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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10곡 특집 Feature

라디오 PD들의 ‘내 인생의 음악 10곡’ – #3 김홍범 PD

내년 개설 20주년을 앞두고 이즘은 특집 기획의 일환으로 라디오 방송 프로듀서 20인의 ‘내 인생의 음악 10곡’ 편을 마련한다. 이즘 필자들과 독자들의 글을 공개하면서 이즘 편집진은 음악과 동의어라고 할 라디오 방송의 PD들이 갖는 미학적 시선과 경험을 들어보기로 의견을 모았다.

각 방송사의 라디오국에서 음악 프로를 관장하며 15년 이상의 이력을 가진 20인이 뽑은 ‘인생 곡 톱10’을 순차적으로 공개한다. 세번째 순서는 KBS 라디오 김홍범 프로듀서다.

잔혹한 기획이다.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음악 중에 10곡만 뽑으라니, 100곡이어도 고르기 어려울텐데 말이다. 1곡을 떠올리면 꼬리처럼 물고 나오는 다른 음악들이 나를 왜 안뽑아주냐고 울부짖는다. 내가 하찮은 기억력을 갖고 있다는 것까지 생각하면 빼놓은 곡들은 훨씬 많을거다.

그래서 미리 양해의 말씀 드린다. 이 리스트는 내 인생의 음악 10곡이 아니라, 지금 생각나는 음악 10곡이다. 지금 이 순간 기억해내지 못한 수많은 아름다운 음악, 그리고 요즘에 빠져있어서 선택하지 않은 젊은 음악들에게 사과를 전하며…

윤상 / Back to the real life

나에게 있어 음악 중에서도 사운드에 큰 관심을 갖게 한 뮤지션이 있다면 단연 윤상이다. 그의 모든 앨범은 뛰어나지만. 그 중에서도 < Cliche > 앨범에 실린 곡들은 모두 시공간을 초월하는 아름다움을 갖고 있다. 목소리가 아닌 사운드가 노래하는 음악, 그게 윤상의 음악이다. 유행을 타지 않는 목소리는 덤이다.

나인 인치 네일스(Nine Inch Nails) / Closer

성장하는 뮤지션을 좋아한다. 그것도 완전히 새로운 틀을 만들어내는 뮤지션. 트렌트 레즈너(Trent Reznor)는 그런 면에서 이상형에 가까운 인물이다. 그리고 음악 구성만으로 엄청난 고양감을 선사하는 선동가이기도 하다. 그가 손을 대면 단순한 멜로디도 엄청난 파괴력을 발휘한다. 특히 < The Downward Spiral > 앨범은 처음부터 끝까지 마음이 솟구친다.

루시드 폴 / 그대 손으로

내가 음악을 듣는 스타일은 리듬, 멜로디, 사운드 등 전체의 균형감에 집중하는 편이다. 하지만 루시드 폴의 음악을 마음에 담은 이후에는 ‘가사’에도 더욱 집중하게 되었다. 그의 음악은 시적인 가사를 통해 모든 음악의 요소를 초월해낸다. 그 중에서도 찰랑거리는 느낌의 ‘그대 손으로’는 단연코 루시드 폴의 초창기를 대표하는 수채화같은 음악이다.

라디오헤드(Radiohead) / No surprises

실로폰은 강하다. 강력한 드러밍이나 일렉트로닉 사운드가 아니어도 사람의 마음에 큰 파문을 일으킨다. 그리고 이젠 하나의 예술집단이 되어버린 라디오헤드만의 음악 설계는 감탄에 감탄을 거듭하게 만든다. 그 만큼 이 곡이 실린 < OK Computer >앨범은 완벽하다. 기술과 감성이 완전히 균형을 이룬다. 그리고 그 사이를 관통하는 톰 요크의 목소리라니…

신해철 / 일상으로의 초대

신해철의 음악은 들을 때마다 탐닉하게 된다. 모든 장르의 음악을 자유롭게 다뤘던 만큼 어떤 음악에서건 적재적소에 특유의 표현력을 뿜어낸다. 특히 이 곡은 내가 ‘재즈카페’와 함께 가장 깊이 빠졌던 곡. 그의 음악을 듣다보면 어느 순간 마음의 ‘심연(深淵)’에 다다를 때가 있는데, 이 곡은 마음 속 가장 푸른 곳으로 데려다준다. 다시 그를 만나고 싶다.

