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쉭(Chic) ‘Risque’ (1979)

평가: 4.5/5

밴드 Chic. 이들의 이름이 익숙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보다 거시적인 관점에서 이들의 영향 아래 노출되지 않은 뮤지션은 거짓 조금 섞어 (거의) 없다. 1970년대 중후반 디스코가 발족한 이후 전 세계가 ‘토요일 밤의 열기(Saturday night fever)’로 들썩이던 그때, 중심에는 밴드 쉭이 있었다. 평단과 대중에게 가장 높은 평가를 받는 < Risque >를 통해 그룹의 가치와 음악적, 역사적 맥락을 되짚어 봤다.

나일 로저스와 버나드 에드워즈
연주자가 밴드의 대표가 되는 경우는 많지 않다. 쉭은 다르다. 그들의 대표곡 ‘Le freak’, ‘Good times’를 꺼내 들었을 때 단박에 ‘아, 이 곡!’ 하며 익숙한 선율을 떠올리겠지만 노래를 부른 보컬의 이름은 알지 못한다. 쉭은 명백히 기타의 나일 로저스와 베이스의 버나드 에드워즈의 것이었다. 1996년 에드워즈가 폐렴으로 세상을 뜨기까지 이들의 생명은 계속해서 같이 이어졌다.

1970년대 중반 ‘디스코텍(discotheque, 지금의 클럽)’에서 이름을 딴 ‘디스코’가 세상에 내려앉았다. 반복되는 리듬과 이렇다 할 가사 없이 철저히 즐거움에 초점 맞춘 노래는 종종 가벼웠고 정확히는 가볍게 보였다. 도나 섬머, 비지스 등이 디스코 열풍을 점화했다. 로드 스튜어트는 ‘Da ya think I’m sexy?’로, 롤링 스톤스는 ‘Miss you’로 그 시류에 안착, 빌보드 싱글차트 정상을 차지한다.

그러나 디스코에는 시대가 담겨있다. 춤추고 춤추며 잊고자 한 것은 베트남 전쟁의 상흔이다. 1975년 베트남전이 열었던 문을 잠그자 과거를 잊게 하는 밝은 곡들이 쏟아졌다. 그중에서도 쉭은 가장 정치적이었다. 밴드의 원 그룹명이 ‘알라 앤 더 나이프 월딩 펑크스(Allah & the Knife Wielding Punks)’ 즉, ‘알라신과 칼을 휘두르는 펑크족’일 만큼 그들은 뭔가 달랐다.

Good times
이들의 음악에는 은유적인 가사가, 그래서 시대적인 메시지가 담겨있었다. 특히 음반의 첫 곡이자 대표곡 ‘Good times’는 당시 미국 경제 침체를 향한 시선을 함축적으로 나타낸다. ‘지금은 좋은 시간이며 운명을 바꿀 수 없으니 자이브와 지르박을 춥시다’라는 외침. 여기에는 잔혹하고 동시에 일리 있는 낙관이 넘실거린다.

8분의 러닝타임 동안 단 두 개의 코드만을 오가는 곡은 전작 < C’est Chic >(1978)의 ‘Le freak’ 이후 차트 정상에 오른 유일한 곡이다. 동시에 역사상 가장 많이 샘플링된 노래이기도 하다. 싱글이 공개된 1979년 슈가힐 갱의 ‘Rapper’s delight’에 샘플링된 것을 시작으로 그랜드 마스터 플래시의 ‘Adventures on the wheels of steel’, 블론디의 ‘Rapture’, 퀸의 ‘Another one bites the dust’까지 곡의 잔류가 흐른다.

리듬, 박자, 변화
또 하나 쉭의 강점은 멈추지 않고 반복되는 리듬에 있다. 수록곡 ‘My feet keep dancing’을 들어보자. 여성과 남성의 보컬이 교차하며 합을 쌓다가 적소에 등장하는 박수 소리는 곡의 매력을 십분 살린다. 초기 히트곡 ‘Dance, dance, dance (yowsah, yowsah, yowsah)’와 같이 리듬을 부각하는 클랩비트의 등장. 이는 그룹이 쫀득한 리듬과 박자의 뽑아내고자 얼마나 골몰했는지를 증명한다.

앨범의 또 다른 히트곡 ‘My forbidden lover’ 역시 마찬가지. 펑키한 리듬감으로 무장해 작품의 무드를 잇는다. 이렇듯 이즈음 쉭의 음악은 팝 역사상 처음으로 리듬이 노래의 핵심 요소로 자리하는 데 일조했다. 1979년 ‘디스코 파괴의 밤(Disco Demolition Derby)’으로 짧고 강하게 끓어올랐던 디스코 붐이 내리막길로 접어들지만 이들의 음악은 계속해서 영향력을 뽐냈다. ‘랩’과의 조우. 강렬한 리듬감 위에 놓인 빽빽한 가사들은 1980년대 언더그라운드 흑인 음악 신을 시작으로 점차 세상을 정복했다.

