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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프티 피프티 ‘Cupid’가 영미 차트에 명중한 음악적 이유를 쏘아보다!

피프티 피프티의 고공행진이 계속된다. 2022년 11월 내놓은 데뷔 음반 < The Fifty > 이후 발매한 첫 번째 싱글 ‘Cupid’의 이야기다. 이제 데뷔 6개월 차에 접어든 신인 그룹에, 국내에선 이렇다 할 반응이 없었지만 해외 차트에서 먼저 이 곡을 알아보고 상위권에 올렸다. 숏폼 플랫폼 틱톡(Tiktok) 발, 바이럴이 인기의 핵심 요인으로 꼽힌다. 프리 코러스 부분을 잘라 속도를 올린 스페드업(Sped up, Speed up의 준말로 노래의 속도를 빠르게 올린 음원) 버전을 중심으로 너른 대중의 관심을 끌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위캔드 & 아리아나 그란데 ‘Die for you’, 핑크팬서리스 & 아이스 스파이스 ‘Boy’s A Liar, Pt. 2’, 코이 르레이 ‘Players’ 등 요새 차트를 수놓은 많은 히트곡이 틱톡의 수혜를 입는다.

하지만 틱톡에서 인기를 끈 곡이 다 차트 상위권을 순항하는 것은 아니다. 빠르게 순위권에 올랐다고 해도 그 수치를 유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Cupid’는 다르다. 천천히 끓어오르는 중이다. 지난 13일(현지 시각) 공개된 영국의 오피셜 싱글차트 톱 100에 8위로 안착하며 K팝 여성 아이돌 그룹 사상 가장 높은 성과를 내는가 하면, 9일(현지 시각) 미국의 빌보드 핫 100 차트에선 19위, 16일(현지 시각)엔 전주보다 2계단 상승한 17위에 올랐다. 올해 2월 24일 발표한 곡으로 한 달여 만에 영미 차트 100위권 안에 오르고 이후 꾸준히 가속도를 냈다. 곡이 좋기 때문에 만들어진 성과다. 풀이하면 완성도 높은 노래였기에 틱톡의 수혜를 입을 수 있었다.

‘Cupid’가 영미권을 지나 세계 음악시장에 화살을 명중할 수 있었던 원인을 좇아본다. 핵심은 ‘음악’이며 그 시작은 ‘프로듀싱’에 있다.

기존 K팝과 다르게

유튜브 공개 2주 만에 1000만 조회수 달성을 앞둔 ‘Live in studio FIIFTY FIFTY’가 실마리다. 처음부터 해외 시장을 염두에 두고 곡을 썼다는 소속사 대표의 말처럼 ‘Cupid’는 한국어 버전과 랩 부분을 빼고 모든 가사를 영어로 쓴 트윈버전(Twin ver.)이 동시에 발매됐다. 영미 차트를 중심으로 외국인들의 관심을 쉽고 빠르게 받게 된 데에는 이 트윈버전의 역할이 컸다. 영상은 ‘Cupid twin ver.’을 멤버들이 직접 라이브로 부르는 장면을 담는다.

현재 이 영상의 제일 핫한 인기 댓글은 “오디오 엔지니어의 월급을 올려줘야 한다”이다. 소리의 톤이 부드럽고 믹싱이 훌륭하다는 것이 그 이유다. 피프티 피프티는 데뷔 때부터 이 ‘부드러움’에 강수를 뒀던 그룹이다. 데뷔 음반 < The Fifty >의 대다수 곡 중 특히 타이틀 ‘Higher’가 그랬다. 이 편안함이 이들이 여타 K팝 그룹과 다른 점이었다. 한 번에 시선을 잡아끌 강한 사운드, 또 다른 유희 거리를 만들어 줄 세계관 없이 그룹은 “듣기 편한 음악이라는 것만으로도 현 K팝 신에서 돋보일 수 있는 위치를 점할 수 있을 것”이라고 봤다. 정확한 유효타였다.

