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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Sound check, 엔지니어 – 나의 명곡, 나의 명반] 임창덕

‘지금은 아닐 수도 있지만 당시에는 음악적으로도 그렇고 사운드가 좋았다’

음향 기술의 발전은 음악을 시간과 공간의 제약 없이 언제 어디서나 들을 수 있으며, 누구나 손쉽게 즐길 수 있는 문화로 바꿔 놓았다. 대중음악은 그렇게 탄생했다. 음악을 많은 사람에게 전달하기 위해서는 곡을 만드는 것이 우선이지만, 노래에 ‘대중성’이라는 특수성을 더하는 데에는 음향 엔지니어 혹은 음향 기사라 불리는 이들의 힘이 결정적이었다.

음악가들과 가장 밀접한 위치에서 음악을 조율하는 이들은 누구보다 소리에 민감하고, 누구보다 많은 양의 음악을 분석한다. 녹음, 믹싱, 마스터링에 프로듀싱까지 음악 제작의 거의 모든 부분에 참여하는 최고의 음향 전문가들은 자신의 명반으로 무엇을 뽑았을까. 이즘 필자, 독자, 라디오 PD에 이은 ‘내 인생의 음악’ 시리즈를 위해 직접 나섰다.

첫 트랙은 ‘부밍사운드’의 대표이자 국내 음향 기사 중에서도 대표급인 임창덕 엔지니어다. 활동 기간만 40년에 가까운 그는 김건모, 김현철, 지오디, 코요태 등 이름만 대면 알만한 가수들과 전성기를 함께 누볐다. 경력이 긴 만큼 어느 시대의 어느 음악을 꼽을지 궁금했다. 선택지가 많으면 고르기 더 어려운 법이니까.

가장 먼저 나온 인물은 요 몇 년 사이 ‘시티팝’이 유행하면서 반강제로 무대에 복귀한 김현철이다. 임창덕 기사는 그의 모든 음악을 추천했지만 깊은 고심 끝에 김현철을 1990년대 스타로 만든 ‘달의 몰락’(1993)과 재즈의 향이 깊게 밴 ‘왜 그래’(1995)를 골랐다. 퓨전 재즈를 좋아하는 그의 취향과도 연관이 있으리라 생각한다.

사운드에 대한 이해가 남달랐던 음악가를 물어봤을 때는 고민 없이 김현철을 불렀지만, 그와 함께 언급한 뮤지션이 있다. 임재범의 ‘너를 위해’를 썼던 프로듀서 겸 작곡가 신재홍이다. 그는 재미교포 알앤비 듀오 애즈원과도 꾸준히 작업했는데 임창덕 엔지니어는 이들의 2003년 정규작 < Never Too Far >에서 비교적 덜 알려진 타이틀 곡 ‘Mr.A-Jo’를 자신의 리스트에 추가했다.

인생 노래를 고민하던 중 낯선사람들 동명의 데뷔 앨범 < 낯선사람들 > 얘기를 꺼내며 아티스트들과 있었던 일화를 들려주었다. ‘낯선사람들’은 재즈 스타일의 보컬이 중심인 그룹으로 이 팀의 1집과 2집 레코딩도 임창덕 기사가 전담했다. 초기 멤버 이소라의 목소리에 반했던 그는 이후 동아기획에서 솔로 음반을 준비하던 이소라를 다시 만났다.

1995년 < 이소라 1집 >에서 (계속해서 등장하는) 김현철이 작사작곡한 ‘난 행복해’를 녹음하던 당시 좋은 느낌을 받았다는 임창덕 기사의 말처럼 이 앨범과 노래는 큰 히트를 쳤다. 작업 후 쫑파티 겸 대낮에 과천 어린이 대공원에 간 이들은 맥주를 딱 한 잔씩 마시고는 ‘잘해 보자’ 얘기하며 헤어졌다고 한다. 앨범 위주의 장시간 작업이 많아 금방 정이 들던 시절의 재미난 추억이다.

임창덕의 간택을 받은 명반은 낯선사람들의 < 낯선사람들 >, 애즈원의 ‘Mr.A-Jo’, 김현철의 ‘달의 몰락’과 ‘왜 그래’다. 음향 엔지니어이기 때문에 누구나 인정할만한 거장의 작품이 뽑힐 거라 예상했지만, 그는 ‘지금은 아닐 수도 있지만 당시에는 음악적으로도 그렇고 사운드가 좋았다’며 회답했다. 그렇다면 전문가의 입장에서 그에게 영향을 준 음악들은 무엇일까.