다프트 펑크(Daft Punk) / Digital love

‘어떻게 하면 이런 ‘튠’을 만들어낼 수 있지?’하고 엄청나게 감탄을 했던 곡. 다프트 펑크의 마이너한 성향의 곡들도 좋아하지만, 대중성과 교묘하게 결합된 탐미스런 이 곡이야말로 그들만의 위대함을 표현하기에 좋은 곡이다. 그로인해 다프트 펑크의 음악은 등장한지 오래되었어도 여전히 나이가 들지 않고 유행의 최첨단을 달리고 있다. 마땅히 존경해야 할 존재다.

W / Shocking pink rose

그들의 장인정신을 사랑한다. 소리 하나하나 버릴게 없다. 새로운 사운드를 찾기 위한 그들만의 여정을 늘 응원해왔다. 특히 < Where the Story Ends >앨범은 우리 대중음악계에서 특별하게 빛나는 존재이기도 하다. 특유의 만화같은 가사와 결합되어 시너지를 일으키는 그들의 곡을 듣고 있노라면 나도 만화의 주인공이 된 듯한 느낌이 들어 항상 행복해진다.

Firehouse / Don’t treat me bad

당대의 슈퍼밴드들을 제치고 이 곡을 고른 이유는 단 하나다. 컨트리풍 사운드 속에서 재기 넘치게 울려 퍼지는 일렉트릭 기타의 커팅 플레이를 너무나 좋아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아직도 이 곡만 들으면 혼자 허공에 기타를 치게 된다. 그들의 고풍스러운 발라드 히트곡 보다 이 곡이 몇 배 더 사랑스럽다. 쟝쟝쟈가쟈가쟈가쟝쟝~

마이 앤트 메리 / 공항 가는 길

< Just Pop >. 앨범명처럼 가장 팝스런 곡들이 가득 담긴 작품이다. 모던록을 기반으로 하는 인디밴드의 노선으로는 드문 케이스였지만, 곡의 완성도로 모든 편견을 잠재워버렸다. 보편성의 위대함을 깨닫게 해준 앨범이기도 했다. 아마도 그 어떤 인디 앨범의 곡보다 지금도 편하게 들을 수 있을 것이다. 꾸미지 않아도 아름다운 것은 아름답다.

세풀투라(Sepultura) / Desperate cry

내 인생의 초반부는 ‘속도’였다. 빠르고 강한 음악만이 전부였다. 우리 세대가 모두 그렇듯 메탈리카, 메가데스, 앤스렉스, 슬레이어 등에 무진장 빠져있었으니까. 그 중에서 아직도 내가 많이 듣는 밴드는 세풀투라. 복잡하지 않아서다. 현재 EDM처럼 단순한 구성만으로 사람의 감정을 불타오르게 한다. 특히 이 곡은 내가 구렁텅이 빠질 때마다 구원해주는 곡이기도 하다. 이유는 비밀!

■ 프로필

김홍범 | relax@kbs.co.kr

KBS 라디오PD. < 굿모닝팝스 >, < 메이비의 볼륨을 높여요 >, < 데니의 뮤직쇼 >, < 홍진경의 두시 >, < 이현우의 음악앨범 >, < 김C의 뮤직쇼 > 등을 연출했다.

그저 음악을 좋아한다는 이유로 < 52 Street >, < 네이버 이주의 발견 >, < 네이버 온스테이지 >, 월간 < 굿모닝 팝스 > 등을 비롯한 여러 매체에 부족한 글을 끄적거려왔으며, FIFA U-20 월드컵 코리아 오피셜송 자문위원을 역임하고 지금은 < 한국대중음악상 > 심사위원을 맡고 있다. 현재 KBS 쿨FM < 강한나의 볼륨을 높여요 >를 연출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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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10곡 특집 Feature

라디오 PD들의 ‘내 인생의 음악 10곡’ – #2 남중권 PD

내년 개설 20주년을 앞두고 이즘은 특집 기획의 일환으로 라디오 방송 프로듀서 20인의 ‘내 인생의 음악 10곡’ 편을 마련한다. 이즘 필자들과 독자들의 글을 공개하면서 이즘 편집진은 음악과 동의어라고 할 라디오 방송의 PD들이 갖는 미학적 시선과 경험을 들어보기로 의견을 모았다.

