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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진석 인터뷰

과거 MBC 예능 프로그램 < 러브 하우스 >에 출연했던 양진석은 건축가이기 전에 가수다. 1988년 ‘노래그림’이란 4인조 그룹으로 데뷔했던 그는 건축 유학을 위해 팀을 그만두게 됐지만 귀국 후 1995년부터 다시 개인 앨범을 발표하며 음악 생활을 이어갔다. 작품의 성패와 상관없이 꾸준히 작업을 이어오던 그가 10년 만에 정규 앨범 < Barn Orchestra >로 돌아왔다.

양진석이란 이름으로 앨범을 낸 건 이번이 여섯 번째인데 6집에선 그의 목소리가 빠져있다. 대중가요에서 가장 중요한 가창을 배제한 작품이 정체성을 약화시킬 수 있음에도 후배들의 목소리로 채워 넣은 것이다. ‘건축을 음악 하는’ 사람답게 회사 건물 지하에 마련된 작은 공연 공간에서 인터뷰를 진행했다. 하나에 매몰되지 않는 다양성 주의자 양진석을 만나 신보의 새로운 접근 방식에 대해 심도 있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송라이터 보다 싱어의 이미지가 강한 분인데 본인의 목소리를 완전히 없애는 파격적인 결정을 어떻게 내리게 되었나요?

몇 년 전부터 음악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보면서 요즘 유행하는 음악과 원래 좋았던 음악에 대해 심사위원의 마음으로 나름 정의를 내렸어요. 그 기준을 두고 저를 돌아보는데 제가 작사, 작곡에 노래까지 해버리면 정말 트렌드에서 빗나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리고 하루는 < 7080콘서트 >를 보는데 당장 저부터 동의하기 어려웠어요. 저에겐 여전히 스타이신 분들이지만 창법이나 연주, 편곡에서 이미 기성들 외에는 좋아할 수가 없는 구성이었요. 근데 음악은 그런 게 아니잖아요. 혁신적이고 진보적이어야 하는데. 자칫 나도 이 함정에 빠질 수 있겠다 싶었죠.

그래서 처음 들었을 때 ‘컨템포러리’라는 말이 바로 떠올랐거든요. 시대의 호흡, 숨결, 그리고 문법에 맞춰서 이 앨범이 더욱 돋보인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음악만 했다면 이런 부분을 인지하지 못했을 텐데 건축을 같이 하다 보니까 놓치지 않을 수 있었어요. 내가 혹시 올드하지 않나? 시대의 소리를 못 담고 있지 않나? 크리에이터로서 이런 부분에 대한 강박이 좀 있어요. 최근에 리조트 설계를 맡았는데 리조트는 분양이 안 되면 정말 끝이에요. 소비자는 20대부터 60•70대까지 연령대가 다양한데 부모 세대들이 회원권을 사도 아들, 딸들이 안 써주면 리조트는 유지가 안 됩니다. 그래서 모든 걸 만족시키기 위해서 컨템포러리하게 바라보는 것이 습관이 되었고 자연스레 음악도 비슷한 관점으로 보게 된 거죠.

노력을 많이 한다고 해도 어린 친구들의 음악을 맞춰 간다는 게 쉽진 않은데 그런 점에서 이번 앨범이 컨템포러리한 감성을 갖게 되는 데 도움을 준 분이 있을까요?

프로듀싱에 함께 참여한 이주원의 힘이 컸죠. 91년생 친구인데 저랑 형 동생 하면서 요즘 음악에 대해 서슴없이 얘기하거든요. 그 과정에서 많은 아이디어를 주고받고 다시 그 생각들을 바탕으로 같이 작업도 많이 했어요. 제가 멜로디를 만들고 포리듬 편곡 틀을 짜서 지정을 해주면 주원이가 그걸 듣고 요즘 음악으로 해석하는 시스템이죠. 근데 주원이가 이렇게 조미료를 쳐서 만들어내는 결과물은 정말 예술이에요. 어쨌든 저에게 상대적으로 부족한 그들만의 감성을 주원이가 충분히 채워준 거죠.

이번 앨범은 전체적으로 어떤 스타일을 구현하고 싶었나요?

특별한 스타일을 두기보다는 각자에게 맞는 옷을 입혀주고 싶었어요. 그동안 댄스나 발라드를 비롯해서 어린 뮤지션들이 선호하는 곡들을 많이 써줬는데 그때마다 그 친구들의 목소리에 맞게끔 작업을 했어요. 사실 6집에 실린 ‘Late love’는 이미 10년 전에 만들었던 노래입니다. 그때 가이드 녹음을 했던 가수가 토미어인데 이 노래는 아무리 다른 친구들한테 줘도 토미어 외에는 소화를 못 하더라고요.