이를 위해 이들이 포기한 것은 ‘가창력 어필 포인트’다. 강한 고음으로 내지르는 구간이 없다. 뉴진스의 ‘Ditto’, 트리플 에스의 ‘Rising’ 역시 일정 부분 힘을 뺀 음악이긴 하나 무게 중심이 ‘사운드 톤’에 쏠리지 않았다. 더하여 눈여겨 봐야 할 지점은 가창력을 부각하려 하지 않았음에도 그룹의 가창이 계속해서 관심을 끈다는 사실이다.

심심찮게 이들의 음악에서 197~80년대 뮤지션인 아바, 카펜터스의 향취를 느낀다는 후기가 이어진다. 또한, 메인 보컬 아란, 시오의 음색을 지목하는 댓글도 많다. 각각 중저음, 메조소프라노의 음역을 지닌 이들의 보이스 칼라가 그만큼 돋보인다. 래퍼 라인인 키나, 새나를 향한 애정 어린 후기도 많다. 즉, 각기 다른 음색에 저마다 출중한 보컬 실력을 지녔다는 거다. 보컬의 강조와 보컬에서의 강점. K팝 레드오션에서 그룹이 특별히 신경 쓴 부분이란 건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딘, 크러쉬, 예바(YEBBA)와 같은 요새 아티스트를 즐겨 듣는 그룹이 요즘 음악과는 다른 스타일을 들려주게 된 것은 프로듀싱이 의도한 효과일 가능성이 크다. 여러 차례 곡의 프로듀서 안성일(SIAHN)은 “노래 자체의 멜로디와 분위기를 살리기 위해 다른 부분을 최소화 시켰다”고 밝혔는데

그의 이러한 접근이 멤버들의 힘을 뺀 창법으로 이어지며 색다른 K팝의 창조로 이어졌다고 본다.   

디스코 팝을 넘어 그때 그 시절 버블껌 음악까지

이 색다른 K팝은 K보다 ‘팝’ 역사 쪽에 그 기원을 둔다. 현재 이들의 음악을 두고, 2019년 큰 인기를 끈 도자 캣의 ‘Say so’에서 비롯된 디스코팝 계열을 많이 인용하나 이는 반쪽짜리 해석이다. 물론 도자 캣처럼 틱톡을 통해 인기를 끌었고, 그의 음악처럼 소프트한 복고풍의 디스코 사운드를 근간으로 하고 있긴 하지만, ‘Cupid’는 디스코와 곁들여진 드럼 사운드에 귀 기울였을 때 더 맛이 사는 곡이다. 마치 기타 소리를 죽이고 몽환적이고 몽글몽글한 사운드를 들려준 존 메이어의 ‘New light’처럼 말이다.

따라서 굳이 ‘Cupid’의 사운드 핵심을 뽑자면 그건 소프트한 드럼이다. 날카롭기보다는 끝을 뭉툭하게 다듬은 드럼이 곡에 특유의 꿈결(dreamy) 같은 분위기를 완성시킨다. 또 하나 이들 노래가 쉽게 귀에 감기는 이유는 곡이 1960대부터 인기 끈 ‘버블껌 음악’을 떠오르게 한다는 데 있다.

버블껌 음악은 쉽게 말해 오늘날 아이돌 음악의 효시이다. 10대들이 하거나 또는 그들을 겨냥한 감각적인 음악을 뜻하는 말로 주로 10대들이 좋아하는 풍선껌(버블껌)처럼 달콤하고 쉬운 노래를 의미한다. 당시 굵직한 인기를 끌었던 몽키스, 오하이오 익스프레스를 거쳐 마이클 잭슨이 있었던 1970년대의 잭슨 파이브 등이 다 이 계열에 속한다. 그중 ‘Cupid’에게선 토미 로의 ‘Dizzy’, 아치스 ‘Sugar sugar’, 숀 캐시디 ‘da doo ron ron’ 같이 밝고 달콤한 향이 짙게 묻어난다.  