‘디스코’로 연결하다!
나일 로저스와 버나드 에드워즈가 쏘아 올린 축포는 1979년을 ‘디스코의 시대’로 만들었다. 실제로 외국의 한 평론가는 이 음반을 디스코 시대를 정의한 음반으로 뽑기도 한다. 이렇게 등장한 나일 로저스는 이후 데이비드 보위의 ‘Let’s dance’, 듀란듀란의 ‘The reflex’ 등을 프로듀싱하며 음악적 역량을 펼쳤다. 특히 마돈나의 두 번째 정규음반 < Like A Virgin >을 매만지며 그는 ‘디스코풍’ 음악의 매력을 계속해서 사회와 연결했다.

디스코의 흔적은 어디에나 있다. 완연히 주류로 올라온 랩과 힙합에도, 하우스 등의 전자음에도 디스코가 묻어있다. 그러니 쉭을 듣는다는 것은 그 음악의 뿌리를 듣는다는 것과 같다. 오늘날 나일 로저스를 쉭의 멤버보다는 2013년 다프트 펑크와 함께한 ‘Get lucky’로 기억할 가능성이 크다. 아무렴 어쩌랴. 그렇게 디스코는 그리고 쉭, 나일 로저스는 디스코를 이어가고 있다.

– 수록곡 –
1. Good times
2. A warm summernight
3. My feet keep dancing
4. My forbidden lover
5. Can’t stand to love you
6. Will you cry
7. What about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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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bum KPOP Album

오마이걸(OH MY GIRL) ‘Dear Ohmygirl’ (2021)

평가: 3/5

1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차트를 지키고 있는 히트곡 ‘Dolphin’과 ‘살짝 설렜어’로 7인조 걸그룹 오마이걸은 대세의 반열에 올랐다. 그만큼 팬덤 위주의 케이팝 시장에서 < Nonstop >이 일으킨 반향은 엄청났다. 톡톡 튀는 발랄함과 밤하늘을 유영하는 서정적인 이야기로 기반을 다져온 팀에게 전작은 분명 평범한 편이었지만 인지도 상승을 위해 이만한 묘수도 없었다. < Dear Ohmygirl >은 다시 한번 익숙한 장르를 앞세워 입지 굳히기에 나선다.

흥겨운 선율의 타이틀 ‘Dun dun dance’는 세계적인 디스코 유행에 뒤늦게 탑승한 만큼 따라 부르기 쉬운 멜로디에만 의존하지 않는다. 복고풍 악기 연주 사이의 트랩 비트는 단조로울 수 있는 진행에 반전을 주며 무한 재생을 이끄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리드미컬한 후렴구와 끝을 올리는 밴딩 처리는 각자의 특색을 도드라지게 하며 무더위를 날려버릴 만큼 청량하다.

펑키(Funky)한 리듬 이후엔 기존 정서를 담아내며 몽환적인 분위기를 잡는다. 부제에 걸맞게 꿈에서 뛰어노는 듯한 ‘나의 인형’은 순수한 어린 시절을 그리는 노랫말과 음향 왜곡 효과가 환상 동화 한 편을 들려준다. 허스키한 음색이 어우러진 보사노바 느낌의 ‘초대장’도 팬과의 만남을 기다리는 본인들을 미지 행성의 외계인에 비유하며 특유의 캐주얼한 면모를 뽐낸다.

전곡에 걸친 라이언 전의 프로듀싱은 ‘Dolphin’의 흥행 공식을 답습한다. 앞선 작품의 게임 세계관을 이어간 ‘Quest’는 8비트 사운드를 중심으로 단순한 짜임새를 보인다. 간소한 구성과 차분한 보컬이 성숙해진 감성을 조명하는 건 사실이지만 전체적으로 나른함을 안기는 변수가 되기도 한다. 이와 같은 흐름 때문에 비바람을 뚫고 온 백조들의 피날레 ‘Swan’이 드라마틱한 전개에 비해 짧은 여운만 남기고 금세 머릿속을 떠난다.

활기차면서도 신비로웠던 가요계 새싹들이 뿌리를 내린 지 어느덧 6년. 짧지 않은 기간이지만 트렌드를 무조건적으로 수용하지 않았고 고유의 정체성을 지키며 끝내 울창한 숲을 이뤄냈다. 신록의 계절을 맞이한 음악엔 산들바람 같은 선선함이 감돈다. 따스한 햇살을 받고 자라날 오마이걸의 그늘로 더 많은 지구인들이 몰려들고 있다.

– 수록곡 –
1. Dun dun dance
2. Dear you (나의 봄에게)
3. 나의 인형 (안녕, 꿈에서 놀아)
4. Quest
5. 초대장
6. Sw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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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Feature

[특별 기획 ‘미국’] 4. PRIDE: 팝 음악 속 ‘퀴어 코드’의 이면

댄스음악은 현재 대중음악의 주요 문법이다. 딥하우스나 디스코처럼 클럽 문화에서 탄생한 비트들에 기반한 음악이 인기를 끄는 흐름은, 비주류의 문화가 주류사회로 흘러나오는 흐름이기도 하다. 혐오를 피해 언더그라운드에서 모일 수밖에 없었던 퀴어 커뮤니티는 이 맥락의 핵심을 차지하고 있다. 사회정의(social justice)가 갈수록 큰 화두로 작용하면서 많은 퀴어 뮤지션들의 목소리가 주목받고 있고, ‘퀴어 코드’는 이제 유행의 한 요소로 작용하는 듯 보이기도 하지만, 이 현상들은 어느 날 갑자기 발현된 것이 아니다. 퀴어 커뮤니티의 문화는 알게 모르게 오랫동안 대중의 사랑을 받아왔다.

