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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나 델 레이(Lana Del Rey) ‘Did You Know That There’s a Tunnel Under Ocean Blvd’ (2023)

평가: 3.5/5

대중적이라는 수식어와 라나 델 레이의 음악은 늘 일정 거리를 유지했음에도 신보는 유독 진입장벽이 높다. 손에 잡히는 멜로디는 일부 트랙을 제외하면 사실상 부재한 수준이고, 교회 목사와 2022년 그래미 올해의 앨범 수상자 존 바티스트가 가담한 두 편의 인터루드는 극심한 혼란까지 가중한다. 심지어 러닝타임은 78분이기까지. 그럭저럭 귀에 알아서 들어오기를 기대했다면 굉장히 골치 아프고 조금은 버거운 앨범이다.

접근성 상실이 급작스러운 일은 아니다. 메인스트림의 대안으로 떠오른 2012년 < Born To Die >는 인디 신의 변절자 낙인을 동반했고, 고전 할리우드 미학을 따른 가사에는 열렬한 추종자 외에도 시대착오적 텍스트라는 말이 따라붙었다. 라나 델 레이의 해법은 남달랐다. 2017년 작품 < Lust For Life >에서 미소를 활짝 지으며 거울 세계를 시작한 것이다.

2014년 < Ultraviolence >의 잿빛 로맨스와 대치된 < Norman Fucking Rockwell!>은 찬란하게 멸망하는 2019년 미국을 컬러 삽화로 그렸다. 이듬해 소셜 미디어에서 자신의 음악에 가해진 이중잣대를 호소했으나 역으로 인종차별 논란을 맞은 그는 2012년 < Paradise >처럼 유혹의 낙원 대신 2021년 팬데믹 시기 < Chemtrails Over The Country Club >과 함께 가족과 친구의 품 속으로 도피했다. 개인사를 흩뿌리며 늘어지는 < Blue Banisters >의 발매를 앞두고서는 2015년 앨범 < Honeymoon >과 동명의 비공개 인스타그램 계정으로 숨으며 한 바퀴를 완성했다.

머리와 꼬리가 맞물렸으니 새로운 세상이 탄생할 시간. 성씨를 딴 ‘The Grants’에서 기억을 간직하고 내세로의 문턱을 넘은 그는 타이틀 트랙에서 지하 터널을 건너며 본인을 “잊지 말라” 간청한다. ‘Sweet’로 달콤한 삶에 대한 소박한 염원을 표하기도 잠시, 앞서 말했던 여러 사건에 대한 은유로 ‘미국의 매춘부’ 생활의 경험을 털어놓는다. < Ultraviolence > 시절 남성 주인공 ‘Jimmy’를 데려와 초창기 트립합과 중반기 포크, < NFR! >을 섞어 커리어를 함축하는 노래는 근래 최고의 싱글이자 세상을 향한 통렬한 반격이다.

양가적인 면모가 계속된다. 피아노 중심의 단조로운 구성과 흐릿한 멜로디에 속삭이는 듯한 가창까지 가세하니 소리는 모호하다. 반대로 가사는 라나 델 레이의 페르소나를 걷어내고 리지 그랜트의 입을 빌려 선명해졌다. 주제는 ‘Kintsugi’처럼 가족이기도 하고, ‘Paris, Texas’가 보여주듯 오해로 점철된 역사이기도 하다. 자기 연민이나 좌절로 귀결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핵심이다. ‘Let the light in’에서 빛을 받아들인 그는 이제 동료 잭 안토노프와 그의 연인 ‘Margaret’에 사랑을 나눠준다. 우울함과 멋을 동일시하는 힙스터의 총아 자리를 완전히 벗어났다.

스스로를 구원한 자가 누릴 수 있는 은총은 다름 아닌 춤이다. 고행과 자아 탐색의 끝에 오랜만에 등장하는 힙합 비트가 아티스트와 청자 모두의 갈증을 해소한다. ‘Fishtail’의 깨달음처럼 ‘내가 슬프길 바라’는 세상을 간파했기에 거리낌 없이 그 반대로 달리는 것이다. 토미 제네시스(Tommy Genesis)의 ‘Angelina’를 샘플링한 깜찍한 ‘Peppers’, ‘Venice bitch’의 트랩 데모 버전을 엮은 ‘Taco truck x VB’가 마련한 파티는 시선과 평가로부터의 해방을 기념하는 연회다.

