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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IZM 연말 결산 특집 Feature

2020 올해의 가요 앨범

사회적 거리두기로 공연이 사라지자 예술가들은 창작에 몰두했고 그 결과로 우리는 여느 해보다 많은 앨범 단위 결과물을 접할 수 있었다. 지금 이 순간도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듯 쏟아지는 작품 속에는 치열한 젊음의 고민과 베테랑의 조용한 귀환, 글로벌 단위의 논의가 돋보인다. IZM 선정 2020년을 대표할 가요 앨범 10장을 소개한다. 글의 순서는 순위와 무관하다.


더 블랭크 숍(The Blank Shop) < Tailor >

미디어의 도움 없이 음악 자체로 자생하기 힘든 시기에 만능 뮤지션 윤석철은 좋은 대중가요를 고민했다. 화려한 뮤직비디오 없이도, 굵직한 퍼포먼스 없이도, 예능 프로그램의 도움 없이도 그 자체로 오래 들을 수 있는 이지 리스닝의 팝을 지향했다. 그는 이 작업을 위해 더 블랭크 숍이라는 새 페르소나를 만들어 좋은 가요 프로듀서의 첫 발을 내디뎠다.

고급 맞춤 정장처럼 참여 가수들에게 딱 들어맞는 < Tailor >는 만능의 작품이다. 일렉트로닉, 재즈, 힙합, 블루스, 록, 인디 등 다양한 장르가 치밀한 재봉술을 거쳐 금방 흥얼거리고 따라 부를 수 있는 노래로 뽑혀 나온다. 일상 속 단편을 흥미롭게 관찰하여 한 편의 완성된 이야기로 풀어내는 그의 음악에는 기타 수식어가 필요 없다. 산업과 기술의 시선 이전에 음악은 그 자체로 좋아야 한다는 평범한 진리. 우리는 엔터테이너보다 이런 외골수에 더 집중해야 한다. (김도헌)


추다혜차지스 < 오늘밤 당산나무 아래서 >

신에게 소원을 빌기도 하고 신의 꾸지람을 듣기도 하며, 산 자의 건강과 행운을 빌면서도 망자의 영혼이 평안하기를 비는 무속음악 무가(巫樂). 굿판에서 벌어지는 음악이다. 삶에 대한 인간의 소망이 담겼음에도 참으로 기괴하고 소름 돋는다. 적어도 추다혜차지스의 < 오늘밤 당산나무 아래서 >를 듣기 전까지는. 굿판을 벌이는 장소이자 마을의 수호신이기도 한 ‘당산나무’ 아래서 무가는 위로의 언어로 재탄생한다. 놀랍게도 재료는 펑크(Funk)다.

우리가 나고 자란 한국의 토속적인 정서가 오히려 반(反)대중적이라 느껴질 만큼 국악은 어렵다. 그런 의미에서 앨범은 가히 2020년 음악계의 충격적인 사건이라 불릴 만 한다. 국악, 그것도 무속음악을 들으면서 ‘얼씨구‘와 같은 몸짓이 아닌 힙합에서 나올 법한 그루브를 탈 것이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그럼에도 감상의 끝에 남는 건 애절한 꺾기의 향연, 그 숭고하고도 처절한 한국의 정서다. 지극히 대중적이고 서양적이며, 동시에 철저히 한국적이다. 앨범 전반을 매끄럽게 주도하는 파격적인 장르의 혼합, 무가의 재해석. 국악의 새 시대를 열었다. (조지현)


진보(Jinbo) < Don’t Think Too Much >

말 그대로 깊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 로킹한 기타와 현란한 드럼, 그리고 뒤뚱거리는 신시사이저가 그루비한 작법 아래 감당하기 힘들 만큼 쏟아진다. 풍부한 성분과 영양을 갖춘 사운드 위로는 화려한 피처링진이 각자의 감칠맛을 발휘하며 곡에 녹아든다. 이때 필요한 준비물은 활짝 열린 귀 뿐, 이후로는 그저 트랙에 몸을 맡기면 된다.

