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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10곡 특집 Feature

라디오 PD들의 ‘내 인생의 음악 10곡’ – #3 김홍범 PD

이 리스트는 내 인생의 음악 10곡이 아니라, 지금 생각나는 음악 10곡이다. 지금 이 순간 기억해내지 못한 수많은 아름다운 음악, 그리고 요즘에 빠져있어서 선택하지 않은 젊은 음악들에게 사과를 전하며…

내년 개설 20주년을 앞두고 이즘은 특집 기획의 일환으로 라디오 방송 프로듀서 20인의 ‘내 인생의 음악 10곡’ 편을 마련한다. 이즘 필자들과 독자들의 글을 공개하면서 이즘 편집진은 음악과 동의어라고 할 라디오 방송의 PD들이 갖는 미학적 시선과 경험을 들어보기로 의견을 모았다.

각 방송사의 라디오국에서 음악 프로를 관장하며 15년 이상의 이력을 가진 20인이 뽑은 ‘인생 곡 톱10’을 순차적으로 공개한다. 세번째 순서는 KBS 라디오 김홍범 프로듀서다.

잔혹한 기획이다.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음악 중에 10곡만 뽑으라니, 100곡이어도 고르기 어려울텐데 말이다. 1곡을 떠올리면 꼬리처럼 물고 나오는 다른 음악들이 나를 왜 안뽑아주냐고 울부짖는다. 내가 하찮은 기억력을 갖고 있다는 것까지 생각하면 빼놓은 곡들은 훨씬 많을거다.

그래서 미리 양해의 말씀 드린다. 이 리스트는 내 인생의 음악 10곡이 아니라, 지금 생각나는 음악 10곡이다. 지금 이 순간 기억해내지 못한 수많은 아름다운 음악, 그리고 요즘에 빠져있어서 선택하지 않은 젊은 음악들에게 사과를 전하며…

윤상 / Back to the real life

나에게 있어 음악 중에서도 사운드에 큰 관심을 갖게 한 뮤지션이 있다면 단연 윤상이다. 그의 모든 앨범은 뛰어나지만. 그 중에서도 < Cliche > 앨범에 실린 곡들은 모두 시공간을 초월하는 아름다움을 갖고 있다. 목소리가 아닌 사운드가 노래하는 음악, 그게 윤상의 음악이다. 유행을 타지 않는 목소리는 덤이다.

나인 인치 네일스(Nine Inch Nails) / Closer

성장하는 뮤지션을 좋아한다. 그것도 완전히 새로운 틀을 만들어내는 뮤지션. 트렌트 레즈너(Trent Reznor)는 그런 면에서 이상형에 가까운 인물이다. 그리고 음악 구성만으로 엄청난 고양감을 선사하는 선동가이기도 하다. 그가 손을 대면 단순한 멜로디도 엄청난 파괴력을 발휘한다. 특히 < The Downward Spiral > 앨범은 처음부터 끝까지 마음이 솟구친다.

루시드 폴 / 그대 손으로

내가 음악을 듣는 스타일은 리듬, 멜로디, 사운드 등 전체의 균형감에 집중하는 편이다. 하지만 루시드 폴의 음악을 마음에 담은 이후에는 ‘가사’에도 더욱 집중하게 되었다. 그의 음악은 시적인 가사를 통해 모든 음악의 요소를 초월해낸다. 그 중에서도 찰랑거리는 느낌의 ‘그대 손으로’는 단연코 루시드 폴의 초창기를 대표하는 수채화같은 음악이다.

라디오헤드(Radiohead) / No surprises

실로폰은 강하다. 강력한 드러밍이나 일렉트로닉 사운드가 아니어도 사람의 마음에 큰 파문을 일으킨다. 그리고 이젠 하나의 예술집단이 되어버린 라디오헤드만의 음악 설계는 감탄에 감탄을 거듭하게 만든다. 그 만큼 이 곡이 실린 < OK Computer >앨범은 완벽하다. 기술과 감성이 완전히 균형을 이룬다. 그리고 그 사이를 관통하는 톰 요크의 목소리라니…

신해철 / 일상으로의 초대

신해철의 음악은 들을 때마다 탐닉하게 된다. 모든 장르의 음악을 자유롭게 다뤘던 만큼 어떤 음악에서건 적재적소에 특유의 표현력을 뿜어낸다. 특히 이 곡은 내가 ‘재즈카페’와 함께 가장 깊이 빠졌던 곡. 그의 음악을 듣다보면 어느 순간 마음의 ‘심연(深淵)’에 다다를 때가 있는데, 이 곡은 마음 속 가장 푸른 곳으로 데려다준다. 다시 그를 만나고 싶다.

