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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완선 ‘Feeling’ (2022)

평가: 3/5

먼지 묻지 않은 근사한 댄스곡이다. 신시사이저를 부각한 복고풍의 신스팝 혹은 댄스 팝의 외양인 노래는 어디 하나 녹슨 곳 없이 매끈하다. 3분 남짓의 깔끔한 러닝타임에 핵심 멜로디를 간결하게 강조한 구성은 쉽게 말해 중독적이고, 어렵게 말해 듣기 좋은 무게중심을 잘 잡았다.

그러나 곡이 가진 최고의 가치는 역시나 ‘댄싱퀸’ 김완선. ‘이제 너도 느껴 falling in love’, ‘우리 둘만의 paradise’를 거쳐 사랑의 ‘피어남(blooming)’을 읊조리는 그에게서 제 옷 아닌 거친 부분은 찾아볼 수 없다. 시대가 비껴간 소화력이라고나 할까. ‘원조’란 수식으로 소환되는 가수가 매혹적인 가사를 ‘복고’ 사운드에 맞춰 표현했다. 낡은 구석은 없고 오히려 젊은 감각만 남아 있는 곡. 김완선의 지금은 이 노래로 무한 갱신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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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ature I Am Woman

위안부 문제, 그리고 그들을 위해 노래한 여성 음악가들

오스트레일리아를 대표하는 가수 헬렌 레디는 1972년 여성의 자부심을 고취하는 곡 ‘I am woman’으로 빌보드 싱글 차트 정상과 그래미 최우수 여성 팝 보컬 퍼포먼스를 거머쥐었다. 50 여년 전 여권 신장을 노래한 그의 메시지는 오늘날 음악에서 핵심이 된 ‘허스토리(Herstory)’를 상징한다. 대중음악계 여성의 발자취를 짚어나가는 것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 과정이다.

살아가면서 결코 잊어서는 안 될 중요한 역사가 있다. 바로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에게 강제로 끌려가 성적으로 탄압받은 위안부 피해 여성들에 대한 이야기다. 슬프게도 이 이야기는 오랜 시간이 흘렀음에도 제대로 해결되지 않고 아직 우리 곁에 남아 있다. 심지어 1월 23일, 할머니 한 분이 세상을 떠나시면서 현재 위안부 피해 생존자는 열아홉 분밖에 남지 않은 상황이다.

시간은 치명적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들의 의식은 점차 흐려지고 감각은 무뎌진다. 그렇기에 우리는 이 잔혹한 진실이 잊히지 않도록 지속적인 관심을 가져야만 한다. 계속해서 ‘이야기’해야 한다.

음악계에서는 이러한 움직임이 이미 태동하고 있었다. 2012년, 소규모 아카시아 밴드의 기타와 보컬을 맡고 있는 송은지의 제안으로 태어난 프로젝트 ‘이야기해주세요’가 그 중심이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 여성들을 위한 헌정 음악을 제작한다는 이 발상은 실로 놀라운 결과를 낳았는데, 정민아, 오지은, 무키무키만만수, 트램폴린 등 당시 홍대 인디 신을 주름잡던 많은 여성 음악가들이 위안부 문제를 세상에 알리기 위해 자발적으로 한 데 모인 것이다.

이후 2013년도 발매한 후속작 < 이야기해주세요 : 두 번째 이야기 >를 거쳐, ‘사랑과 평화의 편지’라는 부제와 함께 작년 발매된 < 이야기해주세요 : 세 번째 이야기 >까지. 7년간 이어져 온 이들의 행보는 약 50명의 아티스트가 자취를 거치며 세 장의 컴필레이션 앨범을 남겼다. 작품은 친절하게, 혹은 무섭게 다가온다.

친절한 방식으로 대중들의 쉬운 접근을 야기하기도 하지만, 과감한 방식으로 충격을 선사하기도 하는 것이다. 관통하는 주제에 맞춰 아티스트들이 저마다의 방식으로 메시지를 전달하는 점도 눈여겨볼만하다. 그들은 자신의 스타일을 우수하게 살려 진심을 전달하기도, 좋은 곡을 후세에 남김으로써 길이길이 기억되는 방향을 택하기도 한다.

‘들판의 풀처럼 작고 작게 / 노래 부르며 살고 싶었지 / 작고 작게’ – 정민아 ‘작고 작게’ 中

싱어송라이터와 가야금 연주자를 동시에 겸하는 정민아의 ‘작고 작게’는 치유와 공감을 보편적으로 유도하는 그 좋은 예시다. 가야금 특유의 절제된 가벼움과 동양적인 선율이 청자의 마음을 거부감 없이 두드린다.

