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페노메코가 지닌 음악적 이중인격은 양면의 경력을 쌓아 올렸다. < Garden >과 < Dry flower >에 싱잉 랩이 만개하는 와중에도 이따금 래퍼로서 역량을 의심받을 때마다 광적인 벌스를 선보이며 좌중을 침묵시키기도 했다. 이 우직한 행보가 어느새 10년, 그는 자기 정체성을 확증하기 위해 ‘로르샤흐’ 심리검사를 수행한다. 잉크를 흩뿌린 검은 종이 위 두 번째 자아의 본격적인 각성을 꾀하기 위함이다.
웅장하고 냉철한 비트 위 타겟을 향한 정밀한 사격이 이어진다. 절친한 지코와 함께 ‘Rindaman’과 ‘피융!(Pew!)’을 연사한 1부에 이어 다시금 ‘Ghost’로 노력과 애정없는 래퍼들에게 날카로운 비수를 던진 것이다. 타격감 넘치는 구절 사이 어색하지 않게 혼합된 멜로디컬한 랩과 착 감기는 후렴구의 조합은 페노메코 완성본 그 자체며 절정에 다다르기 위한 예열로써 적합한 인트로다.
주도권을 거머쥔 페르소나는 그가 자주 되뇌듯 전례 없는 걸 내놓는다. 타이틀 ‘X’는 ‘전사의 후예’를 재료 삼아 한국의 올드스쿨 힙합을 세밀히 정제하고 리모델링한 작품. 탄탄한 기본기는 물론이고 과거로부터 공수해 온 투박한 플로우와 분위기를 촌스럽지 않게 꾸민 덕분에 업계와 본인 모두 만족할 만한 결과물이 탄생했다. 자연스레 서태지가 연상되는 도입부와 에이치오티(H.O.T.)를 오마주한 가사를 통해 누군가는 유년기를 회상하고 누군가는 신선한 자극을 받게 될 테다.
다분히 역사적이고 문화적인 접근이다. 2021년 창모가 < Underground Rockstar >의 ‘태지’로 자신의 독보적인 위치를 서태지와 일치시키며 그 시대를 추억했다면, 페노메코는 1990년대 전체를 현대로 끌어와 세대 간 연결에 집중했다. 시작은 당대의 아이돌을 연구하며 근간을 찾고 현재 본인의 위치와 역할에 대해 확신하는 구도자의 자세로, 그 끝은 힙합의 문을 열어준 X세대를 향해 존경을 표하는 방식이다. 야성적인 표현도, 섬세하게 고심한 태도도 더없이 진중하다.
물론 타이틀의 존재감으로 인해 중후반부의 반향은 그다지 크지 않다. 싱잉 랩의 또 다른 강자 루피와 합을 맞춘 ‘Bangers’는 두 사람에게 기대한 시너지와는 다른 방향으로 흐르며 적당한 연결부로만 기능한다. ‘나를 넘어서는 게 first’ 등의 가사로 개인적인 경험에 집중한 ‘Yak yak’이나 감성의 손길이 닿은 ‘23 part. 2’는 그의 음악 세계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는 역할을 맡는다.
2부로 구성된 [ Rorschach ] 시리즈는 그간 충분한 증명에도 주목도가 높지 않았던 음반 활동의 갈증을 통쾌하게 씻어낸다. 오래도록 조준점을 노려본 페노메코는 본인도 수긍할 만한 명분과 대중 취향 사이 어느 지점을 찾아 정조준했다. 확신에 찬 검지로 묵직한 방아쇠를 당긴 순간, 일직선으로 곧게 뻗은 탄도에 흔들림과 빈틈은 없었다.
– 수록곡 –
1. Ghost (Feat. 개코 & 바이스벌사)
2. X
3. Yak yak
4. Quick fast
5. Bangers (Feat. 루피)
6. 23 pt.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