다프트 펑크(Daft Punk) / Digital love

‘어떻게 하면 이런 ‘튠’을 만들어낼 수 있지?’하고 엄청나게 감탄을 했던 곡. 다프트 펑크의 마이너한 성향의 곡들도 좋아하지만, 대중성과 교묘하게 결합된 탐미스런 이 곡이야말로 그들만의 위대함을 표현하기에 좋은 곡이다. 그로인해 다프트 펑크의 음악은 등장한지 오래되었어도 여전히 나이가 들지 않고 유행의 최첨단을 달리고 있다. 마땅히 존경해야 할 존재다.

W / Shocking pink rose

그들의 장인정신을 사랑한다. 소리 하나하나 버릴게 없다. 새로운 사운드를 찾기 위한 그들만의 여정을 늘 응원해왔다. 특히 < Where the Story Ends >앨범은 우리 대중음악계에서 특별하게 빛나는 존재이기도 하다. 특유의 만화같은 가사와 결합되어 시너지를 일으키는 그들의 곡을 듣고 있노라면 나도 만화의 주인공이 된 듯한 느낌이 들어 항상 행복해진다.

Firehouse / Don’t treat me bad

당대의 슈퍼밴드들을 제치고 이 곡을 고른 이유는 단 하나다. 컨트리풍 사운드 속에서 재기 넘치게 울려 퍼지는 일렉트릭 기타의 커팅 플레이를 너무나 좋아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아직도 이 곡만 들으면 혼자 허공에 기타를 치게 된다. 그들의 고풍스러운 발라드 히트곡 보다 이 곡이 몇 배 더 사랑스럽다. 쟝쟝쟈가쟈가쟈가쟝쟝~

마이 앤트 메리 / 공항 가는 길

< Just Pop >. 앨범명처럼 가장 팝스런 곡들이 가득 담긴 작품이다. 모던록을 기반으로 하는 인디밴드의 노선으로는 드문 케이스였지만, 곡의 완성도로 모든 편견을 잠재워버렸다. 보편성의 위대함을 깨닫게 해준 앨범이기도 했다. 아마도 그 어떤 인디 앨범의 곡보다 지금도 편하게 들을 수 있을 것이다. 꾸미지 않아도 아름다운 것은 아름답다.

세풀투라(Sepultura) / Desperate cry

내 인생의 초반부는 ‘속도’였다. 빠르고 강한 음악만이 전부였다. 우리 세대가 모두 그렇듯 메탈리카, 메가데스, 앤스렉스, 슬레이어 등에 무진장 빠져있었으니까. 그 중에서 아직도 내가 많이 듣는 밴드는 세풀투라. 복잡하지 않아서다. 현재 EDM처럼 단순한 구성만으로 사람의 감정을 불타오르게 한다. 특히 이 곡은 내가 구렁텅이 빠질 때마다 구원해주는 곡이기도 하다. 이유는 비밀!

■ 프로필

김홍범 | relax@kbs.co.kr

KBS 라디오PD. < 굿모닝팝스 >, < 메이비의 볼륨을 높여요 >, < 데니의 뮤직쇼 >, < 홍진경의 두시 >, < 이현우의 음악앨범 >, < 김C의 뮤직쇼 > 등을 연출했다.

그저 음악을 좋아한다는 이유로 < 52 Street >, < 네이버 이주의 발견 >, < 네이버 온스테이지 >, 월간 < 굿모닝 팝스 > 등을 비롯한 여러 매체에 부족한 글을 끄적거려왔으며, FIFA U-20 월드컵 코리아 오피셜송 자문위원을 역임하고 지금은 < 한국대중음악상 > 심사위원을 맡고 있다. 현재 KBS 쿨FM < 강한나의 볼륨을 높여요 >를 연출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