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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10곡 특집 Feature

라디오 PD들의 ‘내 인생의 음악 10곡’ – #20 이선아 PD

이즘이 2021년 개설 20주년을 맞아 지난해부터 특집 기획으로 연재해온 라디오 방송 프로듀서 20인의 < 내 인생의 음악 10곡 > 이 어느덧 막바지에 이르렀습니다. 이렇게 마친다니 참 아쉽습니다. 15년 이상 이력의 방송 프로듀서들이 전한 신선한 선곡과 해설이 모처럼 독자들의 관심을 모으면서 호평이 이어졌습니다. 원고 작성에 애쓰셨을 PD 분들에게 다시 한 번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마지막 스무 번째는 SBS 이선아 프로듀서가 장식해주셨습니다.

‘그가 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데 필요했던 유일한 증거는 음악이었다’. 오래전 커트 보니것의 에세이를 읽다가 마주친 문구였는데, 여태껏 이보다 음악의 신비로운 힘을 근사하게 표현한 말을 들어보지 못했다. 강산이 두 번 바뀌어도 변함없이 라디오PD 타이틀을 달고 있지만, 듣는 귀가 뛰어나지도 않고, 내세울 만한 음악적 식견 따위는 없다. 다만, 한 가지 ‘부심’이 있다. 음악 안에서 일하는 나는 보통 직장인보다 훨씬 더 자주, 더 즐겁게 노래를 흥얼거리며 ‘신의 존재’를 느끼며 살고 있다는 점이다.

영화 < 사운드 오브 뮤직 > ‘Do re mi’
정신분석 상담을 시작할 때  ‘생애 최초의 기억이 뭔가요?’ 라는 질문을 던진다고 한다. 오늘의 나를 있게 한 기억의 퇴적층을 주의 깊게 살펴보게 하는 준비운동 같은 질문이다. 비슷한 방식으로 음악에 대해 자문해봤다.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의 ‘Do re mi는 유년시절의 기억을 끄집어내는 마들렌 같은 곡이다. TV에서 처음 ‘사운드 오브 뮤직’을 봤는데, 유치원에서 배운 동요가 알아들을 수 없는 꼬부랑 언어로 흘러나와 큰 충격을 받았다. 게다가 마리아 수녀와 일곱 아이들이 만들어내는 화음은 처음 들어보는 종류의 아름다움이었다.

영화가 끝난 후 어머니에게 도레미송이 다시 듣고 싶다고 떼를 쓰자, 어머니는 방송국에서 영화를 틀어줄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고 타이르셨다. 하염없이 기다렸지만 허사였다. 많은 시간이 흐른 뒤 OST를 선물 받고 나서야 이 노래를 질릴 때까지 들을 수 있었다. 음악이란 쉽게 얻을 수 없는 귀한 대상이라는 인식을 심어준 최초의 경험이었다. 음악이 흔해 빠진 디지털 시대를 살고 있지만, 이 노래를 방송에 틀 때마다 그 첫 마음이 떠올라 기분이 풍선처럼 날아오른다.

Nirvana ‘Come as you are’
또 너바나야? 하시겠지만, 너바나를 빼고 간다면 스스로를 속이는 것과 마찬가지다. 너바나의 명반 < Nevermind >에 수록돼 있는 ‘Come as you are’는 내 기억 속에 ‘불가항력’이라는 단어로 저장돼 있다. 아무리 뿌리치려 해도 더 깊숙이 빠져드는 개미지옥 같은. 10대 시절, 주말이면 MTV Asia 케이블 채널을 틀어놓고 각종 뮤직비디오를 섭렵하는 데 몰두했다. 그러다 너바나의 언플러그드 공연을 보게 됐다. ‘Come as you are~’ 떡 진 머리의 커트 코베인이 쇳소리로 내뱉는 첫 소절을 듣는 순간, 너바나의 음악으로부터 영영 도망칠 수 없음을 직감했다.

얼마나 많은 시간을 후렴구 ‘I don’t have a gun~’을 따라 부르면서 보냈는지 모른다. 이 노래는 침대에 대자로 누워 미간을 잔뜩 찌푸리고 불러야 제맛이었다. 니체가 ‘근육으로 음악을 듣는다’고 했는데, 이 음악이 딱 그랬다. 음악이 몸을 통과할 때, 감정은 물론 표정, 자세, 생각, 태도까지 바꿀 수 있다는 걸 그때 처음 깨달았다.

패닉 ‘기다리다’
불온하고 어두운 앨범 재킷 디자인에 끌려 패닉 2집을 사서 들은 이후, 패닉의 음악에 빠져들었다. 1집 앨범은 뒤늦게 샀는데, 1집에 비해 2집의 완성도와 실험정신이 업그레이드된 걸 확인하고선 팬으로서 회심의 미소를 지었던 기억이 난다. 그래도 1,2집을 통틀어 가장 많이 들었고, 기회가 날 때마다 선곡하는 노래는 1집의 ‘기다리다’이다. 단순한 기타 반주에 이적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차분하게 톤 다운 되어 ‘익숙해진 손짓과 앙금 같은 미소만 희미하게 남은’ 기다림을 읊조린다. 이 노래는 언제 들어도 한 번도 보지 못한 사람과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장소를 그리워하게 되는 묘한 경험을 안겨준다.

이 세상엔 매력적인 뮤지션이 넘쳐난다. 그러나 누군가에게 ‘믿고 듣는 뮤지션’이 된다는 건 결코 평범한 관계가 아니다. 이적은 내게 그 평범치 않은 곁을 내준 아티스트다. 얼마 전 이적의 새 앨범 <흔적>을 처음부터 끝까지 들으면서, 그와 동세대인으로 함께 나이 들어갈 수 있어 참 고맙다는 생각을 다시금 했다. 새 앨범에 수록된 ‘준비’라는 곡을 듣고선 내 속을 들켜버린 느낌이었는데, 푸른 마음으로 들었던 ‘기다리다’에 대한 세월의 화답 같기도 해서 혼자 서글퍼졌더랬다.  

어떤날 ‘하늘’
신입 PD 시절, 한 선배가 어떤날을 좋아하냐 물었다. 비 오는 날을 좋아한다고 답했더니 선배는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훌륭한 음악이니 꼭 한번 찾아 들어보라 했다. 나는 음반실에서 CD를 찾아 방송에 트는 마지막 세대였고, 음반실은 참새 방앗간 같은 공간이었다.

그날도 음반실에서 퇴근길에 빌려 갈 앨범들을 뒤적거리고 있었는데, 어떤날 1집 < 1960ㆍ1965 >가 눈에 들어왔다. 선배의 추천이 생각나 얼른 대출을 신청했고, 지금은 사라진 30번 좌석버스 안에서 이어폰을 끼고 1번 트랙 ‘하늘’을 들었다. 마지막 트랙인 ‘오후만 있던 일요일’까지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조동익과 이병우가 들려준 세계는 맑고 섬세했다. 완전히 새로운 감수성의 발견!

누구에게나 원형의 음악이 있다. 특정 감성에 눈뜨게 하고, 취향의 밑그림을 그리는 데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음악 말이다. 2001년 어느 겨울날 ‘하늘’이 활짝 열어젖힌 감수성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장필순, 토이, 재주소년, 루시드폴, 옥수사진관, 언니네이발관, 브로콜리너마저, 팻 매스니(팻 매스니가 어떤날 멤버들에게 영향을 준 것이겠지만, 내겐 순서가 뒤바뀌어 있다) 등 수많은 아티스트와 연결을 가능케 해주었다.    

U2 ‘I still haven’t found what I’m looking for’
U2의 정규 5집 < The Joshua Tree >는, 내게 U2의 세계를 알려준 동시에 록음악을 본격적으로 찾아듣게 한 기념비적인 음반이다. (이 음반이 발매된 지 10년 후인 1997년에서야 처음 듣게 되었다.) 오매불망 기다리던 U2가 드디어 2019년 첫 내한공연을 했다. 그것도 < The Joshua Tree > 음반 발매 30주년을 기념하는 콘셉트로 말이다.

앨범에 수록된 순서와 똑같이 공연에서도 ‘Where the streets have no name’에 이어 ‘I still haven’t found what I’m looking for’ 전주가 흘러나왔다. 이 노래를 라이브로 듣다니, 온몸에 전율이 일어 정신을 잃을 것만 같았다. 완벽한 몰입의 순간이었다. 마지막으로 공연을 보다가 흥분에 휩싸인 현기증을 느꼈던 게 언제였던가. 공연 관람은 업무의 연장선이 될 때가 많았다. 프로그램 게스트를 응원하기 위해, 대중음악계 트렌드 파악을 위해, 이번에 못 보면 다시는 기회가 없을 것 같아서… 온갖 이유가 덧대어졌다. 아무 이유 없이 무조건 좋은 느낌은 실로 오랜만이었다.

날 선 똑똑함보다 따뜻한 친절함에 끌리고, 다른 곳을 꿈꾸기보다 내 자리를 성실하게 지키는 것의 미덕을 아는 나이가 되었다. 하지만 이 노래를 들을 때만큼은,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가고 욕망으로 허기졌던 스무 살의 나로 돌아갈 수 있어 반갑고, 애잔하다.  

David Bowie ‘Space oddity’
우주에 가면 상하, 종횡, 고저의 개념이 통하질 않는다고 한다. 우주에서 유효한 방향은 오직 안쪽과 바깥쪽이다. 나와 나 아닌 세계가 있을 뿐이다. 외부와 연결되고 싶은 갈망과 완벽한 고독의 추구가 길항하는 텅 빈 공간. 데이비드 보위는, 인간이 달에 착륙하기 며칠 전에 ‘Space oddity’를 발표했다.

그가 이미 우주에 다녀온 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우주의 적막과 우주인의 고립감을 기가 막히게 표현했다. ‘Space oddity’는 가상의 캐릭터 우주비행사 톰 소령과 지구 관제소 간의 교신 내용을 담고 있다. 텅 빈 공간을 떠도는 톰 소령은 ‘지구는 푸르고 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마지막 메시지를 남기고 사라진다.

이 노래가 각별한 이유는, 내 일의 아름다운 면을 일깨워주기 때문이다. 꼭 우주에 가야만 톰 소령을 만날 수 있는 게 아니다. 우리 모두에겐 바깥세상과 소통하고 싶으면서도 자신만의 세계에서 달팽이처럼 웅크리고 싶은 톰 소령의 이중성이 있다. 라디오방송은 뭐랄까. 특정할 순 없지만 어딘가에 존재하는 것이 분명한 톰 소령들에게 교신을 시도하고, 그들의 외로운 이야기를 들어주는 일 아닐까 싶다. 물론, 지치지 않고 끊임없이 하는 게 포인트다.

