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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10곡 특집 Feature

라디오 PD들의 ‘내 인생의 음악 10곡’ – #15 김은수 PD

내년 개설 20주년을 앞두고 이즘은 특집 기획의 일환으로 라디오 방송 프로듀서 20인의 ‘내 인생의 음악 10곡’ 편을 연재 중입니다. 라디오는 음악과 동의어라는 편집진의 판단에 따라 기획한 시리즈로 모처럼 방송 프로듀서들이 전해주는 신선한 미학적 시선에 독자 분들이 좋은 반응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각 방송사의 라디오국에서 음악 프로를 관장하며 15년 이상의 이력을 가진 20인 PD의 ‘인생 곡 톱10’입니다. 열다섯 번째 순서는 CPBC 가톨릭 평화방송 김은수 프로듀서입니다.

아시다시피 덧대는 데는 그 닥 용기가 필요 없다. 대신, 걸러 내거나 포기하는 데는 그 몇 배의 용기가 필요하다. ‘열곡이면 충분하지’ 했음에도, 선곡리스트를 지웠다 썼다 를 반복하면서 어느새 페이지가 너덜너덜해졌다. 다행히 ‘인생’ 이라는 화두를 앞머리에 두자니 구성에 갈등은 없었다. 그럼에도 과거의 매순간이 성장과 노화의 리듬뿐 아니라, 미련과 회한의 채에 걸러져, 되돌아보니 다시금 아쉬움과 그리움이 한 겹 더 쌓이는 계기가 되었다.

어찌됐든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음악 PD들의 주옥과 같은 선곡과 해설을 통해 ‘이즘’ 독자 분들께는 다분히 지적욕구가 충족되었으리라 보고, 오늘은 그야말로 개인사를 관통하는 음악들을 나열하면서 한두 번 고개를 끄덕여준다면 진심 행복할 것 같다. 어차피 음악의 운명은 감성의 공명과 그로인한 쾌감(?)을 함께 나누는 일이므로…

장기하와 얼굴들 ‘마냥 걷는다’
‘마냥’이라는 부사를 노래제목에 붙였다. 남의 시선에 휘둘리지 않고 내 시선에 집중하면서 음악을 해보겠다는 당당한 고집이 느껴졌다. 일단 ‘싸구려 커피’가 날린 신선한 펀치 뒤에 이어진 수록곡들 모두가 그 자리에서 한 호흡으로 빠져들게 했다. 직업 상, 새로운 음반을 접하면 숙제하듯 요리조리 분석하고 해부하는 작업이 우선이건만, 이 음반은 물 흐르듯 한 번에 들어(?)버리게 되었다.

마치 장기하의 최근 에세이집 [상관없지 않은가?]에서 보여주듯, 작고 시시한 사물일지라도 그의 깊고 집요한 사색의 흐름을 타고 흡인력을 놓치지 않는 것처럼, 이 노래 역시 ‘좋았던 그 사람의 사진 한 장 손에 쥐고 마냥 걷는’단다. 연주는 더 압권이다. 무반주로 시작되는 노랫말에 귀를 세우다보면 비로소 시작되는 1분 30여초 동안의 장중한 간주와 후주는 무방비로 황홀경에 빠져들게 한다.

1980년대 일본의 Electronic Pop을 대표하는 밴드 [Yellow Music Orchestra]와 이기팝, 우리의 십센치와 이날치로 이어지는 실험적이고 고집스런 음악들이 주는 매력을 장기하는 이 한 장의 앨범에 넘치도록 싣고 있다.

The Animals ‘House of The Rising Sun’
-내가 초등학생 때 서울로 유학 간 오빠는 알토란같은 수업료를 빼돌려 밴드를 결성하고 음악활동을 하다 결국 부모에게 들켜 고향으로 강제 소환된 무렵, 우리 자매들을 앉혀놓고 기타반주에 불러주던 곡이자 내가 최초로 접한 팝송이다. 어린 마음에 제목자체에 희망을 걸었던 노래였건만, 실제 내용은 반전이다. 햇살이 가득한 따스하고 아늑한 가정이 아니라, 꿈을 가진 소년의 희망도 저버리게 만드는 회색빛 우울한 집… 그 집으로 돌아가는 남자의 쓸쓸한 회한이 묻어나는 노랫말을 알고 나니, 오르간 솔로보다 기타연주가 더욱 슬프고 아프게 느껴지는 명곡이다. 더욱이 지금은 가고 없는 오빠의 연주들이 이 노래부터 시작되어 지금도 긴 여운을 남기고 있기 때문도 하다.

-이 노래는 이후, 동네에 이따금씩 들어오던 천막극장의 개구멍을 넘나들며 영화에 빠지고, 박원웅과 황인용, 이종환, 김광한, 장유진, 김세원…으로 이어지는 음악프로그램들에 빠져 내가 라디오키즈로 성장한 자양분이 되 주기도 하였다.

송창식 ‘창밖에는 비오고요’
-오로지 운동장 조회를 피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들어간 고등학교 방송반. 뜨거운 햇살아래 교장선생님의 지루한 연설에 지쳐 한 두 명의 친구들이 픽픽 쓰러지던 시절, 마이크 점검을 끝내놓고 시원한 방송반에서 뒹굴거릴 때, 송창식의 이 앨범은 뭔지 모를 위안과 기쁨을 더해주었다. 더구나 세시봉의 뮤즈, 윤여정을 대상으로 만들었다는 심플한 노랫말의 이곡을 비롯해 비오는 날 들으면 더 깊은 울림으로 다가온 상아의 노래, 꽃보다 귀한 여인, 비의 나그네..등 연가 풍 곡들로 이어져 사춘기 감성을 마구 흔들어 댔다.

-불법이긴 했지만, 당시 나름 곱씹고 곱씹었던 곡들을 모아 읍내 레코드가게에 가서 나만의 컨필레이션 음반(조악스런 카세트 테잎이긴 했지만)을 만들 때 늘 빠지지 않던 애장곡이기도 하다.

한 대수 ‘물 좀 주소’
-방송반에 이어 그 혜택의 단맛을 잊지 못하고 들어간 대학 음악감상실 ‘미네징거’
그곳은 소위 음악 골통(^^)들의 집합소였다. 지금도 ‘명연주 명음반’ DJ로 활동 중인 정만섭을 비롯, 용산에서 알아주는 방송 장비의 대가인 선배와 종종 음악칼럼으로 세상에 이름을 알리는 음악매니아들이 학과 수업을 제치고 늘 감상실을 들락거리며 식구처럼 지냈던 시기였으니… 한 대수의 익살스런 표정의 앨범을 알게 된 것도 바로 그 시기. 미소년 같기만 하던 동기가 선배들과의 신고식자리에서 불러재낀 노래가 바로 이곡이었고 다들 이 느닷없는 반전에 뒤집어졌던 기억이 있다.

-이후 다큐프로그램 작가로 활동할 때, 이 노래는 새벽녘 원고 탈고 때마다 어김없이 틀어대던 내 애청곡(18번)이 되었다. 걸걸한 탁주 한 사발 같은 음색과 자유로운 영혼을 자켓 사진 한 장에 담아낸 한대수… 지난 해 미국으로 다시 떠나기 전, 김도향 선생과의 인연으로 마지막 출연을 평화방송에 허락해준 고마움 때문일까? 70나이에도 꽃무늬 셔츠와 장발이 잘 어울리는 아름다움 때문일까? 제아무리 야속한 시간이라도 이 20대 청년의 음악적 패기를 영원히 앗아가지는 못할 것 같다.

-추신: 전주 없이 영혼을 흔들어대는 네 음절 ‘물 좀 주소~’ 는, 우리 가요 사에 남을 가장 강력한 첫 소절이 아닐까 싶다.^^

한영애 ‘루씰’
-93년의 여름. 한영애의 ‘아.우.성 콘서트’를 보러 간 당시 나는 만삭이었다. 세상 밖으로 나오겠다며 발버둥치는 태아에게 ‘엄마가 이 공연 놓치면 널 미워하게 될지도 몰라. 그러니 아가야, 나오고 싶어도 조금만 참아주라.’ 겨우 달래며 달려간 여의도 63빌딩 공연장은 한여름의 습기와 열기로 가득 찼고, 간신히 구석진 입석을 차지 한 채 곡마다 열광하는 나를 결국은 한영애도 알아봤다. 관객들이 일제히 나를 보고 미쳤다? 는 박수를 보냈지만 나의 쾌감은 그녀의 흐드러진 블루지 창법의 ‘루씰’로 절정을 이루었다. 전설의 블루스 뮤지션 B.B.King의 기타 애칭라고 하지만 내게 루씰은 그냥 한영애다.
‘루씰~ 알고 있나, 너의 노래는 영혼 속에 가리워진 빛을 찾게 하는 믿음…’

-몇 해 전, 임진각DMZ평화콘서트에서 다시 그녀를 만났고, 나의 루씰이 건재함도 보았고, 무엇보다 주변 소음을 무시하고 거침없이 앞으로 전진하는 코뿔소의 모습을 한 그녀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음에 행복했다.

장국영 ‘Boulevard of Broken Dream’
-‘가사는 입에서 입으로 떠도는 운명’이라고 했던가… 나의 입을 떠나 타인을 거쳐 다시 나에게로 회귀하는 노랫말들…장국영이 부르는 이 노래는 마치 본인의 생을 예고하듯 처절하고 음울하게 다가온다.

그를 만난 건 그가 죽기 전 내한 해 묵었던 강남의 한 고급호텔 스위트룸 접견실. 영화음악프로그램을 제작할 당시였는데, 매우 친절하고 열정적으로 인터뷰에 응해 주었던 모습이 아직도 선하다. 특히 그도 나도 함께 좋아한 배우, 게리 올드만에 대해 얘기할 때는 친구처럼 반가워하기도 했다. 마치 배틀하듯 게리 올드만의 명장면들을 주고받을 때는 손뼉을 치며 즐거워하기도 했다. 그런 그가 사라졌다. 남은 건 노래 제목처럼 ‘슬픔의 거리 꿈이 깨진 거리를 홀로 걸으며 지독한 외로움을 토해 낸’ 그의 절규뿐이다.

