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소력 짙은 목소리와 구체적인 서사를 엮은 권진아 표 이별 노래는 뚜렷한 서사로 다가가 사랑에 상처받은 이들의 마음을 울려왔다. 신곡 ‘Raise up the flag’는 여기서 더 나아가 응원의 메시지까지 전달한다. 유사 상황을 표현한 노래로 소통하는 것에 멈추지 않고 긍정의 깃발을 꽂으며 좌절한 이들이 자신을 따라 이겨내도록 설득하는 싱글이다. 공감대의 확장에 성공했음에도 전하고자 하는 뜻과 어울리는 음악도 잊지 않았다.
복귀작 < The Flag >가 주 무기인 발라드 외에 팝과 밴드 사운드도 차용한 것처럼 신곡 역시 활력 넘치는 에너지를 강조하기 위해 웅장한 록의 작법을 취한다. 피아노 반주부터 점차 기타와 드럼 등의 조력자들이 공간을 채우는 구조가 감동을 점진적으로 강화하고, 보컬 역시 주제에 걸맞게 미세한 떨림을 강조하기보다는 단단하게 주도권을 행사한다. 따뜻한 마음씨를 가진 기수(旗手)의 격려에 대열이 따르지 않을 이유는 없어 보인다.
최근 여성 뮤지션들의 약진은 주로 인디 신에서 돋보였다. 굵직한 행보를 이어왔던 정밀아와 김사월이 양질의 앨범을 선보였고, 민수, 문선 같은 신인 인디 뮤지션이 새로운 바람을 일으켰다. 백지영, 린, 다비치 등 발라더가 주름잡던 2000년대 초, 중반과 달리 지금 음악 신의 흐름은 뒤바뀌고 있다. 이러한 동향 속에서 발라드 음반을 꾸준히 발매하는 권진아의 행보는 유독 돋보인다.
권진아의 중심은 바깥이 아닌 안을 향한다. 세상이 향하고 있는 방향, 대중이 원하는 음악보다는 자신이 원하는 음악에 집중한다. 타고난 보편적 음악성이 대중을 사로잡으면서도, 동시에 큰 히트를 치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데뷔 이래 여러 유행이 스쳐 지나가는 동안에도 고집 있게 자신의 정체성인 발라드와 알앤비를 전면에 내세웠다. 그 결정체는 2019년에 발매한 정규앨범 < 나의 모양 >. 감정을 꾹꾹 눌러 담은 발라드가 수록곡 대부분을 차지했다. < 우리의 방식 >은 그 스타일을 유지할 뿐만 아니라 한발 더 나아가 전곡 작사, 작곡에 참여하며 본인의 색깔을 명확히 짚고자 한다.
조금 더 뚜렷해지고, 조금 더 깊어졌다. 기타 연주가 돋보이는 브리티시 록 기반의 ‘우리의 방식’은 그가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을 노래한다. ‘잘 가’는 토이(Toy)가 그랬던 것처럼 장면을 연상시키는 노랫말이 인상 깊다. 안테나 작곡가인 서동환이 편곡을 맡아 매끈하게 다듬어진 웰 메이드 발라드를 완성한다. ‘어른처럼’의 파트너를 죠지로 택한 것도 탁월하다. 둘의 절제된 알앤비 보컬은 떠나간 사랑에 대한 감정을 담담하게 마주한다.
음반의 의미는 ‘자생의 능력’에 있다. 소속사의 신뢰를 지지대 삼아 자신의 음악을 마음껏 펼치며, 유행에 올라타지 않고 굳건히 영역을 지킨다는 것이다. 권진아의 흔들림 없는 행보는 시대의 흐름과는 무관하게 색다른 감상을 선사한다. 그만의 방식으로 태어난 < 우리의 방식 >은 그 어떤 앨범보다도 ‘권진아스러운’ 음반이 되었다.
– 수록곡 – 1. 우리의 방식 2. 잘가 3. 꽃말 4. You already have 5. 어른처럼 (With. 죠지) 6. 여행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