탄력적인 프로듀싱의 < Afterwork >와 자기만의 색채로 히트곡을 버무린 선집 < KRNB >, 그리고 몽롱한 사랑의 언어 < Fantasy >의 걸출한 커리어를 거쳐, 진보(Jinbo)는 또 한 번 아이디어의 창고 아래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다양한 장르를 오가며 더욱 직관적인 형태로 발전한 < Don’t Think Too Much >는 모두의 니즈를 만족시키는 일종의 자유이용권이다. 이를 어떻게 비유하면 좋을까. 고막 위 펼쳐지는 힙합 퍼레이드. 음악계 풍운아가 만든 감각의 제국. 매끄럽게 오르내리는 롤러코스터. 수식어가 부족할 정도다. (장준환)


방탄소년단(BTS) < MAP OF THE SOUL : 7 >

케이팝 보이 밴드가 아닌, 팝 뮤지션이자 BTS 그 자체가 되기 위한 고군분투가 담겼다. 일곱 명의 7년이 담긴 < MAP OF THE SOUL : 7 >은 멤버 개개인의 자아를 녹여내면서도 그룹의 역사를 유기적으로 엮으며, 더 높은 곳으로 날기 위해 지금까지 걸어온 길을 돌아본다. 강산이 변하기도 전에 그들은 국내 대중음악의 틀을 바꾸고, 세계 팝 시장의 역사를 새로 쓰고 있다.

‘Intro : Persona’ ‘Interlude : Shadow’ ‘Outro : Ego’로 이어지는 서사적 앨범의 기세가 심상치 않다. ‘작은 것들을 위한 시 (Boy with luv) (Feat. Halsey)’의 밝음과 ‘Black swan’의 어둠이 상반된 힘으로 어깨를 나란히 하고, ‘Respect’처럼 힙합을 보여주다가도 ‘Filter’처럼 라틴을 내비친다. 자신들에게 한계가 없음을 증명하며 다양함으로 거대해지는 사운드가 BTS라는 이름 아래 하나로 단결한다. 음악부터 비즈니스까지 이젠 그들이 기준이고, 케이팝이다. (임동엽)


NCT < NCT Resonance Pt.1 >

< NCT Resonance Pt. 1 >은 새 시대를 여는 SM의 야심이다. 개방과 확장이라는 두 모토 아래 유기적으로 회전해온 NCT는 두 새 멤버가 더해진 23인의 NCT 2020으로 더 높은 단계의 비상을 감행했다. 기존 그룹이 가지고 있던 색깔과 면모를 한데 모으되 그것을 더욱 성장한 음악으로 재편한 음반은 팀의 색채를 짙게 하는 랩 트랙과 광폭한 전자음의 댄스, 서정적이고 잔잔한 느린 곡과 다국적의 특색을 살린 언어 혼용까지 가공할만한 완성도로 담아냈다. 단연 올해 가장 빛나는 아이돌 앨범이었다.

다양한 모습을 가진 팀이기에 선보일 수 있는 영화로 치면 블록버스터 같은 이 스케일에서 SM이 제시한 신개념 플랫폼의 긍정성을 봤다. 문법 선택이 자유롭기에 지루할 틈이 없고, 이는 이들이 묵묵히 자신의 음악 역사를 쌓아왔음을 보여준다. 회사의 기획에 발맞추어 하나의 콘셉트를 수행하는 가수의 활약, 특히 랩 멤버의 강한 에너지로 팀의 실력에 대한 의구심을 날려버린 것은 덤이다. 그들이 꿈꿔온 이상에 비로소 한 발 더 다가서는 걸음이었다. (이홍현)


정밀아 < 청파소나타 >

포크 씬의 활약이 돋보인 한 해였다. 팬데믹으로 세상이 시끄러워서일까? 잔잔한 일상, 곁을 풀어낸 음반들이 유난히 좋은 흐름을 보였다. 정밀아의 < 청파소나타 >는 그중에서도 우뚝 선다. ‘그럼으로 / 나는 오늘의 나를 살 것이다’(‘서시’) 나긋하게 선언하는가 하면 ‘서울역에서 출발’에는 위트 있게 현재와 과거를 돌아본다.

잘 닦은 10개의 돌멩이가 반짝이듯, 매끈한 수록곡들을 지녔다. 도시에서의 삶을 겪으며 느낀 텁텁함과 답답함부터 언젠가 그리워질 시절을 아름다운 단어로 그린 음반은 지독히 개인적이며 동시에 대중적이다. 일상의 언어로 품은 그의 자전적 이야기가 위로와 공감을 건넨다. 작은 기타 반주를 넘어서 울리는 또렷한 오늘의 목소리. 웃고 우는 희로애락이 여기에 담겨있다. (박수진)


딥플로우(Deepflow) < FOUNDER >

한 래퍼의 커리어가 파노라마로 흐른다. 딥플로우는 < FOUNDER >에서 힙합에 빠지고 본격적으로 랩을 시작한 순간부터 레이블 대표로서 고군분투하던 모습, 음악성을 인정받으며 인지도가 올라간 때 등을 차곡차곡 기록한다. 각 상황과 당시 느꼈던 감정을 생생하게 나타낸 가사로 노래들은 한껏 사실감을 뽐낸다. 딥플로우가 설립한 레이블에 속한 래퍼들의 찬조도 앨범이 현실성을 또렷하게 발하는 데 힘을 싣는다.