-늘어지듯 흐느적거리는 섹소폰 전주에 이은 장국영의 블루지한 굵은 음색은 마치, 시리디 시린 새벽을 연상시킨다. 오랜만에 유튜브에 올려 진 이 곡을 다시 찾아 들었다. B.G 영상은 양조위와 열연한 [해피투게더]를 올려놓았는데, 극 중 오열하는 장국영의 모습이 왜 그토록 아프게 다가오는지….

Sting ‘I love her, but She loves someone else’
-음악프로그램 PD로 30년을 살았다. 중간 중간 교양과 선교, 다큐물을 넘나들었지만, FM은 결국 음악을 빼고는 그 어떤 프로그램도 제작할 수없는 매체다. 머리가 제일 맑아지는 순간도 음악을 모니터링 할 때고, 당연 나의 보물 제1호 역시 열권에 달하는 음악노트들이다. 컴퓨터로 작성할 수도 있겠지만 마치 누군가의 글을 받아쓰는 것 같아, 번거로움을 무릅쓰고 직접 기록하는 아날로그방식을 고집해왔다. Sting은 이 노트들에서 가장 많이 기록된 아티스트다. 장르는 물론, 기록하지 않으면 안 될 달란트를 가장 많이 보유한 예술가이자 철학자라고 할까?

언뜻 그는 연애지상주의자 연 가사를 쓴다. ‘바람 든 무’ 같은 호소력 짙은 음색도 낭만을 덧칠한다. 하지만 그는 힘들고 난해한 가사를 쓰는 뮤지션 중의 한 사람이다. 전통적인 가톨릭 가정교육의 영향도 있겠지만, 자기 주도적 멘탈이 매우 강한 뮤지션이기도 하다. 이 노래 역시, 모호한 삼각관계를 연상시키는 제목이지만, 어머니와 그녀의 신앙, 신과의 관계를 풀어내고 있다. 멜로디는 매우 서정적이고, 가사를 무시하고 들으면 위험한 사랑에 빠져버릴 수 있는 곡이기도 하다. 그러나 스팅은 속삭인다. ‘난 수도자 영성을 존중하는 아티스트…’ 라고.

-2005년. 올림픽 경기장에서 Sting 공연을 보았다. 잔디밭이었지만, 직접 공연 장비를 챙겨 온 스팅의 고집스러운 열정이 주변의 소음을 모두 잠식해 버렸다.

신해철 ‘아버지와 나 Part Ⅰ’
-음악을 좋아하면 당연 오디오에도 집중하게 되지만, 음반 녹음을 담당한 엔지니어를 보고 구입 결정을 하는 친구도 있다. 그의 방은 오디오장비로 도배됐음은 물론이다. 쫌 유난 아닌가? 하는 물음에 그 친구 왈,
‘마리아 칼라스가 언제 내 앞에서 이렇게 나만을 위한 공연을 해 주겠나?’ 깨갱… 거친 호흡하나 놓치고 싶지 않은 간절함을 이해하게 되었고, 신해철의 이 곡을 들으며 나 또한 그 거칠고도 살아있는 호흡을 체감 했다. 담배에 불을 붙이고 훅~~ 연기를 내뿜더니, 그가 내 앞에 앉아 세상에서 가장 힘든 고백을 읊조리기 시작하는 것이다.

‘저기 걸어가는 사람을 보라. 나의 아버지 혹은 당신의 아버지인가.
가족에게 소외 받고 돈 벌어 오는 자의 비애와 거대한 짐승의 시체처럼
껍질만 남은 권위의 이름을 짊어지고 비틀거린다…’

-나의 아버지도 가고 없다. 아버지와 오빠는 살아생전 몇 마디쯤으로 서로의 마음을 나눴을까? 그럼에도 아버지는 마지막 숨을 버티다 오빠가 달려와 눈빛을 마주했을 때 비로소 눈을 감았다. 신해철의 고백이 가슴을 후벼낸 ‘아버지와 나 Part 1′ 과, 아기울음소리로 시작과 끝을 엮은 Part 2. 그리고 ‘이제는 또 다른 그가 되어주고 싶다…’고 진정 화해와 사랑을 고백하는 Part 3까지… 유려한 문장과 진중한 반성, 굵직한 철학을 버무린 한 편의 완벽한 서사다.

피오나 애플 ‘I love you to love me’
-이 곡은 아무 전제 없이 그냥 한 번 들어보시라. 그러면 그녀에게 쏟아지는 찬사들에 고개를 절로 끄덕이게 될 것이다. 가능하면 그녀의 4집 앨범 중, ‘Every Single Night’까지 듣고 나면 그 폭넓은 음악적 스펙트럼이 경이로워질 것이다.

-누구와도 비교 불가능한 압도적 개성을 분출해내는 괴팍한 천사.
강렬하고 급진적인 고요의 독백!
당신이 상상할 수 있는 최고.
그녀의 컴백에 전율이 흐른다, 여전히 강렬하다.
목소리 음역은 콘트랄토이며, 음악적 스타일은 재즈, 얼터너티브 록, 바로크 팝의 요소를 가지고 있다….

조용필 ‘창밖의 여자’
-마지막 한곡을 놓고 고심에 고심을 거듭했다. 음악사에 남을 명곡, 가수 중에 가수, 이미 전설이 된 아티스트… 이렇게 써 놓고 보니 명명되는 인물이 선명해졌다.

-고등학교 2학년, 한창 지적 사치에 탐닉하던 여고생에게 나비넥타이를 하고 헤어스타일은 빵~한 청년. 게다가 발라드인지 트로트인지 알 수 없는 장르들이 뒤섞인 음반이 한눈에 들어 올 리 만무였는데, 그야말로 조용필은 음악으로 세상 모든 선입견들을 멋지게 파괴시켜버렸고 ‘위대한 탄생’을 알렸다.

-수많은 수식어와 수많은 사람들의 경탄을 집약해준 두 사람의 글을 인용하며, 조용필에 대한 나의 사랑, 영웅에 대한 나의 경애심을 갈무리하고자 한다.

‘조용필은 대중성을 비켜가지 않으면서도 음악적 혁신을 게을리 한 적이 없다.
훗날 대중음악 역사는 그를 위해 별도의 장을 준비해야 할 것이다.’

(이 주엽 지음. [이 한 줄의 가사] 중)

‘우리나라 가수 중 노래를 가장 잘 부르는 가수 한 명만을 꼽는다면,
단연 조용필이다’

(가수 송창식)

*김은수 PD
-1990년 가톨릭평화방송(CPBC) 입사
-‘신부님 신부님 우리 신부님’ ‘PBC 영화음악’등 다수 음악프로그램 제작
-영화중심 음악프로그램 ‘새날이 오는 길목에서’ 제작, 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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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10곡 특집 Feature

라디오 PD들의 ‘내 인생의 음악 10곡’ – #14 이상연 PD

내년 개설 20주년을 앞두고 이즘은 특집 기획의 일환으로 라디오 방송 프로듀서 20인의 ‘내 인생의 음악 10곡’ 편을 연재 중입니다. 라디오는 음악과 동의어라는 편집진의 판단에 따라 기획한 시리즈로 모처럼 방송 프로듀서들이 전해주는 신선한 미학적 시선에 독자 분들이 좋은 반응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각 방송사의 라디오국에서 음악 프로를 관장하며 15년 이상의 이력을 가진 20인 PD의 ‘인생 곡 톱10’입니다. 열네 번째 순서는 tbs 교통방송 이상연 프로듀서입니다.

10곡을 골라 달라는 부탁을 받고 잠시 고민에 빠졌다. 내게는 10곡의 명곡을 추천할 권위가 없기 때문이다. 안타깝지만 나는 ‘임진모 평론가’가 아니다. 하지만, 이내 안도하며 곡을 고를 수 있었다. 개인으로서의 ‘인생 곡’ 10곡을 요청받은 것이었기 때문이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들으며 잠이 들던 어린 시절의 희미한 기억이 아련하다. 흘러나오던 음악은 한 사람의 가슴 속에 영원한 추억을 새겨주었다. 오랜 시간이 흘러 커트 코베인이 세상을 떠나던 어느 해였다. 그가 머물던 감성의 도시 시애틀에서의 길지 않았던 음악적 탐험기는 나에게 과분한 음악적 경험을 선물하였다.

라디오 PD의 가장 큰 장점은 직업으로서 음악을 다룬다는 것이다. 음악이 없는 지난 20년은 상상하기 어렵다. 그렇게 음악은 기쁨이자 슬픔, 사랑이자 즐거움이었다. 하지만, 직업으로 음악을 다루고 청취자들을 만난다는 것은 개인적 음악 감상과는 또 다른 범주의 일이다. 지향하는 청중의 취향을 존중하며, 그들을 행복하게 해야 할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지상에서 가장 행복한 의무다.

지금부터 소개하는 10곡은 지극히 개인적 경험과 편견에 기반한 선곡이다. 지극히 주관적 느낌을 중심으로 소개하고자 한다.

카멜(Camel) ‘Long goodbyes’

“그녀는 왜 떠나야 했을까.
더 나은 무엇을 위해 떠난다는 말.”

마치, 사랑하기에 떠난다는 흔한 사랑 노래의 가사처럼 들린다. 하지만, 그녀의 이별에는 동과 서로 갈라졌던 독일의 아픈 역사적 배경이 자리 잡고 있다. 입김이 올라오는 추운 어느 겨울날의 정취가 가득한 앨범 재킷은 고독함의 정점으로 인도한다.

