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ies
내 인생의 10곡 Feature

IZM 독자들이 소개하는 ‘내 인생의 10곡’ – 7주차

독자 투고에 많은 분들께서 삶을 대표하는 10곡을 적어 보내주셨습니다. 김예준, 한용섭님의 사연을 소개합니다.

[IZM 필자들이 소개하는 ‘내 인생의 음악 10곡’] 독자 투고에 많은 분들께서 삶을 대표하는 10곡을 적어 보내주셨습니다. 소중한 경험을 IZM에 보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보내주신 많은 사연 중 선정된 두 독자분의 사연을 먼저 소개하고자 합니다.

* IZM 독자 투고는 언제나 열려있습니다. webzineizm@gmail.com 으로 보내주신 사연을 검토하여, 매주 두 분의 인생 10곡을 소개합니다.

김예준 씨의 인생 10곡을 소개합니다.

스파이스 걸스(Spice Girls) ‘Wannabe’
유치원 장기자랑 비디오에 이 곡이 들어있어서 7살 때 처음 접했는데 나중에 인터넷에서 발견하고 엄청 반가웠던 기억이 난다. 과하게 발랄하고 약간은 촌스러운 천진난만한 느낌이 어렸을 때랑 잘 어울리는 것 같다. 이 노래를 들으면 지금과는 다른 씩씩하고 활달했던 때가 기억나는 게 신기하다.

매시브 어택(Massive Attack) ‘Teardrop’
처음 이 곡을 들었을 때 익숙한 듯 새로운 느낌이 들었다. 익숙한 악기가 새로운 사운드를 내서 그런 것 같았는데 나중에서야 초등학생 때 즐겨봤던 메디컬 드라마 하우스의 인트로 곡이었던 것을 알게 됐다. 그때도 하우스의 인트로 음악을 좋아했는데 태아가 나오는 뮤직비디오 하며 심장소리 같은 비트까지 모든 게 맞아떨어지는 느낌이 들었었다. 이곡을 계기로 트립 합에 빠지게 됐고 심장 소리가 이곡의 BPM으로 들리는 것 같을 때 이 곡이 머리에서 자동 재생된다.

엠아이에이(M.I.A.) ‘Bad Girls’
스웩 넘치는 가사, 독특한 중동 느낌의 사운드, 인상적인 뮤직비디오가 잘 어우러진 신선하고 강렬한 곡이다. 영미권 팝을 많이 들어서 새로운 것을 찾고 있을 때쯤에 엠아에에이나 비요크 같은 아티스트들을 알게 됐다. 음악뿐만 아니라 전반적인 아트워크에서도 뮤지션의 색깔이 많이 묻어나는 작품에 빠지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였다.

리쌍 ‘Fly high’
중학생 때 리쌍 노래를 많이 들었는데 특히 가사에 공감하고 교훈도 많이 얻었었다. 이렇게 힘든데 왜 이 고생인가 싶을 때 ‘힘들게 살라고 나를 낳았나요. 그렇게 맘속으로 외치던 바로 그때그때 난 참 바보 같았지’라는 가사가 마음을 다잡게 해줬다. 나이 들어서도 문득 한 번씩 그런 생각이 들 때면 이 가사가 생각나는데 이 생각이 완전히 없어질 때까지 인생곡으로 남을 것 같다.

카니예 웨스트(Kanye West) ‘Paranoid (Feat. Mr Hudson)’
인생앨범을 꼽으라면 < My Beautiful Dark Twisted Fantasy >지만 인생곡을 꼽으라고 하면 왠지 이곡을 꼽고 싶다. 이 곡은 < 808s & Heartbreak >앨범의 침울함 그리고 MBDTF의 파격적인 분위기의 사이의 곡이다. 편집증을 겪어보지 않았어도 왠지 잘 느껴지는 몰입감 있는 비트와 칸예의 가사에서의 상황이 영화의 클라이막스 같은 곡이다. 특히 맨 앞에 나오는 웃음소리를 제일 좋아한다.

팔로알토 ‘Good Times (feat. Babylon)’
수험생활을 할 때 친구와 팔로알토 노래를 들으면서 함께 힘을 냈었다. 빨리 수험생활을 끝내고 싶었고 무엇보다 성인이 돼서 술을 마시게 되면 우리의 고생이 끝난 것에 대해 축배를 들고 싶었다. 그래서 고3 때와 이 앨범은 빼놓을 수 없는 것 같다.

니나 시몬(Nina Simone) ‘Little girl blue’
막 성인이 되고나서 힘들 때 위로가 필요할 때면 언제부터인지 이 곡의 피아노 선율이 생각났다. 단음의 멜로디가 나를 작은 어린이로 만드는 것 같고 니나 시몬의 목소리가 나를 안아주는 것 같다.

