting 공연을 보았다. 잔디밭이었지만, 직접 공연 장비를 챙겨 온 스팅의 고집스러운 열정이 주변의 소음을 모두 잠식해 버렸다.

신해철 ‘아버지와 나 Part Ⅰ’
-음악을 좋아하면 당연 오디오에도 집중하게 되지만, 음반 녹음을 담당한 엔지니어를 보고 구입 결정을 하는 친구도 있다. 그의 방은 오디오장비로 도배됐음은 물론이다. 쫌 유난 아닌가? 하는 물음에 그 친구 왈,
‘마리아 칼라스가 언제 내 앞에서 이렇게 나만을 위한 공연을 해 주겠나?’ 깨갱… 거친 호흡하나 놓치고 싶지 않은 간절함을 이해하게 되었고, 신해철의 이 곡을 들으며 나 또한 그 거칠고도 살아있는 호흡을 체감 했다. 담배에 불을 붙이고 훅~~ 연기를 내뿜더니, 그가 내 앞에 앉아 세상에서 가장 힘든 고백을 읊조리기 시작하는 것이다.

‘저기 걸어가는 사람을 보라. 나의 아버지 혹은 당신의 아버지인가.
가족에게 소외 받고 돈 벌어 오는 자의 비애와 거대한 짐승의 시체처럼
껍질만 남은 권위의 이름을 짊어지고 비틀거린다…’

-나의 아버지도 가고 없다. 아버지와 오빠는 살아생전 몇 마디쯤으로 서로의 마음을 나눴을까? 그럼에도 아버지는 마지막 숨을 버티다 오빠가 달려와 눈빛을 마주했을 때 비로소 눈을 감았다. 신해철의 고백이 가슴을 후벼낸 ‘아버지와 나 Part 1′ 과, 아기울음소리로 시작과 끝을 엮은 Part 2. 그리고 ‘이제는 또 다른 그가 되어주고 싶다…’고 진정 화해와 사랑을 고백하는 Part 3까지… 유려한 문장과 진중한 반성, 굵직한 철학을 버무린 한 편의 완벽한 서사다.

피오나 애플 ‘I love you to love me’
-이 곡은 아무 전제 없이 그냥 한 번 들어보시라. 그러면 그녀에게 쏟아지는 찬사들에 고개를 절로 끄덕이게 될 것이다. 가능하면 그녀의 4집 앨범 중, ‘Every Single Night’까지 듣고 나면 그 폭넓은 음악적 스펙트럼이 경이로워질 것이다.

-누구와도 비교 불가능한 압도적 개성을 분출해내는 괴팍한 천사.
강렬하고 급진적인 고요의 독백!
당신이 상상할 수 있는 최고.
그녀의 컴백에 전율이 흐른다, 여전히 강렬하다.
목소리 음역은 콘트랄토이며, 음악적 스타일은 재즈, 얼터너티브 록, 바로크 팝의 요소를 가지고 있다….

조용필 ‘창밖의 여자’
-마지막 한곡을 놓고 고심에 고심을 거듭했다. 음악사에 남을 명곡, 가수 중에 가수, 이미 전설이 된 아티스트… 이렇게 써 놓고 보니 명명되는 인물이 선명해졌다.

-고등학교 2학년, 한창 지적 사치에 탐닉하던 여고생에게 나비넥타이를 하고 헤어스타일은 빵~한 청년. 게다가 발라드인지 트로트인지 알 수 없는 장르들이 뒤섞인 음반이 한눈에 들어 올 리 만무였는데, 그야말로 조용필은 음악으로 세상 모든 선입견들을 멋지게 파괴시켜버렸고 ‘위대한 탄생’을 알렸다.

-수많은 수식어와 수많은 사람들의 경탄을 집약해준 두 사람의 글을 인용하며, 조용필에 대한 나의 사랑, 영웅에 대한 나의 경애심을 갈무리하고자 한다.

‘조용필은 대중성을 비켜가지 않으면서도 음악적 혁신을 게을리 한 적이 없다.
훗날 대중음악 역사는 그를 위해 별도의 장을 준비해야 할 것이다.’

(이 주엽 지음. [이 한 줄의 가사] 중)

‘우리나라 가수 중 노래를 가장 잘 부르는 가수 한 명만을 꼽는다면,
단연 조용필이다’

(가수 송창식)

*김은수 PD
-1990년 가톨릭평화방송(CPBC) 입사
-‘신부님 신부님 우리 신부님’ ‘PBC 영화음악’등 다수 음악프로그램 제작
-영화중심 음악프로그램 ‘새날이 오는 길목에서’ 제작, 진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