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ies
내 인생의 10곡 Feature

라디오 PD들의 ‘내 인생의 음악 10곡’ – #13 김혜선 PD

내게 음악이란.. 언제부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며 존재했던 것일까.. 어렸을 적부터 라디오에 귀 기울였고, 새로운 음악들을 흡수했고, 음악피디를 꿈꿨고, 어느새 내 삶에 깊숙이 스며들어 그야말로 공기처럼 지금껏 늘 곁에 있다.

내년 개설 20주년을 앞두고 이즘은 특집 기획의 일환으로 라디오 방송 프로듀서 20인의 ‘내 인생의 음악 10곡’ 편을 연재 중입니다. 라디오는 음악과 동의어라는 편집진의 판단에 따라 기획한 시리즈로 모처럼 방송 프로듀서들이 전해주는 신선한 미학적 시선에 독자 분들이 좋은 반응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각 방송사의 라디오국에서 음악 프로를 관장하며 15년 이상의 이력을 가진 20인 PD의 ‘인생 곡 톱10’입니다. 열세 번째 순서는 KBS 라디오 김혜선 프로듀서입니다.

내게 음악이란.. 언제부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며 존재했던 것일까.. 어렸을 적부터 라디오에 귀 기울였고, 새로운 음악들을 흡수했고, 음악피디를 꿈꿨고, 어느새 내 삶에 깊숙이 스며들어 그야말로 공기처럼 지금껏 늘 곁에 있다.

지금은 그것이 소위 빽판(해적판)이라는 것을 알지만 어린 내겐 그저 대학생 언니오빠가 남겨준 수많은 LP 판들이 밤의 친구이며 내 정서적 자양분이 됐음을, 그리고 현재의 나를 김혜선 피디로 만들어준 것임에 틀림없다.

클라우디아 아라우(Claudio Arrau) 쇼팽의 ‘Impromptu & ballade’(즉흥곡과 발라드)
클래식 음악과의 만남은 아무래도 나의 언니를 빼놓을 수 없겠다. 내겐 위로 언니 둘이 있는데, 큰언니는 유난히 흰 얼굴에 긴 손가락, 소설속의 여주인공 같은 이미지를 갖고 있어 그런지 유난히 남자들의 인기가 많았다. 당연히 언니가 클래식을 좋아하리라 생각했는지 수많은 청년들이 LP를 선물했다. 그것도 나는 처음 보는 수입 명반을. 하지만 저녁잠이 많은 언니보다는 늦은 밤 문학소녀가 되곤 하는 내가 그 수혜자가 되었다고 보면 되겠다. 언니오빠의 소위 해적판만 보던 내게, 꼭꼭 씌워진 비닐을 뜯고 빨간색 로고가 선명한 필립스(Phillips) 레이블을 마주하던 설렘.

칠레 출신의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클라우디오 아라우의 쇼팽의 < 즉흥곡 & 발라드 > 음반은 내게 아름다운 클래식의 바다로 첫 발을 내딛게 해준 음반이 되었다. A면과 B면을 수도 없이 반복해 들으면서 모두 잠든 밤 헤르만 헤세와 세계의 명시를 읽으며.

## 나의 20대~50대를 관통한 방송들
꿈에 그리던 방송국에 입사했다. 그리고 라디오 음악피디가 되었다. 처음 레코드실에 들어갔을 때 그 많은 음반들이 숨 쉬고 있는데 가슴이 막 뛰었다. 이렇게 수많은 음반이 숨 쉬고 있다니! 무엇부터 들어봐야 할까?! ‘경외’로웠다. 하지만 나는 금세 두려워지면서 한없이 작아졌다.

내가 요만큼 좋아한다는 애호가 수준으로 감히 방송할 수 있을까…그때부터 큐시트 쓰는 시간과 방송시간을 제외한 모든 시간을 모니터에 바쳤다. 매일매일 쏟아지는 음악의 신세계는 끝이 없었다.

빌 더글러스(Bill Douglas) ‘Hymn’ (현재 < 당신의 밤과 음악 > 시그널)
1993년 클래식 FM에서 <당신의 밤과 음악>을 맡게 되었다. 그 당시 라디오 황금기는 밤10시. 젊은 사람 대상의 클래식프로그램이 필요했다. 프로그램도 변화해야했다. 엄숙하기보다는 친근해져야했다. 그래서 시그널부터 새롭게 변화에 앞장서야 했고, 대문을 바꿔다는 마음으로 수없이 들었던 100여곡의 후보 중에서 시그널로 발탁된 곡이다.

