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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Feature

2022 올해의 팝 싱글

유난히도 치열한 경쟁이 펼쳐진 한 해다. 예상치 못 한 고지 점령과 아슬아슬한 추격전, 그리고 통쾌한 정상 탈환까지. 주연과 각본이 쉴 새 없이 바뀌며 반전의 반전을 이룩하던 1년간의 드라마는 어느덧 막을 내렸다. 그 크레딧을 천천히 살펴보며, 차트 내외곽에서 활약을 펼친 그 영광의 10곡을 소개하려 한다. 글의 순서는 순위와 무관하다.

해리 스타일스(Harry Styles) ‘As it was’

새 출발 이후 곧바로 그룹 시절과의 단절을 완수한 해리 스타일스는 올해 ‘As it was’로 완연한 대세에 올라섰다. 자국인 영국에서는 10주 동안 1위를 차지했고, 미국 빌보드 핫 100 싱글 차트의 정상에서는 무려 15주 동안 군림하며 통산 4위의 기록을 세운 것. 심지어 솔로 아티스트로는 최장기간이다. 봄부터 여름을 지나 가을까지, 앨범 제목 < Harry’s House >처럼 1위 자리를 마치 그의 집처럼 드나든 셈이다.

비결은 ‘무자극’이었다. 1980년대 뉴웨이브부터 요즘 인디 록까지 다양한 재료와 향신료를 한데 넣고 섞어, 따뜻하게 속을 데워주는 깔끔한 수프 같은 곡을 완성했다. 그 중심에 놓인 기름기를 쫙 뺀 해리 스타일스의 목소리는 계속해서 노래를 찾게 만드는 정겨운 맛을 내줬다. 정점을 찍은 인기와 물오른 실력이 엇갈리지 않고 동시에 만난 흔하지 않은 케이스다. 그러니 연기로의 외도보다는 음악에 집중해주시길. (한성현)

스티브 레이시(Steve Lacy) ‘Bad habit’

강단 있는 알앤비 록스타가 승리를 쟁취한 방법은 무엇일까. SNS, 챌린지, 차트 줄 세우기, 밈, 방송 등 노래의 성공적인 대중화를 위해 각종 플랫폼으로 홍보에 열을 올리는 작금의 시대에서 그가 선택한 방식은 당연하게도 ‘음악’이다. 빠르게 변화하는 유행만을 좇는 ‘나쁜 습관’에 영원히 지속 가능한 음악으로 일갈을 가한다.

소울 그룹 인터넷의 멤버로 시작해 켄드릭 라마 등 이름난 뮤지션들과 협업하며 일찍이 실력을 인정 받아 2022년 정상에 올랐다. 오롯이 음악만을 생각한 뚝심의 결과. 트렌드의 부정을 역설(力說)했지만, 역설(逆說)적이게도 스티브 레이시는 스스로 유행의 최전선에 섰다. 아무리 급변하는 세상이라도 좋은 음악은 살아남는다. (임동엽)

원리퍼블릭(OneRepublic) ‘I ain’t worried’

초기 히트 공식을 반복한 작법에 따라붙은 자기복제 꼬리표, 그에 따른 평가 절하에도 걱정 따위는 없었다. 폭넓은 장르 도입 너머 보편적 송라이팅을 최우선으로 추구했던 원리퍼블릭의 정성이 다시금 결실을 거둔다. 놀라울 만큼 쉽고 선명하다. 부단한 담금질의 산물인 생생한 멜로디를 연료 삼아 ‘I ain’t worried’는 37년 만에 개봉한 속편 < 탑 건 : 매버릭 >에 탑승해 스크린을 넘어 박스 오피스와 음악 차트 상공을 쾌속 비행했다.

원리퍼블릭의 ‘탑 건` 라이언 테더의 탁월한 프로듀싱 역량은 거듭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대중적 흡인력을 갖춘 록 선율과 경쾌한 휘파람 사운드를 끌어온 샘플링 기법, 공간감을 연출한 편곡까지 엘리트 조종사의 날 선 감각이 올해 절정에 달했다. 시리즈를 상징하는 사운드트랙 ‘Take my breath away’와 ‘Danger zone’의 아성에 과감히 도전장을 내민 신흥 클래식 넘버. 찬사와 홀대를 양득하며 쌓아온 노하우가 결정적 한 방을 터뜨렸다. (김성욱)

켄드릭 라마(Kendrick Lamar) ‘The heart part 5’

켄드릭 라마는 음악의 사회적 기능을 믿는다. 밥 딜런과 보노의 궤를 잇는 흑인 사회운동가는 < Good Kid, M.A.A.D City >(2012)와 < To Pimp A Butterfly >(2015), < Damn >(2017)의 명반 퍼레이드로 평단의 찬사를 독식했고 랩 뮤직의 시초격인 소울 뮤지션 질 스콧 헤론(Gil Scott-Heron)과 퍼블릭 에너미가 주도했던 폴리티컬 힙합을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그의 파급력을 다시금 공고하게 한 다섯 번째 정규 앨범 < Mr. Morale & The Big Steppers >의 프로모션 싱글 ‘The heart part 5’는 자전적 특성을 담은 ‘The heart’ 시리즈의 5번째 순서기도 하다.

마찬가지로 사회의식이 강했던 선배 가수 마빈 게이의 1976년 작 ‘I want you’를 샘플링해 재즈와 펑크(Funk)적 색채가 다분하며 반복적인 리듬 아래 선언문과도 같은 언어를 채웠다. 분노와 일갈을 억누른 랩은 냉소적 시선을 견지해 더욱 날카롭고 성찰적이다. 딥페이크 기술로 화제가 된 뮤직비디오는 로스앤젤레스의 흑인 공동체를 위해 힘썼던 래퍼 닙시 허슬(Nipsey Hussle)과 살인 사건에 휘말렸던 전 미식축구 선수 오제이 심슨(OJ Simpson), 아카데미 시상식으로 논란의 중심에 섰던 윌 스미스 등 6인의 표상으로 흑인의 삶을 아울렀고 갱 문화를 비롯한 흑인 사회의 그릇된 방향성에 사랑만이 해결법(I want you)임을 제시했다. (염동교)

도자 캣(Doja Cat) ‘Vegas’

도자 캣의 공세는 멈추지 않고 계속된다. 여러 히트곡을 배출한 2021년 < Planet Her >로 본격적인 궤도에 오른 아티스트는 영화 < 엘비스 >의 부름을 받아 입지 확장에 박차를 가했다. 빌보드 싱글 차트 10위까지 올라간 ‘Vegas’는 전쟁터 같은 힙합 세계에서 도자 캣이 이제 슈퍼 루키를 넘어 독보적인 주연에 등극했음을 알린다.