그런 관점으로 볼 때 작업하면서 가장 잘 풀렸던 곡과 어려웠던 곡은?

별일 없이 진행됐던 건 타이틀곡 ‘고로(孤路)’에요. 80년대 신스팝의 정서를 요즘 사운드로 구현하는 잔나비나 혁오의 음악을 좋게 듣고 있는데 이런 음악을 내가 부르면 너무 촌스러운 느낌이 들어서 어린 친구들을 찾게 됐죠. 사실 탐내는 사람 중에 유명한 분들도 계셨는데 김웅 대표가 기성 가수는 절대 안 된다고, 무조건 새로운 목소리로 해야 한다고 극구 반대를 했어요. 그런데 우연히 가이드 보컬로 참여한 강효준(샴)이 부른 걸 들었는데 딱 이 친구 음악 같은 거예요. 물론 그때는 가이드다 보니까 바로 도장은 안 찍었는데 다른 기성 가수들의 목소리로는 요즘 아이들의 느낌이 안 나와서 결국 효준이가 부르게 됐죠.

반면에 ‘Run run run’은 좀 까다로웠어요. 원래는 제목도 다르고 저를 포함해서 6명 정도가 같이 가창을 한 곡이었는데 하루는 강제규 영화감독님이 오셔서 들어 보시더니 부담스럽다고 하시면서 노래는 아닌 것 같다고 그러셨어요. 그래서 보컬은 빼고 색소폰을 넣어서 녹음을 했는데 너무 좋은 거예요. 감독님도 다시 듣고는 보스턴 마라톤 대회를 주제로 한 차기작에 어울리는 노래라고 하시면서 상의해보고 이 곡을 꼭 쓰고 싶다고 하셨어요.

다른 곡들의 작업기도 궁금하다.

개인적으로 이번 앨범에서 가장 와닿는 곡이기도 한 ‘All of us love’는 제가 아내한테 써줬다가 까인 곡이에요. 대중음악을 안 하는 클래식 아티스트이기도 하고 지금은 딸을 키우느라 정신이 없는데 남편은 밖에서 한가롭게 곡을 만들어 와서 대뜸 연주를 해달라고 하니 기가 차지 않겠어요. 사실 아내가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엔니오 모르꼬네의 ‘넬라 판타지아’ 바이올린 연주를 허락받은 연주자예요. 근데 제가 밥 먹으면서 이 얘기를 꺼냈거든요. 아무리 남편이었어도 제가 정중하게 부탁을 했어야 했는데 아내도 슬쩍 한 번 보고는 답을 안 하길래 까였구나 싶었죠. 근데 또 섭외하다 보니까 첼리스트 임은진 씨가 와이프 고등학교 동기였어요. 나중에 물어보니까 따로 연락을 했다고 하더라고요. 그리고 제가 크리스 보티를 굉장히 좋아하는데 그런 스타일의 음악을 할 수 있는 나팔을 찾다 보니까 유나팔을 섭외하게 되었어요.

‘Second choice’는 사랑과 평화의 ‘장미’를 오마주한 곡인데 제가 펑키(Funky) 한 음악을 듣고 자란 세대라서 제 음악에도 이런 노래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하죠. 곡에 참여한 커먼그라운드는 제가 정말 좋아하는 그룹이에요. 연락은 퍼커션을 맡고 있는 조재범 군을 통해서 했지만 주원이가 키보드를 맡고 있기도 해서 섭외가 더 쉬웠죠.

‘잠이 오질 않아’는 처음에 결혼 축가 곡으로 만들었던 노래인데 만들고 나니까 정작 헤어지는 얘기를 하고 있었어요. (웃음) 서울예대에서 제2의 임재범으로 불리던 동하가 이 곡을 불러서 그런지 애절한 감정이 더 깊어진 느낌도 들고요.

음악과 건축 사이에 어떤 접점이 있다고 생각하나요?

사실 50세 전에는 거의 이론적으로 이야기한 것 같은데 최근 들어서 절실히 느낀 건 건축과 음악 모두 철저하게 외로운 작업이라는 거예요. 물론 중간이나 마지막엔 팀워크에 의해서 완성이 되지만 둘 다 스타트를 끊는 건 무조건 혼자 해야 하는 일이죠. 그래서 제가 한 달에 20일 정도는 팀 단위로 움직이고 나머지 열흘은 혼자 있어요. 일주일에 48시간은 가족과도 떨어져서 연락이 안 되는데 이때 책을 보거나 스케치, 음악 작업을 하는 편이죠. 감성과 이성이 왔다 갔다 한다는 게 쉽진 않아요. 그야말로 외로운 투쟁이죠.

얘기를 들어보니까 외로움이 덕지덕지 붙은 앨범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고로’도 외로운 길이란 뜻이고 ‘토요일 오후’엔 혼자, 혼술 같은 단어도 나오잖아요.

