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운 ‘디스토피아’마저 쇠락하고 사회를 지탱하는 모든 것이 무너진 종말의 세계, ‘아포칼립스’ 3부작에 돌입한 드림캐쳐의 최근 핵심 악기는 바로 기타다. 문명의 상징인 전자음의 비중을 줄이고 인간미를 대동한 강렬한 록 사운드로 재건 의지를 내비치는 것이다.
강한 디스토션 효과와 메탈 풍의 ‘Maison’과 ‘Vision’이 그 현장을 묘사했다면, 서사의 마무리를 장식하고 희망찬 미래를 그리는 ‘Bonvoyage’의 걸음은 한결 가볍다. 쨍한 선율과 잔잔한 어쿠스틱 연출은 본래 어둡던 작풍에 따스한 햇빛을 쬐고, ‘Sleep-walking’에서도 선보인 바 있는 공격적인 브레이크비트는 기존의 용법과 달리 긍정 에너지가 가득하다. 코어적인 정체성은 유지하면서도 밝은 분위기를 통해 신선함과 대중성을 부여했다.
하이라이트 전후로 등장하는 보컬 배분이 그렇다. 지유가 쏘아 올린 사뿐하고 밝은 토스를 유현이 부드럽게 받고, 뒤이어 메인보컬 시연의 폭발적인 성량이 스파이크를 날리는 콤보는 충분히 편안하면서도 분명한 인상을 남긴다. 그룹에 순풍이 찾아왔다.
드림캐쳐의 생존방식은 양날의 검이었다. 뚝심 있게 밀어붙인 메탈 콘셉트가 케이팝 시장에서 고유한 영역을 구축했지만 매니악한 사운드는 중심부로의 진입을 방해했다. 차근히 다져온 입지를 넓히기 위해 EDM과의 융합을 시도한 것도 그 때문이다. 일방향 콘셉트에서 벗어나 변화의 분기점으로 맞이한 디스토피아 3부작은 그룹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도 적절한 장르적 변용에 성공한 앨범이었다.
아포칼립스의 포문을 여는 두 번째 정규음반 < Apocalypse : Save Us > 역시 신스팝 ‘Starlight’와 ‘Together’ 등 전자음악의 비중이 컸지만 중심을 잃지 않았다. 록에 펑크(Funk)를 가미한 ‘Locked inside a door’와 금속성 재질의 메탈 기타가 돋보이는 ‘Maison’은 앨범을 매력적인 첫 에피소드로 만들었다.
시리즈의 두 번째 이야기인 < Apocalypse : Follow Us >는 구심점이 흔들린다. 인트로에서 록 음악의 기악적 요소를 덜어내고 신시사이저와 전자드럼을 전면에 내세워 완전한 변화를 꾀하나 싶다가도 이어지는 ‘Vision’에서 부조화스러운 전자음이 메탈 사운드와 혼재해 애매한 방향성을 남긴다. 발라드곡 ‘이 비가 그칠 때면’ 역시 앨범의 전체적인 분위기와 동떨어져 물음표가 찍힌다.
장르적 스펙트럼을 넓히려는 시도가 궤도를 잃고 헤매는 결과를 낳았지만 중반부에 수록한 ‘Fairytale’과 ‘Some love’가 흔들리는 선체를 바로 잡는다. 비교적 데뷔 초 향취를 유지한 두 곡의 선명한 멜로디와 직선적인 록 사운드가 드림캐쳐만의 색깔을 유지한다.
독특한 시도에 그칠 수 있던 모험수로 자신만의 영역을 확장해왔다. 케이팝 시장의 본격적인 글로벌화와 맞물린 배경 덕도 있지만 그룹이 나아가는 방향에 대한 확신으로 이루어낸 성공이다. 기존의 훌륭하게 사용해왔던 무기를 등질 필요 없이 어지러운 아포칼립스를 그들만의 방식으로 헤쳐 나아가야 한다.