전기 영화다 보니 트렌디한 힙합 사운드의 사용은 키워드만 보면 어색할지도 모른다. 작품에서 ‘Hound dog’의 원곡자 빅 마마 손튼(Big Mama Thornton) 역을 맡은 숀카 두쿠레(Shonka Dukureh)의 목소리를 샘플링한 영민한 비트와 후렴이 일말의 괴리감을 메꾼다. 시대와 인종의 장벽을 넘은 무대 위, 매서운 전달력과 흥겨운 싱잉 랩을 자유자재로 오가는 래퍼의 실력도 역시 굳건하다. 복고 추세로도 모자라 옛 명곡의 적극적인 차용이 주류로 올라선 오늘날의 흐름 가운데 특히 빛나는 곡이다. (한성현)

덴젤 커리(Denzel Curry) ‘Walkin’

덴젤 커리가 2023 그래미 어워드 힙합 부문 후보에 이의를 제기했다. 자신의 음반을 포함해 올 한해 호평을 받았던 앨범들을 명단에서 제외한 데에 불만을 토로한 것. 어리광으로 치부될 수 있는 발언이지만 그에게는 그럴만한 자격이 있다. < Ta13oo >(2018), < Zuu >(2019) 등의 탄탄한 디스코그래피로 제이 콜, 켄드릭 라마 이후의 컨셔스 래퍼 선두 주자 타이틀을 노리는 그가 이번엔 < Melt My Eyez See Your Future >로 제대로 역량을 터뜨렸다.

그 중 ‘Walkin’은 단연 베스트 트랙이다. 부조리한 세상에서 앞으로 나아가는 자신을 가사에 담아 역설적으로 불합리한 사회를 고발한다. 정통 붐뱁에서 하이햇과 함께 트랩으로 변주하는 사운드, 그에 맞춰 플로우를 바꾸는 랩은 무거운 주제를 전달하면서 일말의 지루함도 허락하지 않는다. 켄드릭 라마의 ‘The heart part 5’와는 또 다른 방식으로 흑인 커뮤니티에 자극을 주며 어느 때보다 눈에 띄는 도약을 만들어냈다. 덴젤의 ‘Walkin’이 올해를 대표할 자격은 충분하다. (백종권)

푸샤 티(Pusha T) ‘Diet coke’

드레이크는 앨범을 (훨씬) 더 많이 팔았다. 릴 베이비는 (비교도 안 될 만큼) 더 많은 노래를 빌보드 차트에 올렸다. 2022년 현재 힙합 신에서 푸샤 티보다 잘 팔리고 인기 있는 래퍼는 많다. 그러나 ‘Diet coke’에서 그의 랩을 듣는다면, 선정을 납득할 것이다.

일로매진(一路邁進)의 승리다. 노래는 그의 바위처럼 단단한 태도와 모든 음악적 특징을 압축한다. 맹수처럼 사나운 랩, 랩에 집중할 여유를 넉넉히 주는 반복되는 비트, 마약상의 경험에서 비롯된 공격적인 텍스트까지. 프로듀서 에이티에잇 키스(88-keys)가 18년 전 만들어 카니예 웨스트와 새로 손본 비트는 빈티지한 느낌을 물씬 자아내고 여기서 래퍼의 목소리는 여느 때보다 자신감과 여유가 넘친다. 축소, 경량화, 단발성이 득세한 힙합 신에서 이런 묵직하고 정직한 카운터 펀치를 날릴 수 있는 래퍼는 많지 않다. 이게 기록이나 수치적 성적을 떠나, 푸샤 티가 항상 승리하는 이유다. (이홍현)

리조(Lizzo) ‘About damn time’

여성을 대표한 뮤지션은 많다. 1980년대 이후 마돈나가 줄곧 여성의 섹스(욕구)를 거침없이 발화 하고 레이디 가가는 ‘태어난 대로 살자’며 ‘Born this way’를 열창, 여성을 넘어 소수자의 마음을 어루만진다. 약간 결이 다르긴 하지만 메간 더 스탈리온, 도자 캣, 카디 비 등의 음악가는 자신의 ‘바디’를 음악적 어필 포인트로, 서슴없이 자기 과시를 행하는 중이다.

리조 역시 여성을 대표하고 자신을 과시한다. 하지만 그는 그간 다뤄지지 않았던 ‘몸’에 주목, ‘몸 긍정주의(Body Positive)’를 이끈다. 그를 이 분야의 대명사로 만든 앨범 < Cuz I Love You >가 그랬듯 이 곡도 몸의 두께와 상관없이 ‘음악은 키우고 조명은 낮추며’ 신나게 즐기자고 말한다. 1980년대 펑크/디스코 사운드를 골자로 트레이드 마크인 플루트 선율을 담은 점 또한 과거와 맥을 맞춘다. 이 연속성이 반복됨에도 올해 팝은 또다시 리조로 집약이다. 왜? 곡이 가진 독보적이고 힘 있는 메시지 덕분. 시대가 변하지 않는 한 그의 바디 찬가는 계속해서 시대를 대표할 것이다. (박수진)

수단 아카이브(Sudan Archives) ‘Selfish soul’

기록은 오직 인간에게만 허락된 신성한 행위다. 이 뜻깊은 작업을 활동명에 새겨 넣은 뮤지션 수단 아카이브는 방대한 음악 자료 수집을 통해 깨우친 가치를 단 2분 22초 안에 압축했다. 둥둥거리는 베이스로 맥이 뛰기 시작한 트랙은 소울 가득한 목소리, 가스펠 풍의 백 보컬, 그리고 박수 소리에 맞춰 그 박동을 빠르게 이어가고 이내 북동 아프리카의 바이올린과 조우하며 경쾌한 대비를 이룬다. 말미에는 짧은 랩까지 가미해 투철한 실험 정신과 장르를 끌어안는 포용성을 두루 발휘한다.

