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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헌의 실감, 절감, 공감] 유희열 표절 의혹, 신뢰를 회복하려면

1971년 2월 10일, 세 번째 정규 앨범 < All Things Must Pass >로 빌보드 앨범 차트 1위를 거머쥐며 비틀즈 해체 후 솔로 아티스트로 입지를 굳히던 조지 해리슨에게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전해졌다. 브라이트 튠스 뮤직 코퍼레이션(Bright Tunes Music Corporation)이 앨범의 빌보드 HOT 100 4주 연속 1위 곡 ‘My sweet lord’에 대해 저작권 침해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원고 측은 조지 해리슨이 로니 맥이 작곡하고 걸그룹 더 쉬퐁스(The Chiffons)가 불러 1963년 빌보드 HOT 100 차트 4주 연속 1위를 차지한 ‘He’s so fine’을 표절했다고 주장했다.

조지 해리슨은 노래를 듣자마자 도입부 멜로디 유사성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표절을 인정하지는 않았다. 재판장에 기타를 들고 입장한 조지 해리슨은 ‘My sweet lord’ 작곡 당시 ‘He’s so fine’을 모르고 있었으며, 저명한 찬송가 ‘Oh happy day’를 목표로 삼고 만든 노래라는 주장으로 결백을 호소했다. 결과는 조지 해리슨의 패배였다. 뉴욕 남부 지방 판사 리처드 오웬은 조지 해리슨이 고의로 ‘He’s so fine’을 베낀 것은 아니지만, 법률상으로 저작권을 침해했다는 판결을 했다. 조지 해리슨은 58만 7천 달러 이상의 저작권료를 지급해야 했다. ‘무의식적 표절’의 개념이 등장한 순간이었다.

“긴 시간 가장 영향받고 존경하는 뮤지션이기에 무의식중에 저의 기억 속에 남아 있던 유사한 진행 방식으로 곡을 쓰게 되었고 발표 당시 저의 순수 창작물로 생각했지만 두 곡의 유사성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유희열 표절 논란이 가요계를 뒤흔들고 있다. ‘유희열의 생활음악’ 피아노 소품 프로젝트 중 두 번째 곡 ‘아주 사적인 밤’이 사카모토 류이치의 ‘Aqua’를 베꼈다는 주장이 인터넷을 통해 확산하며 논란이 시작됐다. 6월 14일 유희열은 안테나뮤직 의견문을 통해 ‘아주 사적인 밤’ 관련 입장을 표했다. ‘무의식중에 저의 기억 속에 남아 있던 유사한 진행 방식’으로 작곡이 진행되었음을 인정하며 < 생활음악 > LP 발매 연기와 사카모토 류이치와의 저작권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이어 6월 20일 사카모토 류이치의 의견문이 발표됐다. 사카모토 류이치는 ‘두 곡의 유사성은 있지만 제 작품 ‘Aqua’를 보호하기 위한 어떠한 법적 조치가 필요한 수준이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라며 법적 절차와 저작권 문제를 생략하고 바다 건너 음악 후배에게 넓은 아량을 베풀었다. 하지만 논란은 끝나지 않았다. 과거 유희열이 발표한 다수의 노래에 대해서도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유희열은 < 생활음악 > LP와 음원 발매를 취소했지만, 그 외 의혹에 대해서는 묵묵부답이며, ‘유희열의 스케치북’ 및 방송 출연을 강행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원작자가 표절이 아니라고 선언했으니 사태가 일단락된 것 아니냐는 주장이 나온다. 위대한 거장 사카모토 류이치의 관용은 분명 빛났다. 그러나 사카모토 역시 의견문에서 ‘아주 사적인 밤’과 ‘Aqua’의 ‘유사성’을 지적하고 있다. 그리고 이미 표절 시비가 불거졌다는 점에서 지난 30년간 한국 대중 음악을 대표하는 작곡가로 활동해온 위상에 심각한 타격을 입은 것이다. 사카모토 류이치의 용서가 유희열의 책임과 합의의 필요를 덜어주었을지언정 그 혐의까지 무마해주는 것은 아니다. 조지 해리슨이 값비싼 비용을 지불하며 전 세계에 남긴 교훈, ‘무의식적 표절’이다.

대중이 유희열에 실망한 이유는 그의 대응 방식에 있다. ‘아주 사적인 밤’의 표절 의혹을 제기한 시인 도희서에 의하면, 그는 지난해 12월부터 안테나뮤직에 연락을 취했으나 회사는 묵묵부답이었다고 한다. 오히려 먼저 답변을 보내온 곳은 올해 1월 5일 ‘두 곡의 파트가 유사함에 동의하지만 법적인 대응을 하지 않을 것이’라 밝힌 사카모토 류이치 측이었다. 이후 5개월 반 동안 침묵하던 도희서 씨는 < 생활음악 >의 발매소식을 접한 후 6월 14일, ‘아주 사적인 밤’이 ‘아쿠아’를 표절했음을 공론화했다.