이 곡에는 사연이 있다. 오래 전, LP를 매일 한 곡씩 방송하던 어느 날이었다. 생방송을 위해 올라온 스튜디오에는 LP를 틀던 플레이어가 사라져 버렸던 것이었다. 이유는 방송 디지털화. 모 엔지니어 선배는 수 년 내 CD 플레이어도 사라질 것이라 그 날 자신 있게 공언하였다. 슬픔과 비통에 잠겼던 그 날, 방송 플레이를 위해 들고 갔던 LP 앨범이 바로 카멜의 < Stationary Traveller >였다.

이상은 ‘비밀의 화원’
아티스트 이상은은 지난 해 어느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이 노래를 ‘봄’에 비유하였다. 그렇다. 이 곡은 바로 ‘봄’이다. 추운 겨울의 아픔을 녹이는 봄과 같은 노래. 바로 ‘비밀의 화원’이다. 이 노래를 들으면 자연스럽게 Eliot의 ‘황무지’를 떠올리게 된다.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자라게 하고
기억과 욕망을 뒤섞으면서
봄비로, 정신없는 뿌리를 뒤흔든다.
겨울은 우리들을 따뜻하게 해주었지,
망각의 눈으로 대지를 뒤덮고
마른 구근으로 작은 생명을 길러왔다.”

그렇게 그녀의 ‘비밀화원’은 한 인간의 무너진 멘탈을 상실의 나락에서 구원하였다. 다음에 다시 만나면 꼭 감사함을 전해야겠다.

케런 앤(Keren Ann) ‘Not going anywhere’

“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나”

‘이오공감’의 곡 ‘한 사람을 위한 마음’의 가사 중 일부다. 아마 많은 이들의 아픈 부분을 터치하는 가사였지 않았나 생각한다. 그렇게 사람들은 만나고 헤어진다. 헤어짐의 고통은 사랑의 크기에 비례할 것이다.

‘어디도 가지 않는다’는 가사가 너무나 마음에 드는 노래. 그녀는 사람들의 일상적 작별인사 조차 듣기 싫어 그럴 때마다 무의식적으로 속삭인다. 이별에 대한 아픔과 트라우마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항상 그 곳에 듬직하게 서 있는 한 사람을 떠올리게 해주는 노래.

비틀스 ‘Yesterday’
세상 사람들에게 가장 좋아하는 팝송을 한 곡 고르라면 이 곡이 1등을 차지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누구에게나 너무도 친숙한 이 곡. 폴 매카트니가 너무나 담담하고 아름답게 불어낸 이 곡에는 그의 천재적 영감과 집요하고 정교한 노력이 담겨있다.

흔하디흔한 ‘Yesterday’를 선정한 이유 역시 주관적 경험에 기인한다. 음악을 공부하던 미국 시애틀에서의 짧은 기간. 이 곡은 내가 속한 아마추어 밴드의 첫 번째 레퍼토리였다. 당시 이 곡을 선곡한 유일한 이유는 이 곡이 가장 대중적이며 누구에게나 친숙하다는 것이었다. 매카트니가 느리지 않은 템포로 너무도 담담하게 불러낸 이 곡. 사실, 이 곡을 부르고 연주하는 것은 듣는 것만큼 쉽지 않다.

“I’m not half the man I used to be…”

사랑을 하면 두 사람이 하나가 된다던가. 더 이상 그 반쪽이 아니라고 담담하게 절규하는 가사는 애처로움의 정수다.

이오공감 ‘나만 시작한다면’
영원한 어린 왕자 이승환과 감성 작곡가 오태호의 프로젝트 <이오공감> 앨범 B면 첫째 곡.
이 곡은 오태호가 만들고 직접 부른 곡이다. 많은 이들이 <한 사람을 위한 마음>을 이 앨범에서 기억할 것이다. 테이프가 늘어지도록 듣던 이 앨범의 B면에는 오태호가 만든 보석들로 가득하다. 이승환의 다소 격정적인 분위기의 A면이 지나고 나면, 서정적인 피아노 소리에 수줍게 울려 퍼지는 오태호의 음성은 그렇게 나의 마음에 내려앉았다.

“그 누가 무슨 말을 내 삶에 던져도
흔들리지 않을 수 있는
내 삶의 주인은 나임을 알고…
나만 시작한다면 달라질 세상
나 진정 원하는 그 일을…
그 누구도 모르는 내일
커다란 인생의 무대 위에서 지금부터 시작이야”

이정선 ‘외로운 사람들’
어느 대학로 LP바에 이 노래를 듣고, 지독한 외로움의 정서에 붙들려 지내던 시절이 있었다. 보즈 스캑스(Boz Scaggs)의 1976년 곡 ‘We’re all alone’과 더불어 ‘외로움’을 노래한 대표적 걸작. 웃는 얼굴의 털털한 모습에 순대국을 맛있게 드시는 이정선 선생님의 기억을 떠올리면 감정을 몰입하기 어려워진다. 어떻게 이런 외로움의 정서를 음악에 담아내셨는지.

앙리코 마샤스(Enrico Macias) ‘La France de mon enfance’
회현동 알리앙스 프랑세즈의 벽 한켠에는 “프랑스어는 사랑의 언어입니다” 라는 글귀가 쓰여져 있었다. 그래서인지는 모르겠으나, 프랑스어를 들으면 비록 그 뜻을 알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감성적으로 변하는 신기한 경험을 하게 된다.
아름다운 프랑스어로 울려퍼지는 이 노래는 아이러니하게도 프랑스의 제국주의와 그 영향을 받은 한 사람의 애틋한 사연이 담겨있다.
앙리코 마샤스의 영혼이 담긴 목소리가 별처럼 아름다운 곡.

오지 오스본(Ozzy Osbourne) ‘Goodbye to romance’
기괴한 분장과 기행으로 사람들을 당황시켰던 오지 오스본(Ozzy Osbourne). 이른바 메탈 발라드라 불리는 장르의 이 곡은 그의 기괴한 외관과는 다른 너무도 체념적이고 서정적인 멜로디를 선사한다. 사랑놀이에 지쳐 그 부질없음을 깨닫고 달관해버린 듯한 오지 오스본의 담담한 보컬은 감히 ‘낭만의 종결’을 극한의 낭만으로 고한다.

프로콜 하럼(Procol Harum) ‘A whiter shade of pale’
연무로 가득한 호숫가를 거닐다 만나는 한 줄기 빛과 같은 오르간의 멜로디는 먹먹한 가슴을 가르며 이내 이성을 마비시킨다. 영국의 록 밴드 프로콜 하럼(Procol Harum). 그 이름의 어원과 의미조차 명확치 않은 밴드의 이름처럼, 노래의 제목 또한 문학적 모호함으로 점철되어 있다. 바흐의 영향으로 만들어진 곡답게 그 화성은 완전체에 가깝다. 인생무상. 어린 시절의 꿈은 어디로.

데비 깁슨(Debbie Gibson) ‘We could be together’
1989년에 LP로 발매된 데비 깁슨의 < Electric Youth > 앨범 뒷면- That Side라 명명된-의 4번째 곡으로 수록되어 있는 곡이다. LP를 꺼내 오랜만에 가사를 보니 유치함이 온몸을 휘감는다. 1970년생 데비 깁슨의 열아홉 감성이 녹아있기 때문일 것이다. 앨범 속지에는 가사가 이렇게 번역되어있다.

“어떤 보장도 없지만
가능성이라도 보인다면 어떤 대가든,
모든 것을 포기하겠어요.
예전에도 실수를 했었죠.
이번도 또 다른 막다른 길 인지도 모르죠.
하지만 잠시나마 우린 함께 할 수 있잖아요.”

유치한 가사. 그때는 왜 그리 가슴이 먹먹하고 설레던지. 카멜의 ‘Long goodbyes’와 더불어 프로그램 종방 날 자주 선곡하던 한 곡.

누구나 그러하듯, 나에게도 곡을 구분하는 주관적 기준이 있다. 그리고 음악은 모호하고 직관적 기준에 따라 ‘좋은 곡’과 그렇지 않은 곡으로 구분되어진다. 그 지독한 편견의 주관적 관점에서 10곡을 선정해 보았다.

멜로디에 가사를 담아낸 ‘가요’ 장르는 앞으로도 오랜 세월 동안 ‘인생’을 담아내고 기쁨과 행복, 그리고 위로를 인류에게 선사할 것이다. 청중과의 접점에서 음악의 힘과 기쁨, 사랑을 공유하는 ‘라디오쟁이’로 좀 더 오래 남아있기를 간구한다.

*이상연 PD (syonly@empal.com)
2000년 8월 TBS 라디오국 입사
박원웅의 < 사랑이 가득한 밤에 >, < 음악편지 >, 이종환의 < 마이웨이 >, 임진모의 < 마이웨이 > 등 연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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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10곡 특집 Feature

라디오 PD들의 ‘내 인생의 음악 10곡’ – #13 김혜선 PD

내년 개설 20주년을 앞두고 이즘은 특집 기획의 일환으로 라디오 방송 프로듀서 20인의 ‘내 인생의 음악 10곡’ 편을 연재 중입니다. 라디오는 음악과 동의어라는 편집진의 판단에 따라 기획한 시리즈로 모처럼 방송 프로듀서들이 전해주는 신선한 미학적 시선에 독자 분들이 좋은 반응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각 방송사의 라디오국에서 음악 프로를 관장하며 15년 이상의 이력을 가진 20인 PD의 ‘인생 곡 톱10’입니다. 열세 번째 순서는 KBS 라디오 김혜선 프로듀서입니다.