흑인 음악을 집대성한 만큼 던지고자 하는 메시지 또한 그들의 공동체 의식을 투영한다. 각기 다른 헤어스타일을 소재로 풀어낸 노랫말은 그 형태와 색깔, 질감으로 다양성 존중을 피력하고, 흑인 여성들과 촬영한 뮤직비디오에서 수단 아카이브는 몸소 삭발과 핑크색 가발 쓴 모습을 번갈아 보여주며 주장에 힘을 싣는다. 흥미로운 ‘내용’, 간결하고도 짜임새 있는 ‘구조’, 여기에 사회를 관통하는 ‘맥락’까지. 기록의 3요소를 완벽히 충족한 현대식 민족음악 아래 새로운 무도회의 여왕이 탄생했다. (정다열)

엔칸토(Encanto) ‘We don’t talk about Bruno’

대중, 시장, 평단의 예상 밖 일치된 환대였다. 차차차 리듬을 내건 살사 음악은 친숙해서 신선하지 않고 가볍게 흘러 평가대상에서 밀려날 듯했다. 실제로 영화 OST를 쓴 작곡가 린 마누엘 미란다도 아카데미상 후보로 딴 곡을 제시했을 만큼 이 곡은 주변의 비핵심 트랙으로 간주되었다. 가수들도 영화 캐릭터의 보이스를 맡은 생소한 인물들이어서 대표곡 지위를 부여하지 않았음이 명백했고 왠지 여럿이 합창하는 곡에 승부를 걸지 않는 디즈니의 규범에도 부합하지 못했다.

반면 대중들은 이 야유적 어투의 쾌활한 아우성에 적극적 갈채를 건네면서 명곡은 범람했어도 디즈니에게 부재했던 빌보드 넘버원 싱글이란 나름의 영예를 안겼다. 무려 5주간 1위였다. (영국은 7주간) 진부할 수 있는 떼창은 오랜만에 접하는 완벽한 앙상블로 해석되어 코로나 시대에 갈구된 가족가치를 일깨우며 선전했다. 유머의 기민성, 가족 모두를 비추는 공평과 다양성, 굿 바이브레이션 사운드 그리고 미스터리 터치가 어우러진 한편의 완벽 크로스오버! 2022년을 사랑스럽게 했다. (임진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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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Feature

뉴트로 특집 VOL.2 : 12곡으로 살펴본 뉴트로

복고가 뭐길래. 이리도 오랜 시간 전 세계에서 동시다발적으로 특히 ‘젊은 세대’에게도 사랑받는 것인가. 한 번쯤은 떠올렸을 궁금증이다. 이에 이즘이 ‘뉴트로 특집’을 준비했다. 뉴트로의 정의와 연혁을 다룬 박수진 필자의 글에 이어, 두 번째 특집으로 IZM 필자들이 모여 뉴트로 흐름에 박차를 가한 12개의 곡을 모았다. 복고 열풍을 한 눈에 바라보고 이해하려는 이들에게 좋은 지침서가 되기를 바란다.

브루노 마스 ‘Treasure’
어스 윈드 & 파이어가 부른 ‘Let’s groove’의 뮤직비디오, 두터운 리듬을 강조한 프린스의 초기 음악 스타일, 마이클 잭슨의 안무. 이 세 가지는 브루노 마스의 ‘Treasure’를 가장 간단하게 설명할 수 있는 문구다. 1970, 80년대에 음악을 많이 들은 사람한테 이 펑크(Funk)넘버는 과거를 답습한 결과물이지만 2010년대의 젊은 세대에게 이 곡은 최첨단 유행이자 세련된 보석이다. 이후 브루노 마스는 ’24k magic’, ‘Finesse’, 마크 론슨과 함께 한 ‘Uptown funk’로 복고 열풍을 주도했고 2021년에는 더 거슬러 올라가 1970년대 초반의 소울 발라드를 끌어들인 ‘Leave the door open’으로 음악적 영역을 넓혔다. ‘Treasure’는 뉴트로가 아니라 레트로다. (소승근)

샤이니 ‘1 of 1’
뮤직비디오의 흰색 배경과 원색의 파워숄더 수트가 MTV 시대를 재현한다. 그 위에 둔탁한 808 드럼 비트가 떨어지는 순간 1990년대 초반으로 범위를 좁힌다. 직접적인 오마주는 아니지만 뉴 잭 스윙을 대표하는 보이밴드 뉴 에디션, 블랙 스트리트의 흔적도 곳곳에 흩뿌려져 있다. 파편화된 과거를 전유하는 모습은 뉴트로 그 자체다. 그러나 ‘1 of 1’은 시대적 현상이 일어나기 전인 2016년에 발매된 곡으로 소속사의 향수를 반영한다. 1990년대 듀스, 현진영 등 우리나라까지 흘러온 뉴 잭 스윙에 SM은 에스이에스의 ‘(Cause) I’m your girl’로 응답했다. 2010년대 이후에는 권위자 테디 라일리와 작업하며 그의 음악과 시대에 대한 경의를 표하고 있다. 북유럽의 최신 EDM 사운드를 이식하던 샤이니가 과거로 회귀한 건 뜬금없는 일이 아니었다. 기획사의 노스텔지어와 그룹의 아방가르드가 만나 조금 이른 뉴트로를 낳았을 뿐. (정수민)

백예린 ‘Square (2017)’
SNS에서 입소문을 타고 부상한 미발매곡이 뉴트로 트렌드를 점령했다. 일본 버블경제 시기 등장한 쿠보타 토시노부의 ‘La la la love song’ 커버에 더해 비공식적으로 페스티벌에서만 선보였던 ‘Square (2017)’ 라이브 영상은 ‘초록 원피스 신드롬’을 일으키며 백예린의 이미지를 굳혀 왔다. 1980년대 모던 록 사운드 위 새겨진 청아한 음색은 유튜브 알고리즘을 가득 채우며 ‘나만 알고 싶은 가수’를 찾아 헤매던 이들을 결집했고, 기대에 부응하듯 정식 발매 이후 차트를 휩쓸었다. 바이닐 열풍을 탄 첫 정규 음반 역시 2020년 국내 LP 판매 순위 1위에 오르며 신복고 선두주자로서 그의 정체성을 공고하게 다져나간다. 빈티지한 세련미를 찾는 시대, ‘Square (2017)’는 신세대의 취향에 발을 맞춘 백예린의 ‘힙’한 화답이다. (손민현)