어찌 보면 뻔하지만 모두가 기다렸을 답이 그의 입에서 나왔다. 마이클 잭슨과 토토를 들으며 테크닉을 다진 그는 특히 < Thriller >, < Bad >, < Dangerous >로 마이클 잭슨의 전성기 엔지니어링을 담당했던 브루스 스웨디언을 추천했다. 세 앨범 모두 그래미 최우수 엔지니어드 레코딩(비클래식 부문)을 수상했다. 마이클 잭슨에 대해서는 무슨 설명이 필요하겠는가.

▶좌 브루스 스웨디언(Bruce Swedien),우 GRP Records 로고

퓨전 재즈와 디지털 작업 방식으로 유명한 GRP Rec에서도 드럼, 베이스를 많이 참조한 그는 이 외에도 핑크 플로이드, 휘트니 휴스턴, 록, 발라드 등 특징, 분야별로 잘하는 엔지니어의 소리를 파고들었다. 예의 음악들을 접했을 때 느꼈던 감성, 감정을 자신의 사운드하고 비교하면서 좋은 소리와의 대비점을 연구했다. 순수하게 혼자서 노력한 이 오랜 시간이 지금의 임창덕을 낳았다.

직업적인 이유로 전 장르를 취하지만 앞서 말한 것처럼 그는 퓨전 재즈를 제일 좋아한다. 최근에는 클래식도 듣고, 흐름을 알기 위해 국내 가요와 미국에서 히트하는 곡들도 청취하고 있다. 누구나 그렇듯 그 역시 모든 음악에 공감하기는 쉽지 않지만 공부를 하기 위해서 듣고 있다고 전했다.

음악 얘기를 마무리하며 그가 긴 시간 지켜본, 그리고 지켜온 음향 업계의 동향에 대해 대화를 나눴다. 현장이 열악했던 1980년대부터 K팝에 세계가 주목하는 2022년까지 음악, 음향뿐 아니라 세상은 따라가지 못할 정도로 빠르게 움직이는 중이다. 우여곡절은 물론이거니와 최근 코로나 사태까지 그가 현업에서 겪은 풍파를 들어보자.

과거와 지금의 업계 분위기를 비교해 보면 어떤 점이 다른가요?
요즘은 가르쳐주는 기관이 많다 보니 학생들이 기본적이거나, 음악적인 부분들까지 다 알고 있다. 접근이 쉬워졌다. 심지어 컴퓨터나 기계 관련해서는 젊은 엔지니어에게 내가 배우기도 한다. 아날로그로 진행할 때는 내가 다 했었는데 지금은 컴퓨터가 다 하더라.

코로나와 함께 콘텐츠 시장은 영상이 지배한 지 오래다. 2022년, 음원 시장의 방향과 포맷의 형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그러한 시장 흐름에 맞춰 ‘부밍사운드’도 오디오만 하는 곳이 아닌 영상도 함께하는 곳으로 바뀔 예정이다. 올해부터는 영상 후반 작업도 할 수 있도록 구조를 바꾸고 있다. 그리고 돌비 애트모스 믹싱도 계획 중이다.

* 5.1 서라운드 사운드 : 전면 좌우, 중앙, 후면 좌우 총 5개의 채널과 저음 전용 채널을 활용한 오디오 시스템.
* 돌비 애트모스 : 5.1에 천장 4곳과 좌우 2곳을 추가해 상하 개념이 들어간 7.1.4 서라운드 시스템. 환경에 따라 조금씩 다르다.

LP, CD, MP3 등 음악의 다양한 플랫폼을 경험하셨는데 엔지니어 입장에서 각 플랫폼과 그 변화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LP가 제일 마음에 든다. 잡음 때문에 불편하지만 완벽한 사운드를 구현하는 건 아날로그라고 생각한다. 아날로그로 시작했으면 아날로그로 끝나야지, 사람 귀가 디지털은 아니잖아요? (웃음) 소리의 파형에서 디지털은 아날로그를 표시만 한 거다. 아날로그가 정말 따뜻하고 음폭이 넓다. 편리성을 위해 디지털화되고, 아날로그를 모르는 세대가 더 많다 보니 사람들이 특유의 예쁜 소리를 모르는 것 같아 아쉽다.