내게 음악이란.. 언제부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며 존재했던 것일까.. 어렸을 적부터 라디오에 귀 기울였고, 새로운 음악들을 흡수했고, 음악피디를 꿈꿨고, 어느새 내 삶에 깊숙이 스며들어 그야말로 공기처럼 지금껏 늘 곁에 있다.

지금은 그것이 소위 빽판(해적판)이라는 것을 알지만 어린 내겐 그저 대학생 언니오빠가 남겨준 수많은 LP 판들이 밤의 친구이며 내 정서적 자양분이 됐음을, 그리고 현재의 나를 김혜선 피디로 만들어준 것임에 틀림없다.

클라우디아 아라우(Claudio Arrau) 쇼팽의 ‘Impromptu & ballade’(즉흥곡과 발라드)
클래식 음악과의 만남은 아무래도 나의 언니를 빼놓을 수 없겠다. 내겐 위로 언니 둘이 있는데, 큰언니는 유난히 흰 얼굴에 긴 손가락, 소설속의 여주인공 같은 이미지를 갖고 있어 그런지 유난히 남자들의 인기가 많았다. 당연히 언니가 클래식을 좋아하리라 생각했는지 수많은 청년들이 LP를 선물했다. 그것도 나는 처음 보는 수입 명반을. 하지만 저녁잠이 많은 언니보다는 늦은 밤 문학소녀가 되곤 하는 내가 그 수혜자가 되었다고 보면 되겠다. 언니오빠의 소위 해적판만 보던 내게, 꼭꼭 씌워진 비닐을 뜯고 빨간색 로고가 선명한 필립스(Phillips) 레이블을 마주하던 설렘.

칠레 출신의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클라우디오 아라우의 쇼팽의 < 즉흥곡 & 발라드 > 음반은 내게 아름다운 클래식의 바다로 첫 발을 내딛게 해준 음반이 되었다. A면과 B면을 수도 없이 반복해 들으면서 모두 잠든 밤 헤르만 헤세와 세계의 명시를 읽으며.

## 나의 20대~50대를 관통한 방송들
꿈에 그리던 방송국에 입사했다. 그리고 라디오 음악피디가 되었다. 처음 레코드실에 들어갔을 때 그 많은 음반들이 숨 쉬고 있는데 가슴이 막 뛰었다. 이렇게 수많은 음반이 숨 쉬고 있다니! 무엇부터 들어봐야 할까?! ‘경외’로웠다. 하지만 나는 금세 두려워지면서 한없이 작아졌다.

내가 요만큼 좋아한다는 애호가 수준으로 감히 방송할 수 있을까…그때부터 큐시트 쓰는 시간과 방송시간을 제외한 모든 시간을 모니터에 바쳤다. 매일매일 쏟아지는 음악의 신세계는 끝이 없었다.

빌 더글러스(Bill Douglas) ‘Hymn’ (현재 < 당신의 밤과 음악 > 시그널)
1993년 클래식 FM에서 <당신의 밤과 음악>을 맡게 되었다. 그 당시 라디오 황금기는 밤10시. 젊은 사람 대상의 클래식프로그램이 필요했다. 프로그램도 변화해야했다. 엄숙하기보다는 친근해져야했다. 그래서 시그널부터 새롭게 변화에 앞장서야 했고, 대문을 바꿔다는 마음으로 수없이 들었던 100여곡의 후보 중에서 시그널로 발탁된 곡이다.

캐나다 출신의 빌 더글라스는 작곡가이면서 목관악기인 바순 연주자다. 바순의 음색을 듣다보면 힘든 일도 마음도 어느새 내려놓고 싶어지고 마음이 편안해진다. 그는 동양의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이 음악이 밤에 이렇게 사랑받는 곡일 줄 알고 있을까?.. 이 시그널은 27년째 93.1Mhz 에서 매일 밤 10시에 울려 퍼진다.

앙드레 가뇽(Andre Gagnon)  < Monologue >
< 당신의 밤과 음악 > 을 하면서 모니터하다가 알게  작곡가이다. 그야말로 힐링 음악. 눈을 감고 듣고 있노라면 마음이 청량해지는. 그런데 도저히 정체를 알 수 없는 작곡가이다. 온통 일본말로 음반이 써져있어서(영어 한 글자 없어서 연주자를 읽기조차 불가능했다) 국제방송의 동기한테 그 음반을 들고 찾아갔다. 그리곤 그가 캐나다 퀘벡 출신의 작곡가 겸 피아니스트라는 사실을 알게 됐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나의 ‘최애’ 뮤지션이다.

그의 음악을 방송한지 10여년이 지나서야 우리나라에서 < Monologue >(1997년 라이선스 발매)라는 타이틀로 소니(Sony)에서 첫 음반을 내게 되었을 때, 소니 담당자는 내게 자문을 구했었다. ‘김피디님이 가뇽을 우리나라에 알리셨는데, 이 음반 라이센스하면 잘 될까요?’ 물론 될 거라 했고, 음반은 대박이 났다. 그 후 앙드레 가뇽의 내한공연까지 성사되었고, 공연을 앞두고 그는 내가 당시 맡고 있던 < FM 가정음악 >에 출연했다. 그리고 소니 담당자는 앙드레 가뇽한테 “이 분이 한국에 당신을 알리신 피디입니다!” 그와 그렇게 인사를 나누었던 기억.

< FM 가정음악의 4계 > 가을, 겨울, 봄, 여름 (1998-1999)
아침 9시대 < FM 가정음악 >을 하면서 1년 동안 4장의 음반을 발매했다. 1년 반을 꼬박 음반에 매달려 있었다. 그동안 컴필레이션(합집)음반은 바이올린 컬렉션, 아침에 또는 밤에 듣는 음악, 머리가 좋아지는 음악 등등 대부분 음반기획자의 의도대로 대부분 편집되어 있었다.

나는 처음부터 방송 컨셉대로 음반을 기획하지 않는다면 기존의 컴필음반과는 차별화되지 않는다고 생각했고, 음반 한 장이 두 시간의 프로그램처럼, 오프닝부터 엔딩 곡까지 들으면 하루분의 방송을 들은 것처럼 만들어야 한다고 굳게 믿었고 그 기획의도에 충실했다.

그래서  오로지 방송을 통해서만  들을 수 있었던 곡(시중에선 구하기 어려운)들이 대거 포함됐음은 물론이다. 클래식에 관심 있는 초심자들이라면 이 음반들로 시작해도 좋을 것이다. 굳이 한 곡만 뽑으라면 < 가을 >편의 첫 곡인 소프라노 이네사 갈란테(Inessa Galante)의 ‘Ave Maria’가 될 것이다. 당시 방송 나가면 문의가 쇄도했다.

## <세상의 모든 음악>과 월드 뮤직 속으로.

내 방송인생은 < 세상의 모든 음악 >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35년 방송인생의 딱 절반되는 시점인 2002년 4월1일에 첫 방을 했다. 이미 포맷이 짜 있는 프로그램에서 코너를 바꾸고 패널을 바꾸고 하던 것과, 판을 새로 짜는 것은 너무 달랐다. 정말 제로에서 시작했다. 막막했다.

언젠가 준비가 된다면 프로그램으로 만들어봐야겠다 혼자 생각은 했었지만,  사내 프로그램 제안공모(무조건 피디 1인당 하나씩 내는 숙제! – 그저 난 숙제를 했을 뿐인데)를 통해 < 세상의 모든 음악 >이 갑자기 정규방송으로 편성되면서 제안공모자인 내가 갑자기 피디로 떠밀려 들어가게 됐다. 처음엔 밤 12시 1시간 프로라더니 갑자가 노출이 많은 퇴근시간 저녁 6시에 두 시간으로 편성이 바뀌면서 그야말로 멘붕이었다. 잠도 오지 않았다.

내가 아는 월드뮤직에 대한 자료와 레퍼토리는 아직은 그야말로 애호가 수준인데.. 이 밑천으로 어찌 저 넓고 깊은 바다로 뛰어들까나.. 해외방송 모니터하랴.. 시그널 찾으랴.. 새 코너 만들랴. 작가 찾으랴.. 모든 게 엉망이었다.

아직 누구도 밟지 않은 길을 내면서 가는 내게 ‘잘하고 있다! 잘 가고 있다!’고 자기 암시를 하면서 어둠 속을 한발씩 조심스럽게 내딛었다. < 세상의 모든 음악 >이라는 프로그램 타이틀만 덩그마니 있는 상태에서 방향을 잡는 것, 코너를 만드는 것, 코드음악을 찾는 것, 모든 게 새로웠지만, 역시 시그널(이 프로그램의 상징성)과 첫 곡(앞으로 이 프로그램은 이렇게 가겠다)이 제일 중요했다. 수차례 고심한 끝에 첫 방송 첫 곡은 바로 이 곡 이었다.

안네 소피 폰 오터와 엘비스 코스텔로(Anne Sofie von Otter & Elvis Costello)  ‘Broken bicycle/ Junk’
영화 < 노팅힐 >에서 ‘She’로 잘 알려진 엘비스 코스텔로가 스웨덴 출신의 메조 소프라노 안네 소피 폰 오터 (Anne Sofie von Otter)와 3년여 작업 끝에 만들어 진 2001년 앨범 < For The Stars >의 수록곡이다. 앨범 수록 곡 모든 곡이 다 좋지만, 클래식의 품격을 유지하면서 결코 문턱이 높지 않은 친근한 음악, 그 곡이 바로 < 세상의 모든 음악 > 첫 날 첫 곡이었다. 올해 만 18년을 넘긴 < 세음 >의 매해 생일엔 꼭 이 곡을 방송한다.