말씀해 주시기 전엔 잘 몰랐는데 듣고 보니까 진짜 그러네요. (웃음)

이 음반을 사람들이 어떻게 들어줬으면 하는지?

가장 욕심을 냈던 부분은 가사예요. 개인적으로 요즘 노랫말이 시적인 표현이나 인문학적인 표현이 부족하다고 생각해서 이번 작품에선 되씹을 만한 가사를 만들어보고 싶었어요. 그리고 멜로디나 편곡 구성이 현대적이라고 감히 말씀드리긴 힘들겠지만 팝적인 요소를 가미해서 올드하진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양진석의 이름과 나이를 모르고 들어도 케이팝에 이런 음악도 있구나 정도 알아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막상 결과물을 본 이후에 본인의 판단이 괜찮았다고 생각하시나요?

물론 100% 만족은 있을 수 없죠. 대중적으로나 평단에서 인정받는 문제와는 별개로 어느 정도 제 음악 인생에 있어서 의미 있는 시도는 한 것 같아요. ‘양진석이 이렇게도 할 수 있구나’라고 자체적으로 의의를 두고 있어요.

현대적인 작업을 시도한 만큼 현시대 음악에 대한 생각도 궁금하네요.

매우 높게 평가하고 있습니다. BTS만 하더라도 이제는 외국 가수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또 협업하는 시대가 되었으니까요. 악뮤, 아이유, 잔나비, 혁오 같은 팀들은 굉장히 관심 있게 보고 한편으론 존경하기도 해요. 특히 아이유는 더 기억에 남는 게 제가 2010년에 세종문화회관에서 공연할 때 게스트로 왔었거든요. ‘좋은 날’ 3단 고음으로 유명해지기 시작할 때였는데 그때만 해도 공연 전에 와서 ‘저희 엄마가 양진석 씨 팬이에요’라면서 수줍게 인사했던 아이였는데 지금은 멋진 아티스트로 성장했죠.

이번 앨범 이후에 계획 중인 곡 작업이나 프로젝트가 있을까요?

7집에 들어갈 노래를 벌써 8곡 정도 작업해 놨어요. 아마 DJ 리믹스 앨범으로 선보이게 될 것 같은데 2집 < Summer Dream > 때부터 이런 음악을 선호했던 사람이라 어떻게 보면 자아를 찾아가는 중이라고 할 수 있죠. 코로나가 종식되면 록 페스티벌이 열릴 텐데 그때 꼭 가면을 쓰고 무대에 서고 싶어요. 무대에 오르는 것을 딱히 좋아하진 않지만 그렇다고 울렁증이 있는 건 아니에요. 가면은 그냥 제가 올드 하단 소리를 들을까 봐 단지 외적인 부분을 가리고 싶어서 쓰려는 겁니다.

과거 활동했던 밴드 ‘노래그림’에 대한 기억은 어떤가요?

여전히 너무 좋죠. 얼마 전에도 (한)동준이가 와서 같이 술 한잔했죠. 옛날에도 둘이 술 많이 먹고 그러면 제가 등에 업고 가다가 잔디밭에 쓰러져서 누워 자고 그러기도 했었죠.

1988년 5월에 저희 첫 앨범이 나왔을 때 (이)수만이 형이 MBC 라디오 DJ를 하셨는데 저희 노래가 맘에 드셨는지 수소문을 해서 자리를 마련하셨어요. 모아놓고 찬찬히 보시더니 수만이 형이 저희 제작을 맡겠다고 하셨는데 저희가 뭐라고 했는지 아세요? “싫어요!” (웃음) 수만이 형이 누군지도 모르고 그런 거죠. 저는 유학 중이라 어려웠고 나머지 멤버들도 애매했어요. 그런데 동준이는 울림통이 좋기도 하고 군 제대를 앞두고 있어서 유일하게 제작에 참여할 수 있었죠.

그러고 나서 곡을 모으는데 그때 김광진이 나타났죠. 당시에 투자 자문 회사를 다니다가 저희랑 연락이 닿았는데 자기가 이대 가요제 나가서 받은 대상 곡이 있다는 거예요. 그러면서 ‘그대가 이 세상에 있는 것만으로’를 들려주는데 곡이 죽이더라고요. 그렇게 광진이도 작업에 참여해서 한동준 1집을 발표했는데 반응은 거의 없었죠. 사실상 한동준과 김광진이 SM 1호, 2호 가수였어요.

변진섭 씨의 ‘새들처럼’을 작곡한 지근식 씨도 빼놓을 수 없죠.