퀴어 문화의 요소를 읽어내려면 그 기저에 깔린 정서를 알아야 한다. 그 출발점은 미스핏(misfit)의 입장이다. 성 소수자는 성 정체성이나 역할에 대한 사회의 통념 속에 깔끔하게 들어맞지 않는다. 게다가 우리 사회는 이런 ‘부적응자’들, 특히 성 소수자들을 향해서는 노골적으로 혐오와 폭력을 휘두른다. 그렇기에 많은 성 소수자들은 생존을 위해 자신의 정체성을 숨기고, 다른 자아를 연기한다. 일상이 일종의 퍼포먼스인 셈이다. 자아를 억누르지 않고도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자리를 차지할 수 있는 세상에 대한 열망은 퀴어 예술의 중요한 테마다.

하우스와 디스코에 맞춰 보그를 추며 잠시나마 자신을 내려놓던 퀴어 커뮤니티의 문화는 주류사회의 외면 속에서 피어났지만, 그 정서는 대중음악 깊숙이 침투해있다. 아바의 ‘Dancing queen’이나 글로리아 게이너의 ‘I will survive’ 등 1970년대 디스코곡들로 대표되는 퀴어 찬가(anthem)의 계보는 마돈나의 ‘Vogue’, 레이디 가가의 ‘Born this way’를 거쳐 두아 리파의 ‘Physical’까지 내려온다. 모두 화려한 조명과 반짝이는 의상이 어울리는, ‘글램'(glam)이 있는 음악이다. 이런 강렬한 비주얼은 오직 클럽에서만 ‘정상’ 취급 받는다는 점에서 퀴어 커뮤니티와 입장을 같이한다.

맥락이나 정서와 별개로, 퀴어 문화를 사용하는 것 자체가 ‘힙’해진 세상이 왔다. 퀴어 커뮤니티가 주류 담론에서 낼 수 있는 목소리가 커지기도 했고, 언더그라운드의 문화는 언제나 주류의 문화보다 한발 앞서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성 소수자의 문화를 전유하는 현상도 나타나고, 이 문화를 ‘제대로’ 대표하고 전파하는 게 뭔지에 대한 논란도 보다 크게 불거진다.

케이티 페리의 2008년 싱글 ‘I kissed a girl’을 보자. 빌보드에서 7주 연속 1위 했던 이 곡은 얼핏 보면 동성애를 지지하는 노래 같지만, 막상 성 소수자들은 자신을 대상화하는 시선이라며 반발했다. 케이티 페리 본인이 퀴어 커뮤니티에 기여한 맥락이 없는데 갑자기 이런 노래를 냈고, 가사 내용에서도 정체성에 대한 진지한 고민은 찾아볼 수 없다. 다른 행보나 발언에 비추어 봤을 때 이 노래는 그저 ‘여성끼리 키스하면 섹시하다’라는 일차원적인 사고로 읽힌다는 것이다. 실제로 케이티 페리는 곡이 나온 10년 뒤, 가사 내용이 부적절했음을 인정하고 곡을 지금 냈다면 ‘일부 수정’했을 것이라고 인터뷰했다. 실제로 곡을 다시 내지는 않았다.

반면 공개적으로 커밍아웃했고, 성 소수자로서의 경험을 음악에 꾸준하게 담아온 프랭크 오션도 문화 전유에 대한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는 1980년대의 HIV 패닉을 화두로 삼아, ‘만일 퀴어 커뮤니티와 그 문화가 사회적으로 내몰리지 않았다면’을 상상하는 클럽 파티 프렙(PrEP+)을 2019년 개최했다. 그러나 소수의 인원에게만 초대장이 주어졌고, 그 구성원들도 대다수가 백인에 성 소수자도 아니었다고 전해져 파티는 실패로 평가된다. 힙스터 무리에 매몰되어 막상 성 소수자들이 자유롭게 자신을 내려놓을 수 있는 ‘안전한 공간'(safe space)은 만들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저 경제적 이익을 취하기 위해 성 소수자의 문화를 다루는 퀴어 베이팅(queer-baiting)과, 실제로 커뮤니티를 지지하기 위한 협력자(ally)로서의 노력은 한 끗 차이다. 이를 구분해낼 때 중요한 것은 무대의 중심을 어떤 캐릭터와 서사가 차지하고 있는지다. 정답은 없고 오답은 많은 영역이지만, 소수자들이 온전히 존재할 수 있는 안전한 공간을 사회 전반으로 확대하려면 필요한 시행착오다. ‘퀴어 코드’ 역시 한순간의 유행이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