정글 ‘Casio’
정글은 1970, 80년대 미드템포 펑크(Funk)/디스코를 동경한다. 이들의 문법을 집대성한 ‘Casio’ 역시 디스코에 기반을 둔 팝 펑크 곡이다. 향수를 부르는 아스라한 신시사이저, 팔세토 창법으로 연결된 담백한 하모니가 기분 좋은 여유를 발산하고 뒤이어 댄스 본능을 자극한다. 고급 와인처럼 오랜 숙성을 거친 듯 세련된 그루브가 웨스트 코스트의 광활한 해변을 배경 삼은 올드 스쿨 LA 밴드처럼 느껴지지만 팀의 주축 조쉬 로이드 왓슨과 톰 맥팔랜드는 밀레니얼 세대의 영국 청년들이다. 당시 20대였던 이 런던 듀오는 선배들의 찬란한 유산을 황금색 페인트로 칠해 윤기 나는 신복고 음악으로 재가공했다. 레트로에서 뉴트로, 정글이 장착한 신구 융합의 엔진이 세월의 격차를 성공적으로 좁혔다. (김성욱)

박문치 ‘널 좋아하고 있어 (With 기린 & Dala & 준구)’
펑크(Funk), 디스코가 과거 불러오기 바람의 중심에 서있지만 음악의 추억 상자에는 아직 장르가 남아 있다. 힙합과 알앤비가 뭉친 뉴 잭 스윙이 그 예로 1980년대 후반 테디 라일리가 불을 붙이며 전 세계 뿐 아니라 국내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2018년 브루노 마스의 ‘Finesse’ 리믹스가 반짝 떴던 미국 시장에 반해 우리나라는 2010년 즈음부터 태동을 보였다. 복각 듀오 유브이의 ‘집행유애’를 시작으로 에잇볼타운의 수장 기린이 다시 뿌리내리면서 주류 현상은 아니었지만 이는 재유행의 채비를 마련했고, 마침내 1996년생의 ‘뉴 질 스윙(여성 뮤지션)’ 스타 박문치를 낳았다. ‘라떼(‘나 때는 말이야’를 풍자한 표현)’는 거부하면서 ‘그때’의 음악에는 열광하는 사람들은 옛 것이지만 촌스럽지 않고, 요즘 것이지만 뻔하지 않은 음악을 환영했다. 1990년대의 음악을 듣던 이들에게는 향수를, 1990년대 생들에게는 새로움을 안겨주는 한국형 신복고의 대표곡. (임동엽)

김현철 ‘Drive (Feat. 죠지)’
뉴트로의 바람이 원조 시티팝 장인이 펼친 ‘돛’에 추진력을 가했다. 2006년 발매한 9집 < Talk About Love > 이후 13년이라는 긴 공백기를 깨고 자신의 시간이 돌아오리라고 예견한 듯이 정규작 < 김현철 10집 “돛” >으로 복귀를 알렸다. 베테랑 음악가와 젊은 뉴페이스들의 참여로 노련함과 생기가 공존하는 앨범 속에서 ‘Drive’는 주축 역할을 맡는다. 아티스트의 정체성이라고 할 수 있는 청량한 퓨전재즈 스타일에 2017년 싱글 ‘Boat’로 이름을 알린 죠지가 깔끔한 보컬로 힘을 더한다. 1980년대 일본 애니메이션을 편집한 뮤직비디오 형식의 2차 창작물과 SNS피드를 채우는 김현철의 이름이 세대를 막론하고 그의 음악을 향유하고 있음을 입증한다. 기존 대표곡에서 세련미를 더한 것이 30년 관록의 가수를 다시 한번 트렌드 최전선으로 이끌었다. 1989년 공개한 데뷔작 < 춘천 가는 기차(1집) >에 담은 한국 시티팝의 원류 ‘오랜만에’와 ‘연애’, ‘왜그래’ 등에서 느낄 수 있는 향기가 시대을 넘어 현세대를 물들인다. (백종권)

위켄드 ‘Blinding lights’
팝 현장에 부는 레트로 열풍을 대표한다. 의도적으로 아쉬움을 남겨 거듭 재생을 유도하는 영특한 편곡과 선율감을 살린 민첩한 보컬,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간 듯한 사운드를 앞세워 90주간의 빌보드 핫 100 차트인이라는 대기록을 남겼다. 신시사이저 사운드를 적극적으로 이용한 모티브 전개에서 아하의 히트곡 ‘Take on me’가 강하게 스치며 비트에선 1980년대의 많은 아티스트가 애용했던 드럼 머신 롤랜드 TR-808이 떠오른다. 트렌드의 달인 프로듀서 맥스 마틴은 암울한 미래상을 그렸던 과거와 무력한 현재의 공통점을 포착했다. ‘Blinding lights’는 그때의 우울한 감성으로 지금의 공허한 마음을 겨냥한 레트로의 전형이다. (김호현)

두아 리파 ‘Levitating’
비록 우리나라에서만 쓰는 말이라지만 ‘뉴트로’를 상징하는 작품으로는 < Future Nostalgia >만큼 제격인 것이 없다. 앨범의 다섯 번째 싱글로 낙점된 ‘Levitating’은 제목이 전달하는 ‘미래’와 ‘향수’라는 콘셉트를 대표하는 트랙이다. 롤랜드 VP-330 신시사이저 샘플로 1980년대 디스코 리듬을 생생하게 재현했고, 귀에 착 감기는 후렴으로 틱톡 플랫폼을 애용하는 신세대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젊은 층에게 인기몰이 중인 1990년대 일본 애니메이션 풍의 뮤직비디오를 추가로 공개하여 시각적인 요소까지 놓치지 않았다. 첫 싱글 ‘Don’t start now’가 대 복고 시대의 기폭제가 된 이후 수많은 아류작이 나왔지만, 두아 리파는 ‘Levitating’으로 그 흐름을 스스로 이어받으며 2021년 빌보드 연간 차트의 정상에 올랐다. 근 2년간은 부정할 수 없이 그의 시대였다. (한성현)

유키카 ‘서울여자’
‘남행열차’, ‘애모’ 등으로 잘 알려진 김수희가 1990년에 발표한 ‘서울여자’ 속 화자는 이별로 생긴 상처 때문에 서울이 미워졌다고 말했다. 애잔한 피아노 반주 위 ‘사랑도 팔고 사는 속이고 속는 세상’이라 고백하는 목소리엔 급변하던 대도시의 회색빛 고독이 물씬 배어있었다. 그로부터 정확히 30년 뒤. 비록 리메이크는 아니지만 레트로의 격류를 타고 동명의 곡이 등장했다. 1980년대 일본 음악의 주류였던 시티팝을 1993년생의 일본인 유키카가 한국식으로 복각하는 이질적인 모습도 물론 대중의 시선을 끌었지만, 낯선 장소를 마주하는 당당한 태도와 신시사이저, 브라스 세션이 자아내는 세련된 도회적 감성이 흐른 시간만큼이나 달라진 시대를 반영하며 공감을 얻어냈다. 프로듀서 박진배(ESTi)의 진두지휘 아래 완성도 있게 짜인 재현극은 당대의 감각을 충실히 고증하는 동시에 현재를 투영. 답습에서 끝나지 않고 재가공했기에 해당 장르의 범람에서도 번뜩이는 지점을 차지했다. (손기호)