장기하와 얼굴들 ‘그때 그 노래’
2012년 봄, < 장기하의 대단한 라디오 >라는 심야 프로그램을 론칭했다. DJ 장기하와 함께 동틀 때까지 술도 많이 마시고, 공개방송과 요상한 특집도 참 많이 했다. CP가 적당히 눈감아 준 덕분에 레이지 어게인스트 더 머쉰, 조이 디비전, 토킹 헤즈, 도어즈, 세인트 빈센트 류의 ‘비대중적인’ 음악을 마구 틀어댔다. 열정과 체력이 콸콸 넘치던 때였다.

장기하와 얼굴들 2집 ‘그때 그 노래’는 장기하도 좋아하고, 나도 좋아해서 방송에 정말 많이 튼 노래다. 산울림의 ‘너의 의미’를 듣다가 단숨에 써 내려간 곡이라는데, 장기하 특유의 힘을 뺀 창법이 관조적인 응시와 어우러져 여백의 미를 극대화한다. 무방비 상태로 들었다간 ‘그 많고 많은 밤들이 한꺼번에 생각나’  잠 못 이룰지도 모른다.

내가 겪은 장기하는, 황량한 사막에서도 자신만의 북극성을 올려다보며 길을 찾아갈 흔치 않은 고집의 뮤지션이다. 가장 나답게 살기 위해 아무것도 안 할 수 있는 사람. 무언가를 더하기보다 무언가를 빼는 게 중요하다는 걸 잘 이해하고, 삶과 음악에 적용하는 고수. 그와 함께한 시간은 어느덧 이 노래와 함께 내 인생의 ‘화양연화’가 되었다.  

아케이드 파이어(Arcade Fire) ‘Wake up’
음악은 다양한 정서를 일으킨다. 어떤 마음의 상태로 들어가고 싶을 때 음악을 적극 활용하는 편이다. 실력보다 의욕이 앞서던 십수 년 전, 새 프로그램을 준비하다가 실패를 겪고 자존감과 자존심이 동반 추락해 우울감의 늪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그때 내 손을 잡아 일으켜 세워준 노래가 바로 아케이드 파이어의 ‘Wake up이다.

지금까지도 관성에 젖어 나태해질 때, 일을 하다가 조직의 쓴맛을 볼 때, 심기일전하고 전투태세를 갖춰야 할 때 이 노래를 반복적으로 들으면서 마음을 다잡는다. 도입부의 ‘아~ 아’  부분만 들어도 온몸의 세포가 바짝 긴장하는 듯하다. 음악의 주술적인 힘이 이런 건가 싶다. 이 노래가 실려 있는 < Funeral > 앨범은 버릴 곡이 하나도 없다. 사랑하는 가족을 떠나보낸 밴드 멤버들의 이별의 경험을 밑바탕에 깔고 있는데, 슬픔, 애도, 그리움, 희망이 뒤섞인 복잡한 감정들이 듣는 이의 마음에 스며들어 묘한 고양감을 자아낸다.

글렌 굴드 ‘골드베르크 변주곡 아리아’
‘클알못’이지만 자주 손이 가는 클래식 음반이 몇 장 있다. 그중에서도 글렌 굴드의 골드베르크 변주곡 앨범(1981년)을 가장 아낀다. 글렌 굴드는 생전에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 음반을 두 장 냈다. 그를 20세기를 대표하는 천재 피아니스트 반열에 올려준 첫 앨범도 골드베르크이고, 세상을 떠나기 1년 전 마지막으로 녹음한 앨범도 골드베르크이다. 1981년 버전은 1955년의 것보다 느리게 연주되었다. 생기는 덜하지만 좀 더 명상적이고 묵직한 통일성이 느껴진다.

주체할 수 없다는 듯 곳곳에서 터져 나오는 글렌 굴드의 허밍은 비를 부르는 먹구름 같기도 하고, 밤하늘을 긋는 유성우 같기도 하다. ‘아리아’부터 ‘아리아 다 카포’까지 한 바퀴 듣고 나면, 종교적인 체험을 한 것 같은 기분이라 영원과 소멸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윤상 소년’
두 살 터울의 언니는 중학교에 진학하면서 초등학생이었던 나와 구별짓기를 시도하기 위해 방문을 걸어 잠그고 혼자 음악을 듣기 시작했다. 방에 몰래 침입해 책상을 기웃거리고 나서야 그녀가 윤상의 팬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언니가 하는 건 다 좋아 보이던 시절이었기에, 나도 윤상의 음악에 입문했다. 윤상의 사운드와 박창학의 노랫말의 조합은, 알듯 모를 듯해서 더욱 매혹적인 어른의 세계를 엿보게 해주었다. 지금도 가끔 그때를 돌이켜 보며, 일찌감치 탁월한 뮤지션을 알아본 언니의 선구안에 감탄하곤 한다.

윤상 2집에 수록된 ‘소년’은 E.O.S 보컬로 활동 중이던 김형중이 불렀다. 기교는 불완전하나 무구함이 느껴지는 김형중의 목소리가 어른의 세계를 탐하던 내 마음과 공명을 일으켰다. 흠… 그러고 보니 이 노래는 삶은 거대한 농담이란 내 오래된 믿음을 증명하기도 했다.

*프로필
SBS 이선아PD (porfavor@sbs.co.kr)
2001년 라디오PD로 SBS 입사 < 장기하의 대단한 라디오 > < 정지영의 스위트뮤직박스 > < 이숙영의 파워FM > < 박선영의 씨네타운 > < 최화정의 파워타임 > 등 다수 연출. 2021년 2월부터 < 박소현의 러브게임 >을 10년 만에 다시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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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10곡 특집 Feature

라디오 PD들의 ‘내 인생의 음악 10곡’ – #15 김은수 PD

내년 개설 20주년을 앞두고 이즘은 특집 기획의 일환으로 라디오 방송 프로듀서 20인의 ‘내 인생의 음악 10곡’ 편을 연재 중입니다. 라디오는 음악과 동의어라는 편집진의 판단에 따라 기획한 시리즈로 모처럼 방송 프로듀서들이 전해주는 신선한 미학적 시선에 독자 분들이 좋은 반응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각 방송사의 라디오국에서 음악 프로를 관장하며 15년 이상의 이력을 가진 20인 PD의 ‘인생 곡 톱10’입니다. 열다섯 번째 순서는 CPBC 가톨릭 평화방송 김은수 프로듀서입니다.

아시다시피 덧대는 데는 그 닥 용기가 필요 없다. 대신, 걸러 내거나 포기하는 데는 그 몇 배의 용기가 필요하다. ‘열곡이면 충분하지’ 했음에도, 선곡리스트를 지웠다 썼다 를 반복하면서 어느새 페이지가 너덜너덜해졌다. 다행히 ‘인생’ 이라는 화두를 앞머리에 두자니 구성에 갈등은 없었다. 그럼에도 과거의 매순간이 성장과 노화의 리듬뿐 아니라, 미련과 회한의 채에 걸러져, 되돌아보니 다시금 아쉬움과 그리움이 한 겹 더 쌓이는 계기가 되었다.

어찌됐든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음악 PD들의 주옥과 같은 선곡과 해설을 통해 ‘이즘’ 독자 분들께는 다분히 지적욕구가 충족되었으리라 보고, 오늘은 그야말로 개인사를 관통하는 음악들을 나열하면서 한두 번 고개를 끄덕여준다면 진심 행복할 것 같다. 어차피 음악의 운명은 감성의 공명과 그로인한 쾌감(?)을 함께 나누는 일이므로…

장기하와 얼굴들 ‘마냥 걷는다’
‘마냥’이라는 부사를 노래제목에 붙였다. 남의 시선에 휘둘리지 않고 내 시선에 집중하면서 음악을 해보겠다는 당당한 고집이 느껴졌다. 일단 ‘싸구려 커피’가 날린 신선한 펀치 뒤에 이어진 수록곡들 모두가 그 자리에서 한 호흡으로 빠져들게 했다. 직업 상, 새로운 음반을 접하면 숙제하듯 요리조리 분석하고 해부하는 작업이 우선이건만, 이 음반은 물 흐르듯 한 번에 들어(?)버리게 되었다.

마치 장기하의 최근 에세이집 [상관없지 않은가?]에서 보여주듯, 작고 시시한 사물일지라도 그의 깊고 집요한 사색의 흐름을 타고 흡인력을 놓치지 않는 것처럼, 이 노래 역시 ‘좋았던 그 사람의 사진 한 장 손에 쥐고 마냥 걷는’단다. 연주는 더 압권이다. 무반주로 시작되는 노랫말에 귀를 세우다보면 비로소 시작되는 1분 30여초 동안의 장중한 간주와 후주는 무방비로 황홀경에 빠져들게 한다.

1980년대 일본의 Electronic Pop을 대표하는 밴드 [Yellow Music Orchestra]와 이기팝, 우리의 십센치와 이날치로 이어지는 실험적이고 고집스런 음악들이 주는 매력을 장기하는 이 한 장의 앨범에 넘치도록 싣고 있다.

The Animals ‘House of The Rising Sun’
-내가 초등학생 때 서울로 유학 간 오빠는 알토란같은 수업료를 빼돌려 밴드를 결성하고 음악활동을 하다 결국 부모에게 들켜 고향으로 강제 소환된 무렵, 우리 자매들을 앉혀놓고 기타반주에 불러주던 곡이자 내가 최초로 접한 팝송이다. 어린 마음에 제목자체에 희망을 걸었던 노래였건만, 실제 내용은 반전이다. 햇살이 가득한 따스하고 아늑한 가정이 아니라, 꿈을 가진 소년의 희망도 저버리게 만드는 회색빛 우울한 집… 그 집으로 돌아가는 남자의 쓸쓸한 회한이 묻어나는 노랫말을 알고 나니, 오르간 솔로보다 기타연주가 더욱 슬프고 아프게 느껴지는 명곡이다. 더욱이 지금은 가고 없는 오빠의 연주들이 이 노래부터 시작되어 지금도 긴 여운을 남기고 있기 때문도 하다.

-이 노래는 이후, 동네에 이따금씩 들어오던 천막극장의 개구멍을 넘나들며 영화에 빠지고, 박원웅과 황인용, 이종환, 김광한, 장유진, 김세원…으로 이어지는 음악프로그램들에 빠져 내가 라디오키즈로 성장한 자양분이 되 주기도 하였다.

송창식 ‘창밖에는 비오고요’
-오로지 운동장 조회를 피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들어간 고등학교 방송반. 뜨거운 햇살아래 교장선생님의 지루한 연설에 지쳐 한 두 명의 친구들이 픽픽 쓰러지던 시절, 마이크 점검을 끝내놓고 시원한 방송반에서 뒹굴거릴 때, 송창식의 이 앨범은 뭔지 모를 위안과 기쁨을 더해주었다. 더구나 세시봉의 뮤즈, 윤여정을 대상으로 만들었다는 심플한 노랫말의 이곡을 비롯해 비오는 날 들으면 더 깊은 울림으로 다가온 상아의 노래, 꽃보다 귀한 여인, 비의 나그네..등 연가 풍 곡들로 이어져 사춘기 감성을 마구 흔들어 댔다.