오이겐 키케로 트리오(Eugen Cicero Trio) 바흐 < 마태 수난곡 > 중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Erbarme dich, mein gott‘ (Rokoko Jazz,1965)
요한 세바스찬 바흐(1685-1750)는 평생 독일을 떠나 본 적이 없었다. 그의 이름은 그대로 직역하면 ‘작은 시내’라는 뜻. 그러나 그는 이제 시대를 뛰어넘어 전 세계 어디에서든 가장 많이 연주되는 작곡가로 기억된다. 그야말로 그는 ‘음악의 큰 바다’를 이룬 작곡가이다.

신앙심이 깊은 바흐는 많은 종교음악을 작곡했는데 1729년 4월 성금요일을  앞두고 그리스도의 수난을 다룬 < 마태수난곡 >이 초연되었다. 하지만 이 곡은 바흐 서거 이후 단 한 번도 연주되지 않고 잊혀졌다. 그 후 100년 동안 도서관에서 잠자고 있던 이 곡은 1829년 20살 청년 멘델스존에 의해서 라이프치히 무대에 다시 올랐고 지금은 전 세계 어디서든 공연되는 오라토리오가 됐다.

원래 이 곡은 알토의 아리아인데 루마니아 출신 피아니스트 오이겐 키케로는 얼마나 피아노로 아름답게 연주하는지 눈물이 뚝. 18세기 바흐의 작품이, 19세기 멘델스존으로, 다시 현대의 재즈로 이어져 있다니 클래식은 영원한 클래식이다. 얼마나 경이로운가.

에바 캐시디 (Eva Cassidy) ‘Imaigine’
지금 이 계절에 바로 들어야 할 곡이다. 늘 새로운 음악을 찾는 내게 지인이 앨범을 하나 건네주었다. 듣는 순간 가슴을 울리는 이 소울풀한 가수는 누구인가? 자료를 찾고 모니터해서 바로 < 세상의 모든 음악 >에 올렸다. 33해의 짧은 생을 살고 마감한 그녀는 끝내 생전엔 앨범이 빛을 보지 못하고, 낮엔 일하고 밤엔 재즈 바에서 통기타를 치며 노래하곤 했는데, 그녀 사후 2년 뒤인 1998년 발매된 앨범이 미국이 아닌 영국차트에 먼저 오르면서 역으로 모국인 미국으로, 전 세계로 알려지게 된 가수다. (영화 < 러브 액츄얼리 >에도 그녀의 곡이 나온다. Songbird)

< 세음 > 10주년 기념앨범 7집에 에바 캐시디의 ‘What a wonderful world’,

15주년 기념앨범 9집에 ‘Imagine’이 실려 있다. 피디의 애정이 물씬 풍기는 가수.

루치아노 파바로티 ‘Holy mother’(with Eric Clapton)
아마 클래식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루치아노 파바로티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태리의 태양처럼 쭉쭉 뻗은 고음. 우렁찬 소리. 그가 부르는 베르디의 ‘축배의 노래’나 ‘바다로 가자~’ 이런 칸초네를 듣고 있노라면 정말 ‘세기의 테너’라는 수식어에 모두 공감할 것이다.

그는 특별히 클래식 외에도 < Pavarotti & Friends >라는 기획으로 자선 공연을 펼치곤 했는데, 그 공연들과 스튜디오 녹음을 모아서 파바로티 타계 1주년에 음반으로 발매되었다. 에릭 클립튼, 스팅, 셀린 디온, 머라이어 캐리, 본 조비 등 수많은 팝스타들과의 듀엣 노래가 담겨있다.

크리스 보티(Chris Botti)  < Chris Botti in Boston >
트럼펫하면 단정한 이미지보다는 많은 사람들이 좀 끈적끈적한 느낌의 흑인연주자를 많이 떠올린다. 루이 암스트롱 같은. 하지만 그런 이미지와 다르게 이지적이고 쿨한 느낌으로 트럼펫의 음색을 아름답고 아련하게 느끼게 해준 트럼페터다. ‘Steps of positano’, ‘A thousand kisses deep’을 비롯한 아름다운 곡들을 연주하는 크리스 보티가 2008년 9월18일과 9월19일 클래식 연주홀인 보스톤 심포니 홀에서 보스톤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공연을 가졌다.

그의 친구이자 오랜 시간 함께 작업해온 스팅, 첼리스트 요요마, 조쉬 그로반 등 그야말로 최고의 연주자들이 보티와 함께 공연했다. 지금도 그 공연영상을 자주 본다. 최고들의 콜라보는 저렇게 멋지구나! 하면서.  재즈와 클래식, 다른 많은 장르를 넘나들며 트럼펫의 매력을 들려주는 현재진행형의 트럼페터 크리스 보티. 2011년 11월 세종문화회관에서의 공연도 잊을 수 없다.

메르세데스 소사 ‘Gracias a la Vida’
세상의 모든 음악을 하면서 많이 듣고, 많이 공부하고, 새로운 곡을 알게 되면  청취자와 함께 공유하면서 나도 성장했다. 언제나 깊은 울림을 주는 아르헨티나의 거장 메르세데스 소사를 기억하지 않을 수 없다. ‘대륙의 목소리’, ‘아르헨티나의 영혼’, ‘파차마마’… 다 소사를 표현하는 단어들이다. 군부 폭압 속에 1979년 추방되었다가 1982년 생명을 무릅쓰고 아르헨티나로 돌아와 Teatro Ópera에서 2월 18일부터  28일 동안 이어진 공연 기록의 하이라이트 음반 < Mercedes Sosa En Argentina >(1982)의 라이브 버전을 추천한다. 언제 들어도 마음을 어루만지는 영혼의 목소리.

오늘 하루도 삶에 감사하며.

‘Gracias a la vida’
Gracias a la vida, que me ha dado tanto    
Me dio dos luceros, que cuando los abro     
Perfecto distingo lo negro del blanco
Y en el alto cielo su fondo estrellado

Y en las multitudes el hombre que yo amo.

‘삶이여, 고마워요’
내게 그토록 많은 것을 준 삶에 감사 합니다/
삶은 눈을 뜨면 흑과 백을 완벽하게 구별할 수 있는
두 샛별을 내게 주었습니다.
그리고 높은 하늘에는 빛나는 별을
많은 사람들 중에는 내 사랑하는 이를 주었습니다.

* 김혜선 PD(hyeseon@kbs.co.kr)
1985년 4월 KBS 라디오 PD로 입사했다. 93.1 Mhz Classic FM에서 < FM 가정음악 >, < 당신의 밤과 음악 >, < 노래의 날개 위에 >, < 저녁의 클래식 >, < 음악풍경 >, < 한낮의 음악실 >, < 멜로디를 따라서 > 등을 연출했고, 2002년 < 세상의 모든 음악 >을 론칭해 연출해왔다. 그 후 < 세음 >과 만나고 헤어지기를 4번 반복, 그 사이 세음과의 인연은 10여년 이어졌다. < 세상의 모든 음악 > CD 1,3,4,7,9집을 발매했고, 그동안 방송하면서 20여 년 동안 세상에 내놓은 CD들 < FM 가정음악의 4계-가을, 겨울, 봄, 여름 >, < 재즈수첩 >, < 당신의 밤과 음악 >들을 또 다른 자식처럼 여긴다. 여전히 음악을 모니터할 때 가장 행복함을 느끼며, 매일 설레는 마음으로 청취자들을 만나고 있다. 현재는 KBS 클래식 FM의 < 김미숙의 가정음악 >(09:00~11:00 월-금) 연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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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10곡 특집 Feature

라디오 PD들의 ‘내 인생의 음악 10곡’ – #12 한재희 PD

내년 개설 20주년을 앞두고 이즘은 특집 기획의 일환으로 라디오 방송 프로듀서 20인의 ‘내 인생의 음악 10곡’ 편을 연재 중입니다. 라디오는 음악과 동의어라는 편집진의 판단에 따라 기획한 시리즈로 모처럼 방송 프로듀서들이 전해주는 신선한 미학적 시선에 독자 분들이 좋은 반응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각 방송사의 라디오국에서 음악 프로를 관장하며 15년 이상의 이력을 가진 20인 PD의 ‘인생 곡 톱10’입니다. 열두 번째 순서는 MBC 라디오 한재희 프로듀서입니다.

여기 있는 노래들은 가장 좋아하는 노래 10곡은 아니다. 좋아했던 곡들을 스무곡 남짓 추려내고 난 다음부터는 더 이상 순위를 매기는 게 불가능해졌다. 기억을 더듬어 보다가 내가 생각한 단어는 ‘인연’이었다. 음악과 내가 만난 인연. 그때의 나와 그때의 음악이 만나서 내 안에 뭔가 벌어진 이야기. 이런 얘기를 하다보면 어설픈 감상문을 쓰지 않아도 되고 라디오 사연같은 느낌도 날 것 같았다. 음악사이트 피치포크(pitchfolk)에 ‘The music that made her/him’이라는 제목의 시리즈가 있다. 뮤지션들이 자신이 좋아하는 인생음악에 대해 이야기하는 아티클이다. 음악이 누군가를 ‘만들’ 수 있을까? 음악하는 사람도 아니고 이렇다 할 음악방송 PD도 아니지만, 이렇게 돌이켜보니 그런 것도 같다.

프린스(Prince) ‘Little red corvette’
프린스는 나의 첫번째 스타이다. 열두 살 때 AFKN의 쇼 프로그램 < 솔리드 골드 >에서 그를 처음 보았다. TV채널을 2번에 맞추면 미군 방송이 희미하게 수신되던 시절이었다. 바닥에 연기가 퍼지면서 등장했다는 것, 희번덕거리는 눈빛이 강했다는 인상이 지금도 남아 있다. 가장 뚜렷이 기억나는 건 객석의 비명소리이다. 그의 몸짓이 바뀔 때마다 숨넘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Little red corvette’이라는 곡명은 알아보지 못하고 프린스라는 이름만 기억해 두었다. 하지만 아무리 채널을 돌려도 라디오에서는 그의 노래를 들을 수가 없었다. 이듬해 < Purple Rain >이 나왔고 그는 미국에서 슈퍼스타가 되었으며 나는 그의 평생 팬이 되었다. 노래마다 괴성을 지르고 외설적인 이미지에 금지곡도 많은 흑인가수의 팬은 자랑질도 쉽지 않았다. 평소 가장 보고 싶은 공연이 프린스였지만 한국에는 한 번도 오지 못했다. 그리고 이제 그는 세상에 없다.