브레이브걸스 ‘운전만해’
모두가 한 번씩 시티팝이라는 시대적 흐름에 발을 담그던 2020년, 브레이브걸스의 ‘운전만해’는 뉴트로의 부름에 대한 대답이자 그룹의 사활을 내건 승부처였다. 영롱하게 여울진 기타와 플루트, 다채로운 악기 운용으로 자아낸 드라이브 사운드, 이에 마지막 활동을 암시하는 듯한 아련한 작풍까지. 또한 세련됨을 강조하는 시티 팝의 주요 정서보다 명확한 훅과 기승전결을 띠는 K팝 속성에 주력한 곡은 가벼운 유행의 각색이 아닌 대중을 겨냥한 의도를 몸소 내비치고 있었다. 결국 진심은 통한다고 했던가. ‘롤린’이 역주행의 정의를 재고하게 하며 브레이브걸스에게 도약의 아이콘을 부여했다면, 이듬해 ‘운전만해’는 그 반짝의 주목을 안정권으로 진입하게 한 주역이 되었으니. 각종 커뮤니티와 미디어의 단합으로 화력을 이끈 ‘롤린’과 다르게 올바른 유행 해석과 수려한 완성도를 통해 차트에서 인정을 거뒀다는 점에서도 의의를 지닌다. (장준환)

방탄소년단(BTS) ‘Dynamite’
‘우리도 이만큼 할 수 있다!’
미지의 영역이었던 빌보드 핫100 차트 1위를 달성했다는 사실만으로 역사적인 곡이다. 방탄소년단 고유의 긍정 에너지로 약동하는 이 곡은 킹콩과 전설적인 록 그룹 롤링 스톤스, NBA 스타 르브론 제임스 등 영미권 문화의 인용과 ‘Tonight, alight’의 각운으로 친밀감을 더했다. 조나스 브라더스와 몬스타엑스 등과 작업했던 프로듀서 데이브 스튜어트는 박수 소리와 브라스 세션같은 디스코/펑크(Funk)의 요소로 복고풍 팝을 구현했고 뮤직비디오 속 멤버들의 의상과 동작도 과거를 가리킨다. 힙합과 K팝을 주 무기로 삼았던 방탄소년단이 제임스 브라운과 마이클 잭슨으로 회귀했다는 지점이 의미심장하며 당대의 지구별 스타가 건네는 디스코/펑크 폭탄은 뉴트로 열풍에 커다란 화력이 되었다. (염동교)

도자 캣(Doja Cat) ‘Kiss me more (Feat. SZA)’
올해도 그래미 어워드 베스트 팝/듀오 부문은 당찬 두 여성의 품으로 돌아갔다. 2021년 방탄소년단의 ‘Butter’가 빌보드 싱글 차트 10주 1위라는 대업적을 이룩한 건 사실이나 수상의 영예를 거머쥔 도자 캣과 시저의 ‘Kiss me more’에도 40년 전 동일 기록을 달성한 히트곡의 기운이 살아 숨 쉬고 있다. 세련되면서도 도회적인 기타 리프와 베이스가 주도하는 노래는 1970-80년대 팝의 여왕으로 군림했던 올리비아 뉴튼 존의 ‘Physical'(1981)을 각색해 단번에 따라 부를 수 있을 만한 후렴구 멜로디를 주조했다. 우수한 밑바탕에 그려낸 가사 역시 레퍼런스의 육감적인 이미지를 그대로 흡수하며 키스라는 성적 욕망을 대담하면서도 부드럽게 드러낸다. 전반적인 구성은 틱톡을 뜨겁게 달궜던 ‘Say so’와 흡사하지만 과거의 질료를 매끈하게 다듬은 뉴트로 트랙 ‘Kiss me more’는 그 흥행이 단순한 해프닝이 아니었음을 증명하며 디지털 시대에 걸맞은 디스코 퍼포먼스의 표본으로 남았다. (정다열)

이미지 디자인 : 정수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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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Feature

2021 올해의 팝 앨범

팝의 태동이 심상치 않다. 진부함과 고립에 질린 저마다의 아티스트가 파격적인 변신을 거듭하고, 곳곳에서 새로운 문화의 흐름이 연달아 터져 나오는 추세다. 바다 건너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솔깃한 소식에 귀가 쉴 새 없는 한 해다. IZM이 2021년을 일목요연하게 간추릴 팝 앨범 10장을 소개한다. 글의 순서는 순위와 무관하다.

재패니즈 브렉퍼스트(Japanese Breakfast) < Jubilee >

뜻밖의 변화였다. < Psychopomp >의 곤두선 감정이나, < Soft Sounds From Another Planet >식 심연의 소음이 이어질 줄 알았다. 그러나 예측을 깼다. 그루브 넘치는 ‘Be sweet’이 선공개되는 순간 앨범의 비범함을 감지했다. 어머니와의 사별에서 파생된 비극적인 감수성을 깊게 가라앉은 소리로 토해내던 그가 보다 다채롭고 밝은 색감의 노래들로 펼친 변신은 예상 밖이지만 아름다웠다. 비로소 재패니즈 브렉퍼스트 팔레트의 확장이었다.

사랑과 상실 등 복잡다단한 감정 전개에도 음악에 귀가 번뜩 뜨인다는 점이 변화의 성공을 천명한다. 치열한 내면의 심상을 가다듬으면서도 난해하지 않은 건 한 곡 한 곡 자체의 매력에 충분히 집중한 덕이다. 드라마틱한 멜로디의 정교한 버무림에 홀린 듯 스며들고 주류 음악 신에서 쉽게 접하기 힘든 우아하고 고풍스러운 보컬의 매력은 듣는 이로 하여금 쉽사리 앨범을 떠나지 못하게 한다. 아물지 않은 트라우마 그 너머 음악으로 되찾은 용기와 자긍심이다. (이홍현)

빌리 아일리시(Billie Eilish) < Happier Than Ever >

2019년 청소년기의 불안정한 심리를 대변한 소녀는 ‘Bad guy’로 유튜브를 비롯한 소셜 미디어를 점령했고, 곡이 실린 < When We All Fall Asleep, Where Do We Go? >로 62회 그래미 어워드 본상을 휩쓸었다. 가수에게 음악으로 주목받는 것만큼 행복한 일도 없지만 도를 넘어선 관심은 노래가 아닌 외양을 향했다. 어린 시절 정신 질환의 주범이었던 ‘침대 밑의 괴물’이 허상에 불과했다면 실재하는 ‘익명의 누군가’는 유명인이 떠안아야 하는 새로운 트라우마를 선사한다. 그러나 Z세대 팝스타는 물러서지 않는다.

