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카데미 12개 부문에 노미네이트 된 제인 캠피온 감독의 영화 ‘파워 오브 도그’를 본 사람은 베네딕트 컴버배치가 분한 필이라는 남자를 절대 잊지 못한다. 몬태나 주에서 동생 조지와 함께 목장을 운영하는 마초 카우보이 필은 설명이 필요 없는 악인이다.
필은 무고한 이들을 쏘아 죽이는 악당이나 발길 닿는 대로 방랑하며 법의 울타리를 넘나드는 무법자는 아니다. 그는 20세기 초 미국에서 아이비리그 대학을 졸업한 수재이며 예술에도 조예가 깊은 엘리트다. 거친 서부 생활에도 일가견이 있어 맨손으로 황소 수백 마리를 거세하고 소가죽으로 밧줄을 만들며 주변 지리에 능숙하다. 여기에 거친 남성성과 좌중을 압도하는 카리스마까지 갖춘 타고난 리더다. 누군가에게는 한없이 좋은 인간인 셈이다. 하지만 ‘파워 오브 도그’의 필은 명백한 악당이다.

동생 조지가 작은 식당을 운영하는 미망인 로즈와 결혼하자 필은 로즈를 목장의 재산을 노리는 사기꾼으로 간주하고 멸시와 조롱을 퍼붓는다. 로즈가 비쩍 마른 외동아들 조지를 대학에 보내 집안의 재산을 사용하자 경멸은 더욱 심해진다. 필은 비수 같은 언어로 로즈의 영혼을 산산조각 낸다. 뛰어난 밴조 연주를 보란 듯 들려주며 무안을 주고, 옅은 휘파람 소리만으로 가엾은 제부(弟婦)를 벌벌 떨게 만든다. 영화가 끝난 후 여기저기서 많이 들었던 요한 슈트라우스 1세의 ‘라데츠키 행진곡’이 거북하게 들린다면 그건 당신의 잘못이 아니다. 필의 지독한 존재감은 영화가 끝난 후에도 쉬이 가실 줄을 모른다.
제인 캠피온 감독은 은유적으로 필의 과거를 제시하며 복잡한 감상을 유도한다. 필은 타고난 소시오패스여서가 아니라 자신의 연약한 심성과 콤플렉스를 감추기 위해 거친 생활 태도를 유지하고 로즈를 학대한다. 다 큰 어른이지만 동생 조지가 곁에 없으면 불안감에 잠을 이루지 못하고, 브롱코 헨리라는 인물을 자신의 우상으로 받들어 모시는 태도는 유치함을 넘어 순수하기까지 하다. 필이 열등감은 있지만 똑똑하고 다재다능한 어른으로 머물렀다면 몬태나 목장의 모든 사람들은 행복하게 잘 살았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그는 남편 잃은 여인을 폐인으로 만들고 그 아들에게까지 씻을 수 없는 모욕을 줬다. 영화는, 그리고 역사는 필을 ‘나쁜 어른’으로 기억할 수밖에 없다.

‘우상의 몰락’을 기고한 후 한 달간 나는 ‘좋은 어른’에 대한 짙은 회의감에 빠져있었다. 운 좋게도 내 주위엔 좋은 어른들이 많았다. 능력 있고 박학다식하며 많은 것을 이룬 그들은 인생의 선배이자 닮고 싶은 롤모델이기도 했다. 그들의 글을 보며 문장을 배열하는 법을 배웠고, 그들의 말을 들으며 삶의 태도와 방향을 가늠해보기도 했다. 갓 스무 살부터 음악에 대해 글을 써보겠노라 호기롭게 나선 천방지축의 어린아이를 사리분별 가능한 젊은이로 만들어준 이들도 모두 좋은 어른들이었다.
어른이 되어가며 당혹스러운 순간은 그렇게 믿고 따랐던 선배들이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종종 저지르고도 자각하지 못하는 광경을 목격할 때다. 열등감은 독기가 되고 사명감은 독재가 된다. 갑질과 오만, 거짓말과 위선, 시대에 뒤떨어진 성인지 감수성을 일상에 품고 있는 어른들이 뒤틀린 시선을 세상에 풀어놓을 때마다 마음속 책장에 꽂힌 위인전 한 권에 쓰인 이름이 희미해지다 사라져 버린다. 믿음을 잃어버린 아이들은 상처받고, 눈물 흘리다 자극과 혐오를 약속하는 선동가의 달콤한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디지털 문화에 능통하고 20대를 자주 만난다고 해서 젊은 사람이 아니다. 나름의 근거와 논리가 있겠지만 누군가는 당신을 ‘개의 세력’이라 칭하며 분노하고 조롱할 수도 있는 것이다.
선거 운동이 격렬해지면서 더 많은 우상들의 황당한 자침(自沈)을 목격하게 되자 회의주의는 더욱 짙어졌다. 그런 와중 한줄기 빛처럼 내려온 작품이 있었다. 펄 잼의 리더 에디 베더의 솔로 앨범 < Earthling >이었다.

에디 베더가 누군가. 1991년의 < Ten >부터 2020년 < Gigaton >까지 꾸준히 사회의 어두운 면을 노래로 옮기고 거대 자본에 맞서 저항하며 약자와 연대하는, 보기 드문 모범 록스타다. 이제 그도 1964년생 57세로 적지 않은 나이인데 새 솔로 앨범에서 들려주는 정력(精力)이 상당하다. 활력 넘치는 로큰롤 앨범 위에서 에디 베더는 젠체하며 폼 잡지도 않고 무거운 훈계를 늘어놓지도 않는다. 그저 고고하게 록 신의 베테랑으로서 맡은 바 임무를 다하며 경쾌하게 자신의 음악을 연주할 뿐이다.
커트 코베인, 레인 스텔리, 크리스 코넬만큼의 인기는 누리지 못했을지라도, 나는 그런지 붐 최후의 생존자로 꿋꿋이 걸어가는 에디 베더를 ‘좋은 어른’이라 믿고 싶다. 무료한 삶을 보내지만 자신은 정의롭다고 믿는, 맹목적으로 충성하지만 아무렇지도 않게 타인에게 상처를 주는 모든 ‘개의 세력’에게 에디 베더의 새 앨범을 적극 추천한다.
아, 바빠서 음악 들을 시간이 없다고요… 그렇다면 < Earthling >의 수록곡 ‘Try’라도 꼭 들어보세요. 에디 베더가 이렇게 말합니다. “좋은 남자는 척할 필요가 없다(Good men don’t have to pretend)”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