다시 말해, ‘Cupid’가 응축한 복고는 디스코에서 시작된다기보다 영미권의 그때 그 시절 아이돌 음악을 생각나게 한다는 점에 있다. 틱톡으로 흥한 모든 노래가 차트 상위권에 오르지는 못하지만 틱톡으로 빛을 본 음악은 더 많은 사람에게 가 닿을 가능성이 높다. 이를 뒷받침하듯 곡은 2030 이용자가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스트리밍 사이트 스포티파이 데일리 톱송 차트에서 글로벌 4위 미국 8위 영국 10위에 오르는가 하면 연령층이 다소 높은 아이튠즈 다운로드 순위에서도 40위 권을 오르내리며 좋은 성과를 내고 있다. K팝 열혈 팬뿐만 아니라, 상대적으로 다양한 연령층에게 고루 사랑받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만들어진 성공, 이유 있는 흥행

이들의 성공 옆에 붙는 ‘틱톡’, ‘바이럴’, ‘좋은 음악의 힘’과 같은 수식어는 정확히 만들어진, 의도된 성과이다. 서로 다른 음색을 지닌 멤버들을 모으기 위해 심혈을 기울였고, 그룹의 영어공부에 힘쓴 것은 물론, 이들을 관리하는 이준영 본부장(A&R 총괄), 김지훈 팀장(글로벌 PR 담당) 등을 모두 해외 프로덕션에 최적화 된 인물로 구축했다는 탄생 비화까지 모든 곳에 보이지 않는 땀방울이 묻어있다. 어쩌면 ‘Cupid’를 향한 가장 큰 상찬의 말은 ‘K팝인지 몰랐다’는 댓글일 수도 있다.

처음부터 국내보다 외수 시장을 위해 맞춘 곡으로 영어 발음까지 하나하나 교정해 만든 ‘Cupid’. 해외 유학 없이 전 멤버가 한국에서 자랐고, 이곳에서 꿈을 키운 이들이 일군 성과는 그래서 값지고 그렇게 더 체계적이었다. 현재 틱톡에 업로드된 ‘Cupid’ 관련 영상의 수는 200만 개가 넘는다. 안무를 따라 하고 곡의 일부를 각색해 만든 여러 리액션 비디오 속 인종과 나이대는 손에 잡을 수 없을 만큼 넓다. 이 평이한 댄스 라인과 가사까지 모두 의도된 작품이었다고 하니, 그들의 성공이 어디까지 이어질지 기대된다.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중소돌의 기적. 이 흥행이 너무나도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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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Feature

뉴트로 특집 VOL. 1 : ‘레트로 아니, 뉴트로 마니아’의 시대

복고가 뭐길래. 이리도 오랜 시간 전 세계에서 동시다발적으로 특히 ‘젊은 세대’에게도 사랑받는 것인가. 한 번쯤은 떠올렸을 궁금증이다. 이에 이즘이 ‘뉴트로 특집’을 준비했다. 먼저 박수진 필자가 ‘레트로 아니, 뉴트로 마니아의 시대’란 제목으로 복고(레트로)와 뉴트로의 정의를 알리고 오늘날 뉴트로가 사랑받는 이유에 대해 정리한다. 이 흐름 안에서 짚고 가면 좋을 국내외 대표 아티스트도 함께 언급했다고 하니 복고 열풍을 이해하는 좋은 지침서가 될 듯하다. 특집들은 한 주의 차를 두고 공개된다.

복고가 대중음악의 트렌드로 자리한 것은 최근의 일이 아니다. 2007년, 1970년대 디스코를 복각한 원더걸스의 ‘Tell me’가 전국에 선풍적인 반향을 일으킨다. 다음 해인 2008년, 그들은 1960년대 흑인 보컬 그룹 슈프림스의 콘셉트를 ‘재연’한 ‘Nobody’로 인기를 이어가는데 이는 미국 시장 진출의 발판이 되기도 했다. 진출 이상의 성과는 없었지만 당시 시야를 해외로 옮길 만큼 원더걸스의 인기는 대단했다. 복고와 함께한 성공이었다.

근 15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도 복고는 음악 곁에 있다. 지역이나 문화권을 뛰어넘은 전 세계적 흐름이다. 해외 음악 시장을 보자. 데뷔 초 ‘Marry me’, ‘Just the way you are’ 등 달콤한 팝을 하던 브루노 마스가 ‘Treasure’, ‘Uptown funk’, ’24K magic’ 등의 펑크(Funk)를 주력으로 삼은 지 오랜 시간이 지났다. 도자 캣의 긴 무명 시절을 끝내 준 효자곡 ‘Say so’ 역시 디스코, 펑크를 근간으로 하고 게일을 한순간에 스타로 만든 ‘abcdefu’ 또한 2000년대 초반 팝펑크를 여기로 이식한다. 신시사이저를 근사하게 채색한 해리 스타일스의 신곡 ‘As it was’는 현재 빌보드 싱글차트 2위를 순항 중이다.