들국화 ‘그것만이 내 세상’
‘들국화’라는 이름을 알게 된 건 음악이 아니라 활자가 먼저였다. < 음악세계 > 잡지에 평론가 이백천씨가 쓴 리뷰가 멋있었다. “이 정도면 굳이 외국 음악을 들을 이유가 없다”는 문장을 읽고 동네 음악사로 갔다. 태어나서 처음 산 가요 테이프가 들국화 1집이었다. 전인권의 목소리가 에어로스미스 같았고 기타 솔로도 길고 화음도 멋있고, 여하튼 뭔가 다르다고 느꼈다. 매일 테이프를 듣고 라디오 채널을 돌려가며 혹시 들국화 안 나올까 마음 졸이기도 했다. 내가 본 첫번째 콘서트도 들국화였다. 잠실실내체육관이었는데 하얀 셔츠와 청바지를 입은 깡마른 전인권 아저씨가 목을 길게 빼고 노래를 하면 온 공연장이 쩌렁쩌렁 울렸다. 젊은 전인권의 라이브를 눈 앞에서 볼 수 있었던 건 정말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그것만이 내 세상’을 들으면서, 열네 살 나이에도 ‘나의 노래’라는 느낌을 받았다. 나 대신 노래해주고 나 대신 소리질러주는 것 같았다. 주변 친구들 중에도 들국화 팬은 제법 있었다. 이렇게 처연한 노래를, 그 시대의 소년들은 왜 좋아했을까.

메탈리카(Metallica) ‘Fade to black’
메탈리카와의 인연에는 온갖 불법(?)적인 것들이 연루되어 있다. 일단 집에 전축이 있는 친구를 꼬셔 방배동 음반가게에 데려가 1,2집 불법복제판(빽판)을 산 다음 테이프에 녹음해 달라고 했다. (돈은 그 친구가 냈다.) 이선희를 좋아하던 친구는 ‘무서워서 못 듣겠다’고 투덜댔다. 다음에는 반포 어딘가로 가서 ‘Cliff’em all’ 비디오를 불법 복사해 돌려보았다. (메탈리카의 초기 라이브 영상을 모아 놓은 비디오인데 객석에서 홈카메라로 불법 촬영한 클립들이 가득하다.) 주말이면 친구들과 대학로 MTV라는 어두컴컴한 곳에 가서 헤비메탈 비디오를 두 세 시간씩 봤다. 흑맥주를 먹거나 담배를 피우는 녀석들 사이에서 난 콜라만 홀짝거렸다.

‘Fade to black’은 이 모든 불량 행위가 시작되기 전 심야 라디오에서 처음 접한 곡이다. 그래미상에 호출되기 전까지 메탈리카는 미국에서나 우리나라에서나 컬트였다. 세월이 흐르면서 헤비메탈의 과잉이 지겨워 졌지만 젊은 날의 메탈리카는 지금 봐도 쌈박하다.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feat. 이언 앤더슨) ‘Elegy’
10대 시절 거의 모든 음악은 라디오에서 만났다. 열여덟 열아홉 우울한 시절엔 새벽 1시만 기다리며 하루를 버티다시피 했다. 전영혁 아저씨, 가끔은 정혜정 아나운서의 프로그램까지 듣고 나면 순하게 잠을 잘 수 있었다. Elegy는 < 25시의 데이트 > (나중에 < 전영혁의 음악세계 >로 타이틀이 바뀌었다) 엔딩 타이틀곡이었다. 전영혁 DJ는 이 곡을 깔고 “칼국수처럼 풀어지는 어둠…”하면서 기형도의 시를 읽어주곤 했다. 정혜정 아나운서가 BGM으로 사용했던 리 오스카의 ‘My road’나 팻 메스니 ‘If I could’ 같은 곡들도, 생각하면 마음이 울렁거리는 음악들이다.

이 때 들었던 라디오의 의미는 내겐 정말로 각별하다. 방송이 청취자의 마음에 얼마나 깊이 들어왔는가, 이런 건 수치로 집계되지 않는다. 지금도 청취율 제로의 심야방송을 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누군가는 당신의 목소리를 그리워하게 될 거라고, 꼭 말해주고 싶다.

비틀스 ‘Happiness is a warm gun’
일요일이면 국기원 옆 시립도서관에 가방을 던져 놓고 무작정 돌아다니곤 했다. 강남역 근처 레코드점에서 핑크 플로이드의 < The Wall >과 비틀스의 < White Album >이 나란히 걸려있는 걸 발견했다. 하얀 색, 수입원반에 더블음반. 참 예뻤고 참 비쌌다. 성냥팔이 소녀처럼 바라만 보다가 발길을 돌렸다. 

대학생이 되고 나서 비틀스 라이선스 LP를 모으기 시작했는데, 정식 라이선스를 가진 계몽사는 음반 표지에 줄무늬를 덧칠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다른 건 몰라도 화이트 앨범만은 그 조악한 무늬를 참을 수 없어 CD로 구했다.

화이트 앨범은 아마 내가 살아오면서 가장 많이 들은 음반 중 하나일 것이다. 비틀스의 여러 가지 모습들이 다채롭게 담겨 있어서 30곡을 다 들어도 전혀 지루하지가 않았다. 좋아하는 곡이 많지만 첫 인상이 워낙 강했던 ‘Happiness is a warm gun’을 리스트에 올렸다. 라디오에서 처음 듣고는 잠시 멍해졌던 기억이 있다. 농담 같기도 하고 진지한 것도 같고, 수수께끼 같은 곡이다.

닉 드레이크(Nick Drake) ‘Time has told me’
군대 전역 후 취직을 하기까지 몇 년간은 고3때보다도 막막한 시기였다. 음악 한 곡, 영화 한 편, 아니면 책 한 쪽이라도, 무언가를 붙잡고 있지 않으면 불안했다. 마음이 고달플 때면 신촌이나 홍대 근처를 돌아 다녔다. 레코드숍에 들어가 한참을 구경하다 딱 한 장만 고르고는 서점에서 책 한 권 사 들고 버스 맨 뒷자리에 앉아 음반 속지를 꺼내 읽자면 세상 부러울 것 없이 행복했다.

닉 드레이크는 신촌 향음악사에서 구입했던 기억이 난다. 그의 이미지는 내겐 초록색이다. 연녹색 플라스틱 CD케이스, 1집 자켓의 초록색 배경, 푸른 잔디가 덮여있는 묘지 사진 같은 것들. 이십대에는 1집을 좋아했고 나이가 들수록 3집에 마음이 간다. 

닉 드레이크의 목소리는 기분이 가라앉아 있을 때 들으면 더 좋다. 듣고 있다 보면 시선이 점점 마음 속으로 향한다. 이 곡을 고른 건 노랫말 때문이다. 좋아하는 구절이 많아서 한 동안 SNS 프로필에 올려 놓기도 했다. 스물한 살에 쓴 가사라는데, 나는 나이가 들수록 곱씹어 보게 된다.

‘time has told me, not to ask for more, for someday our ocean will find its shore’

장필순 ‘첫사랑’
5집 음반 이전까지는 장필순이라는 뮤지션에 대해 큰 관심이 없었다. 라디오에서 자주 들리던 ‘어느 새’도, 오장박의 노래도 그땐 심드렁했다. 이 음반도 홍보용 비매품으로 돌린 수많은 CD들 사이에 섞여 들어왔다. 모던 록에 관심이 많을 때라 처음엔 ‘스파이더 맨’ 같은 곡이 귀에 들어왔지만, 계속 반복해서 들은 노래는 1번 곡 ‘첫 사랑’이었다. 

무반주로 ‘아직 어두운 이른 아침…’ 노래가 시작되면, 마치 옆에서 누가 가만히 이야기를 건네 오는 것 같았다. 한 소절 한 소절 소리가 눈송이처럼 포개지면 마음은 점점 따뜻하게 풀려 나갔다. 옆에 누군가 앉아서 조용히 내 푸념이라도 들어준 기분이었다. 조동익과 장필순이 만드는 아련한 소리의 질감을 이때부터 정말 좋아하게 되었다.

20년 전 이 노래를 반복해서 듣던 때는 좋아하는 사람과 잘 안 되어서 마음이 많이 힘들 때였다. 지금은 5집에서 ‘풍선’을 더 즐겨 듣는다. ‘풍선’이 마음에 들어 온 데에는 또 지금 내 나름의 사정이 아마 작용했을 것이다.

언니네 이발관 ‘순수함이라곤 없는 정’
이소라 씨와 밤 프로그램을 할 때 코너지기로 이석원 씨를 섭외했다. 나는 2시간 메인 프로그램을 처음 맡은 초짜 PD였고 석원씨도 방송3사 고정출연이 처음이었다. 코너지기에게 선곡과 이야기 테마를 모두 맡겨버리는 컨셉이었는데, 미리 짜맞추는 구성이 음악 프로그램에 안 맞는다고 생각한 초짜 PD 나름의 패기였다. 

작가였던 이병률 시인의 아이디어로 ‘이발관 옆 음반가게’라는 코너명이 나왔고 2집의 ‘어떤 날’을 코드 음악으로 정했다. 이런 컨셉이 가능했던 이유는 뮤지션으로서 언니네이발관을 좋아했고 리스너로서 이석원 씨를 믿었기 때문이었다. 6개월 간 방송은 잘 됐지만 정작 나는 그와 별다른 친분을 맺지 못했고 언니네 이발관의 음악을 좋아한다는 표현도 잘 못했던 것 같다. 제일 좋아했던 노래가 2집의 이 곡인데, 당시 3집 활동 중이라 방송에서 자주 틀지도 못했다.