명예에 뒤따른 희생을 들여다보는 단위는 싱글이 아닌 앨범으로 규정한다. ‘Bad guy’나 ‘Bury a friend’ 같은 히트곡으로 그를 기억하는 이들에게 낯설 수 있다. 그럼에도 포근한 재즈를 공유하고, 익히 들은 고딕 하모니를 재소환하고, 록 사운드로 희망 섞인 비명을 토해낼 때 예술가의 암울한 현실을 온전히 전한다. 내면 깊은 곳부터 끌어올린 울부짖음에 디지털 시대의 명암이 깜빡이는 순간, 빌리 아일리시는 어느 때보다 행복하다. (정다열)

타일러 더 크리에이터(Tyler, the Creator) < Call Me If You Get Lost >

개인적 비극과 사회 문제, 물질적 욕구, 사랑 등 공통점 없는 소재가 공존하기에 어쩌면 일관되지 못한 가치관이 혼란스럽다. 그렇기에 < Call Me If You Get Lost >는 한 창작자의 삶이 고스란히 녹아있는 전기(傳記)다. 그를 규정짓는 보편적인 것들로부터 싸워온 타일러의 행보가 널브러진 작품의 문법은 ‘랩’. 래퍼로서의 특정을 거부했던 전작 < Igor >란 족쇄에 묶인 예술가가 2000년대 중반 믹스테입 시대의 형식을 빌려와 또 다른 해방을 갈망한다. 어느 때보다 창작 욕구를 불태웠던 당시의 순수로 회귀하며.

두서없이 펼쳐지는 서사는 프랑스 시인 샤를 보를레르에서 따온 페르소나 ‘타일러 보를레르 경’의 단단한 래핑으로 예술성을 획득한다. 고전적인 힙합 작법을 중심으로 재즈부터 하드코어, 알앤비, 보사노바 등 그동안의 타일러를 응축한 트랙들이 개연성을 무시한 채 각자의 존재를 드러낼 법하지만, 이를 억제하고 유기적으로 이어가는 정제 능력도 단연코 뛰어나다. 미로처럼 얽힌 구성에 지향하는 목표를 쉽게 알 수 없지만 애초에 정해진 출구는 없다. 행하는 방식이 곧 길이 되오니. 이에 타일러 자신을 집대성한 앨범은 오히려 그를 하나의 영역으로 정의할 수 없다는 아이러니를 남기며 대중과 평단에 자유를 선언한다. (손기호)

저스틴 비버(Justin Bieber) < Justice >

올해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울려 퍼진 팝송 중 하나는 누가 뭐래도 ‘Peaches’일 것이다. 노스탤지어를 불러일으키는 간결한 비트와 독자적인 감성으로 이상적인 대중성을 발현하는 가창. 처음엔 별 반응 없던 이들이 어느덧 이 노래를 흥얼거릴 정도로, 자연스럽게 발현되는 중독성은 국경을 넘어 전 세계 대중들을 사로잡았다. 그렇게 그는 지난 앨범 < Changes >(2020)의 부진한 성적을 단번에 만회하며 팝스타의 지위를 탈환했다.

그렇다고 앨범에 이 곡만 있는 것은 아니다. ’Peaches’ 외에도 들을 거리가 산적하다. 리드미컬한 가스펠을 의도한 ‘Holy’, 1980년대의 신스팝 스타일을 활용한 ‘Die for you’, 마치 파워 발라드를 듣는 듯한 의외성이 돋보이는 ‘Anyone’ 등 어색하지 않은 한도 내에서 음악적인 변주 또한 충실히 이행했다. 무엇보다, 신앙심에 기반한 자기반성과 각오가 노래에 진정성을 배가시키고 있다는 점이 크다. 감상이 거듭될수록 가랑비에 옷 젖듯 그의 서사에 동화되어 가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데, 그만큼 음악과 자아의 일체감이 그만큼 뛰어나다는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겨우내 찾은 내면의 평화가 많은 음악 팬들의 행복으로 이어지는 그 경이로운 광경. 이 작품을 통해 생생히 체험할 수 있을 터. (황선업)

도자 캣(Doja Cat) < Planet Her >

세련되고 화려하지만 복작거리지는 않는 쇼핑몰에 와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도자 캣의 세 번째 정규 앨범 < Planet Her >는 팝, 알앤비, 힙합을 큰 줄기로 하면서 아프로비트, 레게톤, 멈블 랩, 트랩 등 여러 스타일로 가지를 뻗는다. 꽤 다채롭게 구성했음에도 곡들의 사운드가 매끈해서 조금도 어수선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군살 없는 프로듀싱이 앨범을 한층 말쑥하게 만들어 줬다.

도자 캣의 보컬 또한 음반의 세공을 거든 주역이다. 묵직하지 않은 음성 덕분에 앨범은 내내 살랑거리는 모양을 띤다. 느린 템포, 잠잠한 곡에서는 미성이 부드러움과 어둑한 분위기를 증대한다. 이와 더불어 곳곳에서 박력과 탄력 있는 래핑을 펼침으로써 생기, 리드미컬함도 충분히 확보하고 있다. 도자 캣의 능란한 보컬과 유행의 선두에 위치한 곡들이 만나 바로 체감 가능한 상승효과를 몰고 왔다. (한동윤)

리틀 심즈(Little Simz) < Sometimes I Might Be Introvert >

메간 더 스탈리온, 도자 캣, 카디 비 같이 현재 차트의 소유권을 차지한 대다수의 주류 여성 래퍼만큼이나, 동시에 매년 언더그라운드에서 묵직한 실력으로 두각을 드러내는 여성 랩 스타가 등장하고 있다. 서정성을 무기 삼으며 상징적인 키워드를 하나씩 점유한 이 아티스트들이 그렇다. ‘익명’ 아래 행해지는 무소불위의 폭력을 노래한 노네임, ‘헌정’을 기반으로 갈등과 차별 앞에 목소리를 내세운 랩소디, 그리고 치장된 껍질에 가려진 진실 어린 ‘내향성’에 초점을 둔 올해의 주인공 리틀 심즈다.

