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걸그룹 픽시는 2021년 데뷔 이래 선악이 대립하며 서로를 유혹한다는 세계관 구현에 힘쓰고 있다. 어두운 트랩 비트와 EDM을 차용, 몽환적인 가성을 부각해 비현실적인 콘셉트를 청각화했다. 2022년 5인조로의 멤버 재구성을 겪었지만 탄탄한 짜임새의 전작 ‘Villain’으로 공백을 눈에 띄지 않게 넘겼고 이후 약 1년여 만에 나온 신곡 ‘Karma’는 기존 캐릭터 서사를 강화하겠다는 의지 아래 스타일을 답습하지만, 분명 이전보다 세련되고 성숙해졌다.
새 타이틀 ‘Karma’는 함께 수록된 ‘Hide & seek’과 ‘Flip a coin’이 합쳐진 하이브리드 리믹스다. 선악이 분리된 양면성을 강조하며 세계관을 다지는 스토리텔링과 두 곡을 매끄럽게 결합하는 음악적 노련함을 동시에 획득하고자 한다. 시작부터 치고 나오는 강렬한 귓속말이 몰입도를 높이고, K팝 특유의 갑작스런 장르 전환으로 분위기를 절단하지 않아 나른하게 카운트를 세는 후반부 구간 교체가 자연스럽다. 힙합과 일렉트로닉 댄스를 기반으로 한 보편적인 K팝 특성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는 점, 읊조리듯 내뱉는 후렴구가 최근의 유행을 뒤따른다는 점에서 독창성을 가지진 않지만 보컬의 강점을 잘 이해한 작곡으로 가창의 매력이 두드러진다.
대중의 호응이 아직 적을지언정 최초로 설정한 그룹 서사를 계속 밀고 가겠다는 뚝심과 음악 품질의 발전으로 승부 보겠다는 포부가 야심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