캐나다 출신의 빌 더글라스는 작곡가이면서 목관악기인 바순 연주자다. 바순의 음색을 듣다보면 힘든 일도 마음도 어느새 내려놓고 싶어지고 마음이 편안해진다. 그는 동양의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이 음악이 밤에 이렇게 사랑받는 곡일 줄 알고 있을까?.. 이 시그널은 27년째 93.1Mhz 에서 매일 밤 10시에 울려 퍼진다.

앙드레 가뇽(Andre Gagnon)  < Monologue >
< 당신의 밤과 음악 > 을 하면서 모니터하다가 알게  작곡가이다. 그야말로 힐링 음악. 눈을 감고 듣고 있노라면 마음이 청량해지는. 그런데 도저히 정체를 알 수 없는 작곡가이다. 온통 일본말로 음반이 써져있어서(영어 한 글자 없어서 연주자를 읽기조차 불가능했다) 국제방송의 동기한테 그 음반을 들고 찾아갔다. 그리곤 그가 캐나다 퀘벡 출신의 작곡가 겸 피아니스트라는 사실을 알게 됐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나의 ‘최애’ 뮤지션이다.

그의 음악을 방송한지 10여년이 지나서야 우리나라에서 < Monologue >(1997년 라이선스 발매)라는 타이틀로 소니(Sony)에서 첫 음반을 내게 되었을 때, 소니 담당자는 내게 자문을 구했었다. ‘김피디님이 가뇽을 우리나라에 알리셨는데, 이 음반 라이센스하면 잘 될까요?’ 물론 될 거라 했고, 음반은 대박이 났다. 그 후 앙드레 가뇽의 내한공연까지 성사되었고, 공연을 앞두고 그는 내가 당시 맡고 있던 < FM 가정음악 >에 출연했다. 그리고 소니 담당자는 앙드레 가뇽한테 “이 분이 한국에 당신을 알리신 피디입니다!” 그와 그렇게 인사를 나누었던 기억.

< FM 가정음악의 4계 > 가을, 겨울, 봄, 여름 (1998-1999)
아침 9시대 < FM 가정음악 >을 하면서 1년 동안 4장의 음반을 발매했다. 1년 반을 꼬박 음반에 매달려 있었다. 그동안 컴필레이션(합집)음반은 바이올린 컬렉션, 아침에 또는 밤에 듣는 음악, 머리가 좋아지는 음악 등등 대부분 음반기획자의 의도대로 대부분 편집되어 있었다.

나는 처음부터 방송 컨셉대로 음반을 기획하지 않는다면 기존의 컴필음반과는 차별화되지 않는다고 생각했고, 음반 한 장이 두 시간의 프로그램처럼, 오프닝부터 엔딩 곡까지 들으면 하루분의 방송을 들은 것처럼 만들어야 한다고 굳게 믿었고 그 기획의도에 충실했다.

그래서  오로지 방송을 통해서만  들을 수 있었던 곡(시중에선 구하기 어려운)들이 대거 포함됐음은 물론이다. 클래식에 관심 있는 초심자들이라면 이 음반들로 시작해도 좋을 것이다. 굳이 한 곡만 뽑으라면 < 가을 >편의 첫 곡인 소프라노 이네사 갈란테(Inessa Galante)의 ‘Ave Maria’가 될 것이다. 당시 방송 나가면 문의가 쇄도했다.

## <세상의 모든 음악>과 월드 뮤직 속으로.

내 방송인생은 < 세상의 모든 음악 >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35년 방송인생의 딱 절반되는 시점인 2002년 4월1일에 첫 방을 했다. 이미 포맷이 짜 있는 프로그램에서 코너를 바꾸고 패널을 바꾸고 하던 것과, 판을 새로 짜는 것은 너무 달랐다. 정말 제로에서 시작했다. 막막했다.

언젠가 준비가 된다면 프로그램으로 만들어봐야겠다 혼자 생각은 했었지만,  사내 프로그램 제안공모(무조건 피디 1인당 하나씩 내는 숙제! – 그저 난 숙제를 했을 뿐인데)를 통해 < 세상의 모든 음악 >이 갑자기 정규방송으로 편성되면서 제안공모자인 내가 갑자기 피디로 떠밀려 들어가게 됐다. 처음엔 밤 12시 1시간 프로라더니 갑자가 노출이 많은 퇴근시간 저녁 6시에 두 시간으로 편성이 바뀌면서 그야말로 멘붕이었다. 잠도 오지 않았다.

내가 아는 월드뮤직에 대한 자료와 레퍼토리는 아직은 그야말로 애호가 수준인데.. 이 밑천으로 어찌 저 넓고 깊은 바다로 뛰어들까나.. 해외방송 모니터하랴.. 시그널 찾으랴.. 새 코너 만들랴. 작가 찾으랴.. 모든 게 엉망이었다.