볼품없었지만 이제는 잘나가는 래퍼로 성장한 모습을 알차게 담은 사항 때문에 앨범은 한 편의 전기 영화를 보는 듯한 기분을 들게 한다. 여기에 1970년대에 나왔을 법한 투박한 솔뮤직, 펑크 반주는 딥플로우의 역정을 한층 묵직하게 가공해 준다. 또한 일련의 음악적 보조를 통해 < FOUNDER >는 음반 커버로 암시하듯 블랙스플로이테이션 영화의 향을 진하게 풍긴다. 내용과 음악이 잘 어우러져 상승효과를 이룬 근사한 작품이다. (한동윤)


쿤디판다(Khundi Panda) < 가로사옥 >

밑그림을 펼쳐 놓은 < 쾌락설계도 >와 뼈대를 조립하는 과정의 < 재건축 > 속 자재가 이뤄낸 것은 < 가로사옥 >이다. 완공의 결과는 꼭대기를 향해 쌓아 올린 건물이 아닌 일련의 직선 형태로, 깊숙한 공간 안에 나열된 화자의 스토리텔링이다. 그 안에 침투한 질투(‘자벌레’), 자격지심(‘네버코마니’)과 회피(‘겟어웨어’)같이 진솔함을 넘어 독살스럽기까지한 감정의 파편들은 꽤 빽빽하고 날카롭다.

그럼에도 개인의 서사에 몰입하고 점차 파고 들게 만드는 것은 종횡무진 달리는 래핑이다. 스스로에게 채찍질을 휘두르는 듯 더 치밀하고 더 악독하게 랩 퍼포먼스를 채워 넣었고, 피로감을 덜어낸 사운드로 친절함을 살짝 내비치곤 한다. 마침내 끝에 다다르면 < 가로사옥 >이 방대한 결말이 아닌 ‘그저 그의 여정 안의 조각’임을 알 수 있다. 쿤디판다는 끊임없이 앞으로 나아갈 예정이다. (임선희)


김석준 < 20세기 소년 >

수려한 디자인과 포장, 마케팅, 시대 감수성, 상품 가치, 언론의 선동적 개입 그리고 글로벌 K팝이라는 말에 어른거리는 윽박지름과 현재적 ‘힙’이 요구하는 초조함이 없다. 압박도 느끼지 않지만 어떤 것에 대한 타협도 없다. 타협한 게 있다면 그의 취향이 머물고 있는 20세기 음악뿐이다. 1993년 유재하가요제의 금상 수상 경력, 하지만 이후 우리에게 선사한 음원이 거의 없어 무명에 가까운 음악가 김석준은 바로 이 지점에서 ‘시제’ 정리에 고민했을 것이다. 오랜 시간이 흘러 앨범을 내는 지각 행위는 필시 과거에 얽매일 소지가 높다는 선입견에 웃으며 맞서려면 반드시 현재적 감성을 부여해야 한다는 것.

자기가 직접 노래한 다섯 곡 수록 앨범 < 나의 이름은 >에 이어 곧바로 내놓은 < 20세기 소년 >은 게스트 보컬과 밴드의 협조하에 작곡자로서의 세계를 전달하고 있다. 귀 기울이게 하는 건 과거와 현재를 버무리고 고저, 장단, 강약을 넘나드는 반(反) 고집의 실천이다. ‘나는 나일 뿐’, ‘버퍼링’, ‘함경도 혜숙이’는 이 판에서 ‘특히 근래’ 듣기 어려운 무적, 무소속 음악이다. 메시지가 있다면 결국 휴머니즘이다. 소박, 순결, 진심이 주는 공감이 따로 없다. 20세기 소년은 이런 사소 하나 숭고한 가치를 가슴에 담아 21세를 포옹한다. ‘난 달라질 거야/ 이제부터 내 자신을 찾아야지..’ 김석준은 기본의 우대가 뉴 노멀(음악)이 되기를 소망한다. (임진모)


스월비(Swervy) < Undercover Angel >

익지 않은 슬픔을 저며낸 젊은 아티스트의 자화상. 대중이 보내는 관심의 뒷면엔 가혹한 잣대와 시선이 숨어 있었고 날카롭게 가공된 언어의 칼날이 되어 그를 해체했다. 태양에 다가간 대가로 추락하게 된 스월비는 온갖 상처를 드러낸 채 쓰러져 있었다. 어쩌면 감추고 싶던 일면이 흐트러진 바닥 위. 그곳에서 그는 자신에게 향하는 희미한 사랑을 발견했고, 보답이란 투박한 이유로 붉게 물든 날개를 감싸 안고 지상에 머물길 선택한다.