복고의 의미를 따져볼 필요성을 느낀다. 복고, 즉 레트로(retro)는 회상, 회고, 추억이라는 의미의 영어 단어 ‘retrospect’로부터 파생했다. 과거의 ‘재현’을 통해 향수를 느끼고 추억을 되새기는 것이다. 다시 말해 해리 스타일스의 ‘As it was’를 듣고 그때 그 시절 떠올리는 (아마도) 중장년층에게 이 곡은 레트로다. 반면 추억이 없는 1020세대에게 이 곡이 지닌 복고적인 특성은 ‘색다름’이며 ‘새로움’이다. 이때는 ‘뉴트로’다. ‘새롭다’라는 뜻의 new와 ‘복고’의 retro가 합쳐진 신조어 ‘뉴트로’는 이렇게 레트로와 종이 한 장 정도의 차이를 가진다.

레트로와 뉴트로를 굳이 나누는 것은 한국 한정 현상이다. 책 < 트렌드 코리아 2019 >에서 뉴트로를 새해 소비 트렌드 전망으로 꼽으며 대중화됐다. 레트로 콘셉트의 음악에 이렇다 할 추억이 없는 젊은 세대에게 복고가 계속해서 큰 관심을 끄는 것이 키워드화 될 정도로 붐인 것이다. 도대체 왜. 다수의 전문가는 해답을 디지털 매체의 발달에서 찾는다.

2017년 익명의 ‘유튜브’ 계정에 타케우치 마리야의 곡 ‘Plastic love’가 업로드됐다. 2022년 현재 5천만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다. 발매된 지 30년도 더 된 이 곡이 별다른 맥락 없이 향수를 불러일으킨다는 이유로(위 영상의 댓글 창을 보자) 소환되고 회자했다. 그렇게 불어온 시티팝 열풍이 유튜브 알고리즘 추천을 타고 국내까지 번졌다. 빛과 소금의 ‘샴푸의 요정’이 젊은이들의 귓가를 쓰다듬었고, 김현철은 10년 만의 정규 음반을 발표한다. 백예린, 아이유, 태연, 브레이브 걸스 등이 시티팝 스타일의 노래를 불렀다.

나아가 소셜 미디어 사용이 확대되며 뉴트로가 ‘확산’되는 속도가 빨라졌다. 2020년 한 틱톡커(Tiktoker)가 스케이트보드를 타며 플리트우드 맥의 ‘Dreams’를 따라 부르는 영상을 올린다. 이 영상이 입소문을 타며 1977년에 발표한 곡이 40여년 만에 빌보드 싱글 차트 21위에 재진입했다. 최근 국내의 각종 숏폼 플랫폼에서는 이럽션의 ‘Oneway ticket’이 활약 중이다. 1980년 방미가 ‘나를 보러와요’로 번안하며 인기를 끈 이 노래가 오랜 시간이 지난 후 원곡으로 다시 사랑받고 있다. 곡이 가진 ‘뽕끼’와 촌스러운 익살스러움이 젊은 층에게 개성과 재미로 먹혀들었기 때문.

앞으로 달려 나가는 사회에서 자꾸만 뒤를 돌아보는 이유는 무엇일까? 디지털 매체가 발달하고 소셜 미디어 사용이 확대된 오늘날 우리가 찾는 새로움이 ‘미래’가 아닌 ‘과거’에 더욱 쏠려 있다는 것은 복고가 전하는 메시지가 무언의 설득력을 가진다는 것을 뜻한다. 이제 막 30대 초입에 들어선 필자는 그 답을 현실의 퍽퍽함에서 찾고자 한다. 기술 매체의 발달이 되려 팽팽한 긴장감으로 치환되는 지금 우리네 사회는 앞을 내다볼 여유가 없다.