-불법이긴 했지만, 당시 나름 곱씹고 곱씹었던 곡들을 모아 읍내 레코드가게에 가서 나만의 컨필레이션 음반(조악스런 카세트 테잎이긴 했지만)을 만들 때 늘 빠지지 않던 애장곡이기도 하다.

한 대수 ‘물 좀 주소’
-방송반에 이어 그 혜택의 단맛을 잊지 못하고 들어간 대학 음악감상실 ‘미네징거’
그곳은 소위 음악 골통(^^)들의 집합소였다. 지금도 ‘명연주 명음반’ DJ로 활동 중인 정만섭을 비롯, 용산에서 알아주는 방송 장비의 대가인 선배와 종종 음악칼럼으로 세상에 이름을 알리는 음악매니아들이 학과 수업을 제치고 늘 감상실을 들락거리며 식구처럼 지냈던 시기였으니… 한 대수의 익살스런 표정의 앨범을 알게 된 것도 바로 그 시기. 미소년 같기만 하던 동기가 선배들과의 신고식자리에서 불러재낀 노래가 바로 이곡이었고 다들 이 느닷없는 반전에 뒤집어졌던 기억이 있다.

-이후 다큐프로그램 작가로 활동할 때, 이 노래는 새벽녘 원고 탈고 때마다 어김없이 틀어대던 내 애청곡(18번)이 되었다. 걸걸한 탁주 한 사발 같은 음색과 자유로운 영혼을 자켓 사진 한 장에 담아낸 한대수… 지난 해 미국으로 다시 떠나기 전, 김도향 선생과의 인연으로 마지막 출연을 평화방송에 허락해준 고마움 때문일까? 70나이에도 꽃무늬 셔츠와 장발이 잘 어울리는 아름다움 때문일까? 제아무리 야속한 시간이라도 이 20대 청년의 음악적 패기를 영원히 앗아가지는 못할 것 같다.

-추신: 전주 없이 영혼을 흔들어대는 네 음절 ‘물 좀 주소~’ 는, 우리 가요 사에 남을 가장 강력한 첫 소절이 아닐까 싶다.^^

한영애 ‘루씰’
-93년의 여름. 한영애의 ‘아.우.성 콘서트’를 보러 간 당시 나는 만삭이었다. 세상 밖으로 나오겠다며 발버둥치는 태아에게 ‘엄마가 이 공연 놓치면 널 미워하게 될지도 몰라. 그러니 아가야, 나오고 싶어도 조금만 참아주라.’ 겨우 달래며 달려간 여의도 63빌딩 공연장은 한여름의 습기와 열기로 가득 찼고, 간신히 구석진 입석을 차지 한 채 곡마다 열광하는 나를 결국은 한영애도 알아봤다. 관객들이 일제히 나를 보고 미쳤다? 는 박수를 보냈지만 나의 쾌감은 그녀의 흐드러진 블루지 창법의 ‘루씰’로 절정을 이루었다. 전설의 블루스 뮤지션 B.B.King의 기타 애칭라고 하지만 내게 루씰은 그냥 한영애다.
‘루씰~ 알고 있나, 너의 노래는 영혼 속에 가리워진 빛을 찾게 하는 믿음…’

-몇 해 전, 임진각DMZ평화콘서트에서 다시 그녀를 만났고, 나의 루씰이 건재함도 보았고, 무엇보다 주변 소음을 무시하고 거침없이 앞으로 전진하는 코뿔소의 모습을 한 그녀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음에 행복했다.

장국영 ‘Boulevard of Broken Dream’
-‘가사는 입에서 입으로 떠도는 운명’이라고 했던가… 나의 입을 떠나 타인을 거쳐 다시 나에게로 회귀하는 노랫말들…장국영이 부르는 이 노래는 마치 본인의 생을 예고하듯 처절하고 음울하게 다가온다.

그를 만난 건 그가 죽기 전 내한 해 묵었던 강남의 한 고급호텔 스위트룸 접견실. 영화음악프로그램을 제작할 당시였는데, 매우 친절하고 열정적으로 인터뷰에 응해 주었던 모습이 아직도 선하다. 특히 그도 나도 함께 좋아한 배우, 게리 올드만에 대해 얘기할 때는 친구처럼 반가워하기도 했다. 마치 배틀하듯 게리 올드만의 명장면들을 주고받을 때는 손뼉을 치며 즐거워하기도 했다. 그런 그가 사라졌다. 남은 건 노래 제목처럼 ‘슬픔의 거리 꿈이 깨진 거리를 홀로 걸으며 지독한 외로움을 토해 낸’ 그의 절규뿐이다.

-늘어지듯 흐느적거리는 섹소폰 전주에 이은 장국영의 블루지한 굵은 음색은 마치, 시리디 시린 새벽을 연상시킨다. 오랜만에 유튜브에 올려 진 이 곡을 다시 찾아 들었다. B.G 영상은 양조위와 열연한 [해피투게더]를 올려놓았는데, 극 중 오열하는 장국영의 모습이 왜 그토록 아프게 다가오는지….

Sting ‘I love her, but She loves someone else’
-음악프로그램 PD로 30년을 살았다. 중간 중간 교양과 선교, 다큐물을 넘나들었지만, FM은 결국 음악을 빼고는 그 어떤 프로그램도 제작할 수없는 매체다. 머리가 제일 맑아지는 순간도 음악을 모니터링 할 때고, 당연 나의 보물 제1호 역시 열권에 달하는 음악노트들이다. 컴퓨터로 작성할 수도 있겠지만 마치 누군가의 글을 받아쓰는 것 같아, 번거로움을 무릅쓰고 직접 기록하는 아날로그방식을 고집해왔다. Sting은 이 노트들에서 가장 많이 기록된 아티스트다. 장르는 물론, 기록하지 않으면 안 될 달란트를 가장 많이 보유한 예술가이자 철학자라고 할까?

언뜻 그는 연애지상주의자 연 가사를 쓴다. ‘바람 든 무’ 같은 호소력 짙은 음색도 낭만을 덧칠한다. 하지만 그는 힘들고 난해한 가사를 쓰는 뮤지션 중의 한 사람이다. 전통적인 가톨릭 가정교육의 영향도 있겠지만, 자기 주도적 멘탈이 매우 강한 뮤지션이기도 하다. 이 노래 역시, 모호한 삼각관계를 연상시키는 제목이지만, 어머니와 그녀의 신앙, 신과의 관계를 풀어내고 있다. 멜로디는 매우 서정적이고, 가사를 무시하고 들으면 위험한 사랑에 빠져버릴 수 있는 곡이기도 하다. 그러나 스팅은 속삭인다. ‘난 수도자 영성을 존중하는 아티스트…’ 라고.

-2005년. 올림픽 경기장에서 Sting 공연을 보았다. 잔디밭이었지만, 직접 공연 장비를 챙겨 온 스팅의 고집스러운 열정이 주변의 소음을 모두 잠식해 버렸다.

신해철 ‘아버지와 나 Part Ⅰ’
-음악을 좋아하면 당연 오디오에도 집중하게 되지만, 음반 녹음을 담당한 엔지니어를 보고 구입 결정을 하는 친구도 있다. 그의 방은 오디오장비로 도배됐음은 물론이다. 쫌 유난 아닌가? 하는 물음에 그 친구 왈,
‘마리아 칼라스가 언제 내 앞에서 이렇게 나만을 위한 공연을 해 주겠나?’ 깨갱… 거친 호흡하나 놓치고 싶지 않은 간절함을 이해하게 되었고, 신해철의 이 곡을 들으며 나 또한 그 거칠고도 살아있는 호흡을 체감 했다. 담배에 불을 붙이고 훅~~ 연기를 내뿜더니, 그가 내 앞에 앉아 세상에서 가장 힘든 고백을 읊조리기 시작하는 것이다.

‘저기 걸어가는 사람을 보라. 나의 아버지 혹은 당신의 아버지인가.
가족에게 소외 받고 돈 벌어 오는 자의 비애와 거대한 짐승의 시체처럼
껍질만 남은 권위의 이름을 짊어지고 비틀거린다…’

-나의 아버지도 가고 없다. 아버지와 오빠는 살아생전 몇 마디쯤으로 서로의 마음을 나눴을까? 그럼에도 아버지는 마지막 숨을 버티다 오빠가 달려와 눈빛을 마주했을 때 비로소 눈을 감았다. 신해철의 고백이 가슴을 후벼낸 ‘아버지와 나 Part 1′ 과, 아기울음소리로 시작과 끝을 엮은 Part 2. 그리고 ‘이제는 또 다른 그가 되어주고 싶다…’고 진정 화해와 사랑을 고백하는 Part 3까지… 유려한 문장과 진중한 반성, 굵직한 철학을 버무린 한 편의 완벽한 서사다.

피오나 애플 ‘I love you to love me’
-이 곡은 아무 전제 없이 그냥 한 번 들어보시라. 그러면 그녀에게 쏟아지는 찬사들에 고개를 절로 끄덕이게 될 것이다. 가능하면 그녀의 4집 앨범 중, ‘Every Single Night’까지 듣고 나면 그 폭넓은 음악적 스펙트럼이 경이로워질 것이다.

-누구와도 비교 불가능한 압도적 개성을 분출해내는 괴팍한 천사.
강렬하고 급진적인 고요의 독백!
당신이 상상할 수 있는 최고.
그녀의 컴백에 전율이 흐른다, 여전히 강렬하다.
목소리 음역은 콘트랄토이며, 음악적 스타일은 재즈, 얼터너티브 록, 바로크 팝의 요소를 가지고 있다….

조용필 ‘창밖의 여자’
-마지막 한곡을 놓고 고심에 고심을 거듭했다. 음악사에 남을 명곡, 가수 중에 가수, 이미 전설이 된 아티스트… 이렇게 써 놓고 보니 명명되는 인물이 선명해졌다.

-고등학교 2학년, 한창 지적 사치에 탐닉하던 여고생에게 나비넥타이를 하고 헤어스타일은 빵~한 청년. 게다가 발라드인지 트로트인지 알 수 없는 장르들이 뒤섞인 음반이 한눈에 들어 올 리 만무였는데, 그야말로 조용필은 음악으로 세상 모든 선입견들을 멋지게 파괴시켜버렸고 ‘위대한 탄생’을 알렸다.

-수많은 수식어와 수많은 사람들의 경탄을 집약해준 두 사람의 글을 인용하며, 조용필에 대한 나의 사랑, 영웅에 대한 나의 경애심을 갈무리하고자 한다.

‘조용필은 대중성을 비켜가지 않으면서도 음악적 혁신을 게을리 한 적이 없다.
훗날 대중음악 역사는 그를 위해 별도의 장을 준비해야 할 것이다.’

