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개설 20주년을 앞두고 이즘은 특집 기획의 일환으로 라디오 방송 프로듀서 20인의 ‘내 인생의 음악 10곡’ 편을 마련한다. 이즘 필자들과 독자들의 글을 공개하면서 이즘 편집진은 음악과 동의어라고 할 라디오 방송의 PD들이 갖는 미학적 시선과 경험을 들어보기로 의견을 모았다.
각 방송사의 라디오국에서 음악 프로를 관장하며 15년 이상의 이력을 가진 20인이 뽑은 ‘인생 곡 톱10’을 순차적으로 공개한다. 여섯번째 순서는 SBS 라디오 구경모 프로듀서다.

내 인생의 음악 10곡이라…. 중학교때부터 용돈만 생기면 빽판 사러 다닌 이래, 직업을 음악 듣는 라디오PD로 지내오면서 수많은 음악을 들었지만 막상 10곡이라…. 좋은 노래를 추천하는 것도 좋겠지만, 다른 분들께서 충분히 소개해 주실 거 같고, 글 주제가 ‘내 인생의 음악 10곡’이니 만큼 좀 개인적인 이야기를 소개하는 것도 어떨까 한다.

김광석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오래전 김광석을 라디오 DJ로 캐스팅했다. 당시 무명의 가수를 나름 골든 타임인 밤 10시 프로에 기용하고자 했을 때 회사에서 허락하지 않았다. 드러눕고 별 짓 다해서 관철했다.
매일 생방송을 하면서 같이 노래를 틀고, 듣고 하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광석아 이 노래 좋지 않냐?’, ‘와 좋네요’ ‘니 가 리메이크하면 어떨까?’ 이런 대화 끝에 나온 노래가 ‘어느 60대 노부부의 이야기’이고 앨범 < 다시 부르기 >다. 라디오 생방송을 마치고 앨범녹음실까지 같이 가서 말동무가 되었다. ‘썼다 지운다 널 사랑해…’ , ‘와 가사 유치하다’ , ’그죠? 하하하 히히히” 이렇게 농담을 주고 받던 노래가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이다. 아직도 내 마음속에 있는 김광석을 이제는 잊어야 될텐데…

강산에 ‘…라구요’
김광석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같이 라디오방송을 하는 동안 12시 방송이 끝나면 홍대 앞에 있던 ‘Sus4’라는 카페에 자주 갔다.(없어진지 오래 됐다) 지하에 있던 작고 허름한 그 카페에는 일반 손님들은 별로 없고, 많은 아마추어 음악인들이 모여 간혹 자신의 노래를 부르곤 했다. 김광석은 항상 그 곳에서 그들의 노래를 들어주었고 그들의 술값을 계산했다.
하루는 한 무명 가수가 김광석에게 물었다. ‘노래가사에 18번 이란 표현을 써도 될까요?’, ‘에이 그냥 써, 요즘 세상에 그 정도 표현은….’, ‘그렇죠 형?’ , ‘그래 그래 그냥 써 써’. 가요 사전 심의가 있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그 명곡은 당당히 살아남았다.

한동준 ‘너를 사랑해’
예전에는 라디오 공개 방송이 참 많았다. 특히 인터넷, 모바일 시대 이전에는 가수를 보거나 라이브를 들을 수 있는 곳이 다양한 라디오 공개방송이었다. 당시 한동준의 ‘너를 사랑해’가 빅 히트를 쳤고 나는 고심 끝에 한 대형 공개방송에서 오프닝으로 ‘너를 사랑해’ 를 선정했다. 한동준이 물었다. ‘형 이 곡은 발라드 인데, 오프닝곡으로 어울릴까? 객석이 썰렁해지는 거 아닐까?’
나는 강행했고, 풀밴드와 당시 잘나가던 ‘여행스케치’ 를 코러스로 같이 세웠다. (여행스케치에게 지금도 감사하게 생각한다.) 다행히 공연장에 무대막이 있어서 좀 더 세심한 연출이 가능했다. 무대막이 내려간 상태에서 잔잔한 전주를 시작하면서 막을 올리자 관객들의 환성이 터져 나왔다. 발라드로 공연의 오프닝을 이렇게 성공적으로 연출한 적은 그 이후 없다. 지금도 한동준을 만나면 그때 이야기를 한다. ‘나 그때 눈물났어 형.’, ‘다 곡이 좋아 그런거야.’.

스티비 원더(Stevie Wonder) ‘I Just called to say I love you’
94년, 일본 도쿄FM의 일본인 친구 PD가 갑자기 연락이 왔다. 스티비 원더 가 아시아 투어를 하는데, 서울 공연을 갑자기 하게 되었다고 도와달라 했다. 시간이 너무 촉박 한지라 잠실 주경기장을 어렵게 섭외하고 공연을 우여곡절 끝에 치루게 되었는데, 내국인을 위한 홍보를 거의 못해 관객이 너무 적었다. USO를 통한 홍보로 외국인들만 겨우 관객으로 왔다.
남산의 한 호텔 한 층을 다 빌려 스티비 원더와 일주일 이상을 같이 지냈는데, 밤에 덩치 큰 스티비 매니저가 나를 찾는다. 가지고 다니던 건반이 고장 났는데 테크니션이 수리할 장비가 필요하다 했다. 나는 아는 악기사 사장을 한밤에 깨워 해결해 줬다.
스티비는 고마워하며 자기방에서 고친 건반을 치며 좋아했다. 나는 이때다 싶어 부탁했다. ‘이번 공연에서 앵콜로 “I Just called to say I love you’ 를 불러달라’. 원래는 이 곡이 셋리스트에 없었다. 한국 팬들은 이 노래를 너무 좋아한다. 꼭 불러 달라 라는 부탁에 스티비는 흔쾌히 오케이 했다. 공연 당일 스티비는 약속을 지켰다. 그러나 불행히도 그날 관객은 대부분 외국인 들이었다.