영국의 저명한 평론가 사이먼 레이놀즈는 < 레트로 마니아 >라는 책에서 레트로 문화를 강도 높게 비판한다. 그는 “문화에서 레트로 마니아는 이제 지배적 우상을 넘어 임계점에 다다른 느낌”이라 말하며 “문화가 노스탤지어에 매달려서 앞으로 나갈 힘을 잃은 걸까, 아니면 문화가 더는 앞으로 나가지 않아서 결정적이고 역동적이던 시대에 노스탤지어를 느끼는 걸까”라는 질문을 덧붙인다. 일면 타당한 시선이다. 재창조가 받침 되지 않는 복고는 완벽한 재현(혹은 재연) 이상의 함의를 띄지 못한다.

그렇기에 언제든 가져다 쓸 수 있는 과거의 다양한 유산들은 자칫 그것이 음악의 전부가 될 경우 질적 하락을 초래할 수도 있다. 이번 글에서 복고가 사랑받는 이유에 대해서 분석하며 현실의 바로미터를 파악했다. 이어질 특집을 통해 레트로, 아니 뉴트로 마니아의 시대 복고를 듣기 좋게 재창조한 곡들을 소개한다. 대중문화를 사로잡은 ‘과거 앓이’가 자기복제 이상의 가치 창출로 뻗어나가길 바라며, 다음 특집도 재밌게 읽어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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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IZM 연말 결산 특집 Feature

2020 올해의 팝 싱글

코로나 19 범유행은 온 세상을 마비시켰다. 이 혼돈의 와중에도 음악은 충실히 현실을 투영했다. 충격적인 눈 앞을 피해 대대적인 과거 정서로의 이주 릴레이가 벌어졌고, 현재 진행형의 차별과 편 가르기에 맞서 목소리를 높였다. 오랜 시간 공고히 자리하던 팝 시장의 지형을 뒤흔드는 일대 사건도 있었다. IZM 선정 올해의 팝 싱글 10곡을 소개한다. 글 순서는 순위와 무관하다. 


위켄드(The Weeknd) ‘Blinding lights’ 

올해 많은 노래가 대중의 사랑을 받았지만 이보다 큰 지지를 얻은 싱글은 없었다. 2020년 최고의 히트 넘버, ‘Blinding lights’!. 히트도 그냥 히트가 아니다. 28주간 빌보드 싱글 차트 5위 내 진입, 40주간 10위 내 랭크 등 신기록을 경신하며 새로운 역사를 쓰는 중이다. 이 노래를 모든 부문의 후보에서 제외한 그래미 어워드를 국내외 대중과 각종 매체가 냉담한 반응으로 받아치며 그들의 공신력을 비아냥대는 꼴이 연출되고 있다. (심지어 위켄드 본인도 그들을 ’디스’했다.)

곡 전반에 깔린 패드 악기가 공간감을 형성하고 1980년대 신스팝을 재현한 신시사이저 리드가 탄성을 절로 터뜨린다. 히트 작곡가 맥스 마틴(Max Martin)이 제대로 일을 냈다. 그 위 자신의 트레이드마크인 퇴폐적인 사랑을 위켄드는 어느 때보다 강렬한 퍼포먼스로 내비치는데, 흡사 영화 < 조커 >가 겹쳐가는 뮤직비디오 속 라스베이거스와 로스앤젤레스의 도심을 피 묻은 분장으로 떠도는 그의 모습이 위태로우면서도 아름답다. 작금의 복고 유행을 가속화함과 동시에 그것을 멋지게 자기화(自己化)한 싱글. 그가 현세대 가장 걸출한 뮤지션 중 하나라는 것을 무리 없이 입증했다. (이홍현)


도자 캣(Doja Cat) ‘Say so’ 

디스코 열풍과 SNS를 통한 챌린지. 올 한해 팝 신의 가장 중요한 키워드를 한꺼번에 설명할 때 가장 적확한 곡이 아닐까. 찰랑찰랑 거리는 펑키한 기타 리프를 타고 유려하게 흘러가는 도자 캣의 몽환적인 음색에 보다 감각적인 터치를 더하는 니키 미나즈의 섬세한 래핑. 과거와 현재의 경계를 넘나들며 빚어내는 두 아티스트의 시너지가 여성 래퍼가 득세하고 있는 지금의 현상을 주도했다 해도 과언은 아닐 터. 