각 방송사의 라디오국에서 음악 프로를 관장하며 15년 이상의 이력을 가진 20인이 뽑은 ‘인생 곡 톱10’을 순차적으로 공개한다. 두번째 순서는 SBS 라디오 남중권 프로듀서다.

음악을 듣고 있으면 항상 부모님은 쓸데없는 짓 말고 공부나 하라고 하셨지만 나는 이 쓸데없는 짓으로 밥벌어 먹고 살고 있다. 옆방에 살던 삼촌의 카세트에서 몰래듣던 인기가요 테잎부터 방송반 선배가 소개해준 메탈음악, 그리고 라디오에서 우연히 접한 음악들까지.

지금껏 내 플레이리스트에서 사라지지 않고 쓸데없이 남아 밥벌이를 도와주고 있는 감사한 곡들 중 10곡을 무순으로 소개한다.

너바나(Nirvana) ‘Smells like teen spirit’
아직도 이메일 아이디로 남아 계속 나를 쫓아다니는 커트 코베인은 내게 청춘의 지표같은 것들을 스윽 남기고 불꽃처럼 사라졌다. 아니 정확히 하자면 그가 죽기전에 남긴 것들을 내가 뒤늦게 온몸으로 받아들인 것이겠지. 씹던 껌을 다시 꺼내 씹듯이 매가리없이 부르다 갑자기 짜증내듯 터져나오는 보컬에 마구 때려부수던 것 같은 기타. 그리고 앨범 제목은 < Nevermind > 굳이 번역하자면 ‘신경꺼’라니. 얼마나 멋진가 말이다. 이 앨범을 포함해 단 세장의 정규앨범을 남기고 간 커트 코베인은 그 흔한 말처럼 ‘그는 갔어도 음악으로 남아’ 아직도 내 청춘들을 휘젓는다.

당시에도 비평가들은 곡 구성이 지나치게 단순하다, 만들다 만 것 같은 음악이다. 등등 열을 올렸었는데 한편으론 배우기 쉬워서 많은 학생들이 기타에 입문하게 된 계기를 만들기도 했다.

그때 기타나 배워 놓을 걸, 난 괜히 패션만 따라하다가 누더기 옷만 잔뜩 걸쳐입고 다닌 기억뿐이다. 이래저래 한심한 시절이었다.

신해철 ‘나에게 쓰는 편지’
신해철의 음악은 대부분 훌륭하지만 가끔은 자의식이 과할때가 있다. 그래서 부담스러울때가 간혹있는데 초기 음악들은 아직 그 정도가 약해서 훨씬 좋다. 그 중에서도 ‘나에게 쓰는 편지’는 타자화된 나에게 보내는 메세지라는 영화적인 설정(?) 때문인지 중학생이었던 나에게 큰 울림을 주었다. 고흐의 불꽃같은 삶과 니체의 상처가 뭔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은행구좌의 잔고 액수가 모든 가치의 척도인 삶은 살지 않기로 말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와 달라서 어제 받은 카드값 독촉전화 때문인지 아침부터 은행 잔고 액수를 생각하면서 글을 쓰고 있다.

메탈리카(Metallica) ‘Master of puppets’

고등학교에 입학하자마자 들어간 방송반에는 음악을 좋아하는 선배들이 많았는데, 특히 남자 선배들 중 두명이 메탈 덕후였다. 그 중 한명이 나에게 최고의 메탈 밴드라면서 소개해줬는데, 마구잡이로 때려부수듯이 내리꽃는 기타 사운드에 곧바로 매료되어, 그때까지 듣던 뉴키즈온더블락이니 마이클 잭슨이니 하는 음악들은 하찮게 느껴질 정도였다. 특히 이곡은 수십번을 들어도 완벽한 곡 구성에 멜로디, 스래쉬 메탈에 최적화된 제임스 헷필드의 보컬, 커크 허밋의 기타 속주까지 8분 30초여의 시간이 말그대로 속주처럼 지나갔다.

