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업시대에 탄생한 산업음악
‘가이거 계수기'(Geiger counter), ‘방사능'(Radioactivity), ‘방사능지역'(Radioland), ‘전파'(Airwave), ‘열차단'(Intermission), ‘뉴스'(News), ‘에너지의 소리'(The voice of energy), ‘안테나'(Antenna), ‘전파성'(Radio stars), ‘우라늄'(Uranium), ‘트랜지스터'(Transister), ‘옴, 즐거운 옴'(Ohm sweet ohm).
이것은 전파공학 용어의 나열이 아니다. 엄연히 노래제목이다.
이러한 노래를 만든 주인공은 독일 뒤셀도르프 출신의 크라프트베르크(Kraftwerk). 랄프 후터와 플로리안 슈나이더 두 사람이 주축이 된 그룹으로 크라프트베르크라는 이름은 발전소를 의미한다.
72년부터 활동하기 시작한 그들의 사운드는 전세계 팝계에 신선한 충격을 몰고 왔다. 우리에게도 그들의 음악은 놀라움 그 자체였다. 크라프트베르크의 75년도 발표작인 이 앨범의 타이틀곡 ‘방사능’은 사운드의 충격을 던지며 우리의 전파매체와 다운타운가를 휩쓸었고 이어서 ‘안테나’도 청취자들을 사로잡았다. 두 노래는 선율위주 팝송에 길들여져 있는 우리들, 아니 세계의 음악 팬들의 청각적 호기심을 자극하면서 진보적 사운드에 대한 욕구를 충족시켜 주었다.
크라프트베르크는 자신들이 서있는 시대적 환경의 특성을 알고 있었다. 독일의 공업도시인 뒤셀도르프에서 자라난 그들 눈에 목격된 70년대는 산업화가 극을 달리고 있던 시대이다. 클래식 음악광이었던 그들은 전자 메커니즘 환경에 살아가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것을 음악으로 표현하는 작업에 돌입했다.
그들은 라디오의 콜시그널, 혼신되는 무전사운드, 중복되는 테입을 음향효과로 응용했으며 과학기술의 시대를 살아가는 만큼, 또 그것을 대변하는 음악이니 만큼 최신 전자판으로 사운드를 창조했다. 그들은 기타의 자리에 대신 신시사이저를 앉힌 것이다.
청취자들을 더욱 경악시켰던 것은 방사능과 무전의 ‘보이지 않는 흐름’을 인간의 감정에 이입시켜 현대인의 감정교류로 그려냈다는 점이었다. 그것은 발상의 대전환이었다.
“방사능이 너와 내가 숨쉬는 대기에 있다. 퀴리부인이 발견한 방사능이 멜로디로 바뀌고 있다.” (‘방사능’)
비평가들은 크라프트베르크를 ‘산업음악'(Industrial music) 의 선구자로 규정한다. 더러는 음악을 예술의 경지까지 끌어올렸다 하여 아트록의 범주에 포함시키기도 한다. 그들은 이 앨범 외에 74년 <아우토반>(Autobahn, 그들의 최고 걸작으로 평가받는다), 77년 <유럽횡단특급>(Trans-Europe Express), 78년 <인간기계>(The man machine), 81년 <컴퓨터 세계>(Computer-world) 등을 발표했다.
미국보다는 유럽에서 더욱 인정받아 82년에는 <인간기계>에 수록된 곡 ‘모델'(The model)이 뒤늦게 영국에서 빅 히트, 독일인 최초로 영국 싱글차트 정상을 밟는 영광을 차지했다.
그들의 음악은 순간적 호기심으로 바래버리지 않고 데이비드 보위에게 영감을 주었으며, 더 나아가 80년대 초반 휴먼 리그 등의 신시사이저 팝 그룹 태동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후예들의 출현으로 말미암아 그들은 단순한 ‘신시사이저의 마법사’로부터 ‘일렉트로닉 음악 과학자’로 그 위치가 크게 격상되었다.

R.I.P. Florian Schneider
1947.04.07 ~ 2020.04.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