알 그린(Al Green) ‘Love and happiness’
다사다난한 날이 끝날 때 이곡을 찾아듣게 된다. 미래에 최고로 행복한 날 이곡을 듣는게 소소한 꿈인데 이곡을 들으면서 그날을 상상하면 꽤 힘이 난다.

이센스(E-SENS) ‘Back in time’
이센스의 모든 곡과 가사를 좋아하는데 이곡은 추억이 있다. 이센스의 라이브를 처음 보러갔을 때 마지막곡으로 이곡이 나오는데 갑자기 이곡의 특유의 느낌으로 공기가 변하는 것 같은 특별함이 있었다. 그 이후로 여러 일들이 있었는데 김건모 사건, 단독 콘서트, 2010년대 최고의 앨범 선정 등 여러모로 2019년 마무리에 임팩트를 준 곡이다.

최항석과 부기몬스터 ‘나였어’
인생 10곡을 쓰다가 마지막으로 이 곡이 생각났다. 좋았던 것만 생각나는 것도 아니고 살짝 부끄럽기도 했었는데 나를 다시 알게 되고 그대로 인정하게 되는 시간인 것 같았다. 그리고 이 노래를 들을 때 그런 기분이 든다. 반성을 승화시켜준다는 점에서 처음 느껴보는 후련함이 느껴지는 곡이다.

한용섭 씨의 인생 10곡을 소개합니다.

F.R. 데이비드(F. R. David) ‘Words’
13살 어린 나에게 한국가요는 고리타분했다. 점잖게 차려 입은 아저씨 혹은 아줌마 가수들이 ‘마상원과 그의 악단’의 나팔 위주 반주에 맞춰 ‘삼배일곡’하는 것(노래 시작, 중간 간주, 노래를 마칠 때 꼬박꼬박 허리 숙여 인사하던 관습에 내 나름대로 붙인 용어), 이것이 당시 한국가요에 대해 내가 가진 관념이었다. 어느 순간 외국음악, 이른바 팝송이라는 것이 귀에 들어왔다. 경쾌한 리듬, 달콤한 멜로디, 무엇보다 세련된 전자악기 음향은 서양음악, 더 나아가 서양문화의 상징으로 다가왔다. F. R. 데이비드의 “Words”. 너무나 달콤한 노래는 아직 남성으로 성분화가 완료되지 않은 소년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세뱃돈을 모아 내 생애 최초로 구입한 카세트 테이프에는 해설지 하나 없었다. 그러나 가사는 쉽게 오지 않아도(words don’t come easy to me) 멜로디는 나의 가장 친한 친구였다(melodies are so far my best friend).

프린스(Prince and the Revolution) ‘Purple rain’
사춘기 소년은 삐딱해지고 싶었다. 학교에서는 착실한 모범생이었지만 음악만큼은 남들과 다른 걸 듣고 싶었다. 어떤 음악을 듣는지가 나의 정체성을 결정하는 거니까. 중3 여름, 라디오에서 마침 프린스의 비둘기가 울고 있었다(‘When Doves Cry’). 그를 두고 퇴폐적이라 했다. 국내에 라이센스로 나온 < Purple Rain >은 금지곡 때문에 만신창이가 되었다. 다 함께 미치지도 못하게 하니(‘Let’s Go Crazy’) 니키는 호텔 로비에서 마스터베이션을 할 수도 없었다(‘Darling Nikki’). 만신창이 음반이지만 듣고 또 들었다. 어린 내가 듣기에도 뭔가 다른 음악이었다. 결국 뮤지션의 정체성을 결정하는 것은 음악 그 자체니까. 그런데 지금 이 세상에 그가 없다. 몇 해 전 그가 사망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내 입에서 나온 한 마디, “정말 너무하네”. 무신론자인 내가 딱히 원망할 수 있는 대상은 없다. 그래도 정말, 정말 너무하다.