-수록곡- 1. Intro:Chaotical X 2. Vision 3. Fairytale 4. Some love 5. 이 비가 그칠 때면 (Rainy day) 6. Outro:Mother nature
< Raid of Dream >(2019) 이후 새로운 방향 설정이 유효했음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흥미로운 스토리텔링과 록/메탈 장르 간의 과감한 결합. 이들은 현 시류 간 타협거부에 대한 대가를 콘텐츠의 완성도로 메워 놀라운 성과를 일구어 냈다. 그럼에도 마냥 기뻐할 여유는 없었을 테다. 이런 비주류 행보에 어색해하는 이들을 새 지지층으로 포섭해야만 하는 시점이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
앞서 선보인 두 장의 디스토피아 시리즈는 어느 정도 해답을 제시한 결과물이었다. 타이틀인 ‘Scream’과 ‘Boca’는 EDM 사운드를 적극 도입한 크로스오버로 트렌드와의 거리감을 좁혔으며, 기존의 강한 디스토션 넘버는 수록곡으로 배치해 밸런싱 조절의 나선 것. 새로운 무언가를 도입하는 대신, 본래 그룹의 음악에 있던 요소를 재배열해 구축한 명민함은 점수를 주기에 충분했다.
이번 미니앨범은 그러한 기조를 이어가되, ‘그것이 옳았다’는 자신감을 동반한다. 초반부터 강하게 치고 나가는 ‘Intro’가 그 예시로, 타이트하고 하드한 일렉트로니카 사운드가 자신들의 음악이 ‘구성요소/장르’보다는 ‘느낌/이미지’로 정착했음을 이르게도 알려주고 있는 것. 이어지는 타이틀 ‘Odd eye’는 그간의 노하우를 통한 수준급의 융합을 보여준다. 전체적인 구성은 EDM을 따르되, 트랩 비트의 버스(verse)와 디스토션 기타 중심의 후렴이 무리 없이 조화되고 있다는 점. 공격적인 사운드를 무리 없이 맞받아치는 멤버들의 가창까지 더해지면 어디서도 비교 불가한 드림캐쳐 음악이 완성되는 셈이다.
‘바람아(Wind blows)’는 ‘Odd eye’와 유사한 궤적을 그리되, 소절에 따라 바뀌는 장르 구성을 보다 역동적으로 구사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만하다. 그런가 하면 ‘시간의 틈(New days)’은 ‘록’이라는 장르에 보다 집중해 긍정적이고 활기차게 러닝타임을 마무리하는 트랙이다. 개인적으로는 초기 타이틀곡인 ‘You and I’나 ‘날아올라’, ‘Chase me’과의 접점이 느껴지기도. 이어 중저음 위주의 칠한 일렉트로니카 음악을 표방하는 ‘Poison love’와 트로피컬 하우스를 적극 끌어와 아려한 정서를 곡 전반에 투영시키는 ‘4 Memory’까지. 다섯 트랙이라는 넓지 않은 바운더리에서 팀의 현재와 미래가 이상적으로 공존하고 있다는 점이 고무적이다.
강조하고 싶은 것은, 앞서 언급했듯 그간 구축해 온 정체성의 균열 없이 방향성의 재정립만으로 더욱 높은 곳으로의 항로를 그려냈다는 점이다. < Dystopia > 시리즈에서 그들이 전하는 음악적 심상은 분명 이전과는 다르지만, 생각해보면 그 요소들은 이전에 모두 경험한 것들이었다. ‘Sleep-walking’이나 ‘Trap’과 같은 곡들은 그 증거로 제시할 수 있는 대표적인 노래들일 터.
결국 전곡에 참여하며 조타수를 잡은 올라운더(Ollounder)와 리즈(LEEZ)에 대부분의 공을 돌릴 수밖에 없다. 장르에 대한 높은 이해도를 등에 업고 팀에게 꼭 들어맞는 독자적인 스타일을 주조해냈다는 점은, 결국 이 성공 서사에서 절대적인 부분일 터이기에.