이 노래를 통해 니키 미나즈는 그토록 염원하던 빌보드 No.1의 커리어를 거머쥐었으며, 첫 여성 콜라보레이션 HOT 100 1위라는 쾌거까지 그들의 것이 되었다. 밈으로 군림하는 데에 있어 단단한 음악적 내실이 필수적임을 알려준, 올 한 해 팝 트렌드 일등 단타강사. (황선업)


앤더슨 팩(Anderson .Paak) ‘Lockdown’ 

“사람들이 들고 일어났어.
제재 조치(Lockdown)라더니,
우리에게 총알을 날리더군.”

2년 전 차일디시 감비노의 ‘This is america’를 소개하며 “2018년의 미국은 누군가에겐 지옥이었다”라 운을 띄운 바 있다. 2020년의 미국은 그야말로 지옥이었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1,340만 명을 감염시키고 26.7만 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백인 경찰관이 비무장 상태의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의 목을 무릎으로 눌러 질식사시켰다. 거리에서 흑인들이 총을 맞아 살해당하고 비밀 경찰이 잠입해 사람들을 어디론가 끌고 갔다. 전염병과 공권력의 위협에 무방비로 노출된 약자들이 생존을 위해 ‘흑인의 삶도 소중하다(BLM)’를 외치며 거리로 나서자 대통령은 ‘법과 질서’를 강조했다. 

앤더슨 팩은 이 모든 상황을 담담히 관찰하여 정제된 분노의 언어로 ‘Lockdown’을 꾹꾹 눌러 담았다. 전쟁 같은 일상 속 지쳐버린 가장의 목소리로 “흑인 생명을 휴지쪼가리 취급하는”, “우리가 죽어갈 땐 침묵하다 나중에서야 소리를 내는” 사회에 울분을 토한다. 뮤직비디오 속 제이 록(Jay Rock)이 조목조목 매일 마주하는 공포를 설명해주지만 세상은 도통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모두가 얼굴을 가리고 살기 위해 투쟁해야 했던 2020년의 미국, ‘블랙 프라이드(Black Pride)’ 이상은 멀리 있었고 분노와 응축된 한은 이 노래처럼 가까이 있었다. (김도헌)


다베이비(Dababy) ‘Rockstar’

아마도 훗날 2020년 BLM(Black Lives Matter) 운동 시점을 대표하는 노래로 이 곡을 고를 것 같다. 노래 자체가 가족을 지키기 위해 자신이 총을 쏴 괴한을 죽인 실제 사건을 묘사해 ‘강한 흑인’을 부각한 데다 바로 터진 조지 플로이드 사태와 BLM 무브먼트를 반영했기 때문이다. 발 빠르게 몇 구절을 추가한 리믹스 버전, 관련 뮤직비디오를 냈다. 하지만 빅 히트는 이러한 사회성보다는 곡의 우수 청취 품질에 기인한다. 

어쿠스틱 기타의 애절하고 잔잔한 선율부터 ‘일단 듣게 만들고’ 프리스타일을 머금은 특유의 중저음 래핑과 기품 있는 플로로 ‘라디오프렌들리’를 주조한다. 무지 멜로딕하다. 3년 전 차트를 장악한 포스트 말론의 곡목도 같은 록스타다. 이미 록스타들을 압도한 랩스타들이 기울어가는 록을 향해 건네는 측은지심인가. 아니면 록을 먹어 치우고 난 후의 악어눈물 레퀴엠? 그러니까 더 록은 슬프다. 정반대 표제어로 거역할 수 없는 힙합 시대를 천명한 2020년 힙합 히트 영순위 넘버. (임진모)


로디 리치(Roddy Ricch) ‘The box’

트랩은 강고하다. 막강한 권세는 탄생지인 미국 남부를 넘어 갱스터 랩의 고장인 서부에도 전해졌다. 단지 확장만 한 것이 아니라 빌보드 싱글 차트 1위라는 높은 성적까지 이루게 했다. 캘리포니아주 콤프턴 출신 래퍼 로디 리치의 ‘The box’는 트랩이 여전히 대중음악의 핵심 장르임을 시사한다.