오지 오스본(Ozzy Osbourne) ‘Crazy train’
“AFKN에서 가끔 야한 영화 틀어줘” 친구가 귀띔해준다. 요즘으로 치면 인터넷 어디를 들어가야 야동을 다운받을 수 있는지와 맞먹는 고급 정보다. 부모님이 안 계신 틈을 타 TV 채널을 2번에 맞춘다. 그런데 재수 없게(?) 야시시한 영화 대신 해괴망측하게 생긴 사람들이 무대에서 공연을 하고 있다. 금발에 검은 눈화장을 한 사람이 무대 이쪽에서 저쪽으로 어슬렁 왔다 갔다 하며 노래한다. 음악 자체도 이상하다. 연주자들만큼이나 해괴하게 차려 입은 관중들이 그의 이름을 외친다. “아지! 아지!” ‘오’지 오스본을 최초로 만난 순간이다. 우연찮게 오지 오스본이 블랙 새버스라는 밴드에 몸담았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무작정 블랙 새버스 카세트 테이프를 샀다. 역시나 해설지는 없다. 경건한 마음으로 오지 오스본을 영접한다. 그런데 이때 구입한 앨범은 < Live Evil >. 이 음반에서 보컬이 로니 제임스 디오로 바뀐 건 훨씬 나중에 알게 됐다. 진짜 오지 오스본의 음반을 하나씩 모았다. 그리고 필연적으로 기타리스트 랜디 로즈는 또 한 명의 내 영웅이 되었다. 그의 기일 3월 19일은 나와 친인척 관계를 형성하지 않은 사람 중에 유일하게 기억하는 기념일이다.

레드 제플린(Led Zeppelin) ‘Rock and Roll’
어느 날 집에 도둑이 들었다. 쥐뿔도 없는 집안에서 용케 장롱 속에 숨겨둔 카메라를 찾아 훔쳐갔다. 수년 전 아버지께서 중동에서 일하고 사 오신 미국 코닥 폴라로이드 제품이다. 필름이 비싸 몇 번 사용하지 않고 모셔 둔 건데 너무 허망했다. 우리 가족은 앞집 사는 청년이 범인일 거라고 생각했다. 길에 뒹구는 개들만큼 백수 건달이 많은 달동네에서 가장 가까운데 사는 건달이라는 게 유일한 증거였다. 그는 허구한 날 대낮부터 골목이 떠나가라 음악을 크게 틀어 놓았다. 어느 날 학교를 일찍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골목에 접어드니 역시나 시끄러운 음악이 울리고 있다. 아직 헤비메탈이라는 용어도 익숙하지 않았지만 강렬한 기타 소리, 경쾌한 드럼, 시원하게 울부짖는 보컬에 심박수가 빨라진다. 가사는 이해하지 못해도 노래 중간 중간에 “Rock and Roll”이라는 말이 들린다. 내 인생에서 가장 사랑하는 밴드, 레드 제플린을 처음 만난 순간이다. 몇 개월 뒤 그 청년이 강도폭행 사건을 저질러 경찰에 잡혀갔다.

신촌블루스 ‘바람인가, 빗속에서’
“형, 김현식이 죽었어요” 후배 녀석이 기숙사 방에 뛰어 들어오며 비보를 전한다. 우리는 그를 추모하고 싶었다. 신촌 블루스 2집을 턴테이블에 올리고 좁은 기숙사방을 담배 연기로 가득 채웠다. ‘바람인가, 빗속에서’를 반복해서 들었다. 엄인호의 담담한 목소리 뒤에서 포효하는 김현식을 그리워했다.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난 김현식의 팬이 아니었다. ‘비처럼 음악처럼’를 좋은 노래라고 생각했지만 그게 전부였다. 그런데 마침 이 시기이다. ‘헤드뱅잉을 할 수 없다면 음악이 아니다’라고 믿던 내가 다양한 음악에 눈을 뜨기(정확히는 귀가 트이기) 시작한 시기 말이다. 꼭 김현식과 신촌 블루스 때문은 아니다. 대학에 올라가 다양한 사람을 만나 다양한 영향을 받았다 라는 게 정확한 설명일 것이다. 바로 그 분기점에 신촌 블루스가 있었다.

뉴 트롤스(New Trolls) ‘Chi Mi Puo Capire’
“세상에 뭐 이런 음악이 다 있어?” 90년대 언제부터 인가 뜬금없이 70년대에 이태리에서 나온 아트록이 우리나라에서 유행하기 시작했다. 라떼 에 미엘레(Latte E Miele), 훈카 문카(Hunka Munka), 빌리에또 페르 린페르노(Biglietto Per L’Inferno), 이름도 생소한 밴드의 음악이 방송을 타고(전영혁의 음악세계) 전문 음반사(시완레코드)와 전문 음반가게(홍대 마이도스)도 생겼다. 낯선 음악이었다. 특히 뮤제오 로젠바흐(Museo Rosenbach)의 ‘Zarathustra’를 처음 들었을 때 난해함이 난감함으로 이어지는 심정이었다.

“세상에 이런 음악이 다 있다니!”. ‘Zarathustra’를 다시 들었다. 처음 들었을 때 그렇게 괴상하던 음악이 이제는 휘몰아치는 충격과 전율을 안겨준다. 아, 이거구나, 이래서 아트록을 듣는 것이구나. 뉴 트롤스(New Trolls), J.E.T., 꿸라 베키아 로칸다(Quella Vecchia Locanda), 그렇게 빠르게 이태리 아트록의 세계에 빠져들었다.