엑스 재팬(X-Japan) ‘Endless Rain’
내가 라디오PD 신입 때는 J-Pop이 대세였다. 국내에 많은 가수들이 J-Pop의 영향을 받았고, 표절도 많이 했다. 당시 인터넷 이전 시절이고, 일본음악 CD도 국내 수입도 불가하던 시절이라 자주 도쿄에 CD를 사러 갔다.
하라주쿠에 있던 타워레코드를 가면 중고CD를 팔았다. 순위 1위부터 10위까지 대략 샀다. 그리고는 혹시 공연이 있으면 보고(당시에는 도쿄 아레나공연장이 생기기 전이어서 부도칸이 제일 큰 공연장 이었다. 여기에서 당시 젊은 이글스공연을 봤다) 이케부쿠로의 전자상가를 구경하고 돌아오곤 했다.
하루는 도쿄FM의 친구가 X-Japan의 타이지 사와다랑 친한데 한번 만나 볼 거냐고 한다. 타이지 사와다! 서태지가 존경해서 이름을 태지라고 지었다는 전설적인 베이시스트이다. 당연히 고맙다고 하고 롯본기 어느 술집에서 늦게 만났다. 이미 그때는 타이지는 X-japan을 탈퇴하고 자신의 밴드를 만든 시기였다.
난 일본의 젊은 천재 아티스트와의 만남을 기대했지만 그는 이미 나랑 만나기전부터 취해있었다. 동행한 그의 부인이 영어가 능통해 대신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마 타이지가 맨정신 이였어도 영어를 못해 많은 대화를 나누지는 못했을 거라고 위안을 삼으며, 그들이 챙겨준 ‘굿즈’(당시에 국내에는 굿즈의 개념이 없었다)만 잔뜩 받고 헤어졌다.

하하 ‘키 작은 꼬마 이야기’
하하와 만난 건 그가 <논스톱>에 출연한 이후 비호감으로 인기가 추락했을 때다. 첫만남에서 낮술을 먹어보았다. 그의 눈빛에서 솔직함과 진정성이 느껴졌다. 반대를 무릅쓰고 디제이로 캐스팅했다.
그는 라디오를 하면서 그의 밑바닥까지 모든걸 보여주었다. 사람이 이렇게 솔직하게 자신을 이야기하면 누구나 공감하기 마련이다. 방송하면서 ‘죽지 않아’ 라고 하도 외쳐서 ‘죽지 않아 송’까지 만들었다. ‘죽지 않아’라는 메시지는 당시 사회의 ‘을’을 대변했고 풀 죽은 청년들을 위로했다.
하하는 수없이 자신의 라디오를 통해 울고 웃었다. 그런 그가 자신의 이야기를 노래로 만든 것이 바로 ‘키 작은 꼬마 이야기’이다. 나는 지금도 사회의 ‘을’과 힘 빠진 청년들에게 도움이 될 거라고 믿는 노래이다. 하하는 디제이를 할 때 자신을 하하라 부르지 않고 ‘하동훈’이라는 본명을 사용했다. 그만큼 솔직 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다. 사람이 자신에게 가장 솔직해질 때, 그때 그 사람이 가장 강할 때가 아닐까?

바비 킴 ‘고래의 꿈’
다 아는 사실이지만 라디오PD는 가요제작자와 누구보다 밀접하다. 친한 제작자 후배가 심혈을 기울여 데모곡을 가져왔다. ‘형 어때요?’ , ‘좋네 하지만…’, ‘그래요? 고쳐 올게요…’.
그 이후 그 제작자는 나에게 약 20번정도 그 데모곡을 고쳐 왔다. 그런 경우는 처음 봤다. 예전에는 신곡이 나오거나, 나오기 직전 많은 제작자들이 PD들에게 모니터를 부탁했다. 이미 출시된 노래는 그냥 좋다라고 말할 수 밖에 없고(수정할 수 없으니) 출시 전인 경우에 솔직한 의견을 주면, 실제로 그 의견을 반영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그러나 이 제작자는 내 의견을 따라 한 두번도 아니고 거의 20번에 가까이 수정을 했다.
명곡 ‘고래의 꿈’은 바비 킴의 영감이 만든 훌륭한 작품이지만, 이런 집념의 제작자 없이는 세상에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10곡을 채울려면 아래의 3곡이 더 있지만 지면 관계상 아래곡의 에피소드는 다음 기회로 미룬다.
룰라 ‘날개잃은 천사’
팻 메스니(Pat Matheny) ‘Question & Answer’과 ‘Soul Cowboy’
신중현 ‘아름다운 강산’
이렇게 쓰다 보니 내 자랑(?) 만 늘어 놓은 것 같아 송구하다. 하지만 이런 개인의 기록도 어딘가에는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는 마음으로 글을 마친다. ‘내 인생의 음악10곡’이 아닌가? ㅎ 임진모선배가 넓은 마음으로 양해해 주시라 믿는다.
구경모 SBS FM PD
BBS <김광석의 밤의 창가에서>, SBS <하하의 텐텐클럽>,외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