익명의 제보자가 없었다면 유희열의 < 생활음악 > 프로젝트는 계획대로 바이닐 발매되었을 것이고, ‘아주 사적인 밤’, ‘내가 켜지는 시간’의 저작자 이름에는 사카모토 류이치 대신 유희열의 이름이 올랐을 것이다. 거장의 자애롭고 신중한 대답이 없었다면 유희열은 어떤 입장을 내놓았을까.

하물며 유희열은 ‘아주 사적인 밤’ 외에도 해명할 곡이 많다. ‘Please don’t go my girl’, ‘안녕 나의 사랑’, ‘Happy birthday to you’ 등 과거 작품에 대한 의혹으로 번지고 있다. 유희열은 별다른 반응이 없다. 표절곡이 아니라는 적극적인 해명도, ‘기억 속에 남아 있던 유사한 진행 방식’으로 만들었다는 인정도 들리지 않는다. 30년 경력의 베테랑, 천재라는 수식어와 함께 활동한 뮤지션이라면 ‘최근 불거진 논란을 보면서 여전히 부족하고 배울 것이 많다는 것을 알아갑니다’는 레토릭으로 사건을 무마하려 해서는 안 된다. 의혹에 대한 정확한 설명, 음악 팬에 대한 사과, 그리고 책임의 자세가 필요하다.

완벽한 창작은 없다. 사카모토 류이치의 말처럼 ‘모든 창작물은 기존의 예술에 영향을 받는다.’. 원작자의 포용으로 ‘아주 사적인 밤’은 표절의 멍에를 벗었다. 그럼에도 유희열은 신뢰를 잃었다. 대중은 긴 시간 정상급 뮤지션으로 군림해온 그의 창작 세계를 의심하고 있다. 유사성을 인정한 상황에서 유희열이 계속 안고 가야 할 무거운 짐이다. 물론 유희열의 음악 세계 전체를 매도하고 인격을 비난하는 일은 곤란하다. 하지만 오랜 시간 유희열의 창작물을 사랑한 대중이 실망감을 표하고 그의 음악을 예전과 같이 들을 수 없는 사실 또한 당연하다.

설사 ‘아주 사적인 밤’이 표절 판결을 받았더라도 명확하게 자기 잘못을 인정했더라면 지금처럼 반응이 싸늘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유희열은 표절에 대한 책임을 명확히 밝히지 않았고, 논란이 불거진 후 사카모토 류이치의 입장에 힘입어 뒤늦게 바이닐 발매를 취소했으며, 여전히 음악가로의 지위로 다수 방송에 출연하고 있다. 지금은 의견문 내용처럼 ‘창작 과정에서 더 깊이 있게 고민하고 면밀히 살’펴야 할 시간이다. 향후 활동으로 유희열이 다시금 잃어버린 대중의 지지를 회복할 것인지는 창작가의 양심에 달려있다. 표절은 법의 문제가 아니다. 양심의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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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헌의 실감, 절감, 공감] 개의 세력에 부쳐

아카데미 12개 부문에 노미네이트 된 제인 캠피온 감독의 영화 ‘파워 오브 도그’를 본 사람은 베네딕트 컴버배치가 분한 필이라는 남자를 절대 잊지 못한다. 몬태나 주에서 동생 조지와 함께 목장을 운영하는 마초 카우보이 필은 설명이 필요 없는 악인이다.

필은 무고한 이들을 쏘아 죽이는 악당이나 발길 닿는 대로 방랑하며 법의 울타리를 넘나드는 무법자는 아니다. 그는 20세기 초 미국에서 아이비리그 대학을 졸업한 수재이며 예술에도 조예가 깊은 엘리트다. 거친 서부 생활에도 일가견이 있어 맨손으로 황소 수백 마리를 거세하고 소가죽으로 밧줄을 만들며 주변 지리에 능숙하다. 여기에 거친 남성성과 좌중을 압도하는 카리스마까지 갖춘 타고난 리더다. 누군가에게는 한없이 좋은 인간인 셈이다. 하지만 ‘파워 오브 도그’의 필은 명백한 악당이다.

동생 조지가 작은 식당을 운영하는 미망인 로즈와 결혼하자 필은 로즈를 목장의 재산을 노리는 사기꾼으로 간주하고 멸시와 조롱을 퍼붓는다. 로즈가 비쩍 마른 외동아들 조지를 대학에 보내 집안의 재산을 사용하자 경멸은 더욱 심해진다. 필은 비수 같은 언어로 로즈의 영혼을 산산조각 낸다. 뛰어난 밴조 연주를 보란 듯 들려주며 무안을 주고, 옅은 휘파람 소리만으로 가엾은 제부(弟婦)를 벌벌 떨게 만든다. 영화가 끝난 후 여기저기서 많이 들었던 요한 슈트라우스 1세의 ‘라데츠키 행진곡’이 거북하게 들린다면 그건 당신의 잘못이 아니다. 필의 지독한 존재감은 영화가 끝난 후에도 쉬이 가실 줄을 모른다.