“세상에 한때 이런 음악이 있었지” 한때 즐겨 듣던 ‘Zarathustra’도 플레이어에 걸어본 지 20년은 된 듯하다. 세월이 지나 지금은 잘 듣지 않는 아트록과 그 뜬금없던 90년대 유행을 돌아본다. 왜 낯설었고, 왜 좋아하게 되고, 이제는 왜 안 듣게 되었는지… 여전히 내 리스닝 리스트에 남아 있는 아트록 음반들이 있다. 그 중 가장 사랑하는 앨범이 New Trolls의 < UT >이다.

벗지(Budgie) ‘Parents” (Never Turn Your Back on a Friend, 1973)
적어도 나는 90년대를 대중문화의 황금기로 기억한다. 지금과 비교하면 다양한 쟝르의 음반을 쉽게 구할 수 있던 시기였다. 이 시기 한 켠에 ‘핫뮤직’이라는 잡지가 있었다. 음악계 최신 소식이나 공연 리뷰, 신보 안내, 심지어 성문영 기자의 만화마저 재미있었다. 매달 핫뮤직이 나올 때면 서점 창가를 기웃거렸다. 내가 가장 즐겨 본 글은 콜렉터즈 아이템 같은 명반 소개 코너였다. 여기에 소개된 음반은 꼭 소장해야만 할 것 같은 의무감이 들었다. 시행착오도 있었다. 스페인 프로그레시브 록 밴드 온자(Onza)의 음반은 손에 넣는데 20년이 걸렸다. “Onja”로 잘못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핫뮤직은 음악의 미슐랭 가이드였다. 그리고 여기서 내가 찾아낸 최고의 맛집은 웨일즈 출신 록 트리오 벗지(Budgie)이다.

존 마크(Jon Mark) ‘Signal hill’
크리스 에반스가 봉준호 감독에 대해 이런 얘기를 했다고 한다, “나만 아는 감독이었으면 좋겠다”. 내게 존 마크의 가 그러했다. 나만 아는 음반이었으면 싶었다. 그래서 음반을 소장한지 10년 정도 지나 그 중 ‘Signal hill’이 영화 < 국화꽃 향기 >에 사용되었을 때 실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실 가당찮은 바람이었다(크리스, 자네도 마찬가지야). 결국 좋은 음악은 스스로 생명력을 가지게 되어 있으니까. 직장을 다니기 시작한 무렵 가장 위로가 되어준 음반이다. 야근을 마치고 늦은 밤에 홀로 소주잔을 기울일 때 함께 한 음악. 내가 가진 모든 음반을 다 버려야 한다는 잔인한 상상을 해본다. 딱 한 장만 남길 수 있다면 그건 바로 음반이다.

봄여름가을겨울 ‘자두빛 와인과 그녀의 웃음’
산천은 의구하되 인걸은 간 곳 없는 오백년 도읍지를 방문한 심정이다. 대형마트 한 구석 초라한 음반 코너, 그것도 맨 아래 칸에서 먼지 앉은 봄여름가을겨울의 8집을 발견했을 때 내 심정 말이다. 1990년대 황금기의 몰락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게다가 들어보니 8집은 봄여름가을겨울 모든 음반을 통틀어 최고의 걸작이었다. 안타까움은 더 깊어 졌다. 지금이 케이팝의 전성기라고 한다. 하지만 길을 걷다 아무 레코드 가게에 들러 라떼 에 미엘레의 LP를 손쉽게 살 수 있던 90년대가 그립다. 그나마 몇 안 되던 초라한 음반코너마저 사라진 지금, 어즈버 태평연월이 꿈이었나 싶다.

이승환 ‘Fall to Fly’
이승환이 데뷔한 지 30년이 되었다. 예전에 그는 내가 관심을 가진 뮤지션이 아니었다. 그냥 잘 나가는 가수들 중 한 명으로 인식했지 음반을 사거나 콘서트에 찾아갈 정도의 애정은 없었다. 아픈 기억도 있다. 지금은 처남이 된 여자친구 오빠를 처음 만난 날 노래방에 가서 ‘세상에 뿌려진 사랑만큼’을 불렀다가 비웃음을 받았다. 그 후 20년 넘게 이승환 노래는 절대 선곡하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은 음반 발매를 가장 손꼽아 기다리는 가수가 이승환이다. ’30년 전에 내가 타임머신 타고 30년 후의 지금 나를 본다면’ 무슨 말을 하게 될까? “헐, 당신이 이승환 콘서트에? 그것도 모든 곡을 따라 부르고 있다니…”