정형화된 성공의 길만 좇느라 다양성은 도외시 되는 시대. 블루오션을 공략해 균열을 일으키는 그들의 등장과 활약은 참으로 반갑다. 더불어 이를 단순히 운으로 보는 시선은 경계했으면 한다. 성적 위주의 신에 매몰되지 않고 자신들만의 기획과 음악 세계를 끈기 있게 유지해 왔기에 맞이한 ‘필연적인 결과’이기도 하니 말이다.
이 작품은 그들의 성과를 가시화함과 동시에, ‘마니악함’에서 벗어나 ‘새로운 유형의 케이팝 그룹’을 정의하는 데에 있어 명확한 근거로 활용될 여지가 다분하다. 성과를 위해 장기적인 안목을 포기해야 하는 요즘. 치밀한 설계도면을 기반으로 유지해 온 고집과 꾸준함은 그 시대상에 반기를 든다. 자신들의 꼬리를 따라다니던 악몽을, 결국 스스로의 손으로 종식시킨 셈이다. 남은 것은 유토피아로 향하는 것뿐.
– 수록곡 – 1. Intro 2. Odd eye 3. 바람아(Wind blows) 4. Poison love 5. 4 Memory 6. 시간의 틈(New days) 7. Odd eye(Inst.)
세계관이란 개념을 보편화한 최근의 케이팝 아이돌 중에서도 드림캐쳐의 노선은 확실하다. 악몽이란 소재를 뿌리 삼아 뻗어가는 어둡고 몽환적인 그들의 이야기는 주류와 동떨어진 묵직한 메탈 사운드로 발현된다. 의아했던 장르적 선택은 그룹의 서브컬처 적인 특성을 보필하며 완성도를 높였고 확고한 색깔로써 자리 잡았다.
그들은 한 발자국 더 나아갔다. 일본의 직선적인 록이 떠오르던 초기 곡들과 달리 꿈에서 현실로 디스토피아를 옮겨온 전작 < Dystopia : The Tree of Language >의 타이틀 ‘Scream’은 기존 음악 스타일을 기반으로 일렉트로니카와의 결합을 시도했고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는 데 성공했다. 기조를 이으며 발매한 다섯 번째 미니앨범 < Dystopia: Lose Myself >는 드림캐쳐의 정체성과 변화의 중심에서 충실하게 균형을 이뤄내며 앞으로 전개될 서사를 견인한다.
뭄바톤을 토대로 드림캐쳐의 색채를 쌓아 올린 ‘BOCA’는 보컬과 비트를 전면에 내세운 절과 타악기와 목소리 샘플 위 랩으로만 꾸려진 간주 등에서 이전에 찾아볼 수 없던 리듬감을 선보인다. 다만 뼈대는 록이다. 드럼이 고조되며 등장하는 후렴구는 멜로디를 걷어낸 여백을 강렬한 일렉트릭 기타 리프로 채우며 그룹의 자아를 다시 한번 각인한다. 각기 다른 두 개의 형태가 기승전결을 거치며 조화되기에 안정적이다.
앨범은 2000년 대의 고딕 메탈을 연상케 하는 ‘Break the wall’과 프로그레시브 하우스 ‘Can’t get you out of my mind’, 발라드곡 ‘Dear’로 다양성을 확보하며 목적을 뒤받친다. 세 개의 수록곡은 그룹의 특색을 유지하는 동시에 메시지를 표현할 여러 방법을 고민한 결과이다.
드림캐쳐가 걸어온 길은 뚜렷하나 화려하진 않았다. 그룹의 특이점은 매력적이나 대중과의 접점은 분명한 거리가 있었다. 그럼에도 무뎌지지 않았다. 그들이 심은 세계는 착실하게 성장해왔고, < Dystopia: Lose Myself >란 열매를 맺었다.
– 수록곡 – 1. Intro 2. BOCA 3. Break the wall 4. Can’t get you out of my mind 5. Dear 6. BOCA (In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