(이 주엽 지음. [이 한 줄의 가사] 중)

‘우리나라 가수 중 노래를 가장 잘 부르는 가수 한 명만을 꼽는다면,
단연 조용필이다’

(가수 송창식)

*김은수 PD
-1990년 가톨릭평화방송(CPBC) 입사
-‘신부님 신부님 우리 신부님’ ‘PBC 영화음악’등 다수 음악프로그램 제작
-영화중심 음악프로그램 ‘새날이 오는 길목에서’ 제작, 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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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10곡 특집 Feature

라디오 PD들의 ‘내 인생의 음악 10곡’ – #13 김혜선 PD

내년 개설 20주년을 앞두고 이즘은 특집 기획의 일환으로 라디오 방송 프로듀서 20인의 ‘내 인생의 음악 10곡’ 편을 연재 중입니다. 라디오는 음악과 동의어라는 편집진의 판단에 따라 기획한 시리즈로 모처럼 방송 프로듀서들이 전해주는 신선한 미학적 시선에 독자 분들이 좋은 반응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각 방송사의 라디오국에서 음악 프로를 관장하며 15년 이상의 이력을 가진 20인 PD의 ‘인생 곡 톱10’입니다. 열세 번째 순서는 KBS 라디오 김혜선 프로듀서입니다.

내게 음악이란.. 언제부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며 존재했던 것일까.. 어렸을 적부터 라디오에 귀 기울였고, 새로운 음악들을 흡수했고, 음악피디를 꿈꿨고, 어느새 내 삶에 깊숙이 스며들어 그야말로 공기처럼 지금껏 늘 곁에 있다.

지금은 그것이 소위 빽판(해적판)이라는 것을 알지만 어린 내겐 그저 대학생 언니오빠가 남겨준 수많은 LP 판들이 밤의 친구이며 내 정서적 자양분이 됐음을, 그리고 현재의 나를 김혜선 피디로 만들어준 것임에 틀림없다.

클라우디아 아라우(Claudio Arrau) 쇼팽의 ‘Impromptu & ballade’(즉흥곡과 발라드)
클래식 음악과의 만남은 아무래도 나의 언니를 빼놓을 수 없겠다. 내겐 위로 언니 둘이 있는데, 큰언니는 유난히 흰 얼굴에 긴 손가락, 소설속의 여주인공 같은 이미지를 갖고 있어 그런지 유난히 남자들의 인기가 많았다. 당연히 언니가 클래식을 좋아하리라 생각했는지 수많은 청년들이 LP를 선물했다. 그것도 나는 처음 보는 수입 명반을. 하지만 저녁잠이 많은 언니보다는 늦은 밤 문학소녀가 되곤 하는 내가 그 수혜자가 되었다고 보면 되겠다. 언니오빠의 소위 해적판만 보던 내게, 꼭꼭 씌워진 비닐을 뜯고 빨간색 로고가 선명한 필립스(Phillips) 레이블을 마주하던 설렘.

칠레 출신의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클라우디오 아라우의 쇼팽의 < 즉흥곡 & 발라드 > 음반은 내게 아름다운 클래식의 바다로 첫 발을 내딛게 해준 음반이 되었다. A면과 B면을 수도 없이 반복해 들으면서 모두 잠든 밤 헤르만 헤세와 세계의 명시를 읽으며.

## 나의 20대~50대를 관통한 방송들
꿈에 그리던 방송국에 입사했다. 그리고 라디오 음악피디가 되었다. 처음 레코드실에 들어갔을 때 그 많은 음반들이 숨 쉬고 있는데 가슴이 막 뛰었다. 이렇게 수많은 음반이 숨 쉬고 있다니! 무엇부터 들어봐야 할까?! ‘경외’로웠다. 하지만 나는 금세 두려워지면서 한없이 작아졌다.

내가 요만큼 좋아한다는 애호가 수준으로 감히 방송할 수 있을까…그때부터 큐시트 쓰는 시간과 방송시간을 제외한 모든 시간을 모니터에 바쳤다. 매일매일 쏟아지는 음악의 신세계는 끝이 없었다.

빌 더글러스(Bill Douglas) ‘Hymn’ (현재 < 당신의 밤과 음악 > 시그널)
1993년 클래식 FM에서 <당신의 밤과 음악>을 맡게 되었다. 그 당시 라디오 황금기는 밤10시. 젊은 사람 대상의 클래식프로그램이 필요했다. 프로그램도 변화해야했다. 엄숙하기보다는 친근해져야했다. 그래서 시그널부터 새롭게 변화에 앞장서야 했고, 대문을 바꿔다는 마음으로 수없이 들었던 100여곡의 후보 중에서 시그널로 발탁된 곡이다.

캐나다 출신의 빌 더글라스는 작곡가이면서 목관악기인 바순 연주자다. 바순의 음색을 듣다보면 힘든 일도 마음도 어느새 내려놓고 싶어지고 마음이 편안해진다. 그는 동양의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이 음악이 밤에 이렇게 사랑받는 곡일 줄 알고 있을까?.. 이 시그널은 27년째 93.1Mhz 에서 매일 밤 10시에 울려 퍼진다.

앙드레 가뇽(Andre Gagnon)  < Monologue >
< 당신의 밤과 음악 > 을 하면서 모니터하다가 알게  작곡가이다. 그야말로 힐링 음악. 눈을 감고 듣고 있노라면 마음이 청량해지는. 그런데 도저히 정체를 알 수 없는 작곡가이다. 온통 일본말로 음반이 써져있어서(영어 한 글자 없어서 연주자를 읽기조차 불가능했다) 국제방송의 동기한테 그 음반을 들고 찾아갔다. 그리곤 그가 캐나다 퀘벡 출신의 작곡가 겸 피아니스트라는 사실을 알게 됐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나의 ‘최애’ 뮤지션이다.

그의 음악을 방송한지 10여년이 지나서야 우리나라에서 < Monologue >(1997년 라이선스 발매)라는 타이틀로 소니(Sony)에서 첫 음반을 내게 되었을 때, 소니 담당자는 내게 자문을 구했었다. ‘김피디님이 가뇽을 우리나라에 알리셨는데, 이 음반 라이센스하면 잘 될까요?’ 물론 될 거라 했고, 음반은 대박이 났다. 그 후 앙드레 가뇽의 내한공연까지 성사되었고, 공연을 앞두고 그는 내가 당시 맡고 있던 < FM 가정음악 >에 출연했다. 그리고 소니 담당자는 앙드레 가뇽한테 “이 분이 한국에 당신을 알리신 피디입니다!” 그와 그렇게 인사를 나누었던 기억.

< FM 가정음악의 4계 > 가을, 겨울, 봄, 여름 (1998-1999)
아침 9시대 < FM 가정음악 >을 하면서 1년 동안 4장의 음반을 발매했다. 1년 반을 꼬박 음반에 매달려 있었다. 그동안 컴필레이션(합집)음반은 바이올린 컬렉션, 아침에 또는 밤에 듣는 음악, 머리가 좋아지는 음악 등등 대부분 음반기획자의 의도대로 대부분 편집되어 있었다.

나는 처음부터 방송 컨셉대로 음반을 기획하지 않는다면 기존의 컴필음반과는 차별화되지 않는다고 생각했고, 음반 한 장이 두 시간의 프로그램처럼, 오프닝부터 엔딩 곡까지 들으면 하루분의 방송을 들은 것처럼 만들어야 한다고 굳게 믿었고 그 기획의도에 충실했다.

그래서  오로지 방송을 통해서만  들을 수 있었던 곡(시중에선 구하기 어려운)들이 대거 포함됐음은 물론이다. 클래식에 관심 있는 초심자들이라면 이 음반들로 시작해도 좋을 것이다. 굳이 한 곡만 뽑으라면 < 가을 >편의 첫 곡인 소프라노 이네사 갈란테(Inessa Galante)의 ‘Ave Maria’가 될 것이다. 당시 방송 나가면 문의가 쇄도했다.

## <세상의 모든 음악>과 월드 뮤직 속으로.

내 방송인생은 < 세상의 모든 음악 >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35년 방송인생의 딱 절반되는 시점인 2002년 4월1일에 첫 방을 했다. 이미 포맷이 짜 있는 프로그램에서 코너를 바꾸고 패널을 바꾸고 하던 것과, 판을 새로 짜는 것은 너무 달랐다. 정말 제로에서 시작했다. 막막했다.

언젠가 준비가 된다면 프로그램으로 만들어봐야겠다 혼자 생각은 했었지만,  사내 프로그램 제안공모(무조건 피디 1인당 하나씩 내는 숙제! – 그저 난 숙제를 했을 뿐인데)를 통해 < 세상의 모든 음악 >이 갑자기 정규방송으로 편성되면서 제안공모자인 내가 갑자기 피디로 떠밀려 들어가게 됐다. 처음엔 밤 12시 1시간 프로라더니 갑자가 노출이 많은 퇴근시간 저녁 6시에 두 시간으로 편성이 바뀌면서 그야말로 멘붕이었다. 잠도 오지 않았다.

내가 아는 월드뮤직에 대한 자료와 레퍼토리는 아직은 그야말로 애호가 수준인데.. 이 밑천으로 어찌 저 넓고 깊은 바다로 뛰어들까나.. 해외방송 모니터하랴.. 시그널 찾으랴.. 새 코너 만들랴. 작가 찾으랴.. 모든 게 엉망이었다.

아직 누구도 밟지 않은 길을 내면서 가는 내게 ‘잘하고 있다! 잘 가고 있다!’고 자기 암시를 하면서 어둠 속을 한발씩 조심스럽게 내딛었다. < 세상의 모든 음악 >이라는 프로그램 타이틀만 덩그마니 있는 상태에서 방향을 잡는 것, 코너를 만드는 것, 코드음악을 찾는 것, 모든 게 새로웠지만, 역시 시그널(이 프로그램의 상징성)과 첫 곡(앞으로 이 프로그램은 이렇게 가겠다)이 제일 중요했다. 수차례 고심한 끝에 첫 방송 첫 곡은 바로 이 곡 이었다.

안네 소피 폰 오터와 엘비스 코스텔로(Anne Sofie von Otter & Elvis Costello)  ‘Broken bicycle/ Junk’
영화 < 노팅힐 >에서 ‘She’로 잘 알려진 엘비스 코스텔로가 스웨덴 출신의 메조 소프라노 안네 소피 폰 오터 (Anne Sofie von Otter)와 3년여 작업 끝에 만들어 진 2001년 앨범 < For The Stars >의 수록곡이다. 앨범 수록 곡 모든 곡이 다 좋지만, 클래식의 품격을 유지하면서 결코 문턱이 높지 않은 친근한 음악, 그 곡이 바로 < 세상의 모든 음악 > 첫 날 첫 곡이었다. 올해 만 18년을 넘긴 < 세음 >의 매해 생일엔 꼭 이 곡을 방송한다.