자기 고백이란 주제 아래 늘어놓은 일지(日誌)가 어둡고 차갑다. 낮게 깔린 비트를 기반으로 읊조리는 랩은 마주한 상황을 기록하는 데 목적을 두기에 감정선은 높낮이를 그리지 않고 일정하다. 철저한 사실주의. 낡은 VHS 위로 덮어진 다양한 형태의 스월비가 혼란스럽지만, 그 속에서 뚜렷하게 빛나는 아티스트의 성장기에 대중은 분명한 감응을 느꼈다. 이제 첫 정규 앨범. 결국 자유를 찾아 희망으로 귀결된 < Undercover Angel >의 서사처럼 모든 걸 딛고 일어선 스월비의 자리가 이곳에 굳게 새겨졌다. (손기호)


2020 올해의 팝 앨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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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딥플로우 인터뷰

2011년만 해도 딥플로우는 EDM만 흘러나오던 ‘홍대 놀이터 옆 코쿤 사거리’에서 호스트 MC로 일하며 힙합과 함께 생존하고자 외로이 투쟁하던 래퍼였다. 4년 후 그는 이 파토스를 인생 전체로 확장한 <양화>를 발표하며 한국 힙합의 중심에 섰다.

평단과 대중의 찬사, ‘당산대형’이라는 굳건한 페르소나 구축, ‘작두’. 그러나 이후에도 삶은 계속되었다. “Crew에서 Company, 두목에서 사장님”(‘대중문화예술기획업’)의 훈장을 얻은 것은 쾌거였으나 거리를 두던 예능 프로그램 출연 후로는 ‘배신자’라는 달갑지 않은 꼬리표를 감수해야 했다.

변화 속 자신을 돌아본 <FOUNDER>로 딥플로우는 <양화> 이후 지난 5년의 시간을 술회한다. 사업가, 래퍼, 아들, 레이블 대표의 일대기를 입체적으로 펼치며 그간의 질문에 시간의 무게로 답을 한다. 서교동 비스메이저 컴퍼니(Vismajor Company)에서 인터뷰를 진행하는 동안에도 그는 거듭 ‘내 이야기’를 힘주어 언급했다.

<양화> 이후 5년 만의 정규작이다.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양화> 이후 정규 음반을 계속 내야겠다는 의무감이 없었어요. “아이디어가 생기면 내야겠다”하는 막연한 마음만 있었죠. 방송 나가고 ‘다모임’ 활동도 하면서 창작욕이 일부 해소된 것도 있었고요. 그러다 정규작에 대한 아이디어가 생겼고, 3년 전부터 작업을 시작해 약 2년간 과정을 거쳐 앨범을 발매하게 됐습니다.

발매가 늦어진 데 다른 이유는 없었나? 그 해 <양화>에 쏟아진 엄청난 반응을 의식했다거나.

순전히 제 선택이었습니다. 제가 사장인데요 (웃음). 컨펌받을 사람도 없고 앨범 내라고 하는 사람도 없습니다. 20대 초부터 랩을 했으니 거의 20년 가까이 한 셈이라 언제든 제가 만들 수 있을 때 앨범 단위의 결과물을 만들 수 있다는 자신감도 있었죠.  

모든 작품은 아티스트가 살아가는 환경, 시대와 충돌하며 빚어진 결과물이라 생각한다. 특히 <FOUNDER>처럼 자전적인 이야기를 담은 앨범이라면 더욱 그렇다. <양화> 이후 5년 동안 딥플로우에게도 그런 사회적 화학 작용이 분명 있었을 텐데. 

<양화>는 30대 초반의 제가 20대 초부터 30대 초까지의 삶을 담은 앨범이었죠. 발매 당시엔 “나는 내 할 말을 다 했다”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말씀하신 대로 분명 화학 작용이 있었죠. 변화에 휩쓸리기도, 뛰어들기도 하면서요. 그렇게 제가 변해가는 모습을 보며 앨범 아이디어를 구상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노래 제목만 보면 거의 경제학 앨범이다. 그것도 슬픈 경제학. 앞서 언급한 화학 작용의 결과임이 분명해 보인다.