어헝헝 어헝헝하면서 따라부르다 보니 더욱 더 이곡이 좋아졌는지 결국엔 다음학기 내 첫 프로그램의 첫곡으로까지 선곡하게 됐다. 하지만 담당 선생님은 이 곡이 맘에 안 드셨는지 몽둥이를 들고 뛰쳐올라오는 해프닝으로 마무리됐다. 난 매우 속상했지만 한편으론 훈장이라고 생각하며 다시 조용히 메탈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봄여름가을겨울 ‘영원에 대하여’

고등학교 방송국에서 만난 해원이는 음악을 나보다 훨씬 많이 알았는데, 이곡은 그 녀석의 소위 애창곡이었고 그 덕에 나는 이 앨범을 ‘영접’하게 됐다. 특히 이 노래는 가사가 엄청났는데, 그대와 함께 ‘영원에 대하여’ 얘기를 나눈다니 얼마나 허세로운 로맨틱인가. 해원이는 이 노래를 갓 배운 담배와 함께 부르곤 했는데 난 간주 점프없이 이곡을 끝까지 들어주곤 했다.

‘I photograph to remember’라는 부제가 붙은 4집은 아마도 봄여름가을겨울 앨범중에서 흥행에서는 가장 떨어지지만 개인적으로는 최고의 음반으로 뽑는다. 타이틀 곡이었던 ‘영원에 대하여’ 뿐 아니라 ‘페르시아 왕자’나 ‘전도서’ 같은 연주곡들도 좋았는데 특히 정원영이 작사작곡한 ‘안녕 또 다른 안녕’은 숨겨진 명곡이다.

음악을 많이 알던 해원이는 대학에 가서는 연극을 하다가 졸업후엔 차를 팔았는데, 몇 해전 본인상 부고를 문자로 보내고는 진짜 ‘영원’으로 가버렸다. 이 곡을 들을때마다 해원이 생각을 많이 한다.

한영애 ‘불어오라 바람아’
이병우의 멜로디에는 공통점이 있다. 묘한 희망감에 눈물이 난달까. 어떤날의 ‘출발’에서 느껴지는 감정이 이곡에도 있다. 거기에 한영애의 탁한 보컬과 가사 덕분에 노래는 묘하게 호전적이기까지하다. 난 그때 쉽사리 성적이 오르지 않는 고3 수험생이었는데 빈 기숙사에서 불확실한 미래로 두려울때마다 이 노래를 즐겨 들었다. 뭐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마음으로 이 가사들을 기도문처럼 따라부르면서.

전람회 ‘마중가던 길’
전람회에서 김동률에 가려 존재감을 드러내지 않던 서동욱이 거의 유일하게 보컬로 전곡을 소화한 노래다. 목가적 분위기에 마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했던 성가대 오빠의 느낌으로 담담하게 이 곡을 마무리한다. 그녀를 마중가던 길에 ‘난 이제 잊혀지겠지’라고 얘기하는 정서란 어떤 것일까. 옛사랑, 외사랑, 짝사랑 등 사랑의 어두운 면을 그리는데 탁월했던 김동률의 곡은 서동욱의 불완전한 보컬과 만나 이 노래에서 한없이 쓸쓸한 가을 정경을 그린다. 자존감이 최저점이던 시절 수백번을 돌려들었던 노래. 그 지점을 빠져나오고는 잘 듣지 않게 됐다.