몇 해 전 마지막 음반을 들을 때는 마음이 좀 무거웠다. 노래를 만들어내는 고통이 음악 속에서 전달되는 것 같은 특이한 경험이었다. 이석원 씨는 글도 선곡도 좋고 라디오에 어울리는 사람인데 방송과 인연을 맺을 방법은 더 없을까 가끔 생각한다.

마그네틱 필즈(Magnetic Fields) ‘Papa was a rodeo’
2005년에 새벽 프로그램을 할 때 알게 된 노래이다. 같이 일했던 생선이라는 친구 덕에 미국 인디음악을 많이 들을 수 있었다. 프로그램이 없어진 후 생선은 갑자기 미국으로 떠나 66번국도(Route 66)를 횡단하더니 베스트셀러 여행작가가 되었다. < 69 Love Songs 라는, 69가지 사랑 노래를 담은 단편소설집 같은 음반에 수록된 곡이다. 길 위에서 눈을 뜨고 길 위에서 밤을 맞는 쓸쓸한 사람들의 사랑 이야기를 담고 있다.

‘아빠는 로데오 선수였고 엄마는 로큰롤밴드 멤버였어. 난 걸어다니기 전부터 기타를 쳤고 로프를 묶었대. 디젤차가 닿는 곳이면 어디든 우리 집이었고 사랑이란 건 트럭 노동자들의 손길에서 배웠지. 이제 아침이 밝으면 이곳을 떠나서 내년까지 돌아오지 않을거야. 그러니 나에게 키스하려는 그 입술은 그냥 맥주병에 꽂아 두는 게 낫겠어.’

라디오 PD에게 주어지는 선곡의 자유는 밖에서 짐작하는 것 보다 훨씬 인색하다. 새벽 3시. 청취율은 제로였지만 자유로웠고 마음이 젊었다. 이 노래는 시간을 그때로 돌려주는 신호 같은 곡이다. 그 시간들이 없었다면 지금까지 어떻게 버틸 수 있었을까 가끔 생각한다. 그러고 보면 나는 운이 좋은 PD이다.

베리얼(Burial) ‘Come down to us’
음원앱의 알고리즘이 아니었으면 이 음악은 만나지 못했을 지도 모른다. 알고리즘이 어떻게 내 취향을 잡아낸 건지 신기했다. 길이도 길고 상당히 특이해서 쉽게 누구에게 권할 만한 곡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곡을 마지막으로 고른 이유는 오로지 개인적인 경험 때문이다.

1년 전 여름 처음 이 음악을 들었다. 지직거리는 잡음으로 시작해서, 서늘한 바람소리, 불꽃타는 소리, 빗소리, 멀리 천둥소리, 알 수 없는 공간음, 노래라고 할 만한 무엇, 속삭임 같은 것들이 띄엄띄엄 전자음 위에 흘러 다녔다. excuse me, I’m lost… who are you… come down to us… 이따금씩 이런 말들이 들렸고, 나는 이곳이 아닌 다른 어떤 세계에 들어가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음악이 다 끝났을 때는 마음이 평온해져 있었다. 나보다 훨씬 아프고 힘겨운 사람들이 내 손을 따뜻하게 잡아 준 것 같은, 그런 느낌이었다. (실제 이 음악에는 소수자들을 격려하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

이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감상일 뿐이다. 들어보면 불편하거나 꺼림칙하다고 느끼는 분들도 아마 많을 것이다. 이 음악을 처음 들은 장소와 날짜와 시간대를 나는 기억한다. 괴로운 일이 생겨서 많이 힘들 때였기 때문이다. 만약 그때 내 마음이 밝고 가벼웠다면, 흐린 날 저녁이 아니라 햇빛 쏟아지는 대낮이었다면, 나 역시 이 음악에 관심이 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음악이라는 게 그런 것 같다. 똑같은 음악이라도 듣는 사람에 따라 다른 음악이 되고, 같은 사람에게도 언제 어떤 마음으로 듣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내가 여기 올린 음악들을 만난 것에 감사하듯, 누군가는 또 자신만의 음악들로 위안받고 행복했을 것이다. 그러니 좋은 음악 나쁜 음악 따지는 건 아무 의미가 없다.

* 한재희 PD
1997년 12월 MBC 라디오국 입사
< 음악도시 >, < 푸른 밤 >, < 굿모닝FM >, < 배철수의 음악캠프 >, < 여성시대 >등 연출.
현재 < 김종배의 시선집중 > 연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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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10곡 특집 Feature

라디오 PD들의 ‘내 인생의 음악 10곡’ – #9 오지영 PD

이즘이 내년에 개설 20주년을 맞습니다. 이를 앞두고 여러 특집 기획을 준비하고 있는데요, 그 일환으로 라디오 방송 프로듀서 20인의 < 내 인생의 음악 10곡 >을 마련해서 현재 연재중입니다. 라디오는 음악과 동의어라는 편집진의 판단에 따라 기획한 시리즈지요. 모처럼 라디오 방송의 프로듀서들이 전해주는 신선한 미학적 시선에 독자 분들이 좋은 반응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다시 한 번 이 시리즈에 선뜻 응해주시고 선곡에 대한 좋은 글을 써주신 프로듀서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이즘 독자 분들에게도 감사의 뜻을 전합니다. 각 방송사의 라디오국에서 음악 프로를 관장하며 15년 이상의 이력을 가진 20인 PD의 ‘인생 곡 톱10’입니다. SBS 라디오 오지영 프로듀서가 아홉 번째 순서를 맡습니다.

휴대폰에 있는 ‘플레이 리스트’를 보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다고 한다. 지금 나의 플레이 리스트엔 프로그램 선곡을 위한 곡들이 채워져 있어, 나의 노래가 아닌 청취자의 신청곡이 대부분인데, 내가 골라보는 내 인생의 노래는 무엇일까 이 자리를 빌어서 골라본다. 나로서는 처음 해보는 지극히 개인적인 플레이 리스트가 되겠다.

마이클 잭슨(Michael Jackson) / Billie Jean

초등학교 시절 < 서울국제무역박람회 >(지금은 ‘엑스포’) 견학을 갔다. 지금 삼성동 무역센터 자리가 벌판이던 시절 거대한 천막 같은 걸 쳐 놓은 전시장이었다. 미래의 세상엔 세끼 밥 대신 알약을 먹는다, 집에 있는 엄마랑 화면으로 통화를 할 수 있다.. 외출해서 집에 있는 전기밥솥을 켤 수도 있다…는 당시로서는 공상과학 영화 같았던 미래전시관을 지나 큰 공터에서 마이클 잭슨의 뮤직비디오가 상영되고 있었다. 음악이 좋았던 건지 거대한 화면과 큰 스피커에서 나오는 스테레오 음향에 압도된 건지 확실하지는 않지만 쿵쾅대는 비트에 날렵하고 섬세하게 춤추던 마이클 잭슨의 ‘빌리 진’이 내 음악 덕질 인생의 짜릿한 오프닝이었던 건 확실하다.

아버지는 그 전축으로 여러 종류의 음악을 들으셨다. 클래식이 많았고 최신 가요 음반도 종종 사 들고 오셨는데 팝 음반은 별로 기억에 없다. 그런데도 기회가 있을 때마다 팝송을 즐겨 부르신 걸 보면, 분명 열심히 들으셨겠지.

아버지 친구 분 가족들과 함께 버스를 대절해서 어딘가 놀러갔을 때, 버스 안에서 아버지가 차내 마이크를 들고 불렀던 곡은 폴 앵카의 다이애나(Diana)였다. I’m so young and you’re so old.. 내가 처음으로, 구체적으로 알게 된 ‘팝송’이었다. 아버지의 노래는 나름의 ‘겉멋’이 잔뜩 들어간, 당시의 나로선 이해하기 어려운 감정의 발산처럼 느껴졌는데, 지금 돌이켜보면 좀 멋진 아버지 같기도 하다. 지금은 아버지도 나도 젊지 않고(아버지는 몇 년 전 돌아가셨다), 노래 속 폴 앵카만 영원히 열 여섯 살이다.

안전지대 / Friend

중학교 시절에는 J-POP에 미쳐있었다. 요즘처럼 여중생이 빠질만한 아이돌이 없었던 그때, 일본의 소년대는 BTS 이상이었다. 히가시야마 노리유키의 사진을 구하러 압구정동 어느 골목 좌판에 갔다가 주인아저씨가 권해준 테이프까지 사왔다. 정식 앨범이 아니고 튜브, 안전지대, 사잔 오르 스타즈(Southern All Stars), 쿠도 시즈카 등의 노래들을 엮어놓은 리어카 테이프였다. 테이프 표지엔 알지도 못하는 일본어로 노래제목과 가수가 개발 새발 쓰여 있고 곡의 순서와 맞지 않은 경우도 있었다. 음질은 또 왜 이렇게 안 좋은지… 그 와중에 테이프 B면 중간에 있었던 ‘사요나라 다케..’로 시작하는 이 노래를 돌리고 돌려가면서 다시 들었다. 워크맨 이어폰을 통해 타마키 코지는 속삭이며 노래를 불렀고 그렇게 나는 소년대를 탈덕, 안전지대의 타마키 코지로 입덕을 시작해 J-POP의 세계에 더 깊이 빠져든다.