앨범을 만들며 제 이야기, 제 변화에 집중했습니다. 나를 싫어하는 사람들에게는 어떤 말을 해도 이 작품은 변명이 되겠구나 싶었고, 그래서 ‘이 앨범은 VMC 식구들에게 하는 말, VMC 식구들에게 헌정하는 앨범’ 이라는 점에 집중해서 작업했습니다.

어떻게 보면 이제 힙합은 거리의 메시지가 아니라 ‘나의 메시지’를 담는데 집중하는 것 같기도 하다. 이번 앨범도 그런 현상을 잘 대변하는 작품으로 들리고.

최근에 젊은 친구들이 가져오는 음악을 들어보면 정말 ‘음악’, ‘즐거움’ 그 자체에 집중하는 경향이 강하더라고요. 가사를 쓸 때도 메시지보다는 테크닉과 소리의 차원에서 단어를 활용하고요. 힙합의 시대정신이 바뀌고 있다는 건 몇 년 전부터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거기에 가치 판단을 하는 건 아니에요. 이런 시대가 됐고, 저도 최근에 즐기고 있습니다. 새로운 친구들은 그런 음악을 하고, 저는 제 음악을 하고.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중이에요.

<FOUNDER>는 <양화> 이전부터 이후의 오랜 시간 경과, 아주 어려웠을 때부터 지금까지의 시간을 담아낸 앨범이다. 사운드도 고전 소울을 가져오며 그 느낌을 의도한 것처럼 들리는데. 

우선 제가 샘플링을 좋아해서 과거 음악을 많이 들었습니다. 누구 노래인지, 무슨 노래인지도 모르고 그냥 많이 들었어요. 소울, 재즈, 펑크(Funk), 블루스 등등 처음에는 샘플을 따기 위해 듣던 음악이 어느 순간 엄청난 라이브러리로 쌓이고, 제 취향으로 굳어지게 됐죠. 어디 가서 분위기를 내기 위한 음악을 틀어달라고 하면 저는 꼭 소울 음악을 틀거든요. 그러던 와중에 ‘그냥 가져오는 것보다, 내가 만들어보면 어떨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편으로 영화 ‘파운더’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밝혔듯 영화는 과거 할리우드 갱스터 영화를 연상케 하기도 한다. 개인적으로는 마틴 스콜세지의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맞아요. 스콜세지의 영화를 좋아합니다. 소울 음악을 선택한 것도 영화 느낌의 톤 앤 매너를 내기 위한 방법 중 하나였어요. 앨범 커버도 고전 할리우드 영화 포스터 풍으로 그렸고, 그런 영화의 사운드트랙 같은 노래를 만들고자 했죠. 프로듀서에게  <FOUNDER>가 영화처럼 들렸으면 좋겠다고 주문했어요. “영화 같은 걸 해야 해!”, 아예 “OST처럼 들렸으면 좋겠어.”라고도 말했어요.

앨범을 지휘한 프로듀서 반루더(Van Ruther)는 <양화>를 프로듀싱한 티케이(TK)와 동일 인물이다. 전작과 완벽히 다른 장르와 밴드 셋, 트랙을 만들고 랩을 얹는 과정이 모두 새로웠을 텐데 어려움은 없었나.

반루더가 다했죠 (웃음).원래 반루더는 건반으로 작업하는 친구, 피아노맨이에요. 그래서 처음 가져온 곡들은 피아노 기반의 느낌이 강했어요. 저는 마초적인 느낌을 담기 위해 기타를 넣어달라고 강력 주장했죠. 그래서 기타 위주로 테마를 짰어요. 그러면서 록처럼 들리진 않았으면 좋겠고…. 반루더가 이번 앨범의 장르와 사운드 감을 잡기 위해 제 취향의 음악을 듣고 공부하며 백여 곡 정도를 새로 만들었습니다. 이후 미디로 곡의 뼈대를 잡아 비트를 만들고 그 위에 제가 랩을 녹음한 후 세션 작업을 진행했어요. 랩 이후엔 제가 거의 관여를 안 했어요. 제가 어려울 건 없었어요. 반루더가 어려웠죠.

앨범에는 1970년대 스택스 레코드(Stax Records)과 멤피스 소울, 마빈 게이, 필리 소울 등 다양한 스타일이 자연스레 어우러진다. ‘Blueprint’의 경우 모타운의 느낌도 나는데.