언니네 이발관 ‘푸훗’
주말이면 집으로 다들 가는 바람에 고3 기숙사는 텅빈적이 많았는데 그럴때 볼륨을 빵빵하게 올리고 이곡을 들었다. 청명한 아침 바람에 울려퍼지는 기타소리와 함께 이건 노래를 부르는건지 마는건지 대충 읖조리는 이석원의 보컬, 무엇보다도 왠지 대충만든거 같은 곡 짜임새. 가사도 이건 아무리 읽어봐도 애매모호한게 ‘가질 수 없는 걸 알기에 더욱 갖고 싶은 나에게 화가 나’다가 ‘천번을 만났던 천번을 만나왔던 두사람’이라고 막 얘기하다가 서정적인 멜로디로 끝이나는. 그런데 그게 너무 신선했다. 얼터너티브나 모던록의 정신은 이렇게 ‘푸훗’ 하면서 그냥 막한번 해보는거 아닌가 싶은.

배리 매닐로우(Barry manilow) ‘Even now’
라디오에서 선곡대결은 거의 구한말 시대부터 있던 코너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그 유구한 역사를 자랑한다. 지금 이 시간에도 어느 라디오 코너에서는 패널들이 앉아서 비장한 각오로 준비한 곡들을 꺼내놓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곡도 그런 코너에서 처음 들었다. 아마도 김현철의 밤의 디스크쇼가 아니었을까 싶은데, 한 패널이 이곡을 골라왔다. 헤어진 사람을 지금까지도 (Even now)도 잊지 못하는 구구절절함. 배리 매닐로우의 버터 듬뿍바른 목소리가 더해져 없던 옛추억도 만들고 싶어질 정도로 낭만적이었다.

그때 기억나는 한 패널은 앨런 파슨스 프로젝트(Alan Parsons Project)의 곡들을 주로 선곡했는데 그는 주로 타이틀이 아니라 ‘나만 알 것 같은 음악’을 앨범 구석구석에서 털어왔다. 어느날은 ‘Don’t let it show’라는 특이한 싱글을 들고 왔는데 주구장창 ‘Old and wise’만 듣던 내게 꽤 충격을 줬었다. 이래저래 선곡대결이라는 코너는 내게 낭만적으로 남아있을 수 밖에 없다.

김현철 ‘그런대로’
김현철 1집은 유일하게 그의 2집으로만 뛰어넘을 수 있다. 이곡이 들어있는 앨범 ’32도씨 여름’이 나오고 ‘그런대로’를 계속해서 들었다. 갑갑할 정도로 단순한 가사의 반복으로 진입하는 노래는 ‘그녀는 안녕이라 말하네’를 계속해서 얘기하다가 뭐 그냥 별다른 대책없이 ‘그런대로 살아가기 마련’이라고 또 밝게 얘기하다가 학교 앞 길이 젖었네’라고 계속하더니 또 ‘그런대로 살아가기 마련’이라고 처연하게 노래하는게 뭔가 술취한 아무렇게나 불러버린다. ‘달의 몰락’이 들어있는 3집이 대중적인 인기를 얻지만 나에겐 아직도 술취한 듯 불러버린 이곡과 같은 이 정서를 되찾지 못하는거 같아 아쉽다.

제니퍼 원스(Jennifer warnes) ‘And so it goes’
이곡은 아침창 라디오에서 고민석 선배가 직접 출연해서 들려줬는데 난 아직도 그 아침의 공기가 또렷하게 기억난다. 라디오가 빛날때는 바로 그럴때가 아닌가 싶다. 누군가 내게 손내밀듯 툭 던지는 노래들. 빌리 조엘의 곡을 리메이크한 이곡은 고민석 피디의 목소리로 전달되어 김창완 DJ의 손에서 플레이 됐다. 그러면서 전혀 다른 느낌의 곡이 되어 버렸다.

난 아직도 라디오에서 음악이 중요하다고 믿는 (구세대이자 동시에) 확신범이다. 그리고 내가 선곡한 음악보다는 남이 선곡한 음악에 더 큰 희열을 느낀다. 전혀 기대치 못한 선곡. 그날의 공기와 DJ의 숙취 정도에 따라 달라지는 음악.

■ 프로필

남중권 PD / cobain999@sbs.co.kr 17년차 라디오 PD 겸 애아빠.