신보는 치명적 멜로드라마 세계와 새 시대의 시인 자리를 벗어나 가족의 품으로 계속 파고드는 점진적인 과정을 포착하나, 동시에 마냥 옛 세대로의 편입 수순을 밟는 듯 보였던 라나 델 레이의 음악에 반전의 불씨를 틔운다. 따라서 독보적 이미지와 주류 지향성 사이 균형 잡기의 실패보다는 자의적 차단에 가깝다. 대중음악의 굴레에서 더욱 반대중적으로 나아가는, 얼핏 모순적인 그의 행보는 파편화된 사회가 도래하기 전 일찍이 공고한 소비층을 확보한 선구자의 특권이다. 하여튼 계속 주목할 수밖에 없다.

-수록곡-
1. The Grants
2. Did you know that there’s a tunnel under Ocean Blvd
3. Sweet
4. A&W
5. Judah Smith interlude
6. Candy necklace (Feat. Jon Batiste)
7. Jon Batiste interlude
8. Kintsugi
9. Fingertips
10. Paris, Texas (Feat. SYML)
11. Grandfather please stand on the shoulders of my father while he’s deep-sea fishing (Feat. RIOPY)
12. Let the light in (Feat. Father John Misty)
13. Margaret (Feat. Bleachers)
14. Fishtail
15. Peppers (Feat. Tommy Genesis)
16. Taco truck x V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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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나 델 레이(Lana Del Rey) ‘Did you know there’s a tunnel under Ocean Blvd’ (2022)

평가: 3/5

한때 반문화의 대표자였고, 시대의 대변인이었던 라나 델 레이는 9집 발매를 앞두고 ‘지금까지와는 다른 형태의 앨범이 될 것’이라고 예고했다. 3월 발매될 음반의 방향을 선포하는 싱글은 은유적인 노랫말로 싱어송라이터의 속내를 비춘다. ‘Fuck me to death / Love me to love love me’라는 가사로 < Born To Die >를 암시하는 등 자신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는 그에게 애정과 증오가 섞인 양가적인 감정이 아른 거린다.

매혹적인 목소리엔 직접 새드코어(Sadcore)라고 명명한 특유의 우울함이 짙게 묻어나고 피아노 선율, 웅장한 오케스트라, 코러스가 점점 옅어지는 보컬의 빈자리를 채우며 몰입감 있게 곡을 완결한다. 팝스타의 자기 고백이라는 주제와 잭 안토노프의 프로듀싱이 로드의 < Solar Power > 혹은 테일러 스위프트의 < Midnights >와 같은 결을 보이지만 시적인 가사나 깊은 음색에 라나 델 레이만의 색이 확연하다. 자취를 따라 걸으며 자연스럽게 정규 앨범으로 인도하는 리드 싱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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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나 델 레이(Lana Del Rey) ‘Let me love you like a woman’ (2020)

평가: 3/5

올해 있었던 논란을 정면돌파 하려는 것일까. 평단의 찬사를 독식한 < Norman Fucking Rockwell! >(2019)의 메아리가 귓가에서 채 사라지기도 전에, 7번째 스튜디오 작품 < Chemtrails Over The Country >(2020)의 발매 소식과 함께 이 첫 싱글이 찾아왔으니 말이다. 오랜 파트너 잭 안토노프와 함께 한 이 곡은, 전작의 영광을 있게 한 그만의 빛바랜 로맨스가 생생히 살아있다.

무겁게 가라앉는 피아노 선율과 희미하게 반짝이는 기타 소리, 화려하다기보다는 처절한 오케스트레이션과 대기를 부유하는 그의 목소리. 음악적인 전성기가 이어지고 있다는 뜻으로 봐도 좋지만, 반대로 1년 전의 자신에게 잠식되어 제자리를 걷는 그 역시 동시에 목격이 된다. 앨범의 기대치를 높이기엔 다소 익숙하다는 것이 아쉬움에도, 그 고유의 매력을 무시하기 역시 쉽진 않을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