이것도 비하인드스토리가 있어요. 어느 날 제가 기타를 치고 있었는데 근식이가 옆에 와서 무슨 코드냐고 물어보더라고요. 그래서 그걸 듣고는 다음날 갑자기 ‘새들처럼’을 만들어 온 거예요. 처음에는 너무 동요스럽지 않냐면서 살짝 무시를 했는데 화성을 쌓아서 불러보니까 이글스 같은 분위기가 나면서 제법 괜찮더라고요. 그래서 신촌 크리스탈 무대에서 이 곡을 동준이랑 듀엣으로 불렀는데 그날 진섭이가 온 거죠.

진섭이는 87년에 가요제에서 상을 받고 앨범을 준비하던 중이었는데 그때 들은 저희 노래가 맘에 들었는지 술 마시다가 너네는 판 낼 계획이 없으니까 자기한테 주면 안 되겠냐고 하더라고요. 저희도 그냥 알았다고 하면서 가져가라고 했죠. (웃음) 그 당시엔 뭐 저작권 이런 거 잘 신경 안 썼으니까요. 그래서 그때 근식이가 작곡한 ‘새들처럼’, ‘너무 늦었잖아요’ 같은 곡들을 가져갔었죠.

더 웃긴 건 그 이후에 엄용섭 사장님이 스튜디오로 놀러 오라고 하셔서 갔는데 갑자기 저희 보고 녹음실에 들어가라는 거예요. “야, 너희 코러스 해.” (웃음) ‘새들처럼’ 뒤에 깔리는 코러스가 저랑 동준이 목소리에요. 3도 올려서 한다고 목에 핏대를 세워가면서 했는데 정작 세션비로 순댓국 한 그릇 먹었어요. (웃음) 그렇게 인사를 하고 나왔는데 그게 100만장이 팔리면서 근식이는 대박이 났죠. 그래서 지금도 ‘새들처럼’ 들을 때마다 ‘어, 저거 내 목소린데.’ 하면서 듣고 그래요.

오늘날의 양진석을 만든 음악은?

어릴 때 들었던 스틸리 댄의 음악은 정말 충격이었어요. 특히 미디엄 템포에 베이스를 둔 록을 좋아하는데 이번 앨범에 수록된 ‘토요일 오후’ 같은 경우도 스틸리 댄의 영향을 굉장히 많이 받아서 만든 곡입니다. 그리고 비틀스의 퍼포먼스도 크게 와닿았어요. ‘록을 거칠게 하면서 음악을 저렇게도 할 수 있구나’하는 생각이 들게 한 위대한 밴드였죠. 조금 더 커서는 퀸의 음악을 많이 접했죠. 특유의 동양적인 멜로디는 물론이고 피아노 치면서 노래하는 프레디 머큐리의 모습도 인상적이었죠.

앞서 이글스도 얘기하셨는데.

이글스도 맞죠. 세션맨 계보에선 정말 리스펙트 하는 팀이 이글스랑 ELO, 토토 정도가 있습니다. 이 세 팀한테 세션에 의한 록 사운드의 영향을 많이 받았죠.

양진석의 음악은 어떤 의미를 가진다고 생각하나요?

제 일기라고 생각해요. 영화 < 원더풀 라이프 >를 보면 주인공이 세상을 떠나고 저승에서 가장 좋았던 기억을 떠올려요. 제가 굳이 이 영화를 언급을 하는 이유는 현시대에 발표한 내 작품이 인기를 얻고 말고는 저에게 중요하지 않다는 걸 말씀드리고 싶기 때문입니다. 저는 지금의 노래가 누군가에겐 위로가 되고, 메시지가 되고, 큰 도움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음악을 만들고 있어요. 미디어에 남는다는 얘기는 거의 평생 남는다는 얘기잖아요. 양진석이란 이름으로 어떤 앨범을 냈는데 언제 들어도 ‘그 당시에 이 사람이 이런 얘기를 했구나’ 할 수 있게 만들고 싶은 거죠. 건축이 보통 100년, 200년 안에 무너지는 데 비하면 음악은 훨씬 강한 생명력을 가지고 있으니까 절대 질 낮은 타협을 하면 안 되겠다고 항상 다짐하죠.

인터뷰: 임진모, 임동엽, 정다열
정리: 정다열
사진: 임동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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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하 ‘추억은 만남보다 이별에 남아’ (2021)

평가: 1.5/5

어느 면에서도 창의적이지 않다. 정동하의 최근 싱글 ‘Fly Away’, ‘LOVE’가 그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여줬다면, ‘추억은 만남보다 이별에 남아’는 그가 부활에서 노래하던 때를 떠오르게 한다. 곡의 구성과 진행은 익히 들어온 패턴이고, 노랫말은 지루하기만 하다. 정동하는 이 뻔한 노래를 탁월한 가창력으로 포장했다. 그마저도 부활 시절을 연상케 한다는 약점이 있지만, 곡을 그럴듯하게 만든 건 결국 보컬 플레이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