돌비 애트모스의 경우 채널 수가 매우 많지만 사실 제대로 감상하기 어렵다. 그만큼 스피커를 놓기도 힘들고. 5.1 서라운드 사운드도 해당 시스템으로 플레이하면 공간감을 느낄 수야 있겠지만 그걸 다시 2채널로 모으는 것 아닌가. 약간의 공간감은 전해져도 완벽하진 않다. 물론 새로운 방식을 추구하다 보니 스테레오로 들어도 평면적이 아닌 입체적인 사운드가 만들어져서 도움은 된다고 본다.

▶왼쪽부터 김종진(봄여름가을겨울), 임창덕, 장기호(빛과 소금), 박성식(빛과 소금)

시대의 요구에 따라 대학들이 음향 관련 전공을 늘렸음에도 여전히 ‘음향’과 ‘음악’을 동의어로 보는 이들이 많다. 그만큼 이 분야에 대한 정보와 관심이 적은 탓이다. 인터넷의 발달로 전문 지식은 수없이 쏟아지는 것에 반해 피와 살이 될 선배의 식견은 상대적인 기록이 부족하다. ‘조언’이 ‘라떼’로 바뀐 지 오래지만 그 한 잔조차도 누군가에게는 소중한 학습 자료다.

음향에 관한 공부는 어떻게 하셨나요? 비결도 궁금합니다.
당시에 공부라는 개념은 없었다. 교육 기관도, 책도 없어서 혼자서 도제식으로 굉장히 어렵게 익혔다. 물론 조금씩 배우기도 했는데 그때는 납땜하는 방법부터 배웠다. 음악적으로는 이론이나, 실기를 배우기보다 많이 들으면서 비교, 분석하는 시간을 가졌다.

선생님의 작업 방식이 궁금합니다. 본인만의 철칙이 있으신가요?
처음에는 음악을 쭉 들어본다. 음악의 기초가 되는 드럼과 베이스로 중심을 잡고, 곡을 전체적으로 구상한다. 이큐(이퀄라이저, Equalizer), 컴프(컴프레서, Compressor) 같은 이펙트로 사운드를 정리하면서 나머지 악기를 얹는다. 엔지니어라면 누구나 다 그렇게 한다.

구상하고 풀어가는 과정에서 먼저 공간을 구성한다. 홀(hall), 룸(room), 바로 옆에서 듣는 것처럼 말이다. 징크스 같은 건 없다. 그저 흘러가는 대로 한다. 내가 무언가 놓치고 있다고 느낄 때는 외부의 좋은 사운드를 살펴본다.

음악도 트렌드에 따라 변하는 것처럼 음향도 변하지 않나. 그러한 유행을 따라가는 편이신가요, 아니면 자신의 사운드를 밀고 나가는 편이신가요?
믹싱을 오래 했다 보니 기준점은 확실하게 있다. 나만의 틀을 만들어 놓고 사람들이 원하는 소리가 있다면 거기서 절충한다. 허용치 안에서는 수용하고 그 이상은 거절하기도 하는데 처음 하는 엔지니어들은 기준이 명확하지 않아 자칫 휘둘릴 수도 있다. 중심이 없어지는 거다. 프로듀서가 원하는 대로 다 하면 해결이 안 된다.

약 40년 가까이 활동하신 대선배의 입장에서 이제 시작하는 후배들에게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요즘은 컴퓨터가 발달해서 혼자 음악을 만들 수 있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기회가 점점 줄어드는 거 같다. 그래서 학생들에게 음악적 역량을 키우라고 말한다. 프로듀서 역할도 해보고, 엔지니어 역할도 해보면 좋은 소리를 만들어 낼 수 있다고 본다. 엔지니어가 프로듀싱하면 소리가 좋은 음악이 나올 수밖에 없다. 직접 주체가 돼 봐야 한다.

예를 들어 핑크 플로이드와 작업했던 알란 파슨스는 ‘알란 파슨스 프로젝트’라는 자신의 이름을 건 팀으로 본인이 프로듀싱한 앨범을 냈는데 엔지니어로서 역량을 갖추고 있다 보니 사운드도 기가 막혔다. 그래서 후배들에게 프로듀싱 능력도 소홀히 하지 말라고 조언한다.

가끔 음악만 공부한 사람들은 사운드를 잘 몰라서 많이만 넣으면 좋은 줄 안다. 킥 드럼(kick drum) 7개, 스네어(snare) 5개, 아니면 200채널 넘게도 가져온다. (웃음) 합치면 좋은 줄 알고 욱여넣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 위상만 나빠지고, 사운드를 해치는 첫걸음이다.

인터뷰 : 임동엽, 임선희, 백종권
정리 : 임동엽, 임선희
사진 : 임동엽, 백종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