아직 누구도 밟지 않은 길을 내면서 가는 내게 ‘잘하고 있다! 잘 가고 있다!’고 자기 암시를 하면서 어둠 속을 한발씩 조심스럽게 내딛었다. < 세상의 모든 음악 >이라는 프로그램 타이틀만 덩그마니 있는 상태에서 방향을 잡는 것, 코너를 만드는 것, 코드음악을 찾는 것, 모든 게 새로웠지만, 역시 시그널(이 프로그램의 상징성)과 첫 곡(앞으로 이 프로그램은 이렇게 가겠다)이 제일 중요했다. 수차례 고심한 끝에 첫 방송 첫 곡은 바로 이 곡 이었다.

안네 소피 폰 오터와 엘비스 코스텔로(Anne Sofie von Otter & Elvis Costello)  ‘Broken bicycle/ Junk’
영화 < 노팅힐 >에서 ‘She’로 잘 알려진 엘비스 코스텔로가 스웨덴 출신의 메조 소프라노 안네 소피 폰 오터 (Anne Sofie von Otter)와 3년여 작업 끝에 만들어 진 2001년 앨범 < For The Stars >의 수록곡이다. 앨범 수록 곡 모든 곡이 다 좋지만, 클래식의 품격을 유지하면서 결코 문턱이 높지 않은 친근한 음악, 그 곡이 바로 < 세상의 모든 음악 > 첫 날 첫 곡이었다. 올해 만 18년을 넘긴 < 세음 >의 매해 생일엔 꼭 이 곡을 방송한다.

오이겐 키케로 트리오(Eugen Cicero Trio) 바흐 < 마태 수난곡 > 중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Erbarme dich, mein gott‘ (Rokoko Jazz,1965)
요한 세바스찬 바흐(1685-1750)는 평생 독일을 떠나 본 적이 없었다. 그의 이름은 그대로 직역하면 ‘작은 시내’라는 뜻. 그러나 그는 이제 시대를 뛰어넘어 전 세계 어디에서든 가장 많이 연주되는 작곡가로 기억된다. 그야말로 그는 ‘음악의 큰 바다’를 이룬 작곡가이다.

신앙심이 깊은 바흐는 많은 종교음악을 작곡했는데 1729년 4월 성금요일을  앞두고 그리스도의 수난을 다룬 < 마태수난곡 >이 초연되었다. 하지만 이 곡은 바흐 서거 이후 단 한 번도 연주되지 않고 잊혀졌다. 그 후 100년 동안 도서관에서 잠자고 있던 이 곡은 1829년 20살 청년 멘델스존에 의해서 라이프치히 무대에 다시 올랐고 지금은 전 세계 어디서든 공연되는 오라토리오가 됐다.

원래 이 곡은 알토의 아리아인데 루마니아 출신 피아니스트 오이겐 키케로는 얼마나 피아노로 아름답게 연주하는지 눈물이 뚝. 18세기 바흐의 작품이, 19세기 멘델스존으로, 다시 현대의 재즈로 이어져 있다니 클래식은 영원한 클래식이다. 얼마나 경이로운가.

에바 캐시디 (Eva Cassidy) ‘Imaigine’
지금 이 계절에 바로 들어야 할 곡이다. 늘 새로운 음악을 찾는 내게 지인이 앨범을 하나 건네주었다. 듣는 순간 가슴을 울리는 이 소울풀한 가수는 누구인가? 자료를 찾고 모니터해서 바로 < 세상의 모든 음악 >에 올렸다. 33해의 짧은 생을 살고 마감한 그녀는 끝내 생전엔 앨범이 빛을 보지 못하고, 낮엔 일하고 밤엔 재즈 바에서 통기타를 치며 노래하곤 했는데, 그녀 사후 2년 뒤인 1998년 발매된 앨범이 미국이 아닌 영국차트에 먼저 오르면서 역으로 모국인 미국으로, 전 세계로 알려지게 된 가수다. (영화 < 러브 액츄얼리 >에도 그녀의 곡이 나온다. Songbird)

< 세음 > 10주년 기념앨범 7집에 에바 캐시디의 ‘What a wonderful world’,

15주년 기념앨범 9집에 ‘Imagine’이 실려 있다. 피디의 애정이 물씬 풍기는 가수.

루치아노 파바로티 ‘Holy mother’(with Eric Clapton)
아마 클래식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루치아노 파바로티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태리의 태양처럼 쭉쭉 뻗은 고음. 우렁찬 소리. 그가 부르는 베르디의 ‘축배의 노래’나 ‘바다로 가자~’ 이런 칸초네를 듣고 있노라면 정말 ‘세기의 테너’라는 수식어에 모두 공감할 것이다.