오이겐 키케로 트리오(Eugen Cicero Trio) 바흐 < 마태 수난곡 > 중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Erbarme dich, mein gott‘ (Rokoko Jazz,1965)
요한 세바스찬 바흐(1685-1750)는 평생 독일을 떠나 본 적이 없었다. 그의 이름은 그대로 직역하면 ‘작은 시내’라는 뜻. 그러나 그는 이제 시대를 뛰어넘어 전 세계 어디에서든 가장 많이 연주되는 작곡가로 기억된다. 그야말로 그는 ‘음악의 큰 바다’를 이룬 작곡가이다.

신앙심이 깊은 바흐는 많은 종교음악을 작곡했는데 1729년 4월 성금요일을  앞두고 그리스도의 수난을 다룬 < 마태수난곡 >이 초연되었다. 하지만 이 곡은 바흐 서거 이후 단 한 번도 연주되지 않고 잊혀졌다. 그 후 100년 동안 도서관에서 잠자고 있던 이 곡은 1829년 20살 청년 멘델스존에 의해서 라이프치히 무대에 다시 올랐고 지금은 전 세계 어디서든 공연되는 오라토리오가 됐다.

원래 이 곡은 알토의 아리아인데 루마니아 출신 피아니스트 오이겐 키케로는 얼마나 피아노로 아름답게 연주하는지 눈물이 뚝. 18세기 바흐의 작품이, 19세기 멘델스존으로, 다시 현대의 재즈로 이어져 있다니 클래식은 영원한 클래식이다. 얼마나 경이로운가.

에바 캐시디 (Eva Cassidy) ‘Imaigine’
지금 이 계절에 바로 들어야 할 곡이다. 늘 새로운 음악을 찾는 내게 지인이 앨범을 하나 건네주었다. 듣는 순간 가슴을 울리는 이 소울풀한 가수는 누구인가? 자료를 찾고 모니터해서 바로 < 세상의 모든 음악 >에 올렸다. 33해의 짧은 생을 살고 마감한 그녀는 끝내 생전엔 앨범이 빛을 보지 못하고, 낮엔 일하고 밤엔 재즈 바에서 통기타를 치며 노래하곤 했는데, 그녀 사후 2년 뒤인 1998년 발매된 앨범이 미국이 아닌 영국차트에 먼저 오르면서 역으로 모국인 미국으로, 전 세계로 알려지게 된 가수다. (영화 < 러브 액츄얼리 >에도 그녀의 곡이 나온다. Songbird)

< 세음 > 10주년 기념앨범 7집에 에바 캐시디의 ‘What a wonderful world’,

15주년 기념앨범 9집에 ‘Imagine’이 실려 있다. 피디의 애정이 물씬 풍기는 가수.

루치아노 파바로티 ‘Holy mother’(with Eric Clapton)
아마 클래식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루치아노 파바로티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태리의 태양처럼 쭉쭉 뻗은 고음. 우렁찬 소리. 그가 부르는 베르디의 ‘축배의 노래’나 ‘바다로 가자~’ 이런 칸초네를 듣고 있노라면 정말 ‘세기의 테너’라는 수식어에 모두 공감할 것이다.

그는 특별히 클래식 외에도 < Pavarotti & Friends >라는 기획으로 자선 공연을 펼치곤 했는데, 그 공연들과 스튜디오 녹음을 모아서 파바로티 타계 1주년에 음반으로 발매되었다. 에릭 클립튼, 스팅, 셀린 디온, 머라이어 캐리, 본 조비 등 수많은 팝스타들과의 듀엣 노래가 담겨있다.

크리스 보티(Chris Botti)  < Chris Botti in Boston >
트럼펫하면 단정한 이미지보다는 많은 사람들이 좀 끈적끈적한 느낌의 흑인연주자를 많이 떠올린다. 루이 암스트롱 같은. 하지만 그런 이미지와 다르게 이지적이고 쿨한 느낌으로 트럼펫의 음색을 아름답고 아련하게 느끼게 해준 트럼페터다. ‘Steps of positano’, ‘A thousand kisses deep’을 비롯한 아름다운 곡들을 연주하는 크리스 보티가 2008년 9월18일과 9월19일 클래식 연주홀인 보스톤 심포니 홀에서 보스톤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공연을 가졌다.

그의 친구이자 오랜 시간 함께 작업해온 스팅, 첼리스트 요요마, 조쉬 그로반 등 그야말로 최고의 연주자들이 보티와 함께 공연했다. 지금도 그 공연영상을 자주 본다. 최고들의 콜라보는 저렇게 멋지구나! 하면서.  재즈와 클래식, 다른 많은 장르를 넘나들며 트럼펫의 매력을 들려주는 현재진행형의 트럼페터 크리스 보티. 2011년 11월 세종문화회관에서의 공연도 잊을 수 없다.

메르세데스 소사 ‘Gracias a la Vida’
세상의 모든 음악을 하면서 많이 듣고, 많이 공부하고, 새로운 곡을 알게 되면  청취자와 함께 공유하면서 나도 성장했다. 언제나 깊은 울림을 주는 아르헨티나의 거장 메르세데스 소사를 기억하지 않을 수 없다. ‘대륙의 목소리’, ‘아르헨티나의 영혼’, ‘파차마마’… 다 소사를 표현하는 단어들이다. 군부 폭압 속에 1979년 추방되었다가 1982년 생명을 무릅쓰고 아르헨티나로 돌아와 Teatro Ópera에서 2월 18일부터  28일 동안 이어진 공연 기록의 하이라이트 음반 < Mercedes Sosa En Argentina >(1982)의 라이브 버전을 추천한다. 언제 들어도 마음을 어루만지는 영혼의 목소리.

오늘 하루도 삶에 감사하며.

‘Gracias a la vida’
Gracias a la vida, que me ha dado tanto    
Me dio dos luceros, que cuando los abro     
Perfecto distingo lo negro del blanco
Y en el alto cielo su fondo estrellado

Y en las multitudes el hombre que yo amo.

‘삶이여, 고마워요’
내게 그토록 많은 것을 준 삶에 감사 합니다/
삶은 눈을 뜨면 흑과 백을 완벽하게 구별할 수 있는
두 샛별을 내게 주었습니다.
그리고 높은 하늘에는 빛나는 별을
많은 사람들 중에는 내 사랑하는 이를 주었습니다.

* 김혜선 PD(hyeseon@kbs.co.kr)
1985년 4월 KBS 라디오 PD로 입사했다. 93.1 Mhz Classic FM에서 < FM 가정음악 >, < 당신의 밤과 음악 >, < 노래의 날개 위에 >, < 저녁의 클래식 >, < 음악풍경 >, < 한낮의 음악실 >, < 멜로디를 따라서 > 등을 연출했고, 2002년 < 세상의 모든 음악 >을 론칭해 연출해왔다. 그 후 < 세음 >과 만나고 헤어지기를 4번 반복, 그 사이 세음과의 인연은 10여년 이어졌다. < 세상의 모든 음악 > CD 1,3,4,7,9집을 발매했고, 그동안 방송하면서 20여 년 동안 세상에 내놓은 CD들 < FM 가정음악의 4계-가을, 겨울, 봄, 여름 >, < 재즈수첩 >, < 당신의 밤과 음악 >들을 또 다른 자식처럼 여긴다. 여전히 음악을 모니터할 때 가장 행복함을 느끼며, 매일 설레는 마음으로 청취자들을 만나고 있다. 현재는 KBS 클래식 FM의 < 김미숙의 가정음악 >(09:00~11:00 월-금) 연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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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10곡 특집 Feature

라디오 PD들의 ‘내 인생의 음악 10곡’ – #12 한재희 PD

내년 개설 20주년을 앞두고 이즘은 특집 기획의 일환으로 라디오 방송 프로듀서 20인의 ‘내 인생의 음악 10곡’ 편을 연재 중입니다. 라디오는 음악과 동의어라는 편집진의 판단에 따라 기획한 시리즈로 모처럼 방송 프로듀서들이 전해주는 신선한 미학적 시선에 독자 분들이 좋은 반응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각 방송사의 라디오국에서 음악 프로를 관장하며 15년 이상의 이력을 가진 20인 PD의 ‘인생 곡 톱10’입니다. 열두 번째 순서는 MBC 라디오 한재희 프로듀서입니다.

여기 있는 노래들은 가장 좋아하는 노래 10곡은 아니다. 좋아했던 곡들을 스무곡 남짓 추려내고 난 다음부터는 더 이상 순위를 매기는 게 불가능해졌다. 기억을 더듬어 보다가 내가 생각한 단어는 ‘인연’이었다. 음악과 내가 만난 인연. 그때의 나와 그때의 음악이 만나서 내 안에 뭔가 벌어진 이야기. 이런 얘기를 하다보면 어설픈 감상문을 쓰지 않아도 되고 라디오 사연같은 느낌도 날 것 같았다. 음악사이트 피치포크(pitchfolk)에 ‘The music that made her/him’이라는 제목의 시리즈가 있다. 뮤지션들이 자신이 좋아하는 인생음악에 대해 이야기하는 아티클이다. 음악이 누군가를 ‘만들’ 수 있을까? 음악하는 사람도 아니고 이렇다 할 음악방송 PD도 아니지만, 이렇게 돌이켜보니 그런 것도 같다.

프린스(Prince) ‘Little red corvette’
프린스는 나의 첫번째 스타이다. 열두 살 때 AFKN의 쇼 프로그램 < 솔리드 골드 >에서 그를 처음 보았다. TV채널을 2번에 맞추면 미군 방송이 희미하게 수신되던 시절이었다. 바닥에 연기가 퍼지면서 등장했다는 것, 희번덕거리는 눈빛이 강했다는 인상이 지금도 남아 있다. 가장 뚜렷이 기억나는 건 객석의 비명소리이다. 그의 몸짓이 바뀔 때마다 숨넘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Little red corvette’이라는 곡명은 알아보지 못하고 프린스라는 이름만 기억해 두었다. 하지만 아무리 채널을 돌려도 라디오에서는 그의 노래를 들을 수가 없었다. 이듬해 < Purple Rain >이 나왔고 그는 미국에서 슈퍼스타가 되었으며 나는 그의 평생 팬이 되었다. 노래마다 괴성을 지르고 외설적인 이미지에 금지곡도 많은 흑인가수의 팬은 자랑질도 쉽지 않았다. 평소 가장 보고 싶은 공연이 프린스였지만 한국에는 한 번도 오지 못했다. 그리고 이제 그는 세상에 없다.

들국화 ‘그것만이 내 세상’
‘들국화’라는 이름을 알게 된 건 음악이 아니라 활자가 먼저였다. < 음악세계 > 잡지에 평론가 이백천씨가 쓴 리뷰가 멋있었다. “이 정도면 굳이 외국 음악을 들을 이유가 없다”는 문장을 읽고 동네 음악사로 갔다. 태어나서 처음 산 가요 테이프가 들국화 1집이었다. 전인권의 목소리가 에어로스미스 같았고 기타 솔로도 길고 화음도 멋있고, 여하튼 뭔가 다르다고 느꼈다. 매일 테이프를 듣고 라디오 채널을 돌려가며 혹시 들국화 안 나올까 마음 졸이기도 했다. 내가 본 첫번째 콘서트도 들국화였다. 잠실실내체육관이었는데 하얀 셔츠와 청바지를 입은 깡마른 전인권 아저씨가 목을 길게 빼고 노래를 하면 온 공연장이 쩌렁쩌렁 울렸다. 젊은 전인권의 라이브를 눈 앞에서 볼 수 있었던 건 정말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그것만이 내 세상’을 들으면서, 열네 살 나이에도 ‘나의 노래’라는 느낌을 받았다. 나 대신 노래해주고 나 대신 소리질러주는 것 같았다. 주변 친구들 중에도 들국화 팬은 제법 있었다. 이렇게 처연한 노래를, 그 시대의 소년들은 왜 좋아했을까.

