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ies
Album KPOP Album

넋업샨(NUCK) ‘Not Really Now Not ANYMORE

평가: 3.5/5

마스터 플랜에서 데뷔한 넋업샨은 인피닛 플로우, 소울다이브를 거치며 한국 힙합의 역사와 함께 해왔다. 비트 위 시인과도 같은 존재감으로 이미 신에 자리매김한 래퍼가 마이크를 잡은 지 20년이 훌쩍 넘은 지금에서야 첫 번째 솔로 정규 음반을 발표했다. 걸출한 베테랑이 처음 홀로 이름을 내건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 어머니와 사별 후 실험적이고 새로운 소리를 장송곡 삼아 재차 모친상을 치르기 위함이다.

연출을 맡은 프로듀서 진부터 독특하고 다양한 소리의 군상을 암시한다. 재즈와 연이 깊은 프로듀서 엡마(Aepmah)의 전위적인 사운드 ‘우아한 시체’와 ‘배태’가 다소 위압감 넘치는 개회를 알리면 블루스와 힙합을 넘나드는 김박첼라가 다시금 유연하고 평이한 곡으로 이후 순서를 진행한다. 뒤바뀌는 분위기에 개의치 않고 상주(喪主) 넋업샨은 완숙한 랩이 깃든 ‘탕’, 시구를 읊는듯한 ‘봄’과 ‘주문’을 암송하며 묵묵히 손님을 맞이한다. 음악성이나 문학성, 어느 모로 봐도 평범하지는 않다.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낸 후 겪는 내면의 요동 때문일까, 난해한 변주가 작 전반에 넘실거리지만 일부 휴식 구간은 무난한 청취로 문상객들을 유도한다. 간병 생활 중 에피소드를 유쾌한 음률로 표현한 ‘아버지의 휴일’은 흐름을 펑키하게 뒤바꾸고, 평이한 후렴구를 앞세운 ‘Desert glow’나 하드 록과 결합한 ‘T.S.B’에서도 마찬가지로 숨을 돌린다. 주제나 노랫말을 떼놓고 음악적으로만 봤을 때 가장 친절하고 대중 친화적인 노래가 가장 실험적인 음반에 담겼다.

잇따른 절차를 거친 후 다다른 ‘순간의 영원’은 전체적인 작품의 정서를 집약한다. 도입부에 인용한 알베르 카뮈의 소설 < 이방인 >처럼 그는 객관적인 관찰자로서 무덤덤하게 죽음을 바라보다가도 익숙한 일상을 깨뜨린 순간에 피어오르는 내면을 있는 그대로 묘사했다. 담담한 래핑과 처연한 어쿠스틱 기타 연주가 극명한 대비로 어머니의 투병 과정과 임종을 그릴 때, 트랙에는 엄숙함만이 감돈다.

오랜 시간 자기 심연으로 파고든 넋업샨은 진중한 언어와 정교하게 갈고닦은 소리를 배합해 수작을 완성했다. 사상과 원칙을 텍스트로 수놓던 래퍼는 XXX나 이현준 등 익스페리멘탈(Experimental) 힙합의 후배들이 이어받은 배턴을 다시금 이어받아 건재함을 증명했고 가장 사적인 경험까지 작품에 녹일 수 있는 아티스트로 진화한다. 혹여 이 예술적인 장례식에 조문을 희망한다면, 자리를 고쳐 앉아 사운드와 텍스트 모두에 집중하기를 권한다.

– 수록곡 –

  1. 우아한 시체
  2. 배태
  3. 토악질
  4. 아버지의 휴일
  5. 순간의 영원
  6. Desert glow
  7. 주문
  8. T.S.B
  9. 초원
Categories
Album KPOP Album

릴 모쉬핏 ‘AAA’ (2022)

평가: 3.5/5

몇 년 전부터 방송 프로그램과 음악계에 ‘부캐 놀이’ 유행이 휘몰아쳤다. 트렌드의 맥이 끊기기 직전, 프로듀싱 팀 그루비룸의 휘민은 ‘Achoo remix’에서 래퍼의 면모를 드러냈던 릴 모쉬핏으로 다시 등장했다. 갑작스러운 데뷔 앨범 발매 소식이 만우절 장난이라는 추측도 있었으나 이번엔 예상했던 래퍼가 아닌 힙합 프로듀서로서 < AAA >를 내놓았다.

새 페르소나로 음반을 발매한 것은 두 자아를 근본적으로 구분 짓기 위한 선언이다. 릴 모쉬핏은 그루비룸을 대표하는 감각적이고 대중적인 팝 대신 음울하고 거친 분위기와 해외 유행을 이식한 세련미를 장착했다. 나아갈 방향을 알리듯 서두부터 조준점이 명확하다. 인트로 ‘Moshpit only’는 피에르 본식의 트랩 비트와 폴 블랑코의 자신감 넘치는 랩으로 마초 이미지를 불러온다.

본체의 그림자를 완전히 거둬들이지는 않았다. 단짝 박규정과 함께 프로듀싱하며 듀오의 정체성을 유지하되 전체적인 콘셉트 설정은 단독 권한으로 가져왔다. 래퍼 혹은 프로듀서 이상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되고 싶다는 인터뷰처럼 릴 모쉬핏은 국내 힙합 플레이어들을 조명하고 외국 힙합의 트렌드를 끌어와 큐레이터의 역할을 맡았다.

키드밀리, 소코도모 등 국내 래퍼부터 미국의 에이셉 앤트, 스트릭까지 힙합 본토와의 연결고리를 마련했다. 유명세를 묻지 않고 기용한 신예 프로듀서들의 신선한 사운드도 든든하다. 특히 비엠티제이와 구스범스가 만든 ‘Yooooo’의 중독적인 신시사이저와 ‘Bo$$’의 분위기 전환은 히트메이커의 번뜩이는 직감을 보여준다. 하트코어 레디와 스월비의 호흡에 세사미의 비트를 더한 ‘Die hard’ 역시 킬링 트랙.

흑인 음악 뮤지션으로 채워 넣은 크레디트와 내적 요소 모두 국내 힙합의 최전선을 포착한다. 최신 경향을 보여주는 모범적인 지표지만 균열 또한 같은 지점에서 일어난다. 앨범의 제목인 ‘All Arena Access’의 개척적인 의미와 달리 외국 힙합의 규격을 넘어서는 대범함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시너지를 일으킬 모험적인 시도는 없었지만 스타와 신예, 국내와 해외를 결합한 영역 확장에는 성공했다.

-수록곡-
1. Moshpit only (Feat. Paul Blanco)
2. Gotta lotta shit (Feat. Dbo, Sokodomo, Kash Bang)
3. Yooooo (Feat. 키드밀리, Sokodomo, Polodared)
4. A-Team freestyle (Feat. A$ap Ant, Bill Stax, Strick, 미란이) (추천)
5. Slatty slut (Feat. 식케이)
6. On the block (Feat. 쿠기, Ourealgoat, Leellamarz)
7. Die hard (Feat. Reddy, Swervy) (추천)
8. Bo$$ (Feat. Saay, Big Naughty, Goosebumps) (추천)
9. Back in my area (Feat. Ggm Lil Dragon, Lil Gimchi, Skinny Brown, June O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