그는 특별히 클래식 외에도 < Pavarotti & Friends >라는 기획으로 자선 공연을 펼치곤 했는데, 그 공연들과 스튜디오 녹음을 모아서 파바로티 타계 1주년에 음반으로 발매되었다. 에릭 클립튼, 스팅, 셀린 디온, 머라이어 캐리, 본 조비 등 수많은 팝스타들과의 듀엣 노래가 담겨있다.

크리스 보티(Chris Botti)  < Chris Botti in Boston >
트럼펫하면 단정한 이미지보다는 많은 사람들이 좀 끈적끈적한 느낌의 흑인연주자를 많이 떠올린다. 루이 암스트롱 같은. 하지만 그런 이미지와 다르게 이지적이고 쿨한 느낌으로 트럼펫의 음색을 아름답고 아련하게 느끼게 해준 트럼페터다. ‘Steps of positano’, ‘A thousand kisses deep’을 비롯한 아름다운 곡들을 연주하는 크리스 보티가 2008년 9월18일과 9월19일 클래식 연주홀인 보스톤 심포니 홀에서 보스톤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공연을 가졌다.

그의 친구이자 오랜 시간 함께 작업해온 스팅, 첼리스트 요요마, 조쉬 그로반 등 그야말로 최고의 연주자들이 보티와 함께 공연했다. 지금도 그 공연영상을 자주 본다. 최고들의 콜라보는 저렇게 멋지구나! 하면서.  재즈와 클래식, 다른 많은 장르를 넘나들며 트럼펫의 매력을 들려주는 현재진행형의 트럼페터 크리스 보티. 2011년 11월 세종문화회관에서의 공연도 잊을 수 없다.

메르세데스 소사 ‘Gracias a la Vida’
세상의 모든 음악을 하면서 많이 듣고, 많이 공부하고, 새로운 곡을 알게 되면  청취자와 함께 공유하면서 나도 성장했다. 언제나 깊은 울림을 주는 아르헨티나의 거장 메르세데스 소사를 기억하지 않을 수 없다. ‘대륙의 목소리’, ‘아르헨티나의 영혼’, ‘파차마마’… 다 소사를 표현하는 단어들이다. 군부 폭압 속에 1979년 추방되었다가 1982년 생명을 무릅쓰고 아르헨티나로 돌아와 Teatro Ópera에서 2월 18일부터  28일 동안 이어진 공연 기록의 하이라이트 음반 < Mercedes Sosa En Argentina >(1982)의 라이브 버전을 추천한다. 언제 들어도 마음을 어루만지는 영혼의 목소리.

오늘 하루도 삶에 감사하며.

‘Gracias a la vida’
Gracias a la vida, que me ha dado tanto    
Me dio dos luceros, que cuando los abro     
Perfecto distingo lo negro del blanco
Y en el alto cielo su fondo estrellado

Y en las multitudes el hombre que yo amo.

‘삶이여, 고마워요’
내게 그토록 많은 것을 준 삶에 감사 합니다/
삶은 눈을 뜨면 흑과 백을 완벽하게 구별할 수 있는
두 샛별을 내게 주었습니다.
그리고 높은 하늘에는 빛나는 별을
많은 사람들 중에는 내 사랑하는 이를 주었습니다.

* 김혜선 PD(hyeseon@kbs.co.kr)
1985년 4월 KBS 라디오 PD로 입사했다. 93.1 Mhz Classic FM에서 < FM 가정음악 >, < 당신의 밤과 음악 >, < 노래의 날개 위에 >, < 저녁의 클래식 >, < 음악풍경 >, < 한낮의 음악실 >, < 멜로디를 따라서 > 등을 연출했고, 2002년 < 세상의 모든 음악 >을 론칭해 연출해왔다. 그 후 < 세음 >과 만나고 헤어지기를 4번 반복, 그 사이 세음과의 인연은 10여년 이어졌다. < 세상의 모든 음악 > CD 1,3,4,7,9집을 발매했고, 그동안 방송하면서 20여 년 동안 세상에 내놓은 CD들 < FM 가정음악의 4계-가을, 겨울, 봄, 여름 >, < 재즈수첩 >, < 당신의 밤과 음악 >들을 또 다른 자식처럼 여긴다. 여전히 음악을 모니터할 때 가장 행복함을 느끼며, 매일 설레는 마음으로 청취자들을 만나고 있다. 현재는 KBS 클래식 FM의 < 김미숙의 가정음악 >(09:00~11:00 월-금) 연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