맨 마지막 트랙이라 특별히 모타운 스타일을 강하게 주문했어요. ‘커튼콜’ 같은 인상을 주고 싶었어요. 그런데 녹음에 들어가니 이미 BPM이 80 중반대로고정되어 있었죠. 랩 녹음을 바꿀 수도 없고, BPM을 바꿀 수도 없고…. 그러다 보니 의도했던 것처럼 나오진 않았네요(웃음). 우여곡절 끝에 지금은 힙합에 가까워졌죠. 블루 매직(Blue Magic) 풍의 필리 소울 풍도 염두에 두고 있었습니다.

지금도 충분히 멋지지만, 커티스 메이필드(Curtis Mayfield)의 시카고 사운드 풍 곡이 하나 있었다면 어땠을까.

그 생각도 했는데 예제가 너무 많았어요. 프로듀서가 자기가 구현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선택을 한 거라고 봐요. 

4월 21일 앨범 세션 밴드 프롬올투휴먼과 함께 ‘네이버 NOW’에서 <FOUNDER>의 곡들을 라이브로 선보였다. 인상적인 무대였는데, 어렵지는 않았나.

오케스트라 같은 대형 무대를 꾸린다면 모를까 지금은 크게 어렵진 않아요. 의도적으로 MR로 하는 라이브는 거절하고 있습니다. 

작사에 시간이 걸렸을 줄 알았는데 사운드 차원에서 작업이 오래 걸린 인상이다. 

가사는 6개월 만에 다 썼어요. 제게는 빠른 페이스였죠. 주제가 워낙 명확한 콘셉트 앨범이었고, 트랙리스트를 미리 만든 다음 가사를 썼기에 어렵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쉽지 않았던 곡, 혹은 가장 공들인 곡이 있다면. 

‘Low budget’이 녹음하는 데 어려웠던 기억이 나네요. ‘대중문화예술기획업’은 긴 스토리를 압축해서 들려줘야 했기에 단어 고르는 과정이 오래 걸리기도 했고요. 이외엔 제게는 쉬웠던 것 같습니다. 프로듀서가 앨범을 꾸며주는 후반 작업이 어려웠죠. 가사를 다 쓴 건 작년 6, 7월이었는데 발매는 올해 4월이었으니까요.

가장 마음에 드는 곡은?

‘Big deal’의 랩이 마음에 듭니다. ‘VAT’도 좋고요. 

한때 딥플로우는 ‘쇼미더머니’로 대표되는 미디어와 힙합의 유착 관계에 반감을 숨기지 않은 대표적인 래퍼였다. 많은 래퍼들이 방송에 출연해 유명세를 얻고 인기를 누리는 와중에도 그는 “그게 내가 <양화>를 만들 수 있었던 이유(‘불문율’)”라 일갈하며 “진짜 어울려 딥플로우와 힙합 말이야”(‘잘 어울려’)라는 자부심을 드러냈다.

그러나 지난 몇 년 간 우리는 TV에 나온 딥플로우, ‘쇼미더머니’에 나온 딥플로우, ‘언프리티 랩스타’에 나온 딥플로우의 모습을 목격했다. ‘변절자’라는비판, 변화의 흐름에 대해 딥플로우는 “지금은 제가 한 발언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담담히 그간의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록과 힙합 모두 마찬가지지만 일종의 ‘저렴한 순수성’이란 게 있다. 미디어 출연, 거대 자본과의 협력은 곧 타락으로 보는 시각이다. 최근 딥플로우는 그 순수성 부분에 있어 가장 논쟁이 되는 래퍼다. 

과거에는 이런 여러 활동을 하면 순수함에 위배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아직도 그 가치를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고요. 그렇다고 해서 예전에도 TV 출연 자체가 무조건 배신이라고 생각하진 않았어요.

‘저렴한’이라는 표현을 쓴 이유가 거기에 있다. 대중음악은 대중 상대로 설득을 할 수 있느냐에 따라 성패가 결정된다. 그 설득의 방법 중 하나가 TV 출연이고. 어떻게 보면 본인의 음악을 알리기 위해 미디어에 자신을 노출하는 건데 ‘순수성’을 수호하는 입장에서는 비판의 대상이다. 