제인 캠피온 감독은 은유적으로 필의 과거를 제시하며 복잡한 감상을 유도한다. 필은 타고난 소시오패스여서가 아니라 자신의 연약한 심성과 콤플렉스를 감추기 위해 거친 생활 태도를 유지하고 로즈를 학대한다. 다 큰 어른이지만 동생 조지가 곁에 없으면 불안감에 잠을 이루지 못하고, 브롱코 헨리라는 인물을 자신의 우상으로 받들어 모시는 태도는 유치함을 넘어 순수하기까지 하다. 필이 열등감은 있지만 똑똑하고 다재다능한 어른으로 머물렀다면 몬태나 목장의 모든 사람들은 행복하게 잘 살았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그는 남편 잃은 여인을 폐인으로 만들고 그 아들에게까지 씻을 수 없는 모욕을 줬다. 영화는, 그리고 역사는 필을 ‘나쁜 어른’으로 기억할 수밖에 없다.

‘우상의 몰락’을 기고한 후 한 달간 나는 ‘좋은 어른’에 대한 짙은 회의감에 빠져있었다. 운 좋게도 내 주위엔 좋은 어른들이 많았다. 능력 있고 박학다식하며 많은 것을 이룬 그들은 인생의 선배이자 닮고 싶은 롤모델이기도 했다. 그들의 글을 보며 문장을 배열하는 법을 배웠고, 그들의 말을 들으며 삶의 태도와 방향을 가늠해보기도 했다. 갓 스무 살부터 음악에 대해 글을 써보겠노라 호기롭게 나선 천방지축의 어린아이를 사리분별 가능한 젊은이로 만들어준 이들도 모두 좋은 어른들이었다.

어른이 되어가며 당혹스러운 순간은 그렇게 믿고 따랐던 선배들이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종종 저지르고도 자각하지 못하는 광경을 목격할 때다. 열등감은 독기가 되고 사명감은 독재가 된다. 갑질과 오만, 거짓말과 위선, 시대에 뒤떨어진 성인지 감수성을 일상에 품고 있는 어른들이 뒤틀린 시선을 세상에 풀어놓을 때마다 마음속 책장에 꽂힌 위인전 한 권에 쓰인 이름이 희미해지다 사라져 버린다. 믿음을 잃어버린 아이들은 상처받고, 눈물 흘리다 자극과 혐오를 약속하는 선동가의 달콤한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디지털 문화에 능통하고 20대를 자주 만난다고 해서 젊은 사람이 아니다. 나름의 근거와 논리가 있겠지만 누군가는 당신을 ‘개의 세력’이라 칭하며 분노하고 조롱할 수도 있는 것이다.

선거 운동이 격렬해지면서 더 많은 우상들의 황당한 자침(自沈)을 목격하게 되자 회의주의는 더욱 짙어졌다. 그런 와중 한줄기 빛처럼 내려온 작품이 있었다. 펄 잼의 리더 에디 베더의 솔로 앨범 < Earthling >이었다.

▶에디 베더 < Earthling >의 아트워크

에디 베더가 누군가. 1991년의 < Ten >부터 2020년 < Gigaton >까지 꾸준히 사회의 어두운 면을 노래로 옮기고 거대 자본에 맞서 저항하며 약자와 연대하는, 보기 드문 모범 록스타다. 이제 그도 1964년생 57세로 적지 않은 나이인데 새 솔로 앨범에서 들려주는 정력(精力)이 상당하다. 활력 넘치는 로큰롤 앨범 위에서 에디 베더는 젠체하며 폼 잡지도 않고 무거운 훈계를 늘어놓지도 않는다. 그저 고고하게 록 신의 베테랑으로서 맡은 바 임무를 다하며 경쾌하게 자신의 음악을 연주할 뿐이다.

커트 코베인, 레인 스텔리, 크리스 코넬만큼의 인기는 누리지 못했을지라도, 나는 그런지 붐 최후의 생존자로 꿋꿋이 걸어가는 에디 베더를 ‘좋은 어른’이라 믿고 싶다. 무료한 삶을 보내지만 자신은 정의롭다고 믿는, 맹목적으로 충성하지만 아무렇지도 않게 타인에게 상처를 주는 모든 ‘개의 세력’에게 에디 베더의 새 앨범을 적극 추천한다.

아, 바빠서 음악 들을 시간이 없다고요… 그렇다면 < Earthling >의 수록곡 ‘Try’라도 꼭 들어보세요. 에디 베더가 이렇게 말합니다. “좋은 남자는 척할 필요가 없다(Good men don’t have to pretend)”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