메탈리카(Metallica) ‘Fade to black’
메탈리카와의 인연에는 온갖 불법(?)적인 것들이 연루되어 있다. 일단 집에 전축이 있는 친구를 꼬셔 방배동 음반가게에 데려가 1,2집 불법복제판(빽판)을 산 다음 테이프에 녹음해 달라고 했다. (돈은 그 친구가 냈다.) 이선희를 좋아하던 친구는 ‘무서워서 못 듣겠다’고 투덜댔다. 다음에는 반포 어딘가로 가서 ‘Cliff’em all’ 비디오를 불법 복사해 돌려보았다. (메탈리카의 초기 라이브 영상을 모아 놓은 비디오인데 객석에서 홈카메라로 불법 촬영한 클립들이 가득하다.) 주말이면 친구들과 대학로 MTV라는 어두컴컴한 곳에 가서 헤비메탈 비디오를 두 세 시간씩 봤다. 흑맥주를 먹거나 담배를 피우는 녀석들 사이에서 난 콜라만 홀짝거렸다.

‘Fade to black’은 이 모든 불량 행위가 시작되기 전 심야 라디오에서 처음 접한 곡이다. 그래미상에 호출되기 전까지 메탈리카는 미국에서나 우리나라에서나 컬트였다. 세월이 흐르면서 헤비메탈의 과잉이 지겨워 졌지만 젊은 날의 메탈리카는 지금 봐도 쌈박하다.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feat. 이언 앤더슨) ‘Elegy’
10대 시절 거의 모든 음악은 라디오에서 만났다. 열여덟 열아홉 우울한 시절엔 새벽 1시만 기다리며 하루를 버티다시피 했다. 전영혁 아저씨, 가끔은 정혜정 아나운서의 프로그램까지 듣고 나면 순하게 잠을 잘 수 있었다. Elegy는 < 25시의 데이트 > (나중에 < 전영혁의 음악세계 >로 타이틀이 바뀌었다) 엔딩 타이틀곡이었다. 전영혁 DJ는 이 곡을 깔고 “칼국수처럼 풀어지는 어둠…”하면서 기형도의 시를 읽어주곤 했다. 정혜정 아나운서가 BGM으로 사용했던 리 오스카의 ‘My road’나 팻 메스니 ‘If I could’ 같은 곡들도, 생각하면 마음이 울렁거리는 음악들이다.

이 때 들었던 라디오의 의미는 내겐 정말로 각별하다. 방송이 청취자의 마음에 얼마나 깊이 들어왔는가, 이런 건 수치로 집계되지 않는다. 지금도 청취율 제로의 심야방송을 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누군가는 당신의 목소리를 그리워하게 될 거라고, 꼭 말해주고 싶다.

비틀스 ‘Happiness is a warm gun’
일요일이면 국기원 옆 시립도서관에 가방을 던져 놓고 무작정 돌아다니곤 했다. 강남역 근처 레코드점에서 핑크 플로이드의 < The Wall >과 비틀스의 < White Album >이 나란히 걸려있는 걸 발견했다. 하얀 색, 수입원반에 더블음반. 참 예뻤고 참 비쌌다. 성냥팔이 소녀처럼 바라만 보다가 발길을 돌렸다. 

대학생이 되고 나서 비틀스 라이선스 LP를 모으기 시작했는데, 정식 라이선스를 가진 계몽사는 음반 표지에 줄무늬를 덧칠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다른 건 몰라도 화이트 앨범만은 그 조악한 무늬를 참을 수 없어 CD로 구했다.

화이트 앨범은 아마 내가 살아오면서 가장 많이 들은 음반 중 하나일 것이다. 비틀스의 여러 가지 모습들이 다채롭게 담겨 있어서 30곡을 다 들어도 전혀 지루하지가 않았다. 좋아하는 곡이 많지만 첫 인상이 워낙 강했던 ‘Happiness is a warm gun’을 리스트에 올렸다. 라디오에서 처음 듣고는 잠시 멍해졌던 기억이 있다. 농담 같기도 하고 진지한 것도 같고, 수수께끼 같은 곡이다.

닉 드레이크(Nick Drake) ‘Time has told me’
군대 전역 후 취직을 하기까지 몇 년간은 고3때보다도 막막한 시기였다. 음악 한 곡, 영화 한 편, 아니면 책 한 쪽이라도, 무언가를 붙잡고 있지 않으면 불안했다. 마음이 고달플 때면 신촌이나 홍대 근처를 돌아 다녔다. 레코드숍에 들어가 한참을 구경하다 딱 한 장만 고르고는 서점에서 책 한 권 사 들고 버스 맨 뒷자리에 앉아 음반 속지를 꺼내 읽자면 세상 부러울 것 없이 행복했다.

닉 드레이크는 신촌 향음악사에서 구입했던 기억이 난다. 그의 이미지는 내겐 초록색이다. 연녹색 플라스틱 CD케이스, 1집 자켓의 초록색 배경, 푸른 잔디가 덮여있는 묘지 사진 같은 것들. 이십대에는 1집을 좋아했고 나이가 들수록 3집에 마음이 간다. 

닉 드레이크의 목소리는 기분이 가라앉아 있을 때 들으면 더 좋다. 듣고 있다 보면 시선이 점점 마음 속으로 향한다. 이 곡을 고른 건 노랫말 때문이다. 좋아하는 구절이 많아서 한 동안 SNS 프로필에 올려 놓기도 했다. 스물한 살에 쓴 가사라는데, 나는 나이가 들수록 곱씹어 보게 된다.

‘time has told me, not to ask for more, for someday our ocean will find its shore’

장필순 ‘첫사랑’
5집 음반 이전까지는 장필순이라는 뮤지션에 대해 큰 관심이 없었다. 라디오에서 자주 들리던 ‘어느 새’도, 오장박의 노래도 그땐 심드렁했다. 이 음반도 홍보용 비매품으로 돌린 수많은 CD들 사이에 섞여 들어왔다. 모던 록에 관심이 많을 때라 처음엔 ‘스파이더 맨’ 같은 곡이 귀에 들어왔지만, 계속 반복해서 들은 노래는 1번 곡 ‘첫 사랑’이었다. 

무반주로 ‘아직 어두운 이른 아침…’ 노래가 시작되면, 마치 옆에서 누가 가만히 이야기를 건네 오는 것 같았다. 한 소절 한 소절 소리가 눈송이처럼 포개지면 마음은 점점 따뜻하게 풀려 나갔다. 옆에 누군가 앉아서 조용히 내 푸념이라도 들어준 기분이었다. 조동익과 장필순이 만드는 아련한 소리의 질감을 이때부터 정말 좋아하게 되었다.

20년 전 이 노래를 반복해서 듣던 때는 좋아하는 사람과 잘 안 되어서 마음이 많이 힘들 때였다. 지금은 5집에서 ‘풍선’을 더 즐겨 듣는다. ‘풍선’이 마음에 들어 온 데에는 또 지금 내 나름의 사정이 아마 작용했을 것이다.

언니네 이발관 ‘순수함이라곤 없는 정’
이소라 씨와 밤 프로그램을 할 때 코너지기로 이석원 씨를 섭외했다. 나는 2시간 메인 프로그램을 처음 맡은 초짜 PD였고 석원씨도 방송3사 고정출연이 처음이었다. 코너지기에게 선곡과 이야기 테마를 모두 맡겨버리는 컨셉이었는데, 미리 짜맞추는 구성이 음악 프로그램에 안 맞는다고 생각한 초짜 PD 나름의 패기였다. 

작가였던 이병률 시인의 아이디어로 ‘이발관 옆 음반가게’라는 코너명이 나왔고 2집의 ‘어떤 날’을 코드 음악으로 정했다. 이런 컨셉이 가능했던 이유는 뮤지션으로서 언니네이발관을 좋아했고 리스너로서 이석원 씨를 믿었기 때문이었다. 6개월 간 방송은 잘 됐지만 정작 나는 그와 별다른 친분을 맺지 못했고 언니네 이발관의 음악을 좋아한다는 표현도 잘 못했던 것 같다. 제일 좋아했던 노래가 2집의 이 곡인데, 당시 3집 활동 중이라 방송에서 자주 틀지도 못했다.

몇 해 전 마지막 음반을 들을 때는 마음이 좀 무거웠다. 노래를 만들어내는 고통이 음악 속에서 전달되는 것 같은 특이한 경험이었다. 이석원 씨는 글도 선곡도 좋고 라디오에 어울리는 사람인데 방송과 인연을 맺을 방법은 더 없을까 가끔 생각한다.

마그네틱 필즈(Magnetic Fields) ‘Papa was a rodeo’
2005년에 새벽 프로그램을 할 때 알게 된 노래이다. 같이 일했던 생선이라는 친구 덕에 미국 인디음악을 많이 들을 수 있었다. 프로그램이 없어진 후 생선은 갑자기 미국으로 떠나 66번국도(Route 66)를 횡단하더니 베스트셀러 여행작가가 되었다. < 69 Love Songs 라는, 69가지 사랑 노래를 담은 단편소설집 같은 음반에 수록된 곡이다. 길 위에서 눈을 뜨고 길 위에서 밤을 맞는 쓸쓸한 사람들의 사랑 이야기를 담고 있다.

‘아빠는 로데오 선수였고 엄마는 로큰롤밴드 멤버였어. 난 걸어다니기 전부터 기타를 쳤고 로프를 묶었대. 디젤차가 닿는 곳이면 어디든 우리 집이었고 사랑이란 건 트럭 노동자들의 손길에서 배웠지. 이제 아침이 밝으면 이곳을 떠나서 내년까지 돌아오지 않을거야. 그러니 나에게 키스하려는 그 입술은 그냥 맥주병에 꽂아 두는 게 낫겠어.’

라디오 PD에게 주어지는 선곡의 자유는 밖에서 짐작하는 것 보다 훨씬 인색하다. 새벽 3시. 청취율은 제로였지만 자유로웠고 마음이 젊었다. 이 노래는 시간을 그때로 돌려주는 신호 같은 곡이다. 그 시간들이 없었다면 지금까지 어떻게 버틸 수 있었을까 가끔 생각한다. 그러고 보면 나는 운이 좋은 PD이다.