< 송은이 신봉선의 동고동락 >, < 최백호의 낭만시대 >, < 아름다운 이 아침, 김창완 > 등의 프로그램을 연출하다 뜻한 바 있어 편성기획팀에서 3년째 뉴미디어 사업 중. 아직도 선곡의 손맛을 잊지 못하고 프로그램으로 복귀할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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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10곡 특집 Feature

라디오 PD들의 ‘내 인생의 음악 10곡’ – #1 정일서 PD

내년 개설 20주년을 앞두고 이즘은 특집 기획의 일환으로 라디오 방송 프로듀서 20인의 ‘내 인생의 음악 10곡’ 편을 마련한다. 이즘 필자들과 독자들의 글을 공개하면서 이즘 편집진은 음악과 동의어라고 할 라디오 방송의 PD들이 갖는 미학적 시선과 경험을 들어보기로 의견을 모았다.

각 방송사의 라디오국에서 음악 프로를 관장하며 15년 이상의 이력을 가진 20인이 뽑은 ‘인생 곡 톱10’을 순차적으로 공개한다. 첫 순서는 KBS 라디오 정일서 프로듀서다.

돌이켜 보면 나의 학창시절과 청춘은 대체로 어두웠던 것 같다. 누구나 겪는 성장통이었으련만, 그때는 내게 그것이 퍽이나 가혹해서 매순간 버거웠었다. 진심으로 라디오와 음악이 있어 그 시절을 통과해올 수 있었다.

내가 라디오 PD가 되어야겠다 마음먹은 이유이기도 하다. 인간의 감정 중에 가장 깊고도 진실한 마음은 ‘슬픔’이 아닐까 한다. 슬플 때마다, 힘들 때마다 음악이 곁에 있었다. 그 때 이 음악들이 나의 위로였고, 나의 구원이었다.

○ 어떤날 / 너무 아쉬워하지 마 / 1986
그 때 내가 살던 동네인 방배동 골목 작은 음반가게에서 우연히 마주친 이 음반 1장이 내 인생에 미친 영향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음반을 통째로 마르고 닳도록 들었지만, 그 중 제일은 LP B면의 첫 곡으로 슬며시 앉아있던 이 곡이다. 그들이 한사코 그러지 말라고 노래하던 모든 것들이 한없이 아쉽고 슬펐더랬다.

○ 톰 웨이츠(Tom Waits) / Ol’55 / 1973
어쩌면 가장 큰 위로는 “너만 그런 게 아니야”, “모두가 다 그래”라고 말해주는 것일지 모른다. 일상의 고단함이 엄습해 올 때 이 노래는 그것을 일깨워준다. 원, 투, 쓰리, 포(카운트 다운).. 짧은 피아노 인트로 뒤로 밀려오는 그의 메마른 목소리는 그 어떤 미성보다도 신산한 삶을 위무하는 힘이 있다.

○ 보즈 스캑스(Boz Scaggs) / We’re all alone / 1976
마이클 잭슨이 아무리 ‘You are not alone’이라고 노래해도 우리는 모두 근원적으로 외로운 존재다. 보즈 스캑스가 만든 노래로 프랭키 발리가 제일 먼저 불렀고 후에 리타 쿨리지의 노래로 가장 크게 히트했지만, 역시 원작자인 보즈 스캑스의 노래를 앞설 수는 없다. 더구나 뒤에는 곧 토토의 멤버가 될 이들이 대거 포진하고 있으니 그 또한 믿음직스럽다.

○ 동물원 / 잊혀지는 것 / 1988
잊혀진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동물원은 모든 것은 잊혀지는 것이라고 담담히 노래한다. 무심히 흐르는 시간에게 용서란 없다. 사랑도 꿈도 끝내는 잊히고, 우리는 서로의 타인이 되고야 만다. ‘그 모두는 시간 속에 잊혀져 긴 침묵으로 잠들어간다’. 김광석이 아무리 절창이어도, 그의 다시 부르기마저도 동물원의 원곡에는 비할 바가 아니다.

○ 뉴 트롤스(New Trolls) / Adagio(Shadows) / 1971
클래식과 칸초네의 유구한 전통을 간직한 이태리 프로그레시브 록의 색채는 영국 밴드들의 그것과는 분명히 다른 개성을 지니고 있다. 그 대표 그룹 뉴 트롤스의 이 노래는 처음 바이올린 소리가 흐르는 순간부터 도무지 헤어나올 수가 없다. 지금도 내가 라디오에서 슬픈 노래를 틀어야 할 때 언제나 맨 처음 떠올리는 노래이다.