로디 리치는 갱스터 삶에 대한 찬양으로 ‘The box’를 채운다. 비싼 차를 타고 다니면서 약을 팔고, 예쁜 여자를 곁에 둔 걸 자랑하며, 경찰도 두렵지 않다면서 내내 범죄, 향락, 폭력이 버무려진 허세를 부린다. 시종 배경에 깔리는 “이얼” 애드리브와 훅 일부 문장의 마지막 음절을 끄는 보컬, 이 부분에 추가되는 화음은 듣는 이로 하여금 불건전한 내용을 순하게 받아들이도록 한다. 식지 않는 트랩의 인기, 청각적 재미를 제공하는 요소에 힘입어 갱스터 랩이 힘차게 날아오르는 순간을 ‘The box’가 기록했다. (한동윤)


카디 비(Cardi B)
‘WAP (Feat. Megan Thee Stallion)’

자극적이고 강렬한 것들은 언제나 이목을 집중시킨다. 특히 ‘성’에 관한 것들이라면 더욱 그렇다. 카디비는 올해 그 중심에 서 있었다. ‘축축하게 젖은 아랫도리(Wet Ass Pussy)’를 노래하고, 노골적으로 성행위를 묘사하며 춤을 춘다. 선정성의 정도는 논할 필요도 없다. ‘카디비 WAP 부모님 반응’ 등의 리액션 비디오가 세계적으로 유행처럼 번져갔으니, 단연 2020년의 뜨거운 감자였다.

흑인과 백인, 차별과 인정, 비난과 비판 사이. 카디비는 잠식된 평등 앞에서 ‘WAP’을 외친다. 노래를 장악하는 키워드 ‘섹스’가 세간에서 화두였지만 결국 진짜 메시지는 차별에 대한 대항이다. 흑인이자 여성인 카디비는 성행위를 비롯한 모든 행위의 키를 자신이 쥐고 있음을 선포한다. 이렇듯 대중을 매혹시킨 건 결코 자극적이기만 한 ‘섹스’가 아니라, 세상이 요구하는 여성성을 가감 없이 격파한 ‘카디 비’ 그 자체다. (조지현)


퓨처(Future)
‘Life is good (Feat. Drake)’

퓨처가 랩 게임에 남긴 족적은 분명하다. 트랩을 기반으로 한 지금의 싱잉, 멈블 등 다양한 랩 스타일의 초석을 다지며 주류로 이끌어 온 그는 왕성한 활동을 통해 꾸준하게 차트에 이름을 새겼고, 2010년대 랩 문법을 빛내는 가장 선명한 아티스트 중 한 명이 됐다. 드레이크와 함께한 ‘Life is good’은 그가 쌓은 커리어를 다시 한번 증명해내며, 새롭게 이어질 미래의 밝기를 더한다.

각기 다른 비트의 구성 속 유려한 드레이크의 래핑을 지나 등장하는 퓨처의 실력이 핵심이다. 타이트하게 배치한 가사의 끝에 일정하게 등장하는 ‘우’를 고유한 플로우로 만들어내는 곡 구성 능력은 그가 아직 시장에서 주목받는 이유를 보여주는 대목. 결국 빌보드 핫 100 2위에서 8주간 머무르며 1위는 하지 못했지만, 유튜브 뮤직비디오 조회 수는 끝없이 상승하며 업로드한 지 10개월밖에 지나지 않은 현재 13억 회를 넘어섰다. 많은 도전자가 있었지만, 힙합 트렌드의 시작부터 나아갈 방향까지. 그 중심엔 여전히 퓨처가 있다. (손기호)


베니(BENEE)
‘Supalonely (Feat. Gus Dapperton)’