베리얼(Burial) ‘Come down to us’
음원앱의 알고리즘이 아니었으면 이 음악은 만나지 못했을 지도 모른다. 알고리즘이 어떻게 내 취향을 잡아낸 건지 신기했다. 길이도 길고 상당히 특이해서 쉽게 누구에게 권할 만한 곡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곡을 마지막으로 고른 이유는 오로지 개인적인 경험 때문이다.

1년 전 여름 처음 이 음악을 들었다. 지직거리는 잡음으로 시작해서, 서늘한 바람소리, 불꽃타는 소리, 빗소리, 멀리 천둥소리, 알 수 없는 공간음, 노래라고 할 만한 무엇, 속삭임 같은 것들이 띄엄띄엄 전자음 위에 흘러 다녔다. excuse me, I’m lost… who are you… come down to us… 이따금씩 이런 말들이 들렸고, 나는 이곳이 아닌 다른 어떤 세계에 들어가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음악이 다 끝났을 때는 마음이 평온해져 있었다. 나보다 훨씬 아프고 힘겨운 사람들이 내 손을 따뜻하게 잡아 준 것 같은, 그런 느낌이었다. (실제 이 음악에는 소수자들을 격려하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

이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감상일 뿐이다. 들어보면 불편하거나 꺼림칙하다고 느끼는 분들도 아마 많을 것이다. 이 음악을 처음 들은 장소와 날짜와 시간대를 나는 기억한다. 괴로운 일이 생겨서 많이 힘들 때였기 때문이다. 만약 그때 내 마음이 밝고 가벼웠다면, 흐린 날 저녁이 아니라 햇빛 쏟아지는 대낮이었다면, 나 역시 이 음악에 관심이 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음악이라는 게 그런 것 같다. 똑같은 음악이라도 듣는 사람에 따라 다른 음악이 되고, 같은 사람에게도 언제 어떤 마음으로 듣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내가 여기 올린 음악들을 만난 것에 감사하듯, 누군가는 또 자신만의 음악들로 위안받고 행복했을 것이다. 그러니 좋은 음악 나쁜 음악 따지는 건 아무 의미가 없다.

* 한재희 PD
1997년 12월 MBC 라디오국 입사
< 음악도시 >, < 푸른 밤 >, < 굿모닝FM >, < 배철수의 음악캠프 >, < 여성시대 >등 연출.
현재 < 김종배의 시선집중 > 연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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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10곡 특집 Feature

라디오 PD들의 ‘내 인생의 음악 10곡’ – #11 김우석 PD

내년 개설 20주년을 앞두고 이즘은 특집 기획의 일환으로 라디오 방송 프로듀서 20인의 ‘내 인생의 음악 10곡’ 편을 연재 중입니다. 라디오는 음악과 동의어라는 편집진의 판단에 따라 기획한 시리즈로 모처럼 방송 프로듀서들이 전해주는 신선한 미학적 시선에 독자 분들이 좋은 반응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각 방송사의 라디오국에서 음악 프로를 관장하며 15년 이상의 이력을 가진 20인 PD의 ‘인생 곡 톱10’입니다. 열한 번째 순서는 KBS 라디오 김우석 프로듀서입니다.

KBS 라디오PD로 입사 이후 처음 단독으로 맡은 프로그램은 오전 11시부터 1시간 동안 방송되던 < 세계의 유행음악 >이었다. 주로 프랑스, 이탈리아를 비롯한 유럽의 대중음악을 중심으로 남미, 아프리카, 중국 등 아시아 음악까지, 영어로 부르지 않은 해외 음악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이었다. 과거의 명곡들보다는 당시 현지에서 인기 순위에 오르고 있던 음악들을 빠르게 입수하여 소개하곤 했는데, 유럽 음악계의 계보를 익히는 등 음악적 안목을 키울 수 있었던 좋은 기회였다. 게다가 이 프로그램을 통해서 평생의 배필을 만나 해로하고 있으니, 그야말로 ‘내 인생의 프로그램’이라고 할 만하다. 

그래서 내 인생 음악 10곡은 이 프로그램에서 집중적으로 소개했던 음악들로 채워보기로 했다. 선택의 기준은 당시 음악 경향을 보여줄 수 있는 대표성과 지금도 편안하게 감상할 수 있을 만한 대중성이다. 선곡을 하다 보니 마치 1시간 동안의 라디오 프로그램을 구성한 것처럼 되어 버렸다. 되도록 소개 글을 읽으신 후, 해당 곡을 들어보시고 다음 소개 글로 넘어가시기 바란다. 만일 시간 여유가 있으셔서 소개 글 속에 언급된 모든 곡들을 찾아 들어보시면 전체적 흐름 이해에 더욱 도움이 될 것이다.

오프닝 시그널 : New Trolls ‘Concerto Grosso (Anna Oxa – Live con I New Trolls)’(1990)

1989년, 아트록 그룹 뉴 트롤즈(New Trolls)는 이탈리아 가수 안나 옥사(Anna Oxa)와 라이브 공연을 하며 그녀의 히트 곡들을 멋지게 반주해줬다. 물론 그들 자신의 곡들도 연주했는데, 그 유명한 콘체르토 그로소(Concerto Grosso) 1번(per 1)과 2번(per 2)의 알레그로와 비바체 등 빠른 테마들만 4분 정도로 압축해서 메들리로 들려준다. 각각 다른 음반에 수록된 원곡들을 모두 감상하려면 많은 시간이 걸리지만, 이 라이브 버전은 이런 시간적 제약을 간단하게 극복해 준다. 진정한 팬서비스란 이런 거다.

프랑스와즈 아르디(Françoise Hardy) ‘Message personnel’(1973)

우리나라에 ‘Comment te dire adieu’(어떻게 안녕이라고 말할까)라는 노래로 잘 알려진 프랑스와즈 아르디는 이미 1960년대부터 스타덤에 올라 있었는데, 1970년대에 미셸 베르제(Michel Berger)라는 젊은 작곡가를 만나면서 새로운 시도를 한다. 특이하게도 이 노래의 주인공은 가수의 목소리가 아니라 반주 음악이다. 

불안함에 떨며 사랑을 고백하는 주인공의 메시지를 가수는 낭송과 노래로 차분하게 전달하고 있는 반면, 화자의 감정선은 배후의 악기들이 표현하고 있다. 마지막에는 문장을 맺지 못하고 목소리마저 끊어진 후, 격렬한 드럼 연주가 감정의 폭발을 보여준다. 누군가의 심장이 터질 듯이 뛰고 있는 듯하다.

프랑스 갈(France Gall) ‘La declaration d’amour’(1974)

프랑스 갈은 샹송계의 엘리트였다. 1965년, 만17세에 불과한 그녀는 ‘Poupée de cire, poupée de son’(꿈꾸는 샹송 인형)이라는 노래로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아르디의 성공을 지켜보던 프랑스 갈은 미셸 베르제에게 자신에게도 노래를 써주길 간곡히 부탁한다. 1974년, 베르제는 프랑스 갈과 작업을 시작했는데, 결과는 매우 성공적이었다. 두 사람의 결합은 음악적 성과를 넘어서 2년 뒤 부부의 연을 맺는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1992년 베르제는 심장마비로 향년 44세의 삶을 마감한다. 이후 프랑스 갈도 암 투병을 하는 와중에 딸이 먼저 세상을 떠나는 등 불행을 겪다가 지난 2018년에 세상을 등졌다. 샹송 인형이여, 하늘나라에서 동갑내기 남편과 다시 만나 부디 행복하시길……

장 자크 골드만과 시리마(Jean-Jacques Goldman and Sirima) ‘La-bas’(1987)

장 자크 골드만은 록(Rock)적인 경향이 매우 강한 가수 겸 송라이터이다. 1987년에 듀엣 곡을 하나 써 놓았는데 같이 부를 여가수를 찾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파리 시내의 지하철역에서 버스킹을 하고 있던 시리마(Sirima)를 전격적으로 발탁하여 ‘La-bas’(그곳에)라는 노래를 녹음한다. 스리랑카인 아버지와 프랑스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시리마는 매우 청아하고 아련한 목소리로 노래에 기여했고, 이 싱글은 전 세계적으로 50만장 이상 팔린 히트곡이 된다.

하지만 완벽해 보였던 신데렐라 스토리는 비극적으로 끝이 난다. 1989년 시리마는 자신이 직접 쓴 곡들로 채워진 솔로 앨범을 내놓지만 어처구니없게도 그녀의 성공을 질투한 애인의 손에 목숨을 잃는다. 25살의 꽃다운 나이였다. 이로 인해 주인 없는 앨범은 표류하고 시리마의 목소리는 이 노래에 전설처럼 남아있게 된다. 이후 골드만은 셀린 디온을 비롯한 유수의 가수들과 이 노래를 불렀는데, 내 의견으로는 누구도 시리마의 보컬을 넘어서지 못했다. ‘La-bas’는 특이하게도 모든 악기의 소리가 사라진 후 드럼만 홀로 남아 곡을 마무리하는데, 마치 힘차게 뛰던 심장이 갑자기 멎는 것 같은 쓸쓸한 느낌을 준다.

로랑 불지(Laurent Voulzy) ‘My song of you’(1987)

로랑 불지 역시 미국 팝음악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아티스트지만, 이 사람은 앞서 소개한 작곡가들보다 훨씬 서정적이고 감미로운 작풍을 보여준다. 이 노래는 제목이 영어이고 노래 중간에 영어 가사가 약간 나와서 이 리스트에서는 반칙처럼 보이지만 역설적으로 가장 전통적인 샹송에 가까운 노래이다. 

로랑 불지의 최대 히트곡은 1984년에 발표한 ‘Belle-Île-en-Mer, Marie Galante’(아름다운 섬, 마리 갈랑트)인데 우리나라 광고에 쓰여서 멜로디를 기억할 분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내 선택은 프랑스에서도 별로 히트하지 못한 곡 ‘My song of you’이다. 로랑 불지는 아름다운 곡조를 잘 만들고 몽환적인 편곡을 즐기는 송라이터인데 다작하는 스타일이 아니라 발표한 작품 수가 좀 적어서 아쉽다. 하지만 이런 음악이 시대를 넘어 살아남기엔 유리한가 보다. 1948년생인데 아직도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삼판(Sampan) 프로젝트 ‘Dernier matin d’Asie’(1987)

1984년 영국의 밴드 에이드 프로젝트의 ‘Do they know it’s Christmas?’, 1985년에 이어진 유에스에이 포 아프리카(USA for Africa)의 ‘We are the world’, 그리고 같은 해에 열린 영국-미국 합동 공연인 라이브 에이드까지, 1980년대 중반은 전 세계의 팝 아티스트들에게 새로운 소명을 요구하는 시기였다. 프랑스 아티스트들도 예외는 아니어서 1985년 < Chanteurs sans frontières >(국경 없는 가수들)이라는 프로젝트를 발족하여 ‘Éthiopie’라는 노래를 발표한 바 있다. 그로부터 2년 뒤인 1987년, 베트남을 비롯한 인도차이나반도를 탈출한 보트피플이 세계적인 이슈로 떠오르자 프랑스의 가수들은 다시 한 번 자선 프로젝트를 시도한다.