장대한 오프닝 트랙 ‘Introvert’부터 ‘Miss understood’의 개운한 해방까지 이어지는 한 시간의 러닝타임 전부가 하이라이트다. 유연한 움직임 속 꽉 찬 펀치를 뻗는 ‘Woman’, 뮤지컬적인 연출로 몰입감을 획득하는 ‘I love you, I hate you’와 ‘Standing ovation’, < Grey Area >의 날카로움을 계승한 ‘Speed’ 등 수많은 킬링트랙이 고점을 거듭 갱신한다. 웅장한 현악 세션과 정교한 샘플링을 배가한 프로덕션은 감정의 광활한 폭을 따스하게 포용하고, 날렵하고 탄탄한 래핑이 그 이음새를 이어붙인다. 정통성을 극한으로 다듬어 대중과 평단을 모두 포획한 올라운더 < Sometimes I Might Be Introvert >가 쟁취한 것은, 한 아티스트의 입지적 작품이라는 영예만이 아닌 2020년대 명반의 새로운 바이블로 장식되었다는 선포다. (장준환)

알로 파크스(Arlo Parks) < Collapsed In Sunbeams >

데뷔 싱글 ‘Cola’로 영국의 신인 등용문 BBC 사운드 오브 시리즈에 이름을 올린 2000년생 시인 겸 싱어송라이터 알로 파크스는 매체에 구애받지 않는 뛰어난 창작가다. 은유적, 압축적인 시와 달리 음악에서 그의 섬세한 시선은 명징한 언어로 치환된다. 특히 우정, 양성애, 인간관계에 대한 혼란 등 노랫말에 녹아든 일상적인 감정의 편린은 듣는 이의 마음에 가닿으며 빛을 발한다.

카메라 필름의 한 종류인 마지막 트랙의 이름 ‘Portra 400’이 시사하듯 앨범에는 보편적인 노스탤지어도 녹아있다. 소울과 재즈를 적절히 버무린 ‘Hurt’, 트립합 스타일의 비트를 사용한 ‘For violet’ 등 다채로운 재료는 신인 뮤지션의 개성을 집약적으로 표현한다. 알로 파크스의 목소리는 햇살이 쏟아지는 하늘처럼 맑지만 예리한 시선과 고찰은 천진하지 않다. 거리두기로 사람들과 체온을 나누기 어려운 시대에 걸맞은 따뜻하고도 첨예한 앨범이다. (정수민)

블랙 컨트리 뉴 로드(Black Country, New Road) < For The First Time >

2018년 런던에서 결성되어 발매한 그들의 데뷔 작은 현 포스트 록 신에서 가장 중요한 작품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자유로운 타 장르간 이합집산은 록 밴드 기본 구성에 바이올리니스트와 색소폰 편성을 더해 더욱 유기적으로 다가온다. 이들의 전위적인 스타일은 프리 재즈(Free Jazz)에서 감지되는 확장성과 매쓰 록(Math Rock)의 복잡다단한 리듬에서 온다. 이 독창적인 조합의 결과물은 록 신 ‘올해의 발견’이다. (신현태)

레미 울프(Remi Wolf) < Juno >

트렌드를 반영한 뮤지션을 ‘발견’하는 것은 즐겁다. 레미 울프. 아직 이름이 널리 알려지진 않았지만 한 유명 광고에 그의 노래가 쓰였고 음악 디깅을 좀 한다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반향이 생기고 있다. 특징은 자신을 잘 꾸밀 줄 안다는 것. 다양한 컬러를 조합해 옷을 입고 그 형형색색의 빛깔이 그대로 뮤직비디오를 수놓는다.

음악 역시 외적 차림과 닮았다. 짧은 러닝타임의 수록곡들이 전자음을 중심으로 펑키하고 발랄하게 울려 퍼진다. 그의 음악 안에 팬데믹의 흔적은 없으며 되레 우리의 머리를 끄덕이며 뛰게 할 것들이 가득하다. 올리비아 로드리고, 더 키드 라로이, 릴 나스 엑스 등 1990년대 후반, 2000년대 초반 출생의 뮤지션들이 음악계를 뒤흔드는 와중 1996년생의 레미 울프가 당차게 출사표를 냈다. 쫀쫀하고 촘촘하게 엮인 유기적인 음반 속 요새 음악의 매력 포인트들이 빽빽하다. (박수진)

애벌랜치스(The Avalanches) < We Will Always Love You >

대중음악사에서 음악 만들기의 문법은 시시각각 변화했다. 한 땀 한 땀 자기 손으로 짓는 정공법부터 기존의 음악을 이어붙인 사운드 콜라주까지. 과거의 시선으로 어쩌면 사파 취급받았을 호주 밴드 애벌랜치스는 외려 과거 소스의 사용을 극한으로 밀어붙인 후 고유한 음악성을 더한다. 재활용의 미학. 그렇게 플런더포닉스의 권위자가 된 이들은 전작들에 이어 또 한 번 사이키델릭하고도 우주적인 소리샘을 구현한다.

그들의 금광은 마르지 않는다. 복고풍 전자음악 ‘Born to lose’는 미니멀리즘의 거장 스티브 라이히의 ‘Electric counterpoint: I. fast’ 속 반복성을 낚아챈다. 반면 알란 파슨스 프로젝트의 ‘Eye in the sky’가 진두지휘하는 ‘Interstellar love’나 버트 바카락의 멜로디를 품은 ‘The divine chord’는 대중과의 접점이다. 샘플링 음원의 지지직 바늘 튀는 소리는 과거와 현재가 만나는 접속 신호. 음원 속 예술가들의 숨결과 애벌랜치스의 프로덕션, 초호화 피처링 진의 지원사격은 시공간을 무색게 하는 합종연횡이다. (염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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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Feature

[특별 기획 ‘미국’] 6. 케이팝 팬덤이 사회정의를 부르짖는 이유

부모 마음대로 되는 자식이 아무도 없다고 하지만, 한국에서는 정치와 담을 쌓은 케이팝이 되려 미국 정치에 휘말리는 아이러니를 예측한 케이팝 기획자가 있을까. 케이팝 팬덤은 올해 6월 오클라호마 털사(Tulsa)에서 개최된 트럼프 대통령의 유세에서 백만 건이 가까이 이루어진 가짜 참석 신청의 배후가 자신들임을 주장했고, 그 이전에도 백인우월주의나 극우 이념에 관련된 해시태그를 케이팝 이미지와 영상으로 도배하는 등 정치적 목소리를 거침없이 내고 있다. 예상치 못한 전개지만 케이팝 팬덤과 정치의 결합은 이미 거부할 수 없는 현실이다. 이 연결고리를 들여다보면 앞으로 케이팝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단서도 찾을 수 있다.