올해도 틱톡(TikTok)의 영향으로 많은 곡들이 재조명을 받았다. 뉴질랜드 출신 싱어송라이터 베니(BENEE)의 히트 싱글 ’Supalonely’도 그 대표적인 예다. 작년 11월 발매한 후 몇 달이 지난 올해 봄, 명료하면서도 중독성 있는 노래의 후렴구가 틱톡에서 15초 영상 댄스 챌린지로 인기를 끌기 시작하더니 마침내 곡은 빌보드 싱글 차트에서 39위까지 오르며 그와 피쳐링에 참여한 거스 대퍼튼(Gus Dapperton)에게 첫 미국 시장 성공을 안겨주었다. 막 EP를 내놓은 신예가 단숨에 세계의 주목을 받는 스타로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얼터너티브 팝(Alternative Pop)의 경쾌한 분위기와 달리 속을 들여다보면 상당히 슬픈 정서가 감지된다. 작년 연인과 헤어지고 실연의 아픔을 웃음으로 승화하기 위해 만들었다는 ‘Supalonely’는 “내가 망친 거 알아 / 난 그냥 루저일 뿐이야”라며 아티스트의 쓸쓸한 감정을 투덜댄다. 뮤직비디오의 컬러풀한 배경 속 홀로 춤을 추는 그는 꼭 코로나 봉쇄령에 ‘집콕’ 생활에 익숙해진 우리의 모습 같기도. 감각적인 음악성이 돋보이는, 과연 엘튼 존의 극찬대로 ‘차기 글로벌 스타’의 탄생이다. (이홍현)


방탄소년단(BTS) ‘Dynamite’ 

모든 목표를 이루었다. 빌보드 싱글차트 넘버원과 미국 라디오의 에어플레이 접수, 그래미 후보, 해외의 여러 음악상 수상 그리고 팬더믹 상황으로 무기력해진 사람들에게 용기와 위로를 주고 싶다는 인류애적 목적도 달성했다. 전 세계 30여 개 나라에서 1위를 차지한 싸이의 ‘강남스타일’에 이어 대한민국 노래로는 두 번째로 세계를 정복한 노래 ‘Dynamite’는 그동안 우리의 평범하고 일상적인 삶이 얼마나 소중한지 일깨웠다. 

브루노 마스와 마크 론슨의 ‘Uptown funk’처럼 변박이 거의 없는 정박의 뚜렷한 비트, 명징하게 들리는 마룬 파이브 스타일의 16비트 리듬 기타와 리듬감을 배가시키는 단단한 베이스, 중반부터 등장하는 어스 윈드 & 파이어 풍의 혼섹션까지 ‘Dynamite’는 도전과 패기, 실험이 허용된 방탄소년단 음악의 틀에서 벗어나 1970년대의 소울/펑크(Funk) 음악으로 다양한 연령대와 모든 인종이 편하게 즐길 수 있도록 음악의 진폭을 확대했다. 훗날 2020년을 상징하는 노래를 꼽을 때 가장 먼저 언급되어야 할 진정한 대중음악이다. (소승근)


레이디 가가(Lady Gaga)
‘Rain On Me (Feat. Ariana Grande)’ 

레이디 가가는 지난 몇 년간 댄스 플로어에 일체 발을 들이지 않았다. < ARTPOP >의 대중적, 음악적 실패에 이어 거듭된 불행한 개인사로 무너진 그는 스탠더드 재즈와 컨트리 팝을 탐미하며 스테파니 조앤 저마노타를 정의하기에 급급했다. 본체를 잃어버린 페르소나는 존재할 수 없기에 누군가는 변절이라고 부를, 편안한 도피처를 찾아야만 했던 레이디 가가. 그토록 자신을 배척한 기성세대의 찬사를 받으면서까지 그가 원했던 건 살아갈 힘, 끈질긴 생명력이었다. 

몇 해를 굽이돌아 무대에 선 그가 이렇게 외친다. “어디 한 번 해봐. 차라리 말라 비틀어지겠어. 적어도 난 살아있으니까”. 그를 가장 솔직하게 드러낸 음악은 발가벗겨진 언플러그드 사운드가 아닌 한껏 왜곡된 전자 기타와 건반, 드럼 루핑으로 포장된 하우스다. 레이디 가가가 삶의 주도권을 되찾고 가장 먼저 밟은 곳, 바로 이 댄스 플로어에서 그는 그럼에도 살아가겠노라 다짐한다. 이 빌어먹을 세상에 같이 맞서줄 동료와 함께. ‘Rain on me’는 그의 삶의 의지의 표명이자 관철이다. (정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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