어쿠스틱 신스팝을 지향하는 루싸이드 토끼의 ‘돌을 없애는 방법’이나, 오디션 프로그램 < 슈퍼스타K >에 출연한 적 있는 포크 가수 이정아의 ‘Three hundred thousand flowers’ 또한 그렇다. 부드러운 기타 사운드와 소박하고도 서정적인 가사가 남기는 깊은 인상으로 그저 평범한 삶을 살아가고 싶었을 할머니들의 소망을 노래로써 실현한다.

‘내 머릿속에 든 뭐든 그걸 기억하는 것 / 더는 새기고 싶지 않아서 잊어가는 것 / 잊는다고 다 없던 날이 된다면 / 제일 앞서 전부 다 잊고 / 아무 일 없는 듯 살아갈 거야’- 슬릭 ‘살아가고 싶어’ 中

반면 데이즈얼라이브 소속의 래퍼 슬릭은 특유의 가감 없는 진솔함으로 사회가 지녀야 할 경각심을 예리하게 직시한다. 그의 래핑은 차분하고 덤덤하지만, 우리가 가져야 할 마음가짐을 적나라하게 내뱉는다. 가사에 적힌 대로 우리는 앞으로 ‘내 머릿속에 든 뭐든 그걸’ 기억해야 한다는 것. 이에 소월의 보컬이 합쳐지니 놀라운 흡입력을 뿜어낸다. 이는 여러 분야에 포진된 각 아티스트가 자신의 방식대로 메시지를 전달하는 과정이다.

‘이대로 숨이 멎을 듯이 힘들다 해도 / 잊지 마 내가 여기에 있다는 걸’ – 김완선 ‘Here I am’ 中

무엇보다 대중들의 이목을 끌며 앨범의 이름을 알린 일등공신은 가요계 유명 스타들의 합류다. 이상은의 ‘성녀’와 일제강점기를 다룬 영화 < 눈길 >의 OST로 삽입되기도 한 이효리의 ‘날 잊지 말아요’, 그리고 김완선의 ‘Here i am’이 그렇다. 이들은 명료하고 감동적인 가사와 완성도 높은 곡, 그리고 높은 네임밸류로 일반인의 관심을 유도하며 이들의 목소리가 더욱 널리 퍼질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다. 우리도 ‘당신의 목소리를 잊지 않고 기억’함으로써 할머니들의 부담을 덜어 내는데 도움을 주고 싶다는 힘찬 연대의 선언인 셈이다.

특히 ‘성녀’의 ‘그저 버티는 건 정말 사는 걸까 / 그녈 안아줬음 좋겠어 부서지지 않도록’ 이라는 대목이 뇌리에 남는다. 눈앞에 놓인 현실을 당장 바꿀 수는 없지만, 그저 조용히 곁에 다가가 그들의 마음을 헤아려주고 안아주는 것만으로도 큰 위로가 될 수 있다.

‘일본놈들이 오면 나는 일본에서 한 일을 고대로 다 말해 / 역사를 역사같이 말해야지 / 저네가 한 일을 저네가 모르면 누가 알아’ – 신현필 & 이봉근 ‘흩어지는 기억’ 中

앞서 언급한 곡들이 조금은 부드럽고 따뜻하게 다가왔다면, 몇몇의 곡들은 다소 우울하고 어두운 분위기로 각성을 요구하기도 한다. 얇은 어조로 가사를 읊조리며 위태로운 분위기를 조성하는 오지은의 ‘누가 너를 저 높은 곳에 올라가도록 만들었을까’와 처절한 내레이션으로 몰입을 자아내는 신현필과 이봉근이 참여한 ‘흩어지는 기억’이 그렇다. 이들은 적나라한 가사로 반성과 경각심을 일깨우고 사회에 변화를 촉구한다. 저 너머 가려진 참혹한 진실을 가리키는 것이다.

제작비 문제로 위기를 겪은 ‘이야기해주세요’ 프로젝트는 텀블벅 후원과 전작의 수익금으로 6년 만에 다시 빛을 보는 데 성공했다. 이를 위해 황보령, 악단광칠, 9와 숫자들, 레인보우 99, 호란 등 미처 다 언급하지 못한 아티스트와 남성 음악가들이 동행에 합류하며 힘을 보탰다. 물론 수많은 대중들 또한 기부와 지지를 통해 도움의 손길 또한 빼놓을 수 없는 값진 버팀목이다.

사람이 있기에 사랑이 있고, 저마다의 작은 사랑들이 모여 사람들이 살아가는 세상을 이루듯, ‘이야기해주세요’는 혼자가 아닌 모두의 의지가 있었기에 성공할 수 있던 프로젝트다. 음악가가 할 수 있는 가장 멋진 소통은 음악으로 행동하는 것이다. 용기 있는 그들의 발걸음에 진심으로 박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