‘쇼미더머니’를 예로 들자면 그 프로그램이 시작할 때 힙합 신에는 분명 비판적인 입장을 가진 사람들이 꽤 많았고, 저도 동일한 생각이라 반대 의사를 밝혔습니다. 그런데 그게 ‘쇼미더머니’를 넘어 ‘아예 미디어에 나오면 안 된다’는 식으로 확대 해석되더라고요. 물론 제가 한 말이 달리 해석되고 퍼지는걸 다 주워 담을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의 제 생각은, 우리의 활동이 백 퍼센트 순수 창작예술이라면 저만 듣고 만족하면 되겠지만 결국엔 남에게 들려주는 대중음악이잖아요. 이제는 사실 제 음악을 알리기 위해 계단을 한 발 딛느냐와 열 발 딛느냐는 큰 차이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한편으로 그런 시각이 딥플로우를 언더그라운드라는 공간에 가둬놓는 것은 아닐까.

‘딥플로우는 붐뱁을 추구한다’, ‘딥플로우는 언더그라운드의 수호신이다’…. 그런데 제가 기자 회견을 하고 성명서를 낼 수도 없잖아요(웃음). 흘러가게 놔두는 편이죠.

‘쇼미더머니’에 대한 생각은. 
결과론적으로는 사람들에게 힙합을 많이 알렸죠. 방송 당시엔 몰랐지만, 대략 10년이 지난 지금 보니 새롭게 랩을 하고 힙합을 하는 아이들이 많아졌을뿐더러 그들에게 ‘쇼미더머니’의 영향력이 절대적인 것 같습니다. 물론 래퍼들에게 독과점화 된 플랫폼 등 부정적인 영향도 있어요. 하지만 시대는 계속 변하고 있습니다.

2000년대 초 대거 등장했던 한국 힙합 래퍼들이 현재 3, 40대에 접어들며 과거를 회고하는 듯한 메시지가 두드러지고 있다. “30대 꺾인 래퍼 라인업”으로 출발하는 ’36 dangers’ 역시 의미심장하다. 

타의 반 자의 반으로든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 게 얼마 되지 않았어요. 다모임 활동을 하면서 묘한 연대감을 느꼈죠. 저도 VMC에서 보일링 프로젝트(Boiling Project)를, 더콰이엇은 랩 하우스(Rap House)를 진행하며 각자 나름의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공통점이 다가왔던 것 같아요. 지금까지는 그냥 각개전투였다면, 이제는 ‘지금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가 다음 세대에게 줄 영향을 결정한다’는 생각이죠. 나비효과처럼요. 자아성찰을 많이 하게 돼요.

딥플로우의 랩은 과거부터 20대 초중반에서 흔치 않은 묵직한 플로우와 음색을 갖고 있었다. 30대의 이야기를 하는 <FOUNDER>에선 ‘넉넉하다’는 느낌까지 들었다. 본인의 랩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제 주위 사람들은 워낙 제 랩에 노출되어있다 보니 익숙해해요. 사실 항상 궁금하거든요. 사람들이 내 랩을 어떻게 생각할지, 내가 랩이 어떻게 들릴지를요. 모니터링 과정에서 워낙 좋아해 주는 친구들도 있지만 힙합을 많이 접하지 않은 분들은 제 스타일이 지루하다고 이야기하기도 해요. ‘그게 내 랩의 단점이구나’ 싶을 때도 많아요. 제가 표현하고 싶은 분야는 무척 많은데, 하나의 모드로 굳어져있는 게 아닌가 싶거든요. 그런 점들을 밀도 있게 잘하고 싶은데, 쉽지 않습니다(웃음).

마지막으로 <FOUNDER> 이후의 딥플로우를 전망한다면.

사업가 딥플로우와 래퍼 딥플로우 모두 연결이 되어있어요. 활동 없이 경영만 하면 제가 회사의 핵심 인물이라 사업이 안 될 거고, 그렇다고 활동 안 하고 경영만 할 수도 없죠. 꾸준히 좋은 작품을 발표하며 VMC의 생명을 유지하는 게 목표입니다.

인터뷰 : 임진모, 김도헌, 임동엽, 이홍현
정리 : 김도헌
사진 : 임동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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딥플로우(Deepflow) ‘Founder'(2020)

평가: 4/5

고전적인 할리우드 포스터 스타일의 앨범 커버 아래 예스러운 밴드 연주가 펼쳐지며 오래된 필름이 돌아간다. 빅딜 레코드, 지기 펠라즈, 비스메이저(VMC)를 거치며 오랜 시간 주류와 타협하지 않고 고집스레 자리를 지켜온 래퍼, 헤비 누아르 < 양화 >로 ‘당산대형’이라 불리게 된 빅 브라더, 그럼에도 이후 미디어에 적극 출연하며 논란의 중심을 가져온 보스, 딥플로우의 이야기다. 