케이팝의 세계적 인기에서 유념할 점은, 그 시작점이 주변부였다는 사실이다. 방탄소년단이 빌보드 차트 1, 2위를 한 번에 차지하는 나날이 있기 전에도 케이팝 팬들은 존재했으나, 이들은 멸시나 조롱, 혹은 무시의 대상으로 여겨졌다. 일종의 마니아 문화로 시작한 탓도 있겠지만, 문화의 생산자나 소비자들에 대한 편견도 분명하게 작용했다. 클래식 음악이나 커피, 와인처럼 소수가 몰입해서 소비하는 문화가 무조건 천대받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케이팝의 ‘성공’이 완성하는 언더독 서사는 이런 배제의 역사에서 설득력을 얻고 팬들을 결집시킨다.

미국 케이팝 팬덤은 크게 보면 게임이나 애니메이션, 코스프레 같은 긱(geek)들의 문화와 그 뿌리를 공유한다. 단적인 예시로 케이콘(KCON)이 있다. 한국의 대중음악을 사랑하는 수만 명의 팬들이 로스앤젤레스나 뉴욕으로 몰려드는 이 축제는 미국 케이팝 팬덤의 주요 행사 중 하나다. 만화 팬들의 코믹콘(Comic-Con)이나 게임회사 블리자드의 블리즈컨(BlizzCon) 같은 박람회와 비슷한 양상이다. 한류는 서브컬쳐를 소비하는 사람들의 활동 영역에 들어와 있다.

인터넷과 소셜미디어는 게임과 만화, 케이팝 같은 서브컬쳐 커뮤니티의 큰 축이다. 생각해보면 케이팝 팬들이 트위터나 틱톡을 통해 활동하는 것은 한국 케이팝 팬덤의 특성을 떠나서도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여기서 그치면 케이팝이 정치나 사회정의(social justice)와 어느 지점에서 교차하는지는 설명할 수 없다. 케이팝을 논할 때 그 음악이 가진 소구력의 실체를 부정한 채 인기를 괴현상 보듯 하는 시선들이나, ‘진보 성향의 요즘 애들이 이상하게도 한국의 음악을 좋아하더라’는 미국 보수진영의 해석이 이 수준에서 멈춰있다.

케이팝이 미국에서 인종과 나이, 성별을 초월한 공감대를 이끌어낸 이유는 일종의 문화적 대안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뻔하고 지루한 음악에 질린 미국 대중들에게 새로운 재미를 선사했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물론 그런 이유로 케이팝을 소비하기 시작한 사람들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오히려 그 반대다. 케이팝 팬들은 미국 음악계, 연예계의 자극적이고 저질인(trashy) 논란으로 가득한 모습에 대한 대안으로 ‘착한'(wholesome) 한류 뮤지션을 소비한다.

칸예 웨스트는 2009년 MTV 비디오 뮤직 어워즈에서 수상소감을 말하는 테일러 스위프트의 마이크를 뺏었고, 저스틴 비버는 아이돌로 활동하던 2013년 식당의 걸레통에 소변을 봤다. 2015년의 아리아나 그란데는 도넛에 침을 발랐는가 하면, 도자 캣(Doja Cat)은 백인우월주의 채팅방에서 인종주의적 발언을 한 영상이 올해 공개됐다. 미국에서 차트 1위를 하는 슈퍼스타 뮤지션들에 대한 소식은 이들의 실력 못지않게 비대한 자아와, 이를 연료 삼아 끊임없이 논란에 불을 지피는 티엠지(TMZ)같은 가십 전문지가 내뱉는 황색 저널리즘의 온상이다.

아이돌을 필두로 한 한국의 대중음악이 미국에 알려지는 과정에서는 뮤지션의 비대한 자아도, 미국 유사 언론의 관심도 부재했다. 미국의 케이팝 팬들 중 주류사회에서 배척당하는 소수자들, 사회정의나 정치에 관심있는 사람들이 많다는 점의 실마리가 여기서 풀리기 시작한다. 자신들이 인식하고 있는 사회의 폭력적인 구조들을 그대로 재생산하는 미국의 주류문화에 염증을 느낀 이 사람들은, 타인을 깔보거나 하대하기는커녕 예의와 존중으로 무장한 한국 아이돌들의 페르소나를 보고 공론장을 정화할 수 있는 가능성을 투사한다. 이 ‘착함’의 실존 여부와 상관없이 말이다.

출발점이 어디였든 케이팝이 지금 미국 팬들에게 받는 기대는 선함 그 자체에 대한 것이다. 케이팝 팬덤이 커지면서, 기획사들이 팔고 있는 이미지와 그 뒤에 숨겨진 ‘본질’ 사이의 간극을 줄여야 한다는 목소리도 이젠 들려오고 있다. 문화전유나 뮤지션, 연습생의 인권에 대한 지적은 모두 이런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다. 미국에서 ‘주류’와 ‘비주류’에 대한 기준을 독점하고 있는 사람들은 점점 소수가 되어가고 있다. 케이팝이 영미권에서 진정한 승리를 거두려면 멋진 음악과 영상 이상의 섬세함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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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비 렉사(Bebe Rexha) ‘Baby, I’m jealous (Feat. Doja Cat)’ (2020)

평가: 2.5/5

2018년 첫 번째 정규음반 < Expectations > 발매 이후 오랜만에 신보를 향한 기지개를 켠다. 이 곡은 얼마 뒤 내놓을 소포모어의 선공개 싱글. ‘Say so’로 빌보드 싱글 차트 정상을 차지하며 커리어의 최정점을 찍은 도자 캣과 함께 곡 제목 그대로 질투심을 노래한다. 작곡가 출신이자 ‘Meant to be’와 같은 싱글로 증명했듯 쫄깃한 선율 만들기는 이번에도 이어진다. 3분이 안 되는 짧은 러닝 타임에 일렉트릭 기타의 매력적인 슬라이딩으로 중심 라인을 꾸렸다. 새 작품을 위한 예열로는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