자드(Zard) / 키미가 이나이

이어지는 J-POP 얘기. PD생활을 하던 때 일본문화 개방이 돼서 운좋게도 ZARD의 콘서트에 초대를 받았다. 비행기 티켓과 체재비, 부장님 눈치가 보이는 휴가가 필요했지만 방송활동도 거의 없는 ZARD의 팬이었기에 동료 몇 명과 1박 2일의 일정으로 호기롭게 떠났다. 공식적인 전국투어로는 처음이었던 이 공연에서 ZARD는 혼자 서서 미동도 없이 노래만 불렀다. 오프닝 곡이었는지 아니었는지 생각은 나지 않지만, 암전된 무대에서 ‘키미가 이나이~’하고 그녀의 청량한 목소리로 인트로가 나오고 조명이 켜지던 순간 잊고 있었던, 나의 20대가 소환되어 가슴이 떨렸다.

그날 밤 함께 간 동료들과 신주쿠 어디에선가 들뜬 목소리로 떠들어대며 맥주를 마셨고 그 다음날 숙취에 늦잠을 자고 비행기를 놓치기까지 했다. 몇 년 후 그녀가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떴다는 소식을 듣고 그 날의 동료 PD와 그 밤 신주쿠 선술집의 텐션을 함께 추억했다. 작년 언젠가 딸내미와 ‘명탐정 코난’ 극장 판을 보다가 엔딩에 주제가를 부르는 그녀의 목소리를 들었다. 관심도 없는 딸에게 ‘쟈도’에 얽힌 나의 추억담을 한 바가지 들려줬다.

박광현 / 한 송이 저 들국화처럼

중학교 시절 MBC 라디오 < 이수만의 팝스 투나잇 >을 열심히 들었다. 그 프로그램의 백일장 이벤트에서 장원을 한 여자 분이 전화연결이 됐는데 자신이 가수 박광현의 누나(여동생?)라고 했다. 그리고 이 프로그램의 PD 라는 사람이 나와 백일장의 심사과정 등을 들려줬다. < 이수만의 팝스 투나잇 >이라면 이수만 DJ 혼자 다 하는 줄 알았는데… PD가 있고 작가가 있고 국장님이 있는 거였다. 그때부터 라디오 PD에 대한 동경이 생겼던 것 같다.

글렌 메데이로스(Glenn Medeiros)의 음반을 가장 먼저 받아볼 수 있고 , 내가 좋아하는 박광현 가수의 누나랑 통화도 하는 멋진 사람. 백일장 행사의 대장정을 마치며 들려준 박광현의 ‘한 송이 저 들국화처럼’은 코를 처박고 들었던 ‘라디오 트랜지스터’ 너머 ‘라디오 방송국’ 세계의 문을 살짝 열어본 그 순간의 배경음악이다.

유재하 / 우울한 편지

여고생 시절, 세련되고 이쁘고 좀 노는 친구가 있었다. 영화나 음악도 아는 게 많아서 부러웠는데 이 모든 게 대학생 언니가 있어서 그런 거라고 나는 믿었다. 어느 날 자기 언니가 다니는 학교 오빠의 음반이라며 유재하의 음반을 빌려줬는데 지르거나 뽐내지 않는 담백한 목소리가 정말 대학생 오빠 같았다. 이 친구와 유재하 얘기를 하려고 이 친구 수준에 맞춰 동네 햄버거 집에서 콜라도 많이 사줬다. 그러다가 어느 날 유재하의 사고 소식을 듣고 둘이 통화하며 어찌나 울었던지…울면서 “나는 ‘우울한 편지’가 제일 좋아..” “난 ‘지난날’이 좋더라..” 이러면서 둘이 꺽꺽댔던 기억이 있다.

그 후 < 유재하 음악경연대회 > 음반도 빠짐없이 사서 들었는데 이 대회의 기획자이자 유재하의 친구인 한봉근 PD는 < 이수만의 팝스 투나잇 > 담당PD로 나를 라디오키드로 만드는데 큰 공을 세우신 분. 후에 < 수요예술무대 >를 연출하실 때 이촌동 어느 상가 지하 식당에서 만나 뵙고 큰 절 올리고 인사를 드렸다. 그 때 “라디오 재밌지요? 열심히 해요~” 하고 수줍게 말씀해 주셨는데…
그냥 재밌게 하고 있습니다. 선배님!

김현철 / 오랜만에

< 월간 팝스 >를 옆구리에 끼고 허세 꾀나 부리던 내게 같은 학원에 다니던 남학생이 잉위 맘스틴(지금은 잉베이 라고 부르는)의 앨범을 던져주듯 주고 뛰어갔는데 난 그걸 김현철 1집으로 바로 바꿨다. 참새방앗간처럼 들르던 동네 음반가게 < 페니 레인 > 언니가 이 음반을 보더니 깔깔 웃으며 잉위 오빠 음반이 너에게 갈 선물이었냐 한다. 언니는 동아뮤직에서 나온 괜찮은 신인의 음반을 추천해주었고 나는 이 음반에 홀딱 빠져 그 해 가을.. CD가 닳도록 들었다. 잉위를 버리고 내가 택한 김현철! ‘동네’, ‘비가와’, ‘춘천 가는 기차’ ..3곡을 좋아하긴 했지만 음반의 첫 곡 ‘오랜만에 ‘ 흐흐흥~ 빠암~하는 도입부분은 여전히 심쿵 포인트.

밀리 바닐리(Milli Vanilli) / All or nothing

팝을 주로 듣던 시절 큰 충격이었던 가요음반이 김현철 1집이었다면 그해의 충격적인 팝음반은 밀리 바닐리 1집이었다. 잘 생긴 두 청년이 토끼춤을 추는 뮤직비디오와 세련된 리듬의 노래로 여고생의 마음을 사로잡았는데 나의 팝송 메이트 지영이(그녀는 전지영)에게 당당하게 소개할만했다. 언제나 멋진 음악을 나보다 먼저 듣고 소개해줬던 지영이도 그들의 음악(비주얼?)에 쉽게 무너지고 말았다.

그러나, 어이없게도 그들이 립싱크 가수였다는 폭로가 터진다. 찰떡 호흡 두 지영이들이었지만, 서로 선호 가수가 달라 휘트니 휴스턴 VS. 머라이어 캐리 , 마돈나 VS. 신디 로퍼 , 티파니 VS. 데비 깁슨…등으로 갈려 신경전이 있기도 했던 참에, 간만에 이룬 대동단결이었건만…별 시덥지 않은 가짜들에 혼이 나갔던 그간의 열정이 부끄러워 지영이들은 그 얘기를 대놓고 하지도 못하고 데면데면하다 멀어진다.

빛과 소금 / 그대 떠난 뒤

너무 아끼던 테이프였다. 친구에게 빌려줬다가 받아오는 길에 주머니에서 열쇠꾸러미와 엉켜 다 망가지고 말았다. 다시 살까 망설이다 못 샀는데 나중에 대학생이 되고 남친이 이 얘기를 듣고 CD로 선물해줬다. 이 남친과 헤어진 나를 내 친구가 불쌍히 여겨 대학로에서 하던 빛과 소금 콘서트에 데리고 가주었는데 이 노래를 들으며 얼마나 울었던지… 나의 행복한 현재 생활과는 전혀 상관없는 울적한 이야기이니 짧게 남기겠다.

MC몽 (ft.박정현) / 죽도록 사랑해

많은 DJ와 프로그램을 만들었지만 내가 원하는 DJ와 , 하고 싶은 색깔의 프로그램을 론칭할 기회는 거의 없었다. 당시 나를 믿어주었던 구경모 CP가 나의 기획에 힘을 실어주었고 MC몽은 너무나 바빠서 생방송을 할 일정이 안 됐지만 긴 고민 끝에 수락해줘서 ‘MC몽의 동고동락’은 시작됐다. 신인 시절부터 알아온 서로에게 믿음이 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라디오를 사랑한 MC몽의 의지가 컸다.

TV 예능과 라디오 스케줄까지 빡빡했는데 그 와중에 앨범 < Show’s Just Begun >을 냈다. 취재 명목으로 녹음 스튜디오까지 따라가서 이 노래를 들었는데 말캉말캉한 박정현의 목소리까지 섞인 노래의 제목이 ‘죽도록 사랑해’란다. 함께 간 제작진과 제목이 이게 뭐냐고 놀려대긴 했지만 , 언제나 그랬듯 세련되지 않은 그의 노랫말들이 꾸밈이 없어서 내심 참 좋았다.

산울림 / 아마 늦은 여름이었을 거야

< 아름다운 이 아침 >의 새 DJ로 결정된 김창완 님과 첫 미팅을 앞두고 음반실에서 산울림의 CD들을 빌려와 며칠을 공부하듯 들었다. 소장하고 있던 CD들도 있고 좋아하는 곡들도 많았지만 공부하듯 들으니 잘 들리지 않았고 이런 엄청난 뮤지션을 DJ로 맞이해 잘 할수 있을까 겁이 나기 시작했다. 제대로 듣지 못하고 CD더미를 한켠으로 밀어놓았다.

첫 미팅의 날, DJ를 기다리며 시그널 음악을 들려드리기 위해 가져갔던 디스크맨의 플레이 버튼을 눌렀는데 이 노래가 흘러나왔다. 나른하면서도 싱그러운 사운드를 들으며 긴장이 풀렸다. 저 앞에 걸어 들어오고 있는 저 아저씨와 왠지 친해질 수 있을 것 같은 느낌. 김창완 아저씨와는 20년이 되어간다.

함께 시작하고 한참을 헤어졌다가 < 아름다운 이 아침 김창완입니다> 20주년이 되는 해에 다시 만났다. 아저씨랑 함께 술을 마실 수 있어 행복했고, 이 대단한 분이랑 함께 만든 역사가 있다는 게 행복하다.

*프로필

오지영 (OHPD@sbs.co.kr)
SBS 라디오 PD
< 최화정의 파워타임 >, < MC 몽의 동고동락 >, < 아름다운 이 아침 김창완입니다 > 외 다수 연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