< 양화 >가 한국형 갱스터 영화를 닮았다면 < Founder >는 모든 부분에서 고전을 의도하고 있다. 우선 이 앨범의 소리는 808 베이스와 드럼의 힙합 비트가 아니다. 프로듀서 반루더(TK)와 밴드 프롬올투휴먼, 리얼 세션들의 손에서 빚어진 빈티지한 소울, 알앤비, 재즈와 블루스다. 유명 곡을 샘플링하거나 과거의 유산을 소환하는 대신 2010년대 중반 고스트페이스 킬라(Ghostface Killah)의 커리어가 연상되는 밴드 합작을 통해 손수 리프를 만들고 라이브의 느낌을 강조한다. 완성도에 대한 고집을 밀어붙인 결과물이다. 

이는 작품이 딥플로우의 삶을 투영하여 펼쳐 놓은 가장 개인적인 이야기이기에 가능한 시도기도 하다. 유년기부터의 경험과 기억을 파편처럼 제시하여 좌우 교차하는 ‘Panorama’부터 마지막 ‘Blueprint’까지, 모든 기록은 ‘실제로 일어난 일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 그 주요 시간대는 2010년대 초 생존을 위해 발버둥 치던 시절부터 기획사의 사장직에 오른 현재까지다. “이 앨범은 내 영화의 오리지널 사운드 트랙이다”라는 아티스트의 설명이 정확하다. 13개의 단편 영화 모음집이 아니라 38분짜리 한 편의 작품이다. 

미디어와 타협한 후 ‘변절자’라는 비판을 받은 이후의 결과물이기에 앨범은 자칫 대중에게 자기변호로 비칠 위험이 있다. 그러나 딥플로우의 영리한 화술은 그런 비판적 렌즈를 모두 거둬들일 정도로 효과적이다.

VMC의 경제적 곤궁 시기를 상징하는 숫자 ‘500’이 확장되는 과정을 살펴보자. 막막한 현실과 불투명한 미래를 타개하기 위한 최소한의 소득이 ’Low budget’에서 극적인 성공가도로 연결되고, 그 성과를 멤버들과 함께 ‘품질보증’으로 치하한 후 복잡한 사업자 등록 과정의 ‘대중문화예술기획업’을 거쳐 ‘500짜리 계약서가 이제 뒤에 0이 아홉 개’의 ‘Big deal’로 거듭나는 이야기 구조가 대단히 통쾌하다. 뜻밖의 행운이나 허세 가득한 과시 대신, 절박함이 낳은 성공임을 강조하고 있다.

‘사업가 딥플로우’의 성장 스토리 이후엔 ‘인간 류상구’의 고백이 다가온다. 산전수전 다 겪은 베테랑 래퍼의 현실적인 시선이다. 넉살과 함께 지난 몇 년간의 성공 이면을 돌아보는 ‘Harvest’, ‘돈을 버는 거야 쉽지 / 근데 돈을 쓰는 건 더 쉽지’라는 ‘BEP’의 독백에는 교만이 없다. 오히려 ’36 dangers’처럼 자본과 미디어에 의해 거대한 엔터테인먼트 시장이 된 힙합 신에서 자신의 위치를 어떻게 가져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과 씁쓸함이 짙다. 변화의 과정 속 얻는 것과 잃는 것을 부가가치세에 비유한 ‘VAT’의 비유는 특히 날카롭다. 

정공법(正攻法)으로 승부했다. 미디어가 사랑하는 래퍼, ’30대 꺾인 래퍼 라인업'(’36 dangers’) 등의 틀에 갇히지 않고 베테랑, 사업가, 사장으로 풀어낼 수 있는 삶의 궤적을 꾸밈없이 공개하며 깊이를 더한다. 서사를 뒷받침하는 기술적인 차원에서도 아무나 할 수 없는 ‘공들이기’ 과정을 통해 숱한 범작들과 다른 차원에 위치한다.

사업가와 엔터테이너의 포지션을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결국 음악으로 답했다는 점이 중요하다. 과연 ‘대형(大兄)’이다.

– 수록곡 –

  1. Panorama
  2. 500 (Feat. 최항석)
  3. Low budget
  4. 품질보증 (Feat. ODEE, 넉살, Don Mills, 우탄)
  5. 대중문화예술기획업
  6. Big deal (Feat. 화지)
  7. Harvest (Feat. 넉살)
  8. BEP
  9. Dead stock (Feat. QM)
  10. VAT
  11. 36 dangers
  12. Pretext interlude
  13. Blueprint (Feat. 정인, Rohan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