○ 카멜(Camel) / Stationary traveller / 1984
입대를 앞두고 마음이 황량하던 시절 지금은 사라진 부천의 음악다방 < 수목 >에서 듣고 또 들었던 음악이다. 내가 아는 세상에서 가장 슬피 우는 기타 소리. 처음에는 조용히 눈물을 훔치다가 어느 순간부터는 아예 목 놓아 운다. 앤드류 레이티머의 기타를 뒷받침하는 건반의 주인공은 톤 셔펜질, 카약의 창단 주역인 그는 이 때 잠깐 카멜로 이적했었다.

○ 이문세 / 옛사랑 / 1992
마치 연극의 종막에서 암전 후 배우의 목소리만 남은 것처럼 악기들이 모두 빠지고 리버브를 잔뜩 머금은 목소리만이 아련히 사라져가는 이 노래의 엔딩을 듣고 있으면 나는 항상 비지스의 < First of May >를 떠올린다. 그러고 보니 두 노래의 계절적 배경도 똑같이 겨울이다. 마음이 차갑다. 그런데 노래에서 눈은 내리지 않고 자꾸 올라간다. 이영훈은 탁월하다.

○ 라디오헤드(Radiohead) / Exit music / 1997
이제는 난수표 같은 음악 속으로 숨어버린 라디오헤드가 그 옛날 남긴 역작이다. 누군가는 세상에는 라디오헤드류와 아닌 류의 두 가지 음악밖에 없다고 했을 만큼 그들이 세상을 지배하던 시절이었다. 바로 그 라디오헤드류의 정체가 무엇이던가? 바로 극한의 멜랑콜리, 극단의 우울이 아니던가? 그들이 온 세상 곳곳에 우울의 씨앗을 마구마구 흩뿌리던 시절이었다.

○ 카리 브렘네스(Kari Bremnes) / Waltz / 2003
그 해 여름 출장지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만난 어느 평론가는 북구의 음악이 왜 슬픈가라는 어찌 보면 유치한 질문에 대해 이렇게 답했다. “대지는 넓은데 사람이 많지 않으니 근본적인 외로움이 그 안에 있기 때문”이라고. 그리고 그 출장 도중 그 곳에서 이 노래를 처음 만났다. 노래 안에 외로움이 산다는 말에 진심으로 동의했다.

○ 브로콜리 너마저 / 보편적인 노래 / 2008
솔직히 고백하거니와 브로콜리 너마저는 내가 대놓고 편애하는 밴드이지만, 그 중에서도 최애곡은 이 노래다. 이 대체불가의 정서를 지닌 밴드가 포착해 낸 보편적인 슬픔은 정말 너무나 보편적이서, 그래서 너무나 동감이 되어서 눈물을 자아내고야 만다. 처음 이 노래를 들었을 때 하던 일을 멈춘 채로 한동안 멍했었다.

■ 프로필
1995년부터 지금까지 26년째 KBS에서 라디오 PD로 일하고 있다. 무슨 일을 하던 귀에서 헤드폰을 빼는 일이 거의 없는 방송국에서도 소문난 음악광으로 예나 지금이나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음악 듣는데 쓴다.

그동안 연출한 프로그램으로는 < 황정민의 FM대행진 >, < 이금희의 가요산책 >, < 김광한의 골든팝스 >, < 전영혁의 음악세계 >, < 이상은의 사랑해요 FM >, < 신화 이민우의 자유선언 >, < 유희열의 라디오천국 >, < 이소라(강수지)의 메모리즈 >, < 장윤주의 옥탑방 라디오 > 등이 있다.

저서로는 《 팝 음악사의 라이벌들 》, 《 더 기타리스트 》, 《 365일 팝 음악사 》, 《 그 시절, 우리들의 팝송 》,《 KBS FM 월드뮤직:음악으로 떠나는 세계여행 》(공저), 《 당신과 하루키와 음악 》(공저)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