작은 배를 의미하는 삼판(Sampan)이라는 이름의 프로젝트 그룹이 발표한 노래는 ‘Dernier matin d’Asie’(아시아의 마지막 아침)이라는 제목이었다. 아마도 프랑스 사람 입장에서 아시아란 과거 식민지를 구축했던 인도차이나반도가 전부였던 모양이다. 다소 제국주의적 발상에서 비롯된 프로젝트지만 그래도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만든 노래이니 한 번 들어보자. 이 프로젝트에는 당시 신인 급의 젊은 아티스트들도 대거 참여했는데, 특이하게도 노장급에 속하는 제인 버킨(Jane Birkin)이 첫 번째 마디를 불렀고, 장 자크 골드만이 간주에서 기타 솔로를 연주해 줬다. 프로젝트 성격상 애잔함과 웅장함이 공존하는 ‘프랑스판 위 아 더 월드’라고 할 만하다.

리카르도 폴리(Riccardo Fogli) ‘Storie di tutti i giorni’(1982)

이제 이탈리아로 넘어가 보자. 이탈리아에서는 산 레모 가요제가 매년 열리는데, 이탈리아의 대중음악을 홍보하기 위한 행사로서 예전에는 세계적으로 매우 유명한 가요제였다. 1950년대엔 도메니코 모두뇨(Domenico Modugno)가 부른 ‘Nel blu dipinto di blu’가 볼라레(Volare)라는 제목으로 전 세계에 알려졌고, 1960년대엔 질리올라 칭케티(Gigliola Cinquetti)의 ‘Non ho l’età’, 1970년대에는 나다(Nada)가 부른 ‘Il cuore è uno zingaro’(국내에서 ‘마음은 집시’로 번안한 그 노래)가 크게 히트한 바 있다.

1980년대로 들어서면서 산 레모 가요제에 출품되는 노래들의 성격이 크게 변화하는데, 전통적인 칸소네의 성격보다는 팝록적인 요소가 강하게 드러나게 된다. 1982년 가요제에서 ‘Storie di tutti i giorni’(모든 날들의 이야기)로 우승한 리카르도 폴리는 유명한 그룹 이 푸(I Pooh)의 창단멤버였다. 그룹의 전성기였던 1973년에 이미 솔로로 전향한 폴리는 수많은 히트곡을 내놓았고, 이 노래는 그의 가장 큰 히트곡 중의 하나이다. 우아하고 화사한 멜로디를 록적인 비트가 감싸고 있는 세련된 편곡은 이후 등장하는 이탈리아 대중음악의 이정표 같은 역할을 했다.

파우스토 레알리(Fausto Leali) ‘Io amo’(1987)

이탈리아 칸소네를 듣다보면 허스키 보이스를 가진 남자 가수가 유난히 많다는 사실에 놀라게 된다. 성악의 나라 이탈리아 남자들의 목소리가 이토록 탁하다니! 이는 매우 이상한 일이었고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였다. 그러던 중에 파우스토 레알리라는 가수의 이력을 알게 되면서 비밀이 어느 정도는 풀린 것 같았다. 1960년대 중반부터 비틀스 등 유명한 팝음악을 번안해 부르면서 음악계에 데뷔한 레알리는 자신의 탁성을 소울 충만한 목소리로 승화시키면서 평단으로부터 일 네그로 비앙코(Il negro bianco, 검은 목소리의 백인)이라는 별칭을 얻었다. 이는 그가 발표한 1968년 앨범의 타이틀이기도 했다.

이 걸걸한 목소리의 사나이는 1960년대부터 지금까지 정상에서 내려오지 않고 있으니, 이탈리아에 일단의 유사한 흐름이 생겨도 별로 이상한 일이 아닐 것이다. 파우스토 레알리는 1989년에 Ti lascerò(그대를 떠나려오)라는 노래를 대형 여가수 안나 옥사(Anna Oxa)와 듀엣으로 불러 산 레모 가요제 우승을 거머쥔 바 있다. ‘Io amo’(사랑합니다) 역시 1987년 가요제 출전곡인데 4위에 그쳤다. 어딘가 모르게 클래시컬한 분위기의 이 곡을 들으면 바흐가 연상된다. 필자 맘대로 부제를 붙인다면 ‘허스키 보이스를 위한 아리아’ 정도 될까?

마르코 마시니(Marco Masini) ‘Perché lo fai’(1991)

이 노래를 듣기 전까지는 파우스토 레알리가 허스키 보이스의 끝판왕인줄 알았다. 이탈리안 허스키의 최강자 마르코 마시니는 1991년 ‘Perché lo fai’(왜 그러셨나요)로 스타덤에 오른다. 필자가 프로그램을 제작할 당시에는 막 데뷔한 신인이었는데, 벌써 30주년 기념 앨범이 나온 중견 가수가 되어 아직도 활발하게 활동 중이다. 비 오는 날 감정의 카타르시스가 필요하다면 이 노래를 추천한다. 임재범의 ‘고해’와 비교 감상해도 좋을 듯하다.

알레안드로 발디, 프란체스카 알로타(Aleandro Baldi, Francesca Alotta) ‘Non amarmi’(1992

산 레모 가요제는 기성부문과 신인부문을 분리해서 경연을 펼치고 시상하는 독특한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따라서 매년 가요제에서는 기성 부문 우승자와 신인 부문 우승자를 따로 뽑게 되는데, 별도의 언급 없이 우승이라 하면 기성 부문을 의미한다. ‘Non amarmi’(나를 사랑하지 마세요)는 1992년 신인 부문에서 우승을 차지한 곡이다. 알레안드로 발디라는 시각장애인 가수가 곡을 써서 여가수 프란체스카 알로타와 듀엣으로 부른 곡이다. 이 두 사람은 신인이라고 믿을 수 없는 놀라운 가창력을 보여주는데, 여기서 신인은 가요제의 첫 출전을 의미하는 것이지 음악 경력 자체가 전무한 신인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이 노래는 1999년에 미국 라틴팝 가수인 제니퍼 로페스와 마크 앤서니가 ‘No me ames’라는 제목으로 스페인어 버전을 다시 불러, 빌보드 라틴 음악 차트에서 빅 히트를 기록했다. 알레안드로 발디는 2년 뒤인 1994년에 ‘Passerà’(지나가리라)라는 곡으로 기성 부문에 출전해서 우승을 차지한다. 바로 그 해에 안드레아 보첼리(Andrea Bocelli)가 신인 부문에서 우승하며 혜성같이 등장하는데, 그때 보첼리가 부른 곡은 ‘Il mare calmo della sera’(고요한 저녁 바다)였다. 지금 들어도 모두 영롱하게 빛나는 곡들이다.

에도아르도 벤나토, 지안나 난니니(Edoardo Bennato, Gianna Nannini) ‘Un’estate italiana’(1990)

아카데미 주제가상 3관왕에 빛나는 조르지오 모로더(Giorgio Moroder)는 1988년 서울 올림픽 주제곡인 ‘손에 손잡고’를 작곡했다. 코리아나가 부른 이 노래는 대중적인 멜로디에 웅장한 편곡으로 커다란 행사에 최적화된 멋진 곡이었지만 당시 혈기왕성하던 시절의 필자에게는 너무 격식을 차린 편곡이어서 자유분방한 맛이 좀 부족한 느낌이 있었다. 그로부터 2년 후인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 개막식에서 조르지오 모로더는 또 한 곡의 스포츠 행사를 위한 곡을 내놓는데 ‘Un’estate italiana’(이탈리아의 여름)이라는 제목의 이 노래는 ‘손에 손잡고’와 유사한 멜로디를 사용하면서도 축구라는 스포츠의 역동성과 열기를 잘 표현한 하드 록 성격이 강한 곡이었다.

개막식에서 일렉트릭 기타를 메고 노래하던 두 로커의 모습 또한 매우 인상적이었다. 우리나라 텔레비전에서도 각 경기를 중계하기 전과 하이라이트 방송 전에 반드시 이 곡을 틀어줬기 때문에, 필자는 이 노래를 듣기위해 거의 모든 경기를 시청했고, 월드컵이 끝날 즈음에는 자신도 모르게 ‘노티 마지케(Notti magiche)’라는 가사를 따라 부를 정도였다. 음악 때문에 새벽 시간까지 축구 경기를 기다려 본 것은 처음이었다. 노래 가사처럼 ‘마법 같은 밤들’이었다.

엔딩 시그널 : Giorgio Moroder ‘Hello Mr. W.A.M. (Finale)’(1980)

엔딩 시그널 곡 역시 조르지오 모로더에게 맡겼다. 모로더는 모두 3개의 아카데미 영화상 트로피를 가지고 있는데, 1978년 Midnight Express의 오리지널 스코어와 1983년 영화 Flashdance 주제곡 Flashdance…What a Feeling, 그리고 1986년 영화 Top Gun 주제곡 Take my breath away로 수상의 영광을 안았다. 

하지만 필자가 뽑은 모로더 최고의 영화음악은 리차드 기어 주연의 American Gigolo이다. 이 영화의 사운드트랙에서 가장 유명한 곡은 Blondie의 Call me인데, 짧게 편집된 싱글 버전과는 달리 앨범에 수록된 노래의 길이는 무려 8분이다. 게다가 Call me의 테마를 변주해서 연주곡으로 만든 Night drive라는 곡도 수록돼 있어서 감상의 재미가 쏠쏠하다. 

영화의 엔딩 크레딧 역시 연주곡인데 Wolfgang Amadeus Mozart의 클라리넷 협주곡 2악장을 편곡했다. 처음엔 모차르트 원곡의 템포와 유사하게 시작한다. 테마가 한 순배(?) 돈 이후에 템포는 Call me와 Night drive처럼 긴박하게 바뀐다. 음악은 한 번의 브레이크를 밟은 후에 다시 디스코 리듬으로 바뀐 뒤, 군더더기 없는 엔딩으로 끝난다. 이 얼마나 우아하고 멋진 편곡인가!

* 김우석 PD (marshall@kbs.co.kr)

1991년 KBS 입사, < 세계의 유행음악 >, < 김광한의 팝스다이얼891 >, < 손범수의 팝스팝스 >, < 조규찬의 팝스팝스 >, < 윤상의 0시의 스튜디오 >, < 최은경의 FM대행진 >, < 성세정의 0시의 스튜디오 >, < 이무영의 팝스월드 >, < 유열의 음악앨범 >, < 탁재훈의 뮤직쇼 >, < 김장훈의 뮤직쇼 >, < 진양혜의 음악공감 >, < 0시의 음악여행 박철입니다 >, < 매일 그대와 주병진입니다 > 등 제작. 현재는 KBS3라디오에서 시니어들을 위한 프로그램 <출발! 멋진 인생, 이지연입니다> 제작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